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철학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편집부 지음 / 한국갤럽조사연구소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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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한국인의 철학. 한국인은 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들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아갈까? 이와 같은 의문으로부터 기획이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전공 교수 몇몇과 한국갤럽이 조사 질문을 만들고, 다듬고, 약 1,500명 정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이 책은 그 결과물과, 그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조사하지 않아도 대충 생각은 해볼 수 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접했던 사람들의 '철학'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는. 해당 학문을 공부했기에 더더욱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철학은 사회, 국가적으로도 돈이 안 되는 학문이고, 그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도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철학은 어렵고, 구름 위에 붕붕 떠서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자기들끼리만 아는 언어로 주고받는 학문이다. 하지만 철학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며, 관련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인생의 고난을 겪으며 철학을 찾게 된다. 대충 이 정도가 아닐까.    

  이 책의 조사 내용을 살펴본 결과 대략 이와 같은 추측은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생각보다' 철학을 인생에 필요한 학문으로 보지 않으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본 사람들도 많았다.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은 철학이 기초 학문이고, 삶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지만, 과반수를 살짝 넘는 그 수치는 예상 외였다. 한 십 년 전이라면 조사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돈이 되는, 삶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해주는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철학은 쓸모없는 학문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철학서는 십 년 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생각보다 찾는 독자들이 꽤 있다. 이것은, 지적 결핍을 충족시키고,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이다. 철학의 쓸모에 대한 생각도 반반으로 나누어지고 있는 셈.  

  몇몇 조사 결과과 분석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먼저, 철학에 대한 생각을 묻는 조사 결과에서는, 아직도 '철학'하면 '점'을 떠올린다는 사람들이 21%이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는 어렵고 재미없다, 진리와 가치관 등 철학적 개념이 떠오른다, 소크라테스 등의 철학자가 떠오른다, 인생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명언 등의 순서대로 답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점을 떠올린 사람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21% 정도로 다른 선택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간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점'을 떠올린다니. 아무래도 여기저기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학관' 때문인듯 하다. 

  관련 조사를 확장하여 죽음이나 존경하는 사람, 종교 등에 관한 질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서 부동의 1~3위는 박정희, 세종대왕, 이순신이 나왔다. 이건 아무리 조사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이명박, 육영수, 박근혜, 전두환, 조용기 목사를 언급한 분도 있다는 것. 그 수가 적지 않다. 이명박으로 응답한 비율 10위로, 생존자 중엔 가장 높다. 

  조사 결과에 대한 손동현 교수의 분석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그는 '한국인이 기억하는 철학자'라는 꼭지에서 "김동길 씨나 함석헌 씨가 철학자로 기억에 남아 있다는 건 조금 뜻밖입니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다 보니 '철학'이라는 개념 이해가 불분명, 부정확해졌고 그래서 사상가 범주에 들 수 있는 사람들까지 철학자로 여기고 응답하지 않았나 봅니다."라고 하였는데, 김동길이 철학자 범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함석헌을 한갓 사상가 정도로 간주한다는 것은 아니지 싶다. 물론, 그는 한국 철학사를 공부할 때 다루는 철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철학으로서 주목을 받는 시점에서 그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물론, 이 분석 내용은 그의 주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표 철학 교수로 선정되어 조사 결과에 대해 분석하는 자리에서는 이 주관적인 생각이 객관화되기 쉽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국갤럽의 조사 내용을 그래프와 도표로 제시하고, 이를 해석하거나 주석을 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겨 철학 교수 네 명을 초청해 대담 형식으로 결과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담았다. 하지만, '대담'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네 사람 각각이 자신의 입장에서 분석을 했을 뿐, 의견을 주고받는 부분이 없다는 것. 물론, 앞서 먼저 분석한 교수의 의견에 대해 나도 동의합니다,라는 식으로 받기는 하지만, 달랑 한 번씩 이야기하고 끝낸다는 부분에서 '대담(對談)'(어떤 일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음. 또는 그 이야기)이라고 할 때 기대하는 정도에는 못 미친다.

