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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도 무거워서, 너무도 어두워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정말로 화병에 걸려 쓰러질 것만 같아서... 전국민이 모두 울화병에 걸릴 정도로 무능한 모습을 보면서... 화사해야 할 봄날을 지옥으로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시집을 찾아보았다. 시라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 미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고른 시집이 안찬수의 "아름다운 지옥"

 

아름답다는 말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지옥에서도 희망을 보고 싶으니, 그래서 지옥에 가서 뭇중생들을 다 구하고 싶다는 지장보살도 있었으니... 제발 이 지옥에서도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서. 자신의 죄를 알고 인정하면 지옥 속에서도 최소한 아름다움은 만들어질테니. 조금은 지옥이 훈훈해질테니.

 

아름다운 지옥

 

나는 지옥으로 가련다

 

철로 둘러싼 산이 동쪽에 있는데

그 산은 깊고도 어두워

해와 달의 빛이 없다 한다

거기에 큰 지옥이 있으니

한 칸도 아니고 두 칸도 아니고

끝이 없는 지옥이다

 

지옥은 또 있으니

사각의 외로운 방이 자꾸만 작아지는 지옥

마음을 찌르는 반성의 화살이 쏟아지는 지옥

밑에서는 불을 때고 위에서는 용광로를 쏟아붓는 철판 위에서

하루도 잠들 날 없이 그리워해야 하는 지옥

지옥은 또 있으니

불을 뿜어대는 분화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지옥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쟁론해야 하는 지옥

피를 닦아내면서 다시 피를 흘려야 하는 지옥

아침부터 외쳐서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계속 외쳐야 하는 지옥

지옥은 또 있으니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너풀거리는 마음의 누더기가 채찍질하는 지옥

자기가 누어놓은 똥을 먹어야 하는 지옥

썩어들어가는 손을 잘라내면 다시 자라나는 손을 잘라내야만 하는 지옥

지옥은 또 있으니

혀를 뽑아내는 지옥

혀에 바늘을 꽂고 말을 해야 하는 지옥

혀로 땅을 갈아엎어야만 하는 지옥

혀로 갈아엎은 땅에 묻혀야만 하는 지옥

 

이런 지옥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으니

지옥문을 다 통과해도 다시 처음 문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장이여, 지장이여

나는 이미 내 죄근을 알고 있으니

나는 지옥으로 가련다

 

안찬수, 아름다운 지옥, 문학동네. 1996년. 49-51쪽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엘리어트가 말했다고 했지.

 

사월은, 꽃 피는 사월은 우리에게는 진달래와 같은 피가 생각나는 달이었지.

 

4·19로 대변되는 사월은 우리에게 피를 연상시켰던, 희생을 연상시켰던 달이었는데, 그럼에도 사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우리에게 희망을 준 달, 새롭게 민주주의에 대해서 알게 해준 달이었는데...

 

이제 사월은 정말로 잔인한 달이 되었구나!

 

생떼같은 목숨들이 바닷속에서 아직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5일을 보내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배 안에 있는데, 있는 줄을 알면서도 배 안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만 뱅뱅 돌던 5일. 그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보아야 했던 5일은 그야말로 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큰 잘못이 되어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우리 어른들이 저지른 잘못에 한창 봄을 누려야 할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생사도 모르는 채 그렇게 있어야 한다는 이 현실.

 

마치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는 양, 자신만은 도덕적인 양, 자신의 말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양, 저 높은 곳에서 우월한 도덕심을 지니고 있은 채 그냥 이런 아비규환을 내려다 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높은 자리일수록 책임은 무거워야 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높은 자리일수록 책임이 가벼워질까? 마치 자신은 책임이 없는데, 밑에서 다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할까?

 

이래저래 위에서부터 아래에서까지 총체적인 무능을 드러내고 있는 이 현실은 차라리 지옥이다. 지옥이라고, 이건 지옥이라고 생각을 하면 조금 인정이 되려나.

