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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시민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11월
평점 :
<그것은 누명임이 분명했다. 평범한 주부이자 교통 법규도 한번 위반해본 일 없는 모범적이고 선량한 시민이었던 은주가 어느 날 아침 경찰에 의해 체포된 것이다> 라는 카프카의 소설 <소송>의 첫 부분을 변형하여 쓰인 매혹적인 이 작품의 첫 문장은 사실 시작부터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거짓말로 인해서 이 작품만의 독특한 색깔이 만들어진다. 우선 이 작품의 주인공인 가정주부 은주는 제목이 가리키는 '선량한 시민' 은 아니다. 선량하다는 의미가 성품이 착하고 어질다는 것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평범하다'는 것이 '선량하다'의 동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선량한 시민이 살인 용의자로 오해 받는 이야기도 아니고, 선량한 시민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추리소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작부터 범인을 밝히고 들어가며 범행의 목적도, 결국 범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채 이야기가 끝이 나 버린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남편의 사업 실패로 시아버지 집에 들어가 살고 있는 은주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남겨진 돈으로 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지만, 구순의 나이에, 치매기도 있는 시아버지는 여전히 정정하시기만 하다. 그녀는 동창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개천에서 오줌을 누던 남자를 보고 알 수 없는 충동으로 그의 등을 떠밀어버린다. 남자의 죽음은 단순 실족 사로 처리될 것처럼 보이고, 은주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며칠 뒤 경찰에 용의자로 체포되고 만다. 당시 현장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은주는 자신의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경찰은 그녀와 피해자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고, 무엇보다 그녀에게서 살해 동기를 찾지 못하자 증거도 없이 계속 붙들어 들 수만은 없어서 은주를 풀어주게 된다. 하지만 목격자의 존재는 은주를 불안하게 만들고, 그녀는 자신에게 걸려오는 누군가의 전화를 통해 목격자의 존재를 파악해 그마저 살해하고 만다. 문제는 진짜 목격자가 따로 있었다는 것에 있다. 은주는 엉뚱한 사람을 목격자로 오해해서 살해하고 말았다. 과연 앞으로 사건은 어떻게 전개 될 것 인가.
우리 인생에는 복선도 플롯도 없다. 성격은 충동에 의해 무너지고, 기억은 소망에 의해 왜곡된다. 인생은 무질서한데 왜 소설 속 이야기는 그토록 질서 정연해야만 하는가. 특히 추리소설을 보면 인간은 마치 계산과 논리의 기계처럼 움직인다. 범인은 주도 면밀하게 계획을 짜고, 탐정은 그 계획을 꿰뚫어 본다. 그러고는 창틀에 떨어진 흙덩이 하나 혹은 거꾸로 뒤집혀 있는 책 한 권으로 범행 전체를 추리해낸다. 창수가 보기에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실의 범행은 너무나 우연적으로 이루어지고, 범인은 허술하기 짝이 없고,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강사를 하면서 소설을 쓰는 창수는 우연히 은주가 살인을 저지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애초에 경찰에 신고해서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 조차 전혀 없었지만, 오로지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40대 주부가 대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너무도 궁금했던 터라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은주는 동기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나고, 그는 그녀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그녀의 집에 전화를 하고, 일상을 관찰하고, 미용실에서 우연히 만나 말을 건네는 등 조금씩 친분을 쌓아간다. <다른 여자보다 머리카락이 좀 길다는 것을 제외하면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사십 대의 여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다니!> 그는 은주를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신비의 영역으로 바라보면서 그녀야말로 자신이 쓰고 있던 소설의 소재가 될 거라고 흥분한다.
한편, 두 건의 살인사건은 은주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기는커녕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동네에는 두 사건이 연쇄 살인범의 짓이라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고, 살인이 일어난 현장에서 게임을 하려는 고등학생들은 우발적으로 친구를 죽게 만든다. 고등학생의 살인 사건 마저 연쇄 살인범의 짓인 것처럼 사람들은 소문을 번져가고, 사건은 점차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은주와 창수를 몰고 간다.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결국 원인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 이런 변수로, 이런 결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사실 현실에서도 그렇지 않나. 뭐 이런 거짓말 같은 상황이 다 있나 싶은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니 말이다.
동기. 동기가 정말 중요한 것일까. 창수는 의심스러웠다.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고, 엄청난 일에는 그만큼 엄청나고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착각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때로 절박한 심정이 되곤 하지만, 그 절박 함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반대로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이유가 때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그것을 동기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살인사건 수사에 있어서 용의자를 선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동기'이다. 살해 동기가 있었냐 없었느냐에 따라서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용의자로 몰리기도 하고, 실제 범인이 교묘하게 수사망을 빠져나가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결과를 추론할 때 '왜'라는 요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사이코 패스에 의한 무차별 살인,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릴 수록 사람들이 공포에 떨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은 미리 예방할 수도, 방지를 위해 어떤 준비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니 말이다. 현대인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 속에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고 싶어한다. 자신이 믿을만한 스토리라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없다는 것만큼 끔찍하고, 무서운 게 없으니까.
너무도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만의 잣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이지만, 나름의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킨다. 세상 모든 일이 다 말이 되는 것이냐. 나는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어서 나를 애태우는 상황에 매력을 느낀다는 창수, 될 것은 언젠가는 되고야 만다.고 미제 사건이라도 어떤 사소한 계기로 인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고 믿는 최형사, 그리고 너무도 쿨하게, 아무렇지 않게 두 건의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은주.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모든 사이코 패스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걸 말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은주는 평범한 가정주부이지, 사이코 패스의 기질을 숨긴 살인마가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누군가를 죽인 것일까.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뻔한 명제를 뒤집는 데서 오는 쾌감은 이 작품을 현실보다도 더 그럴듯한 소설로 만들어준다. 연쇄 살인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무서운 놀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우리 인생에는 복선도 플롯도 없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복선도 플롯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꼼꼼히 따져보면, 시간을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에도 숱한 복선과 뻔하지 않은 플롯이 널려있으니까. 그래서 누구나 비슷해 보이지만,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각각의 삶이 존재하는 것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