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미래 -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
노무현 지음 / 동녘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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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296에 나온 문구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경향들이, 사회 문제를 전부 이성적 논리로 규정하려고 하는, 하나의 사상으로 세계를 통일하려고 하는,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하나의 사상으로 모든 것을 해명하려고 하는, 근대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이거든요?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 문제는 제기했는데 답이 없다는 거죠.”

 

이 문구는 참고로 故 노무현대통령의 마지막 육성기록과 집필기록을 모아 그 후에 그가 서거할 때 발간한 도서이다. 진보의 미래라고 말이다. 진보의 미래란 말에서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 이원화된 구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여실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페이지 296에 문구가 인상이 깊다.

 

이전에 나도 이런저런 책을 보면서 사상, 철학, 이념 등 다양한 관념에 대해 혼자서 공부하려고 허둥거리고 있을 때 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사상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들어가서 기존 사회의 문제를 알고 말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이 노무현의 진보와 미래라는 점이다. 그의 진보와 미래는 모든 것을 급진적으로 변화하거나, 혹은 외부의 변화에 부동의 자세로 있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것을 안고 가고, 새롭게 일어나가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도자를 바꾼다고 달라지진 않는다.”에서 많은 공감이 일어났다.

 

지도자 한 명 교체되어도 나라 그 자체가 개선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지도자를 뽑게 한 시민과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정치적 조직이 우선적으로 많은 영향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故 노무현대통령은 그런 점들을 이미 오랜 전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을 맡을 때까지 늘 이런 말을 들은 것 같다.

 

한쪽에서는 좌파대통령, 다른 한쪽에서는 신자유주의자 신봉자라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가 있을 수 있는 자리는 좌파와 우파도 아닌 그 어디에 내놓아도 안주할 공간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분명 그는 진보적인 대통령이었다. 단지 그 진보적인 부분을 국제적 동향과 국내 여건을 배제하지 않았기에 보수적인 국가에서 진보를 추구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늘 앞길에 막히고 벽이 늘 가로막고 있었다. 역사는 한 번도 당신을 비켜가지 않음이 여전히 증명했다. 진보의 미래에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깜짝 깜짝하고 놀랐다. 왜냐하면 그가 적어놓은 글을 보면서 故 노무현대통령이란 인물이 얼마나 많은 공부와 사유를 하고 있었나이다.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고전 철학자의 이름(장 자크 룩소), 최근에 등장하는 사회 및 경제학자(장하준 교수, 폴 크루먼, 자크 아탈리) 등 많은 대석학들의 책들을 꾸준히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생각난 철학자는 미국 위대한 현대철학자인 존 롤즈였다.

 

이전에 존 롤즈가 저술한 정의론이란 도서를 본 적이 있었다. 페이지가 600 이상 분량에 내용도 무척이나 어려웠으나, 그 정의론에서 본 내용이 故 노무현대통령이 저술한 진보의 미래에서 많은 합의점을 보았던 것이다. 정의론에서 존 롤즈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철학자에 대한 연구도 하였겠지만, 그는 자신의 원하는 사회상이란 최소수혜자에 대한 초점이었다.

 

기회의 균등, 최소약자에게도 꿈과 미래를 줄 수 있다는 희망을 말이다. 물론 정의론에서 존 롤즈는 개인의 역량과 능력도 중시하고, 개인의 능력에 따른 성공, 성공에 따르는 부와 명예 역시 인정하였다. 단지 그 과정에서 그런 부와 명예를 (사회구조적으로) 박탈감을 느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 그의 정의론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교육의 기회, 최소생존의 기회가 필요했다. 따라서 최소수혜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어야 말로 인간이 재산이고 보물이라는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느 강력한 지도자가 나서서 하겠다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거 독일 히틀러는 나치즘이란 극단적인 선택으로 통해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여 자국민을 모두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그 병폐로 전쟁이란 큰 위협을 안겼다.

 

그렇다면 지도자의 역량도 중요하다면 그 지도자를 제대로 지지하고 선택할 수 있는 정치권에 대한 청구자들도 필요하다. 진보의 미래는 바로 “정치체제 대한 권리(에티엔 발리바르 도서 제목 인용)”를 올바르게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사실 故 노무현대통령도 지적한 것처럼 지도자만 바꾸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었듯 말이다.