 

이 지옥에서, 어른들이 만들어낸 이 지옥에서 아이들만은, 제발 아이들만은 탈출하게 해달라고 기원을 하는데...

 

정말로 지옥에 가야 할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이제서야 봄에 도달한 그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겨울을 살고 있는 우리 어른들인데...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그런 사람들인데...

 

잔인한 사월... 정말로 잔인한 사월로 기억될 올 사월.

 

조금이라도 기적이 있다면... 정말로 기적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다시 이 아이들이 봄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지옥은 아이들의 몫이 아니다. 지옥이 있다면 그건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은 절대로 지옥을 경험해서는 안된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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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교육 잡지라고 할 수 있다.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계간지인데, 나올 때가 되면 많이 기다려진다. 어떤 인연인지 첫호부터 읽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꾸준히 읽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에서 배우는 점이 아직도 많다고 할 수 있고, 또 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떤 호를 읽어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이번 호는 저번 호에서 연령 대가 더 내려가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주제다. 정확히 이 책에 있는 제목으로 한다면 특집 기획이 "육아, 시장의 유혹을 넘다"이다.

 

저번 호는 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육아로 내려갔으니.. 어쩌면 정부에서 야심차게 시도하고 있는 "돌봄교실"이라는 육아(?) 방식에 비판의 칼날을 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부에서는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그럼 집에서 애를 키우면? 안 준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보낸다. 이러면 아이는 누가 키우지? 예전 개그콘서트에서 했던 유행어처럼, 소는 누가 키워? 가 아니라 아이는 누가 키우냐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차적인 사람은 바로 부모 아니던가. 오히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 보조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아이를 집에서 부모가 키우면 보조금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를 집에서 부모가 키울 수 있게, (키운다는 말이 좀 이상한데, 이 말 대신 함께 지낼 수 있게로 쓰자), 함께 지낼 수 있게 부모가 일에 매달려 가정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을 고쳐야 하고, 또 돈이 없어서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없는 가정을 위해서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마찬가지로 돌봄교실도, 아이를 학교에 늦게까지 남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일찍 퇴근하여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게 하는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런 정책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과 더불어 이번 호는 잘못된 육아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휩쓸리고 있나를 살피고 있다.

 

특히 병원에서부터 여러 협찬하는 회사까지 얽혀 있는 육아시장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이 가장 큰 시장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제 육아시장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기업들이 어른을 대상으로 하다가, 청소년으로 내려갔다가, 이제는 유아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한다고 한다. 유아에 대한 상품을 많이 팔기 위해서 병원을 이용하는 회사들이 많으며, 또 이들은 광고를 통해서 부모들의 불안을 조성해 자신들의 상품을 판다고 한다.

 

거기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다 알 것이고...

 

한 번 유이기때 이렇게 회사들의 상품과 관계를 맺은 사람은 그 관계를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유지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이 유추되어 더 모골이 송연해졌다.

 

우리는 아이들을 잘 키운다고 하지만, 그 때 잘 키운다는 말이 자신들의 뜻대로 아이들이 커줄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들의 본성대로 크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고 숱하게 간섭하게 되는 것이다. 또 불안에 떨기도 하고.

 

그러나 옛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세 딸에게 누구 복으로 이렇게 잘 사느냐라는 부모의 질문에 두 딸은 부모님 복이라고 해서 부모의 사랑을 받았지만, 내 복으로 산다고 말한 딸은 부모의 미움을 받아 내침을 당한다는 옛이야기. 부모 복으로 산다는 두 딸은 참으로 못나게 되었지만, 자신의 복으로 산다고 말한 딸은 잘 살게 되었다는 결말을 갖고 있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정말로 잘 사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세상을 열어가는 아이이다. 그것이 잘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가 지금 어떻다고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복이 있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아이의 인생이 있다. 그 인생에 자신의 인생을 대입해서는 안된다. 이게 이번 호에서 하는 얘기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아이는 늦든 빠르든, 똑똑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다. 그런 소중한 존재가 부모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모두 소중한 존재들이 잠시 동안 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태, 그것이 바로 가족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바로 가족의 행복이 된다. 가족의 행복, 그것은 곧 사회의 행복이 된다. 이런 가족이 된다면 아이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면서 공부만이 살 길인양 강요하지는 않을터다.

