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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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겨보는 웹툰 중에 <왕 그리고 황제> 라는 웹툰이 있다 . 정이리이리 작가의 작품인데 , 발상이 아주 발랄 기발하다 . 역사는 흔히 그 자 체로 스포일러라고 우스갯말을 하곤 하는데 이 작가는 그 뻔함에 변화를 타임슬립이나 공간이동으로 주지 않고 원래의 인물 속에 다 른 인물이 빙의되는 형식을 취한다 . 

 

우리 역사에서 태종을 고종으 로 고종을 태종으로 서로 영혼 교환하듯 겉모습만 유지시키고 속은 다른 인물이 활약하는 시대상을 그려낸 거다 . 때는 고종이 ( 물론 가상이다 ㅡ 태종이 ) 북양대신 리홍장으로부터 서신을 받고 영국과 미국등의 나라와 교류하여 노서아 ( 러시아) 와 일본을 견제하라는 조언을 듣는 이이제이 편 . ( 웹툰 39화) 그 보다 앞서서는 고종이 일본보다 선수를 쳐 재교섭을 맺는 과정을 보 여 주는데 거기서 서계에  유리한 조항을 넣으려는 회차( 22화)가 있어 아주 통쾌하게 본 기억이 있다 . 물론 뜻대로 되지않아 리홍장 의 서신까지 오가는 상황이 된 걸테지만 .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 좀 뜬금없게 보이겠지만 이 가토 요코 교수의 역사 책이 단순한 역사서가 아닌 법의 이야기이기 때문 이다 . 지금까지 역사책이라고 하면 우린 각각의 연대에 주루룩 나열된 인물과 나라 , 그 나라의 군대 이동과 승패에 관해서만 뻔히 아 는 이야기를 정말 교과서처럼 들어왔었다 . 

아닌 말로 이 책의 차례만 봐도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에 쓰인 각 전쟁의 기록만 대충봐도 견적이 뻔한 교과서가 연상되었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 , 세상에 역사의 관점을 이렇게 달리 볼 수 있다니 ! 왜 이렇게 재미있게 쓴 역사책을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재미없게 표현해 놨을까 ! 하고 무척 놀랐다 .

역사책이니 그렇다 고 하면 할 수 없지만 가토 요코 교수는 부러 강 의를 통해 나눈 주제를 가능한 그대로 우리에게 전하려고 애를 쓰 고 있었고 그것은 전쟁으로 얻는 , 혹은 얻을 각국들의 실리 , 즉 상 법 , 민법을 구체적 으로 어떻게 변화시켜 근현대에 이르렀나 하는 걸 요목조목 알려주고 있었다 . 

전쟁이 상대국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하는 단순한 질문을 던져 학생들로 하여금 계속 문제를 주지시키는 점 , 전쟁이란 상대국의 헌법을 바꾸는 것이라는 이야기 ( 장 자크 루소 ㅡ본문 46  )는 정 말 흥미로웠다 . 
' 역사는 수다 . 정치는 수천명이 호소한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 수백만 명 정도는 돼야 비로소 움직인다 ' 고 한 블라디미르 레닌 ( 본문 37 ) 
그를 뒷받침하듯 각 국력 비교 그래프까지 ( 인구 , 상비군 , 전투기 , 주력함 , 구축함 , 잠수함  ㅡ 연합국, 삼국동맹 , 미국 , 소련 ,1931 ~1945년 ) 보여 준다 . 

세법 , 돈의 흐름 , 각국의 이익을 꾀하는 관심거리가 그 시대에 무 엇이었는지 다시 보게된 책이기도 했다 . 지금까지 이런 역사책은  없었다 . 이런 관점으로 역사를 이야기한 선생도 없었다 . 이런 주제로 역사를 배우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 전쟁사하면 감히 재미있다고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 이 책은 재미있다 . 한마디로 신박하다 . 올 해 첫 역사책으로 넘 즐겁게 읽어서 기억에 두고 두고 남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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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8-01-20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헌법에 대해서 암기로 외웠는데...
헌법은 그 나라의 정체성 그 자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됩니다..
읿몽이 헌법에 천황을 명시해 놓응 것처럼 말이지요...

