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도연대 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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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백기도연대 ;풍  ㅡ 교고쿠 나쓰히코 , 이길진 옮김 , 솔 

제 2부 운외경 : 장미십자탐정의 의문


《바보들의 대행진》

세키구치의 다른 형제 격을 보는 듯한 모토시마 잔혹기 라고 해야겠다 . 이 인물이 이 글에서 첫 출연은 아니지만 암튼 모토시마는 교고쿠를 매우 매우 신뢰 두터운 경외를 가지고 대하고 또 그의 친구 에노키즈 역시 다른 의미에서 경외를 하는 인물로 거듭 나온다 . 세키구치가 무기력하게 사건들을 당한다면 이 모토시마는 어 , 어 ? 어! 하는 식으로 어떤 이해가 오기도 전에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 이번 사건은 하타 제철의 관계 조직 중하나 가가미 흥업이 이 전편 오덕묘 사건으로 피해가 크자 , 에노키즈를 상대로 영매 탐정을 운운하며 사기를 벌이다 스스로 잡혀가는 이야기다 . 

모토시마가 워낙 얼띠게 계속 궁지로 몰리기에 답답하던 마음은 교고쿠의 뼈있지만 차분한 대화로 어루만져 지고 , 결국은 시끄럽고 요란한 바보 등장 배경음인 와핫핫핫 ~ 하는 웃음 소릴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 바보가 걸려든 바보같은 일엔 더 큰 바보가 해결을 할 뿐이란 얘기 같아서 신나게 한바탕 웃었다 . 

간나즈키 영매 탐정사는 에노키즈를 골탕 먹일 생각에 빠져 스스로 단순한 함정에 걸린다 . 바로 본다 " 는 시각 정보와  본 것을 기억한다는 뇌의 기록을 착각하는데서 온 구멍이랄까 .  그에 대해선 교고쿠가 알듯 모를 듯 미끼를 꿰듯 설명을 해나간다 . 

바보는 순간 자신이 대단한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요란을 떨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못보고 마는 존재로 그려진다 . 아 , 바보 같지만 나도 마지막까지 이해가 둔하다가 에노키즈의 바보같은 이해 돕기로 알아들었다 . 그러니까 나도 간나즈키 나 , 모토시마 정도의 꾀 밖에 안된다는 걸 알게 된 셈이다 . 그렇지만 이 바보 타령이 어쩐지 유쾌하다 . 

" 인상이지요 . 한편에는 자못 나쁜 짓을 할 것 같은 넉살 좋은 인간이 있고 , 다른 한편으로는 쉽게 속으면서도 남은 절대로 속이지 않는다는 모자라는 인간이 있고 말입니다 ."
모자라는 인간 .
나를 가르키는 말이다 .
또 다시 새로 등장한 모독적인 말이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뇌리에는 소인이라거나 송사리 , 푼수라는 유사어가 잇달아 떠올랐다 .모두 나에게 어울리는 형용사다 .
마스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나는 모자라는 인간이기 때뮨에 의심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 범용하기 때문에 특이한 꼴을 당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어려움에서 벗어난다 ...
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ㅡ 본문 335쪽 ㅡ

어느 현장입니까 ㅡ
그 순간 얼빠진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얼굴을 붉혔다 .
오랫동안 전기공사 회사의 사원을 지낸 나에게 있어 현장이란 곧 일을 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 물론 간나즈키가 말하는 현장이란 살인 현장임에 틀림없다 .
ㅡ 본문 341 쪽 ㅡ

지금까지 그렇지 않던 내 가슴속에 호기심의 불길이 훨훨 타올랐다 .
그저께 내가 체험했던 일을 나는 반쯤 꿈속의 일처럼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이 장소가 눈앞에 있는 이상 ㅡ여기가 꿈속의 장소가 아니라면 ㅡ이 장소에서 일어난 일 역시 현실일 것이다 .
그렇다면 여기에는 나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 아닌가 .
그리고 여기에 나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나의 체험이야말로 진실이고 곤도의 체험은 허위라는 것이된다 . 즉 곤도는 거울에 비친 나의 허상이 될 것이다 .
ㅡ본문 343 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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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도연대 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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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판진 촌극의 마무리 ㅡ 가면을 찾아서 》

이전에 윤과 밤 산책을 하다 마주친 건물 창의 붉은 빛의 이유 ( 이유라면 이유일까) 가 그 건물이 ** 신당 이란 걸 알고 어쩜 , 어쩌면 , 그건 왜 생각 못했지 ? 하고 뜨악했다 . 이번에 도서관에 가다 발견한 그 건물이 가진 낮의 얼굴을 확인하곤 , 씁쓸한 느낌 . 
뭐랄까 그건 내가 평상시엔 보고 느끼지 않았어도 좋았을 특이함 같이 ,  산자들을 위해서 있기도 하지만 죽은 것들을 달래는 역할도 동시에 하는 그런 곳이니까 , 따지면 반대 편의 시립 도서관 역시 그 의미는 달라도 달래는 것의 측면에선 산자 나 죽은 자나 그들을 위하는 것은  비슷해 보인다는 점에서 도서관의 새로운 역할을 찾았다고 해야하나 ? 