  하나 더. 관심있는 철학 분야를 묻는 질문을 답변자들이 제대로 이해했을까 궁금하다. 철학의 분과 학문 이름인 인식론, 윤리학, 형이상학, 정치철학, 논리학 등을 질문지에 넣었는데 이를 따로 풀어내지 않았다면 응답자들이 해당 학문명을 듣고서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이해했다고 전제한 셈이 된다. 물론 '인식', '윤리', '정치', '논리' 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나 그림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확히 알고 대답했는지는 의문이다. 질문지의 대상은 학력도 모두 다를 뿐만 아니라 연령대도 청년층에서 노년층까지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학문이 어떤 것을 논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답변했어야만 신뢰할 수 있다.

오자  p.165 '철학 관심 분야 - 성별' 도표. '윤리학'은 '논리학'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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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3-0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MB를 존경하는 분도 계시다고 하니 푸른 기와집의 모님이 좋아하시겠군요^^;;;

마늘빵 2011-03-24 19:04   좋아요 0 | URL
이게 현실인듯 합니다. 뭐 때문에 '존경'씩이나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사 산책 17 - 오바마의 미국, 완결 미국사 산책 17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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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 마지막 권. 15권이 부시를, 16권이 9.11테러 이후의 변화한 미국상을 그렸다면, 마지막 권은 오바마의 미국을 그리고 있다. 미국인의 일반적인 이름과는 전혀 다른 '버럭 오바마'의 등장은 미국 정계에서 놀라운 사건이었다. 클린턴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왔고, 부시가 뒷배경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면, 오바마는 미국인들에게 그야말로 듣보잡이었다. 어떤 포털은 오바마의 사진과 함께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사고를 치기도 했고, 그의 가운데 이름인 후세인 때문에 기독교인인 그를 모슬렘으로 오해하는, 때에 따라서는 상대 진영에서 그를 일부러 모슬렘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민주당 진영에서 대선 후보로 떠오른 인물은 본래 힐러리 클린턴. 무엇보다 남편인 클린턴의 이미지가 괜찮고-섹스 사건 빼고는-, 힐러리 또한 권력욕이 강하고, 추진력이 있기에 후보로 괜찮았다. 하지만, 오바마가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전 대통령 클린턴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오바마를 "몇 년 전만 해도 이 친구는 우리한테 커피나 갖다줬을 사람"이라고 말하며 불평하기도 했단다. 클린턴 부부가 이렇게 오바마를 경계하는 것은 이미 그의 지지율이 힐러리의 지지율을 넘어섰기 때문. 힐러리보다 오바마가 더 이슈가 되고, 뉴스 가치가 있다는 것.  

  오바마는 말을 잘 했고, 힐러리는 이런 그를 콘텐츠 없이 말만 잘할 뿐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인이 이슈를 선점하고, 말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일. 히틀러 또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어딘가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연설을 통해 한낮 군인 상병에서 총통으로 신분을 바꾸지 않았던가. 그가 오로지 잘한 것은 연설 뿐이었다. 연설로 독일의 총통이 되었고, 주변 여러 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지금이야 그를 미치광이, 전쟁광이라고 부르지만, 당시 독일 민중의 지지율은 엄청났다. 그걸 보면 부시가 연설을 잘 못하고,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던 건 어쩌면 다행이다.

