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
히사이시 조 지음, 박제이 옮김, 손열음 감수 / 책세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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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음악감독 히사이시 조의 에세이집. 2006년에 출간된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를 먼저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었다.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일본 음악대학 졸업 후 미니멀리즘 음악을 추구하다 상업적인 영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인생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의 만남, 작곡을 할 때의 마음가짐, 작업하는 방식 등은 그 책에 더 자세히 나와 있다. 반면 이 책에는 '작곡가 히사이시 조'가 아닌' 지휘자 히사이시 조'의 면모가 더 강하게 드러난다. 요즘은 작곡가가 지휘자를 겸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과거에는 그것이 주류였고 저자는 그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음악을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짓는 것과 실제 연주자들의 연주를 토대로 짓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 경험에 대해서도 나온다(한국의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이름이 언급되는 대목도 있다). 저자는 일본의 오케스트라는 수준이 매우 높지만 협조성을 지나치게 중시하다 보니 개성이 없고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응이 약하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중국이나 대만의 오케스트라는 협조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개성이 강하고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응이 좋다. 저자는 연주도 지휘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는 연주와 지휘가 좋다고 말한다. 언젠가 저자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실제로 들어보고 싶다. 


"시각에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시간'입니다. 사진을 찍어도 그곳에 시간은 찍히지 않지요. 그림에도 시간을 그릴 수 없어요. 눈은 시간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공간을 전제하지요. 그럼 청각에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공간'입니다. 청각에 없는 '공간'에 관해, 데카르트 좌표는 시각이며, 청각은 극좌표입니다. 거리와 각도밖에 없으며 어느 정도 거리에서 들려오는지, 어느 쪽에서 들리는지 그뿐입니다. 눈이 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얻을 필요가 있으며, 귀가 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공'이 기본이 되었습니다. 언어는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요로 다케시의 말 인용, 14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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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의 문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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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계절>을 읽고 한참만에 두 번째 작품을 읽었는데, 아무래도 <다섯 번째 계절>을 읽을 때는 낯설었던 개념이나 구성이 이제는 익숙하다 보니 <다섯 번째 계절>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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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의 문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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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SF문학상인 휴고 상을 3년 연속으로 수상한 '부서진 대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 <다섯 번째 계절>을 읽고 한참만에 두 번째 작품을 읽었는데, 아무래도 <다섯 번째 계절>을 읽을 때는 낯설었던 개념이나 구성이 이제는 익숙하다 보니 <다섯 번째 계절>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다. 


<오벨리스크의 문>은 어머니 에쑨의 시점과 딸 나쑨의 시점으로 각각 진행된다. 지진 활동과 관련된 에너지를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을 당하는 존재, 즉 '오로진'인 나쑨은 자신과 같은 오로진인 아들 오체를 살해하고 딸 나쑨을 데리고 사라진 남편 지자를 쫓아 헤매던 중 '카스트리마'라는 지하 도시에 다다른다. 에쑨은 카스트리마에서 옛 연인이자 스승인 알라배스터와 조우하는데, 이제 알라배스터는 쇠약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며 그를 보는 에쑨의 마음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오벨리스크의 문>에서 흥미로웠던 건, 에쑨보다도 나쑨의 이야기이다. 나쑨은 원래 어머니 에쑨을 무서워하고 아버지 지자를 좋아했다. 자신과 같은 오로진인 어머니 에쑨은 매일 어떻게 힘을 다스리고 통제해야 하는지 혼내듯 가르치는 반면, 오로진이 아닌 아버지 지자는 자신을 그저 어린 딸로서 귀여워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쑨이 오로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지자의 태도가 180도 변하고, 급기야 나쑨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나쑨을 죽이려 든다. 나쑨은 그런 아버지를 좋아할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어서 괴로워한다. "왜 내가 이 사람을 아직도 사랑하는 거지? 나쑨은 아버지를 쳐다보며 의아해한다." (427쪽) 