 

전복해도 운영체계에서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다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잘못된 기로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시민들이 늘 깨어있기를 바라야 한다. 그것은 결국 교육의 기회이고, 교육은 누구나 받을 수 있을 공평성이 있어야 한다. 가난하거나 생계의 문제로 교육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결국 그 개인에게는 앞날의 보장 즉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으로 이어진다.

 

발터 벤야민이 자유라는 것은 자본주의국가에서 자본의 차이로 인해 나누어진다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결국 가난에 의한 기회의 상실은 경제적인 여건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경제적인 가난은 결국 그 개인에게 자유의 한도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교육이라는 점이다.

 

교육은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참여의식 증대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투자는 그것 자체가 사회적인 재력이 된다는 점이고, 차후에 국가 경쟁력으로 통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고 글을 적는 엔지니어 입장에서 故 노무현대통령이 말하는 기술전문 관료생성과 더불어 사회간접자본 충원은 곧 우리 사회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급변하는 세계정황에 크게 대응할 수 있는 밑바탕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하고 바꾸어가야 한다. 현재로서는 과도기적인 상황이라 볼 수 없는 것 같다. 위에 명시한 것처럼 그는 중도적인 자세로 진보의 미래를 적어갔다. 보수든 진보든 어떻게 보자면 이 둘 세력은 결국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할 존재이다. 진보의 미래에서 정말 진보적으로 미래를 투영한다고 하나,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대안이란 점들을 중시했다. 진보의 미래에서 진보는 진보 안에서 갇혀할 것인가? 아니면 보수로 돌아가자고 해야 하는 것인

가?

 

처음에 내가 인상 깊은 문구인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이 모든 것을 지적해도 대안 없는 둘 사이에서 방황하기보다는 둘 사이에서 다소 진보적인 관점으로 앞으로 나가려는 것이 故 노무현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음이 아프게도 한국에는 진정한 중도주의란 불가능한 모양이다. 중도는 양쪽의 공격을 받아야 그의 모습이 내 뇌리 속에 깊이 박혀있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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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울한 날들에게
마이클 킴볼 지음, 김현철 옮김 / 갤리온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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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울한 날들에게 나온 주인공 Mr. 조너선에게 먼저 추도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물론 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 처럼, 조너선의 이야기는 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는 현실 속에 살아가는 불운한 어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방된 현실 내지 재현된 현실이라 말해주고 싶다.

 

조너선의 자살을 읽어가다 보면 그의 일기를 읽고, 그가 남긴 메모와 스크랩,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들이 외롭게 죽어간 조너선의 과거를 찾아간다. 불운하게 죽은 조너선을 찾아가는 사람은 조너선의 단 하나뿐인 동생인 로버트다. 로버트는 자기 형인 조너선의 죽음을 통해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의 일기를 찾아 그의 아버지를 찾아 그의 기억을 더듬어 로버트는 어린 시절 형을 돌이켜 보려고 한다. 그토록 문제만 일으키고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형을 말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내 곧 후회를 불러 일으켜 왔다. 아니 그 모든 비극적인 결말은 결국 자신도 가해자 중에 하나였다.

 

형인 조너선은 너무 우울하고 슬프고 거기다 못해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외면당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제일 처음 대하는 존재는 어머니고, 그 다음에 어머니 주변 사람이다. 어머니인 Mrs. 앨리스는 아들인 조너선과 로버트를 끔찍하게 아끼던 좋은 어머니였다. 조너선이 괴로워하면 언제나 안아주던 어머니이었다.

 

그런 앨리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너선은 비뚤어진 청소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어른이 되어 일을 하고 결혼까지 함에도 불구하고 조너선은 안식처를 얻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과거의 망령들이 그를 죽을 때까지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가? 라는 근원적인 부분이다.

