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선택한것은 남아프리카와 백인들로 부터
받은 박해를 뜻한 책의 제목도 그렇지만 1993년 [보호주의자]란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아프리카에서는 여성최초로 수상한 나딘 고디머의단편이 실려 있기에 구입하게 되었다.
나의 독서 스타일은 시는 읽더라도 단편은 지나치는
편이라서 더더욱 그랬다.
남아프리카의 광대한 곳에서 몇몇작가들만이 대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곳이 인종적,종교적  그리고 언어적으로 다양한 배경으로 통합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apartheid라는 인종차별 정책 으로 인한 구조적 모순과 식민지배의 착취에 기준을 두고 읽혀지는 보편적인 내용이었다.
법의 시각에서도 나의 동료에게도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서 지옥에 가서라도 인간대접을 받을수 있을까를 의문하는 그들의 심정을 단편으로 써진 아프리카를 알리
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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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에 읽었던 책이다.
재미없고 나는 내 자신과의 약속에서 읽어나가는 책이었지만 참 지루했던것 기억으로 책의 마지막 review를 보고 독서일기에 옮긴다.
임레 케르테스의 작품세계는 인간성이 말살된 오늘날의 야만적인 사회 구조에서 개인이 어떻게 생존해 나가는 지를 화두로 소년기에 강제 수용되었던 체험을 자전적 소설로 200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살아 나가기 위한 가능성과 전망을 덤덤하게 표현하는 묘사는 지루하기도 하지만 깊이가 있는 작품으로 체제와는 다른 독자적 방식으로 오랜시간에 걸쳐 화려한 조명을 받은 책이 되었다.
주인공 죄르지는 견디기 힘든 수용소에서 살아 남기 위한 처신과 자기 절제로 ˝극한 상황에서의 삶의 의지를 잃지 않는 것.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 이것만으로도 행복이다˝라며
운명이라고 치부하며 체념적으로 받아 들이며 유대인들의 종교관에서 바라본 신의 섭리를 적용하며 죄르지는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고 운명이라는 이름 하에 망각된 동시대인들의 책임을 상기킨다.
죄르지에겐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매순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가능성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어디선가 뭔가 새로운 것을, 그것도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시작한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체험했다. 당분간은 착실한 수감자가 되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미래의 일이었다. 이것이 대체로 내 기본 입장이었고 나는 그것에 맞추어 처신을 했다.˝
결국 광기의 시대를 산 모든 인간들은 변화를 겪었으나 그들이 변화를 겪는 것은 운명의 힘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다.
야만의 문화는 운명의 힘이 아니라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이며,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의 적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 공동의 적이 유대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려내고 있다.
Auschwitz에서의 처절한 삶을 ˝행복은 나의 행복은 짐이 가볍다는 것이었다˝라는 말로 죄르지가 지닌 삶의 의지가 끔직한 상황에 함몰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지상의 어떤 장소나 시간 속에서 살아가든,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로 사람의 정신적 의지에 따라 삶의 빛깔이 달라짐을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은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자유에 대해 꿈꾸고 있었다. 소중한 기억과 만남을 기억하고, 미래에 다시 맞고 싶은 찬란한 순간을 되새기며 고난을 이겨내는 수단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죄르지는 자유의 몸이 된 뒤 부다페스트의 길 모퉁이에 앉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살아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모든 관점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완전히 자연스럽게 살아가지 못하는 부조리는 없다.
이제 내가 갈 길에 피할 수 없는 덫처럼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Auschwitz의 굴뚝에서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악과 끔직한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내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데도 말이다.
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다음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말할 것이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면......
현대에Auschwitz같은 수용소는 없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Auschwitz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당혹감에 빠지게 된다. ˝사회적 변화는인간이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운명과도 같이 엄습해 온다. 이러한 사회 구조의 억암속에서도 운명이 없다고 부르짖을 수 있간은 참으로 위대하다˝
Imre Kertesz사회적제도와 압박아래에서 희망과 꿈을 잃지 않는 개인의 고귀한 품성으로 우리에게 삶을 위해 당당히 운명을 거부하는 스스로 운명이 되고자 하는 위대한 인간상을 제시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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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임레 케르테스 지음, 정진석 옮김 / 다른우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노벨 문학상의 작품은 대게 중고서점에서 많이 취급한다.
출판한지가 오래도 되었지만 독자들이 오래된 책을 찾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알라딘에 가면 가장 많은 문학상 작품은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Imre Kertesz는 헝가리 출신으로 대표작으로는 운명, 좌절,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를 삼부작으로 불려지고 청산은 운명 3부작의 완결편적인 성격으로 운명4부작으로 이해하고 책을 읽으면 연결이 되지 않을
까 싶다.
줄거리는 존재의 청산으로
˝만일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
이 말은`나 자신이 곧 운명˝ 이라는 뜻이다.˝
주인공 케세뤼 와 B는 동일 인물이면서도 서로 다른 인물로 9년전 자살을 한 B가 쓴 청산이라는 희곡 작품에서 주인공 케세뤼가 동명으로 진술하는 내용이다.
B가 쓴 희곡의 내용과 현실의 케세뤼가 하는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작품에서 케세뤼는 Auschwitzd에 끌려간 B와는 달리 유대인이 아니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두사람의 동일성을 이해하는 데 큰 장벽은 되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가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詩人은 모두 유대
인이다` 라는 말은 시인은 수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며 핍박받았던 유대인과 같이 `추방 받은 자` , `소외된 자`의 시각에서 시를 쎠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유럽 공산주의가 `청산`되고 주인공 케세뤼가 다니던 출판사가 청산될 위기에 전쟁과 다양한 독재 시대를 겪으면서 성과 인품과 영혼까지 청산된 상황에서 또다른 주인공 B는 holocaust의 생존자로서 Auschwitzd의 trauma의 상흔에 존재의 청산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
다.
