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의 편지 김갑수 역사팩션 3부작 2
김갑수 지음 / 615(육일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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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갑수 저 <중경의 편지>를 읽고 / 2013. 09., 292쪽, 615출판

봉건 잔재가 남아 있던 일제 강점기에 압록강 너머로 군자금을 나르며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기꺼이 해냈던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그녀는 자신의 삶과 활동을 회고록 <장강일기>으로 엮어 후손에게 남겼다.
김갑수 작가는 그 <장강일기>를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 반도와 중국 등지에서 벌어진 한국 현대사를 역사팩션 형식의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압록강을 넘어서>에 이어 작가의 이번 작품도 책장을 펼쳐들자마자 푹 빠져 들었다.

1919년 국내외에서 벌어진 거족적인 항일독립운동에 놀란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총독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민족개조론’이라는 정치모략을 이용한다. 한낱 친일파에 불과한, 이광수를 비롯한 계몽개화주의자들은 조선이 망한 것은 낮은 민족 수준 때문이므로 스스로 독립하기가 불가능하고 떠들고 있었다. 따라서 기껏해야 희생자만 낼 따름인 민족해방투쟁이나 항일무장투쟁 같은 것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식인 김영세는 이들이 조선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데 심각한 문제인식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상해 임시정부의 자금을 모금하러 국내에 들어왔다가 일본경찰에 쫓기던 정정화를 숨겨주게 되고 그녀의 모습에서 커다란 감동을 받는다. 김영세의 도움으로 그녀는 상해로 무사히 돌아간다. 그 후 김영세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그것은 정정화의 편지였다. 그녀는 한반도와 상해를 오가며 독립자금을 나르고 상해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영세와 정정화는 항일운동의 열정과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교류한다. 교사였던 김영세는 친형이 독립운동을 위해 간도로 떠나고 형수마저 병사하여 조카 김민수를 맡아야만 했다.
일제시대에도 청춘들의 사랑은 존재했다. 삼촌 품에서 벗어나 서울로 유학을 떠나가 된 김민수는 아리랑고개에서 신식 여자 둘을 만난다. 나민혜는 화사하고 밝은 서양화가였고, 조순호는 부드럽고 조용한 대학생이었다. 김민수는 첫눈에 조순호에게 호감이 갔으나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고, 나민혜는 첫눈데 반한 김민수에게 적극적으로 구애공세를 폈으며, 역시 김민수에게 약간의 호감이 있던 조순호는 나민혜의 적극적인 태도와 거짓말에 의해 김민수에 대한 호감을 접어야 했다.

김영세와 정정화, 그리고 김민수와 조순호. 김갑수 작가는 김영세와 정정화를 작품 전개의 중심에 두고, 김민수와 조순호의 사랑 이야기를 배치하여 독자의 관심을 붙잡아 둔다. 
김영세와 정정화가 주고받는 편지는 1920~30년대 한반도와 중국, 만주 등지에서 전개된 항일독립운동과 계몽개화운동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장강일기>가 실존하는 편지이기 때문에 실제 일제시대에 전개된 국내 계화개몽운동이 친일파로 변절되는 과정, 상해 임시정부의 고난, 광둥과 만주에서 벌어진 항일무장투쟁, 일본과 미국 그리고 해외에서 전개된 외교운동의 실상도 드러난다.

<중경의 편지>에는 작가의 역사의식과 일제시대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평가도 담겨 있다. 작가는 일제시대에 국내에서 활동한 이광수와 잡지 <개벽>의 친일 행위, 동아일보 창간비사, 계몽주의, 정약용과 김옥균의 연관성, 일본의 왕궁 훼손, 안창호의 실상과 허상, 독립협회의 위선과 서재필의 악행, 항일무장투쟁과 양세봉과 김형직, 조선의용대와 조선혁명군의 모습 등을 작품 곳곳에 배치하였다.
역사팩션이니만큼 주인공들의 사상과 언행이 당시 사회역사적인 현실과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런 작품을 통해 왜곡되어 주입된 한국현대사의 인물과 활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라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서는 조선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매국노와 변절자 그리고 기회주의자와 '꺼삐딴 리'가 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죽도록 일본 황제에 충성했던 친일파들의 작태는, 미국이 멸망하지 않을 것 깉다는 생각으로 미국 찬양과 미국으로의 종속을 갈구하는 '제2의 친일파'가 가득한 21세기 한국사회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100년 전 영원할 것 같던 일제에게 충성을 다한 친일파의 유령이 되살아난 듯 하다.
물론, 그런 매국노들의 반대편에는 오로지 독립과 항일투쟁을 위해 일신의 안위와 가족의 안녕까지 버리면서 국내외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애국지사들의 모습도 담겨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독립과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해 생사를 넘나들며 진심으로 싸우는 이들은 누구인지...