[그장소] 2018-01-21 09:02   좋아요 0 | URL
그런 일본의 헌법 구성이 전정후엔 연합군 총사령군에 의해 미국의 , 그것과 흡사해 진다는게 넘 놀라웠어요 . 그 영향이 우리나라에는 안 미쳤나 ,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고요 .
 
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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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 ㅡ 로런 그로프 , 정연희 역 , 문학동네

 

  다른 이들의 삶은 파편들처럼 한데 모아진다 . 하나의 분리된 이야기를 비추던 조명이 어둠 속에 머물러 있던 또하나의 이야기를 밝힐 수 있다 . 뇌는 기적을 이룰 수 있다 .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피조물이다 . 파편들은 제 힘으로 한데 모여 전체를 만든다 .
( 본문 561 쪽 )

 

 

   이 책엔 한 사람 , 한 사람 , 한 남자 , 한 여자의 인생이 송두리째 들어있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결혼이라는 행위로 묶인 두사람의 결합된 삶이 ,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에 매 장을 넘길 때마다 압축된 폴더를 열듯 운명과 분노를 읽다보면 한 사람에게 배당되는 인생 총량의 길흉화복이란 , 참으로 공평하게 신이 인간에게 내려주는 인생의 달란트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만다 .

   처음부터 말했듯 책의 반은 예정된 수순처럼 너무나 뻔했지만 , 또  그것들이 왜 거기있는지 모른채 읽어내려 가야 했지만 남은 책의 반 ,  이후부터 마지막까진 그것들이 왜 거기 있어야 했나를 차근차근 꺼내 우리에게 보여주므로 마치 누군가의 인생을 슬라이드 필름에 넣고 돌려 보는 것 같았다 .

 

   그래서  분노 편이 너무 압도적이다보니 앞의  운명 편이 없었다거나 조금 축소된 채로 발표가 되었데도 어느 정도 상상으로도 이해가 가능한 지점에 있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

 

   그러니까 운명에 크게 실망 할수록 분노에 더 뜨겁게 반응하게 된다 . 그렇기에 어쩌면 반대로 분노의 편에 실망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 그렇다면 역시나 운명의 편에서 깊게 동조를 하지 않을까 ?  사랑을 경험해봤던 이라도 , 혹은 아직 사랑의 경험이 없어 운명이라거나 , 사람에 대한 배신이나 분노가 이해 불가의 미지 영역에 있는 사람이라도  이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같은  부부를 애틋하게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단정마저 마구 내려버리고 싶어진다 .

 

   단적인 예로 마틸다의 생에 있어 태양같은 존재인 로토와 , 로토에게 있어 한 점 의혹없이 수많은 사랑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사랑으로 마침표를 찍게 한 확신의 여신이자 달과 같은 마틸다 . 겨울의 추위가 있어 따듯함을 갈구하게 되고 , 여름의 뜨거움에 있어 시원함을 갈망하게 되듯이 서로를 희구하게 된 젊음들 .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마지막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

 

   삶의 이면들을 잔뜩 가진 비밀스런 사람들 . 그건 로토는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그가 가진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고 , 그도 모르는 사이 비밀이 만들어져 있었다 . 좋은 환경이 있었던데 반해 그를 스쳐지나간 여자들의 과거는 불행해졌다 . 대체로 사랑의 뜨거움에 불행해졌다 . 특히 로토의 어머니와 연관되면 더 그렇게 되었다 .

 

   그리고 정반대의 환경을 가진 마틸다는 좀더 밝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로토를 희망했고 , 그 희망은 로토의 어머니 앞에서 꺽일뻔 했지만 그녀는 대립하는 마녀들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그래서 로토와 마틸다는 가난한 청춘을 보내야 했다 .

   누구보다 능력이 출중한 청춘이었던 이들은 젊음을 그렇게 애쓰느라 지쳐가기도 한다 . 그리고 로토에겐 늘 껌처럼 달라붙어 있는 친구들 몇이 있는데 , 그 친구들 역시 비밀을 가진 친구로 어릴 때 누이가 로토의 아이를 낳고 우울증을 앓다 자살한 것을 로토에겐 사고사로 말하고 계속 로토의 곁에 머물러 있는 친구가 있고 , 그 외에 여전히 로토를 사랑하지만 마틸다를 어쩌지 못하는 여자친구들이 언제고 기회가 되면 마틸다 자리를 노리며 오랜 친구들 노릇을 하고 있다 . 하지만 늘 자신만 의식하는 로토는 다른 사람의 삶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 또 누구도 그에게 그늘의 삶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 그는 쇼윈도 안에 장식된 표본처럼 보기 좋게 있어야만 한다 . 

