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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평점 :
"내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니까 그 해 겨울, 너희가, 셋이서, 무엇으로 맺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선생님이 눈을 깜작깜작 한다. "어떻게 맺어졌는지는 알고 싶지 않아. 무엇이 너희를 덩어리지게 했는지 알고 싶다. 사랑이라고 하면 너무 범속하고."
"담배를 피우면 있지, 조금씩 나를 훼손한다는, 조금씩 나를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사실은 좋다." 선생님이 내 담배에 불을 붙여준다.
"우리도.... 어쩜 그런 거 아니었을까요?
소설가 '나'의 제자이자, 한때 작가를 지망했고 결혼에 실패한 후 '소소'에 내려와 사는 여자 'ㄱ'
형과 아버지는 광주에서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요양소에 계시는, 베이스 연주자였던 떠돌이 남자 'ㄴ'
간신히 국경을 넘어와 신분을 위장하고 살아왔던 탈북자 처녀 'ㄷ'
이 작품은 ㄱ의 집터에서 남자 ㄴ의 데스마스크와 유골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이들 세 사람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이들 셋은 서로를 '사랑'했다. 이런걸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말이다.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소소의 집으로 내려왔을 때, ㄱ은 한동안 혼자 사니 참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ㄴ이 그 집에 들어오고 나서는 둘이 사는 것도 참 좋다고 깨닫는다. 이후 ㄷ이 그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되고 나서는 셋이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삼각관계도 아니고, 누가 누구를 질투하고 소유하는 관계도 아닌, 이들 세 사람의 관계가 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들은 섹스를 덩어리가 된다.고 표현한다. 서로 소유하지 않고, 그러니까 각각의 내면에 있는 가시가 훼손되지 않도록 암묵적인 동의가 전제된 '덩어리 되기'라나. 한 남자와 두 여자, 세 몸이 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을 글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어쩌면 이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느낌도 살짝 든다. 이들의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정말 이상하게도.
남자 ㄴ은 이렇게 말한다. 셋으로 삼각형을 이룬 게 아니라 셋으로부터 확장되어 하나의 원을 이루었다고. 둘 이선 절대 원형을 만들 수 없었던, 셋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완전한 원형 말이다. 죽음에의 강한 끌림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조건도, 욕심도 없이 스스럼없이 끌렸던 것 같다. ㄱ은 어릴 때 오빠와 부모를 차례로 잃은 기억이 있으며, ㄴ 또한 광주에서 진압군에게 형과 아버지가 모두 살해당했었고, ㄷ은 국경을 넘다가 아버지가 죽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오고, 이겨내고, 지나야 했던 이들이 각자의 선인장 가시를 품고 비로소 '소소'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ㄱ은 첫 결혼의 실패 이후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이란 각자에게 숨구멍이 필요하다는 것을, 함께 있어도 '숨구멍'이 따로 있어야 겨우 유지될 수 있는 게 1대 1의 관계라는 걸 깨닫는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필연적으로 선인장 가시처럼 몸뚱어리 안에 숨겨 간직해야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내가 그 동안 수십 권의 소설을 썼으니 얼마나 플롯에 질렸겠냐. 플롯이란 한마디로 인과론 같은 거 아니냐.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죽는다면 소설은 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그 원인의 진술에 바쳐지는 것. 그리고 인과론은 당연히 시간의 꼼꼼한 관리로써 미학적 균형을 얻는다. 그게 플롯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갖고 있는 게 작가라고 여기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야.
물론, 플롯 없이 쓰는 게 가능할까 생각하면 머리가 더 아프다. 딜레마야. 하기야 뭐, 소설 쓰기만 그런 건 아니겠지. 우리 모두 근본적인 지향은 자유일 텐데, 삶에서나 사랑에서나, 사람들은 플롯을 만들어 씌워 구조화하려고 평생 안달하거든.
극중 소설가 '나'가 제자인 ㄱ에게 말하는 이 대목은 어쩐지 박범신 작가의 말처럼 들린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가 여전히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 우는 까닭이기도 하고 말이다. 플롯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극중 '나'의 이야기는 결국 이 작품 소소한 풍경을 쓰고 있는 박범신 작가의 멘트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반적인 사랑의 서사 공식에서 벗어나있는 독특하고, 이상하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매혹적인,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정의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이니 말이다. 불가능한 관계를 가지고 불가능한 사랑을 완성시키는,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가 발견되어 형사가 수사를 하지만 결국엔 물증도 동기도 찾을 수 없어 완전범죄가 될 수밖에 없는, 자살도 아니지만 범인도 없는 그런 죽음, 우물을 파는 남자와 평화로운 순간에 연탄가스를 피워 죽으려고 했던 여자의 마음은 결코 인과관계에 의한 플롯으로 만들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작가야. 그러므로 나는 평생 늘, 새로운 문장을 쓴다. 그 동안 수십 편의 소설을 썼지만 똑같은 문장을 두 번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새로 쓰는 문장으로 이미 써버린 과거의 문장을 계속 엿 먹인다고 상상하면 가슴이 뻐근하다."
박범신 작가의 언제나 새로운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평범한 플롯도, 인물들의 관계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오로지 그만이 쓸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