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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드레이크 - Vera Drak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여행할 권리>에서 김연수는 미국에서 만난 한 젊은 친구와 하루키를 이야기하면서 나이도 국적도 다른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들끼리 하루키를 좋아하는 게 신기하다고 신나게 이야기한다. 하루키의 문장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급친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코드가 존재한다.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를 몇 편 안 봤지만 그의 영화적 언어에서 공감을 느낄 수는 없다, 고 말할 수 있다. 저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되나..안타깝기까지 했다. 꽤 좋은 평을 받은 영화라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구석이 거의 없다. -.-
전반부는 베라 드레이크의 성실함과 행복을 다룬다. 유능한 가정부로 맡은 일에 성실한 소시민이다. 늘 같은 길, 같은 시간표로 일상을 살아가지만 베라 드레이크는 늘 콧노래를 부를 정도로 여유있다. 영화가 전개되는 시점은 1950년으로 낙태가 금지된 시기다.(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베라는 원치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낙태시술을 한다. 베라가 낙태시술을 하는 목적은 젊은 여성을 돕는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돈을 챙기거나 법을 어기고 있다는 생각 따위보다는 겁에 질린 여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모든 기쁨은 끝이 있는 법이다. 베라의 시술이 잘못돼서 죽을 뻔한 여자의 엄마가 신고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후반부는 낙태시술이라는 불법행위에 대한 제도권의 태도와 베라의 태도를 배치해 보여준다. 먼저 베라는 정신세계 속에 위생, 불법 등등에 대한 개념이 없다. 베라는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무지에서 비롯되서 선의라고 착각한 행동에 대해 베라는 그저 공포스럽기만 할 뿐이다. 형사나 검사, 판사들은 그녀의 의도를 보는 게 아니다. 그들은 베라의 행동만을 떼 놓고 본다. 행위가 행위자의 의도를 빠져나와 사람의 입이나 글로 진술될 때, 얼마나 다른 일이 될 수 있는지...법이나 정의의 객관성은 사람의 생각을 거추장스러워해서 싹뚝 잘라버리니 진정한 정의는 과연 존재하는지.
뭐,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실내 장면이 많고 카메라는 굉장히 좁은 공간만을 사용한다. 인물의 클로즈업, 모여앉은 인물들을 한 앵글에 잡을 때도 그렇다. 어쩌면 미국식 카메라 팬잉fanning에 익숙해서 정지된 카메라가 낯설고 답답한지도 모르겠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베라가 좁은 골목길을 왔다가갔다 할 때다. 캡쳐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