 

인간의 근원은 어머니가 존재하는 가족이란 커뮤니티이다. 인간이 가지는 최소한의 사회규모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이는 곳은 가족이란 뜻이다. 그런 가족이란 인간적 유대가 깨어지면 어떻게 인간이 망가져 가고, 그 망가져 가는 인간이 얼마나 괴롭고 외로워 눈물이 앞을 가리야 하는 일들이 생기는지 알려준다.

 

소설의 비극적인 주인공 조너선은 항상 강박관념에 시달려왔다. 그의 강박관념은 자신도 알고 있었으나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인간은 이성이란 사유로 통해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분명하나 그 이성 안의 본질적인 감정과 무의식의 세계는 이성의 통제가 한계가 있었다. 조너선의 무의식 속에 갇혀진 우울과 공포는 이미 어른이 되어서도 존재했다.

 

그 모든 배후는 조너선을 세상에 나오게 한 아버지 토머스였다. 토머스는 젊은 시절 제법 인물도 괜찮았고, 월급도 좋았던 남자였던 모양이었다. 아마 어머니 앨리스와 만나기 전에도 많은 여자와 만나 그는 청춘을 누렸을 것이다. 문제는 어머니 앨리스와 만나면서 앨리스가 임신을 했고, 피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앨리스는 심한 복통에 괴로워하면서 정해진 출산일로부터 2주나 지연되었다.

 

당시 계절은 매우 추운 겨울, 밖에는 심한 눈보라로 차들이 도로에서 도저히 달릴 수 없었다. 그때 심한 복통이 앨리스를 덮친 것이다. 어렵게 겨우 제설차의 도움으로 병원에 가서 무사히 조너선을 출산했으나, 조너선의 탄생은 가족들에게 행복이란 대신 불운 내지 비극이었다. 아버지 토마스는 조너선을 매우 싫어했고, 그것이 나이를 먹어가며 조너선에게 누적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아이들과 그보다 어린 아기들은 매우 감정에 민감하고, 주변 상황에 그대로 몸에 베여 버리는 시기이다. 조너선은 그때부터 이미 비뚤어져 가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고, 겨우 어머니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몇 년 뒤에 태어난 앨리스의 두 번째 아들인 로버트는 조너선에게 하나의 위협이었다.

 

로버트가 나오면 자신을 유일하게 바라보는 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말이다. 그런다고 앨리스는 로버트가 태어나도 여전히 조너선을 사랑했다. 조너선을 위해 그녀가 바친 헌신은 마음이 아프다. 일일이 조너선을 챙겨주고, 지켜봐주고 학교를 다른 곳에 갈 때도 짐도 챙겨주었다. 정신병원에서 처음 진료 받을 때 조너선의 자신감을 채워주기 위해 좋은 옷에 치아교정까지 해주었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아버지 토마스가 조너선을 심하게 구타하려 할 때 옆에서 앨리스가 막아준 것이다. 대신 어머니 앨리스는 밤에 아버지 토마스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조너선은 이런 기억 속에서 계속 성장했다. 아버지 모든 것이 저주했고,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기 원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아버지를 보지 않으려고 했으며, 그의 죽음 전에 유언은 하나의 저주였다.

 

저주의 주문이 아버지에게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그의 모든 인생은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우울증과 편집증으로 이어졌다. 키도 크고 아주 멋진 사랑스러운 여자 사라와 살아가면서도 조너선은 그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라의 기억에서도 그녀는 조너선의 일들을 보이면서 그가 얼마나 심한 병세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자기도 못알아 봤다는 기억만으로 괴로워했다.

 

그러나 조너선의 기록에는 그녀가 매우 슬픈 얼굴로 울고 있는 사실도, 자기도 너무 슬프고 우울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어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의 이성은 마지막까지 놓친 게 아니라 표출될 수 없었다. 분명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 바로 될 수 없으나 그는 강박관념과 편집적인 증세로 그렇게 되자고 신념하기를 원했다. 물론 이룰 수 없었지만, 그것이 되고자 알 수 없는 행위를 하였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오직 본인만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의 일기를 보고 로버트는 당시 자신의 눈에서 형은 그저 문제아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일기로 통해 보는 형은 지극히 정상은 아니나 그 모든 일들이 형의 문제가 아니라 형의 주변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로버트가 본 조너선은 어떤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해 모두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자기의 입장은 명확히 서술했다.