작은 두 개의 산을 가로지르게 되있는 이쪽 근린공원과 저쪽 산 정상에 있는  ( 작은 산 두 개를 잇고있는 셈) 현충탑을 이으며 , 각  시립 , 도립 도서관이 둘러쳐 있는 동산의 정상에 뾰족하고 높은 예의 그탑이 있어서 역시 그것들은 전부 동시에 뭔가를 위해주고 달래주는( 탑의 역할 ㅡ뭔갈 기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세를 눌러 주기도 하는 ) 걸로도 나는 느꼈다 . 
시립도서관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 점집은 자신의 몸도 속해있는 작은 산 하날 반으로  갈라놓은 곳에 서로 대칭하듯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  가운데로는 신의 길처럼 오버브릿지가 놓여있는데 , 이 오버 브릿지와 현충탑을 직진으로 가로지르면 그 정상 밑으로 바짝 깎아 세운 듯한 계단 아래 ( 내가 가는 ) 도립 도서관이 나온다 . ( 으악 , 뿐만 아니라 이 도서관 바로 이어서 중학교 , 초등학교들이 바짝바짝 붙어있기도 하지!) 

탑에 서있는 인물들의 동상들을 생각하면 그들은 3 .1 절과 관련해 역사적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젊고 이른 나이에( 세상에나 학생들인거잖아!) 세상을 떠나 더 보고 알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는 걸 새삼 깨닫곤 이 주변 풍수랄지에 대해 묘하게도 , 어쩐지 나는 알게 모르게  신( 혹 , 공신 ? : 공부의 신 ^^?) 들의 공간을 빠져들어 갔다가 빠져 나오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 
아 , 그러고 보니 살아 있는 인간을 위해서도 죽어 뭔갈 전하고파하는 것들을 위해서도 제사랄지 그런걸 하지 않던가 ? 제사를 주도하는 이는 그에 맞는 역할극을 벌이면서 , 가면이지 ? 그래 , 가면이지 . 신이 들린다고 하는 건 ... 

이 백기도연대 , 풍 ㅡ편에서 보면 에노키즈가 하려는게 일반인들 ( 또 독자도 역시) 눈엔 장난이나 휘두름 같게만 보이기 마련인데 , 자세히 들여다 보면 주젠지가 대 놓고 이제 제령을 할겁니다 . 하듯 정색을 하지 않는 것일 뿐 그 역할은 같은 것이라는 걸 알게 한다 . 남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걸로 나오는 에노키즈이니 만큼 , 신관의 역에 말로만 전달하는 주젠지보단 훨씬 주변 시야를 크게 확장시켜가며 어르고 달래는 구석이 있구나를 이번 편에야 제대로 인지를 했다 . 
그러니까 바람이 불면 나무가 ,  잎사귀가 흔들리듯 일련의 사건들로 들썩여진 세상사를 두루 두루 에노키즈 만의 제령으로 유쾌하게 정리해가며 눌러( 놀아) 주는 그런 굿 판말이다 . 

해서 이 백기도연대 이야기는 한 편 한 편 독립적인듯 하면서 세 개의 스토리가 서로 앞 뒤로 맞물려 진행이 된다 . 이 번 책에선 모토시마 도시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기이한 사건에 호기심을 느껴 자꾸 휘말리는 소심하고 여린 시민의 여러 감정을 담은 작품 같았다 . 
평범하고 싶으면서 평범하다고 인정 받게 되는 사실이 은연중에 싫은 인간의 사소한 마음은 물론이고 크게 잘못 한건 없거나 그닥 사악하진 않은 우리 주변의 약한 모습이 그 약한 연결고리에도 크게 휘청이는 때를 봐 , 이게 너희들이야 하듯 알려주는 입장에 있는 , 기이한 인물이란 평을 반복적으로 듣는 에노키즈로 인해 묘한 쾌감을 얻게 했다 . 어차피 보통인 우리는 다 같이 모르고 다 같이 알고 , 다만 그럴 뿐이니까 .

