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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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사이보그에 비유하다니.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왜 이런 생각을 못 해봤을까. 또 한편으로는 장애인이라고 하면 안 괜찮은데 사이보그라고 하면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내 안에 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 내지는 편견을 드러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도 임플란트를 이식한 사람도 넓게 보면 장애인이라는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오랫동안 안경을 써온 나도 장애인인데, 이제까지 한 번도 나의 안 좋은 시력을 장애로, 나를 장애인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어떻게 얼마나 차별하는지 뻔히 알기에, 스스로를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의 범주에 넣어서 생각해 보기가 싫었던 것일지도... 





이 책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쓴 변호사 김원영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쓴 소설가 김초엽이 공저했다. 두 사람에게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것 외에 장애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체장애가 있는 김원영과 청각장애가 있는 김초엽은 각각 휠체어와 보청기라는 테크놀로지를 자기 몸의 일부로써 사용한다.


비장애인이 보기에는 휠체어도 보청기도 사용하기 불편해 보이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여전히 가격이 비싸고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이는 기술 차원의 문제이고, 더욱 불편한 건 이러한 기기들을 보는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시선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가령 예전에는 보청기를 되도록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디자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보청기와 디자인이 비슷한) 무선 이어폰이 크게 유행하면서 보청기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한다는 압박이 많이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테크놀로지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장애인들의 생활이 개선되는 사례가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불쌍하지만 사이보그라고 하면 왠지 멋있어 보인다는 인식은, 그런 점에서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장애를 비정상으로 보고 무조건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한 사람의 특성 또는 개성으로 인정하고 장애인이 타고난 조건 그대로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장애를 고치는 것보다 시급한 건 현재의 장애인들이 보다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휠체어용 엘리베이터를 늘리고 건물 출입구마다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지원 서비스와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 서비스를 늘리고 자막 제공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사람을 위한 기술'이라고 말할 때 비장애인만 떠올릴 것이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 떠올리는 것이다. 당연한 일인데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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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10 0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살아가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도 없을 것 같아요. 장애의 정도 차이일뿐이지..... 그런 의미에서 기술의 보조를 받고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사이보그라는 말을 사용하는게 참신하네요. 요즘은 조금씩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은 많이 멀죠.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도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thkang1001 2021-08-10 1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람돌이 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람 중에서 장애가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다 늙기 마련입니다. 늙으면 시력은 물론이고, 청력을 포함한 모든 신체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다 예비 장애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더구나, 요즘은 선천적인 장애인보다 정신적으로 장애인을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장애인 중에서 자신이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장애인이 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그리고, 혹시 자신의 의지로 장애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연 그 사람이 행복할지 의문입니다. 두서없는 글이 너무 길어진 점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1-08-1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예약하고 기다리는 책인데 키치님 리뷰 읽고, 근미래 SF인가보다 추정합니다.
 
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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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거상 수상 소식 듣고 뒤늦게 구입해 읽었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읽은 분들 부럽습니다. 출간된 지 8년이 흐른 지금 읽어도 새롭고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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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올 사랑 - 디스토피아 시대의 열 가지 사랑 이야기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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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고 흠모하는 정혜윤 작가님의 책. 읽을 때마다 기발한 사유에 놀라고 매혹적인 문장에 감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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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올 사랑 - 디스토피아 시대의 열 가지 사랑 이야기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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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고 흠모하는 정혜윤 작가님의 책이다. 팬데믹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14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기에 전염병을 피해 교외로 옮겨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데카메론>이 떠올랐고, <데카메론>의 형식을 빌려 열 가지 사랑 이야기를 새로 썼다고 한다. 


사랑 이야기를 썼다고 해서 이성애만을 다루는 건 아니다. 저자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미셸 우엘벡의 <세로토닌> 같은 책에 대한 소개와 감상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작가와 책의 면면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사랑의 경계를 (흔히 사랑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성애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지구 등으로 확장해서 사유하고 상상한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에게도 해를 입히는 농약의 위험성을 최초로 알린 레이첼 카슨,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미래 세대를 위해 식물 종자를 지키는 길을 택한 러시아의 생물학자 바빌로프의 이야기 등은 깊은 교훈과 감동을 준다. 


전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과, 모든 생명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하는 요즘이지만, 이 감정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연결시킬 생각은 못 했다. 인간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도 사랑하고 동물도 사랑하고 산과 바다도 사랑하고 물도 공기도 사랑한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다채롭고 풍성해질까. 앞으로 올 사랑, 나로부터 갈 사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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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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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대거상을 수상한 윤고은 작가의 작품이다. 수상 소식을 듣고 뒤늦게 구입해 읽었는데,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서 읽는 내내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과연 큰 상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요나'는 재난이 일어난 지역을 여행하는 상품만을 판매하는 여행사의 10년 차 여행 프로그래머다. 상사의 지속적인 성희롱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요나는 견디다 못해 퇴사를 선언한다. 그러자 상사는 퇴사 대신 인기가 낮은 여행 상품을 직접 체험해보고 개선 방안을 생각해 오는 출장을 제안한다. 그렇게 떠밀리듯 사막의 싱크홀 '무이'로 가게 된 요나는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게 된다. 처음에 요나는 그 모든 일에 대해 패키지여행 중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트러블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결국 요나를 포함한 거대 재난 프로젝트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 그런 불행을 의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극단적인 설정이지만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건, 이미 이런 식으로 불행을 오락거리로 삼는 사람이 워낙 많은 까닭이다. 재난마저도 돈벌이나 인기몰이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을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이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요나가 내부자로서 프로젝트 핵심부에 접근해 이 모든 프로젝트를 설계한 사람을 처단하고 희생자들의 복수를 대신하는 이야기로 끝이 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뭔가 넷플릭스 드라마 재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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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6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관심가던 책인데 그런 내용이었군요. 보관함에 쏙 넣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