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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포 선라이즈> 10년이 넘은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디비디를 구입하고 다시 본 이유는, 매번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을 때마다 볼수록 의미가 있는 영화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사랑과 이별을 수없이 반복해서는 안되겠지만. 2004년의 10월, <비포 선셋>이 개봉했을 당시 난 대학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취업준비생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취업준비생의 그 각박한 심정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난 여전히 책을 읽었고, 여전히 영화를 보며 돌아다녔고, 예전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 무슨 배짱으로. 하여튼 그런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극장 좌석에 앉아 봤던 영화가 <비포 선셋>이었다.

  <비포 선라이즈>는 이보다 9년전 1995년에 개봉한 영화다. 그러니 난 그 영화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비포 선셋>을 봤을 때 포스터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 전편이 있었구나. 언젠간 봐야지. 1995년에 나의 신분은, 고 1. 아 이런 파릇파릇한 넘 같으니. 그때 난 열심히 공부했을 때였다. 영화나 책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록음악에 입문했을 시기, 마냥 넥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그것으로 만족했던 시기가 바로 나의 고 1이다. 고 1 때 <비포 선라이즈>의 존재를 알았다 하더라도 당시 나의 취향으로 봐서  저 영화를 봤을리도 없다. 봐야 느끼는 것도 없을테니. <비포 선라이즈>와 <선셋>은 사랑을 경험하고 가슴아픈 이별을 경험한 이들이 봐야 의미 있는 영화다. 영화를 보며 나의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고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비록 이렇게 <비포선셋>을 먼저 보고, <비포선라이즈>를 뒤에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좋다. 혹자는 <선라이즈>를 먼저 보고 <선셋>을 9년 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 봐야한다고 하지만, 흠. 나의 상황이 그리 허락치 않은 것을.

  프랑스 여대생 셀린과 미국 청년 제시가 만난 것은 기차에서 였다. 셀린은 할머니를 뵙고 가을학기 개강에 맞춰서 파리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제시는 마드리드에 유학 온 여자친구를 보러 왔다가 실연 당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서로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하다가 -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기차에서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급적이면 고급스러운 연애소설이 좋겠다. 알랭 드 보통 같은. 연애소설을 저급과 고급으로 나누는 것은 좀 뭣하지만, 그래도 그냥 웃고 우는 연애소설이 있고, 생각하게 하는 연애소설이 있다  - 식당칸으로 자리를 이동 본격적인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 제시의 엉뚱한 제안을 받아들인 셀린은 제시와 함께 내려 비엔나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영화는 <비포선셋>과 마찬가지로 장면의 전환이나 별다른 사건 없이 밋밋하게 진행된다. 그러니 영화를 통해 재미를 찾으려는 사랑에 무관심한 이들이 보면 에이 지루해 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영화다. 그러나 난 이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움직임 없는 정적인 배경과 화면, 장면의 전환보다는 카메라가 주인공을 따라가며 장면을 이어나가는 그런 영화. 주인공의 대사와 작은 손짓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영화. <비포선셋>은 그런 영화다.



  제시는 오락실(?)에서 셀린과 핀볼을 하며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차였을 때 제일 못 견디겠는게 뭔지 알아?"

 "내가 예전에 찬 여자들을 거의 생각안하듯, 날 찬 여자도 날 거의 생각 안할거란 걸 깨닫는 순간이야. 날 찬 여자도 슬플거라 생각하고 싶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차고 나니 속 시원한데!, 그 뿐이야"

  내가 지금 가장 못견디겠는건 어쩌면 이별의 슬픔 때문도 아니고, 그녀가 보고 싶기 때문도 아닐지 모른다. 가장 못견디겠는건 내가 예전에 찬 여자들을 생각안하듯, 날 찬 그녀가 날 거의 생각 안할거란 걸 안다는 것이다. 날 차는  순간 눈물을 보였지만 그것은 이별의 수순일지도 모른다. 이별하게 되면 눈물이 나올 수 있다. 물론 그보다 더 매멸차게 차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 가혹하고 차고 있는 나 자신도 너무 나쁜 놈이 되지 않는가. 내가 좋은 놈이 되고, 상대에게 가혹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서 눈물을 보여주는 것. 이별을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다.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나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 또한 어쩌면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차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난 연애를 하고 찬 적이 없었다. 초창기에는. 왜냐면 차인다는 사실 자체가 여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갈 거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난 감히 여자를 찬다. 예전엔 사귀었던 여자가 싫어져도 상대가 날 차게끔 만들었지만 - 아픔을 덜 받게 하기 위해서 - 지금은 그냥 찬다. 가혹하다면 가혹한 것이지만 그렇게 착한 남자가 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착한 남자로서의 삶은 너무 힘들다. 난 예전보다 점점 못되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런 내 자신에 만족한다. 아직 멀었다. 아직도 난 착한 남자다. 너무나도. 더더욱 못된 놈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도 시간이 좀더 흐른 뒤에 내가 화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내가 찼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삐걱대고 있었으므로.

