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몽드 살림지식총서 48
최연구 지음 / 살림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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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컨대, 진실은 땅속에 묻더라도 그대로 보존되고, 그 속에서 무서운 폭발력을 간직한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 진실은 주위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것이다...... 누가 감히 나를 법정으로 끌고 갈 것인가.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中)-15쪽

콜롱바니가 이야기하는 르 몽드의 첫번째 적은 다름 아닌 '돈'이다. 그는 "신문의 '재정적 독립'이 없다면 기자들의 독립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신문의 재정적 독립성이야 말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강조한다.
콜롱바니가 말하는 언론의 두 번째 적은 '시간'이다. 즉, '리얼 타임의 독재성'이다. 오늘날 언론은 "권력이 생산-제어-통제하는 정보로 위협받고"있고, "궁극적으로 독점을 갈망하는 일부 대기업들이 언론 영역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상업주의 정보마저 횡행"하고 있다. 여기에 정보통신의 발달은 사건과 보도 사이의 즉각성을 강요함으로써 "한발 물러서서 성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거리를 지워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36쪽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창간자 뵈브-메리) -38쪽

르 몽드는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한다. 하지만 독립성과 중립성은 다른 개념이다. 르 몽드는 양비론처럼 모호한 입장을 표방하거나, 중립성을 내세우는 회색 언론은 결코 아니다. 르 몽드의 입장은 오히려 분명하고 명확하다. 특히 인종주의나 극우 이데올로기에 대한 르 몽드의 입장은 비타협적이기까지 하다. -70쪽

르 몽드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종종 명확하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합니다. 유럽통합과 국제사법의 당위성, 프랑스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 등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대로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운동 선수들의 약물 복용 문제 등은 분명히 반대합니다. 르 몽드는 휴머니즘과 보편주의를 추구합니다. 우리 신문의 제호는 르 몽드(Le Monde, 세계)이지 라 나시옹(La Nation, 국가 또는 민족)이 아닙니다. 르 몽드는 프랑스라는 한 국가의 관점보다는 우리가 굳게 믿는 휴머니즘과 보편적 관점을 견지합니다. 하지만 정보를 취급하는 것과 신문의 가치 판단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문의 첫 번째 책무는 독자들에게 다양하고 복잡하며, 다원적이고 상호 모순되기도 하는 모든 정보를 전하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자기 의견을 갖도록 돕는 것이지요. 르 몽드는 자체 노선에 따라 정보를 왜곡하지 않습니다. 신념은 사설로만 표현합니다.
(2000년, 경향신문의 르몽드 플레넬 편집국장과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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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26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재밌겠다.

마늘빵 2006-03-26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요. 서평은 내일 올릴게욤.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살림지식총서 24
이기상 지음 / 살림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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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에서 철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의 자기성찰적인 책들은 꾸준히 나왔다. 많은 철학자들이, 인문학자들이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의 밥그릇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철학이 없는 사람들, 철학이 없는 국가의 현재 상태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대로 그 해결책을 내놓으려 시도하고 있다.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이기상의 <이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역시 이와 같은 고민에서 비롯되어 나온 하나의 작은 결실이다. 그는 "우리가 몸으로 부대끼며 사는 삶의 세계에 바탕한 우리의 고유한 철학이론을 세워보고자 시도해본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의 '철학하기'는 구체적인 생활세계와 그 언어인 일상 언어를 떠나서 행해질 수 없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삶의 세계에서 무늬와 결로 아로새겨져 있는 삶의 문법을 우리의 철학으로 체계화 시켜서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책에서 그 첫걸음을 내딛어 본다." 라고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지은이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철학, 대다수의 철학자들이, 철학을 공부한다는 이들이 하고 있는 철학이라는 것은, 서양의 것이고,  우리만의, 이땅에서 필요한 철학이 부재중이라고 진단한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외국의 이런저런 석학들을 모셔와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문제를 그들에게 진단내려달라 한다. 1996년에 리처드 로티와 위르겐 하버마스가 내한했을 때, 한국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달라는 우리 학자들의 요구에 그들은 당사자인 한국의 학자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정답이다. 우리의 문제를 이제 한 번 내한한 그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우리의 문제는 지금 이 땅에 발붙여 살고 있는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진단과 처방 역시 우리 스스로가 내려야 한다. 나의 문제를 내 고민 없이 타인에게 맡겨버린다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다.