 

게다가 자신의 과오도 자신이 저지른 실수도 알았다. 물론 거기에 대한 사과와 후회도 알았다. 죽기 전에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이야기까지 적어놓았다. 과연 그가 제 정신만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었을까? 어째든 이 일기를 본다면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엄청 많을 것이다. 사소한 뭔가에 집착하여 현실이란 공간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인물을 말이다.

 

또한 생각해보면 나도 조너선과 같은 증세가 아니나, 그런 정신적인 억압이나 우울은 있다. 뭔가 나 자신이 갇혀있고, 터질 수 없는 응어리 같은 것이 말이다. 조너선의 경우 정말 정신병적인 증세가 있겠지만, 그런 증세의 표출의 강약일 뿐이지 우리 인간 역시 조너선처럼 뭔가 과거에 시달리거나 거기에 자신의 마음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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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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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 않았으나, 그가 유명한 인물이라는 것만은 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만든 영화도 있는 것을 안다. 그의 고장 난 500cc 오토바이 포데로사를 타고 남미 대륙을 횡단하고 모험하는 이야기에서 말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아마 영화의 특성답게 뭔가 강렬한 느낌이나 혹은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직접 그 영화를 본 것은 아니나, 이 책에서 나온 단편적으로 나온 체 게바라의 남미대륙 여행은 큰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처럼 아름답고 절절한 이야기보다는 아름답고 절실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발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한 머리와 감수성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킨 체 게바라, 그는 매우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감수성은 많은 독서와 사고, 그리고 시 낭송, 그리고 길가에 만나는 많은 사람들, 이 모든 것이 체 게바라의 인생을 바꾼 하나의 소재였다.

 

그의 여행은 참으로 인상 깊다. 나는 사람을 고치기 위해 의사가 되었으나, 여행을 하고 난 뒤에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겠다고 말이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혁명가로 태어났고, 그의 투쟁은 전 세계 모든 자유와 평등,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큰 메신저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 의해 실존주의가 막을 내릴 때, 그 실존주의자 대표적인 인물인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 인상 깊다. “우리 세기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말이다. 이런 장 폴 사르트르를 체 게바라는 직접 만났다. 장 폴 사르트르는 내가 아는 영역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역시 체 게바라도 마르크스의 도서를 청소년 시절에 읽었다. 그가 바라는 세상이란 마르크스가 외치던 약자들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체 게바라는 투쟁을 한 것이다. 내가 아닌 이 세계의 억압받고 탄압받고 피눈물을 매일처럼 흘리는 그들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체 게바라의 마지막은 자신의 피눈물로 마감하게 되었다.

 

10월 7일 볼리비아 정부군에 포획당한 후에 9일에 총살을 당했다. 그의 두 손은 증거확인을 위해 무참히 잘라나가고, 그의 시체는 포르말린을 주입당한 후 아무렇게 버려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많은 학자들이 그의 유골을 찾아 역사의 기억으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체 게바라의 해골이 보는 세상이란 아직도 아름답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해골을 대신하여 사람들은 체 게바라가 새겨진 티를 입고, 그의 이미지와 로고가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자유란 무엇일까? 청춘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지녀야 할 가치관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체 게바라는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비록 눈을 제대로 감지 못했지만,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에서는 그의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의 인생, 그의 주변 인생, 그가 보아온 주변 사람들의 인생, 그는 독서를 좋아하여 늘 손에 책을 떠나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죽을 때의 배낭에는 책이 많이 들어있기 보다는 낡아져 버린 수첩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그 수첩에는 자신이 좋아한 69편의 시가 담겨있었다. 아주 강렬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노래도 있었으나, 사랑보다 크고 웅장하며 슬픈 애환이 담겨있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은 시는 아버지는 백인, 어머니는 원주민인 노래다. 남미가 침공 받아 백인들에게 노동을 착취당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는지 원주민 여성까지 범했다.

