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고려유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청소년을 위한 고려유사 박영수의 생생 우리 역사 시리즈 3
박영수 지음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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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는 일연 스님이 그동안의 삼국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정리해 놓은 역사서로, 그렇다면 이 책은 고려시대의 다양한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신의 난, 신선처럼 살다 간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특색있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다룬다. 

서필. 외교를 통하여 우리나라를 구한 서희의 아버지이자, 언제나 올바른 간언으로 임금을 바른 길로 이끌었던 위대한 재상 중 한명이다. 광종은 언제나 결단력 있고, 대신에 끓는 화를 참지 못하여 가끔씩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서필은 왕에게 마치 찬물을 붓는 격으로 직설을 하였으니, 그는 과연 강직하고 대단한 재상이자 아버지였다. 

이규보는 고려 시대의 위대한 문장가중 한명이다. 그러나 그는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지금의 시대에서는 그의 자유분방하고 창조적인 태도 덕분에 크게 이름을 떨쳤을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고전을 외우기를 강요하던 그런 과거제였으니 이규보는 단연 과거 시험에서도 번번이 떨어졌으며, 항략을 즐기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문장 능력에 감탄하였다고 하니, 그가 이 시대에 태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운선 또한 매우 아름다웠으나, 그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서 커다란 불행을 겪어야만 했다. 이의민의 둘째 아들 이지영은 워낙 호색가여서 수십명의 기생을 금방 거쳐가던 남자였다. 그가 자운선에 관한 소식을 듣고서, 그녀의 몸값을 후하게 치뤄주고, 그녀의 동포들을 모두 잘 돌보아주고 양민으로 만들어달라는 조건에 그녀를 후궁으로 맞이한다. 하지만 이지영은 워낙 간사한지라 그 동포들, 양수척 사람들을 자신의 노비로 등록해서 부려먹는다. 결국 양수척 사람들은 몽골 사람들이 쳐들어왔을때 그들은 앞장서서 고려에 맞서 싸웠고, 결국 자운선을 그들의 배신자라면서 잡아 죽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과거에도 비역, 곧 동성애가 성행했었는데, 충선왕 또한 그러했다. 그는 그의 부인에게 상처를 받고서 원나라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원충이란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느낀다. 그들 사이의 불화로 충선왕은 잠시 원충을 내치지만, 원충의 충선왕에 대한 일편단심적인 태도로 인해 다시 그의 곁으로 불러들인다. 

고려 시대에 이렇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동성애를 하는 왕과 시대를 잘못 타고난 위인들, 힘이 장사였던 아들의 나라 점령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고려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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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국사 이야기 7 - 근대와 일제시대 삼성출판사 만화 한국사 이야기 7
이이화 원작, 김형호 구성, 원병조 그림 / 삼성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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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의 거장, 이이화 선생님이 직접 그 많은 내용들을 모두 서술하셔서 만들어진 만화 한국사 이야기. 왠만하면 읽기 힘들다는 이책을, 드디어 7권까지 모두 끝냈다. 총 약 2250페이지 분량의 그 많은 내용을 어떻게 읽었을까,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철종의 죽음부터 근대화까지의 이야기를 이번 책에서 다룬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서 서양의 발달된 문명을 받아들이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인해서 재빠르게 개화를 하지 못해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고종과 민씨 부인이 다시 권력을 잡고 개화를 위해 힘썼으나, 그 과정에서 임오군란등의 사고가 발생하고 결국 일본군의 지배를 간접적으로 받게되는 계기가 된다. 