 

   그런 그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안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싶다 . 그가 몰랐기에 마틸다는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 내내 침묵을 비밀이 아니라는 , 거짓이 아니라는 자기 위로를 끌어 안고 , 곁에서 언제든 위협해 오는 로토 주변사람들의 뾰쪽함을 기꺼이 감수해 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

   로토가 연극배우에서 희망을 접고 극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성공하며  , 또 나중에 그가 알게된 진실 때문에 충격으로 죽은 후에 밝혀진 건 , 그를 극작가로 이끈 초기작을 빼곤 대부분은 마틸다가 손을 댄 것이라는 사실 역시 무겁고 무서운 진실이고 로토가 모르는 기만이었다 .

 

   그녀의 과거가 불행하고 어두웠다는 건 사실 나에겐 별로 충격을 주지 못했다 . 반전처럼 준비된 그녀의 불행 , 그 일들이 그녀를 로토에게 보내는 추진력이 되고 , 마침내 로토가 마틸다의 운명이 되고 , 그녀 자신을 옭아매는 것이 되었다는 게 나에겐 오히려 충격이었다 . 그녀가 얼마나 능력있는 여자인가 생각하면 , 그녀가 소진한 많은 에너지가 아까워 내가 다 안타까웠다 .

 

   그러면서도 이율배반처럼 그 이유 역시나 알 수 있었다 . 그녀가 무얼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는지를 ... 그녀에게 드리워진 유년의 그늘은 얼마나 힘이 쎈가 . 과거의 힘은 얼마나 뾰족하고 날카롭길래 숨겨지지 않고 세월을 20여년이나 보내고도 튀어나와 상대를 찌르고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멎게하나 . 그런 생각을 했다 .

 

   그러므로 읽어라 , 읽고 또 읽고 계속 읽어가라 . 마침내 분노와 마주칠 때까지 운명을 읽어라 . 예정되고 뻔한 운명에서 실망하고 왜 이런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냐고 책을 앞에 놓고 질문하고 답답해 하면 할수록 분노 앞에서 마주치는 세밀한 장치들에 전율하게 되고 말 것이다 . 그리고 마침내는 어째서 미국 전 대통령이 이 소설 한 권에 극찬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고 말 것이다 . 

 

   숨이 멎도록 몰입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 이토록 뻔한 스토리 임에도 불구하고 , 이 작가의 차기작이 벌써 기다려질만큼 ...  아 , 아 , 읽어보지 않으면 이 기대감 , 이 고양감은 알 수 없다 .

 

 

 

 

 

 

결혼 , 서로 다른 부분들이 만나는 결합 . 로토는 소란스럽고 빛으로 가득했다 . 마틸드는 조용하고 신중했다 . 로토 쪽이 더 나은 반쪽 ,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쪽이라고 믿기 쉽다 . 그가 지금껏 경험한 모든 것이 마틸드를 향해 차곡차곡 쌓여간 것은 사실이다 . 그의 삶이 그녀가 나타난 그 순간에 대비해 그를 준비시키지 않았다면 , 그들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본문 16 쪽 )


" 결혼이란 건 거짓말투성이야 . 대체로는 친절한 거짓말이지만 . 말하지 않는 거짓말 말이지 . 날마다 배우자에 대한 생각을 입 밖에 내어 말한다면 결혼생활을 짓밟아 뭉개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야 . 그애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단다 .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 "
( 본문 313 쪽 )


그때조차 그녀는 이 세상에 기꺼이 , 같은 일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신들이란 우리를 엿 먹이기 좋아하는 존재들일 뿐 .
( 본문 351 쪽 )




슬픔은 내면화된 고통 , 영혼의 종기다 . 분노는 에너지로서의 고통 , 갑작스러운 분출이다 .
( 본문 460 쪽 )