  저저는 이와 같은 한국 철학의 문제를 지적하고서 우리 생활 세계에 바탕한 철학이론 세우기를 시도한다. '사이이론'이라고나 할까. 자연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문명과 사람 사이가 극도로 파괴되는 혼돈의 시대 속에서 사이의 철학을 강조한다.

  "다만 남의 말이나 자기가 들은 것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더불어 학문을 말할 것이 못된다. 하물며 평생토록 마음의 작용과 자연의 현상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사람이랴."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中)

  이땅은 외국철학이론의 전쟁터가 되었으며, 우리의 생활에 바탕한 철학이론을 세워야 한다는 지은이는 열하일기의 한 대목을 통해 이를 강조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우리만의 토대가 있어야 하며, 이를 우리 스스로 중심을 잡고 굳건하게 서있을 수 있기 위해서 우리만의 터전이 필요하다(공간성, 영토성), 중심을 잡기 위해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어야 한다(정체성, 동질성), 우리의 생활 세계와 문화, 역사에 대해 주인이 되어야 한다(주체성), 또 잊지말아야 할 것이 세계상황이다(세계성, 보편성) 라고 하며 몇 가지를 이야기한다.

  이어 그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를 지적하며 서양은 있는 것(존재)에 대한 놀라움으로 철학을 시작했고, 우리는 없는 것에 대한 경외심에서 철학을 시작했다고 하며, 철학의 시작이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서양철학의 이성중심, 인간중심적 사고관에서 벗어나 감성과 자연중심적 사고를 해야한다. 이성중심적 세계관은 히로시마의 원폭,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대량학살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고, 우리는 이성중심의 하나의 세계가 아닌 문화, 종교, 언어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다양성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란 결국 '사이'의 존재이며, 첫째, 빔-사이(공간). 노동이 도구, 기술, 예술, 생산, 거주라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인간은 사이에 있음으로써 빔-사이를 채워나가며 사이를 나름대로 인간적인 과정으로 만들어 나간다. 공간이라는 빔-사이를 없애는 것은 기술로 이루어지는데, 교통과 통신이 그것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둘째로, 인간, 즉 사람 사이에 있음을 이야기하며, 이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행위는 '말'이며, 말의 실천에서 관습, 윤리, 도덕, 사회, 국가가 생겨난다, 사람 사이의 간격을 없애는 것이 평등이며 인권이다. 사람 사아에 있음이 무너지게 되면 도덕,윤리가 무너지게 된다고 말한다. 셋째는, 때 사이에 있음, 즉 시간이다. 이는 역사, 학문, 지평이 생겨나는 공간이며, 인간은 시간적인 존재로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과거의 전통을 세우고, 현재가 과거에 의해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도록 하며,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시각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넷째, 천지간, 하늘과 땅 사이를 말한다. 기도, 감사, 초월, 성스러움, 신, 종교 등으로 이야기되는 차원이며, 인간은 우주적 인 사이에 있음을 책임져야 할 뿐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사이에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그는 때- 사이에 있음(주체성), 빔-사이에 있음(공간성,영토성), 사람-사이에 있음(역사성), 하늘과 땅-사이에 있음(보편성)을 논한다.

  또한 그는 이땅에서 철학하기 위한 조건으로 우리말을 이야기한다. 언어는 세계를 보는 시각이며, 영어공용화나 한자병용과 같은 논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지은이는 철학함을 이끌고 있는 언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명제를 소개한다.