 

원주민 아이들은 혼혈로서 다시 재착취 대상이 된다. 이 부분을 읽다 보니 전에 읽은 하워드 진의 도서가 생각나기도 하고, 노암 촘스키의 저서도 생각난다. 남미에서 벌어진 잔혹한 행위와 그리고 숨은 진실들을 말이다. 체 게바라는 그런 강대국들의 횡포에 맞서 싸운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태어나거나 혹은 살아있거나 앞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 공간에서 말이다.

 

그 억압되고 부당한 공간은 당장 없어질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주 잔혹한 사건을 보았던 것이다. 어느 흑인 소년이 백인아가씨에게 말 한번 잘 못해서 무참하게 맞아 죽었는데, 거기에 모자라 머리에 총을 맞아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는 점, 그리고 무거운 물건을 시체에 달아 강에 버려 시체가 썩어버리게 한 그 잔혹함, 오죽했으면 흑인을 죽이는 행위는 동네 행사로 여기고, 신문광고를 내는 모습은 정말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인가? 하고 의심하게 했다.

 

물론 그 나라는 볼리비아 정부군에 지원을 해주었고, 볼리비아 정부군은 그들의 조직인 CIA에게 명령을 받아 체를 총살시켰다. 체 게바라의 죽음은 체 게바라라는 인물의 생물학적인 죽음이었으나, 그는 결코 죽지 않았다. 그의 이상향인 자유와 평화는 아직도 젊은이들의 입속에서 되풀이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에 반한 체 게바라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미지가 자본주의 상품 기호로 변질되었다. 이런 체 게바라의 영향이 워낙 큰지 안티 체 게바라 이미지도 나온다. 이미 그는 1967년 10월 자신의 심장이 정치적 폭력이 단긴 총알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도 그의 유령은 다시 세상 어디라도 좋으면 나타난다. 민중에 대한 폭력과 착취가 이 세상에서 멈추지 않은 그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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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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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정치인들이나 유명 인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적으면 대부분 좋은 부분을 적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최근에 이르기까지 큰 중요 사건들을 나열하여 거기에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어떻게 잘 되었는지를 보여주기 바쁜 것이 대부분의 자서전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았던 성공과 좌절은 조금 다른 자서전이었다. 그것은 성공과 좌절처럼 성공을 담은 이야기가 아니라 성공보다는 좌절에 순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어느 정도 성공한 부분도 있었으나 그것은 단지 일부분이지 이 책의 중심은 성공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였다.

 

노무현이 대통령을 지내면서 이 문구가 정말 생각나게 했다. “시대는 한 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라고 말이다. 노무현의 이야기는 어떻게 본다면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이야기도 닮아내었다. 한국이 일제강점기와 625사변 이후 어려운 경제, 정치,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이른바 독재정치라는 큰 압박 속에 대중들이 살고 있었던 시기이다.

게다가 독재정치만 문제가 아니라 독재로 통한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노무현이 가장 싫어했던 부분이 반칙하는 플레이였다. 그리고 기회주의적인 인간들과 사회들도 싫어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기회주의적인 인간이 득세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가령 나도 그런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흔히 겉으로 공정하고 모든 국민이 자신이 바라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즉 개인 어느 한 사람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한다면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끔은 이런 이야기도 듣는다. “돈 없고 백 없는 인간들은 그저 죽어야지” 라고 말이다.

내가 지금 이런 문구를 적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나 그것은 내가 일상적으로 듣거나 혹은 느끼는 이야기다. 심지어 회사에 가서 직장동료와 밥 먹는 중간에도 쉽게 나오는 말들이다. 지금 이것이 내가 혹은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일 줄은 모르겠다. 노무현은 아마 이런 것이 무척이나 싫어했던 모양이다.

 

그의 저서 중에서 다른 책을 보니, 그는 대학교를 나오지 않고 고등학교만 나왔다. 지독한 가난함과 집안가정이 어려워서 대학진학은 꿈도 꾸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법시험에 고졸 출신이 붙은 것이다. 막상 사법연수원에 가보니 많은 동기들이 좋은 대학교에 다녔던 사람으로 모두 노무현을 무시했다.

