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체로 오해에서 비롯되는 일이지만 이따금 대필을 부탁받는 경우가 있다. 틈만 나면 열심히 책을 읽는 덕에 남들 보기에 나는 글도 잘 쓰는 사람이려니 하는 선입견을 여러 사람의 머리에 각인시켜 놓았나 보다. 일부러 한 짓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갖게 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고 송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본의가 아니었다는 말과 함께...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일 년에도 몇 번씩 '이러이러한 주제로 짧은 글 하나 써줄 수 있겠나?'하는 말이나 그와 비슷한 부탁을 자주 듣는 까닭에 그에 대한 변명이나 완곡한 거절의 표현을 한두 마디쯤 늘 준비하고 다닌다. 이를테면 '저를 그렇게 좋게 봐주신 것은 감사하나 저는 사실 글을 쓸 줄 모릅니다.'로 시작하여 이차저차한 이유로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까지 내 인생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흐르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재주도 없는 놈이 덥석 떠안았다가 뒷감당도 하지 못하고 쩔쩔 매는것보다야 낫지 싶어서 글을 대신 쓰는 일만큼은 철저히 거절한다.

 

그러나 거절하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떠안는 일도 더러 있다. 몇 날 며칠을 끙끙대며 썼음직한 글을 내게 들고와서는 적당히 고쳐달라고 막무가내로 떠맡기는 경우이다. 그들의 부탁은 대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니 나보다는 낫겠지'하는 식으로 선제공격을 함과 동시에 내가 무르춤하며 거절의 말을 내비칠라면 '엉성해도 괜찮으니 고쳐만 주게' 일침을 가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렇게 억지로 맡은 일을 처리하자면 나 또한 몇 날 며칠을 고생해야 한다. 그야말로 사서 하는 고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일도 한가하고 여유가 있을 때면 그럭저럭 할 만하지만 남의 돈을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그렇게 마음 놓고 유유자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야 말이지... 아무튼 나는 그렇게 맡은 일을 한껏 뒤로 미루다가 이 일 저 일이 한꺼번에 닥치는 바람에 부랴부랴 서두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늘 한결같다. '아, 글을 좀 더 잘 쓸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매번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글쓰기 관련 서적을 읽을 생각은 도통 하지 않았다. 이 무슨 똥배짱인지 모르겠다. 그와 같은 책을 읽는다고 없는 재주가 갑자기 튀어나올 리 만무하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글쓰기에 관한 상식 일변도의 그렇고 그런 내용일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컸기 때문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가 쓴 <서민적 글쓰기>를 읽게 된 것은 지인의 권유에 등 떠밀리다시피 한 일이었다. 모 인터넷 서점의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로서는 책을 읽기도 전에 약간의 열등의식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시절 저자의 글쓰기 경험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의외로 술술 읽혔다.

 

책은 독자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아마도 저자의 경험을 줄기차게 언급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소심한 성격과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자신의 책을 몇 권 출간했으나 모두 말아먹었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 더 혹독하게 글쓰기 연습을 했음을 고백한다.

 

"짬날 때마다 책을 읽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소재가 생각날 때마다 글을 쓰다 보니 한 달도 안 돼 노트를 바꿔야 할 정도였다. 노트가 한 권 두 권 쌓여갈 때마다 글쓰기 실력도 나날이 상승하는 느낌이었다. 그맘때 "내가 나중에 유명작가가 되면 글쓰기 연습한 이 노트들도 값어치가 올라가겠지?" 하는 상상을 즐겨하곤 했다. 그런 생활을 7년쯤 하자 학교에 있는 내 캐비닛은 다 쓴 노트로 가득 찼다." (p.126)

 

내가 특히 관심을 두고 읽었던 부분은 이 책의 마지막쯤에 실려 있는 '서평은 어떻게 쓰는가'였다. 나도 이따금 책을 읽은 후 나의 블로그에 서평이랍시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글을 가끔 남기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어떤 체계가 있는 글쓰기보다는 내 나름대로의 막무가내식 글쓰기에 익숙해져 있지만 기회가 되면 깔끔하고 멋진 글을 한두 편쯤 써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그것은 책으로 내고 못 내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작은 갈망인 셈이다. 칼럼과 서평을 위주로 글을 써왔던 저자는 서평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선 편하게 쓰고, 스포일러를 조심하고, 자기주장과 책 인용을 구별하고, 모르는 이야기는 쓰지 말고, 지나친 권장은 피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저자와 조금 다르다. 글쓰기 실력이 연습을 통해 극복되고 향상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지만 끌리는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연습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소설과 같은 장문(長文)이 아닌 서평이나 일기 형식의 단문(短文)을 위주로 쓰는 일반 블로거의 입장에서 '기-승-전-결'의 구성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은 그리 오래 연습하지 않아도 충분히 익힐 수 있는 기술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자가 없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2% 부족한 셈이다. 그것은 바로 필자의 경험이다.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지 않은 글은 아무리 잘 쓴 글일지라도 재미가 없다. 그것은 단지 낱글자의 배열에 불과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등대지기 2022-07-11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며칠전에 꼼쥐님 서재를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써주시는 글이 무척 재미있어서 틈나는대로 읽고 있어요...!
막문단을 읽으니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와서 댓글 남겨요.
 