 

이런 가족이 많다면 우리나라 사교육에서 대표적으로 행해지는 선행학습은 굳이 사회구성원들이 사회협약을 맺어(이번 호에 나온다 ) 하지 말자고 결의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없어진다.  무엇이 아이의 행복인지 아는 부모들이 선행학습을 강요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게 해준 이번 호. 여러 가지 글들이 있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글이다. 그럼에도 늘 특집은 우리 사회의 문제와 맞물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 땅의 사람들, 현재 부모이거나 부모였거나, 부모일 사람들이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아이의 행복은 무엇인지,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번 호를 통해서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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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목련꽃이 환하게 피었다.

순백의 아름다움.

그 옆에 산수유가 노랗게 피었다.

조금 옆 길에는 개나리가 피어 있고,

며칠 더운 날씨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고...

 

비가 내렸다.

꽃비가 되었다.

하얀 목련이 땅에 누워 있다.

이제 자신의 시대는 끝난 듯.

순백의 아름다움이 절정을 맞이한 듯

목련은 그렇게 서 있다.

목련꽃으로 차를 달여 마시면 그 향기가 온 몸으로 퍼지는데...

 

다시 봄.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자연의 이치는 이렇듯 어김이 없다.

우리네 삶도 이래야 하는데.

아니지, 우리네 삶은 우리의 자연처럼 이렇게 순환되어서는 안되지.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겨울을 또 겪어야 하니.

겨울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봄이 오기 전에 사라질 약한 존재들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인데.

누구는 시련을 겪어야만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삶 앎. 이것이 사람이라고.

세상에 겨울이 없는 봄은 그냥 봄이고 말듯이

시련이 없는 삶은 그냥 삶일 뿐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봄인가?

우리에게 봄은 왔는가?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물었지만

우리는 들을 빼앗기지도 않았는데

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지. 우리가 자연에게서 봄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며칠, 이상 고온이 지속되어 도대체 봄이 그냥 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는데.

 

이응인의 시집을 읽으며, 봄은 그렇게 가지 않음을 느꼈다.

이 시집에 담겨 있는 자연과의 어울림

자연에 공연히 사람자국을 남김의 허무함.

자연을 닮은 아이들의 모습.

그런 삶의 모습이 담담히 담겨 있는 시집

이 시집과 더불어 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자연은 이렇듯 무리 없이 다가오는데

왜 사람의 삶은 이렇듯 턱이 있고 멈춤이 있는지.

이 봄. 자연의 봄과 나의 봄이 하나로 만나게 하고 싶다.

시집을 읽으며 봄을 느낀다.

적어도 나는 어린 꽃다지가 나에게 다가오는데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

 

어린 꽃다지를 위하여

 

  보름 전에 보낸 편지 이적지 못 받았는가. 구들장만 지고 누워 있지 말고 좀 일어나봐 이 사람아. 그 어린 것들이 벌써 고개 넘어 자네 밭두렁쯤 가고 있을 거구만. 인자 동구에나 갔을지도 몰라. 볼에 솜털 보송보송한 그 어린 것들이 보고 싶지도 않은가. 자네도 참 해도 너무하이. 세상에 그 어린 것들이, 아직 털도 덜 마른 것들이 자네 찾아간다고 그 먼길을 나섰는데 이 무정한 사람아.