 

심지어 밥을 먹는 순간에 혼자서 먹어야 했던 그로서는 이미 대한민국의 현실에 많은 턱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물론 얼마 후에 노무현과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서로 도움을 주던 동기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노무현이 느끼는 당시 70년대 중후반의 한국사회는 가장 엘리트적이고 가장 국민을 받들어야 할 판검사 및 변호사 조직들이 특권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이 청문회 스타로 혹은 부림사건 이후의 변호사로 활약하기 전에 큰 두각을 나타나지 않았으나, 적어도 그는 계속 대한민국의 모순된 구조와 싸웠다. 물론 대통령이 되어 활동할 때도 계속 싸워야 했다. 전에 어느 신문기사에서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모두 일어나며 박수칠 때 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박수치지 말아야 할 타이밍에 누가 노무현에게 박수를 쳤다고 한다.

 

고등학교 출신에 백도 없는 이유로 야유를 당하기도 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백이란 단어를 많이 생각했다. “돈도 없고 백도 없으면 그저 입 다물고 구석에 쳐 박혀야 하냐고?”, 물론 위에서도 언급했으나 깨끗한 미사어구를 날리는 양반들이야 원칙이 서는 나라, 모두가 자유롭게 생활하는 나라, 행복하고 밝은 나라라고 외치는 경우가 많으나 가끔 그들의 행보에선 그런 것이 전혀 느끼지 못할 경우가 많다.

 

당하는 자와 그 당하자는 자의 옆에서 관찰하는 자에 비해 멀리서 방관하고 가해하는 자는 아무런 느낌을 가질 수 없다. 본래 가해자들은 자신이 가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이런 점은 “나만 잘되면 된다. 우리만 잘되면 된다. 남은 어떻게 되는지 관심 없다. 그저 힘없으면 닥치고 있든지?” 라는 이야기로 당하는 자의 가슴을 상처투성이로 만든다.

 

노무현은 그것이 싫어했던 것이다. 아마 그가 가장 큰 좌절을 느낀 것은 이런 사회를 개선하고 싶었으나, 그것이 되지 않음이다. 모두 먹고 사는 경제만을 외치고 있으나, 조금만 이상해도 경제가 죽니 사회가 죽니 라는 이야기가 그의 눈과 귀에 전달되었다. 아마 당시 1997년 IMF 위기 이후 조금씩 그 과정을 해결해 가는 도중 많은 서민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점을 보았을 것이다.

 

노무현은 그런 서민들이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항상 마음속으로 고민을 느끼고 있었으며, 이들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5년이란 세월에 바꿀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정부조직의 변화와 언론의 자율성과 윤리성을 지키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에게 언론이란 과연 중립을 유지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인지 혹은 정치적인 압박을 넣기 위한 수단인지 고민하게 만든 부분이 많다. 또한 언론의 기능은 국민들에게 올바른 사회, 정치, 경제관을 심어주는 미디어인데, 그것이 제대로 못한다면 국민의 귀와 눈을 속인다고 보았다. 결국 언론과의 싸움에서 노무현을 좌절로 많이 이끈 것 같았다.

 

그가 정치 전반에 다 잘 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몇몇은 분명히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것으로 힘든 상황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진정 그가 국민들을 위한 업적들이 있다는 것과 그것으로 한층 나라가 좋게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공적인 부분은 보여주지 못한 것이 많았다. 그의 좌절은 단순하게 좌절이 아니라 그런 정치적 행위에서 그가 고치고 싶어한 기회주의적인 사회를 개선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좌절이다.

 

기회주의적인 사회에서 그가 바라는 사람 사는 세상은 너무나도 멀게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 자신의 좌절을 이야기하여 성공을 본인이 찾기보단 이 회고록을 보는 이로 하여금 찾기를 바란 것이다. 자신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눈물과 애한에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 표지에 적힌 이 문구가 참 인상 깊다.

 

“나의 실패가 여러분의 실패는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 길을 가야 한다.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또 뒷면에 “사람답게 대우받는, 사람 노릇을 하는, 사람이 돈과 시장의 주인 노릇을 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처럼 인간이 시장경제의식에 따라 지배받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바란 것이다.

