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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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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을 대하는 내 심정의 많은 부분은 내 인생의 그 시절과, 나쁜 습관도 모자라 멍청한 이론을 믿었으며 그나마 가끔 있었던 생산적인 침묵의 순간을 통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비로소 조금씩 알기 시작한 막 등장한 작가에 대한 평범한 향수에 젖는 것인 듯싶다. 젊은 친구들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결국 변화하리라는 것, 완성된 인물의 스틸 사진이 아니라 움직이는 영화, 움직이는 영혼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될 뿐만 아니라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토머스 핀천의 유일한 소설집이다. 필립 로스, 코맥 매카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네 명의 소설가로 꼽히는 작가라서 개인적으로 궁금했는데,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된 그의 작품은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임에도 길고 복잡한 문장과 지나치게 함축적인 단어들은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를 상당히 더디게 만들어주었다. 초기에 쓴 다섯 편의 단편을 모아 작품을 쓴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84년에 출간한 것이라고 하며, 데뷔 장편이 나온 이듬해에 발표된 「은밀한 통합」을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모두 핀천이 대학생 시절에 쓴 작품들이라고 하니 거장의 풋풋한(?) 초기 작을 만나는 기쁨도 느껴볼 수 있겠다. 재미있는 건 작가 서문이 무려 삼십 페이지 가까이 될 정도로 굉장히 긴데, 아무래도 습작 생 혹은 신인작가 시절에 쓴 수십 년 전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여야 하는 작가의 부담감 때문인 것 같다. 스스로는 그의 초기 단편들이 결합투성이에다 부족한 점이 많은 것처럼 밝히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들이 가끔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우며 무분별해 보이더라도 그 모든 결함이 있는 그대로 여전히 쓸모가 있었으면 하는" 그의 소박한 바램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충분히 그럴듯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긴 작가 서문에서는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이나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 들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가급적 책을 끝까지 읽고 난 뒤에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작가 서문을 읽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스스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작은 첨언'이라 칭하는 작가 서문은 작품 만큼이나 토머스 핀천이라는 작가의 성격과 작품 색깔에 대해 알게 해주는 중요한 부분이니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리조가 공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래, 향수병이라도 걸린 거야?" 러바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 내 말은 폐쇄회로 같다는 거야. 모든 사람의 주파수는 다 똑같아. 그래서 잠시 뒤 나머지 스펙트럼에 대해서는 잊게 되고 이것만이 중요하고 실재하는 유일한 주파수라고 믿기 시작해. 반면에 바깥에서는 대지의 위아래로 기가 막힌 색깔과 엑스선, 자외선들이 펼쳐지고 있어."

                                                  

<이슬비> 중에서

이번 작품집에 담긴 다섯 편의 이야기에서는 "죽음, 고갈, 권태, 획일화, 무질서, 파국, 단절"을 폐쇄회로, "쓰레기 폐기장, 엔트로피, 미국 교외, 묵시록적 종말" 등의 메타포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슬비>는 무기력한 삶을 반복하는 청춘의 이야기인데, 러바인은 도망치듯 군대에 들어와 반복적이고 정체되어 있는 그곳에 안주하려는 인물이다. 핀천은 그의 삶을 폐쇄회로와 같은 고립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로우랜드>의 플랜지 역시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벗어나려 하며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인물이다. 즉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거나, 혹은 별 의미 없이 반복적이고 단절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인물들인 셈이다. <엔트로피>는 핀천 문학의 브랜드처럼 여겨지는 엔트로피 개념을 문학적으로 처음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후 핀천 소설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다섯 편의 작품 중에 가장 난해(?)하다. 죽어가는 새를 살리려는 칼리스토와 아래층에 살며 친구들과 며칠째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멀리건의 모습이 번갈아 보여진다. 파티가 상징하는 무질서와 혼란, 온실이 상징하는 질서, 규칙 등의 갈등이 대비되는 이야기이다. 