그녀의 삶이 크게 베여나간 자리들은 남편에게 흰 공간으로 남았다 . 그녀가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말한 것과 산뜻한 균형을 이루었다 . 하지만 세상에는 진실이 아닌 말과 진실이 아닌 침묵이 있었고 , 마틸드는 절대 말하지 않음으로써 로토에게 거짓말을 한 것뿐이었다 .
( 본문 497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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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1-19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예스24 중고샵에 가니까 있더만요.
<천둥과 꿀벌>도 있고.
사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넘 두께워
인연이 있으면 나중에 또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히 내려놓고 나왔습니다.ㅠ

[그장소] 2018-01-20 05:52   좋아요 1 | URL
중고샵 ~ 전 아직 한번도 못가봤어요. 부럽~ 부럽~ 가까운데는 없거든요.
천둥과꿀벌도 그렇고 두께에 비해 읽는 속도는 순식간예요!!^^ 나중에 ~~ 보시면 아시겠지만요!^^

깐도리 2018-01-20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가지고 있는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 미루고 있네요...
천둥과 꿀벌은 도사관에서 ㅎㅎㅎ

[그장소] 2018-01-21 08:57   좋아요 1 | URL
의외로 이 책 반응은 50대 이상에서 먹히더라고요 . 그 이유를 이제는 이해가 좀 됐고요 . ㅎㅎ 저는 넘 재미있게 읽었지만 서둘러 읽으시라 권하고 싶진 않아요 . 정말 천천히 만나도 아깝지 않은 소설이니까요 . ^^

2018-02-09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9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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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그 겨울의 일주일 ㅡ 메이브 빈치 , 정연희옮김 , 문학동네


언제가 직장 회식 자리에서 사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하던 그 말은 참 인상적이었다 . 자식을 키워서 행복을 맛보는 순간은 생애 10 % 도 안되지만 , 그 순간이 주는 기쁨은 남은 고생 90 %를 잊게할 만큼 매력적이라는 말 . 

그 겨울의 일주일이란 제목을 생각하다보니 그런 생각까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우리에겐 춥고 혹독한 계절 , 겨울 . 

그 겨울을 부러 일주일이란 시간으로 한정 잡은데는 특별한 의식과도 같은 날들이기에 그런게 아닌가 했었는데 , 다르게 생각을 해보니 긴 인생의 10 % 같은 행복을 말하는게 아닐까 싶어졌다 . 그럼에도 찬란한 여름이나 한적한 가을이나 나른한 봄이 아닌 겨울인 이유  , 그건 아마도 이 글 속 사람들의 삶을 이루는 결핍을 나타내기 위해서 , 또 일주일은 그 결핍중의 만족감이나 , 휴지기 같은 시간이 절실하기 때문 아니었을까 생각을 한다 . 어쩌면이지만 우리같은 범인 (凡人)들의 삶이 대부분 그런 겨울이 아닐까 , 평탄이라고 하긴 오히려 드문 (일반화의 오류인가 ?)......

 

달리 생각하면 겨울은 내내 다음 봄을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



사실 , 처음 읽었을 때는 내 스타일의 소설은 아니군 하면서 문장으로 몰입이 안되 무척 답답했었다 . 계속 겉만 읽는 느낌 . 도무지 속으로 들어갈 수 없게 하는 거리 같은 게 잔뜩이었다 . 그럴 수 밖에 없는건 치키라고 불리는 사람의 인생으로 시작되는 첫번째 챕터부터가 공허하고 쓸쓸했다 . 사랑을 믿고 모험을 떠난 청춘은 좋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부분만 그녀가 대단하고 자유롭지 내면은 리거의 어머니인 눌라와 퍽 흡사할 것 같았기 때문에 아무리 스톤브리지의 게스트하우스가 착착 진행되어 완공이 잘 된다 해도 그녀 자신의 내면에 부는 서늘한 바람은 그자리에 그대로 일 것만 같았다 . (뭐 ,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

 

그렇다고 그녀의 인생 자체가 해빙기없는 빙하기의 삶이었다 말할 수 있을까 ? 해가 반짝 드는 어느 겨울의 봄 같은 날도 있듯이 ... 표면으로 보여지기엔 그녀의 삶이 공허할 것만 같아도 꽤 담백하고 단정하지 않은가 ? 삶에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인생같기도하고 ... 뭐 20년의 세월을 휙 빠르게 돌리는 데선 , 참나 작가 성격 한번 화끈하시네 싶어서 웃음도 났다 .



