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누군가에게는 이 계단이 히말라야 산맥과도 같습니다.’

광고 천재 이제석에 나오는 말.

지상에 발 디디고 사는 인간이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설치한

계단이 누구에게는 상승의 도구가

누구에게는 극복의 대상이 된다.

 

아무렇지도 않던 계단을

다리가 좋지 않아 힘들게 오르내리며

계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두려움으로 한 발 한 발 오르내리던,

청년 시절 하나씩은 시원찮아 두세 개씩

한꺼번에 가뿐하게 뛰어 오르내리던,

나이 들어 왕성한 혈기 사라지고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어

차분히 하나씩 오르내리게 되던,

그러다 병들거나 더 늙으면 다시

한 발 한 발 힘겹게 오르내리는 계단.

 

계단이 우리네 인생이라고,

2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높이에 벌벌 떨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계단 위로 계속 오르려 하고

계단 위에서 계속 버티려 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고,

내려와 땅에 설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나이 듦이 계단 오르내리기를 통해 알려주는데,

한사코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그것이 보수?

 

아니, 그것은 수구 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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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해방 70년이 되는 해이다. 해방 70주년, 공자의 말에 따르면 자기의 마음을 따라도(종심從心) 부끄러움이 없는 나이인데,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벗어난 지 70년이 되었는데, 과연 부끄러움이 없을까를 생각해 본다.

 

아마  이런 점에서 녹색평론 143호의 특집이 "해방 70년을 되돌아 본다"로 결정되었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 마음이 아픈 구절이 나온다. '골든 타임'이라는 말.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회자되는 단어가 등장했다. 현명하게 잘 대처하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단어지만, 우리에게는 트라우마와 같은 용어로 되어버린 단어가 있다. '골든타임'이라는 단어다. 원래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를 의미하는, 돈 냄새로 가득한 이 단어가 작년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희망을 이야기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무력함과 무능함, 체념의 단어로 굳어지고 있다. 메르스가 급속하게 확산된 가장 큰 아유 중의 하나도 초기의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윤병선, 한국의 농업, 농민, 농촌 70년, 녹색평론 143호 9쪽)

 

희망을 이야기하는 단어로 골든타임을 쓴 다면 우리에게 골든타임은 언제일까? 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깨어 있는 정신, 깨어 있는 눈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해방이 되고 나서 70년... 농업, 노동, 지식인, 분단, 문학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해방 직후가 우리나라가 맞이한 첫 골든타임이었다면, 그때 제대로 대처를 못했기에 독재 정권이 수립이 되었고, 국민들의 생활은 질곡에 빠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지난 과거지만, 그래도 그때가 골든타임이었고, 놓친 것이 분명하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제대로 분석을 해야 한다.

 

분석을 해야 다시는 반복을 하지 않게 되는데...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골든타임이 있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IMF로 대변되는 외환위기 시대.

 

그때도 우리 경제를 재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오히려 자본의 힘을 강화하는 쪽으로 써버렸다. 노동자들은 이제 예전보다도 더 힘든 상황에 처했고, 농민들도, 지식인들도, 문화인들도 제 자리를 잃고 헤매게 되었다.

 

두 번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또다시 골든타임이 올 것이다. 문제는 골든타임이 언제인가이다. 왔는데도 알지 못하고 보내버리면 우리는 역사를 반복하기만 하게 된다. 안 좋은 쪽으로.

 

그래서 녹색평론 143호에서 해방 70년 즈음해서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을 반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음으로.

 

녹색평론사에서 펴낸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란 제목을 연상시키는, 책을 내면서의 제목 ' 해방 70년, 비틀거리며 온 길'

 

그래 우리는 비틀거리며 왔다. 그것이 중요하다. 비틀거림 속에는 바로 걸으려는 몸부림이 있다. 해방 70년을 비틀거리며 왔다는 인식은 곧게 걸으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자신의 현재를 정확히 보는 일, 그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종심(從心)에 해당하는 해방 70년. 이제 우리나라가 걸어야 할 길, 바르고 곧게 걸어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녹색평론이다.

 

그 길은 쉽지 않겠지만, 비틀거릴 수 있겠지만, 가야할 길이다. 녹색평론과 함께 꾸준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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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순례 -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인간 붓다의 위대한 발자취
자현 스님 지음, 하지권 사진 / 불광출판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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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일생.

 

아마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대충은 알고 있지 않을까?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불교의 기본 사상은 학교 교육을 통해서 배웠으니 대충은 알고 있지 않을까?