김갑수 작가의 팩션소설 3부작 중 첫 번째인 <압록강을 넘어서>를 읽은지 1년도 더 지났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을 잊을까 걱정했지만, 시대의 흐름이 연속됨에도 각 작품이 별도의 스토리와 주인공으로 구성되어 작품을 감상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압록강을 넘어서> 속에 깃들어 있는 우리 선조들의 투철한 애국애민 정신은 <중경의 편지>에서도 그대로 담겨 있는 듯 했다.
세 번째 작품인 <전쟁과 운명>은 이미 구했다…ㅎ

[ 2014년 12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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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 현대의 상식과 진보에 대한 급진적 도전
이반 일리치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느린걸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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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공용(共用)'인가?

"예전에 어른들은 길에 평상을 내놓고 앉아 한담을 나누었고 아이들은 길에서 술래잡기와 구슬치기를 하며 놀았다. 이들은 지금 길이 공용이던 시대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대도시에서 큰길이 아닌 뒷길, 흔히 '이면도로'라 부르는 길에 가장자리를 따라 차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얼핏 보행자를 위한 선 같지만 사실은 보행자를 위해 그린 것이 아니다. 사람을 노란 선 밖으로 내몰기 위한 것이다. 어두운 밤 좁은 뒷길을 달리는 자동차가 길가의 담이나 기둥, 전봇대 같은 것을 들이받지 않고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그린 선이다.
이제 길은 머무름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통과를 위해 존재한다. 뒷길에 그린 노란 선은 길이라는 공용 밖으로 사람을 쫒아내는 선명한 색깔의 담장이다. 
그러나 한담을 나눌 때에는 카페에 가서 앉아야 하는 시대의 우리,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틀에 따라 삶을 살아온 때문에 길에서 술래잡기를 해본 적이 없는 우리는 저 노란 선을 보면서도 그 본질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달라져 있다."(p.370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반 일리히의 사상을 읽는 관점,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관점으로 제시한 옮긴이의 후기다.

이반 일리히는 1970년대 <학교 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 <병원이 병을 만든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등의 저술로 현대 문명에 근원적 도전을 던졌던 사상가이다. 그는 모두가 믿는 것,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을 의심하고자 했다.
당시 학교(교육제도)와 병원(의료체계), 교통과 기술, 개발과 경제성장 등 진보와 보수,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겨냥한 그의 발언들은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출판사는 일리히가 그의 말년 20여 년 동안 현대 문명에 대한 더욱 뿌리 깊은 사상적 도전을 치열하게 이어갔고, 현대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아시아로 도보 여행을 떠났으며, 동양의 여러 언어들을 익혔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사상의 여정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과거, 그 중에서도 12세기 중세 유럽이었다고 소개한다.
"현대의 여러 관념들이 형성되던 시기였던 12세기를 통해 일리히는 독자를 지배하는 현대의 관념과 확실성의 기원을 뿌리까지 밝혀 내고자 했다."

이 책은 이반 일리히가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중반에 걸쳐 경제, 교육, 의료, 언어, 종교 등 분야별 세계적 권위의 학회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그들이 금기시하는 전제들에 도전을 던지고 연구 방향의 근본적 전환을 호소했던 12년 간의 연설문이 망라되어 있다.
일리히의 글이나 문장이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번역이 한글 문맥상으로 매끄럽지 않은지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책장을 넘기는 것이 어려웠다.

제1부에서 일리히는 '공용'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띠는지 그려낸다. 일리히는 전통문화를 공동체에서 희소성 인식이 확대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일련의 규칙으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현대화'나 '산업화' 또는 '자본주의'화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희소성'을 만들어 상품화하는 시스템임을 지적한다. 그는 그런 시스템을 '팍스 오이코노미카'라고 규정한다. '팍스 오이코노미카'는 "경제학의 전제, 즉 희소하지 않은 가치는 보호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전제를 통해 민중이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언제나 개발은 희소하다고 인식되는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희소성 의존이 확산됨을 의미합니다. 개발 과정에서 환경을 개조하여 물자의 생산과 유통을 위한 자원으로 만드는데, 이때 필연적으로 자급 활동을 위한 조건이 제거됩니다. 개발은 따라서 필연적으로 모든 형태의 민중의 평화를 희생하고 그 자리에 팍스 오이코노미카를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용이 자원으로 탈바꿈될 때 인간이 무엇을 잃게 되는지 밝히고 있으며, '호모 오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과 '부정가치' 그리고 '거부의 정치학'에 대해서도 논한다.