  첫째, 언어는 세계를 보는 눈이다. 둘째, 언어는 민족을 묶는 끈이다. 셋째, 언어는 사고방식을 형성해주는 틀이다. 넷째, 언어는 의식의 밑바탕을 이루는 무의식이다. 다섯째, 언어는 정서의 공감대이다. 여섯째, 언어는 자주와 자율의 바탕이다. 일곱째, 언어는 자유와 평등의 조건이다. 여덟째, 언어는 학문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이다. 아홉째, 언어는 사람 사이의 다리이다. 열번째,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우선 그의 한국 철학의 현 세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땅에서 학문하기 위한, 이땅에서 철학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고민이 묻어나는 짧은 글이었다. 이땅의 철학이 중심을 잃고 이성중심적인 서구적 세계관을 바탕으로한 서양철학의 전쟁터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를 대체하기 위해, 우리말로 철학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고 있는 그만의 처방엔 언뜻 동의하기 힘들다. 아니 동의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감은 하기 힘들다. 그의 처방은 적절해보이면서도 어딘가 허전하다. 그것은 그가 제시하고 있는 우리철학이라는 것이 이땅에 발붙여 사는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추상적이고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이미 들어온 서양의 문화, 서양의 철학도 결국 우리의 것이다라는 탁석산의 진단이 더 적절하고 현실성 있어 보인다. 탁석산은 <한국의 주체성>과 <한국의 정체성>에서 우리 것이란 과거에 우리 선조들이 누렸던, 선조들이 말하고 글로 남겨왔던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하며, 외국의 것이라도 일단 우리에게 접수된 이상 그리고 우리식으로 변질된 이상 그것은 더이상 외국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것이라고 했다.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본 딴 영화 <쉬리>를 서양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고민과 시도는 좋았으나 너무나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독일에서 하이데거를 전공한, 서양의 철학을 한 철학자가 서양철학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네 현실을 지적한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그의 한국철학에 대한 고민에 꼬투리를 잡을 수는 없을 터. 그는 이를 의식한 탓인지 책의 중간에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일본어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우리말 번역어를 전혀 모르면서 독일에서 독일어로 독일식으로 사유하며 철학 공부를 시작한 나에게는 한국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한 다른 사람에게 없는 장점이 하나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논의가 되고 있는 철학적 사태를 일본어적인 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우리말의 언어적인 상황에로 옮겨 놓고 우리의 일상세계적 맥락에서 이해해 보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것이었다. "

  우리네 철학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철학과에 개설된 '한국철학'이라는 수업에서는, 지눌과 불교, 권수정혜결사문, 성학십도, 동몽선습, 격몽요결, 사소절, 우주문답, 서유견문, 동경대전과 같은 우리네 선조들의 서적을 읽으며 한국철학을 논하지만, 그것이 한국철학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지 편의상 철학의 과목을 나누고 이름붙이기 위해 '한국철학'으로 분류했다면 동의하겠지만 말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이땅에서 철학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책을 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의 책을 읽고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무릎을 칠만한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보진 못했다. 기존의 학자들의 주장과 철학자 이기상의 주장이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비해, 철학자 탁석산의 주장은 그나마 신선하기라도 했다.

  이 책과 더불어 조동일의 <이땅에서 학문하기>, 최종욱의 <이땅에서 철학하는 자의 변명>, 탁석산의 <한국의 주체성> <한국의 정체성> 을 읽는다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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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3-1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림 지식 총서를 모으고 있는 저로서,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사서 봐야 할거 같아요^^

마늘빵 2010-03-15 09:39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이기상 교수에 근거없는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 그걸 떠나서 이 책은 학문하는 자세, 철학하는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볼 만한 꺼리를 제공합니다. 얇은 책이라 출퇴근길에 금방 읽을 수 있을 겁니다. :)
 
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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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 때는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그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면
 나는 더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가 무엇을 대상으로 삼아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중세의 철학자이고, 중세의 철학이란 신학을 의미하고, 그가 쓴 <고백록>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쉬이 예상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도출되는 결론은 그 대상은 아마도 하느님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지만, 그의 말은 다른 곳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사랑.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 때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보고, 내가 그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면 나는 그것을 내가 알고 있는건지 모르는건지조차 알 수 없다. 분명 알고 있는거 같은데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다. 사랑.

  모르는 척 하다 이제서야 밝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위의 발언은 '시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사랑을 생각하다>를 시작하며, 아우구스티누의의 저 말을 걸고, 시간 대신 사랑을 적용시킴으로써 입을 뗀다. 내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 도대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붓이나, 펜, 혹은 악기를 집어 들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하는 쥐스킨트. 맞는 말이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모르는 것. 그 어설픔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탐구하도록 만드는 힘이 된다.

  그는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대화편>을 통해 사랑에 대한 사색을 시작한다. 그가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오르페우스 신화'.

