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 쓰레기 사회에서 살아남는 플라스틱 프리 실천법
고금숙 지음 / 슬로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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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라디오 <박진희의 공존일기>를 듣고 고금숙 활동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학에서 에코페미니즘을 접하고 여성환경연대에서 일을 시작해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생리대 유해물질 이슈화, 화장품 미세플라스틱 사용 금지 같은 일들을 해낸 분. 현재는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에서 일하고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을 운영하며 쓰레기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다고. 화장품, 세제, 샴푸, 심지어 샤프심마저도 '껍데기'는 팔지 않고 '알맹이'만 파는 상점이라는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고금숙 활동가가 발표한 책들을 찾다가 발견한 이 책에는 쓰레기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담겨 있다. 


저자에 따르면 플라스틱 사회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하루 한 가지씩 365일 정리하기'나 '00가지 방법'처럼 심플한 해결책이 아니다. (28쪽) 원인은 정부와 기업에도 있는데 개인의 노력과 수고만 강요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책에는 텀블러 사용하기, 친환경 제품 사용하기처럼 개인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 외에 시민 참여 모니터링, 직접 행동(플라스틱 어택), 마이크로 시위(편지 쓰기), 청원운동, 소송 및 주민투표 등 단체 혹은 개인 차원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이 자세히 나온다. 저자는 실제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거리에 버려진 테이크아웃 컵을 주워서 매장에 되돌려주는 플라스틱 컵 어택을 기획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테이크아웃 컵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눈으로 알 수 있었고, 어택 참가자들과 서명 운동을 벌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에게 전달해 2020년 일회용 컵 보증제 법안 통과(2022년 시행 예정)라는 성과를 이뤘다. 


쓰레기 과다 사용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관련이 있다. "전날 밤에 시키면 일회용 포장재에 둘둘 싸여 몇 시간 만에 도착하는 새벽 배송을 유통 혁신이라고들 한다.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엔 빨리빨리 물결 위에서 이룩한 나쁜 혁신이다." (44쪽) 빨리빨리 문화도 잘못이지만,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일 끝나고 마음 편하게 장 보고 쇼핑할 여유가 없는 노동 환경 또는 사회 시스템이 문제의 근원인 것 같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실패자 취급하고 더 많이 욕망하도록 부추기는 매스 미디어와 인터넷,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물건도 사람도 일회용품 취급하며 오로지 '빨리'만 사고파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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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THICK - 여성, 인종, 아름다움, 자본주의에 관한 여덟 편의 글
트레시 맥밀런 코텀 지음, 김희정 옮김 / 위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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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궁금했는데 이유를 알고 나니 이보다 이 책의 주제와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제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트레시 맥밀런 코텀은 어려서부터 몸이 '두툼하다(thick)'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흑인들에게 몸이 두툼하다는 말은 비난이나 지적이 아니다. 이들은 살집이 많고 풍만할수록 매력적이고 아름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다르다. 특히나 여성들은 얼마나 말랐는지가 곧 미의 척도이기 때문에 가슴이나 엉덩이를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에 약간의 살집이 있기만 해도 비난거리가 된다. 이는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 살고 있는 저자에게 이중 제약이 되었다. 흑인 남성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두툼한 몸매를, 백인 여성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깡마른 몸매를 가져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였다. 


저자는 대다수의 흑인 여성들이 생애 전반에 걸쳐 이런 식의 문제 - 흑인 집단과 여성 집단에게 우호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성별과 피부색 때문에 결국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어느 쪽과도 완전히 합일되지 못하는 - 를 겪고 있으며, 이는 흑인 여성들이 단순히 연애나 결혼 시장에서 비(非) 선호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끊임없이 차별받고 무시되는 문제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여성들이 법적, 정치적, 경제적 도전 없이 주장할 수 있는 자산은 아름다움뿐이다. (중략) 아름다움은 바람직한 자본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한 성별에 대한 억압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아름다움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의지에 반하여 그들을 제약한다. 아름다움은 돈이 들어가고 돈이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은 식민지화하고, 상처를 주고, 고통스럽고, 절대 만족을 모른다." 