또 일반적인 저주란 단어에서 우리가 받는 인상과 실제 저주라는 것의 차이( 물론 작가의 의식을 풀어 놓은 걸 테지만)를 설명하는 부분은 참 신선했다 . 왜냐하면 지금의 시대는 넘쳐나는 , 그야말로 정보( 카더라 통신이거나 찌라시 들을 통해 ) 의 쓰나미 속에 살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인데 . 관심이 없다면 의미 없어 보이는 정보 조각들이 누군가에겐 하나의 사건을 만드는 단서( 일테면 카피캣, 모방범 같은 사건!)로도 얼마든지 이용될 수 있다는 작은 충고 같기도 해서 였다 . 

그런 것들은 흔히 얼굴을 감춘 채 진행이되며 사건이 커질 수록 이름을 얻기도 한다는 점에서 보면 뭔가가 되고 싶은 인간 심리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 이 진부한 표현이라니!!) 파헤쳐 보이는 것 같아  읽어나갈 수록 섬짓함과 동시에 호쾌해지므로 이 작가의 책을 , 읽어나가는 복잡 오묘한 맛을 다채롭게 느꼈다 .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 . 알아 간다는 것 . 배워도 제자리에 그것들을 꿰어 맞춘다는 것이 갈 수록 쉽지않은 세상이고 보니 이런 걸판 진 한판의 굿놀이가 우리에게도 의식을 정화하는 입장에서 필요한게 아닐까 ㅡ 잠깐 그런 생각도 했다 . 이왕이면 유쾌하게 ! 

이렇게 복잡해보이는 심리트릭 ( 이건 느껴야 안다 . 말로 설명이 안되서 발췌문을 잔뜩 따왔다 ) 을 끝까지 몰고 가는 작가에 한번 ( 실은 매번!) 더 감탄을 했다 . 드디어 끝이 나는건가 ㅡ하면서도 아쉬웠다 . 너무 재미 있었기 때문에 . 그래 , 남의 굿판이니 그저 구경꾼으로 나는 재미있었던 거라고 ... 거기에 안심하면서 책을 덮는다 . 

아주 보통인 것처럼 행세한다며 곤도는 성난 얼굴을 했다 .
" 자기가 보통의 대표인 척하는 생각을 버려야 해 , 모토시마 . 자네는 아주 특이해 . 보통과는 달라 . 물론 나도 보통은 아니지만 . 그러나 결코 비범하지는 않아 . 보통이라는 것은 없어 . 그것은 환상이야 . 일반 대중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
ㅡ 본문 465 , 466 쪽 ㅡ

" 나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여 제삼자에게 작용하는 물건이나 사건을 저주라거나 축복이라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
" 아 , 그렇겠군요 ."
나는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
쉽게 말한다면 요컨대 마이너스의 결과를 초래하는 정보 조작이라 할 수 있다 .
이렇게 말하면 자못 무미건조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지만 , 그와 같은 단순한 구도 속에 딱 잘라 말 할 수 없는 생각이나 견딜 수 없는 기분 등 결코 단순하다고 할 수 없는 복잡기괴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움의 원인일 것이다 .
ㅡ본문 487 쪽 ㅡ

" 가면 ...이란 말입니까 ?"
" 가면이지 . 그 가면이 어쩌면 가면을 쓰고 있는 배우의 맨얼굴을 본뜬 것인지도 모르고 , 혹은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다른 사람의 가면인지도 몰라 . 또 연출을 위해 과장이나 장식이 가해진 것인지도 모르고 . 그러나 아무리 맨얼굴을 정묘하게 본뜬 것이라해도 사면은 가면이므로 맨얼굴과는 다를 것이고 , 어떤 식으로 연출된 것이라 해도 연출한 자의 계산대로 관객에게 작용한다고는 할 수 없어 . 배우 자신이 가면이야말로 맨얼굴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 . 그렇다면 가면 안에 억압되어 있는 배우의 맨얼굴은 배우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런 경우가 아주 많아 . 어떻든지 관객으로서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 마스다 류이치 ‘ 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가면 배우의 무대연기에 불과한 셈이지 . 그것이 바로 자네의 개성인 것일세 . 개성이란 개인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만들어지는 가면을 말하는 것일세 ."
ㅡ본문 581 , 582 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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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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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을 계속 되뇌면 그 말의 뜻이 어느 순간 흐릿해지는 순간이 온다 . 그러다 어느 순간 글자는 글자를 넘어서고 , 단어는 단어를 넘어선다 . 아무런 의미도 없는 외계어처럼 들린다 . 그럴 때면 , 내가 헤아리기 힘든 사랑이니 영원이니 하는 것들이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 나는 이 재밌는 놀이를 엄마에게 소개했다 .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
ㅡ 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엔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 그러다가 결국 의미가 사라져 버린단다 . 하얗게 .


