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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평점 :
체 게바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 않았으나, 그가 유명한 인물이라는 것만은 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만든 영화도 있는 것을 안다. 그의 고장 난 500cc 오토바이 포데로사를 타고 남미 대륙을 횡단하고 모험하는 이야기에서 말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아마 영화의 특성답게 뭔가 강렬한 느낌이나 혹은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직접 그 영화를 본 것은 아니나, 이 책에서 나온 단편적으로 나온 체 게바라의 남미대륙 여행은 큰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처럼 아름답고 절절한 이야기보다는 아름답고 절실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발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한 머리와 감수성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킨 체 게바라, 그는 매우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감수성은 많은 독서와 사고, 그리고 시 낭송, 그리고 길가에 만나는 많은 사람들, 이 모든 것이 체 게바라의 인생을 바꾼 하나의 소재였다.
그의 여행은 참으로 인상 깊다. 나는 사람을 고치기 위해 의사가 되었으나, 여행을 하고 난 뒤에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겠다고 말이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혁명가로 태어났고, 그의 투쟁은 전 세계 모든 자유와 평등,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큰 메신저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 의해 실존주의가 막을 내릴 때, 그 실존주의자 대표적인 인물인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 인상 깊다. “우리 세기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말이다. 이런 장 폴 사르트르를 체 게바라는 직접 만났다. 장 폴 사르트르는 내가 아는 영역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역시 체 게바라도 마르크스의 도서를 청소년 시절에 읽었다. 그가 바라는 세상이란 마르크스가 외치던 약자들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체 게바라는 투쟁을 한 것이다. 내가 아닌 이 세계의 억압받고 탄압받고 피눈물을 매일처럼 흘리는 그들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체 게바라의 마지막은 자신의 피눈물로 마감하게 되었다.
10월 7일 볼리비아 정부군에 포획당한 후에 9일에 총살을 당했다. 그의 두 손은 증거확인을 위해 무참히 잘라나가고, 그의 시체는 포르말린을 주입당한 후 아무렇게 버려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많은 학자들이 그의 유골을 찾아 역사의 기억으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체 게바라의 해골이 보는 세상이란 아직도 아름답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해골을 대신하여 사람들은 체 게바라가 새겨진 티를 입고, 그의 이미지와 로고가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자유란 무엇일까? 청춘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지녀야 할 가치관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체 게바라는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비록 눈을 제대로 감지 못했지만,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에서는 그의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의 인생, 그의 주변 인생, 그가 보아온 주변 사람들의 인생, 그는 독서를 좋아하여 늘 손에 책을 떠나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죽을 때의 배낭에는 책이 많이 들어있기 보다는 낡아져 버린 수첩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그 수첩에는 자신이 좋아한 69편의 시가 담겨있었다. 아주 강렬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노래도 있었으나, 사랑보다 크고 웅장하며 슬픈 애환이 담겨있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은 시는 아버지는 백인, 어머니는 원주민인 노래다. 남미가 침공 받아 백인들에게 노동을 착취당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는지 원주민 여성까지 범했다.
원주민 아이들은 혼혈로서 다시 재착취 대상이 된다. 이 부분을 읽다 보니 전에 읽은 하워드 진의 도서가 생각나기도 하고, 노암 촘스키의 저서도 생각난다. 남미에서 벌어진 잔혹한 행위와 그리고 숨은 진실들을 말이다. 체 게바라는 그런 강대국들의 횡포에 맞서 싸운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태어나거나 혹은 살아있거나 앞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 공간에서 말이다.
그 억압되고 부당한 공간은 당장 없어질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주 잔혹한 사건을 보았던 것이다. 어느 흑인 소년이 백인아가씨에게 말 한번 잘 못해서 무참하게 맞아 죽었는데, 거기에 모자라 머리에 총을 맞아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는 점, 그리고 무거운 물건을 시체에 달아 강에 버려 시체가 썩어버리게 한 그 잔혹함, 오죽했으면 흑인을 죽이는 행위는 동네 행사로 여기고, 신문광고를 내는 모습은 정말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인가? 하고 의심하게 했다.
물론 그 나라는 볼리비아 정부군에 지원을 해주었고, 볼리비아 정부군은 그들의 조직인 CIA에게 명령을 받아 체를 총살시켰다. 체 게바라의 죽음은 체 게바라라는 인물의 생물학적인 죽음이었으나, 그는 결코 죽지 않았다. 그의 이상향인 자유와 평화는 아직도 젊은이들의 입속에서 되풀이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에 반한 체 게바라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미지가 자본주의 상품 기호로 변질되었다. 이런 체 게바라의 영향이 워낙 큰지 안티 체 게바라 이미지도 나온다. 이미 그는 1967년 10월 자신의 심장이 정치적 폭력이 단긴 총알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도 그의 유령은 다시 세상 어디라도 좋으면 나타난다. 민중에 대한 폭력과 착취가 이 세상에서 멈추지 않은 그날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