  오르페우스는 시인이며 음악가였고, 그의 아버지는 아폴론, 어머니는 칼리오페.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라는 님프와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한 양치기에게 쫓기다가 뱀에게 물려 죽고 말았다.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던 오르페우스는 저승으로 가서 직접 아내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는 리라를 타고 노래하면서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그의 음악에 감동한 뱃사공 카론은 산 사람인 그가 강을 건너게 해주었으며, 지하세계의 문지기개 케르베로스도 고개를 숙이고 저승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는 저승의 왕인 하데스와 아내 페르세포네 앞에 나아가 리라로 반주하면서 아내를 되찾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그의 애달픈 노래를 듣고 누구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도 그것에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뤼디케를 지상으로 데리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단 조건이 하나 붙었는데 그것은 지상에 도착하기까지는 그가 그녀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앞서고 에우뤼디케는 뒤따르면서 둘은 어둡고 험한 길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걸어왔다. 마침내 지상세계로 나가는 출구에 거의 도착하게 되었을 때, 오르페우스는 순간 약속을 잊고 에우뤼디케가 아직도 따라오나 확인하기 위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에 에우뤼디케는 하계로 다시 끌려갔다. 오르페우스는 다시 그녀를 따라 하계로 내려가려했으나 이번에는 카론도 케르베로스도 그에게 다시 자비를 베풀어 주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죽음과 자신의 실수를 탓하면서, 그 후 여자를 멀리하며 추억을 회상하며 살았다.
처녀들은 그에게 구혼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어느 날 디오니소스의 제전에 참석한 그를 한 처녀가 발견했다. 처녀들은 자신들의 구혼이 거절당한 것에 대한 원한으로 창과 돌을 던져 그를 공격했고 그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의 찢겨진 몸은 강에 던져졌고 그것들은 슬픈 모래를 속삭이는 듯 노래와 연주를 하며 흘러 내려갔다. 그는 죽어 지하세계에 내려가서 에우뤼디케를 찾아내자 열렬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들은 이제 서로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엠파스 검색 참고)

  쥐스킨트는 이와 같은 오르페우스 신화의 사랑이야기를 기본으로 하여 사랑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사랑에 대한 어떤 체계를 잡아내려 한 듯 하진 않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서부터 시작해서 그의 사랑에 대한 사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멀리 나아간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괴테, 예수, 스탕달, 토마스만, 바그너,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의 이야기까지. 집으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온 탓에 사색의 꼬리는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의 생각의 꼬리를 따라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겐가 정신이 아찔하기도 하다. 책고 난 뒤에 뭘 읽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책이다.

  2005년 1월, 독일에서 개봉한 영화 <사랑의 추구와 발견>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라고 볼 수 있다는 이 책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줄거리를 넘어 쥐스킨트만의 사랑에 대한 사색으로 번져나갔다. 해설서라기보다는 그걸 기본으로 한 사랑에 관한 한편의 사색서라고 보는 편이 훨씬 낫겠다. 어차피 이 책을 읽고 있는 한국의 독자들이야 독일에서 개봉한 그 영화에 대해 아는 이라고는 거의 없을테니.

  사랑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졌던 쥐스킨트 조차 이 책을 끝까지 써내려간 뒤에도 정답을 찾지는 못한듯 보인다. 어차피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각자가 사랑에 대한 사색을 펼쳐나가다보면 어느 덧 사랑에 조금씩 한발 더 다가와있을 뿐. 사랑을 정의하려들지 말지어다. 사랑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사랑을 정의하려들면 더욱 멀어진다. 도를 도라 부르면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사랑에 대한 믿음 그것만으로 족하다. 설명하려들지 말지어다. 정의하려들지 말지어다. 그저 느낄지어다.

나 살아있는 그 존재를 찬양하리,
불꽃같은 죽음을 동경하는 그런 존재를.

사랑의 밤들의 서늘함 속에서,
당신의 증인이었고, 이제 당신 자신이 증인이 된 그 속에서,
촛불이 고요히 타오를 때,
낯선 느낌이 당신을 사로잡네.

이제 더 이상 당신은
어둠 속 그늘에 싸여 있지 않네,
새로운 욕망이 당신을 사로잡네,
더 높은 곳에서의 성교라는 욕망이.

그곳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당신은 두렵지 않네,
당신은 황홀경에 빠져 훨훨 날아오르네,
그리고 빛을 열망하는 당신,
이제 당신은 드디어 나비로 불타오르네.

하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네,
그렇다 : 죽으면 그리 되리라!
이 어두운 지상에서는
당신은 단지 우울한 손님일뿐.