 

솔직히 나나 혹은 세견을 둘러보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거나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을 종종 본다. “가난한 사람들,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 배가 고픈 사람들, 가족이 없는 사람들,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희망을 잃은 사람들....”

 

노무현의 꿈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그 인간의 권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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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 한길그레이트북스 7
레비 스트로스 지음 / 한길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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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를 읽어보기 전에 나는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읽어보았다. 야생의 사고와 달리 슬픈 열대는 학문적인 관점에서 기술하기 보다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 남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면서 그리고 그 밖의 공간을 이동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은 하나의 기행문에 가깝다.

 

그래도 그런 기행문일지라도 레비 스트로스의 학문적인 영역에서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적어 내려갔기에 거기에 살고 있는 원주민에 대한 현재와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살아온 과정을 서술한 점에서 인류학적인 가치가 있었다. 또한 인류학적인 관점에 떠나 레비 스트로스가 보는 원주민들은 기존에 서구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이 아닌 레비 스트로스의 새로운 관점으로 그들을 관찰하였다.

 

레비 스트로스가 인류학을 연구하기 전에 레비 브릴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연구한 내용은 분명 인류학적인 부분에서 당시 기준의 근현대 문화에 살고 있는 유럽사회의 관점을 그대로 반영했는지, 레비 브릴과 레비 브릴 같은 사람이 관찰하는 인류학이란 그저 오만과 편견에 가득한 입장에서 본 학문이었다.

 

이에 반해 레비 스트로스는 그런 서구사회의 이성을 중시하는 일방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아마 그것은 오랫동안 서구 사회를 가지고 있던 이성중심사고 방식이 오히려 이성적인 영역만 치중한 것 자체가 이성적이지 못한 것을 알릴 계기라고 본다. 앞서 보았던 슬픈 열대의 경우 레비 스트로스가 보는 남아메리카를 비롯한 다수의 원주민들을 볼 때 레비 스트로스의 깊은 관찰력과 이해력이 돋보였다.

 

레비 스트로스 본인이 서구인으로서 원주민들을 관찰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고 했다. 아마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계속 발전해 오면서 문명사회를 이룩한 서구사회가 아닌 말 그대로 원주민들의 사회구조에서 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아마 레비 스트로스가 프랑스에서 만들었으나, 곧 세계적으로 크게 학문과 사상의 발전을 이룩한 구조주의가 시작됨을 알린 것이다.

 

구조주의에 대해 내가 설명하고자 하면 그렇게 쉽게 간단히 하지 못한다. 그러나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레비 스트로스의 글에서 모든 것을 1가지 기준으로 하여 2원화적인 대립구도로 나누어 차별하기 보다는 그 2원화 대립이 보이는 각각 영역에서 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레비 스트로스의 시점이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최근 서구사회의 문화가 세계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정치, 군사,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인간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구사회는 이미 자기들의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서구화가 되었다면, 이에 반면에 비서구사회에서는 그 자체적으로 역사적 흐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화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고유한 문화적 영역이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변모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것은 기존에 있던 것을 지키기 위해 변화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유한한 생존을 가진 동물로서 어느 한 개인이 그것을 유지하고 가꾸고 지키고 싶어도, 그의 수명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적 흐름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지키고 하려한 그 가치가 그대로 소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레비 스트로스에겐 인류학이란 현재의 모습에서 미개사회라고 하는 곳은 보고 서구사회의 입장으로 독단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서구사회에 있는 인간이 그 세계의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고 한 것이다. 단지 미개인들은 문명인과 달리 문자문화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적인 영역의 축적이 되는 문자와 그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파할 언어학적인 체계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 미개인이란 존재라도 문명사회가 가진 이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이성적이지 못하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들이 그들이 가진 하나의 과학이란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문명사회의 인간보다 더 그들은 과학적인 면모를 가질 수도 있다. 그들이 생존하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자연 있는 그대로를 따르고 적응하였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적으로 물리공식이나 화학반응에 대한 내용은 원주민들은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자연에 놓인 어느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것을 하나의 생활화 시킨 점은 분명 과학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중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식물분류학적인 내용이었다. 일반 식물학자들도 발견하지 못한 식물들을 매우 상세하게 관찰하여 분류한 점과 그 식물의 잎, 씨앗, 뿌리 등의 식물체 특성을 보고도 어떤 식물인지 알 수 있는가이다.