차례차례 과정을 거쳐서 결국 일본과의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고, 일본은 우리나라와 대만, 두 식민지를 가지게 된 것과 다름없었다. 아마 이 때부터 이미 태평양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식민지의 온갖 물품들을 수탈해 일본 본토 내에서 사용하는데 쓰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용감하게 시작했으나, 끝에는 고급 지식인들까지도 자살폭탄으로 사용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에 놓인 일본은 전 세계의 공격을 받아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박해가 심했다고 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비록 식민지배를 받는 시기였다고는 하지만, 근대문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상당히 많이 발전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여온 승용차는 조선 총독부와 고종을 위한 포드사에서 수입한 차 두 대였는데, 고종이 타고다녔던 그 승용차는 지금의 창덕궁에 보관되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하다가 바람의 한편이 되어 사라졌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가 지금의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에 대해 모두 알고 나니, 이제 한국사에 대한 박사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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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2007/2/24)
임금님의 효행길 - 우리 민화 이야기
윤문자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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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도 문화의 왕이었으나, 정조또한 그러했다. 무수리의 아들 출신인 영조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급진적인 개혁 정신을 익힌 정조는 왕이 되어 스스로 검소하게 생활하고, 문화적으로도 전성기를 맞았다. 사극 '이산'도 정조의 어린 시절부터 그의 재위기간까지의 일생을 다룬 것이며, 다소 과장되긴 했으나 정조의 뜻깊은 배려가 거의 닮아있다. 특히 그는 도화서 화원들을 아끼고 온갖 그리믈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장려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역사적인 그림기록이 많이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다. 

글과 그림은 기록을 남기는 중요한 수단들이었으며, 특히 그림은 시각적인 요소로써 더 알기 쉬운 기록유산이다. 반차도등을 통해서 행렬에서 어떠한 옷을 입고 몇 명이 어떻게 줄을 섰는지 기록이 다양하게 남아있다. 화성성묘전배도는 수원화성에 관한 전 그림을 나타내었는데, 당시의 기록을 통해서 화성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흭득할 수 있었다. 

과거 그림에서 보면, 제일 중요한 임금의 자리인 용상에 아무도 앉아있지 않거나 임금이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도 얼굴(용안)이 없는 경우가 있다. 임금은 하늘, 곧 용이 내린 인물이라 하여 용과 같이 비범한 인물이어야 했으며, 그래서 얼굴과 몸 모두 용과 같이 귀하고 임금의 변도 매화라 했다. 그래서 예를 갖추기 위해 그림에 함부로 임금의 몸 또는 얼굴을 그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기록은 언제나 중요한 것이다. 잠시의 편의를 위해서 중요한 기록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경우가 생긴다면, 나중에 후손들에게 어떤 불이익이 생기거나 또는 중요한 사실들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조의 지시아래 남겨진 수많은 기록들이 지금까지 잘 보전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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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원화성(2007/2/24)
    from 창동중1학년 2009-10-11 13:16 
    2007.2.24  mom-  수원 화성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주니어 김영사의 역사 체험  이벤트에 운이 좋게도 받아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역사 체험을 하고 올 수 있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만화 한국사 이야기 6 - 조선시대후기 삼성출판사 만화 한국사 이야기 6
이이화 원작, 김형호 구성, 원병조 그림 / 삼성출판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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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후기는 숙종 이후의 역사를 다루는데, 숙종 시대에는 그 유명한 장희빈 스캔들이 발생한다. 천한 신분을 시작으로 왕비의 자리에까지 오른 장옥정은 숙종의 변덕으로 인해서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고, 그 여인와 왕 숙종을 둘러싼 정치적 결함이 이 때 있었다. 

조선시대의 발전을 막은 가장 큰 걸림돌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붕당이다. 붕당은 곧 하나의 민족과 같으며, 같은 붕당 사람들끼리는 모든 것을 똑같이 행동하려는 태도를 보였으나 서로 다른 붕당 사람들은 말씨, 그 걸음걸이등까지 모두 차이가 많이 나므로 서로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면서 나라에 꼭 필요한 인재를 뽑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노공상. 조선시대 신분사회를 단적으로 나타내는데, 기술자도 천히 여겼으나 상업을 하는 사람은 더욱 그랬다. 단순히 물건을 이익을 위해 파는 행위를 인간이 하는 일중 가장 천한 행위라 여겼으며, 결국 지역별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등 활발한 상업 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이 점도 커다란 문제였다. 후에 나라에서 동전, 지폐등을 통한 화폐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상업의 중요성이 가미되어 상인들의 지위가 날로 높아져 결국 공명첩을 사고파는 경우에까지 이르르게 된다. 