"진정한 의미의 여느 공용과 마찬가지로 길거리 자체도 사람들이 거기 살면서 그 공간을 살만한 곳으로 가꾼 결과물이었습니다. 그 길가에 늘어선 집들은 현대적 의미의 개인 주택, 즉 노동자를 밤새 보관해 두는 수납창고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적 생활공간과 공유되는 생활공간은 문지방을 중심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적 의미의 집도, 공용으로서 길거리도 경제 개발에서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거의 1백년 동안 수많은 정당이 환경 자원이 소수의 개인에게 집중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환경 자원을 사적으로 이용한다는 차원에서 논의되었을 뿐 공용이 사라져 없어진다는 차원에서는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정치운동은 이제까지 공용을 자원으로 탈바꿈시키는 행위의 적법성을 뒷받침해왔습니다."
"공간이라는 공용이 섬세하여 교통이 동력화되면서 파괴되는 것처럼 말(言語)이라는 공용 역시 섬세하여 현대적 통신수단이 잠식해 들어오면서 쉽사리 파괴된다는 점입니다."
"공용이던 환경이 이처럼 생산을 위한 자원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환경 퇴화의 본모습입니다. 이런 퇴화에는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역사가 일치하지만, 오로지 그것으로 한정지을 수만은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정치생태학은 이런 탈바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까지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해왔습니다." (p.73)

제2부에서는 '교육자'를 대상으로 한 일리히의 강연이 담겨 있다. 일리히는 교육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가 아니라 '교육에 대한 연구를 하자'고 호소한다. 당시의 교육 이론 속에 공통적으로 숨은 전제를 구성하는 '확실성'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호모 에두칸두스(배움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의 사회적 발생을 연구해야 함을 역설한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학교 교육은 유전적 차이를 억지로 비틀어 퇴화를 이끌어내는 공인된 과정입니다. 건강을 의료화하면 현실적이고 유용한 수준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동시에 상식적인 건강 즉 유기적 대처 능력은 떨어지게 됩니다. 혼잡한 시간대에 움직여야 하는 대다수는 수송 때문에 교통의 노예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 자유의사로 선택하는 이동과 상호 접근성이 모두 감퇴됩니다." (p.109)
"확실히 어떤 지역에서든 지배적이고 표준적 언어가 누리는 우월한 지위는 글쓰기를 통해 더 강화됐고, 인쇄를 통해서는 더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지배 언어가 다른 언어를 식민지화하는 힘은 인쇄술에 힘입어 막강해졌습니다."


제3부에서는 정신공간의 분수령으로서 구술, 문자 및 컴퓨터와 '질료의 역사'를 다룬다. '질료'라는 말로 일리히가 의미하려는 것은 물이 H2O로 변해가는 과정을 고찰하면서 나타난다.
특히 일리히는 자신이 70년대에 출간한 <학교 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의 핵심 주장을 부정한다. 그는 자신이 교육을 위해 '학교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는데 이것이 실수였음을 지적한다. 그는 "학교라는 제도를 폐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은 조건 없이 주어진 여가의 선물이던 교육이 절박한 필요로 되어가는 추세를 뒤집는 일"이었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희소성을 핵심으로 하는 개념인 호모 에두칸두스가 다시 등장한다.

"이렇게 하여 저는 '배움'이 교육을 생산하는 수단 안에서 희소성을 전제로 이루어질 때 그것이 교육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교육이라는 '필요'는 소위 희소의 사회화를 위한 수단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믿음과 합의의 결과물로 나타납니다."

"관을 타고 도시로 들여온 물을 하수도를 통해 다시 도시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도시 설계의 기본 원칙이 된 것은 증기기관이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 되고 나서였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이러한 생각이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p.205)

제4부에서는 의료가 더 이상 핵심 쟁점이 아님을 주장한다. 일리히는 인류가 탐구해야 하는 주제는 바로 '생명'을 궁극의 자원으로 인식하고 부지불식간에 관리하는 행위임을 지적한다. 결국 "생명윤리학의 가면을 벗기자"는 것이 요점이다.

"의료 윤리라는 말은 안전한 성, 핵 보호, 구사 정보만큼이나 모순적인 어법입니다. 1970년 이후로 생명 윤리가 역병처럼 버지면서,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인 맥락에서 윤리적 선택 비스무레한 것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의 생명이라 불리는 것이 보살핌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한 인격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죽음을 가져오는 시술이며, 아담과 이브 시대에 생명의 나무를 향해 손을 뻗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합니다."

더글러스 스미스는 추모글에서 이반 일리히 사상의 핵심 중 하나인 '근원적 독점'과 현대의 '근대적인 가난'을 연관시킨다. 
"어떤 물건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그것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는(스마트폰처럼...) 근원적 독점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는 새로운 상품이 만들어졌지만, 가격이 비싸서 소수의 부유층만 구매할 수 있는 단계다. 2단계는 가격이 떨어지면서 보통 사람들 대다수가 구매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상품은 갖고 있으면 '편리'한 물건이다. 3단계는 그 상품 없이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만큼 사회가 재조직되는 단계로, 이제 물건은 '편의품'에서 '필수품'이다."