 

석가탄신일이라고 하여, 부처님 오신 날은 우리나라 공휴일이니, 부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친숙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부처의 일생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냥 대충,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주워 듣고 다 알고 있다고 착가하고 있지 않았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불교에 관한 책을 그래도 몇 권은 읽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부처의 일생에 관해서 많은 책이 나와 있음에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가 태어나기 전, 종교가 어떻게 해서 우리 곁으로 오게 되었는지부터 살피면서, 인도의 역사적 상황을 짚어주고 있다.

 

이러한 당시 인도의 상황 속에서 부처가 왕자로 태어나(작은 국가다) 고뇌를 거듭하다, 출가하여 여러 스승을 넘어 결국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의 결과를 일반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열반에 드는 과정을 여러 자료들을 통하여, 또 잘못 알려져 있는 사실들을 들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부처의 일생을 통하여 불교의 기본 정신을 잘 알리고 강조하고 있는데서 일반 전기문과는 다른 면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불교가 세계종교로써는 거의 처음으로 탄생한 종교인데, 이는 당시 인도에서도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종교이고(인간 평등을 주장하고, 남녀 평등을 주장하고- 물론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부족하겠지만, 당시 시대에는 이것은 과격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 때문에 불교가 급속도로 전파되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많은 자료들을 살펴 설명하고 있지만,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사진 자료들이 풍부해서 보는 즐거움도 - 불교에서는 이를 경계하겠지만 그래도 - 주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시작에 이런 문제제기가 나온다.

 

- 우리가 인도 불적 순례에서 만나게 되는 바라나시의 다메크 수투파는 사실 붓다의 첫 설법을 기념한 탑이 아니다.

- 8대 성지 중 한 곳으로 알려진 바이살리의 대림·중각강당 유적인 사실 8대 성지 자리가 아니며, 그곳의 탑 역시 붓다의 탑이 아니다.

- 사리불이나 목건련은 사람 이름이 아닌 별명이며, 마하가섭은 붓다보다 나이가 훨씬 젊은 분이었다.

-붓다께서 쿠시나라라의 사라쌍수에서 열반하신 것은 사실 그물 침대를 매기 위한 것이었다.

-라후라는 붓다의 아들이 맞는가 등등 (4쪽)

 

이 책을 읽으면 이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가 있따. 그래서 불교에 대한 이해, 부처에 대한 이해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된다.

 

그런 이해보다도 더 필요한 점은 이런 부처의 삶을 본받는 우리의 행동이겠지만 말이다. 천천히, 조금씩... 부처는 그 사람의 근기에 맞는 교육을 했다고 하니, 우리 역시 우리의 근기에 맞는 행동을 하면, 어느 순간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않겠는가.

 

서두르지 않음,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음. 그러나 그 길이 부처의 길과는 다르지 않음. 이것이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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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K, 교회를 나가다 -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
김진호 지음 / 현암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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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캄캄한 밤에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빨간 십자가가 보인다. 빨갛게 멀리서도 보이게... 그런데 이게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어나 싶을 정도로, 기독교 나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다.

 

오죽하면 예전에 한 집 걸러 하나씩 다방과 교회가 있다고 했겠는가. 이렇게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종교가 기복신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도덕, 인간의 철학을 넘어선 단계가 바로 종교 아니던가.

 

그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많으면 인간 세상의 추악함과 비루함을 넘어 신성한 아름다운 세상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있었다.

 

특히 눈에 띠는 것은 개신교 교회의 십자가들이고, 그들의 선교이고, 그들이 말하는 말씀들이었는데... 그런데,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기는 커녕, 이전투구의 양상을 띠고 있으니, 이게 뭔가 싶기도 하다.

 

어떤 때는 개신교의 욕망에 혀를 내두를 때도 있었고, 종교인들에게 세금을 내게 한다는 정책에 대해서,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때, 신성과 세속이 다르고, 신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세속의 세금은 말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럼에도 그런 신성이 왜 사람들 속에 들어오지 않나 하는 생각.

 

성경 구절에 매어 성소수자들의 집회를 방해하고 억압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다른 종교인들에 대해 거침없이 비난하는 모습들을 보며 이건 뭔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한 때 목사였고, 신학을 공부했던 사람이 개신교에 대해서 개괄하는 책을 내었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고 싶었는데, 이러구러 하다가 읽는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시간이 흐르고 도서관에서 발견한 다음,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아직도 유효하다 싶어 읽기 시작.

 

"교회를 나가다"라는 말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음을 먼저 이야기한다. 하나는 "교회에 나가다" 또 하나는 "교회에서 나가다"다.