 



* 두 사람은 비엔나의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한다. 혼자 되는 법을 모르는 두 사람은 사랑을 원하고 있다.

     셀린과 제시에게 있어 단지 기차에서 내려 비엔나를 돌아다닌다는 사실 이외에는 변화된 것이 없다. 두 사람은 여전히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 인생, 사랑, 결혼, 죽음, 실연 등 그들이 나누는 소재는 각자의 삶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갑작스레 다가온 사랑에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셀린과 제시. 그들은 공원에서 누워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그리고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다.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나잇 과는 다른 개념이다. 겉으로 볼 땐 원나잇 맞다. 하지만 그들이 나눈 사랑은 원나잇과는 다르다. 보통의 원나잇이 그저 섹스를 위해 이성을 찾아나서 눈맞으면 함께 섹스하고 끝내는 그런 관계인 반면, 셀린과 제시의 사랑은 비록 하루였고, 우연적이고, 갑작스럽긴 했지만, 서로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진 기간은 비록 하루였지만 두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이미 상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있었다. 볼 수 없다고, 만날 수 없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 볼 수 있을지, 언제 만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은 각자의 마음에서 피어난 감정의 싹을 스스로 잘라야하는지도 모른다.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 오늘 하루만 이렇게 함께 있기로 약속했지만, 헤어질 때는 이미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안다. 기차가 떠나갈 무렵, 일년 뒤 바로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대답은 <비포선셋>에.

 

  하나 더. 제시는 셀린과 핀볼을 하며 이런 이야기도 한다. 사랑은 혼자 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흠. 그런가? 난 혼자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혼자 일하고, 혼자 책보고, 혼자 영화보고 하는 행위들을 난 즐긴다. 나의 취미는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당구도 못치고, 볼링도 몇번 쳐본게 다고, 축구, 농구, 야구 이런거 하나도 못하고, 스케이트, 스키도 타본적 없다. 내가 관심갖고 있는 분야는 그림그리기, 글쓰기, 책읽기, 악기 연주하기, 영화보기  등 순 혼자하는 것 뿐이다. 그렇담 나는 혼자되는 법을 아는 사람인가? 하지만 불행히도 대답은 '노'다. 난 혼자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내가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순전히 '취향'의 문제다. 혼자 되는 법을 아는 것과는 별개다. 난 혼자 되는 법을 모른다. 난 항상 외롭고, 타인과의 소통을 원하고, 함께 이야기하길 원한다. 그러므로 제시의 말에 따라 결론을 내리면, 난 사랑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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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1-0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혹자는 1995년 고3이였지만, 극장에서 보고, 2004년 비포선셋을 보며, 젠장, 했더라지요. 비포선셋의 마지막 장면 영화보고 나온 오랫동안 머리에 맴돌았는데, 사랑이라는게, 헤어짐이라는게, 다시 만남이라는게, 그런거겠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

마늘빵 2006-01-09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고3 이셨군요. 흠. 사랑의 진한 경험이 없는 고3 이 봤을 때 뭔가 느낄 수 있을까요? 흠. 전 짝사랑의 추억만 있었던지라 그때 봤어도 그닥 와닿는게 없었을거 같은데. 하이드님은 아니었나요?