이 소설 전체를 다 읽은 것이 아니니 결말을 알 수 없다 . 동화 속처럼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한데도 나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 그치만 쉽고 빠른 문장으로 느낀 ,  자신이 아닌 타인을 불러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 보기하는 이 방식의 소설은 ( 그러니까 모두가 증인이나 알리바이 제공자처럼 필요한 서로들 , 서로를 증명한다는건 그만큼 가깝다는 또다른 증명 , 그러니 그녀는 외롭지 않았을 것같기도...) 

이 책이 왜 티저북으로 나왔는가를 수긍하고 이해하게 만든다 . 영리하고 꾀바른 소설이란 생각은 ,  책을 덮고 한참 한참 지나서야 남들 다웃고 난 공간에 끼어드는 박자느린 웃음처럼 떠올랐다 . 전체를 다 보면 더 이 탁월한 꾀에 만족감이 더 들려나 ? 아 , 진짜 궁금해진다 . (그럼 , 본편을 봐!)

지금까지 그녀를 살아 있게 한 믿음은 이것이었다 . 결국 그녀의 나이 스물일 때 스토니브리지 사람들은 모두 틀렸고 자신은 그들보다 더 현명했다는 것 . 그녀의 결혼생활은 행복했고 뉴욕생활은 바쁘고 성곡적이었다는 것 . 그는 떠났고 그녀는 캐시디 여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닥을 닦고 욕실을 치우고 식사를 준비하는 신세가 된 사실이나 , 일 년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것만 빼면 돈을 아끼느라 휴가도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되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 .
그녀에게는 꾸며낸 그 삶이 보상이었다 .
(본문 28 쪽 ㅡ 치키 )

그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 갓 태어난 병아리들을 사왔는데 글로리아가 사냥 기술을 발휘해보고 싶어하는 바람에 그것들을 지켜줘야 했다는 내용을 썼다 . 감자밭을 일구기가 정말 힘들었다고도 썼다 . 건축업자가 담벼락 정원을 만드는 비용을 너무 많이 청구해서 자신이 직접 하나씩 돌을 쌓아올렸고 모종도 재배했다고 썼다 . 그가 뭔가를 심으려고 구멍을 팔 때마다 글로리아가 그 안에 들어 않아서는 그를 심각하게 쳐다보더라는 내용도 썼다 . 어쨌거나 지금은 관목이나 화초가 벽에 붙어 자라고 있었다 . 그런 식물을 이스팰리어라고 불렀다 . 그들은 깍지콩 , 호박 , 온갖 샐러드용 채소와 허브도 키웠다 .
그는 카멀 히키라는 예쁜 여자애에 대해서는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
(본문 79 쪽 ㅡ 리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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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 문학동네시인선 100 기념 티저 시집 문학동네 시인선 100
황유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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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몸이 둘의 마음을 앓는다

 

   나는 사랑을 유예한다 . 잠든 사람이 반드시 꿈을 꿀 거라

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꿈을 꾸는 사람은 대부분  잠들어 있

을 거라고 믿는다 . 살아 있지도 않는 내가 잘사냐고 너에게

묻고 , 그러니 대답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 덜 아프

다는 것이 나아졌다는 것으로 착각되는 일 .  번화한 도시의

우울한 홀로 . 이 세계는 온종일 밝다 . 그 안에서 웃는 사람

은 우는 사람과 거의 동일하다 . 나의 병명을 아무도 모른다 .

 

(본문 24 쪽)

 

문학동네 시인선 100 ㅡ 구현우 ,  산문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ㅡ 중에

 


 

 

살아 있지도 않는 내가 잘사냐고 ㅡ

묻는다는 말에 ,

꿈꾸는 이들은 모든 잠든 것ㅡ

이란 말에 

눈뜨고 , 살아 있으면서도

꿈을 잃은 사람들은 ,

뭘까 생각했어 .

그러니 유예하는 거라는 변명을 수긍할 밖에

오늘 나의 달력은 무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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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01-08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대답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고.. 상대방에게 마음으로 끊임없이 물었던 적이 있었어요

당신은 다 괜찮냐고.?