일리히는 '근원적 독점'과 함께 '반생산성' 개념으로 현대 기술의 근원적 문제를 지적했다. '반생산성'은 기술이 어떤 한계점을 지나면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의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제 그의 진단은 현실이 되었다. 병원은 치료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병을 만들어낸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배울 능력을 빼앗고, 감옥은 죄를 양산하며, 자동차는 교통을 지체시킨다. 
반생산성 단계에 이르면 제도로 인해 개인들은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고 문제를 푸는 능력을 빼앗기고, 그 대신 전문가의 지식에 의존하도록 내몰린다. 급기야 제도가 인간의 삶을 대신하고, "역사상 가장 부유한 인류가 역사상 가장 무기력한 인간"이 된다.

나도 법정스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성장을 멈춰라 Tool for Conviviality>를 시작으로 이반 일리히의 저서를 여러 권 읽으면서 일리히의 관점과 문제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내가 읽은 일리히의 저서로는 <성장을 멈춰라> 이외에도 <학교 없는 사회>, <병원이 병을 만든다 Limits to Medicine>,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Energy and Equity>, <그림자 노동 Shadow Work> 등이 있다.
성장에 대해, 교육제도나 의료체계에 대한 기사나 글, 책을 읽을 때면 종종 일리히의 책을 다시 들여다보곤 한다. 그렇지만 이반 일리히는 여전히 어렵다. 무언가 인류사회의 당연한 것 같은 흐름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문제제기하는 그의 생각은 정해진 이론이나 일방적인 관점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 준다.

[ 2014년 12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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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사는 즐거움 -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의 여유와 지혜, 개정판
허균 지음, 김원우 엮음 / 솔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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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허균 저 <숨어 사는 즐거움 :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의 여유와 지혜>를 읽고 / 2010. 06., 325쪽, 솔

조선 중기 혁명가이자 개혁가 허균(許筠, 1569~1618)의 <한정록 閑情錄>을 작가 김원우 씨가 우리말로 옮긴 이 책에는 하기 싫은 일은 철저하게 하지 않은 은자들의 행적이 실려 있다. 허균이 인용한 <한정록> 안에는 처음 보거나 듣는 고서들이 많다. <준생팔전 遵生八牋>, <고사전 高士傳>, <사문유취 事文類聚>, <열선전 列仙傳>, <하씨어림 何氏語林>, <유후당서 劉煦唐書>, <후한서 後漢書>, <빈사전 貧士傳> 등이다.
허균은 빼어난 문장과 넓은 학식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광해군 10년에 역적모의를 했다는 모함을 받고 참형을 당했다. 소설가 김탁환은 작품 <허균, 최후의 19일>에서 허균이 혁명을 시도하다가 실패한다는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그려낸 바 있다. 
조선시대에 역적 혐의로 참형을 당한 반역자 중에 조선 말까지 사면,복권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허균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선의 지배계층에 충격적인 인물이었고 사상가였던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허균은 경직된 양반사회를 향해 신분계급의 타파와 적서(嫡庶)를 구별하지 않는 과감한 인재등용을 주장했는데, 이 같은 자유롭고 혁신적인 발상은 최초의 한글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홍길동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허균은 나이 42세 되던 광해군 2년(1610)에 명나라에 파견되는 천주사가 되었으나 병을 얻는 바람에 맡지 못하고, 그 대신 휴가를 받아 틈틈이 중국의 고서들을 보면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그는 독서를 하는 중에 예전 선비들의 글을 추려서 일종의 자신만의 독서노트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정록>이라 한다.
그는 <한정록>의 서문에서, "평소 세상일에 급급하여 조그만 이해에도 어긋날까 마음이 두려워졌고. 보잘것없는 자들의 칭찬이나 비방에도 마음이 요동하는 자신을 안타까이 여겨 옛 문인들의 글을 읽으며 옛날의 어진 이와 자신을 비교해보니 제 어리석음이 얼마나 막중한지 새삼 깨달았다’고 밝히고 있다. 벼슬살이에서 물러나 자연과 벗하며 한가로이 지내는 삶의 즐거움이나 독서의 즐거움에 관한 글들이 주로 엮여 있어 ‘훗날 숲 아래에서 세상을 버린 선비를 만나게 될 때 이 책을 꺼내가지고 서로 즐겨 읽고 싶다"고 말한다. 

출판사는 "여기에는 세속을 떠나 숨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 중 기이한 행적을 남긴 자와 고상한 생활을 한 사람들의 일화 등이 들어 있다. 또한 은거하며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도가에서 흔히 거론되는 양생술에 관한 희귀한 정보도 읽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동양의 유구한 역사상에 나타난 유명한 인물과 저서들 가운데서 동양적 사고의 진수라 할 만한 일화, 잠언, 성찰들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값진 책이라 할 수 있다.”고 이 책을 높이 평가한다.