  오바마는 희망과 흑백 통합을 이야기하며 대통령이 되었고, 당선된지 얼마 안 되어 노벨평화상까지 받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대통령 당선 못지 않게 이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또한 그의 연설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가 세계인들에게 심어준 기대감에 비해 현실에서는 딱히 실현한 바가 없었다. 전쟁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고, 관타나모 수용소는 그대로 있으며, 고문과 학살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변화와 희망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그가 이룬 바는 별로 없다. 그런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자, 그의 지지자들 또한 '아니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 오바마의 미국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의 정치 행위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엔 이르다. 임기가 끝날 때 어떤 변화를 이루었는가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 마지막 권엔, 이전의 열여섯 권에 없던 부분이 하나 있다. 그는 맺음말에 60여 장을 할애하며, '왜 미국은 제2의 한국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미국에 가장 비판적인 미국인이자 미국 자본주의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진보 지식인 노엄 촘스키는 미국을 이렇게 평한다. "전 세계를 그토록 압도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지배한 것은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떤 이들은 미국을 '초강대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족하고 '초초강대국'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으로 봐서는 중국와 인도가 급부상한다고 해도 미국의 세계 지배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걸까. 다가올 초강대국 중국에 대비하여 중국어까지. 

  '왜 미국은 제2의 한국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자. 강준만은 미국과 한국의 닮은 점으로 압축 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다섯 가지를 뽑는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와 이로 인한 부작용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복거일과 한홍구, 김진경 등이 모두 비슷하게 언급하고 있듯, 보수와 진보의 시각이 다르지 않다. 미국 또한 한국보다는 더딘 속도였지만 유럽에서 보인 봉건제 등을 거치지 않고 민주 사회에 도달했다. 또한 산업 발전 역시 마찬가지. 게다가 귀족이 없는 미국과 한국은 모두 평등주의 면에서 닮았다고 말한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을 중류 계층이라 생각하고, 한국인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삶에서는 자본주의로 인한 눈에 빤히 보이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압축적 근대화는 또 물질주의와 깊이 관련된다. 현재도 노동 시간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일만 하고 사는 한국인들은, 여유보다는 돈을 선택한다. 삶의 가치관이 돈에 맞추어져 있고, 그 돈으로 사고픈 물건을 사고, 크고 비싼 집, 남들이 부러워하는 차를 사고 싶어 한다. 노동 시간 면에서 한국인을 따라갈 국가는 없지만, 강준만은 노동 강도 면에서는 미국도 못지 않다고 한다. 철학자 니체는 미국을 이렇게 평가했다고. "오늘날에도 그들은 휴식을 부끄러워하며, 한참 동안 생각에 몰두할 경우엔 양심에 문제가 있다는 핀잔을 들을 정도다. 그들은 한쪽 손목에 시계를 찬 상태에서 생각에 잠긴다."  

  각개약진은 적진을 향해 병사 각 개인이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개별적으로 돌진한다는 뜻으로,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이 강한 한국은 모두 사회적 문제도 가족 단위로 돌파하려는 특성을 지닌다. 미국 역시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이 강하고, 가족 돌파가 아닌 개인 돌파라는 점에서는 조금 모습이 다를 듯하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키기 위해 각개약진하는 미국인과 달리 코리아 드림엔 학벌과 학력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꼬집는다. 연예인을 해도, 가수를 해도, 청소부를 해도 서울대 출신은 화제가 된다. 수 년 전에 '서울대 출신 버스 기사'가 뉴스인지 화제 현장인지 그런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나온 적이 있다. 이게 뉴스가 된다는 것 자체가 학벌 사회라는 것을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승자 독식. 오늘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말이다. 이 역시 학벌주의와 떼어 설명할 수 없는데, 강준만은 구체적인 수치를 대가며 서울대 출신이 각 영역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런 기 현상을 두고 형평성이나 연구와 교육의 질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에게는 찌질이, 사회 부적응자 등의 수식어가 붙고, '꼬우면 니가 서울대 나오던가'라는 식의 말이 되돌아 온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제 현실이다. 잘못된 사회 구조와 제도를 비판하기보다는 내가 또는 내 자식이 잘못된 사회 구조의 상층부에 올라가기 위해 애쓰는 사회가 한국이고, 이를 설명하는 단어가 승자 독식이다.  