작품에서는 쇼펜하우어적 염세론과는 다른 자살을 선택
한 B는 살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 즉 자신의 DOPPLEGANGER 인 케세뤼에게
남긴 유작을 통해 강한 삶의 의욕만이 존재의 청산임을 웅변한다

˝죽음은 간단한 거야
삶이란 단 하나밖에 없는 수용소
인간을 위하여
신에 의해서 지상에 세워진 것
이 비참한 세계에서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고
미래도 과거도 정지된 삶이여
내가 여기서 배운 것은
반역은 곧 `생명을 이어가는 것`
크나큰 항명은
우리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는 것
동시에 크나큰 순종은
우리가 스스로 죄인이라는것
유일한,
기품 있는 자살의 수단은
바로 삶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곧
삶을 영위하는것과 똑같지
매일 새로이 시작하고
매일 새로이 살아가고
매일 새로이 죽자
​B는 케세르가 내내 찾아 헤매이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한 B의 걸작품이 바로 우리의 현실임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가 현실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부르는,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가 애매하듯이 케르테스의 모든 작품들도 애매한 전개가 특징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케세뤼가 노숙자들을 바라보면서 한때 그들
을 동정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노숙자가 바로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유대인의 형상이라고 이해한다면 우리 모두 유대인이 될 수 있다는 작품에서 새벽빛이 어스름하게 밝아오고 시간에도 땅거미가 깔리는 시간
에도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모니터가 꺼지고 전원만 깜박거리는 현상의 환경을 두고서
˝계속할까요?˝
˝그만할까요?˝로 충신적인 기계의 질문으로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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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Knew if stayed long enough, something this would happen˝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깨에 힘 빼고 툭 던진 이 한마디
말로 더 유명한 BERNARD SHAW 의 묘비명을 기억할 것이다.
인류문명을 크게 경제, 정치, 과학, 교육, 종교로 분류해 부족한 부분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이 완전
히  현대적인 교육을 자발적, 합리적, 미학적 교육을 통해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치인
들에게 강력하게역설했다.
경제편 에서는  노동자든 노동기피자든 사람이라면 누구
나 하루에 8시간은 자야하고 적어도 2시간 이상을 먹고 입고 씻고 이동하는데 사용하고 14시간동안 재화를 생산하고 용역을 제공하는 데 사용하는데 정치가들은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하고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것이 인간사회의 기본
윤리였지만 사회는 상류층과 중류층  그리고 문맹인 하류층으로 성립되어 하류층에 속하는인구는 다른 두 계층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았고하류층은 가난하고 무지하여  정치활동을 할만한 여가를 가질 수 없었으며 막대기와 돌멩이가 유일한 무기였고 파업과 폭동 말고는 아무런 전술도 가지지 못함이 반복되어 부자가 미덕을  갖추는 것은쉬운 일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미덕을 갖
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구조속에서 빈곤을 물리쳐야
할 최고의 악을 논리적, 정치적으로 풀지 못한 오류를 범해오고 있음을 지적했다.
정치편에서는 물고기 알이 바다에서 1000분의 1의 확률로 살아 남는다면 자연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100만개의 알을 공급한다.
또한 정치인들의 역량에 빗대어 인간의 심장이 견디는 모든 일들 중에서 왕이나 법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나 미미한가!로 존슨박사는 꼬집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구가 보통 수백만이 넘어 조직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앓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언제나 조직화된 사람들에게지배당하기 마련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대한 장단점을 논리있게 지적했다.
종교편에서는  근본주의자들에게 당신들이야 말로 오늘 날 종교의 최대 적이라며 18세기 루소는 만연한 종교에 대해 기적을 없애라.그러면  모든 세상이 그리스도의 발아래 놓일 것이다라고 했고 과학의 기적을  새로운 기적으로 신봉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잘못된 점을 제거하고 최대한 바로잡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과학과 종교사이의 반목은 사라지고 우리는 하나로 통합된 종교적인 과학과 과학적인 종교를 가지게 될 것이라며 종교와 과학의 충돌로부터 도망치지 말아야 한다고주장했다.

우리가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것과 다르다.
조금의 차이가 평화롭고 합헌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국토를 폐허로 만들기도 한다.
경제학에서는 지대이론도 있고 가치이론도 있는데 수학자와 천문학자들이 공리로 삼을 정도로 확고부동한 원칙들을 사회정학 차원에서 더  무지한 사람들과
공유해야 균형을 잃지 않고 발전하기를희망하며 모두를 위한  정치지침처럼 글을마무리 한다.
˝IT`S  SHAW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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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20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중략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님이여, 넌 말히기는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ㅡㅡㅡㅡㅡㅡㅡㅡ중략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
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 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ㅡㅡㅡㅡㅡㅡㅡㅡㅡ중략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아닌 서리가 내려 망치지는 않았나?
오오 개를 멀리 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T. S. ELIOT는1922년《황무지》를 발표하고 19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개인의 기호에 관계없이 20세
기 를 대표하는 시 한 편만을 고르라면 황무지가 뽑힐 공산 이크다. 이 작품은 1922년 출판되자 곧 새로운 시의 보통명사가 되었고, 그 새로운 시에 modernism
이라는 팻말이 붙은후에는 modernism의 대표작으로 평가되어 왔다.
황무지에 대한 motive는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 생산이 없는 성,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에 대한 시로서 콜라주 기법을 절묘하
게 구사한 뛰어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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