하이드 2006-01-0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에 비포 선라이즈는 아마, 영화속에서 스무살, 그니깐 고3이였던 제 나이와 비슷한 애들이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거죠? 풋사랑에 가깝고, 그래서 와닿고, 2004년에 비포선셋을 봤을때는 또 나름 사랑에 회의와 허무를 깨달아버린 ( 물론 난 결혼은 안 했지만;) 후의 주인공들이 또 와닿았더랬어요.

mannerist 2006-01-09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 선라이즈 보고 빌고 또 빌었는데. 제발 두 사람, 여섯달 후 만나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일년 후가 아니라 여섯달 후에 만나기로 했다죠. 일년, 너무 길다고.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집에가서 다시 한 번 볼까요? ㅋㅋㅋ

마늘빵 2006-01-0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랬군요. 흠. 나이를 먹을수록 이 '사랑'이란 것에 대한 낭만과 이상이 사라져버려요. '나이를 먹을수록'이라기보다는 '사랑을 겪을수록'이라고 하는게 더 맞겠군요. 사랑의 경험이 없는 30대 순수청년들은 처음 만난 사랑에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을 보이니.

마늘빵 2006-01-09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 흠. 일년이 아니고 여섯달이었나? 그랬던거 같기도 해. 왜 기억이 안나지. 이런 까마귀. 여섯달 뒤에 너무 춥다고 일년으로 다시 바꾼거 같기도 한데. 흠.

하이드 2006-01-09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여섯달로 기억하는데, 음 '여섯달 뒤에 너무 춥다고 일년으로 다시 바꾼거 같기도' 라는 얘기를 들으니, 다시 일년이었나 싶은 것이 ( '')

깐따삐야 2006-01-0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올리셨네요. 잘 봤습니다. 어디서든 이 영화 포스터만 보면 설레여요. 흐흐.

하루(春) 2006-01-0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섯달 후 추운 겨울에 만나기로 한 거 맞아요.
원나잇 스탠드 맞죠. 문제가 된 건 그 둘이 너무 어리고, 멍청했다(young and stupid)는 거죠. 경험이 좀 있었다면 주소나 전화번호라도 나누고 헤어졌을 텐데 말이죠.
저는 이 시리즈 두 편이 좋은 이유가 주인공들과 나이가 같다는 것도 한몫 작용했어요. 나이 얘기하는데 괜히 더 솔깃해지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

마늘빵 2006-01-09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 여섯달 후가 맞나봐요. ^^
깐따삐야님 / 네 저도 이 영화 두 편 너무 좋습니다. 두고두고 보렵니다.
하루님 / ^^ 여섯달 후가 대세네요. 제가 잘못 기억했나봐요. 주소, 전화번호 얘기도 마지막에 하는데, 그게 뭐 필요있겠냐 이런 대화를 나누죠. 그냥 연락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보자고. 영화 넘 좋아요.

마태우스 2006-01-09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평이었습니다. 케이블에서 이 영화 하기에 보려다가 비포 선라이즈 먼저 보고 봐야겠다며 안본 적이 있어요. 멜러영화 저 참 좋아합니다. 글구 아프님, 혹시 남자를 차신 적은 있습니까?^^

이리스 2006-01-0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고등학생이었군, 이 영화 개봉당시.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지 -.- 착한척 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여자가 차게끔 만들어놓고 자기는 면죄부라도 받은듯 굴지. 착하다, 나쁘다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굳이 나빠질 것도, 또 착해질것도 없을거 같아. 그냥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흠, 마태님.. 남자라면 발로 뻥 차는걸 말하는 것이겠죠? ㅎㅎㅎ


Kitty 2006-01-0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너무 좋아해요.
영화보고 필 받아서 비엔나에서 자체 비포 선라이즈 투어까지 했다는 -_-;;
비포선셋은 다 좋았지만 줄리델피와 에탄호크의 나이가 느껴져서 약간 슬펐어요.
너무나 리얼해서 오히려 슬펐달까..

마늘빵 2006-01-09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 ㅡㅡ; 남자를 찬 적은 없구요. 마태님이 아니길 바래요. ^^; 근데 저 영화 <비포 선라이즈>인데요. 저도 멜로 영화 좋아해요. 가슴아픈 이야기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구두씨 / 대학 2학년이셨군. 흠. 나랑 꽤 차이나네? ^^ 흠. 근데 구두누나 말대로라면 난 계속 나쁜 남자였는데. 차게 만들거나 찼으니까. 흠. 아니다. 난 그런 생각 없었는데 차인 경우는... 없구나. 걍 데트만 하고 연락 안한적은 있지만.
키티님 / 헉. 비엔나까지 가셨어요? 대단한 열정이세요. 두 주인공들이 그대로 늙어가는 걸 보여주는 것도 좋던데요. 주인공을 바꾸지 않고 그 사람 그대로 시간만 9년 흐른 뒤의 그 모습 그대로.
 