  미국와 한국의 공통점 다섯 가지는 우연히 맞아 떨어진 요소도 있지만, 다수는 한국이 미국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닮아간 게 아닌가 싶은 부분이 많다. 짝사랑도 사랑인지라 좋아하면 닮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반미(反美)하자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기를. 또 돌아가신 분의 말마따나 반미 좀 하면 어떤가. 한국은 세계 패권 국가 미국이 운전하는 차에 함께 타고 있고, 뒷자리보다는 앞자리에 앉아 좀 더 가까이에서 친밀감을 쌓고자 노력하고 있다. 수십 년 전에는 미국이 운전하는 차를 뒤에서 따라가는 허름한 차에 몸을 실었다가, 지금은 같은 차에 동승하고 있는 셈. 한국은 미국을 닮다 못해 동승한 차의 속력을 높이라고 재촉하고 있다. 그 길의 끝에 낭떨어지가 있어 결국 모두 다 죽게 될 거란 걸 모르고서. 이미 한국은 그 끝과 멀리 있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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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0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과 한 자동차를 타고 있는 나라가 한국뿐만은 아닐텐데 미국이 제2의 한국이라고 한 이유가 책 속에는 나와있겠지요? 차라리 허름한 차를 타고 미국이 운전하는 차를 뒤에서 따라가던 시절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언제든지 방향을 틀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으니. 이제 한 자동차에 타고 있다니 그럴 수도 없으니까요.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이제 몇년인데 열 일곱 권이나 되는 미국사 책을 집필했다니 저자가 대단한건가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단한건가요.

마늘빵 2011-03-07 19:32   좋아요 0 | URL
아, 자동차 비유는 제가 한 거에요. ^^ 동승한 국가가 한국뿐만은 아니겠죠.미국과 한국의 공통점은 위의 다섯 가지 요소로 설명을 합니다. 저는 위 글에 축약하고 제 의견을 넣었어요.
 
미국사 산책 16 - 제국의 그늘 미국사 산책 16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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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 16권. 9.11 이후의 미국의 모습을 그렸다. 민병대가 증가하고, 민간군사기업의 전쟁과 고문, 아웃소싱, 닫힌 이민정책, 애국주의 등 9.11 테러가 미국 사회에 끼힌 영향을 주목한다. 세련된 국제 깡패 부시의 재선 또한 이와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은 더더욱 외부 반미 세력에 민감해졌고, 그들을 '악(惡)'으로 보게 되었다. 미국인들의 시선이 부시의 시각에 맞춰졌고, 선과 악, 하나님의 은총 운운하는 부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단호한 대통령 이미지와 맞아떨어진 셈.  

  유엔인구기금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도 전 세계 이민자는 1억 7,5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세계인의 35명당 한 명 꼴이라는 것. 미국으로 유입된 이민자 숫자는 책에 나와 있지 않지만, 이들 중 다수가 미국으로 향하고 있음은 굳이 통계를 들이밀지 않아도 추측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있는' 집 부모와 자식들은 미국 국적을 획득하기 위해 이민을 감행한다. 없는 자는 이민의 대상이 될 수 없기에, 불법 이민을 할 수밖에 없다. 어딘가에서 들은 바로는 한 한국인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미국에 불법 이민을 했는데, 가보니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닭의 목을 치는 것이었단다. 그곳에서 도망쳤다가는 미국 이민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2년,3년 꾹 참고 그 일을 했다고.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멕시코도 불법 이민자들이 많다. 미국보다 경제적으로 많이 못 사는 나라이고, 국경을 접하고 있다보니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으로 몰래 들어와 취업을 하여 살아가려고 한다. 2003년 6월 미국 연방통계국의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2002년 7월 미국 인구는 2억 8,840만 명이었는데 이 중 히스패닉계가 13퍼센트인 3,700만 명이라고 한다. 그 중 60%가량이 멕시코인이다. 좀 오래된 조사이긴 하지만 1986년 멕시코인의 40% 정도가 기회가 있다면 미국에서 살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미국은 멕시코인의 불법 이민으로 몸살을 앓았는데, 9.11테러 이후엔 민병대까지 가세해 이들의 유입을 차단했다고. 전 세계 곳곳의 인재를 끌어모으는 미국이지만, 없는 자에겐 가차없이 폭력을 가한다.