"새가 죽어가." 자기만의 세계를 물 흐르듯 거니느라 넋이 나가 있던 소녀는 온실을 가로질러 가서 칼리스토의 두 손을 내려다 보았다. 둘은 그렇게 가만히 일분, 그리고 이분을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새의 심장박동은 끝까지 우아함을 유지하며 점점 약해지다 마침내 정적에 이르렀다. 칼리스토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계속 안고 있었어." 그 믿을 수 없는 일에 무력감을 느끼며 그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몸의 온기를 나눠주려고 말이야. 생명을, 혹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새에게 전달해주려 했어.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열 전달이 중단되기라도 했나? 더 이상..." 그는 말을 맺지 못했다.

<엔트로피> 에서

소설집 제목인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여기 실린 다섯 편의 단편과는 상관없이 붙여졌는데, 작가로서 정점에 이른 중년의 소설가가 젊은 시절에 쓴 치기 어린 작품들을 되돌아보며 과거의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물론 기나긴 작가 서문에서의 자기 고백이 정확한 것인지, 아니면 지나친 겸손인지는 이 작품집을 읽는 독자 각각의 몫일 것이다. 핀천이 대학 시절에 쓴 앞의 네 편과 달리 마지막에 실린 <은밀한 통합>은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뒤의 작품이라 그런지 읽기에 조금 수월한 느낌이다. 하지만 앞의 네 편도 핀천의 독특한 색깔을 맛보기에는 무리가 없지 싶다. , 끝까지 읽어내려면 조금의 인내가 필요하지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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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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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미스터리하고 매혹적인 제목만큼이나 멋진 표지가 돋보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다. 비채가 워낙 예쁜 표지를 잘 만들기로 유명하지만, 이번 작품은 더욱 그 빛을 발하는 듯 하다. 일본 원서 표지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어쩜 이렇게 제목의 느낌을 잘 살려내면서도 분위기 있는 표지를 만들었는지, 책을 읽기도 전부터 내용이 궁금해질 정도이니 말이다. 몽환화가 실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 식물의 총칭인지 그 뜻을 알게 되면, 이 멋진 표지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언젠가 정유정 작가님이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었다. 꾸준하게 죽을 때까지, 일정한 수준의 작품을 일정하게 발표하는 것. 이라고. 한 두 작품 반짝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작품과 작품 사이의 텀이 길게 있는 게 아니라, 꾸준하게, 그것도 일정의 수준으로 말이다. 아마도 거의 모든 작가들의 목표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고 생각했었다. 대박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라도 매번 출간할 때마다 그만큼의 화제와 판매량을 가져오기란 쉬운 일이 아닐테니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만 큼 국내에 많은 작품이 번역된 작가도 드물다고 느껴질 만큼, 엄청난 종류의 작품들이 출간된 작가이다. 나도 거의 출간된 대부분의 작품을 모두 읽었는데 거의 언제나 만족감을 준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의 속도감과 몰입 감 또한 여전하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속도감과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이 벌어지는 사건으로 인해 어떻게 성장하고 달라지는 지에 대한 감동, 스릴 넘치는 트릭과 반전, 모든 퍼즐이 짜맞추어졌을 때의 재미까지.. 취향에 따라 특별히 좋았던 작품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건 정말 별로이다. 이 작품은 좀 수준이 떨어진다. 재미가 없다. 라는 평은 웬만해서는 내릴 수가 없는 작가라는 얘기다. 85년 데뷔 이후 해마다 평균 세 편이상의 작품을 탈고한 다작 작가라는 점에서 보자면, 대단한 수준이 아닐 수가 없다. 특히나 이번 신작은 처음 연재가 끝나고 수 차례 개고를 거쳐, 장장 십 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노란 나팔꽃은 금단의 꽃이라는 이야기야.”

“금단…….”

소타는 리노와 얼굴을 마주했다.