조선왕조 500년은 유교이념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거대한 사유의 바다였다. 주린 배를 끌어안고서도 눈에 불을 켜고 자아 인식, 나아가서 도덕의 최고선으로서의 자아실현을 고집하는 무서운 엄숙과 자부심 앞에서는 수많은 사유의 집적을 낳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유물이나 유적보다 찬란히 빛나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선집(選集) 문집(文集) 휘집(彙集) 실록(實錄) 등의 형식을 빌린 그 숱한 글들은 한문으로 쓰여진 기록물이긴 해도 조선조가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를 구가했다는 받을 수 있는 자료이다.
한편으로 아무리 전형적인 엄숙주의 아래서 질식할 것 같은 유교 사회라 할지라도 숨통을 틔어주는 혁신 사상은 어차피 도출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이른바 안티테제로서 사유의 또 다른 미덕이다. 환기 장치로서의 그런 사유 양식, 곧 혁신 사상이 여러 부족한 조건들 때문에 발붙일 땅을 찾지 못할 때 그 사회는 붕괴하고 만다. 

조선왕조의 지배계급은 때에 맞추어 내부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했 다. 한반도의 새로운 시대의 개척에 필요한 개혁과 혁명은 새로운 계급과 계층에게 맡겨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농민계급과 서민, 상인 등 신진계층이 새로운 사상을 마련하고 새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 것이 바로 18~19세기 전국 각지에서 발발한 반란과 갑오농민혁명이라 할 수 있다. 지배계급은 내부개혁에 실패한 데다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외세를 끌여들였고 급기야 국가사회 전체를 일제에게 빼앗겼다. 

허균이 예교라는 원시 유교의 실천 강령만을 씨가 닳도록 쓰다듬어온 따분한 조선조 유교 사회에서 혁신 사상의 선각자였음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사상 자체가 안티테제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홍길동전>이 없었다면 조선조는 내일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원시 유교 사상이 철저히 지배한 고리삭은 왕조였다는 지탄을 면키 어려울지도 모른다.
실제로 조선조는 그처럼 보수 지향적 측면이 여실했던 폐쇄 사회였다. 그에 대한 도도한 반기가 실학 사상의 대두였다. 불행하게도 실학 사상은 어떤 소기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고, 사대주의 매국세력으로 평가받는 개화파의 선구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런데 실학을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이 허균이었고 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실물은 <홍길동전>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알다시피 <홍길동전>은 이상향 유구국(琉球國)을 건설하기까지의 의적(義賊) 활약상을 그린 소설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썼을 허균의 복잡한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가 고집불통의 조선조 유교 사회에 얼마나 염증을 내고 있었으며, 이상적인 혁명가상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가는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숭불 자체가 탄핵의 대상이었던 유교 사회에서 허균이 불교에 깊이 경도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의 비범한 개혁 사상을 웅변하는 단적인 증거이다. 
그 독실한 불교 신앙 때문에 여러 차례에 걸쳐 양반계급으로부터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면서도 늠름했다는 허균이 도교 사상, 나아가서 은둔 사상 및 신선 사상에 심취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그는 신분질서를 금과옥조로 섬기는 양반 사회에서 신분 계급의 타파와 적서(嫡庶)를 구별 않는 과감한 인재 등용까지 내놓았다. 
또한 그가 전개한 부국강병책과 붕당배척론은 비록 새로운 내정 개혁책은 아니라 할지라도 뒤이어 일어난 실학 사상의 비조로서 손색이 없는 경지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호학(好學)의 선비답게 천주교의 천리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일찌감치 수렴하여 새로운 문물 및 서학(西學) 이론에까지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본다면, 허균은 아웃사이더였다. 
아웃사이더는 어떤 사회에서도 모든 기성 제도를 뒤짚어 생각하는 선각자이다. 아웃사이더는 어느 시대라도 질시와 핍박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어떤 막강한 기득권도 부정하지만 그의 꿈과 이상는 흔들림이 없다. 
허균이 바로 그런 아웃사이더였다. 그의 파란 많은 한평생은 그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적 도구였을 뿐이다. 실천 없는 사유의 세계를 거침없이 질타한 허균의 쟁쟁한 육성은 빡빡하고 시난고난했던 조선조의 각성제였다.

허균의 여러 저서들 가운데 은둔 사상의 실천적 국면을 조리정연하게 편찬한 <한정록>은 그의 철저한 아웃사이더 정신의 산물이다. 
이 책은 그의 나이 42세 때, 그로서는 극도로 불우한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틈틈이 중국의 고서들을 보면서 예전 선비들의 한적한 삶의 모습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들을 손수 가려 편집한, 일종의 독서노트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세속을 숨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 중 기이한 행적을 남긴 자와 고상한 생활을 한 사람들의 일화, 그리고 벼슬을 물러난 뒤 한가롭게 살다간 이야기, 산천을 두루 보아 정신을 수양하는 이야기 등이 들어 있다. 또한 은거하며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다룬 글과 도가에서 흔히 거론되는 양생술에 관한 희귀한 정보도 읽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동양의 유구한 역사상에 나타난 유명한 인물과 저서들 가운데서 동양적 사고의 진수라 할 만한 일화, 잠언, 성찰들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값진 책이라 할 수 있다. 분주한 현대의 삶과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나날의 반복에서 차분한 현대의 삶과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나날의 반복에서 차분한 성찰의 계기를 가져다 줄 것이다.
혁명가이자 사상가였던 허균과 ‘숨어 사는 즐거움’을 음미하는 허균이 한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법정스님이 사랑한 책 ‘50권’ 중 40권째이다.