  한국 사회에선 이민이 아닌 조금 다른 형태로 변질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원정 출산이 그것. 좀 가지신 분들은 자신의 아이가 미국 시민권을 가질 수 있도록, 산모가 배가 불러올 때쯤 미국에 갔다가 아이를 낳고 돌아오는 일이 많다. 2002년 5월 25일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매년 한국 신생아의 1퍼센트인 5,000여명이 원정 출산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다고. 워낙 많다보니 미국에선 아이를 곧 낳을 한국의 부모를 대상으로 한 원정 출산 사업까지 활발하다. 한 산후 조리원에서는 1,000달러면 공항 마중에서부터 출생신고와 시민권 취득까지 모두 도와준다고. 한국의 부모는 아이의 시민권과 병역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좋고, 미국 산부인과와 조리원, 브로커는 돈 벌어서 좋고.  

  이 책에서는 한국인의 미국 대학 박사 학위 취득자 비율도 다루고 있다. 굳이 순위를 살펴보지 않아도, 한국 대학의 교수들 대다수가 미국 대학에서 박사를 딴 것은 익히 알 수 있다. 박사 학위 수여자가 아닌 수료생까지 치면 그 규모는 더 커질 것. 해외 대학 출신자의 미국 박사 취득 순위는 단연 서울대가 1위이고, 미국 대학까지 포함시킨 톱15에서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 이어 서울대 출신이 다음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곧 서울대 학부 또는 석사를 나오고, 미국에서 박사를 받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 연세, 고려 등 여타 대학 출신자까지 포함하면 이 숫자는 엄청나다. 그러니, 한국 대학에선 미국 박사가 아니면 교수 임용에도 응하기 어렵고, 응해도 자기들끼리의 파벌을 형성해 떨어뜨리지.

  이를 두고 수유너머 연구원 고병권은 "'서울대 넘버 투 사태는 그동안 서울대가 사실상 미국 대학원의 학부 노릇을 해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서울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하다. 만약 대학원 중심 대학에 대한 서울대의 표방이 미국의 학부 노릇을 하다 대학원 노릇을 하려는 거라면 희망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이 미국에서 학위를 받든, 일본에서 받든, 독일에서 받든 그건 기본적으로 본인의 자유이지만, 이와 같은 현상이 바람직한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공부를 어느 나라에서 하느냐도 순전히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지는 셈이다. 미국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받으면 그만큼 한국에 돌아와서 먹어주니 말이다.  
  
  16권은 이처럼 9.11 이후의 미국 사회 여러 분야를 한국과 연계해서 살펴보고 있다. 소비 중독, 475배의 연봉 격차, 리무진 좌파, 성조기 논쟁, 미국 인구, 유학과 이민, 다문화주의, 세습 사회 등이 근래의 미국을 이야기하는 키워드가 될 것. 리무진 좌파에 대한 부분이 재밌었는데, 미국 대학의 교수 중 다수는 미국 사회에 비판적이고 좌파적인 성향을 띠며, 미국 사회에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 촘스키는 미국의 자본주의에 의해 강연료와 인세 등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반공주의자이자 개혁주의 좌파를 자처하는 철학자 리처드 로티-실용주의의 대표주자로 이명박의 실용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좌파 순결주의'라는 딱지를 만들어 리무진 좌파를 비판했다고. "그가 말하는 개혁주의 좌파는 경제적 이기심을 완화하고 불필요한 사디즘을 경감시키려고 실천하는 자들이다."

  여러 흥미로운 주제를 골고루 다루고 있는데, 관심 있는 분들은 해당 부분만 찾아 발췌독해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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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산책 15 - '9.11테러 시대'의 미국 미국사 산책 15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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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 15권. 전 17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15권은 오로지 부시와 9.11만을 다루고 있다. 부시가 등장하면서 클린턴 이후 미국은 건드릴 수 없는 세련된 국제 깡패가 되었다. 물론, 클린턴 때도 미국 특유의 권력과 뒷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부시는 그보다 더 심하게, 더 대놓고 한다. 마치 이명박 정부가 국제 사회와 인권 단체, 시민 단체 등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처럼.  
 