“내가 나팔꽃에 흥미를 가진 것은 아버지의 동생 즉 삼촌의 영향이야. 삼촌이 다양한 변화 나팔꽃을 피우는 것을 곁에서 보다가 나도 흥미가 생겼지. 하지만 삼촌은 어느 날 내게 말했어. 어떤 꽃을 피워도 좋지만 노란 나팔꽃만은 쫓지 마라. 이유를 물었더니 그것은 몽환화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몽환화?”

“몽환夢幻 꽃이라는 의미일세. 그 뒤를 쫓으면 자기가 멸하고 만다고, 그렇게 얘기했어.”

담담한 말투의 다하라의 말에 소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팔꽃에 없는 색상인 노란색. 그러나 에도 시대에는 노란색 나팔꽃이 존재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라는 생각에서 이 작품의 미스터리가 출발했다고 한다. 자연의 이치란 때론 놀라울 정도라서 언젠가 존재했던 것이 현재 사라졌다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터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바로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색다른 역사 미스터리를 완성시켰다. 작품의 서두를 여는 두 가지 프롤로그는 어찌 보면 뜬금없다 싶을 만큼의 강렬함을 준다. 주택가에서 벌어진 무차별 살상사건이 벌어지고, 한 소년의 어린 시절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프롤로그는 결국 전체 이야기의 직조에서 중요한 짜임새를 엮어준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리노의 사촌인 나오토의 자살소식으로 시작한다. 상갓집에서 리노는 오랜만에 할아버지인 슈지를 만나 근황을 묻는다. 어릴 때부터 수영을 잘했던 그녀는 큰 슬럼프 없이 큰 시합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냈고, 전국대회 우승도 놓치지 않았으며, 국제 대회에서도 선전하던 유망주라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연습 중이었다. 그런데 원인불명의 현기증 때문에 결국 수영을 포기했던 과거가 있다. 할아버지는 언제 한번 놀러 오라고 리노에게 말하고, 그녀는 그걸 계기로 자주 들러서 슈지가 키우는 꽃의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걸 도와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그 어떤 증거도 흔적도 찾을 수 없었고, 점점 독거 노인의 외로운 죽음은 미제 사건처럼 되어 가지만, 리노는 할아버지 집에서 없어진 화분을 발견하고는 사건의 진상을 찾아보기로 한다. 소타는 원자력을 전공했지만 2011년 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세상의 이미지가 너무 나빠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태이다. 그의 동기들은 대부분 원자력발전과 관계없는 회사로 취직을 준비하지만, 몇 년씩이나 공부했던 것과 전혀 상관없는 회사에 가려니 허무한 그는 상실감이 크다. 원자력을 미래의 에너지로 생각하고 청춘의 시간을 온전히 바쳤던 그에게 대학원까지 온 것은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집에 내려와있는 그가 우연히 리노를 만나게 된다. 리노는 경찰청 관료인 형 요스케를 찾아왔고, 안 그래도 가족들에 대해 어릴 때부터 의문이 있었던 그는 형의 비밀을 풀어보겠다고 리노와 함께 할아버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리노와 소타가 분야는 전혀 다르지만 굉장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 어딘가 닮았어요. 열심히 자기가 믿은 길을 선택했는데 어느새 미아가 되어버렸네요."