가장 끔찍한 건 사람 목숨이 달린 의료 현장에서의 차별이다. 실제로 저자는 임신 당시 백인 환자가 대부분인 병원에 갔다가 의료진으로부터 적절한 케어를 받지 못해 아이를 유산한 경험이 있다. 남성과 백인에 의해 아름다움을 평가받을 때만 유의미한 몸, 임신하고 출산할 때조차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몸을 가지고 사는 흑인 여성들의 삶을 보다 깊이 알 수 있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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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0-1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종차별에 대한 이런 관점도 있군요. 사실상 차별이란건 하나에서 시작한듯 보이지만 실제 차별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란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키치 2021-10-12 08:01   좋아요 1 | URL
˝사실상 차별이란건 하나에서 시작한듯 보이지만 실제 차별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좋은 말씀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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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초판이 나온 책을 2021년 새로운 판형으로 읽었다. 사진관, 공중전화, 인터넷 동호회, 불법 복제 시디 등 시대의 흐름이 느껴지는 소재들이 종종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신선하고 놀랍도록 재미있다. 불륜, 섹스, 폭력 등 독자에 따라 불편하게 느낄 만한 소재도 나오는데, 이 책 이후에 김영하 작가들이 발표한 작품들을 거의 다 읽었기 때문에 불편함보다는 후속 작품의 원형을 발견하는 재미가 컸다. 


표제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와 <흡혈귀>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면서도 생존에 대한 압박 때문에(혹은 그 핑계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자기 파멸 내지는 혐오에 치닫는다는 점에서 <옥수수와 나>를 연상케 했다. <흡혈귀>와 <사진관 살인사건>은 탐정 혹은 형사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고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아랑은 왜?>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상구>는 삐끼라는 기존 한국문학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인물을 통해 사회 문제를 환기하는 성격의 소설인데, 이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삶을 그린 <검은 꽃>이나 남파 간첩의 이야기를 그린 <빛의 제국> 등과 이어진다. 불법 복제 시디를 만들어 파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바람이 분다>는 최신 IT 기술의 등장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그린다는 점에서 <퀴즈쇼>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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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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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생애는 다른 예술가들의 생애보다도 더욱 애잔하게 느껴진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 봤는데 가장 큰 이유는 미술 작업의 특성상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고 외부와의 접촉이 적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21번째 책 <페르메이르>를 읽고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페르메이르. '북구의 모나리자'로 칭송받는 <진주 귀고리 소녀>를 비롯해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델프트 풍경> 같은 명작을 남겼지만, 정작 그 자신은 평생을 태어나서 자란 고향인 델프트에서 보냈으며 그나마도 장모의 집 한쪽 구석에 위치한 비좁고 어두컴컴한 작업실에서 지냈다. 작업 속도가 워낙 느려서 일 년에 두세 점 정도를 겨우 완성했고, 금보다도 비싼 푸른색 물감을 선호한 탓에 작품의 단가가 비쌌다. 열한 명의 아이를 키워야 해서 늘 돈 걱정에 시달렸고, 대가족이다 보니 수도인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재능과 노력에 걸맞은 부와 명예를 누리지 못한 채 43세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페르메이르의 작품에 실내에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건, 페르메이르 자신이 주로 실내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드물게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이 두 점 있는데 <지질학자> 속 남성의 시선은 창밖을, <천문학자> 속 남성의 시선은 지구의(지구본)를 향해 있다. 이는 페르메이르 자신이 밖으로 나가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게 아닐까. 오래전부터 페르메이르를 좋아했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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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0-1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르메이르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게 거의 없다고 하던데 이 책에서 어떤 식으로 쓰였을지 궁금하네요. 제가 오늘 읽은 책에서 본건데 히틀러가 페르메이르의 저 표지 그림을 그렇게 좋아했데요. 전쟁의 패배가 가까워지자 비밀장소에 은닉해 영원히 소유하려고까지 했다는데.... 페르메이르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통곡했을듯요. ^^

키치 2021-10-12 07:59   좋아요 1 | URL
이 책에도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히틀러의 사랑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정확하게 알고 계시네요! 저자가 직접 페르메이르의 고향에 가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이라서 그런지 내용이 생생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바람돌이 님과 이야기 나누니 참 좋네요. 덧글 감사합니다 ^^
 
환괴지대
이토 준지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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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호러 만화의 대가 이토 준지의 단편집이 나왔다. 제목은 <환괴지대>. 장례식에서 유가족 대신 울어주는 여자를 의미하는 '곡녀'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곡녀 고개>를 비롯해, 여자 미션 스쿨을 배경으로 여자들의 질투와 분노를 그린 만화 <마돈나>, 연인과 함께 후지산 밀림으로 들어간 남자가 겪게 된 기이한 일을 그린 만화 <아오키가하라의 영류>, 꿈으로 이어진 두 남자의 끈질긴 인연을 그린 만화 <꿈결> 등 총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후기에 따르면 이번 단편집은 이토 준지가 최초로 만화 앱(LINE 만화)에 연재한 작품들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 만화 앱 연재가 잡지 연재와 다른 점은 페이지 제한이 없다는 것. 덕분에 잡지 연재를 할 때처럼 여분의 장면을 쳐내며 페이지 수를 줄이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에 출간된 단편집에 비해 작품 한 편 당 페이지 수가 많고 내용도 훨씬 풍성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네 작품 중 어느 하나가 덜 좋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네 작품 모두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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