* 인상 깊은 문장

"옛사람이 세상을 버리고 은거하는 것은 이름나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 몸을 오래토록 속세를 떠나서 한거하게 하여 그 은거의 즐거움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다."

"선비란 살면서 세상을 경영하는 포부를 갖는 법인데, 어찌 금방 요순 같은 임금을 결별하고 오래도록 산림 속에 은둔할 계획을 하겠는가. 마음과 일이 어긋나거나, 공적과 시대가 맞지 않거나 또는 몸이 쇠하여 일에 권태롭거나 하면, 비로소 관직에서 물러나는데, 이는 자기 허물을 잘 고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퇴거한 사람은 맛 좋은 음식이나 화려한 의복을 취해서는 안 되고 오직 검소해야 돈도 절약이 되고 복도 기를 수 있다."

"장부의 처세는 마땅히 가슴이 탁 트이도록 가져야 하니, 상황에 따라 마음을 크게 먹고 순리로써 스스로를 억제하면, 인품이 고상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더라도 자연 고상하게 된다."

"한가한 곳에서 혼자 살면서 담박하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아도 일상 생활하는 일이야 그 일을 당하면 역시 하게 된다."

"글은 고요한 데서 하는 일 중의 하나인데, 한거하는 이가 글이 아니면 무엇으로 세월을 보내며 흥을 붙이겠는가."

이 책은 법정스님이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소개한 작품 중 마흔번 째이다.

[ 2014년 1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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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과 죄의식 -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
강준만.김환표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추천 [서평] 강준만, 김환표 저 <희생양과 죄의식 :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 >를 읽고/ 2004. 10., 296쪽, 개마고원

얼마 전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국회에서 "한국에 간첩 2만명”이 존재하며 "간첩에게 친절한 법관들” 때문에 공안사건 전담 재판부를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인 황교안도 "크게 공감”했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1440) 21세기에 벌어진 이 어처구니 없는 발언에 대해 “때아닌 색깔론”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의 발언이 “때아닌 색깔론”일까? 매일 시간마다 종편에서 탈북자를 동원하여 방송하는 온갖 선동적인 것들도, 한 달에도 몇 번씩 언론에 보도되는 새누리당과 공안기관의 색깔론이 갑작스러운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의 서문을 보면 2004년 참여정부 집권기에도 ‘교과서 파동’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참여정부의 과거사진상위원회가 발족하기 전에 이미 한나라당은 ‘좌파 교과서’라는 프레임을 제기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1998년 이후 그 전까지 일방적으로 왜곡한 한국근현대사를 사실에 근거하여 수정한 내용을 문제삼아 정치적, 이념적 목적으로 색깔론을 편 것이다. 대통령 탄핵정국에 대한 역풍으로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희생양과 죄의식>에는 저자들이 담은 1940~90년대 60개의 사례는 ‘색깔론의 역사’가 과거에 끝난 역사가 아니며, 1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도 남는다.

저자들은 대한민국 반공사(反共史)에서 발생했던 60개의 에피소드로써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우리가 이런 야만의 세월을 살아왔단 말인가?” 하고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우리의 과거사가 아니라 2014년인 지금도 여전히 피 흘리는 살아 있는 상처임을 확인하면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한반도에서 반공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일제였다. 1940년대의 반공 에피소드의 첫 번째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독립투사들을 탄압하고 항일세력을 이간질시키기 위해 이들을 적색분자, 즉 빨갱이로 몰아 언어 테러를 가했던 사례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해방정국에서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들이 저지른 테러와 만행의 생생한 기록을 보여준다.
이어서 1950년대의 반공은 한국전쟁시 벌어진 '함정 학살'로, 1960년대의 반공은 공포의 중앙정보부로, 1970년대의 반공은 서승, 서준식 형제에 대한 간첩조작 사건으로, 1980년대의 반공은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의 5.18 용공조작 음모로, 1990년대의 반공은 한반도 전쟁위기설로 시작되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에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힘없는 민중들이 감당해야만 했던 수많은 공포와 절규와 슬픔과 한이 담겨 있다.