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일본 소설가의 작품은 아마도 기억컨대 무라카미 하루끼의 몇몇 소설 밖에 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나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이번에 본 <연애소설>이라는 책을 쓴 가네시로 카즈키는 내가 접한 두번째 일본인 소설가이다. 그런데 겉표지를 한장 넘겨보니 이 사람은 순수 일본인이 아니다. 68년생으로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마르크스주의자인 아버지로 인해, 조총련계의 학교를 다니고, 이후에도 재일교포로서 방황의 나날을 보내며 책과 영화와 음악에 빠져 살았다고 쓰여져있다. 그는 자신을 일본인으로도, 한국인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 또래 재일 한국인에게 중요한 것은 국적도, 민족도 아닌 연애"라고. 그럼 나도 라고 할란다.

   <연애소설>은 '연애소설'이다. 제목이 연애소설인 경우는 처음봤지만 검색해보면 몇 권 더 나온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연애소설>도 있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연애소설은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애소설>이라는 책이 하나의 사랑이야기를 담아낸 것이 아닌, 세 개의 짤막한 이야기들을 묶어서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각각의 이야기에서 깊은 감동이 느껴지거나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분량이 짧고 이야기가 간단하다보니 감정이입할 단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물론 이야기는 매우 슬프다. 그러나 한편으로 황당하기도 하다. 다소 좀 비현실적이라 생각되는 설정을 함으로써 '황당'으로 시작하여 '슬픔'으로 끝맺는다.

   세개의 작품은 '연애소설' 과 '영원의 환' , '꽃' 이다. 개인적으로는 노년의 사랑이지만 '꽃'이라는 작품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감동이랄건 없고 가장 나았다. '연애소설'은 남녀 두 대학생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설정이 조금 황당하다. 주변에 사귀기만 하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운명같은 거 잘 모르겠지만, 늘 생각하는게 있긴 해. 있지. 제대로 전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어도, 안 만나면 그 사람은 죽어버려. 사람은 다 죽잖아. 그러니까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거나 다름없는거야. 가령 추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 버려. 이 세상에는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잖아. 지금은 너하고 이렇게 손잡고 있지만, 손을 놓고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못 만날 가능성도 있는거잖아?" 
(연애소설 中)

   '연애소설'의 한 대목이다. 설정은 황당했지만 두 남녀가 나누는 이 대화는 꽤 감동적이었다. 서로 어긋나는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안에 담겨있는 의미들이. "안만나는 사람은 죽은거나 다름없는거야" "추억 속에 살아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버려" 

  가뿐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짤막한 소설들이다. 그렇게 되새기고 나중에 다시 보며 느껴야 할 소설은 아니지만 가볍게 사랑이야기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선 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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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09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아프락사스님 우린 이렇게 라도 만나서 다행이에요

마늘빵 2006-01-09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릴케 현상 2006-01-09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근데 일본소설 빙점은 어릴 때 다들 보지 않았으려나^^

마늘빵 2006-01-0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빙점이 뭐래요. 전 모르는데.

깐따삐야 2006-01-09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만나지만 사무적인 대화에 겉도는 감정만 주고받는 사람도 저한텐 죽은 사람, 죽은 관계나 다름없이 느껴지던걸요.

마늘빵 2006-01-0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님 말씀도 맞네요. 흠. 근데 이상하게 일할 때는 제 자신도 그렇게 되어버리더라구요.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저도 지나치게 사무적인 태도를 가질 때가 많아요. 흠. 고쳐야되는데.

히피드림~ 2006-01-09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네시로 카즈키의 [레볼루션 No.3]를 재밌게 읽어서 이 책도 샀어요.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을 사면 이 책도 준다길래 순간 이성을 읽고 '덥썩' 장바구니에 넣었지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님의 리뷰가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마늘빵 2006-01-10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펑크님 저랑 같은 케이스에요. 저도 <밤의 피크닉>사고 이거 덤으로 받았어요.

kleinsusun 2006-01-1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꽃>이 참 마음에 와닿았어요.
정말...."사랑해서" 그런건데 살다 보면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것을 놓쳐 버리는 경우가 많쟎아요. 참 공감하면서 읽었던 소설이예요.