ㅡ본문 중에서 ㅡ


최근 한 애니를 보다가 알아진게 있는데 , 이상하게도 몰입이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보면서도 왜지 , 왜 이렇게 와 닿지 않는거지 하는 고민을 했었다 . 나중에야 그 감정이 서로 밀고 당기는 감정 이란 걸 깨달았다 . 웃긴 건 애니 속 주인공 둘이 모두 지독한 몰입을 각자의 방식으로 하느라 사랑을 퍼주고 있는 상황임에도 정작 받는 사람은 그게 사랑임을 모른다는 사실이었고 ,  밖에서 극을 보는 나는 사랑을 인식하지 못하고 슬퍼만 하는 그들처럼 왜 그래? 했던 거였다 .  겉의 사랑만 보고 안의 사랑 , 사랑함으로 생기는 오해와 이해들을 그들처럼 몰랐다 . 아니 정확히는 그 감정을 잊었던 거라고 해야할까 ?

 

타인의 감정은 물론이고 자신의 감정조차를 모르는 편도체 이상을 가진 윤재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입장에선 오히려 제대로 된 이해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했다 .  사랑이란 감정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 부분이 내겐 죽어 있었다 . 내 안에 있는 감정도 그렇게 죽고 다시 살려지고 하는 걸 보면 우리가 이상 , 혹은 비정상이라 부르는 것들이 단지 우리의 편견 가득한 학습으로 무뎌진 한 부분 아닌가 하면서 .

 

곤 (이수)이와 도라 ㅡ 그 둘과의 만남은 필연적이면서도 극적이었다 . 곤( 이수) 은 보통 애들과 다른 윤재를 처음엔 괴롭히는 걸로 호기심을 표현하고 아무리 괴롭혀도 자기 힘만 빠질 뿐이란 걸 알고는 괴롭힘을 멈추고 친구가 된다  . 고립되지 않는 방향 ㅡ즉 학교를 선택하고 그 선택은 만남을 불러온다 . 사춘기랄 수있는 시기에 도라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녀를 알게 되고 그 애로부터 점차 주위의 모든 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바람 , 다른 냄새 ,  다른 색깔을 가지고 다가들며 그것들이 자신에게 보여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좁고 좁던 윤재의 세상도 그들 덕에 넓어진다 .  어쩌면 그의 뇌는 오랜 시간 배워서 축적된 학습으로 기능이 확장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보면 이야기가 무척 시시해지겠지 ?

 

엄마와 할머니의  지극한 정성에도 꿈쩍 않고 로봇같기만 하던 윤재가 드디어 감정의 물결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걸 본다 .  이쯤되면 경험이 선생이라고 할 만하지 않나 하면서 .  모성이라고 불리는 그 대단한 사랑으로도 일깨우지 못하던 부분을 , 때가 되니 알게된다는 건 이 소설에서 감동 부분을 맡고 있었겠지만 , 나는 역시 조금 억지스러움을 느꼈다 . 아 , 난 끝까지 괴물로 자라는 윤재를 기대한 걸까 ?  모르겠다 . 그 걸 .

 

처음엔  윤재가 무서운 괴물로 자랄까 걱정됐지만 다행이 부모가 없는 자리에 이웃들이 있어서 일상을 따듯하게 이어가는 걸 본다 . 할머니가 말했듯 그저 이쁜 괴물로 자라는 게 기특해 나 역시 엄마 미소를 지으며 보게 된다 .  곤을 도우려다 다치는 부분에선 아슬 아슬하고 뭉클한 감정도 만난다 . 모두 다치지 않고 좋은 관계가 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 어떤 것은 많이 손상된 후에야 진심으로 마주치게 되고 피할 수 없는 것이란 걸 받아들이게도 되는 걸 보면 인생이란 어쩌면 불행이란 진창과도 같은 늪에서 힘들게 한 발 한 발을 빼는 것이 아닐까도 싶었다 .

 

처음부터 있지 않던 기능적 이상을 안고 사는 윤재와 처음부터 당연한 것처럼 감정을 갖고 살던 곤과 곤의 아버지가 그것들을 망가뜨리면서 다시  찾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표현 불능 같은 건 후기 학습의 결과로도 나올 수있고 또 그것들은 불치가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 주려 했다고 느낀다 . 나도 내 말라죽은 감정에 아몬드를 주면서 그것들을  꼭꼭 되씹으며 내 안에 잠든 아몬드 싹을 틔워야겠다고 그렇게 느꼈다 . 쌉싸름하며 고소한 한 웅큼의 시간이었다 . 이 아몬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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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3-28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함으로 생기는 오해와 이해˝도 이렇게 풀기 어려운데, 사랑없음으로 생기는 건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편도체 이상은 편견을 없애주는 역할? ㅎㅎ
그러니까 표지의 저 표정은 편도체 이상으로 무감정한 윤재의 얼굴을 그린 거군요. 우리는 흔히 웃고 다니라고 하죠. 웃으면 좋은 일이 온다고. 얼굴 표정에서 상대를 읽어내는 사람 습성상 그자체로 불이익이 되는 저 표정....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표정, 말, 행동 그 모든 것에서 우리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번 대선 선택은 좀 나아지길 바랍니다ㅎ

