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 - 민족의 형성과 민족 문화 살아있는 휴머니스트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엮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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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배우면서, 역사의 과정을 조작하여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통하여 학생의 전체적인 사고 관념이 매우 크게 바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역사서에서 우리는 중국의 역사서에 '동방예의지국'이라 써져 있다. 동쪽의 예의바른 국가란 말에서 옛날엔 자부심을 느꼈어도, 지금은 씁쓸함을 느낀다. 고조선 당시에만 해도 조선족은 '사납고 교만한'민족이었고, 그들에 대항하며 강하게 싸우면 교만하고 그들을 유순하게 따르면 예의가 바른 것이었다. 대국의 역사서를 기준삼아서 우리나라를 평가하고, 우리 자신들조차도 그들의 잣대를 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동방예의지국'이란 단어를 어떻게든 좋은 뜻으로 넣기 위하여 자세한 내막은 넣지도 않은 채 단순히 자랑스러워 할 명찰로 만든게 어른들이다. 나는 역사서에 이렇게 써넣고 싶다. 부끄러워야 할 이름, 그러나 와신상담의 좋은 한 예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이 동방예의지국이란 명찰을 보면서 더 강해지고, 이들에게 예의바르다는 소리 대신 강국이란 소리가 더 낫지 않을까? 물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이 이름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뒷 표지에는 한국사가 살아 있다 라는 말이 적혀있다. 맞는 말이다. 살아 있다는 말은 지금도 계속 살아서, 역동적인 몸부림을 치며(식물의 관점으로 보자면 그리 역동적이 아닐 지라도) 꿈틀거리고 있는게 역사다. 역사가 죽어버린다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지구 멸망? 아니면, 더 이상 기록되지 못하는 역사를 말하는 것 아닐까? 역사가 전해지는 법은 다양한 법이 있다. 말을 통해 전해지기도 하고, 물론 그 와중에 많이 변형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설화다. 그리고 책으로 쓰여진 것은 사라지거나 불타지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남아 후세에 전해진다. 

역사를 왜 배우느냐, 라는 말에는 수학을 왜 배우냐, 라는 말로 답하고 싶다. 구지 이유를 말하자면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패턴을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방식이랄까? 수학에서는 처음에 x+4=6에서 x를 구하기 위하여 식을 만들어냈듯이, 역사는 x라는 우리의 삶의 패턴을 찾기 위한 일종의 학습인 셈이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역사는 그 어느 것보다 중요도가 높아야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말 그대로 내게 살아있는 역사를 가르쳐 주었다. 물론 박은봉 선생님의 잘못된 한국사 바로잡기에 관한 책에서 언급된 부분이 많이 빠져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알짜배기 한국사를 가르쳐주고, 그들의 뿌리를 알게 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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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한국사 상식 44가지의 오류, 그 원인을 파헤친다!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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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봉 선생님의 한국사 상식 44가지 바로잡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어른들에게 들어오던 다양한 상식들이 실제로는 증명할 길이 없이 단지 사람들에게 이렇다, 하고 추론되어 그렇다고 굳어져 온 것 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 그예는 얼마든지 많다. 과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상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자. 

함흥차사. 매우 유명한 말로, 어느 장소로 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함흥차사라고 한다. 이러한 까닭의 내막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에 따르면 태종이 태조를 왕위에서 쫓아내고 동생들을 모두 죽여서 무력으로 왕위를 차지하자, 화가난 이성계가 함흥에 머물면서 태종이 그에게서 옥새를 받아오기 위해 차사를 계속 보냈으나, 모든 차사가 가서 돌아오지 않다가 박순에 의해 설득당한 태조가 결국 움직였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물론, 이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므로 이야기에 신빙성이 있어 보여 정설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은 공룡시대에 공룡들이 멸종한 이유를 설명하는 과학적 학설이나 가능한 추론이지, 역사서가 버티고 있는데 이러한 추론을 내는 게 말이 되는가? 실제로는 이성계를 둘러싼 반란군에 의해 단 두 명의 차사가 죽었을 뿐, 이성계는 팔도를 돌아다니다가 차사에 의해서 이성계의 거동을 왕이 보고받았을 뿐이다.