마늘빵 2006-01-1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사랑해서" 그런건데. 정말. 싸우고 틀어지고 헤어졌지만 서로의 마음 속에 간직한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나 안타깝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절판


"운명같은 거 잘 모르겠지만, 늘 생각하는게 있긴 해. 있지. 제대로 전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어도, 안 만나면 그 사람은 죽어버려. 사람은 다 죽잖아. 그러니까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거나 다름없는거야. 가령 추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 버려. 이 세상에는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잖아. 지금은 너하고 이렇게 손잡고 있지만, 손을 놓고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못 만날 가능성도 있는거잖아?" (연애소설 中)-7쪽

"언제부터 밤이 무서워진 걸까......"
나는 잠자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마, 상상력이 없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일 거야. 나는 머리가 좋다고 착각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이 세계를 모두 알았다는 기분으로 함부로 대해서는 안될 것을 함부로 대하고......"
(영원의 환 中)-84쪽

"타인을 위해서 살인하는 인간은 없어. 인간은 자기밖에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동물이니까."
(영원의 환 中)-101쪽

"행복하고 싶으면 불필요한 통찰력이나 상상력은 없는 편이 나아. 그리고 눈앞에 존재하는 죽음 따위 싹 무시하고 쾌락을 좇으며 사는 편이 훨씬 낫지.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
(영원의 환 中)
-104쪽

"이 꽃 물망초란 꽃이야. 이름 정도는 들어 본 적 있지? 그리고 이 꽃에는 꽃말이 두 가지 있어. 하나는 '진실한 사랑' 그리고...... 날 잊지 말아요. 날 잊지 말아요....... 날 잊지 말아요...... 날 잊지 말아요...... . 아, 이 얼마나 완곡한 방법인가. 그리고 이 얼마나 고리타분한 사랑의 형태인가. 하지만, 이렇듯 곱고 따스하다. 나와 도리고에 씨는 거의 동시에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엉엉. 꺽꺽. 흐흑흐흑. 아무튼 온갖 소리를 지르며 한참을 사방 아랑곳하지 않고 울었다."
(꽃 中)-115쪽

연애의 시작은 설레는 가슴과 미칠 듯한 그리움과 짙푸른 희망이다.
그리고 연애의 끝은 그 대상과의 결별이며 동시에 연애를 했던 자기 자신과의 결별이기도 하다. 활활 타올랐던 연애의 빨간 불길은 한 인간을 집어삼켜 재로 만들거나, 때로는 그 불길 속에서 새로운 인간을 낳는다. 타고 남은 재가 숨을 얻어 다시금 살아나는 것이다.
재가 되어 사라지는 인간은 온갖 증오와 절망과 회한과 복수심으로 들끊는 가슴을 안고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소멸시킨다. 그 때 삶은 곧 죽음이다.
그러나 연애의 선물인 회한의 눈물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은 과거를 소중하게 껴안고, 그 기억을 삶의 버팀목으로 삼아 질기게 살아남는다. 그리고 사랑했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영원히 놓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옮긴이의 말 中)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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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0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연애는 언제나 하고 프죠.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도못했지만 힘든 연애를 해서 그런지 다음 생에서는 여우같은 플레이걸이 되고싶더군요

마늘빵 2006-01-09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전 아직 미혼인지라 연애를 더 할 수 있지만 저도 연애 경험이 많진 않습니다. 예전엔 이 사람 아니면 절대 안된다 라는 마음이 드는 단 한 명 찾아내서 결혼하자 라는 생각이었는데 갈수록 연애관이 바뀌네요. 일단 만나보자. 그리고나서 이 사람이다 싶으면 결혼하는거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요. 그래서 예전엔 한 사람과의 사랑이 끝나고 나면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그렇진 않은거 같아요. 그래 넌 내 운명이 아니구나. 그러고 말아요. '상처'를 받는게 아니라 '화'가 납니다. 날 차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그녀를 보며.

2007-01-24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생이 구청인가 어디에 방학에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있다. 아나운서를 준비하고 있는 동생은 모 방송에서 알바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고, 과외를 세 개인가 뛰고 있으며, 구청에서 하는 아르바이트에 뽑혀서 여길 다니고 있는데, 아 도서관인가. 하여간 잘 모르겠지만, 도서관인거 같다. 하튼 여기서 새 책을 접하고, 디비디를 접하고 하면서 맘에 드는 걸 몇 개씩 빌려오고 있다. 이번에 빌려온 디비디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이건 책도 있다. 동생방에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책도 보고 싶다. 아 나 읽을 책 내 방에 쌓여있는데. 언제 다봐.  

