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연애조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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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객관적으로는 별 불만 없는 영화다. 시라노 드 베르주락 희곡을 한 자락깔고 중층 플롯으로 진행한다. 시라노에서 연애 대행업 코미디로 비약하다니 기발하다. 시라노가 창문 아래서 록산느한테 읊었던 편지들이 진심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감동 드라마라면 연애 조작단은은 웃음과 연애도 물건을 쇼핑하듯이 살 수 있다는 게 묘하게 현실적이다.  

2.주관적으로는 역시나 설날이나 추석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할 때 보면 딱인 영화다. 이런 영화를 보고 무언가를 느끼기에 내 생활은 지나치게 건조하고 그냥 웃어 넘기기에는 뻔한 이야기다.

 3. 그러나/그래도  이 영화에는 이민정과 송새벽이 있다. 이민정은 로맨스 코미디에 참 잘 어울리는 인상의 소유자다. 약간의 비음이 섞인 목소리와 시원한 이목구비는 완전 사랑스럽다. 화면을 뚫어지게 봤다. 

<방자전>에서 변학도로 나왔던 송새벽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실실난다. 그의 발성법은 독특하다. 말할 때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혀 근육을 절반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입술 사이로 말을 밀어낸다. 난 정말 모르겠어, 하는 해맑은 표정과 눈빛에서 웃음 바이러스가 분사된다. 이 영화에서도 변학도를 떠올릴 정도로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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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2 - The Godfather: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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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고 고대했던 <대부2>가 개봉했다. 3시간20분이라는 긴 런닝타임 동안 좁은 공간에 앉아서 두 다리를 번갈아 올렸다 내렸다 밖에 못하는데, 이건 좋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꼿꼿하게 앉아있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고통(?) 견딜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이미 한 차례 <대부>시리즈와 알 파치노에 대한 내 애정을 포스팅한 바 있다.

알 파치노의 매력이 절정에 달한 영화이기도 하다. 알 파치노의 쏘는 둣한 눈망울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완전 황홀하다. 스크린으로 본 영화는 기억 속에서 보다도 더 어둡고 슬펐다.  

명화나 명작이 시간이 흐른 후에도 생명력을 갖는데 현재성과 보편성 때문이다. <대부1>보다 <대부2>는 현대와 더 닮아있었고 마이클이 돈 콜레오네로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했다. 이민 2세대이면서 마피아 2세대인 마이클은 아버지 비토가 죽은 후, 위기에 직면한다. 패밀리의 중의적 의미, 혈연적 관계와 사업 관계에 있는 패밀리가 모두 흔들린다. 사업 파트너들은 돈 콜레오네가를 치려고 하고 마이클의 아내, 형은 마이클한테 등을 돌린다. 안팎으로 흔들리는 다리 위에 선 마이클은 점점 더 냉혹해진다. 친형이나 다름 없는 탐 헤이건도 안 믿는 지경에 이른다. 탐 헤이건이 묻는다. "꼭 그렇게 다 쓸어버려야겠어?" 마이클은 대답한다. "내가 그동안 배운 건 한 가지야. 적은 죽어야한다는 거."

이 말이 끝나자 큰 형이 살았있던 아버지의 생일날로 플래쉬 백이 이어진다. 대학생이었던 마이클은 전쟁에 입대를 자원했다. 국가는 모두가 지켜야하고 사랑해야하는 대상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서 인생관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국가는 개인을 보호할 수 없으면 자본만이 유일한 믿을만한 대상이 돼버린다. 누구나, 말할 수 있든 없든, 자신만의 살아가는 방식과 신념이 있다. 돈 콜레오네 부자 2대를 걸쳐 만날 수 있는 건 순수했던 신념을 간직한 평범한 이들이 자본만을 믿기 시작하면서 이기적이고 더욱더 고립을 자초한다. 불신은 자본의 친구다. 자본주의의 초상 속에서 마이클은 점점 초라해져간다. 살기로 가득 찬 눈매로 유리 벽 안에 갇혀 유리창이 깨질까봐 밖을 내다봐야하는 운명이다. 모든 걸 걸고 지키려했던 패밀리를 지키는 일만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일도 힘겹기만하다. 네바다 주에 쌓인 눈처럼 모든 게 차갑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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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 Bedevil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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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의 말에 따르면 사심 없는 행위는 없다. 공리주의 역시 사심에서 비롯된다. 김복남의 친구 해원은 부르디외의 말을 입증하는 인물이다. 자로 잰 틀에서 벗어난 모든 현상에 대해 까칠하고 불신한다. 해원이 무도로 복남을 찾아간 이유는, 사람들한테 갖는 불신의 농도를 좀 옅게 할 목적이었다. 복남은 해원의 등장을 반가워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해원은 복남의 지원군이 아니며 구세주는 더더욱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어렸을 때나 커서나 해원은 타인에 대한 애정이 없다. 복남은 해원을 절친으로 여기지만 해원은 복남이의 잔인한 결혼생활을 목격하고도 다른 사람과 같은 거리를 유지한다. 이 거리감이 해원을 무도로 내쫒은 원인다. 해원은 무도에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복남의 유일한 희망은 '내 친구' 해원이었다. 그러나 해원은 복남이를 '내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 복남은 폭력에 대한 부당함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폭력과 불의에 대한 사람들의 자세는 순종과 이따금씩하는 거짓말이다. 폭력의 힘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그 두려움을 유지하기 위해 강도가 더 세진다. 복남과 해원을 포함한 등장인물 모두 억압에 순종적이다. 그러나 폭력은 두려워하는 자한테만 힘이 세다. 계몽따위가 두려움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개인적 사건이 두려움을 제거한다. 복남이한테는 모성이다. 딸을 잃고 복남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폭력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실체를 파악한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는 최후를 맞이한다.   

