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고를 때 어떤 작가의 책인가, 대략적인 내용과, 책의 제목, 그리고 책의 인쇄와 표지등을 보고 구매한다. 물론 책방을 들어설때는 이미 내가 사고자 하는 책의 목록을 가지고 가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책을 구매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알라딘이나 인터파크의 장바구니에는 몇백권의 책이 들어 있지만 게을러 구입하지 못하고 어느날을 잡아 대량 구입하곤 한다.
이책은 현장에서 즉흥적인 구매를 한것이다.
표지가 선명해 책장에 꽂혀있으면 다른 책들과의 등거리 조화가 맞아 시각적으로 지루하지 않음도 나름대로의 책을 고르는 방법이 되었다.
유치원 아이들이 색을 좋아 한 것처럼,
늦은 밤 지하철의 어둑한 불빛에서 아무런 생각없이 중간까지를 읽었는데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은근히 흥미를 끌기 시작해서 골방에 박혀 끝까지 읽고 바로 review를 일기처럼 쓴다.
하루의 생활보다는 글을 읽고 쓰는 재미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뭔가 성취한 느낌, 희열, catharsis가 나에게는 있다

줄거리는 공항의 대합실에서 비행기의 연착으로 인해 두 남자간에 대화를 다룬 소설이다
제롬 앙퀴스트와 그의 처인 이사벨을 강간하고 살인한 텍스트로 텍셀간의 거침없는 대화 중간중간에 나오는 유명철학자들의 명언과 책들의 소개를 판소리의 아니리 장단처럼 빗대어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기도 했다.
기욤의 『심리체계론』 디트리히의 『슬픈 사람들의 행복』『도시 견습』파스칼의 『팡세』의 기학학의 정신과 섬세의 정신에 나온 구절로 ˝진정한 도덕은 도덕을 비웃는다˝라든가 스피노자의 『에티카』등의 심리철학적 의미를 부가해 서로 심하게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누가 범인인지를 착각할 정도로 혼란스러워 졌다.
살인을 인정하면서도 책임을 앙퀴스트에게 논리적으로 전가하고 심리적 학대를 빌미로 ˝화장법이란 보편적 질서의 학문이자 이 세상을 결정하는 지고의 도덕률이다˝ 이는 단순한 미용이라는 의미의 장을 벗어나 일종의 가면 즉 위장을 암시하며 피해자를 괴롭히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는 안전범죄를 노려 흔적을 감추고 없을 텐데 강간을 하고 십년후에 나타나 다시 살인을 저지른 것을 사랑때문이라고 말하는 텍셀은 내안의 당신과 당신안의 나는 같은 동일인으로 사람의 표피를 뚫고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정신의 흐름을 하나로 합리화시켜 버리고,텍셀의 거센저항은 파스칼과 랭보를 빗대어 자아란 가증스런 거라고 했고 나는 곧 타자라며 가학성 정신으로 대화는 마무리 되어진다.
하나의 철학 콩트로도 볼 수 있는 이 책은 사르트르의 ˝지옥, 그것은 곧 타자다˝라는 명제를 여지 없이 반박하는 이책의 저자인 아멜리 노통은 지옥은 타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는 어두운 결말로 적의 화장법에 출구를 막아버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고민하며 읽으라는 행복을 던져주는 작가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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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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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 시지에(DAI SIJIE 載思杰)1954년 중국에서태어나
문화대혁명기간에 `부르조아 지식인으로 지목돼 4년동
안 산골에서 재교육을 받은 시절을 자전적 소설로 쓴 책
이다.
중국발 재교육이란 1968년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
이자 혁명의 기수인 마오쩌뚱 주석은 나라를 일대 변혁
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모든 대학이 휴교했고 젊은 지식
인들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재교육을 받기위해 농촌으로 추방했던 사건으로 첩첩산중 미개한 지역에 주인공인 나
와 뤄가 배치되어 생활했던 것으로 `하늘긴꼬리닭`이란 이름을 붙인 마을에 자명종 시계를 가지고 간 두 주인공
은 촌장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마치 부시맨에서 콜라병을 가지고 신처럼 모시듯이 자명종은 신기의 대상
이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처참한 광부생활은 물론 농사일까지 해야 했으며 책을 읽으려고 해도 아무런 책이 없어 읽을 수도 없었다.
<갱도안에서 땅바닥을 응시하던 내 눈에는 흔들거리는 남포 불빛 밑에서 살겠다는 의욕에 떠밀려, 천천히 기어
가는 불쌍한 개미 한 마리를발견했다> 그들이 그 꼴이
었다.
그 당시 옷을 만드는 이는 마을을 순회하며 옷을 지어 주었으며 재봉사의 딸에게 연정을 느낀 뤄는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을 구전으로 전해
주는 역활과 북한의 꽃파는 처녀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마을에서 인기를 얻었고 바느질 처녀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
꽃파는 처녀의 마지막 대사인 ˝정성이 지극하면 돌위에도 풀이 난다는 속담이 있는데, 꽃 파는 처년가 들인 정성은 충분하지 않단 말입니까?˝로 마무리를 하면 촌장을 비롯
한 청중들은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러던 중 또다른 안경잡이는 아랫마을에서 재교육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그에게서 발자크의 『위르쉴 미루에』​을 빌려 독파하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
으며그 내용들을 영화처럼 마을 사람들에게흥미진진하게 전달해 주었다.
같은 부르조아인 안경잡이는 당원 복귀를 위해 비밀리에 책과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부모로 부터 받아 그 지역의 민요를 수집하는 일을 하면서가난한 방앗간 영감을 찾아
가 `방아꾼의 옥소금탕` 이라는 화주를 마시면서 안주가 없어 소금물에 돌을 넣어 건져서 혀로 굴리고는 바닥에 뱉어낸 안주와 이들이 득실거리는 영감의 침대에서 엄청난 양의 이들이 피를 빨아먹기도 하고 밤에도 벗지 않은 안경의 유리알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하는 고난을 무릅쓰고 구하려 했지만 실패한 사실을 알고 뤄와 내가 시도해 얻어온 것이 고작

