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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2 - 삼국 시대 상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2
이현세 만화, 김미영 글, 한국역사연구회 감수 / 녹색지팡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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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3 오후 11:00:13

오봉초 3학년 최 상철

조선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가야는 금관가야, 대가야등의 6개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야에는

정치하는 왕이 없었기에, 6개국에서 각자 촌장이 통치하고 힘이 비슷비슷

하였다. 그래서 가야는 중간에 신라에게 멸망하게 되었었다. 고구려는 초반에

광개토대왕으로 가장 강대국이였으며, 중국영도 4분의 1정도까지 밀고나간후

백제를 통일하였었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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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3 - 삼국 시대 -하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3
이현세 만화, 김미영 글, 한국역사연구회 감수 / 녹색지팡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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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3 오후 11:15:23

오봉초 3학년 최 상철

이때 광개토대왕이 죽고, 그의아들이 왕자리에 올랐다. 신라는 다시 가야를 통일하여 2개국으로 나뉘어졌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가야는 다 힘이 비슷비슷하게 나뉘어져있어서 결국은 하나하나씩 다 당하고 만 것이다. 이솝우화에서 사자가 소를 떼어놓은후 각자 먹은것처럼. 이때 고구려는 또다시 원나라에게 멸망하게 되며, 고구려 영토는 발해로 변하였었다. 신라는 현재 우리나라 영토만큼 땅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해도 우리나라영토에 속해있었다. 이유는 발해는 중국인보다 우리나라인의 정치인과 백성이 대부분이였기 때문이였다. 일종의 식민지라 볼수도 있었다.

아무리 땅이부족하다하여서, 어찌그렇게 피흘리는 전쟁을 계속할까? 물론 그렇게 유지되면 안좋은 점도 있지만 난 전쟁자체가 나쁘다 생각한다. 파괴본심이 없는사람도 있게 만들고,  전쟁으로 인해 죄없는 동물이 무기에 맞아 죽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이 사고에 비해 더빠른속도로 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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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과 24절기 -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 문화 이야기
자운영 지음, 한철후 그림 / 흰돌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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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초 4학년 최 상철 

이 책은 2006년 8월에 나온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이다, 책 표지에서 스님이 똥을 누는데 미꾸라지로 변한것을 보고 놀랐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서 당장 보았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바로 한식, 충신 개자추 이야기였다. 옛날에 중국 진나라의 헌공 왕은 아들 중이를 몹시 미워했다. 아들이 자기 왕위를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어느 날, 중이는 자신이 아버지를 해칠 생각이 없다고 말하자 왕은 오히려 중이를 나라 밖으로 추방시켜버렸다. 그 후에도 왕은 누가 자신의 자리를 뺏을까봐 두려워 많은 사람을 추방하고 죽여버렸다. 그 때 중이는 신하 몇사람과 몇년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중이가 너무 배가 고파 헛간에 누워있을 때였다. 그때 신하 개자추가 음식을 들고 왔다. 바로 고깃국이었다. 그 때는 죽도밥도 얻기 힘든 때여서 중이는 깜짝놀랬다. 어떻게 이것을 구했냐고 묻자 개자추는 솔직히 말하였다.

"이것은 제 허벅지살을 베어 끓인 국이옵니다."

이에 중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중이는 개자추가 충신이라 말하고, 오늘의 일은 절대 잊지 않겠다고 하였다. 다시 몇년간 그런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중이는 나간지 19년만에 왕위에 올라 문공 왕이 될 수 있었다. 문공 왕은 아주 현명한 정치를 펼쳤으나, 자칫 개자추는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문공 왕은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 고깃국을 끓인 개자추가 떠올라 면산에 있는 개자추를 등용하려고 하였다. 개자추는 여러번 사양하였고, 문공 왕은 개자추가 내려오게 하기 위해서 면산에 불을 질렀다. 그렇지만 개자추는 산에서 타죽었고, 문공 왕은 개자추가 죽은 것에 대해 한참동안 탄식하였다. 그때부터 그날은 찬밥만 먹는 날이라 하여 한식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그 한식은 우리나라에서 설날, 추석, 단오와 함께 가장 중요한 사대 명절중에 하나이다.

그렇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무리 유래가 되었다지만 중국의 명절이 우리나라 명절이 될 수 있겠는가? 자질구레한 명절이면 모를까, 아주 중요한 명절이 ‰榮募?것이 이해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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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 유산 이야기 샘터 솔방울 인물
한상남 지음, 김동성 그림, 최완수 감수 / 샘터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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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0. 30  오봉초 4학년 최 상철

현재있는 한글의 시초판, 훈민정음. 그 훈민정음은 도대체 어떻게 구해졌을까? 훈민정음은 예전에 보화각이라 불리던 간송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간송 미술관은 전형필 선생님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예전에 훈민정음 원본판이 발견되었을 때, 우리나라 언어를 없애려던 조선 총독부의 눈을 피해 은밀히 구입하여 보관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자료인 훈민정음을 구했다는 전형필 선생님은 일제시대 많은 일본인에 의하여 엄청난 양의 우리나라 물품을 도둑맞았다. 전형필 선생님은 그렇게 거래되어 사라져가는 우리나라의 물품을 비싼 값을 주고 사들여 잘 전시해 놓는 일을 하셨다. 만약 그분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국보와 보물이라고 지정해 놓은 유물의 수도 적었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바쳐 유물을 구하신 간송선생님. 그것도 그 많은 재산을 전부 기증하신 위대하신 분. 나같으면 개인소장을 하여 평생을 간직하려 했을 텐데... 또한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도 그만큼 대단하다. 처음 고려청자를 보고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들여 많은 고려청자를 모았는데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자 단 두개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전부 전형필 선생님에게 팔았다. 전형필선생님의 문제는 돈이 아니라 그것을 구하는 것이였기에, 돈은 비쌀지라도 간송 선생님에게는 매우 큰 행운이였을 것이다. 역시 간송 선생님의 마음은 우리 한국인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간송 선생님의 한가지 단점은, 자신의 조상이 이룬 땅을 전부 팔아서까지 재산을 마련한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를 위하여 한 일이지만 조상과 부모님에게 큰 심려를 끼쳤으니 불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책을 읽고 크게 느낀점이 있다. 일제 시대때는 어떻게든 우리말을 잃지 않으려고 크나큰 노력을 하였는데 지금은 어째서 영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가? 난 그것이 의문이다. 페스티벌, 에어콘, 섬머, 홈쇼핑등 이미 우리나라의 언어가 있는데도 그대로 사용하는 때가 많다. 빵같은 것은 어쩔수 없이 받아들이더라도 우리나라에 이미 존재하는 언어를 바꿔사용하는건 나라사랑에 옳지 못하다.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 나라사랑에 관하여 부쩍 관심이 많아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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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mom 

이 책을 내년에 다시 한번 아이가  읽었으면 좋겠다.  아니라면 그 이후라도...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사람에 대한 생각이 너무 강한 것인지...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아내라는 주문만 너무 했던 탓은 아닌지 되짚어 보게 된다.  

아이는 그토록 힘든 일을 해낸 간송선생님을 존경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표현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지만 간송 선생님의 고뇌도 읽어 낼 수 있는 눈높이를 기다리며, 지금의 눈높이에서 조금 더 내딛기를 기다리며...

간송미술관이 정말 있느냐는 아이의 반문에 같이 또 책나들이를 해볼까한다.    오늘 이 책을 통한 간송 선생님과의 만남이 아이의 가슴에 깊게 자리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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