이 달 20일이면 아들의 열세 번째 생일, 우리나라 나이로는 이제 열네 살이 된다. 곧 초등학교 졸업과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지만 내 눈에 아들은 여전히 어리게만 보인다. 생일 선물로 아들이 원하는 책 몇 권을 주문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들을 둔 덕분에 생일 선물을 고르느라 골머리를 앓는 일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남들과 다른, 달라도 너무나 달라 거부감마저 드는 사고방식의 사람들을 볼 때면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그들은 대개 무슨무슨 부대나 무슨 전후회와 같이 군대 용어가 들어간 단체를 만들곤 하는데 그래서일까 그들의 사고방식은 때로 일반인의 상식에서 한참이나 멀어진, 도드라진 것이 되곤 한다.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자면 일반 세포와는 확연히 다른 암세포를 떠올리게 된다. 암세포는 우리의 몸 속에서 무서운 속도로 증식하여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행동이나 사고방식도 그와 유사한 모습을 띠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위화감과 적대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조직원 간의 상호 결속력을 다지고 외부인과 적대의식을 높임으로써 조직원 개개인의 투쟁의지를 높일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여 용서하자.", "위안부 할머니들이 희생해달라."

 

-본인의 딸이나 어머니가 위안부 피해자였어도 횽서할 수 있나?

"일본이 용서를 구하는데 용서를 해야지 어쩌겠나."

 

-OO부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은데...

"대꾸할 가치도 없다. 당연히 나와는 반대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잇다. 그것까지 내가 침해할 필요는 없다. 비난하라면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의 올바른 가치를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위안부(성노예가 옳지만)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같은 생각일 줄 알았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을 앞장서서 대변해주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내에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피해자였어도 용서한다'는 말은 얼마나 해괴한가. 진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인격적으로 완벽한 성인이거나 정신병자일 것이다.

 

일본 정치인들은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독일만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당하기는커녕 미국의 비호 아래 승승장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반성을 하고 위안부 피해자에게 무릎을 꿇어야 할까. 개인이든 국가든 절실함이 없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일본을 옹호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있다. 그들은 성인 아니면 정신병자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장소] 2016-01-0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밀양 ㅡ생각도 나고 ㅡ정말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용서라는 걸 해 보려고 찾아간 곳에서 그는 신의 자식이 되어 스스로 용서를 받았다면서 다른이의 용서는 필요 없다 ㅡ하죠.
다른 또 하나 ㅡ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ㅡ에서 였는데..사람이 사람에게 구해야 할건 용서가 아닌 위로라고ㅡ도 해요.
앞에선 살인자가 ㅡ뒤에선 ㅡ방관자가ㅡ 두 예는 저 글과 어쩌면 상 관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이 걸 거예요. 사람들은 사과하고 위로하고 애도하는데에 참 인색하다는 것..
개인도 그런데 좀 더 가진 사람은 높은 지위에 있거나 하다못해 권력이라도 가지거나 하면 그 고개는 더 뻣뻣해져서 수그러들줄 모르고 진정한 위로와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돈보다 더 많은 것을 할수있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있단 걸 인정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진다고 생각하죠. 국격이 그로인해 낮아지는 걸까 ㅡ인정하고 안하고 ㅡ이미 지불하고만 돈은 그들이 죄를 가졌단 걸 인정한건데 ㅡ적든 크든 ㅡ이해 안가는 정치놀음이고 언론이고 그러네요. 거기에 누가 당사자 아닌 사람들이 받아주라 마라 하는지 ㅡ가만있는 것도 미안한데 ㅡ
우리는 서로 위로 해야하는 사람들인데 말이죠.

꼼쥐 2016-01-07 12:59   좋아요 1 | URL
피해 당사자나 그들의 가족도 아닌 제3자가 용서를 해라 말아라, 희생을 해라 말아라 하는 꼴이나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호자찬을 하는 꼴이나 정말 가관이더군요. 이건 뭐 나라도 아니고 제대로 된 국민도 아닙니다. 언제부터 나라 꼬라지가 이렇게 되었는지...

