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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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문학가 도스토예프스키. 그가 쓴 소설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다음과 같은 비극적 사건을 다룬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그는 자신의 아들인 첫째 드미트리, 둘째 이반, 셋째 알료샤(알렉세이의 애칭)가 어떻게 자라는지 관심도 없이 오로지 술과 여자, 방탕한 생활에 빠져 사는 남자다. 그는 드미트리의 친모가 아들 몫으로 남긴 유산을 착복한 것도 모자라, 한 여자를 두고 드미트리와 싸우는 중이다. 돈 문제로 인한 불화, 그리고 아들의 돈을 미끼로 애인을 뺏으려는 아버지 때문에 드미트리는 그에 대해 끔찍한 혐오감을 느끼며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한다. 그러던 중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살해되고, 드미트리는 이 사건의 피의자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인간에 대한 통찰을 집대성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4부 12편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된 총 3권의 장편소설이다. 1권이 여러 인물에 대한 소개와 집으로 모이게 된 세 형제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라면, 2권에서는 인물 간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드미트리가 아버지 살해 혐의로 체포되어 예심을 받게 된다. 사건의 정확한 전말은 3권에 나온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에 대한 공판이 주를 이룬다.


  이 소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형제들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다른 등장인물들의 삶과 사연도 함께 담아냈다. 그런데 사람이란 존재는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오늘날에 이르는 만큼, 어떤 것이든 나름의 유기적 연결성, 그러니까 그것이 사건에 대해서든 그 사람에 대해서든 어떤 관련을 갖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포함해 차근차근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나가기로 한다.


  책을 완독한 후, 이 작품은 가까이서 바라보면 세 형제의 이야기와 친부 살해를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조금 물러나 넓게 바라보면 등장인물 저마다의 인간적 욕구, 본성, 탐욕, 그 민낯을 그려내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선과 악, 신의 존재와 믿음에 대해서 종교적, 철학적인 사유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을 통해 점점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람의 ‘개인성, 분리, 고립, 냉소’가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대신 ‘보편적 형제애, 인류에 대한 봉사, 통합, 이해’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인간 전체와 신앙을 종합적인 시각으로 아우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러시아 문학이고 근대소설이다. 그런데 그에 크게 상관없이 마치 지금 사람들의 모습이나 문제를 다룬 듯, 인물들의 내면이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부분에 매우 감탄해본다. 그리고 때때로 위기 앞에서 등장인물들은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과거의 결정 때문에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처럼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은 독자에게 동질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어떤 선택,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그리하여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어느새 책을 읽는 내내 이런 흥미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은 이
장편소설이 제법 방대한 양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게끔 해주는 좋은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과연 시대를 뛰어넘는 문학작품이라 할만하다.

 

 


[삶과 사람, 답은 사랑이다]
  미움과 질투, 조롱과 모욕, 의심과 냉대.
  책을 읽다 보니 비단 카라마조프가의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조시마 장로가 있던 수도원에서도, 콜랴와 일류샤(스네기료프의 아들인 일류셰치카의 애칭)가 있던 소년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인물들 간에도 이러한 모습은 종종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은 어떤 마음으로 삶 혹은 사람을 대하며 살아가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 도스토예프스키는 끊임없이 사랑의 가치를 언급한다. 사랑. 이것은 가족, 연인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도 말함이다. 이 책 2권, 조시마 장로가 손님들과 나눈 담화에서는 사랑의 범위를 동물, 식물, 모든 사물로 확장시켜 모든 사람을, 모든 것을 사랑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겸허한 사랑은-어떤 힘과도 비길 수 없는, 모든 힘 가운데 가장 무서운 힘이니라.(2권 p.84)

 


  그래도 막상 모든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하면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조시마 장로는 실천적 사랑을 언급한다. 이것은 한 사람을 온전히,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존재를 다하는 사랑이다.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존중과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타인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도 사랑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을 해보면 어떨까.


  알료샤는 그루셴카와의 첫 대면에서 그녀를 소문대로 여기지도 않고 어떤 판단 없이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용서해주고 사랑해주길 기다렸다며 고마워하고 감동해한다. 그러자 알료샤는 그루셴카에게 자신은 그저 작은 양파 하나(소설 속에서 ‘양파 한 뿌리’에 대한 우화가 등장한다)를 건넸을 뿐이라며 자신을 낮춘다.
  소설 속에서 알료샤는 언제나 그랬다. 편견과 선입관 없이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봐 주고 말을 들어준다. 그는 남을 비난하거나 의심한 적 없으며, 아무 이유나 조건 없이 상대를 사랑하고 믿어준다. 물론 이러한 점은 누구나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진실함이 담긴 그 한순간만으로도 누군가는 절망으로부터 되살려지는 것 같은, 마음의 구원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여전히 쉽지 않으며, 말처럼,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지금 당장 마음 한 줌 내어줄 여유가 없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것만이라도 꼭 지켰으면 좋겠다. 내면에 분노와 미움이 있더라도 거기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 것, 그것들이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겠다.