괴테 <행복한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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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경고

  지진희와 문소리를 믿었다. 도발적인 포스터와 제목에도 끌렸다. 하지만. 뭐니 뭐니. 아무리 평가가 별 두개 반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내 취향엔 맞으리라 기대하며 봤는데 실망실망. 이 영화에서 홍상수를 보았다. 홍상수와 이하 감독이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나 - 아마도 모르는 사이 - 홍상수식의 영화 전개 방식을 보았다.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등. 홍상수의 모든 영화는 다 특이한 영화 전개 방식을 갖추고 있다. 그만의 특색이 있다는것은 그만큼 매니아들에겐 즐거운 일이겠으나 다수의 영화 관중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의 영화 중 <오 수정>만 괜찮았고 - 이마저도 싫어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 <생활의 발견>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사실 느리고 지루한 카메라 움직임과 대사 속의 스토리 부재를 안고 있다. 그것은 그에게 단점이 아닌 장점이겠지만, 영화를 보는 대중 관객에겐 장점이 아닌 단점이다.   이한 감독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역시 마찬가지. 매끄러운 스토리 진행보다는 장면 장면을 끊어 연결시킴으로써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

  영화는 홍보에서부터 사전예매율, 극장 관객수 면에서 어느 정도 투자비를 뽑을 만한 정도의 성공은 거두었으리라 예상되지만, 그것으로 족할 듯 하다. <웰컴 투 동막골> 과 <왕의 남자>에서 볼 수 있듯 흥행의 대세는 이미 본 관객들의 입소문이다. 이 영화는 이미 본 관객들의 악평이 줄을 잇고 있으니 흥행에 성공하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거두는 편이 좋을 듯 하다. 모든 영화가 흥행을 목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만, 많은 관객과 함께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흥행은 무시 못할 코드이다.



* 두 생양아치의 첫만남. 심천대학 염색과 교수와 심천대학 만화과 교수의 만남 이자 과거 형의 애인이자 친구의 만남. "내가 뭐가 그렇게 맘에 안들어요?" "그러는 박작가님은 내가 맘에 들어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죄다 먹물들이다. 중딩 시절 생양아치로 소문이 자자하던 하지만 지금은 심천대학의 염색과 교수로 있는 조은숙, 같은 중딩 시절 은숙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역시나 양아치로 이름 높이던 또 지금은 심천대학의 만화과 교수로 온 박석규, 더불어 조은숙 교수와 함께 동시다발적 관계를 맺고 있는 심천 방송국 프로듀서 김피디와 운동권 초등학교 교사 유선생, 환경공학과 안교수, 국문과 강사 문교수 등등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죄다 공부 좀 했다하는 먹물들. 먹물 중에서도 교수나 선생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흔히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는 보통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함이다. 그렇고 그런 인물들이 도발을 하는 것보단 전혀 안그렇게 생긴 넘들이 자극적인 도발을 하는 것이 더 '도발'적이다. 낮에는 교수이자 환경운동가이고, 밤에는 "이보다 더 밝힐 순 없다"를 자랑하는 여교수. 숨겨진 그녀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대낮의 교수와 야밤의 밝힘녀로 대비되는 그녀의 모습이 극과 극을 오간다.

 "저 결혼한거 모르셨어요?"
 "아뇨. 알았어요. 근데 와이프도 있었어요?"


 "나 안경 벗은거 처음 봐요?"
 "나 첨보는데."
 "뭘 첨봐요? 내가 언제, 안경 쓰고 해요?"



* 붉은 와인과 과일안주 셋트를 사이 둔 붉은 카펫 위의 욕설이 난무하는 우아한 만남.

 중딩시절 멀쩡했던 다리를 지금 절고 있는 여교수. 감독이 이와 같은 설정을 했던 것은 과거의 그녀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시도는 아니었을까. 그녀가 다리를 절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결코 힌트조차 주지 않는다. 그것이 사고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자신의 옛모습을 감추기 위한 계획된 행동인지는 모른다. 다리를 절어서 못알아봤다던 새로 부임한 과거의 생양아치 박석규. 그는 성을 바꾸고 다리를 절고 있는 여교수를 처음엔 못알아봤지만, 그게 그리 오래갈수야 없지. 박석규 역시 자신의 과거를 숨기긴 마찬가지. 본명 박석규, 하지만 가명인 박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교수 자리에 부임한 뒤에도 자신을 철저히 숨긴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아무리 꼭꼭 숨을래야 숨을 수 없다. 서로를 금방 알아본 두 생양아치. 씨댕. 조까 등등의 욕설이 난무하는 두 사람만의 우아한(?) 술자리. "누구나 비밀은 있다". 하지만 "나는 네가 지난 중딩시절 했던 일들을 알고 있다".