[그장소] 2016-01-07 16:44   좋아요 0 | URL
ㅎㅎ그러네요..언제부터 ㅡ깜깜 하죠~휴~^^;;;
정신 바짝 차려야겠죠.지금 ..
 

여자들은 어떤지 몰라도 남자들만의 모임에서는 간혹 "얼굴만 예쁜 여자와 성격만 좋은 여자 중 고르라면 너는 누구를 고를 것 같니?"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수컷들의 모임이란 종종 본능 이외의 일에는 무관심해지곤 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뉠 리 만무하지만 남자들이 아니라면 그런 극단적인 흑백 논리의 질문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선호하지도 않을 것이다. 남자들의 단순성은 동성의 입장에서 보면 순수함이지만 여자들은 간혹 '변태'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단순한 것과 변태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단순한 질문이 등장하는 이유는 모르긴몰라도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에서 친한 사람들끼리의 모임에서나마 마음 편하고 단순해지고 싶어 하는 남자들의 솔직한 속내가 드러나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결혼한 남자들의 대부분이 성격 좋은 여자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혼전이나 돌싱이 된 남자들은 여전히 얼굴이 예쁜 여자를 선호하고 말이다. 돌싱은 결혼 생활을 겪어보았으니 성격 좋은 여자를 선호할 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걸 보면 남자들은 대개 좋지 않았던 기억들을 쉽게 잊는 듯하다. 그것도 아마 단순해서 그렇겠지만.

 

안 그런 남자들도 많다고 반론을 펼치거나 남자들을 싸잡아 도매금으로 넘기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하실 분이 많을 줄로 안다. 그러나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십보백보일 뿐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남자와 사적인 자리에서의 남자는 분명 다르기 때문에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지금 사적인 자리에서의 남자를 말하고 있다. 남자는 대체로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서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어쩌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공적인 자리에서의 남성과 사적인 자리에서의 수컷이라고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싶다. '남자의 단순함은 아메바보다 한 수 위다'라는 말처럼. 문득 생각난 것을 두서도 없이 썼다. 그냥 웃자고 한 말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16-01-03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얼굴만 잘 생긴 남자를 만나보고 싶어요. 현빈 같은? ㅎ
꼼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꼼쥐 2016-01-04 10:23   좋아요 1 | URL
세실 님 반갑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제는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로 보이곤 하더군요.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그장소] 2016-01-03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자고 하셔서 웃었습니다~^^

꼼쥐 2016-01-04 10:23   좋아요 1 | URL
ㅎㅎ

서니데이 2016-01-04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친구신청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꼼쥐 2016-01-04 20:03   좋아요 1 | URL
제가 무지해서 그런 기능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6-01-04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꼼쥐 2016-01-04 20:04   좋아요 1 | URL
제가 오히려 고맙죠. 사실 그런 게 잇는 줄도 모르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새해가 되면 나는 가급적 이동을 삼간 채 꼼짝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어쩌다 외출을 하더라도 가까운 산을 가볍게 오르거나 집 근처의 마트에서 장을 보는 정도의 지극히 제한적인 활동만 한다. 마치 동면을 하듯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단지 귀찮아서일 뿐인데, 이 시기에 어쩌다 뉴스를 보게 되면 내가 마치 상당히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바닷가까지 차를 몰고 가자면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그 험난하고 무대책의 고속도로를 향해 사람들은 끊임 없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불편도 감수하겠다는 듯 용감하게 길을 나서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혹시 나는 어린왕자가 사는 B612 소행성에서 태어난 외계인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뒹굴뒹굴 시간만 보내다가 볼 만한 책을 뒤적이고 있다. 뒤적뒤적~~

 

 

내가 황경신 작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모두에게 해피엔딩' 을 읽은 후였다. 그때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도, 글이 이루어지는 신선한 문체도, 작품의 소재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전작 읽기를 시도한 적은 없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그럭저럭 읽다 보니 거지반 읽은 듯하다. 작가의 신작이 왠지 반갑다.

 

 

 

 

 

 

 

 

작가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을 통해서였겠지만 나는 그 책이 그닥 뛰어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책이 형편없다는 게 아니라 작가의 역량에 비해 작품이 떨어진다고 할까, 아니면 대중을 타깃으로 쓴 상업적 성격이 짙다고 할까 아무튼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나는 그녀가 쓴 '마음의 서재'나 '헤세로 가는 길'이 더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생텍쥐페리를 소재로 쓴 정여울 작가의 에세이인지라 은근 기대가 된다.

 

 

 

 

 

 

 

방송작가 김경희의 부탄 여행기를 고른 이유는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제목에서 딱 멈춰섰을 수도 있고, '김경희'라는 이름에 시선이 갔을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다. 이맘때면 움직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의 성향에 대한 반발심리일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