교과서에도 왜곡된 사실은 자주 실린다. 물론, 교과서에 실릴 정도이니 사람들이 잘못된 이야기를 사실로 믿겠지만 말이다. 홍길동전은 출판되는어느 책에서나 허균이 지었다고 써져 있다. 하지만, 기록에서는 이색이 쓴 허균에 관한 글에서만 그가 쓴 홍길동전에 관해 언급되어있고, 막상 허균 자신이 죽기 직전에 자신의 글과 시등을 정리한 책에서는 홍길동전에 대한 언급이 조금도 되어 있지 않다. 

최근에 신라의 세 명의 여왕 중인 한 명, 선덕여왕에 관한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직한 사실은 신라의 여성들의 지위는 다른 그 어느나라보다 높았구나, 라는 사실이리라 예측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하지 않았다. 물론 조선시대보다는 여성 차별이 뜸했던게 사실이나, 여왕이 생겨날 수 있었던 까닭은 순전히 왕이 될 피를 가진 혈족이 김선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원효대사의 깨달음 장면도 중요하다. 그가 해골 바가지속의 썩은 물을 마시고 참된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에 관한 불서와 이 부분이 실린 책을 비교하였을 때 그 신빙성이 불서에 더 높으므로 단순히 귀신이 있는 무덤에서 잠을 잠으로써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실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보니, 내가 어른이 된다면 아이들에게 잘못된 역사 상식을 가르쳐주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이 서게 되었다. 역사 연구를 열심히 해서, 우리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는 그런 일은 만들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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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7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 문답으로 이해하는 고구려 역사 지식과 정보가 있는 북오디세이 6
김용만 지음, 장선환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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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동명왕전에 따르면, 추모왕이 고구려를 세운 시조라고 한다. 동명왕전은 거의 누구나 다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활을 잘 쏘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주몽은, 졸본에 도읍을 정하여 방어하기밖에 못했던 고구려 사람들을 단결시켜 차츰 주변국들을 점령하며 힘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고구려 사람들은 현대 사람들과 같이 목욕을 자주 했기 때문에 질병의 위험에 대해 어느정도 대처가 가능했다. 그래서 고구려에는 총 세 번의 역병이 돌았다고 하는데, 그 횟수와 정도가 신라와 고구려에 비하자면 매우 작다고 한다. 

고구려인들은 청결했던 만큼 매우 용감했다. 삼국중에서 전성기 때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가 바로 고구려로, 비록 삼국 통일의 길을 걷지는 못하였으나 주몽의 활 잘쏘는 그 기상을 그대로 닮아서 위대한 사냥꾼들인 고구려인들의 모습이 고분벽화 등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러한 고구려도 몇번이나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동천왕 때가 그러하다. 효자이고 백성을 사랑했던 동천왕은 위나라와의 전투에서 동천왕의 자만으로 인해 나라를 빼앗길 뻔했다. 계략에 걸려들었지만 충신들의 목숨을 바친 노력들 덕분에 그는 위나라 군사들을 모두 몰아내고 고구려를 무사히 지켜낼 수가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고국천왕 때 화살에 맞아 왕이 죽는 치욕스러운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광개토대왕이 이 원수를 되갚기 위하여 노력해 고구려를 전성기로 이끌어냈다. 

위대한 나라였던 고구려 700년 역사를 이 책을 통해서 모두 알아보았다. 이제 남은 나라는 1000년의 역사를 이은 신라. 삼국에 대한 비밀을 곧 모두 완성시킬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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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7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세련된 문화로 세계와 교류한 해양 국가
김용만 지음, 백명식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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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과거 비류와 온조, 곧 고주몽의 두 아들이 신하와 백성들을 이끌고 와서 세워졌다고 한다. 마한의 터를 빌어서 세워진 그 둘의 터전중 비류는 미추홀의 지나친 소금기로 인해 흉년이 들자 자결을 하고, 그 백성들이 온조에게로 가서 처음에 십제라 이름 지었던 온조는 그 수가 배로 늘어났다고 해서 백제라 하였다. 