  네덜란드의 1665년. 16살 먹은 소녀가 집안 형편의 어려움으로 인해 화가 베르메르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오자마자 이름도 물어보지 않고 대뜸 할 일을 지시해주는 고참 하녀. 말 시키기 전에도 먼저 입을 열지 말라는 마나님. 고생문이 훤히 보인다. 집안을 둘러보던 그리트. 베르메르의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입이 쩍 벌어지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먹은 표정을 짓는다. 청소를 하러 들어온 이런 그리트에게 오묘한 감정을 갖게 된 베르메르. 그녀에게 그림을 보는 법, 색을 만드는 법, 물체의 구도를 잡는 법 등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일하기에도 바쁜 그리트. 하지만 몰래 베르메르의 방에 들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 이것이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 물론 모델은 그리트다. 청색과 백색 두건의 조화. 뒤로 쭉 늘어뜨린 두건. 의자에 앉아 비스듬히 뒤를 돌아보는 여인의 자태. 사랑스런 눈빛과 앵두같은 입술. 그리고 진주귀걸이 포인트. 너무나 아름답다.

   베르메르의 그리트에 대한 사랑, 하지만 표현할 수는 없다. 그는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6명의 아이가 있다. 장모님의 집에서 그의 후원자 라이벤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아내는 베르메르의 그리트에 대한 눈빛을 읽고 그녀를 경계하고, 딸은 그리트를 골탕먹이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트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다. 허락되지 않은 사랑. 그녀를 모델로 삼아 그린 그림. 그 그림엔 입술을 살짝 벌리고 베르메르를 돌아보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져있으니. 게다가 그녀는 아내의 진주귀걸이까지 했다. 분노. 그녀는 집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베르메르는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몰래 진주귀걸이와 그녀가 했던 두건을 하녀를 통해 보내준다.   허락받지 못한 사랑을 지켜보는 안타까운 심정.  

  영화는 화가 베르메르와 그의 하녀이자  제자이자 모델인 그리트의 사랑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장면에는 당연히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 물감을 만드는 장면, 그의 화실 등의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영화 속에 그림에 대한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한편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하얀 캔버스 위에 물감을 풀고 덧칠하고 따뜻한 색감을 만들어나간다. 인물의 구도를 잡는 면에서도, 집안 곳곳의 장면들을 잡아내는데서도, 하나의 그림과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감독이 그린 그림 몇 작품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보여지는 듯한 느낌이다. 감독은 빛을 매우 잘 활용했다. 등장인물들의 얼굴과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구도, 그리고 그림자까지도 매우 세심하게 처리한 듯 하다. 꼼꼼하고 세심한 그의 시선이 이 영화를 그림과 같이 만들어냈다.   어떤 감독인가 알아봤더니 그의 필로그래피에는 이 영화 단 한편만 걸려있다.

   하나 더.  84년생인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매우 좋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도. <아일랜드>에서의 모습과는 딴 판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의 그녀의 모습이 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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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0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으로만 읽었어요. 읽고 나서 보니 정말 그림속 여인의 표정이 오묘해 보였죠

마늘빵 2006-01-0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으로도 보려구요. 동생 책꽂이에 있어요. 지금 읽고 있는거 읽고선 봐야겠어요. 읽을 책이 너무 많아.

세실 2006-01-09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잊고 있었군요. 책을 참 재미있게 보고 한동안 추천도 많이 했는데 영화를 잊고 있었네요~~~~
 



  난 어릴적부터 싸움에는 별 재능이 없었다. 그걸 재능이라고 표현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난 누군가와 싸운다는 사실 자체를 떠올리기 싫었다. 항상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항상 매학년 올라갈때마다 착하고 순진하고 귀엽게(?) 생긴 녀석들을 건드리는 넘들이 몇몇 있다. 난 그 착하고 순진한 넘 중의 하나였고, 거기에 맨날 놀지도 않고 공부만 하던 녀석이었으니 애들이 더 싫어했을터. 난 운동과는 담을 쌓았고, 오락실, 게임, 말뚝박기 이런 데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도 난 공부만 하던 놈이었다. 그 공부를 고등학교 마지막 2년 동안 모두 말아먹긴 했지만. 당연히 아이들은 날 건드린다. 체격이 크지도 않았고, 항상 선생님들의 이쁨을 받았고, 순해빠졌으니까. 