 

개신교에 몸담고 그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개신교와 거리를 두고 비판적 이야기를 하면서 개신교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존재해왔나를 살피고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 개신교가 창대해지기 시작하는 기점을 저자는 러일전쟁시기로 잡았다.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하는데, 그 무대는 우리나라가 되었고, 일본군의 만행을 피해 교회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

 

이 때 교회는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해주는 존재였고, 이런 상태는 일제시대에도 유지가 된다고 한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해방뒤 전쟁을 겪으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개신교는 급성장하게 된다.

 

여기에 물론 정치권과의 영합도 있었음을 빼먹지 않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개신교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성장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와서 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오히려 하락세에 접어든다. 교회들은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대책으로 나온 것이 공격적 선교활동과 정치세력화다.

 

해외선교가 붐을 이루고, 또 기독교당을 만들어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은 대형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철저하게 극우친미성향의 집회를. 이것은 미국의 번영신학을 받아들인 결과가 지금까지 나타난 것이라고 판단하는데, 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개신교는 앞으로도 하락세를 멈추지 못할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번영신학은 그러한 자본주의적 체계를 가장 잘 반영하는 신앙적·신학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번영신학으로 무장하면서 정치세력화라는 종교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한국 기독교의 행보는 공공영역을 지켜내고 확장하려는 민주화의 노력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 252쪽.

 

개신교가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함께 번영하기 위해서는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오늘의 교회가 품어야 하는 생각은 '사회를 교회화'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적 신앙을 사회적 영성화' 하는 것이다. 253쪽

 

이라고 한다.

 

개신교 내부에서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를 살피고, 개신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이 책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

 

아마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제시한 대로 사회적 영성화된 개신교가 된다면, 개신교의 신도는 줄지 않고 늘게 되겠지. 그만큼 우리 사회도 영성이 풍부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위하는 사회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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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보고 빌린 시집.

 

두꺼비집을 내려놓으면 정전이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어둠이다. 그런 세상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캄캄하다.

 

이 제목에서 현재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시집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정치권을 보면 두꺼비집이 내려진 상태다. 도무지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전기가 통해서 소통이 될텐데... 암전, 정전.

 

누군가 다시 두꺼비집을 올려야 하는데...

 

그러다 '발톱'이라는 시를 보게 되었다.

 

우리 신체 중 가장 밑에 있는... 조금만 길다 싶으면 사정없이 깎아내 버리는.

 

동물들에게는 이 발톱이 무기요,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고 지켜주는 존재인데, 우리들 인간에게는 발톱은 깎아 없애버려야 할 것으로 치부되고 만다.

 

어쩌면 이렇게 젊은 시절 지녔던 꿈들이 발톱처럼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깎여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혁명의 시대는 아니라고, 혁명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는 시대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고 있는가. 오로지 대화와 타협은 강자들의 이야기 아닌가.

 

약자들에게는 대화와 타협을 빙자한 탄압만 있지 않은가. 단지 알려지지 않을 뿐이지.

 

그래서 이 시 '발톱'은 슬프다. 지금을 보는 것 같아서. 그럼에도 이 '발톱'이란 시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발톱을 깎아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발톱... 단지 버려야만 할 대상이 아니다.

 

  발톱

 

발톱을 깎았다

깎은 발톱은 버렸다

 

불통인 가정과 미친 척 통화했다

어머니는 백발의틀니의꾸부정의신경질의 생존자

아버지는 경제적무능력꿈의무중력아무튼무책임한 과식주의자

가정의 발톱을 깎아 주고

구둣솔로 먼지를 털다가

물오리처럼 떠다닌 그들의 일대기가 혁명이었음을

5·16 군사혁명 언저리에서 나를 구겨 신고 태어닌

내가 물오리였음을 발견한다

 

예비역 병장인 나의 한국은행 예비군 대대의

예비역 병장인 나의 혁명은

근로자 증권저축 속에서

탁상일기 속에서

손톱깎이 이빨 사이에서

잘려져 나간다

 

돌이켜 보면 어제가 나의 혁명이었다

돌이켜 보면 작년이 나의 혁명이었다

흘러가 버린 날들이

좀 긴 듯한 나의 발톱이 혁명이었다

 

장경린, 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 민음사, 2007년 개정관 1쇄. 94-95쪽.

 

이 시의 마지막에 나온 어제가, 작년이 나의 혁명이 아니기를... 우리의 혁명은 아직 오지 않았음을.

 

발톱은 아직도 자라고 있음을... 그래야 함을, 생각한다.

 

두꺼비집이 내려진 시대에 두꺼비집을 올리는 행위, 그 자체도 발톱을 키우는 일이리라. 무언가 꿈틀대는, 자신의 과거에 자신을 버려두지 않음을... 그러함을. 이 시를 읽으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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