<희생양과 죄의식>의 개정증보판을 2014년에 발간했다면, 2000년대는 김대중 정부에 대해 "이북에 대한민국을 가져다바친 정권"으로 시작될 것이고, 2010년대는 "천안함은 이북 소행"으로 시작될 것이고, 마지막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일 것이다.
끊임없는 간첩조작,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색깔론, 시도때도 없이 반복되는 "종북세력 2만명, 종북좌파 200만명". 이명박 정권 집권 기간 내내 그리고 박근혜 정권 2년차까지 동일한 경험을 반복하면서 이제는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 색깔론의 역사 즉,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은 ['희생양 만들기'와 '죄의식 털어내기']였다. 생존자들은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존경했던 사람을, 마을의 지도자급 인사를, 항일독립투사를, 아무런 죄가 없던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지만 생존자들은 인륜을 저버린 자신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개인과 집단은 부지불식 간에 '죄의식 털어내기'가 이루어진다. "그들은 죽어야만 했던 나쁜 사람들이었다"라는 합리화와 조작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희생양 만들기'와 '죄의식 털어내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지 못하고 합리화하게 되는 경우에 대한 심리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최근 10~20여 년 동안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주었다.

반공반북 세뇌교육과 이데올로기 압박은 한국인들을 어떻게 만들었나?
한국사회의 치열한 반공교육, 반북언론, 종북공세에 대해 홍세화씨는 “인간을 알기도 전에 이미 인간을 증오하게” 만들었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알기 전에 증오부터 가르쳤다”고 말한 바 있다.
분단 체제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는 사회 구성원들의 개인적 자유를 확대하는 의미라는 교과서적 의미가 아니라 공산주의(1990년대부터는 북한)와 대적한다는 '반공'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자유'와 전혀 관계없는 집단과 단체들이 '자유'라는 단어를 독점하다시피 한다. 자유총연맹과 자유기업원, 자유주의연대, 자유학생연합 처럼. 그래서 이 땅에서는 '자유000'라는 단체의 단어를 들으면 자유가 연상되는 게 아니라 전쟁과 부자유가 연상되어 버린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반공은 지배집단의 억압체제로 인식되어 왔다. 지난 시절 권위주의 정권들이 국민들을 통제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공을 효율적, 억압적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런 분석에 대해 절반만 동의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공안정국'이라는 카드를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집권 기간 내내 색깔론에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나는 저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몇 년간 정치권력, 즉 행정부의 상층 일부를 장악했다고 해서 '한국사회의 지배집단'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지배집단'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세력은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 언론, 자본, 지식(학계), 문화 등 전반에 포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부의 경우에도 장차관 한두 명이 문제가 아니라 지난 군사독재 정권과 자본권력과 결탁한 적지 않은 수의 정치관료들이 지배집단의 하부구조를 장악하면서 지배집단의 상부로 진출하기 위해 결탁해 있는 게 아닐까?

저자들은 교과서 파동이나 정치적, 이념적, 사회적 갈등의 뿌리를 '폭압과 반발'에서 기인한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에서 찾는다. "한국사회 곳곳에서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숱한 상호 ‘적대 전선’들의 뿌리는 ‘해방정국의 이념 갈등’과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정권의 폭압과 그에 대한 반발’의 과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반세기가 넘게 지속되어온 '폭압과 반발'의 과정 속에 "집단최면이라 할 ‘세뇌’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의 악순환에 갇혀 있게 했다."는 것이다.  
민족화합을 외치고 교류협력을 말하면서도 남한 사회 내부에서조차 여전히 ‘타협과 화합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이 이성(理性)적 차원에서 제어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러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반공’의 상처가 짐작 이상으로 엄청나게 깊고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우리가 아직도 그 상처가 얼마만한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상처의 실체를 제대로 직시하여 아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상처의 깊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화해를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저자들에게 <희생양과 죄의식>은 실체를 직시하는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의 악순환"과 "상처의 실체에 대한 직시와 치유"라는 저자들의 결론에 일면 수긍하면서도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물론, 2003년 2월 출범한 참여정부의 인사들이 1년 반 넘게 보여온 언행이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지 않았음은 인정한다. 색깔론 공세를 펴는 사람과 이에 동조하는 국민들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면서 그들에게 부정적인 딱지를 붙이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지금도 그런 정치인이나 시민들이 없지는 않다.) '독선과 오만'으로 비판받을만 했다. 참여정부 인사 뿐 아니라 진보진영의 일부 사람들 역시 독선과 오만인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저자가 '적대와 증오의 악순환'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당시 짧은 기간에 발현되었던 일부 인사들의 독선과 오만을 민주세력 전체나 진보진영 전체에게 일반화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적대와 증오의 악순환'을 한국인 전체로, 민중들에게로까지 확대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않은 진단이다.

<희생양과 죄의식>에 나오는 60개의 '반공 에피소드'에서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이 악순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당시의 7~8년 기간이라 할 수 있다. 1953년 정전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반공의 역사'는 독재정권과 기득권자들의 탐욕을 위한 무한질주였다. 군사독재정권이 폭압과 이에 대한 민중들의 반발 내지 저항은 필연적이었다. 그 반발 내지 저항도 폭압이 벌어질 때마다 일어난 게 아니라 한일회담 반대 시위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과 같이 일정한 기간동안 지속된 폭압에 대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발생하였다가 무자비한 군화발에 금새 사라지고 마는 그런 수준의 반발과 저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준에 불과한 민중들의 반발과 저항이 '집단최면이라 할 세뇌'로 작용하고 그것이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의 악순환을 가져왔다는 저자들의 평가는 동의하기 어렵다.