  중학교 때 어떤 놈이 지나갈때마다 내 머리를 툭툭 건드리곤 했다. 그리고 공부하고 있으면 책이나 노트를 빼앗아 도망가곤 했다. 보통 이런 애들은 상대가 반응을 보여주길 원한다. 그래서 난 반응을 안했다. 할테면 해라. 그런데 한번은 화가 무지 나서 얼핏봐도 내가 질께 뻔한 상대한테 - 아마 그놈은 우리반 짱이었을 것 - 대들었다. 의자를 집어던지고 욕을 퍼부었다. 그랬더니 이 놈이 날 뒤로 끌고 가서는 막 패는거다. 난 한대도 못때렸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누군가를 때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거 같다. 그때 당시 맞는 날 위해 몇몇 친구들이 말리고 날 끌어냈다. 난 잘못한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좀 논다 싶은 애들도 나를 챙겨주는 넘들이 있었다. 

  <싸움의 기술>에서 백윤식은 말한다. 체력도 됐고, 근육도 붙었고, 기술도 됐고, 그런데 때리질 못한다? 문제는 '두려움'이다. 두려움 때문에 상대를 치지 못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두려움이 있다. 누군가를 때려서 상처를 입히는 두려움, 또 상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 난 싸워도 때리는 시늉만했다. 주먹은 날아가지만 힘이 실려있지 않고 엉뚱한 곳을 향한다. 그건 상대를 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난 몇 대 맞는다. 차라리 그게 더 낫다.  



* 사부님 제발 알려주십쇼. 라면까지 끓여다 대령하지만. "계란 넣었지? 난 계란 넣은거 안먹어. " 



* 맨날 만화책이나 보고 조그만 방구석에 틀어박혀 잠만 자는 이 폐인. 당신의 정체는 무엇?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오판수는 부실고딩 송병태를 훈련시킨다. 맨날 맞고 다니는 이 왕따. 결국 그는 해낸다. 그를 괴롭히던 넘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작살 내준 것. 맨날 맞기만 하는 그가 상대를 하나하나 꺾는 순간 난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들이 보복을 할 것이란걸. 그리고 신나게 맞는다. 사부 오판수가 그를 도와주기전까지는.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맨날 맞고 사는 나를 당신이 이해해? 그래 불쌍하다. 괴롭겠지. 그래서 싸움을 배워보겠다? 배웠다. 그리고 복수했다. 그런데 기분이 어떠냐? 좋더냐? 복수할 때의 그 쾌감은 이루말할 수 없겠지. 하지만 그 뒤에 따르는 감정.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영화는 이런 부분까지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상대에게 대항하면  상대도 당연히 더 세게 나온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또다른 폭력을 낳고. 끝은 없다. 싸움에서 이기는 기술을 전수해줄 것이 아니라 싸움을 하지 않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크게 폭력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괜히 멋모르는 중고딩들이 이 영화를 보고 따라하다 다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하나 더.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 중 한 누나가 이런 말을 했다.

  "일본 만화책 같지 않냐?" 아. 그러네. 난 만화를 즐겨보지 않아 눈치채진 못했지만, 마치 일본 만화책을 영화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싸움고수가 하수에게 기술을 전파해주는. 일본 만화에는 하수가 열심히 연마해서 세상을 재패하는 형식이 흔하지 않던가.

  또 하나 더. 이 영화는 혼자 비디오로 빌려다 보면 재미없다. 극장 맨 앞줄에서 다 여럿이 함께 보여 웃음보를 터뜨릴때 비로소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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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0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려움이 있어요. 실천하기 전에 나를 막아서는 두려움. ^^

깐따삐야 2006-01-0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참 착하셨네요. 저는 초등학교 때 하루에도 열두번씩은 싸웠던 것 같아요. 물론 아프락사스님처럼 착하고 귀엽게 생긴 아해들은 안 건드렸지만. ㅎ

마태우스 2006-01-09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의 조각같은 얼굴을 때리는 사람이 있다니, 말세로다...

마늘빵 2006-01-0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 저도 그런 두려움 있습니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하죠. 그래서 항상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너무 고민을 많이해서 주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깐따삐야님 / ㅎㅎ 싸움꾼이셨네요! ^^ (농담)
마태우스님 / ㅡㅡ; 할 말을 잃게 만드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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