 

이응인, 어린 꽃다지를 위하여. 신생. 2006년. 78쪽

 

힘들어도, 아무리 힘들어도 구들장을 지고 누워 있지는 않겠다. 그 어린 꽃다지들도 이렇게 봄을 이야기하러 다가오고 있는데... 땅을 내려다보면 지금 제비꽃도 수줍게 꽃을 피우고,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는데...

 

세상이 힘들어도, 봄은 있음을... 그래, 꽃다지를 마중나가야지. 봄을 마중나가야지. 이제 구들장을 박차고 땅에 발을 디뎌야지. 이응인이 시 '발바닥이 하는 말'처럼 발로 걸어서 마중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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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사서 읽고 싶었던 시집.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때를 놓치고. 결국 나온 지 8년이 지나서야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시집.

 

이 시집이 나올 때 꼭 사서 봐야지 하게 하는 마음이 들게 했던 것은 시로 쓴 시론이라는 광고 문구였다.

 

시인이 시란 자고로 이래야 한다고 시로 썼다는데, 어떻게 썼는지 궁금하고, 많은 시인들이 시에 대하여 또 시인에 대하여 시로 썼지만, 시 가르치기에 대하여 시로 쓴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집을 구해 읽기는 쉽지 않은데...

 

헌책방에 갔는데... 이 시집에 눈에 딱 들어온 것. 망설이지 않고 집어들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가 있는가.

 

이것이 헌책방에 다니는 기쁨 중 하나 아니겠는가.

 

마음에 담아 놓았던 책들을 구할 수 있다는 기쁨. 그것도 싼 가격에. 한참을 잊고 지냈던 그 책들을 헌책방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고, 또 다른 사람의 손때가 묻은, 이미 다른 사람의 마음에 꽂혀 있던 책을 내가 만나게 된다는 것.

 

시집의 앞부분에 실린 시들보다 역시 내게 기대를 걸게 했던 시가 마음에 와닿았다. 목적을 달성한 셈.

 

한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만 발견해도 그 시집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집에서는 한 편을 넘어서 서너 편이 되니... 대만족이다.

 

그런 시 중에서 '기침이 난다' 이 시는 시를 가르치는 일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의 평가와 관련지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다. 마음이 아픈, 그래서 기침을 할 수 있는, 무언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뱉어내야만 하는.

 

김수영은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고 했는데... 강희근은 기침이 난다고 했다. 기침이 난다. 내 몸 속에서 거부하는 몸짓이 자연스레 일어나고 있는 것.

 

우리는 이런 부조리한 평가를, 부조리한 교육을 온몸이 거부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깨달음이 교육의 변화로, 평가의 변화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시다. 그런 시집이다. 이 시집의 마지막 부분은 그래서 읽을 만하다. 국어교사들뿐만이 아니라, 교육에, 또 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기침이 난다

- 강희근

 

   내가 대학생일 때 비평가 J씨를 만났는데, 대뜸 “O대학 P교수가 시를 채점하는데, 아니 P시인이 시를 채점하는데 616263점 이렇게 하고 있어요. 시가 그렇게 채점이 되는 거예요? 그게 양심 있는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차라리 시인을 포기하든지……하고 말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때 사람을 감정으로 비판하는 것 빼고는 맞는 말씀이라고 맞장구 쳐 드리고 싶었지만 우리나라 중견 시인에 관한 일이라 머리만 긁어 어정쩡, 넘어갔다

   놀라운 것은 내가 지금 O대학 P교수, 그 시인처럼 시를 채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개발한 맛보기 이론이나 아침마다 졸작 생산에 목숨을 끌어 넣고 있는 일이나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내 시의 식구들을 생각해 보면 거기 616263점이 놓여질 수 있는 일인가 아, 이 시 채점의 모순, 줄 세우는 껄끄러움, 기침이 난다

   스스로의 잠자리 등 같은 무능, 기침이 난다 창작론’ ‘문학의 이해시간에 참새 입으로 줄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함께 시를 읊었던 저 사랑하는 무공해의 새순들, 그 머리 위에다 점수를 갖다 얹고, 교수라고 함부로 12점 차등을 주어 놓고, 제도 때문에, 제도가 이유야……하고 그냥 저냥 넘어온 그 확실한 직무유기, 기침이 난다

