잔느 딜망 - 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서설.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를 검색하려고 영국을 쳤더니 그동안 검색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영국에서 제작되거나 영국 합작 영화들이 주르르 떴다. 호기심에서 프랑스를 쳤더니..세상에나..감독 이름이나 배우 이름으로 찾을 수 없는 영화들이 한가득이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게 억울하기도 하고 철지난 옷에 무심코 넣어뒀다 생각지도 못하게 발견한 지폐처럼 즐겁기도 하다. 로랑 캉테의 <더 클래스>, 고다르의 영화 몇 편. 게다가 샹탈 애커만의 <잔느 딜망>이라니! 201분이라는 압박스런 런닝 타임에 3일에 걸쳐서 일 끝나고 봤다.  

브뤼셀의 께 뒤 꼬메르스Quai du Commerce 23번지에 잔느라는 과부가 있다. 그녀는 집에서 매춘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아들을 키운다. 카메라는 삼일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지켜본다. 좁은 집안에서 그녀를 조용하지만 짖궂을 정도로 밀착해서 따라다닌다. 좁고 어두운 복도, 그녀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주방에서 카메라는 그녀를 기다린다. 프레임 안으로 그녀는 들어왔다가 나간다. 프레임 밖으로 잔느가 나가도 마루바닥에 닿아 나는 발소리가 분주하다는 걸 알려주고, 설거지를 할 때 물소리가 그녀가 아직 어디 있는지 알려준다. 음악보다는 주전자 물 끓는 소리, 발걸음 소리, 엘리베이터 작동하는 소음 등이 그녀의 신경과 관객의 신경을 긴장시킨다.

잔느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장을 본다. 장보고 집에 오는 길에 똑같은 카페에 들러 같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아들과 최소한의 대화만을 나누고 잠자리에 든다. 소름끼칠 정도로 그녀의 일상은 지독한 쳇바퀴다.  

그러나 권태보다는 긴장감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둘째 날, 신경이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잔느는 아침에 아들 구두를 손질하다 구두솔을 떨어뜨리고 매춘 후, 첫날과 다르게 헝클어진 머리를 그대로 하고 있으며 잠옷 가운 단추도 다 채우는 걸 잊는다.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미세한 오차가 그녀의 초조한 심리를 전달한다. 장을 보러갈 때도 카메라는 길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가 물건을 사러 들어가도 그 자리에서 빈 거리를 보여준다. 조금 기다리면 그녀가 가게에서 나오고 카메라는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셋째날에, 잔느의 심리는 더 고조된다. 커피를 두 번이나 탔지만 곧 쏟아버리고 양복 단추를 찾아 동네를 돌지만 단추는 없다. 설상가상으로 카페에 들렀더니 늘 앉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다. 침대 시트 정리 같은 사소한 일에도 각을 잡고 베개에 난 구김을 털어내는 그녀의 손동작 속에 전력투구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다. 표정은 굳어있고 옷매무새가 검소하지만 흐트러짐이 없는 그녀는 목으로 올라오는 일상의 권태를 꿀꺽 삼키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삼키는 게 더 이상 힘들어질 때, 게워내기 마련이다. 잔느가 보낸 이틀을 두 시간동안 보내고 있으면 삼일 마지막에 게워낸 잔느의 행동에(궁금하신 분은 보시길) 놀라기보다는 공감을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다.   

건조한 프레임에서 정교하게 짜 넣은 공감의 힘에 박수치고 싶다. 수다스럽지 않게 일상의 힘겨움을 다룬다. 때론 일상이 축복이지만 일상은 대부분은 투쟁의 대상이다. 사소해서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곧 자신과의 싸움이 돼버린다. 가사 노동만이 그 대상이 아니라 밥벌이를 위한 일정한 노동도 반복적이다. 아주 가끔 보람 비슷한 게 찾아오는 거 말고는, 대부분의 날들 동안 연봉에 맞는 노동력을 제공하려고 애쓰다 보면 자아 따위의 개념은 우주여행 중이시다. 발을 딛고 있는 건 피곤한 육신이고 투덜거릴 기력조차도 없다. 힘든 요즘이다..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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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8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힘든 요즘이다..흑 ㅠㅠ

저두요..ㅠㅠ


근데 이 영화는 못 보았어요. 꼭..반드시.. 찾아보야겠네요.... 저도..잔느의 행동에 놀라기보다는 공감을 할 것 같아요..

넙치 2010-03-29 00:05   좋아요 1 | URL
최근 본 영화 중에서 제일 좋았던 영화에요,
근데 <예언자> 보는 거 힘드셨음, 이 영화도 지켜보기에 만만치않게 힘들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