[그장소] 2017-03-28 23:29   좋아요 1 | URL
무의식적인 선택들을 하는데 그게 학습된 인식으로 인한 거란 생각 가끔해요 . 보통 뚱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무표정 ㅡ 만화스런 요소로는 예쁜 사람이 저 표정이면 무섭다고 함... 좀 웃어라~ 이말 자주 쓰는데 .. 웃자! 뭐 이럼서 ..그런데 그게 타인에겐 강요 일수 있구나 알았네요 . 개인주의를 넘어 분해되고 있네요 ..점점 .
사랑하므로 생기는 오해 ㅡ 부러운데 , 귀..귀 찮앜~
소신있는 한표 한표가 되길 바래야지요 .. 대선 !

AgalmA 2017-03-28 23:38   좋아요 1 | URL
안 사랑할테니 자유로우세요 하면 싫을 거면서ㅋㅋ
고독도 그것을 사랑해야 자유로울 수 있으니 하나의 상태로만 가능한 건 없는 듯^^ 무수한 것들이 겹쳐 삶의 장이 되듯이.
학습된 걸 인지하고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 그게 좋은 삶 같음. 해탈의 경지까지 못 가더라도 이 정도만으로도 어디임? ㅎ;

[그장소] 2017-03-28 23:58   좋아요 1 | URL
아핫~ Agalma 님이 안 사릉한다고 함 삐칠거임! 히이잇~^^♡
외로움은 안쓰러운데 고독 이라고 함 뭔가 한 차원 높은 걸로 인식되는 이 이상함 ... 외로움도 고독도 잘 느끼지 못하는 1인은 .. 저 글 속 윤재랑 다른 게 없네 싶기도 ..
인지가 , 인식을 재 인식 하게 하니 ... 그 정도로만도 어딘가 ㅡ크흣 ^^

뇌는 아몬드라도 먹이면 된다지만 마음은 뭘 줘야 살아날까요? 사랑 같은 거 말고 .. 영양분 필요해요~ 매사 심드렁 증에 빠져서 이것도 힘드네요. ㅎㅎㅎ

AgalmA 2017-03-29 00:01   좋아요 1 | URL
식탐이 그저 욕구만은 아닌 것이죠^^; 우린 참 무엇으로든 살아갈 에너지로 만든다고 할까. 그래서 전 오늘도 마이구미 냠냠 중...아, 내 이빨ㅎㅎ)))

[그장소] 2017-03-29 00:08   좋아요 1 | URL
오옷 ㅡ 마이구미 ~ 그것도 좋겠네요 . 군것질이 필요했던 건가~^^? 뭐든 먹어야 하는군요!

AgalmA 2017-03-29 00:12   좋아요 1 | URL
친구와 대화도 냠냠^^

[그장소] 2017-03-29 00:20   좋아요 0 | URL
봄이 무기력과 함께 오네요. ㅎㅎ 느른 느른 하니 의욕이 안생겨서 .. 뭐 , 지나가겠죠?
뺏어 먹고 싶네요~ ㅋㅎㅎ 마이 구미 ~
냠냠 ~

AgalmA 2017-03-29 00:28   좋아요 1 | URL
저는 유독 봄이 싫은데 개학도 싫고 뭐다뭐다 계획대잔치도 싫고 푹 눌러쓰고 다니던 모자달린 코트 벗는 것도 싫고, 싫은 게 넘 많음ㅋ 꽃이 피니까 그나마 위안.
그래서 봄에 나물이며 야채를 많이 먹어줘서 몸이 싱싱 씽씽해지게 비타민 물을 담뿍 줘야 하는 거 같음.
사과 샀는데 건조기로 말려서 과자로 만들거임~먹을 땐 좋은데 만드는 건 어찌나 귀찮은지ㅎ 요즘 건조 야채, 과일들 과자로 나온 거 마트에 많이 보이드만요^^ 그장소님 책선물 드릴 때까지 사과가 나오면 보내드리겠음^^
나는야 간식쟁이~~~