우리나라는 고려때부터 인삼으로 매우 유명했는데, 이 책에서야 홍삼과 인삼, 산삼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사람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인삼이란 이름이 붙은 이 식물이 산에서 자생하면 산삼, 따로 기르면 가삼, 증기에 삶고 말려 인삼의 기운을 조절한 것이 홍삼... 중국과 일본에 불로장생약 또는 몸에 최고로 좋은 약이라 알려지면서 국가 예산을 벌어들이는데 한몫한 것이 바로 이 인삼이다. 

이런 문화의 기틀은 영조때부터 비로소 빛을 발휘했는데, 무수리의 아들이었던 영조는 검소한 생활이 몸에 베었으며 서민 생활을 겪어본 탓인지 실전에 강하고 결단력 있는 개혁을 추구하는 왕이었다.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강하여 안정이 되어 있지 않은 형벌제도를 바로잡아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했으며, 백성들을 우선으로 하는 장수한 왕이었다. 

이제 본격부터 근대 및 일제 강점 시대가 시작된다. 조선이 신속한 개화정책을 펴지 못해 그런 안타까운 현실을 맞이하게 된 점이 슬프다. 어서 근대사를 읽어보고 우리 민족의 역사 이야기를 마저 끝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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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국사 이야기 5 - 조선시대전기 삼성출판사 만화 한국사 이야기 5
이이화 원작, 김형호 구성, 원병조 그림 / 삼성출판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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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비로소 시작된 조선의 역사. 당시 조선은 이성계의 정책에 따라서 친명정책을 펼쳤고, 심지어는 나라 이름을 조선, 회령중 어느것으로 할지 명나라에게 골라달라고 요청까지 해 태조는 역사에 명나라에게 나라의 이름까지 고르게 했다는 오명을 남겼다. 그러나 친명정책이 오히려 우리나라에게 잘된 정책일지도 모른다. 중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속국이 되거나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조선 초기는 역시나 왕이 달라져서였는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나라를 건국하고 바쁘게 살았던 태조는 아들들을 두었는데 세자의 자리를 막내아들에게 넘겨주어 나라에 대한 공이 컸던 이방원은 특히나 이를 갈았고, 결국 왕자의 난을 일으켜 장남인 방간을 왕의 자리에 앉혔으며 그가 바로 결단력 없는 왕, 정종이다. 방원에게 시달려 결국 그에게 왕의 자리를 념겨주니, 그는 문화의 아버지 세종의 아버지이기도 한 태종이다. 

세종 때 수많은 인재들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휘황찬란한 역사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문종은 원래 체력이 약하여 결국 왕의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2년 만에 죽었으며, 그 뒤를 이은 단종은 문종이 오래 살지 못한 까닭으로 겨우 12살이었다. 권력을 잡게 된 수양대군은 단종에게 압력을 가해 결국 그에게서 왕권을 탈취,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그가 바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세조이다. 물론 그만큼 개혁을 많이 폈으나, 살인에 대한 업보인지 늙어서 피부병에 시달렸고, 불교에 깊이 매달렸다고 한다. 

조일 전쟁, 임진왜란으로 시작된 한반도의 악운. 히데요시의 음모로 인해 결국 명과 일본 사이에 껴서 완충역할을 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던 우리나라의 악운이 어떠하였는가? 또 얼마 안있어 광해군의 자리를 빼앗고 왕이 된 인조는 후금에 대한 강경책을 펴서 결국 남한산성에서 항복을 하는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 전기부터 이렇게 수많은 난을 겪었다는 것이 참 슬프다. 하지만, 그만큼 빨리 단결하고 이겨내는 것이 우리나라의 특징이다. 조선시대 후기 이야기도 얼른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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