[그장소] 2018-01-08 22:59   좋아요 1 | URL
보통 다들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 돌아올리 없는 질문과 답이지만요 .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허공에 뱉죠 . ^^

꿈꾸는섬 2018-01-09 0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장소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시, 참 좋네요.

[그장소] 2018-01-09 17:1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 꿈꾸는 섬님 ~^^ 새해 복 많이 북 많이 !! 입니다~

2018-01-09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9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9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8-01-11 00:19   좋아요 1 | URL
동반 3년 커플였던가요? 우리 ?? 애정도 3년이면 가문다는데...ㅋㅋㅋ 우리는 수원이 넉넉한 곳에 있나봐요~ 오래 갑시당~
스누피 .. 전 일전에 이시구로 , 북스피어 머그는 챙겼는데 .. 머그가 넘 많아서 박스안에서 자고 있어요! 그런데 울 님은 직접 장만까지 !! 으헉 ~ 굿즈 마니아는 따로 안뽑나요?ㅎㅎㅎ

2018-01-13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8-01-14 08:17   좋아요 0 | URL
관련검색어 ㅡ에 한참 뭐지? 하고 생각을 했어요 . 연관검색어 ㅡ걸려드는 잡다한 것들 이라는 의미일까요 ? 재미있네요 ! 프레이야 님도 새해 복 많이 많이 받고 계신가요? ㅎㅎㅎ 그러시면 기쁘겠네요~
친구와의 일 ... 모쪼록 잘 풀리시면 좋겠고요 . 정말 인생에 꼭 같이 가야할 친구는 시간이 지나면 또 아무렇지 않게 꽁하던 순간들을 스륵 풀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 ^^

프레이야 2018-01-14 10:47   좋아요 1 | URL
그죠 그런 거 같아요. 연관검색어 맞아요. 그런 의미 ㅎㅎ 아무튼 즐거움 가득한 날들이길요.
 
상속 - 2018년 제63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김성중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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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상 속 ㅡ 김성중 , 2018년 제 63 회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KBS라디오 문학관으로 단편들을 듣는다 . 책을 몇권이나 쌓아 놓고 활자에 집중이 안되는 며칠이 이어진다 . 헛손질이나 헛발질처럼 텅 비어 있는 곳을 할퀴는 느낌 . 세 권의 책을 들쑤시다가 포기했다 . 억지로 읽은 책도 있었지만 그런 상태로는 읽은 맥락조차 정리를 못한다 . 왜 이렇게 방황하나 싶다 .

E-BOOK 에서 팟캐스트로 , 별 관심도 없던 TV 종영 드라마로 공간을 떠돌 뿐이다 . 그러다 지난 해 말에 라디오 문학관에 올라온 김성중 작가의 < 상속 >을 기억해 내곤 듣기 모드로 전환했다 . 몸은 일상의 일로 도피하면서도 귀는 그쪽으로 열어 둘 수 있어서 마지못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

마침내 < 상속 > 한 편이 끝나고 잠시 숨을 골랐다 . 지금은 책 속 문장과 라디오문학관의 단편들 속 문장을 퍼즐처럼 맞춰보는 시간 . 라디오 문학관은 말그대로 단편을 연속극처럼 재연하기에 문장과 똑 맞아 떨어지진 않는다 . 행간을 건너 뛰고 , 열과 줄을 바꾼 글의 짝을 맞춰 찾듯이 그런 시간을 갖느라 겨우 책장 속에 눈을 박아둘 수 있었다 .

소설 속에선 기주 언니와 선생님이 화음처럼 들리도록 다자이 오사무의 ' 사양 ' 속 문장에 겹쳐 긋던 밑줄처럼 나는 라디오 문학관의 상속과 내 책 속의 상속을 고르고 펴는 일을 하는 중인 셈이랄까 . 그렇지만 내가 앓고 있는 이 허무를 상속이 뭔가 채워주진 못한다 . 더 반짝이는 '상속'으로 다음 선을 잇지도 못한다 . 하지만 겨우 알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대체로 신이 의미도 모르게 낭비처럼 퍼부어주는 재능에 대한 의문문만은 어쩐지 내가 익숙하게 알던 세상의 것이었다는 작은 깨달음이다 . 그것만이 유구한 진실의 낱말처럼 혀 밑에 사파이어로 자리한다 . 아릿하고 투명하게 .