[그장소] 2017-03-29 02:04   좋아요 1 | URL
말랑이 들은 더러 봤는데 ..Agalma 님은 직접 건조도 하시는군요!! 우와~ 새로운 면 포착~^^
저도 얼른 봄 지나가고 문 활짝 열어놓는 여름 기다리는중 .. 더위는 싫었는데 어느새 여름도 견딜 만한 게 되네요 . 전 집안에서만 있어서 외출복 안 챙긴지 오래라 .. 집 안에서도 유니폼 ㅋㅋㅋ 정해진 옷으로만 계절을 나네요 .
오늘은 유독 추운 봄 날였어요 . ㅎㅎㅎ 봄인데 춥뎈 ㅡ 이것도 웃기네요 .
사과 과자 음 ... 상상 안가는데 ㅡ 차로 만들어 본 적은 있지만 .. 시나몬 애플 같은 거..
간식 말하며 즐거워보여서 저도 좋네요^^

AgalmA 2017-04-10 2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과 과자 약속지켰고 이 글이 이 달의 마이 리뷰 당첨작 된 것도 좋고^^
근데 제 수다가 너무 많이 노출된 거 아닌가 부담스럽군욧;; 담엔 마이 리뷰 당첨될 거 같은 글엔 구구절절 수다 떨지 말아야 하나, 수다는 비밀글로 써야 하나, 별 영양가없는 고민 잠시 하다가 이런 거까지 신경 써야 한다면 침묵수행급으로 가야지 중얼중얼중얼.....

[그장소] 2017-04-10 22:1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같이 떠든 건데, 같이 부담도 나누죠^^? 사과칩 넘 좋았어요! 하나 하나 씹을 때마다 시간을 집중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
공정이랄까 ... 당도하기 전의 시간들에 대한거요 . 그 느낌이 참 따듯하니 좋았네요! 고마워요 . 그런 시간을 만들어 보내 줘서요! !
이달의 리뷰 축하도 같이 나눠요! ♡
 
내 연애의 기억
이권 감독, 강예원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내 연애의 기억 ㅡ 영화

영활 보면서 서재 이웃님인 다락방님이 계속 생각났다 .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 의견을 나누자고 약속했는데 정작 맘먹고 다시 본 델마와 루이스는 다락방 님의 리뷰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내 생각 따위를 따로 하지 못했다 . 계속 그녀가 쓴 글만 영활 보는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 붙어서 . 그래도 페미니즘에 대한 장면이 나오는 책이나 영활 보면 그녀 생각이 났다 . 그녀라면 이 영화나 이 소설의 부분에 대해 뭐라고 할지 알겠으면서 전혀 다른 표현으로 나오는 그녀만의 신랄함과 정직함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다시피 했다 . 이 영화도 그랬다 . 

영화는 시작하면서부터 시원하면서 어딘가 불편했다 . 여주인공인 은진이 번번히 남자들에 뒤통수를 맞는 장면에 안타까우면서 그녀가 영화 속에서 내 뱉는 쌩말 , 말그대로 살아있는 듯 솔직한 감정 표현과 상황에 , 사이다를 한껏 들이키고 뱉지 못하는 트름처럼 답답하고 억눌려  긴장감을 통 놓을 수가 없었다 . 그녀는 만나는 남자마다 악운처럼 뒤가 틀렸다 . 왜 그런 남자들만 골라 만나는가 생각하다가
영화 마지막쯤에 가선 아, 그런 사람들이 너무 , 너무 많은 거구나 도처에 그런 불행이  많은 까닭이라고 마침내 생각되어져 버리고 말았다 . 

그렇게 생각된 이유엔 남자친구 현석의 과거 얘기가 있다 . 우연한 일처럼 그의 가족에 닥친 불행이 있고 그 불행들에 그가 내린 결론으로 인해 저질러진 많은 숨은 사건들이 , 마치 정오의 태양아래 서있어 생기는 다중 그림자처럼 , 또 그 그림자는 화살표와 같이 온 사방으로 뻗어 있어서 그의 이야긴 그 하나 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  한 사람의 불행은 하나 , 한가지 형태로만 시작되고 끝이 나는 게 아니구나 랄까 . 

마지막 장면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끝이 난다  . 병원에 실려가 의식을 차린 그녀가 가족들의 염려와 걱정 속에서  안정 중에 문병 온 경찰 친구가 다시는 그를 볼 일이 없으니 걱정은 말라는 말을 듣는다 . 친구는  그렇게 사건의 끝을 알려주는데  다시는 그런 불행은 없을 듯이 정말 잠시 잠깐은 나도 은진처럼 친구의 말에 안도하고 한숨을 쉬었었다 . 