   태형 1천대 이상 기소 가능한 죄인 너 시인이냐, 대학생일 때 친구 조정래가 화가 나 내게 말했던 강희근이 너 시인이냐?”하고 다그쳤던 그 냄비 뚜껑 같던 말, …… …… 시인이냐 기침이 난다

(강희근, 기침이 난다. 한국문연. 2005.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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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땅과 하늘이 만나는 곳. 다른 말로 하면 땅의 끝. 그리고 새로운 공간의 시작.

 

지평선에 서 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다른 곳을 바라본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른 곳으로 비약을 하기 위한 장소. 그곳이 바로 지평선이다.

 

'지평선에 서서'는 굳이 이렇게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서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지평선을 땅으로 해석해도 된다.

 

땅에 서 있다는 것은 곧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얘기다. 현실, 그것은 바로 우리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고, 이러한 공간 중에서 근원적인 공간으로 시인은 '밭'을 들고 있다.

 

'밭'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공간이자, 우리의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공간이고, 우리의 노동력으로 달라지는 공간이다.

 

이 시집은 "지평선에 서서"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밭시 연작이라고 봐도 된다. 1부가 밭시의 연작으로 되어 있고, 밭에서 시인은 온갖 생명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밭'

 

어느 사이 우리는 이 밭에서 얼마나 멀어졌던가. 텃밭이라고 하여 도시에서도 요즘은 밭을 일구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네 삶의 일부분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바로 '밭'이다.

 

'밭'과 멀어질수록 우리는 땅과 멀어지고 땅과 멀어질수록 척박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결국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땅이다.

 

그런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는 전망이 밝지 않다. 땅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살림'의 대상이다.

 

그래서 시인은 '밭'에서 시작한다. 밭은 이곳과 저곳을 가르는 공간이자 이어주는 공간이고, 삶의 종착점이자 출발점이다.

 

지금 온갖 추상적인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 말들 중에서 밭만큼 진실한 말이 어느 말인지 찾아야 한다.

 

살림의 말, 그 말은 바로 '밭의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밭'을 아는 사람, 그를 시인은 농부라고 한다. 그런 농부는 우리 시대의 성자다. 시를 보자.

 

무신론자

- 2000년 밭詩 20

 

그는 종교가 없다

그는 기독교도 불교도 모른다

마호메트를 아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먹는 무슨 과자냐?고

머리를 긁적, 오히려 묻는다

 

하지만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향하여서는 경배한다

 

물사마귀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그는 농부다.

 

김준태. 지평선에 서서. 문학과지성사. 1999년. 31쪽

 

이렇게 밭과 어울리는 사람. 그는 농부다. 성자다. 우리는 모두 농부다. 그런 농부들, 그런 사람들. 그 사람들을 시인은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누구든 세상의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 귀하디 귀한 존재...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모두 하늘이다. 그 하늘과 같은 존재, 바로 밭이다. 그리고 밭에는 모든 것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밭이고 하늘이고 도서관이다.

 

사람의 몸을 노래함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무진장한 도서관이다

장서량이 수천만 권을 넘는

사람의 육신은 그리고 저마다

별빛을 머금어 반짝이는 영혼은

아무도 허물어뜨릴 수 없는

지상과 하늘 사이 불켜진 도서관이다

오오 읽어도 읽어도 바닥이 나지

않는 사람의 따스한 몸과 그의 눈물

너무나도 벅찬 기쁨과 숨결의 드높음!

혹은 깊음이여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어린아이에서부터 죽음을 앞둔

노인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누구나

모두 수천만 권의

장서량을 내장한

도서관이다.

 

김준태, 지평선에 서서. 문학과지성사. 1999년.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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