과연 백제 문화의 특징은 어떠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백제는 당시 기술자를 매우 우대하였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유학자가 최고로 칭송을 받았고, 기술자는 어디까지나 천대받아 마땅한 존재였다. 그랬기 때문에 백제는 화려하면서 섬세한 문화가 발달할 수가 있었고, 그것은 무령왕릉 박물관을 견학하면서 벽돌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무늬를 보고 놀라며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백제의 왕조들을 살펴보자. 백제는 여러번 위기를 맞이했는데, 그것은 왕의 지나친 의욕으로 인한 침체나, 자포자기 상태에서 놀다가 침체된 경우 등이 있다. 특히 의자왕에 의르러서는 그는 올곧은 정치를 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삼국 시대에서 살아남지 못한 채 죽어서 백성의 돈으로 열심히 유흥비로 써댄 왕이란 누명을 쓰게 되었다. 역사란 것은 참 상대적이다. 강자는 항상 착하고, 약자는 항상 패배자의 면모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백제는 신라와 더불어 일본의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당시 일본은 섬나라여서 거의 문맹 수준이라 할 정도로 질이 떨어져서 백제와 신라는 그들의 문화를 일본으로 전수해주러 갈 때마다 일본인들은 항상 크게 반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커다란 문젯거리가 되었고 급기야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을 수가 있게 되었다. 

백제는 도읍을 두번이나 옮긴 국가로, 처음의 위례성은 침략으로 인해 무너져서 공주로, 공주의 성은 너무 비좁아서 사비로 천도해 계획도시를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백제는 총 세 개의 도읍지를 거쳐가게 된 셈이다. 

백제는 비록 지금은 신라에 융화되어 사라진 이름뿐인 국가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남겼던 문화는 지금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를 융성하게 하고, 삼국의 한 축을 이루었던 백제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풀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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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학자 이야기 인물로 보는 우리 역사 4
박윤규 지음 / 보물창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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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현대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한 천재적인 위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같다. 지금 우리 세대에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 공부를 못하는 아이,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 등이 있다.  

그리고 과거에도 같다. 대대로 좋은 관직에 오른 가문이라면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거나, 부모님의 올바른 교육 덕분에 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예 또한 적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공부의 신이란 이름 대신 신선과 같이 신격화되어 모셔졌다. 자, 그럼 그러한 선비학자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지금과는 달리 실용과학 대신 유학이 발달했다. 유학은 말 그대로 유교가 발달하여 학문과 같이 된 것이다. 유교 경전을 익히면서 많은 사람들이 백성을 위해 일하는 법을 터득했고, 이것이 바로 유학이 과거제의 중요한 기준이 된 이유이다. 

조광조는 역사상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인재 중 한명이다. 시대상이 맞지 않아서 당쟁의 칼부림을 피하지 못한 채 5년동안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사약을 받고서 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진정으로 총명하고 나라를 생각해기도 했지만, 그래도 정치적이나 외교적인 면에선 약간 부족했는지 사람들의 미움을 사게 되어 죽은 것 또한 그의 능력 부족중의 하나라고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지금 우리 세상은 얼마나 변해있었을까? 

서경덕은 조광조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지만, 그는 관직에 오르길 정말 싫어했기에 당쟁의 칼부림을 미처 피할 수가 있었다. 나라를 위하여 이 한몸 바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심히 배워서 그것을 후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 있다. 서경덕은 훌륭한 훈장이었고, 나라를 위하여 좋은 조언을 해주고 수많은 인재를 양성한 채 신선처럼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앞서 업적을 세웠던 사람들을 본받아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청출어람, 곧 쪽에서 나온 푸른 빛은 쪽빛보다 더 푸르다고 훌륭한 스승이 가르친자는 훌륭한 씨앗이 되어 자란다. 나 또한 현대의 선비학자가 되어, 그들과 같은 업적을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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