그리고 리노와 소타 외에 사건을 추적하는 또 다른 축인 형사 하야세에게도 분명한 동기가 있다. 그는 불륜으로 별거 중인 상태라 아들에게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내내 미안했다. 바로 그런 아들이 슈지 할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꼼짝없이 소매치기로 몰려서 경찰서에 갈 판국이었는데, 슈지가 진짜 범인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정의를 주장해서 그를 구해준 것이다. 하야세의 아들은 그것을 두고두고 고마워했었고, 사건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아버지에게 꼭 범인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하야세 입장에서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꼭 이 사건의 범인을 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들 주요 캐릭터의 이런 부분이 극에 몰입하는 힘을 부여한다. 왜냐하면 추리소설 속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살인이란 것이, 사실 현실에서는 터무니없이 부자연스러운 사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발한 트릭과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에만 몰두하는 줄거리는 도무지 현실감이 없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는 항상 평범한 인물들이, 각자의 개연성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그래서 멋들어진 문장을 쓰지도,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지만, 독자들에게 최고의 페이지 터너, 즉 속도감을 줄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서스펜스도 스릴도 수수께끼도, 리얼리티가 없으면 실감도 감흥도 일지 않는다'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말처럼, 현실에 밀착하지 않는 추리소설은 독자에게 실감을 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복잡한 트릭과 엄청난 반전 보다는 가족과의 관계와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사회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는 이 작품이야말로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써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특수한 환경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그것도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공감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대중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최고의 작가라 칭송 받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품 <몽환화>는 그 정점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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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2]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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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 작가의 작품은 <기다림>으로 처음 만났었다. 당시에 김연수 소설가의 번역이라서 읽게 되었는데,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 속의 절제미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멋진 추락>도 읽었는데, 무엇보다 하진의 매력은 '정확한 문장'에 있는 것 같다. 작가가 먼저 중국어로 생각한 다음에 정확한 영어 단어로 문장을 써서 애매한 구석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정확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문장들을 따라 가다 보면, 그 속에 인생이 있고, 세상이 있고, 삶이 펼쳐지는 진짜 사람냄새 나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스무 차례 이상 교정을 하며 가장 적확한 표현을 찾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하진은 영어가 외국어임에도 불구하고 되레 단순하면서 시적이고 아름다운, 그야말로 정련된 문장으로 유명하다. 모국어로 썼으면 훨씬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영어로 글을 쓰는 모험을 강행했던 작가의 이력처럼 그런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도전이 이민 1세대 작가들의 문학적 특징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품 속에 자연스레 삶의 무게가 담기는 게 아닐까 싶고 말이다. 그렇게 단순하고 서술적인 문장, 평범하고 간결한 문장들로 오로지 서사에 충실한 것이 그의 작품에서 가장 특징인데, 이번 신작 <자유로운 삶>은 그 정점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총 두 권의 분량이 천 페이지가 넘는데, 그 대부분이 하루를 견뎌내는 난우의 일상이 전부이니 말이다. 어떤 과장이나 스릴, 반전 따위는 전혀 없다. 그저 외로운 한 남자의 고군분투하는 삶이 펼쳐질 뿐이다.

 

권을 갱신하는 사소한 일로조차 엄청난 장애에 부닥쳐야 하는 중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당신이 중국인이라면, 하찮은 관리마저 당신을 괴롭히고 삶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어디를 가든, 권력자는 복종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라면 싶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22년 전 미국 시인 친구와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홍콩에서 온 이민자인 작은 식당 주인이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조롭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시를 써왔다는 사실에 감동해,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 작품은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희생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라고 한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지불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 말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마땅히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주인공 난우는 너무도 쉽게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알 수 없는, 이민은 커녕 한 번도 타지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절대 추측해볼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미국에 유학온 중국인인 난우는 텐안먼 사태를 목격한 이후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내 핑핑과 아들 타오타오까지 미국으로 건너오게 한다. 조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의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싶었던 그에게, 미국에서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다. 결국 그는 대학원 과정을 그만두고, 야간 경비원부터 버스 보이, 요리사 등으로 밤낮없이 일해 가족을 부양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그의 오랜 꿈도 현실에서는 그저 환상, 사치에 불과하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고 고되어 뭔가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뭘 생각할 힘도 없었으니까. 이렇듯 이민 1세대의 삶은 매 순간이 전쟁 같을 수밖에 없다. 조국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고, 타국의 언어를 써야 하고, 자유롭지만 외국인에게 그다지 호의롭지 않은 여러 상황들을 견뎌야 하고 말이다. 그가 꿈도 사랑도 포기하고 매일 십수 시간의 단조롭고 고된 노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식만큼은 부모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꿈과 희망은 모두 포기하고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야 하는 그들의 버팀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 건 왜일까.