그러다 혼자 남아 자신에게 되돌아온 휴대폰 속 연애의 기억을 되살리기도 전에 현석과 같은 목소리의 남자가 저, 저기요  하고 말을 건내는 순간 , 그녀의 반응을 채 보이기도 전에 영화는 끝이 난다 .  그 장면이 전하는 메시지는 적어도 내 느낌으론 누구도 완전한 안전과 불행과의 영원한 결별은 없다는 경고벨로 들렸다 . 

그녀에게만 유난한 불행이 아닐 거란 생각 ,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에 수시로 노출되면서도 대게는 은진처럼 말이라도 시원하게 퍼붓고 돌아서지도 못하는 게 우리 모습은 아닌가 하는 부분도 있었다 . 

먼저 본 델마와 루이스의 두 주인공처럼 그저 솔직하게 삶을 살아 보지도 못하다가  용기를 내는 순간이 삶의 끝과 같이 다가오는게 우리들이 용기를 내는데 주저하게 되는 원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도 힘든 세상이지만 좋은 주변인 들을 만나기도 힘든 세상이구나 하는 걸  또 보았다 . 

그저 정직한 행복을 얻기가 이렇게나 어렵다니 , 영화 속 은진은 정말은 속물이었는진 몰라도 사랑한단 말엔 마음의 무릎을 푹 꿇는 여자일 뿐이었는데 ... 아 , 다락방님은 이 영활 보셨을까 ? 그녀의 리뷰를 찾아봐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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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3-26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아직 안봤어요 이 영화!!

[그장소] 2017-03-26 16:23   좋아요 0 | URL
오~ 오!! 꼭 보세요. 엄청 심장 쫄깃한 영화예요 . 긴장을 다 본 후에도 못 풀겠더라고요 . ㅎㅎ
델마와 루이스는 계속 곱씹고 있어요 . 바로 찾아 본게 무리였나보다 ㅡ 그랬어요 . 다락방님 글이 뼈까지 스며서 , 기억이 흐릿해지면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 ^^
 
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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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ㅡ 서머싯 몸

그러던 어느 날 , 이런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 샤르트르에 갔다가 파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 그레이가 운전을 하고 래리는 조수석에 , 이사벨과 나는 뒷자석에 앉았다 . 긴 하루를 보낸 터라 모두들 지친 상태였다 . 래리는 조수석 등받이 위쪽으로 팔을 뻗어 걸쳐놓았는데 , 그 자세 때문에 셔츠 소매가 올라가면서 가늘지만 강인한 팔목과 팔뚝이 드러났다 . 팔뚝을 가볍게 뒤덮은 솜털 위로 햇살이 쏟아져 황금빛으로 빛났다 . 순간 나는 이사벨의 몸이 경직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나는 그녀를 흘끗 보았다 . 그녀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 호흡이 빨라지면서 두 눈은 금빛 솜털로 뒤덮인 강인한 손목에 고정되었다 . 그의 손가락은 길고 섬세하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 나는 사람의 얼굴에서 그토록 강렬한 욕정을 본 적이 없었다 . 마치 색욕의 가면 같았다 . 그 아름다운 얼굴에 그토록 방자하고 음탕한 표정이 떠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그것은 인간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까웠다 .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 음탕한 표정 때문에 섬뜩하고 무섭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 마치 교미 중인 암캐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 그녀는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잊은 듯했다 .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래리의 손뿐이었다 . 무심하게 등받이를 감싼 그 손이 그녀를 광란의 욕정으로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 잠시 후 , 마치 경련이 인 듯 그녀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두 눈을 감고 구석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말했다 .

" 담배 한  대만 주세요 ."

ㅡ본문 313 /314 쪽에서 ㅡ

책을 읽고도 나는 제목이 주려한 느낌이나 뉘앙스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조금 괴로웠던 상태였다 . 멍하니 오전이 지나가는 것을 두 눈만 뜬 채로 흘려보내다가 돌연하게 떠올린 것이 위의 문장이었다 . 순간 날카롭게 뭔가가 왔다갔는데 지금 다시 그 느낌을 잡으려하니 그 짧은 찰나가 신경성 위통처럼 고통스럽다 . 누군가 나를 보고있다면 나 역시나 이사벨이 느낀 꽁꽁 묶인 관능의 고통을 겪는 듯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 

래리는 글 속에서 거의 무성애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그려진다 .  마치 성욕 같은 건 오로지 이 세상의 것이고 그 자신은 순수한 사랑 ( 박애) (에로스처럼) 그 이상도 이하도 꿈꾸지 않는 일종의 구도자처럼 느껴지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제목은 흐릿하지만 뚜렷하게 생각나는 명화 ㅡ 가 하나 있었다 .  