˝말해봐,
늙어빠진 이가
두려워하는것은 뭐지?
끓는 물,
끓는 물을 두려워하지.
그럼 젊은 비구니가
두려워하는 것은 뭐지?
늙다리 중을 두려워하지
오직 늙다리 중만.

이러한 음담패설만을 가지고 `하늘긴꼬리닭`에 도착한 나와 뤄는 안경잡이에게 혼쭐이 나지만 안경잡이는 기지를 발휘해

˝말해봐,
하찮은 부르주아들이
두려워하는것은 뭐지?
프로롤레타리아의 흥분한 물결˝로

개사를 해 나와 뤄의 분노를 사게 했지만 책을 얻어 읽을 욕심으로 참았지만 끝내 얻지 못하고 틈을 노리던 중 침입했으나 안경잡이의 어머니가 안경잡이를 데리러 와
서 능수능란하게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돌아가고 돌아가다가 위로 올라가서 찌르고는 원상태로 돌아왔다가 사라지는 바늘의 움직임 때문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보고 감탄해 도망쳐 나왔다.
안경잡이가 떠나기 전 나와 뤄는 안경잡이의 가방을 훔쳤다. 그속에는 발자크의 소설을 비롯한 믹토르 위고, 스탕달, 뒤마, 플로베르, 보들레르, 로맹롤랑, 루소, 톨스토이,고골리,도스토에프스키, 디킨스, 키플링,에밀리 브론테 같은 책들이 가득했지만 훔쳐오지는 못했다.
그들이 그 책을 읽고 그 마을을 계몽했다면 하는 아쉬움
을 가지고 미완성으로 결과를 독자에게 맡기고 하늘 긴꼬리닭에 나오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며 마무리 하는 풍자소설로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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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선택한것은 남아프리카와 백인들로 부터
받은 박해를 뜻한 책의 제목도 그렇지만 1993년 [보호주의자]란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아프리카에서는 여성최초로 수상한 나딘 고디머의단편이 실려 있기에 구입하게 되었다.
나의 독서 스타일은 시는 읽더라도 단편은 지나치는
편이라서 더더욱 그랬다.
남아프리카의 광대한 곳에서 몇몇작가들만이 대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곳이 인종적,종교적  그리고 언어적으로 다양한 배경으로 통합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apartheid라는 인종차별 정책 으로 인한 구조적 모순과 식민지배의 착취에 기준을 두고 읽혀지는 보편적인 내용이었다.
법의 시각에서도 나의 동료에게도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서 지옥에 가서라도 인간대접을 받을수 있을까를 의문하는 그들의 심정을 단편으로 써진 아프리카를 알리
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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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에 읽었던 책이다.
재미없고 나는 내 자신과의 약속에서 읽어나가는 책이었지만 참 지루했던것 기억으로 책의 마지막 review를 보고 독서일기에 옮긴다.
임레 케르테스의 작품세계는 인간성이 말살된 오늘날의 야만적인 사회 구조에서 개인이 어떻게 생존해 나가는 지를 화두로 소년기에 강제 수용되었던 체험을 자전적 소설로 200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살아 나가기 위한 가능성과 전망을 덤덤하게 표현하는 묘사는 지루하기도 하지만 깊이가 있는 작품으로 체제와는 다른 독자적 방식으로 오랜시간에 걸쳐 화려한 조명을 받은 책이 되었다.
주인공 죄르지는 견디기 힘든 수용소에서 살아 남기 위한 처신과 자기 절제로 ˝극한 상황에서의 삶의 의지를 잃지 않는 것.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 이것만으로도 행복이다˝라며
운명이라고 치부하며 체념적으로 받아 들이며 유대인들의 종교관에서 바라본 신의 섭리를 적용하며 죄르지는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고 운명이라는 이름 하에 망각된 동시대인들의 책임을 상기킨다.
죄르지에겐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매순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가능성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어디선가 뭔가 새로운 것을, 그것도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시작한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체험했다. 당분간은 착실한 수감자가 되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미래의 일이었다. 이것이 대체로 내 기본 입장이었고 나는 그것에 맞추어 처신을 했다.˝
결국 광기의 시대를 산 모든 인간들은 변화를 겪었으나 그들이 변화를 겪는 것은 운명의 힘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다.
야만의 문화는 운명의 힘이 아니라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이며,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의 적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 공동의 적이 유대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려내고 있다.
Auschwitz에서의 처절한 삶을 ˝행복은 나의 행복은 짐이 가볍다는 것이었다˝라는 말로 죄르지가 지닌 삶의 의지가 끔직한 상황에 함몰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지상의 어떤 장소나 시간 속에서 살아가든,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로 사람의 정신적 의지에 따라 삶의 빛깔이 달라짐을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은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자유에 대해 꿈꾸고 있었다. 소중한 기억과 만남을 기억하고, 미래에 다시 맞고 싶은 찬란한 순간을 되새기며 고난을 이겨내는 수단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죄르지는 자유의 몸이 된 뒤 부다페스트의 길 모퉁이에 앉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살아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모든 관점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완전히 자연스럽게 살아가지 못하는 부조리는 없다.