 

당시 20세기 중반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생물학 영역의 식물학자들도 활발히 활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식물분류체계를 훨씬 자세히 아는 반면 식물학자들은 같은 식물을 다른 종으로 착각하여 중복되는 식물종이 8종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원주민들이 과연 비과학적이란 사실이 맞을까?

 

그런 점을 시작하여 레비 스트로스가 보는 원주민들의 생활은 단지 그들이 미개하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큰 착각이란 것을 보여주었다. 단지 내가 아쉬운 부분은 야생의 사고를 읽기 전에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학과 구조인류학을 읽지 않은 것이다. 또한 레비 스트로스가 원주민과 그들의 생활에서 신화에 대해 연구하면서 신화는 공시론적인 영역 즉 시간의 영원성을 강조한 점, 역사는 통시성으로 공시적이지 못한 점을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이다.

 

일단 레비 스트로스의 학문적 영역은 구조주의라고 하여도 그의 구조주의 영역 아래 있는 학문은 마크르스의 사회과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 또한 기호학을 만든 소쉬르의 언어학이다. 이전에 마르크스 자본, 공산당 선언을 읽어보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도 읽어보았지만, 메를로 퐁티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은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그런 학문적 체계의 연계성에서 각각 이어주는 고리가 없는 상태에서 읽다보니 야생의 사고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적인 고찰 역시 매우 깊이 들어가고, 그들의 신화를 풀이하고, 그들의 이름과 토템까지 풀이하면서 원주민들의 생존방식을 해석하였다. 그러나 나는 레비 스트로스가 해석하기 위한 전초과정에 대한 부분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야생의 사고를 읽는 내내 조금 힘들었다. 물론 다른 서적도 마찬가지이나, 야생의 사고는 어떤 이론과 그 이론에 대한 정립을 내세우기 보단 인류학적 고찰로 인해 탄생된 학술서적이기 때문에 못내 아쉬운 것이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부분은 역자후기에서 나온 것처럼 레비 스트로스가 얼마나 원주민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당시 서구사회에서 장 폴 사르트르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자와 그리고 마르크스에 의해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 시초자인 레비 스트로스 사이에 벌어진 학문적 논쟁이었다. 야생의 사고 9장에 레비 스트로스는 장 폴 사르트르와 그동안 벌어온 논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장 폴 사르트르가 레비 스트로스에게 학문적으로 패배한 것은 프랑스 학문과 사상이 구조주의로 변화한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본다면 미개인들이나 혹은 미개인까지 아니지만 비서구사회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적인 서구지식인들에게 큰 여파를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단 슬픈 열대와 야생의 사고 서적 앞부분에 흑백과 컬러 사진이 있는데, 거기에 언제나 원주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사진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1980년대 레비 스트로스가 안동 하회마을에 찾아와서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관찰한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분명 어느 국가와 민족, 하물며 국가와 민족으로 규정하기도 어려운 소수 부족들까지 계속 생존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원주민들의 신화이야기에 서구사회의 야만성이 엿보인다. 사실 기존에는 원주민과 같은 미개족속들이 야만적이라 하지만, 그들은 야만적이라 생각하면 안될 존재였다.

 

그들은 그저 자신만의 영역, 즉 인간 역시 자연이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원주민 신화와 그리고 토템에서 초반엔 동물, 식물, 돌, 생체 일부부분, 생활도구 등에서 칼, 총, 비행기와 같은 무기나 기계문명이 올라가 있었다. 이들의 생활영역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 것이다. 물론 인간은 통시성과 공시성을 둘 다 가지고 있으나, 이들의 통시성은 자신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역에서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슬픈 열대나 야생의 사고를 읽으면 원주민들이 무참히 자신의 서식처를 잃고, 희생되는 장면이 머리 안에서 그려진다. 또는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 등을 비롯한 그의 서적 내용도 생각난다. 욕망으로 가득한 문명사회보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미개사회가 문명사회보다 행복하지 말란 법은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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