  아버지 부시에서부터 권력을 승계받은 대통령 2세인 조시 부시의 등장은 최고의 뉴스감이다. 그의 도덕성이나 인간됨을 보면 대통령 후보감으로는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아버지 부시와 그가 가지고 있는 정계와 재계의 힘 때문. 미국의 정치계는 부시처럼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형에 이어 동생이, 기타 등등 가족과 친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늘의 한국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정치 입문 또한 대물림되고 있는 것. 하지만 부시에겐 정치하기에 적합한 재능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을 만나면 이름을 잘 외우고 친밀하게 지내는 것.

  부시의 세계관은 매우 단순하다. 이분법적으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고, 적군으로 분류한 국가나 단체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폭격을 가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불문하고, 다수는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 듯하고, 부시는 복잡 미묘한 문제도 단순하게 해결하려 든다. 그리고 이게 먹힌다.

  한편,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를 묻는 티비 쇼 진행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라고 답해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강준만은 이보다 더 부시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40세 생일파티 날 로키 산맥의 조깅길에서 숙취로 쓰러졌고, 이후 깨달음을 얻어 기독교에 몰입했다. 부시는 그 스스로 예수에 의해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 오강남에 의하면 "미국의 종교문화적인 맥락에서 '거듭났다'는 고백은 은유적인 것이 아니라 대개 방언 등으로 예수의 존재를 '체험'했다는 의미"이다. 부시가 연설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을 언급하며 선과 악을 이야기하고, 악의 처단을 외치는 것은 그가 그의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삶을 살기 때문. 40세 이후 그의 삶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심지어는 대통령 출마까지도. 

  한국에서 언젠가부터 '온정적 보수주의'라는 말이 나도는데, 이것은 부시가 내세운 통치 철학과 관련된다. "감세는 보수적이고, 사람들에게 쓸 돈을 더 많이 주는 것은 온정적이다. 교육에서 학교, 높은 기준, 결과에 대한 통제를 주장하는 것은 보수적이고, 모든 어린이가 일기를 배우고 아무도 되처지지 않도록 확실히 하는 것은 온정적이다. 일하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복지체계를 개혁하는 것은 보수적이고, 사람들을 정부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온정적이다. 잘못된 행동의 결과를 반영하도록 청소년법 조항을 개정하는 것은 보수적이고, 그런 원칙을 인정하면서 사랑을 함께하는 것은 온정적이다." 이와 같은 부시의 연설 내용은 모두 '온정적 보수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의 성격을 설명한다.   

  강준만이 인용한 김지석에 따르면 "보수주의에 '온정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개인의 책임과 시장 원리를 강조하면서도 주로 종교단체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신앙에 기초한 기구'로 대폭 이전한다는 것" 결과적으로 이 이념으로 인해 복지 제도는 축소되었고, '종교적 성격이 강한 보수'가 제도화되었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 역시 이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정치와 정부의 정책 등 곳곳에서 한국은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 작업이 한국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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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1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1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3-02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권까지 낸 강준만도 대단하고 그걸 읽어내는 아프님도 대단하고 ㅎ

마늘빵 2011-03-02 13:12   좋아요 0 | URL
대략 통독하고 있어요. 13권부터만 읽었으니 다섯 권 읽은 거죠. ^^ 꼼꼼하게 읽을 책은 아녀요. 잡지 읽듯 읽으시면 될듯.
 