발랄하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작은 활을 든채 화면을 작게 가로지르는 에로스와 그를 향한 나신의 여성(비너스?)이 좀 더 커다란 활을 들어 올리는 몸짓과 함께 둘 사이의 공기를 먼 데서 엿보는 듯하던  그 그림에 ,  그 이상적인 모성 발현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 내겐 몹시도 애로틱해 보여서 어리둥절 했을 뿐이었던 기억 ㅡ 그러니 어쩌면 이 작품의 배경엔 서머싯 몸이 명화 속 비너스와 에로스의 한 장면을 보며 연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순전한 추측을 놓아본다 . 

운전석의 남성이 아닌 조수석의 남성 , 그레이의 육중한 몸과 래리의 날렵하고 강인해보이는 육체 , 이사벨은 매일 밤 그레이와 나란히 눕는 평온한 밤을 가졌지만 진심으로 오래도록 사랑해 온 래리는 끝내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했다 . 어쩌면 그 지점이 래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모성 쯤으로 변환시켜 자신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거라면 , 위의 순간엔 마침내 모성을 걷어내고 한 이성을 순순한 욕구만을 드러내고 본다 . 인간의 욕망이란게 어디 멀리 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겠냐고 하듯이 , 맨 얼굴을 보이는 비너스의 파괴적인 순간 . 그러니 인간과 인간이 가진 욕망은 ,  그 틈은 면도날처럼 얇디 얇아서 스윽 베이고도 뒤늦게 맺힌 핏방울에  상처를 느끼고 비릿한 피 맛을 볼 뿐이란 이야기가 아닐까  . 

이사벨은 그 날 그 순간이 몹시 고통스러웠을 게다 . 다 가졌는데 바로 눈 앞에 있는데도 결코 가질 수 없는 한 인간을 보며 ,  들끓는 애욕으로 번다한 밤이 앞으로 내내 찾아오지 않을까 .  그레이의 얼굴을 몸을 끌어 안으면서도 그 뒤론 래리의 몸짓을  느끼고 싶어 갈망하는 밤 . 
욕망을 숨기는 우리의 가면은 실상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일(?) 들에 무너진다 .  아, 아 , 그러니 저도 담배 한 대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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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03-13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읽는 제가 막 숨을 죽이게 되네요^^; 읽고 싶은 책이 쌓였는데 면도날 추가입니다@_@;;;

[그장소] 2017-03-13 12:31   좋아요 0 | URL
굉장한 속도로 읽혀서 저도 놀랐고 거기다 또 재미있었고..그런데도 두 번의 리뷰로도 딱! 맞는 표현을 못 하겠어요 . 좋은건 알겠는데~~ 아하핫~ 읽게 되시면 제게도 좀 알려주세요 . 면도날 ㅡ 그걸 찾았다고!! 말예요!^^

구름물고기 2017-03-13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무너진다˝ 라는 말에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면도날..은 도루코

[그장소] 2017-03-13 13:59   좋아요 1 | URL
아놔~^^ 그쵸? 면도기는, 면도날은 , 2중 3중 면도날이 아닌 그저 도루코 죠! ㅎㅎㅎ

북프리쿠키 2017-03-13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장소님의 현혹에 당해낼 재간이 없네요.
장바구니 살포시 ^^;

[그장소] 2017-03-13 13:58   좋아요 1 | URL
ㅎㅎㅎ우리 sm 마니아 ( 이게 맞나?)인 걸까요? 꽁꽁 묶인 관능의 시간 ~ 느껴보세요!^^ ㅎㅎㅎ

2017-03-13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7-03-13 20:28   좋아요 1 | URL
아 ㅡ 면도날 이건 Agalma 님 선물 ㅡ 서니데이님도 받으셨죠? 민음 이벤트 나눔요 ㅡ ㅎㅎ
읽은 느낌과 제목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계속 생각하는 중인 책이랍니다. 숙제는 이제 여기에 공유 못해요 . 제동이 걸려서 ... 저쪽과 앞으론 다른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 좀 빠듯하겠지만요 ~^^

재와 빨강 ㅡ 이건 창비 , 책읽는 당 미션 말이랍니다~! 예스 블로거 미션관 다른!!

박균호 2017-08-09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대가기 직전에 읽은 <인간의 굴레에서>를 평생 못 잊을 것 같네요.

[그장소] 2017-08-09 20:51   좋아요 0 | URL
ㅎㅎㅎ저는 인간의 굴레 ㅡ로 읽었으니 좀더 오래된 책이었을라나요? 문고판으로 본 기억이 있어요 . 축약본이라고 하나 청소년문학이라고 하나요?... 중학교 도서관 비치용였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