  그리고 불행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 그 안에서도 행복과 희망은 있을 수 있음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전한다. 그러니 미움, 질투, 증오가 점점 마음을 차지하도록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마음 한구석에 사랑도 싹틀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고 주의를 기울여 돌봐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증오와 불행에 사로잡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포함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마저 잊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그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위해서인 만큼,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며 앞으로도 쭉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삶이 네게 많은 불행을 가져오겠지만, 바로 그 불행들로 인해 너는 행복해지기도 할 것이며, 삶을 축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삶을 축복하게 해줄 게야-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너는 바로 이런 사람이란다. ...”(2권 p.14)


"뭣하러 날수를 셉니까, 인간이 모든 행복을 알게 되는 데는 단 하루로 충분해요. 내 사랑하는 이들이요, 왜 우리는 서로 싸우고, 서로 허세를 부리고, 서로 앙심을 품는 걸까요? 곧바로 뜰에 나가 산책을 하고 뛰어놀고 서로 사랑하고 칭찬하고 입맞추고 우리의 삶을 축복합시다."(2권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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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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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구성의 소설도 있을 수 있구나 싶어 신선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나’, ‘그녀’, ‘모든 흰’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카테고리가 있고, 거기에는 작가가 목록으로 만들었다던 흰 것에 관한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의 단어들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나 느낌들을 짤막하게 담아내고 있는 형식이다.
  한강 작가의 『흰』은 마치 나무와 숲을 바라보는 듯한 매력이 있다. 어찌 보면 각각 독립된 한 편의 시 같으면서도, 한 발자국 떨어져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서 연결되는 어떤 이야기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 그러나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는 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흰’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아우른다.

 


  글을 하나하나 읽다가 새삼 우리 주변의 흰 것들이 제법 많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해본다.
  흰 천의 배내옷,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운 도시의 새벽안개, 안개가 짙었던 섬의 아침, 어둠 속에서 희어 보이는 어떤 사물들, 흘러내리는 촛농, 유리창에 하얗게 얼어붙은 성에, 아무도 밟지 않은 서리, 하얀 나비의 날개, 성글게 흩날리는 눈송이들, 추워진 아침에 입술에서 나오는 흰 입김, 다른 색의 새와는 다른 감동을 주는 흰 새들, 정육면체의 각설탕, 바닷가에서 주운 흰 조약돌 등등.

 

  물론 우리도 시간을 들인다면, 작가가 목록으로 작성한 것들 이외에도 더 많은 하얀 것, 흰 것들이 있음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이 주는 느낌을 직접 문장으로 풀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면 작가는 소금을 두고 ‘희끗한 그늘이 진 굴곡진 입자들이 서늘하게 아름다웠다’며 소금의 또 다른 면을 이끌어낸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색깔 같지만, 알고 보면 저마다 다 다른 흰 감각과 감정이 있음을 보여주는 한강 작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작가의 섬세하고도 세밀한 표현력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덕분에 다양한 ‘흰’을 음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얼어붙은 거리를 걷던 그녀가 한 건물의 이층을 올려다본다. 성근 레이스 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다.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이 우리 안에 어른어른 너울거리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정갈한 사물을 대할 때마다 우리 마음은 움직이는 것일까?
  새로 빨아 바싹 말린 흰 베갯잇과 이불보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거기 그녀의 맨살이 닿을 때, 순면의 흰 천이 무슨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당신은
귀한 사람이라고. 당신의 잠은 깨끗하고 당신이 살아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잠과 생시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순면의 침대보에 맨살이 닿을 때 그녀는 그렇게 이상한
위로를 받는다. (「레이스 커튼」중에서)

 