미국사 산책 14 - 세계화 시대의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사 산책 1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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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이 한창 사회의 불합리와 지식인의 모순된 행동 등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던 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활동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더이상 거친 글을 쓰지 않았고, 누군가를 향해 실명 비판을 하지도 않았다. 많이 지쳤구나 생각했고, 글을 쓸수록 적을 더 늘리면서 외로움도 많이 느끼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비판 활동은 현저히 줄었지만, 집필 활동은 전혀 줄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강준만'이라는 세 음절을 치면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나오고, 그 중 2000년대에 낸 책들도 상당수다. 그는, 비판을 줄인 대신, 한국의 생활사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강준만 2기 체제인 셈. 

  이미 수많은 축구, 목욕, 전화, 성형 등등에 관해 많은 글을 썼고, 그 중 일부를 책으로 엮었다. 한국의 생활사를 쓰면서 함께 작업한 것이 미국사다. 한국은 한편으로는 일본을, 한편으로는 미국을 따라가고 있고, 일본과 미국의 현재를 보면 한국의 미래를 알 수 있다. 미국은 앞으로도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국가로 남을 것이고, 미국에서 일어나는 정치, 문화, 기업 등의 사례를 통해 배울 것은 배우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미국사 산책 14권의 주제는 '세계화 시대 '팍스 아메리카나''이다. 세계화, 문명의 충돌, 어플루엔자, 클린턴의 지퍼게이트, 신자유주의 등을 크게 다루고 있고, 각각의 주제에 부합하는 재미난 일화로 구성하였다. 아무래도 사건의 내역이 밝혀지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이 흥미롭게 읽힌다.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에서 구체적인 행위와 그의 성기의 독특한 모양새 등이 적나라하게 언론에 오르면서 이것은 흡사 한 편의 포르노가 되었다. 미국 언론의 기사는 매우 건조하고 딱딱하나, 세밀한 동작과 모양새까지 써내려감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 하나는, 클린턴의 여자관계가 모니카 르윈스키와 폴라 존스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 그는 학창 시절부터 결혼 이후, 주지사 시절에도 여자 문제로 끊임없이 그의 아내 힐러리를 고통스럽게 했다. 아내와 자다가도 밤에 몰래 나가서 다른 여자를 만나 섹스하고 새벽에 들어오기도 했고, 힐러리는 이같은 일이 수차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살았다. 힐러리 또한 정치적 야심이 있기 때문. 뉴욕 포스트에 의하면 클린턴이 '섭렵'한 여자가 수백 명에 이르고, 인종이나 노소는 물론, 유부녀, 미망인도 가리지 않았다고. "흑인, 백인, 딸 첼시 양만큼 어린 처녀, 이혼녀, 창녀, 카바레 가수, 변호사, 미스 아메리카, 기자, 공무원, 친구의 부인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상대했다."

  누구랑 어떻게 섹스를 하는가,는 개인의 사적인 문제지만, 아무래도 그의 위치가 대통령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재밌는 건,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섹스에 대해 보수적으로 바라보지만, 이탈리아나 프랑스 대통령의 섹스에 대해서 그 나라 국민은 미국만큼 엄격한 잣대를 대지 않는다는 것.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이미 대통령을 그만두어야 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한편, 이 책에서 이야기하기로는 미국인은 섹스를 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섹스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시카고대학의 한 조사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말로만' 섹스하기를 좋아하며, 침대에서 섹스를 하는 것보다는 텔레비전을 보며 남의 섹스를 감상하는 것을 선호하는 국민"이다. "이에 대해 한 미국인은 "미국이 완벽한 체형을 가져야 성적 매력이 있다는 심리를 조장하는 사회다 보니 배우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역사상 탄핵 위기에 몰린 앤드루 잭슨,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잭슨만 탄핵을 당했고, 클린턴은 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헌법 기초자들에 의하면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과 이에 대한 거짓말을 대통령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만큼의 중대 범죄 또는 비리로 보지는 않을 것이란 여론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처음에 언급한 세계화, 신자유주의, 문명의 충돌 등을 주제로 하여 이처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1권에서 17권까지 모두 읽을 필요도 없고, 관심 있는 주제가 담긴 책을 선택해 무작위로 뽑아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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