 

가끔은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펜을 잡을 때마다 정신이 멍해졌다. 침울함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머지않아 이 혼수상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걸 알았다.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든, 맞서 싸워야 했다. 시를 다시 써야 했다. 이제 그가 영어로만 써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우유부단한 상태로 있었다. 그는 급격한 변화에 위축당해 있었다. 사실을 깨닫자, 그는 더욱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그러나 아직은 온 마음을 바쳐 다시 시작할 정도로 동기 부여가 안 된 상태였다. 요즘, 그는 글을 쓰는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리멸렬한 일상은, 어떤 날은 그저 견뎌내거나 또 어떤 날은 그저 흘려보내 기도 하거나 별 의미 없는 하루들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하루들이 모여서 몇 년이라는 시간이 되면 어느 순간 내 인생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극중 난우가 그의 염원인 시인으로 결국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삶의 무게를 감당키 어려워 꿈을 접어놓고, 포기하고, 던져버리곤 한다. 꿈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싶어도 인생이란 좀처럼 여유를 내주지 않으니 말이다. 굳은 결심을 하더라도 고통과 좌절 속에 기어이 그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놓지 않으려는 이들에 대한 희망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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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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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니까 그 해 겨울, 너희가, 셋이서, 무엇으로 맺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선생님이 눈을 깜작깜작 한다. "어떻게 맺어졌는지는 알고 싶지 않아. 무엇이 너희를 덩어리지게 했는지 알고 싶다. 사랑이라고 하면 너무 범속하고."

"담배를 피우면 있지, 조금씩 나를 훼손한다는, 조금씩 나를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사실은 좋다." 선생님이 내 담배에 불을 붙여준다.

"우리도.... 어쩜 그런 거 아니었을까요?

  

소설가 ''의 제자이자, 한때 작가를 지망했고 결혼에 실패한 후 '소소'에 내려와 사는 여자 ''

형과 아버지는 광주에서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요양소에 계시는, 베이스 연주자였던 떠돌이 남자 ''

간신히 국경을 넘어와 신분을 위장하고 살아왔던 탈북자 처녀 ''

이 작품은 ㄱ의 집터에서 남자 ㄴ의 데스마스크와 유골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이들 세 사람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이들 셋은 서로를 '사랑'했다. 이런걸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말이다.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소소의 집으로 내려왔을 때, ㄱ은 한동안 혼자 사니 참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ㄴ이 그 집에 들어오고 나서는 둘이 사는 것도 참 좋다고 깨닫는다. 이후 ㄷ이 그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되고 나서는 셋이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삼각관계도 아니고, 누가 누구를 질투하고 소유하는 관계도 아닌, 이들 세 사람의 관계가 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들은 섹스를 덩어리가 된다.고 표현한다. 서로 소유하지 않고, 그러니까 각각의 내면에 있는 가시가 훼손되지 않도록 암묵적인 동의가 전제된 '덩어리 되기'라나. 한 남자와 두 여자, 세 몸이 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을 글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어쩌면 이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느낌도 살짝 든다. 이들의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정말 이상하게도.

남자 ㄴ은 이렇게 말한다. 셋으로 삼각형을 이룬 게 아니라 셋으로부터 확장되어 하나의 원을 이루었다고. 둘 이선 절대 원형을 만들 수 없었던, 셋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완전한 원형 말이다. 죽음에의 강한 끌림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조건도, 욕심도 없이 스스럼없이 끌렸던 것 같다. ㄱ은 어릴 때 오빠와 부모를 차례로 잃은 기억이 있으며, ㄴ 또한 광주에서 진압군에게 형과 아버지가 모두 살해당했었고, ㄷ은 국경을 넘다가 아버지가 죽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오고, 이겨내고, 지나야 했던 이들이 각자의 선인장 가시를 품고 비로소 '소소'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ㄱ은 첫 결혼의 실패 이후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이란 각자에게 숨구멍이 필요하다는 것을, 함께 있어도 '숨구멍'이 따로 있어야 겨우 유지될 수 있는 게 1 1의 관계라는 걸 깨닫는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필연적으로 선인장 가시처럼 몸뚱어리 안에 숨겨 간직해야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내가 그 동안 수십 권의 소설을 썼으니 얼마나 플롯에 질렸겠냐. 플롯이란 한마디로 인과론 같은 거 아니냐.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죽는다면 소설은 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그 원인의 진술에 바쳐지는 것. 그리고 인과론은 당연히 시간의 꼼꼼한 관리로써 미학적 균형을 얻는다. 그게 플롯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갖고 있는 게 작가라고 여기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야.