  문소리와 지진희라는 두 걸출한 배우에게 기대한 채 영화를 선택했다간 큰 코 다친다. 홍상수식 코드를 즐겨찾는 이들은 보고서 후회하지 않을 영화이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은 그만 멈춰~. 장면은 야하되 줄거리는 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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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면은 야하되 줄거리는 야하지 않다.
오, 바라는 공식입니다~

urblue 2006-03-2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이거 아리까리한 평입니다.

마늘빵 2006-03-2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앗. 이런 영화 좋아하시나욤? ㅋㅋ 아님 영화에 적절하다는 표현?
우어블루님/ 아 그랬나요? ㅡㅡa 그냥 별루.

하이드 2006-03-2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보고 싶은걸요? ㅎㅎ
난 홍상수식 영화 좋아하는데..

마늘빵 2006-03-2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이드님 그렇담 후회하진 않을듯. 저는 그걸 기대하고 갔던게 아니라서 실망. 홍상수식 영화라 하더라도 홍상수보다 한 수 아래에요.

하이드 2006-03-25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오늘 청춘만화 예매했어요. ^^

마늘빵 2006-03-25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거 재밌을까요? 심히 의심이 가던데. 보고 실망할까봐. 완죤 애들 소꼽장난놀이정도가 아닐까해서요.

부리 2006-03-25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볼 뻔했어요 저도 문소리를 믿었거든요

하루(春) 2006-03-2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창동은 새 영화를 안 내놓는 걸까요?

히피드림~ 2006-03-25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홍상수감독이 자기는 영화 찍어서 필름값도 안나온데요.
손해가 너무 커서 영화를 계속하려면 디지털필름을 써야겠다고 하더라구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 영화도 부분적으로는 디지털로 촬영됐다고 하더군요. 필름 갈아끼울 필요도 없고 맘에 안들면 지우고 다시 찍고 해서 편하데요.
새로운 시도는 좋지만 필름값도 안나온다는 부분에서는 좀 씁쓸하더군요.

비로그인 2006-03-2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소리 좋아하는데.. 나중에 비됴로 봐야겠네요.

마늘빵 2006-03-26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 아 그러게요. 이창동 감독 왜 영화를 안내놓죠. 아직 적응이 필요한가.
펑크님 / 네 돈이 안되는 영화이긴 해요. 그 사람 영화들이. 스타일을 고집하다보니깐 아무래도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지는거 같아요.
담뽀뽀님 / ^^ 비디오로는 괜찮은 영화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살림지식총서 24
이기상 지음 / 살림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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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한국인의 정신치료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소위 배웠다는 사람치고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용어는 보편적인 진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삶의 맥락에서 만들어져 나온 이론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서양사람의 길고 긴 역사와 문화, 그리고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들의 생활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온 서양인들의 심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이론이며 용어이다. 그런 이론과 용어가 서양에서 잘 나가는 과학이기에 직수입하여 우리의 생활세계에 적용시켜 이 땅의 어린아이들을 몽땅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환자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식민행위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5쪽

그런데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 세계가 거의 모든 면에서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문명과 사람 '사이'가 극도로 파괴되는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한국인은 앎에서도 삶에 필요한 정보와 방향을 얻지 못하는 삶과 앎 '사이'의 괴리 속에서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삶 따로 앎 따로', 일상과 학문, 실천과 이론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아무런 연결 없이 따로 노는 극도의 '궁핍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현실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소외, 이론척박, 이론부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그 이론이 우리의 생활에서 만들어진 자생적 이론이 아니라, 수입된 이론, 때 지난 낡은 이론, 삶에서 이끌려나오지 않은 이론이기 때문이다. -6쪽

"다만 남의 말이나 자기가 들은 것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더불어 학문을 말할 것이 못된다. 하물며 평생토록 마음의 작용과 자연의 현상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사람이랴." (박지원 <열하일기>)-8쪽

처음부터 일본어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우리말 번역어를 전혀 모르면서 독일에서 독일어로 독일식으로 사유하며 철학 공부를 시작한 나에게는 한국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한 다른 사람에게 없는 장점이 하나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논의가 되고 있는 철학적 사태를 일본어적인 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우리말의 언어적인 상황에로 옮겨 놓고 우리의 일상세계적 맥락에서 이해해 보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것이었다. -51쪽

"지금 우리의 과학기술의 수준으로는 전세계의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류 역사상 현대만큼 굶어죽은 사람이 많은 적이 없었다." (마르쿠제)
"아무리 빵이 넘쳐나도 인간은 절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도스토예프스키)
"나눔 없이 평화는 없다."(마더 테레사)-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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