이제 내가 갈 길에 피할 수 없는 덫처럼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Auschwitz의 굴뚝에서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악과 끔직한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내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데도 말이다.
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다음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말할 것이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면......
현대에Auschwitz같은 수용소는 없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Auschwitz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당혹감에 빠지게 된다. ˝사회적 변화는인간이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운명과도 같이 엄습해 온다. 이러한 사회 구조의 억암속에서도 운명이 없다고 부르짖을 수 있간은 참으로 위대하다˝
Imre Kertesz사회적제도와 압박아래에서 희망과 꿈을 잃지 않는 개인의 고귀한 품성으로 우리에게 삶을 위해 당당히 운명을 거부하는 스스로 운명이 되고자 하는 위대한 인간상을 제시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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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임레 케르테스 지음, 정진석 옮김 / 다른우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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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노벨 문학상의 작품은 대게 중고서점에서 많이 취급한다.
출판한지가 오래도 되었지만 독자들이 오래된 책을 찾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알라딘에 가면 가장 많은 문학상 작품은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Imre Kertesz는 헝가리 출신으로 대표작으로는 운명, 좌절,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를 삼부작으로 불려지고 청산은 운명 3부작의 완결편적인 성격으로 운명4부작으로 이해하고 책을 읽으면 연결이 되지 않을
까 싶다.
줄거리는 존재의 청산으로
˝만일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
이 말은`나 자신이 곧 운명˝ 이라는 뜻이다.˝
주인공 케세뤼 와 B는 동일 인물이면서도 서로 다른 인물로 9년전 자살을 한 B가 쓴 청산이라는 희곡 작품에서 주인공 케세뤼가 동명으로 진술하는 내용이다.
B가 쓴 희곡의 내용과 현실의 케세뤼가 하는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작품에서 케세뤼는 Auschwitzd에 끌려간 B와는 달리 유대인이 아니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두사람의 동일성을 이해하는 데 큰 장벽은 되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가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詩人은 모두 유대
인이다` 라는 말은 시인은 수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며 핍박받았던 유대인과 같이 `추방 받은 자` , `소외된 자`의 시각에서 시를 쎠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유럽 공산주의가 `청산`되고 주인공 케세뤼가 다니던 출판사가 청산될 위기에 전쟁과 다양한 독재 시대를 겪으면서 성과 인품과 영혼까지 청산된 상황에서 또다른 주인공 B는 holocaust의 생존자로서 Auschwitzd의 trauma의 상흔에 존재의 청산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
다.
작품에서는 쇼펜하우어적 염세론과는 다른 자살을 선택
한 B는 살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 즉 자신의 DOPPLEGANGER 인 케세뤼에게
남긴 유작을 통해 강한 삶의 의욕만이 존재의 청산임을 웅변한다

˝죽음은 간단한 거야
삶이란 단 하나밖에 없는 수용소
인간을 위하여
신에 의해서 지상에 세워진 것
이 비참한 세계에서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고
미래도 과거도 정지된 삶이여
내가 여기서 배운 것은
반역은 곧 `생명을 이어가는 것`
크나큰 항명은
우리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는 것
동시에 크나큰 순종은
우리가 스스로 죄인이라는것
유일한,
기품 있는 자살의 수단은
바로 삶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곧
삶을 영위하는것과 똑같지
매일 새로이 시작하고
매일 새로이 살아가고
매일 새로이 죽자
​B는 케세르가 내내 찾아 헤매이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한 B의 걸작품이 바로 우리의 현실임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가 현실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부르는,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가 애매하듯이 케르테스의 모든 작품들도 애매한 전개가 특징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케세뤼가 노숙자들을 바라보면서 한때 그들
을 동정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노숙자가 바로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유대인의 형상이라고 이해한다면 우리 모두 유대인이 될 수 있다는 작품에서 새벽빛이 어스름하게 밝아오고 시간에도 땅거미가 깔리는 시간
에도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모니터가 꺼지고 전원만 깜박거리는 현상의 환경을 두고서
˝계속할까요?˝
˝그만할까요?˝로 충신적인 기계의 질문으로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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