물론, 플롯 없이 쓰는 게 가능할까 생각하면 머리가 더 아프다. 딜레마야. 하기야 뭐, 소설 쓰기만 그런 건 아니겠지. 우리 모두 근본적인 지향은 자유일 텐데, 삶에서나 사랑에서나, 사람들은 플롯을 만들어 씌워 구조화하려고 평생 안달하거든.

 

극중 소설가 ''가 제자인 ㄱ에게 말하는 이 대목은 어쩐지 박범신 작가의 말처럼 들린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가 여전히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 우는 까닭이기도 하고 말이다. 플롯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극중 ''의 이야기는 결국 이 작품 소소한 풍경을 쓰고 있는 박범신 작가의 멘트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반적인 사랑의 서사 공식에서 벗어나있는 독특하고, 이상하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매혹적인,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정의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이니 말이다. 불가능한 관계를 가지고 불가능한 사랑을 완성시키는,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가 발견되어 형사가 수사를 하지만 결국엔 물증도 동기도 찾을 수 없어 완전범죄가 될 수밖에 없는, 자살도 아니지만 범인도 없는 그런 죽음, 우물을 파는 남자와 평화로운 순간에 연탄가스를 피워 죽으려고 했던 여자의 마음은 결코 인과관계에 의한 플롯으로 만들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작가야. 그러므로 나는 평생 늘, 새로운 문장을 쓴다. 그 동안 수십 편의 소설을 썼지만 똑같은 문장을 두 번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새로 쓰는 문장으로 이미 써버린 과거의 문장을 계속 엿 먹인다고 상상하면 가슴이 뻐근하다."

박범신 작가의 언제나 새로운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평범한 플롯도, 인물들의 관계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오로지 그만이 쓸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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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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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은 에단 호크와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98년작 영화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다. 당시 이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원작에 충실하기보다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고전과는 또 다른 섬세하고 감각적인 영상을 보여주었었다. 분수대의 키스 장면은 오랫동안 명 장면으로 사랑 받았으며, 두 배우 역시 이 작품으로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원작을 그대로 살려서 만들어진 버전도 있으며, 그 또한 원작만큼이나 매우 흥미롭다

 

 

어린 핍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성질 사나운 누나와 인정 많은 대장장이 매형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그는 마을 묘지를 찾아갔다가 탈옥수와 만나게 되고 그는 핍을 협박해서 줄칼과 음식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다음날 핍은 누나와 매형 몰래 줄칼과 음식물을 그에게 가져다 주지만, 한동안 죄인을 도와주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어느 날 조의 숙부를 통해 거대한 부자인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의 양녀인 에스텔라를 만나게 된다.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미스 해비셤의 놀이 상대를 해주며 핍은 에스텔라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쌀쌀맞은 소녀는 그의 신분을 무시하며 조롱한다.

 

그날은 내게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내게 큰 변화를 만들어 준 날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인생에서 하루를 선택하여 삭제한다고 상상해 보고, 그러고 난 후 그 인생행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글 읽기를 멈추고 쇠로 만들어졌건 황금으로 만들어졌건 가시로 만들어졌건 꽃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당신을 얽어 매고 있는 긴 사슬이 만약 그 제일 첫 번째 연결 고리가 어떤 기억할 만한 날 맨 처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당신을 꽁꽁 얽어 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보라.