  물과 물이 만나는 경계에 서서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그러나 실은 영원하지 않다-지구도 태양계도 언젠가 사라지니까),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만져진다.
  부서지는 순간마다 파도는 눈부시게 희다. 먼 바다의 잔잔한 물살은 무수한 물고기들의 비늘 같다. 수천수만의 반짝임이 거기 있다. 수천수만의 뒤척임이 있다(그러나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파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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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유령들 -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황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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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책표지에 크게 신경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자연스레 보이게 되더라. 거기에는 어렴풋 보이는 4명의 실루엣이 있으며, 그들은 바로 이 소설에서 설정한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에 나오는 등장인물임을.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율과 징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율의 이야기>, 연출이 꿈인 <철수의 이야기>, 율의 아버지와 같은 극단에 있었던 <오수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은 모든 비밀과 진실이 밝혀지며 현재를 담아낸 <남은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면에서는 표지의 4명이 과거 사건에 휘말렸다던 징과 율의 부모님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다른 인물들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전말이 드러날수록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소설 내내 계속 언급되는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과는 무슨 관계인지 밝혀지며, 은연중 계속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알제리의 유령들.
율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삼 년째 되던 해 징의 어머니를 만나 같이 살게 되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희곡을 읽게 된다. 그것은 '알제리'라는 술집을 배경으로 네 명의 유령이 등장하는 희곡이었다.
이는 탁오수가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린 연극의 제목이기도 했다. 연극계에서 은퇴 후 오수는 제주도에 내려가 ‘알제리’라는 술집을 차려 운영 중이다. 철수는 그 연극의 극본을 읽어 보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자 오수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가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그리하여 철수는 오수에게서 박선우와 친구 여섯 명, 그리고 칠현회라는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덧붙여 오수는 의심과 의문과 반박을 하는 철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걸 보고 들어도
각자에게 들어보면 다들 다른 이야기를 하지.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일도 어떤 땐
사실이 아닐 때도 있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 채 겪었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거짓이 사실이 되는 경우도 있지. (...)”(p163)


그러니 당사자가 판단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는 오수.
그러자 철수는 오수에게 결국 이렇게 털어놓는다. 선생님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모두가 사실인 것 같고 모두가 거짓인 것 같다고.
아아, 어떤 면에서는 오수의 설명이 일리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단순한 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혼란스러움만 더할 뿐이다. 오수의 말처럼 각자가 바라본 것, 느낀 것에 따라 사실도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사실 말고, 변하지 않는 본래의 진실이랄까 원래 진짜 어떤 일이 있었나 하는 그런 부분은 분명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오수는 정확한 설명은 해주지 않는다. 철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수는 "자네가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다는 거, 알아내겠다는 거. 그게 바로 진실이네."(p.166)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그래서 그 진실이 뭔지, 빙빙 돌리지 말고, 자네가 알아내고 싶다는 것이 곧 진실이라는 대답 말고, 그냥 말해주면 안 되겠냐고 묻고 싶어진다. 자꾸만 같은 곳을 맴도는 것 같은 답답함도 잠시, 다행히도 4부 <남은 이야기>에서는 그 진실이 무엇인지, 사람들과 ‘알제리의 유령들’에 얽힌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율의 아버지와 오수가 주고받은 대화들이며 칠현회에 대해서도.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이 모두 다 그대로의 진실은 아니며, 그러므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은 개인의 몫이겠지만 그 또한 함부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한편, 율은 징을 만나러 간다. 율은 징을 만나면 무슨 대화를 나누게 될지, 무엇을 하게 될지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자꾸만 스스로 묻게 된다. 우리도 때로는 이럴 때가 있다.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을 때.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만난다는 사실이다.
마주치는 장면을 상상하는 대신 진짜로 서로 마주한다는 점, 잠이 오지 않던 밤에 홀로 앉아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던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직접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 그러니 괜찮을 것이다. 뭐가 괜찮냐고 묻는다면 예전에 징이 했던 대답을 빌려볼까 한다. 그것이 ‘뭐든. 누구든.’ 그러니 율과 징은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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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발견
이원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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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발견』은 시인 이원의 자신의 인생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아가 다른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아우르며 삶의 순간순간들을 담아낸 산문 책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순간주의자’라고 말한다. 너무 먼 시간을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집중해서 잘 살자는 의미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마치 미래가 없을 것처럼 오늘을 마음대로 소비하자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세상, 태생적인 겁 많음과 어렸을 적 겪은 가족의 죽음. 그녀는 어쩌다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까지 몸을 확장시키면 금방 불안해진다고 털어놓는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 건 아닐까. ‘최소의 발견’을 자신의 중심으로 삼아 일상의 어떤 순간이나 거기에 존재하는 감각, 꼭 필요한 하나에 집중하기로 한 것 말이다. 그러나 ‘최소’라고 해도 절대 얕봐서는 안 된다. 작가에게는 바로 이 ‘최소’는 곧 최대를 지탱시키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지만 역시 그녀의 인생에 있어 ‘시’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서울 예대 2학년, 용기를 내어 가족사에 대한 시를 썼는데 그 과정을 통해 그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작가에게 시는 낯선 세상 속 불안을 가라앉혀주고 어딘가와 닿게 해주는 연결고리다. 그리고 그녀는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살아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것만 봐도 우리는 작가에게 있어 시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생동감을 주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삶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비명 지르고 싶은 시간들이 내게도 있지만 바로 그 순간 비명을 몸 안으로 넣고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비명이 삶을 일으켜 세워 준다는 것도, 비명이 내 날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 나는 이제 삶이 그리 비장하지 않은 것임을 안다. 시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p.35)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 주라는 말이 인상 깊다. 그러다 보면 저마다의 고통과 불안, 슬픔은 어느새 자신 편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 역시 남에게만 친절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본인을 좀 더 챙길 일이다. 앞으로는 자신에게 상냥하고 너그럽게 대하기를. 그리고 자신의 아픔이나 약한 부분도 달래고 쓰다듬으며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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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의 서 -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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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이나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을 만나면 거의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아, 저 사람은 왠지 나와 닮았구나, 하고.
  어쩌면 남자주인공 ‘정안’도 그러한 이유로 그녀에게서 더욱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관람객 중 유독 시선이 가며 어딘가 위태롭고 이상해 보였던 그녀. 그리고 왠지 모르게 죽음의 냄새가 났던 그녀.
 