억압의 대상이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로 나설 때 한편으로 통쾌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데... 이 영화는 계몽영화가 아니니 이런 생각이 불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덧. 이 영화를 보고 들어 온 날, 수다를 필요로 하는 친구와 전화를 했다. 한동안 소원했던 친구였는데 복남이가 해원이 한테 "넌 너무 불친절해"한 말이 떠올라 친구의 손을 잡았다. 친구가 손 잡아 달라고 내밀 때 모른척 한 적이 여러 번있은지라 해원이 복남의 편지를 뒤늦게 보고 후회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누군가 내 손을 필요할 때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사심이 있더라도 손을 잡아 주는 게 더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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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가? 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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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 영화, <빵과 장미>를 봤을 때, 영화를 왜 이렇게 만들었나 했다. <케스>에서 보여주었던 서늘한 사실적 시선은 다 어디다 뒀는 지 의아했다. 그러다 내가 이주 노동자라면, 가정해 봤다. 핍박받는 가망성 없는 현실을 화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현실과는 다른 결말에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거 같았다. 한편의 비현실적 영화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작지만 정이 넘치는 선물이 될 수 있다.  

<방가?방가!>는 여러 면에서 <빵과 장미>를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서 여러 가지 소재들을 차용해왔지만 현실과는 아주 다르게 낭만적이다. 청년실업의 대표자인 방태식이 부탄에서 온 이주 노동자 방가가 되는 비극적 현실이 눈물이 아닌 웃음으로 포장된다. 뭘 해도 재수가 없는 방가는 막장 인생에 있는 거라고는 정의감과 의리 뿐인 순진한 청년이다. 정의감과 의리는 아무때나 튀어나와 극을 끌고가는 원동력이 된다.

외국인 노동자로 위장 취업한 방가와 그 주변의 이주 노동자들 이야기인데 어떤 면에서 사실적이고 무거운 재현보다 코믹한 시선이 더 현실에 관심을 끄는데 효과적일 수도 있을 듯하다. 피부색과 말투가 다른 이들을 대할 때 처음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더. 나 역시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를 미디어나 통해서 접했지 실제로 접해 본 적이 없다. 이주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현실에서 쉽지 않은데 이런 소재의 영화를 통해 이주 노동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도 의미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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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린든 - Barry Ly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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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몬드 배리한 한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인이 배리 린든이 되는 이야기다. 즉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일생이다.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약간의 재능과 열정을 가졌지만 지혜와 통찰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사나..뭐, 이런 시대극이다. 한편으로는 지혜와 통찰력 따위와 본래 친하지 않다면 배리 린든처럼 내키는대로 한 세상 살다보면 어떤 최후를 맞이하든 후회는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까뮈도 "인생은 연소할 대상"이라 하시지 않았는가. 

배리 린든의 질곡있는 삶에 연민을 느끼는 건 힘들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타일인데 인물이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음악을 사용해서 경쾌하게 만들어버린다. 후회나 회한 따위는 현실에서나 느끼고 영화 속에서는 즐겨봐, 하는 거 같다. 혹독한 장면에서도 귀를 잡아당기는 달콤한 음악으로 혹독한 장면에 너그러운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한다. 큐브릭 감독의 장점이면서도 단점이다. 볼 때는 즐겁지만 영화를 본 후, 이미지들이 보여준 가벼움이 현실에는 없는 걸 발견하고는 먼저 안도하고 조금씩 곱씹으면 왠지 속은 기분이 든다.

이 영화는 자연광과 촛불만을 사용한 영화로 유명한데 정말 꼭 극장에서 봐야할 비주얼이 영화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대부>처럼 기술이 발달하다보면 언제가 스크린으로 만날 날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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