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구상에는 하루에도 수십 종의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김백겸 시인은 <멸종>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일 년에 백만 종의 영혼이 지구를 떠나고 있다.
매연과 소음과 농약으로 썩어가는 지구에서 살 수가 없어서
다른 별들로 이민을 떠나고 있다.
그들의 유전자 설계도와 이름이 지워지고 있다.
내가 생태문학으로 접하게 된 책은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과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 낚시> 정도이다. 생태문학이라고 분류되는 책들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문명에 관한 비판 내지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주제인데, 생각해보면 얼마 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모든 생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가이아 이론에 입각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베르나르에 따르면, 만약 가이아가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이라면, 그건 인간들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가이아가 파괴되면 우주 어디에도 생명을 가진 존재가 없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제3인류>의 배경도 핵무기의 무분별한 사용과 자연재해와 환경 재앙, 자원 고갈 등 인류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자멸을 향해 치닫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니 결국은 환.경.문제가 이야기의 전반에 깔려 있다. 그러니 2013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 일상에 지친 우리들에게 화두는 바로 생태문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이런 류의 작품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하고 검소한 삶에의 미덕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굉장한 위안을 주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녹색고전>은 비채에서 출간되고 있는 모던 & 클래식 시리즈에서 출간된 올해의 네 번째 작품이다.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 낚시>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 그리고 존 스타인백의 <붉은 망아지, 불만의 겨울>에 이어서 역시나 산뜻한 색감의 화사한 표지가 눈길을 잡아 끈다. 저자인 김욱동 교수는 기존에도 생태문학 비평 집을 출간한 이력이 있고 문학을 통한 환경운동에 상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바로 '고전'을 통해서 생태문학을 다룬다는 것인데, 아주 특별하고 색다른 고전 읽기의 방법이 아닌가 한다. 세계의 명작들은 꽤나 많은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디자인을 통해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지만, 한국, 동양의 고전들은 그에 비해 홀대 받는 게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나 만나보았을 법한 글들을 이 책을 통해 읽으면서 굉장한 재미를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 편에 이어 동·서양의 생태문학 고전도 곧 모던 &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인간에게 아무리 귀찮고 해로운 벌레라고 하더라도 이 우주 안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존재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존재이유가 있을뿐더러 생태계라는 가족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식구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전혀 쓸모가 없다고 하여 어느 한 생물을 절멸시킨다면 생태계는 그 조화와 균형이 깨뜨려지고 맙니다. 우리가 빅토리아 비단나비 같은 동물이나 금강초롱꽃 같은 식물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작은 귀돌 하나가 집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듯이 작은 생물 종 하나가 생태계 전체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생태계는 마치 그물이나 망 또는 고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한 부분이 없어져 버리면 다른 부분은 반드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휴고"에는 이런 대사가 있었다. 파리의 기차역사 내 커다란 시계탑을 혼자 관리하며 숨어 살고 있는 외로운 열두 살 소년 휴고가 등장한다. 그가 관리하는 시계탑처럼 기계엔 불필요한 부분이 전혀 없다. 각 부속들이 정확하게 꼭 필요한 만큼만 있어야 기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기계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만약에 세상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기계라면, 자신도 어떤 필요가 있을 거라고.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나도 꼭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로 그 어느것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사실 우리가 환경 재앙이라고 일컫는 것들은 모두 인간들이 저질러온 행동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이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물을 막아 댐을 쌓고, 언덕과 산을 파헤쳐 고속도로를 닦았으며, 광물이나 귀금속을 찾기 위해 두더지처럼 땅속을 샅샅이 뒤졌고, 강과 바다에 온갖 쓰레기를 갖다 버렸으니>말이다. 만물의 영장으로 자처 해온 인류라는 존재가 말이다. 학자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2050년경이 되면 지구상에서 모든 열대 우림이 사라지고, 석탄이나 석유 같은 연료들도 모두 바닥이 날 예정이라고 한다. 마치 <시한폭탄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환경 재앙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한영감은 하찮은 개한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오륜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첫째, 자기 주인을 알아보고 짖지 않으니 군신유의요, 어미와 털의 색깔이 비슷하니 부자유친이요, 한 마리가 짖으면 여러 개가 함께 따라 짖으니 붕우유신이요, 암컷이 새끼를 밴 뒤에는 수컷을 멀리 하니 부부유별이요, 작은 놈이 큰 놈을 대적하지 않으니 장유유서라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그럴듯한 설명입니까?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며 다른 생명들을 마음대로 지배했던 인간들에게, 그런 태도가 얼마나 자연을 해치고 질서를 어지럽히는지 설파하는 것이다. 민속극 <강령탈춤>에 등장하는 진한영감의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다. 그는 개한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오륜이 있다고 주장한다. 개한테도 오륜이 있다는 진한영감의 말은 마한영감을 놀려주기 위한 우스갯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딘지 농담 속에 뼈가 있는 듯한 대목이다. 모든 사물과 생명을 인간의 입장에서만 해석하고 판단 하려 들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의 고전을 읽어보면 당시에는 동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하고 따뜻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 많이 있다. 가을이면 까치 밥이라고 하여 나무에 열매를 몇 개 남겨두고, 화롯불에 던져지는 이(蝨) 한 마리를 보면서도 슬퍼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하찮은 동물들의 목숨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누며 배려했던 것이다. 자연과 동물들과 함께 사는 삶이었던 그 시대에만 해도, 환경오염이란 단어는 아마 상상도 하지 않았을 테니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올해 전세계 환경위기시계는 9시19분으로 작년(9시23분) 대비 4분 감소했고, 한국의 환경위기시계는 9시31분으로 작년(9시32분)대비 1분 감소했다. 그러나 여전히 ‘위험’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위기 시계를 보는 방법은 0~3시(양호), 3~6시(불안), 6~9시(심각), 9~12시(위험) 수준을 가리키며, 12시는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한 시간을 상징한다고 한다. 언제쯤 양호한 시간대로 유지될 수 있을 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 까. 자. 오늘부터 라도 각자 삶의 속도를 늦추고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빛의 온도, 공기의 무게, 하늘의 색감, 꽃의 싱그러움, 구름의 움직임.. 그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낙엽과 바람의 방향을 관찰해보고, 소소한 일에 초연해 지며,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환경을 생각하는 일은 결국 우리 삶의 터전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럼 40년 후의 어느 날 조금 더 아름다운 지구가 되어 있을 것 같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 책 또한 그런 작은 발걸음에 힘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