 

  그녀(오상아)는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관련된 일을 하는 공무원이다. 새벽 야간근무에는 전화 상담을 하고, 자살이나 재해가 생기면 직접 현장에 나가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유가족을 만난다. 그리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방법을 찾는 일도 그녀의 업무 중 하나다. 그런데 그녀는 생존자들의 몸속에서 죽음에 대한 욕망과 목소리가 울려 나오는 것만 같아 무척 힘겨워한다. 죽음은 자신을 끌어당기는 듯했고 자꾸만 옭아매는 기분이다. 본인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그 말들을 뿌리치고 도망치며 자신을 붙잡고는 있지만 어쩐지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듯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궁박물관 미라 특별 전시실에서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정안은 고궁박물관에서 문화재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와 같은 유전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최근에는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고 몸 상태도 점점 안 좋아지면서 이제는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그런데 전시실에서 절박한 표정의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고,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어떤 비슷한 파장을 그녀에게서 감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닮았다. 정안에게 어두운 전시실은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곳, 자신의 시력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자꾸만 죽음을 향해 여기저기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자신의 몸을 감추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p.88)는 곳이었다.
  한편 그녀에게 전시실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곳, 고된 삶과 죽고 싶은 욕구에 대해 듣지 않아도 되는 곳,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의 어둠은 빛이 사라진 뒤의 어둠과는 다르게 편안함과 부드러운 촉감, 배려를 가져다주는 어둠이었다.

 


  오래된 유물 역시 그와 그녀에게는 위안이 되는 요소다. 정안은 작업에 매달릴 때만큼은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었고, 자신이 죽어도 자신이 작업한 유물들이 이 세상에 남는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그녀는 미라를 보며 ‘더 이상 자신에게 매달리며 죽고 싶다고 속삭이지 않을 터였다. 오히려 지금 그녀가 위로받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그건 이미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난, 자신이 왜 죽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미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p.72)을 하게 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그들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은 바로 서로의 존재였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지금 말을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살아 있기 힘들 것 같’(p.130)은 심정인 순간 그를 떠올려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그는 그 즉시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부터 그녀를 벗어나게 해준다.

 

그는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죽음의 어둡고 음습한 기운으로부터 아주 먼 곳으로 달아나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 쏟고 있는 중이었다. (p.142)


그는 벌써 여러 번 스스로 견고하게 쌓아왔던 원칙과 약속 들을 어기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고, 누군가가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p.143)


 


  정안과 그녀 사이에 자주 연락이 오간다거나 만남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의 축적 없이도 이처럼 마음이 상대에게 향하고 행동할 수 있음이다. 정안은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데 듣는 내내 그 어떤 참견도, 섣부른 단정도 하지 않는다. 다 들은 후에 그녀를 안아줄 뿐이다. 그녀 또한 정안을 마주 안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받는 따뜻한 온기와 교감의 순간들. 그것은 그녀뿐만 아니라 정안에게도 깊은 위안과 충족감을 안겨주는 시간으로 서로에게 각인된다.

 


  자신을 다독여 주는 힘이 되고, 동시에 삶을 대하는 시각마저 변화시켜 어떤 전환점이 되어주기도 하는 ‘위안’. 그런데 이 위안이라는 것이 그렇더라. 멋지고 좋은 말로 긍정적 사고를 강요하는 사람보다는, 적어도 비슷한 상처로 아파본 사람이 자신의 상처와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때 더 위안이 된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을 가슴 한편 깊숙이 놓아둔 채 하루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 그런 우리 모두에게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위안이 함께 하기를 바라며,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충분하고 고마운 존재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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