소설에서 기주 언니였다가 나 ' 진영 ' 이었다가 결국은 작가 김성중이 말하는 읽고 쓰는 인간에 대한 고찰이 그들이 보낸 찬란하고 아름답던 여름나기로 독백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 작가는 어느 날에 익숙하고 가깝던 이들을 떠나보내고서야 다음 문장으로 마침내 이륙할 수 있었을까 ?

정말로 지독한 일을 겪으면 그에 대해 입을 다물게 되는 법이다 .
마찬가지로 진영 또한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함구했다 . 시시콜콜 일상을 털어놓던 아이가 입도 떼기 싫을 만큼 끔찍했구나 , 짐작할 뿐이다 .


" 이렇게까지 힘든데 고통이 글자로 변하지 않아서 화가나요 . "
진영은 여전히 책 속 문장처럼 말하는 버릇이 있다 .

" 불행한 건 괜찮아요 . 고통스러운 인간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생각에 매달리는 법이니까 . 저는 언제나 불행을 숭상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 어릴 때는 불행이 모자란 것 같아 불행했을 정도로 . "
" 그만큼 네가 평탄하게 살아왔다는 소리지 . "
" 막상 내 처지가 되고 보니 그런 개소리는 집어치우게 되더라고요 . "
(본문 13 쪽 )

요즘의 문제는 생각과 감정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 분노는 분노로 된 생각일 때가 많았고 , 생각을 파고들다 보면 화가 치밀거나 눈물이 흘러나와 중단된다고 했다 . 이렇게 정신없이 상태가 변하는 통에 그럴싸한 표현하나 걸려들지 않고 , 그저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하는 나날이라는 것이다 .
진영은 불행을 극복하기보다 거기에서 뭔가를 얻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 빌어먹게도 작가인 것이다 . 작가로 변해버린 것이다 . 이 애는 여전히 자신에게 몰두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본문 14 쪽 )

" 어떤 책을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어 . ‘ 여기서는 안전해 . ‘ 그러니까 왈칵 좋은 거야 . ‘ 안전 ‘ 이라는 말이 너무 정확해서 .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든 책을 펼치고 문을 닫으면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어 . "
(본문 17 쪽 )

선생님이나 기주 언니 같은 사람들에게 재능은 왜 있는 것일까 ?
선생님은 주목받는 유망주였지만 첫 책을 낸 지 2년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 가슴에 품은 수많은 이야기들은 밖으로 나갈 기회를 못 찾은 새들처럼 선생님과 함께 영원히 봉인되어버렸다 . 기주 언니의 재능은 분명했지만 나이도 환경도 받쳐주지 않았다 . 선생님이 돌아가신 이듬해 가출한 딸이 돌아와 보상을 요구했고 ,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날들이 시작됐으니까 . 이륙하는 데 성공한 언니의 비행기는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영원히 허공에서 맴돌고 있다 .

참으로 잔인하고 신비로운 일이 아닌가 . 아무리 참담한 슬럼가에도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아이들이 태어난다 . 인구가 많으면 그중 몇퍼센트에게는 반드시 예술적 재능이 발현된다 . 재능이 삶을 낫게 만들어주지도 않고 , 삶 쪽에서는 재능을 펼칠 기회를 주지도 않으면서 퍼부어주는 것이다 . 이런 재능은 대체 왜 존재하는 것일까 ?
(본문 27 쪽 )

발밑에 채는 무수한 파편들 , 사금파리의 연약한 미광 , 빛은 거기에서도 나왔다 . 일찍 죽은 천재가 쓰지 못한 다음 책 , 세월을 통과하지 못한 새태소설 , 잔업에 지친 회사원이 마침표를 찍지 못한 ‘야근‘ 이라는 제목의 소설과 대학생 습작품 속 뜻밖의 좋은 두 문장 , 요컨대 성공을 거두지 못한 모든 소설의 잔해가 거기 있었다 . 모래보다 작고 반딧불보다 약한 빛의 입자가 대지 위에 빛무리를 이루었다 .
(본문 35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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