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에 읽었던 책이다.
재미없고 나는 내 자신과의 약속에서 읽어나가는 책이었지만 참 지루했던것 기억으로 책의 마지막 review를 보고 독서일기에 옮긴다.
임레 케르테스의 작품세계는 인간성이 말살된 오늘날의 야만적인 사회 구조에서 개인이 어떻게 생존해 나가는 지를 화두로 소년기에 강제 수용되었던 체험을 자전적 소설로 200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살아 나가기 위한 가능성과 전망을 덤덤하게 표현하는 묘사는 지루하기도 하지만 깊이가 있는 작품으로 체제와는 다른 독자적 방식으로 오랜시간에 걸쳐 화려한 조명을 받은 책이 되었다.
주인공 죄르지는 견디기 힘든 수용소에서 살아 남기 위한 처신과 자기 절제로 ˝극한 상황에서의 삶의 의지를 잃지 않는 것.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 이것만으로도 행복이다˝라며
운명이라고 치부하며 체념적으로 받아 들이며 유대인들의 종교관에서 바라본 신의 섭리를 적용하며 죄르지는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고 운명이라는 이름 하에 망각된 동시대인들의 책임을 상기킨다.
죄르지에겐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매순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가능성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어디선가 뭔가 새로운 것을, 그것도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시작한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체험했다. 당분간은 착실한 수감자가 되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미래의 일이었다. 이것이 대체로 내 기본 입장이었고 나는 그것에 맞추어 처신을 했다.˝
결국 광기의 시대를 산 모든 인간들은 변화를 겪었으나 그들이 변화를 겪는 것은 운명의 힘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다.
야만의 문화는 운명의 힘이 아니라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이며,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의 적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 공동의 적이 유대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려내고 있다.
Auschwitz에서의 처절한 삶을 ˝행복은 나의 행복은 짐이 가볍다는 것이었다˝라는 말로 죄르지가 지닌 삶의 의지가 끔직한 상황에 함몰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지상의 어떤 장소나 시간 속에서 살아가든,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로 사람의 정신적 의지에 따라 삶의 빛깔이 달라짐을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은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자유에 대해 꿈꾸고 있었다. 소중한 기억과 만남을 기억하고, 미래에 다시 맞고 싶은 찬란한 순간을 되새기며 고난을 이겨내는 수단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죄르지는 자유의 몸이 된 뒤 부다페스트의 길 모퉁이에 앉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살아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모든 관점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완전히 자연스럽게 살아가지 못하는 부조리는 없다.
이제 내가 갈 길에 피할 수 없는 덫처럼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Auschwitz의 굴뚝에서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악과 끔직한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내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데도 말이다.
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다음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말할 것이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면......
현대에Auschwitz같은 수용소는 없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Auschwitz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당혹감에 빠지게 된다. ˝사회적 변화는인간이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운명과도 같이 엄습해 온다. 이러한 사회 구조의 억암속에서도 운명이 없다고 부르짖을 수 있간은 참으로 위대하다˝
Imre Kertesz사회적제도와 압박아래에서 희망과 꿈을 잃지 않는 개인의 고귀한 품성으로 우리에게 삶을 위해 당당히 운명을 거부하는 스스로 운명이 되고자 하는 위대한 인간상을 제시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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