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의 유령들 -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황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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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책표지에 크게 신경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자연스레 보이게 되더라. 거기에는 어렴풋 보이는 4명의 실루엣이 있으며, 그들은 바로 이 소설에서 설정한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에 나오는 등장인물임을.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율과 징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율의 이야기>, 연출이 꿈인 <철수의 이야기>, 율의 아버지와 같은 극단에 있었던 <오수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은 모든 비밀과 진실이 밝혀지며 현재를 담아낸 <남은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면에서는 표지의 4명이 과거 사건에 휘말렸다던 징과 율의 부모님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다른 인물들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전말이 드러날수록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소설 내내 계속 언급되는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과는 무슨 관계인지 밝혀지며, 은연중 계속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알제리의 유령들.
율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삼 년째 되던 해 징의 어머니를 만나 같이 살게 되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희곡을 읽게 된다. 그것은 '알제리'라는 술집을 배경으로 네 명의 유령이 등장하는 희곡이었다.
이는 탁오수가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린 연극의 제목이기도 했다. 연극계에서 은퇴 후 오수는 제주도에 내려가 ‘알제리’라는 술집을 차려 운영 중이다. 철수는 그 연극의 극본을 읽어 보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자 오수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가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그리하여 철수는 오수에게서 박선우와 친구 여섯 명, 그리고 칠현회라는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덧붙여 오수는 의심과 의문과 반박을 하는 철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걸 보고 들어도
각자에게 들어보면 다들 다른 이야기를 하지.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일도 어떤 땐
사실이 아닐 때도 있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 채 겪었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거짓이 사실이 되는 경우도 있지. (...)”(p163)


그러니 당사자가 판단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는 오수.
그러자 철수는 오수에게 결국 이렇게 털어놓는다. 선생님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모두가 사실인 것 같고 모두가 거짓인 것 같다고.
아아, 어떤 면에서는 오수의 설명이 일리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단순한 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혼란스러움만 더할 뿐이다. 오수의 말처럼 각자가 바라본 것, 느낀 것에 따라 사실도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사실 말고, 변하지 않는 본래의 진실이랄까 원래 진짜 어떤 일이 있었나 하는 그런 부분은 분명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오수는 정확한 설명은 해주지 않는다. 철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수는 "자네가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다는 거, 알아내겠다는 거. 그게 바로 진실이네."(p.166)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그래서 그 진실이 뭔지, 빙빙 돌리지 말고, 자네가 알아내고 싶다는 것이 곧 진실이라는 대답 말고, 그냥 말해주면 안 되겠냐고 묻고 싶어진다. 자꾸만 같은 곳을 맴도는 것 같은 답답함도 잠시, 다행히도 4부 <남은 이야기>에서는 그 진실이 무엇인지, 사람들과 ‘알제리의 유령들’에 얽힌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율의 아버지와 오수가 주고받은 대화들이며 칠현회에 대해서도.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이 모두 다 그대로의 진실은 아니며, 그러므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은 개인의 몫이겠지만 그 또한 함부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한편, 율은 징을 만나러 간다. 율은 징을 만나면 무슨 대화를 나누게 될지, 무엇을 하게 될지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자꾸만 스스로 묻게 된다. 우리도 때로는 이럴 때가 있다.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을 때.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만난다는 사실이다.
마주치는 장면을 상상하는 대신 진짜로 서로 마주한다는 점, 잠이 오지 않던 밤에 홀로 앉아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던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직접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 그러니 괜찮을 것이다. 뭐가 괜찮냐고 묻는다면 예전에 징이 했던 대답을 빌려볼까 한다. 그것이 ‘뭐든. 누구든.’ 그러니 율과 징은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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