"지금 나쑨이 느끼는 감정은 어머니에 대한 차가운 분노다. 그게 불합리하다는 건 나쑨도 안다. 지자가 오로진을 너무 무서워하여 자기 자식마저 사랑할 수 없다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지자의 잘못이다. 하지만, 한때 나쑨은 아버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했었다. 지금 그녀는 그 완벽한 사랑을 잃은 데 대해 비난할 사람이 필요하다. 나쑨은 어머니라면 그걸 감당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적어도 저 사람보다는 강한 사람이랑 애를 낳았어야죠." (432-3쪽)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증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나쑨은 결국 어머니 에쑨만이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도 나쑨을 구해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무도 나쑨을 구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524쪽) '부서진 대지' 시리즈의 마지막 3부 <석조 하늘>에서는 에쑨과 나쑨이 마침내 만나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차별과 억압의 시대를 끝내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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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이름 정하기
이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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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이라는 아티스트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이랑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집중해 감상한 건, 책과 만화, 영화, 음악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한 가지 일에 정진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을 산발적으로 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는데(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랑 작가는 여러 가지 일을 산발적으로 해도 무엇이든 잘 해내는 사람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이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기 때문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고, 총 12편의 짧은 소설이 실려 있다. 모든 소설이 탁월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설은 <똥손좀비>다. 보조출연자로 일하는 용훈은 지하철 사고 때문에 좀비 영화 촬영장에 늦게 간다. 그 바람에 전문 분장사의 분장을 못 받고 직접 좀비 분장을 하게 되는데, 용훈의 좀비 분장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면서 용훈은 '똥손좀비'로 불리게 되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문제는 용훈이 원하는 건 성실하게 연기력을 쌓아서 배우로 인정받는 것이지, 고작 한철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말 밈(meme)의 주인공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용훈의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계속해서 좀비 떼처럼 용훈에게 달려들고 용훈을 이용하려 든다. 


만약 내가 용훈과 같은 처지가 된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나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없는 일도 아니기에(만약 내 졸업 사진이 갑자기 인터넷상에서 밈이 되어 퍼진다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발상은 기발하되 현실과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은, 마치 내 이야기 같고 내 친구 이야기 같은 소설들이 주로 담겨 있다. 이랑 작가의 다음 소설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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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틀리기 쉬운 영어 - THE TIMES 교열기자 출신이 알려주는 유용한 영어 사용 팁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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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이미 잘하지만 더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필살기가 담겨 있는 노트를 엿본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저자 빌 브라이슨은 2005년 영국 더럼대학교의 총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더 타임스>, <인디펜던트>의 기자로 일했다. 이 책은 저자가 <더 타임스>의 교열 기자로 재직할 때 기획, 집필되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제목을 '상당히 최근까지만 해도 지은이가 완전히 명확하게 알지 못하던 영어 어법의 모든 것에 대한 지침서'라고 붙였다면 설득력은 좀 떨어져도 더 정확했을 터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내용은 저자가 일간지 교열 작업을 할 때 여러 번 혼란을 겪은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영어 초보자부터 고급 영어 사용자까지 수많은 영어 사용자들이 자주 틀리거나 헷갈려 하는 영어 단어의 정확한 뜻과 용례가 A부터 Z 순서로 정리되어 있다. affect와 effect, bait와 bate, capital과 capitol처럼 철자가 비슷해서 혼동하기 쉬운 단어들의 예가 잘 정리되어 있고, country와 nation(country는 지리적 특징을, nation은 정치, 사회적 특징을 가리킨다), abbreviation과 contraction과 acronym(각각 약어, 축약형, 두문자어를 뜻한다) 등의 차이도 나와 있다. but, due to의 정확한 사용법을 비롯한 문법 지식 및 영작을 할 때 주의해야 하는 사항도 실려 있다. 박식하기로 유명한 빌 브라이슨의 책답게, 영어에 관한 지식 외에 다양한 역사, 문화 상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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