 

 

자연스레 대장간에서 자라면서 자신도 조처럼 대장장이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핍은, 미스 해비셤과 에스텔라를 만나면서 현재 자신의 처지에 조금씩 불만을 가지게 된다. 멋진 도시 신사가 되어 에스텔라 앞에서 당당하기를 꿈꾸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재산을 물려줄 부모도, 스스로 자립을 할만한 그 어떤 배경도 없었기에 그것은 말 그대로 꿈에 불과했다.

 

"나는 이 친구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라는 지시를 받았소".

재거스 씨가 손가락으로 삐딱하게 나를 지목하며 말했다.

"나아가 이 친구가 즉시 현재의 삶의 영역과 이 집을 떠나서 신사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 한마디로 말해서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게 된 젊은이로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현재 그 재산을 소유한 분의 바람이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밤 런던의 유명한 변호사가 그를 찾아오고, 그의 꿈이 실현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한다. 터무니없던 그의 공상이 오히려 한술 더 떠 생생한 현실로 실현된 것이다. 그는 새롭게 전개될 앞날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신사 교육을 받고, 비슷한 수준의 이들과 어울리면서 핍은 점점 변해간다. 자신이 사랑하던 조를 사교적으로 미숙하고 어리숙하다는 이유로 불편해하고 창피하게 여기며, 고향의 대장간에도 거의 가보지 않는다. 이제는 에스텔라에게 걸 맞는 위치가 되었다는 자각에 미스 해비셤이 그의 짝으로 자신을 위해 이런 혜택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는 런던의 상류층 속물 청년 들과 어울리며 점점 겉멋이 들어가고 향락과 소비에 찌든 그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기에 이르른다. 아무런 노력 없이, 대가 없이 갑자기 얻은 부와 행운에 현명하게 대처하기에는 핍이 너무 어렸던 탓도 있었겠지만, 누군들 그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달랐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스물세 살이 된 핍에게 어느 날 거칠고 험상궂게 생긴 인물이 찾아오고, 그는 바로 어린 핍이 줄칼과 음식을 가져다 주었던 그 탈옥수이다. 그리고 그가 바로, 핍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준 당사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핍은 미스 해비셤이 아니라 탈옥수 매그위치가 자신의 모든 꿈을 실현시켜주었다는 것을 깨닫자 좌절하고, 낙담한다. 탈옥수의 고된 노동에서 비롯된 유산과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부자의 유산은 애초에 성격부터 다른 것이니 말이다. 거기다 그는 에스텔라의 결혼 소식까지 접하게 되어 더욱 비참해진다.

 

, 사랑하는 내 단짝. 인생이란 너무나도 많은 부분들이 하나로 용접되어 결합된 구성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장장이, 어떤 사람은 양철공, 어떤 사람은 금세공업자, 어떤 사람은 구리 세공업자인 거야. 그런 식의 구분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그런 게 생기면 반드시 만족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란다.

 

세련된 도시 청년이 보기엔 평생을 대장장이로 일해온 조가 바보 같고, 어리숙해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이 대사를 보면 삶에 대한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직업은 없으며, 인간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모두 주인공이니 말이다. 막대한 재산을 통해서 허울뿐인 가짜 신사가 되고 싶었던 핍은, 자신의 지난 날을 반성하고 진정한 신사로 거듭나게 된다. 순진무구했던 어린 핍이 엄청난 재산을 통해 타락을 하다가, 고난을 겪으며 다시 순수한 영혼을 되찾는 일종의 성장 소설인 이 작품은, 찰스 디킨스 특유의 주제 의식과 결합해 깊이 있는 스토리로 감동을 준다. 단순히 위대한 유산이 돈이 아니라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삶도 자신의 의지대로가 아니라 주어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부모들의 유산대로 그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닌 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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