53년 이후 지난 60년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적대와 증오의 순환'이 아니라 일방적인 적대, 일방적인 증오가 지속되어 왔다. 가정에서 학교, 직장에서 사회, 정치경제 분야에서 사법, 언론, 문화까지 사회 전분야에서 반공과 반북 이데올로기 세뇌교육과 선전선동은 반복되었다. 친일과 독재를 비판하고, 강대국의 횡포와 정권의 폭압을 비판하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하면 곧장 빨갱이로 매도되었고 매장되었다.
그렇게 1997년 '빨갱이'로 알려졌던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과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반공과 반북은 한국인의 집단종교였고 불변의 진리였으며 법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였다.
그 과정에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는 민중-대중들을 억압하는 것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세뇌와 처벌, 경험 등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욕망하게 만들었다. 결국 민중-대중들 스스로가 자신의 언어와 행동을 감시하고 통제했으며,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민중-대중들이 '적대와 증오의 악순환'을 반복한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짧게는 지난 60년, 길게는 과거 100년 동안 반공과 반북이라는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 사회에서 살면서 빨갱이로 매도되고 수없이 탄압을 받으면서도 한국민중들은 한국전쟁 전후 몇 년을 제외하고는 가해자들의 적대와 증오를 가해자들에 대한 적대와 증오로 되갚지 못했다. 아니 되갚을 기회를 단 한 번도 갖지 못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반공 반북은 한국인의 집단 트라우마가 되었고, 극우보수세력에 대한 공포 역시 집단 트라우마로 아직까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이 "치유와 해소를 위해 실체를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공과 반북을 체화한 민중들-대중들이 스스로 변하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를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소위 진보적인 인사들, 즉 정치인, 종교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노동조합 간부, 언론인과 학자, 전문가와 법조계 인사, 지식인 등은 좀 더 성찰하고 분발해야 한다. 자신이 무의식 중에 내뱉는 말과 행동이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아닌지에 대해...

[ 목차 ]

1장 1940년대의 반공
'기생충 박멸 작업' / 유사 종교로서의 반공 / '악마와 천사 간의 전쟁' / '씨 말리기 전쟁' / '빨갱이는 흡혈귀' / '손가락 총'의 위력 / 산으로 간 사람들의 아내 / 피의 악순환 / 초콜렛의 유혹 / 보도연맹 20만 명 학살극

2장 1950년대의 반공
함정 학살 / 한글의 수난 / 줄서기의 고통 / '도강파'의 '잔류파' 처단 /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빨갱이' / '그 사람 빨갱이 예요' / '빨갱이 사냥군'으로 변신한 '부역자들' / '희생양 만들기'와 '죄의식 털어내기' / 광기에 전염된 아이들 / '작은 모스크바'의 추억 / '시민증이 없다는것은 죽은 목숨' / 누명을 벗기 위한 전쟁 참여 / 월나 피난민의 생존 방식 / 월북자 가족의 생존 방식 / 연좌제의 고통 / '전쟁이 교과서다!' / '조봉암이 왜 하필 우리 조씨인가'

3장 1960년대의 반공
4.19와 부역자의 가족의 자기검열 / 미국의 인정을 받기 위한 '빨갱이 만들기' / 공포의 중앙정보부 / '반공=바른생할=도덕=국민윤리' / 1963년 10.15 대선의 '색깔전쟁' / 막걸리 반공법 / 국가 테러리즘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4장 1970년대의 반공
서승.서준식 형제 '간첩' 조작사건 / 김추자가 간첩이라는 유언비어 / 반공이 만들어준 '대통령 종신제' / '박정희 사진을 이가 아프도록 씹었다' / 태극기를 보고 통곡한 여학생들 / 막걸리 보안법 / '똘이장군'의 탄생 / 삼척가족간첩단 사건

5장 1980년대의 반공
신군부의 5.18용공조작 음모 /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 '연좌제 폐지' 사기극 / 제자가 스승을 고발하는 세상 / 전두환정권의 '간첩만들기' / '간첩'을 대량생산한 국가보안법 / 빨갱이로 몰리지 않기 위한 몸부림 / 전교조 교사들의 시련

6장 1990년대의 반공
남북회담과 연좌제 자살 / 한반도 전쟁 위기설 / 박홍파동 / 50년 묵은 긴장감 / 권영길의 '레드 콤플렉스' / '통일 되면 거지 떼가 몰려올까봐 싫어요!' / 극우 반공주의의 주도권 교체 / '친북 좌익 400만 시대' / 트로츠키의 부활

[ 2014년 11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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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액션 - 영화로 보는 미국의 두 얼굴
최한욱 지음 / 615(육일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서평] 최한욱 저 <할리우드 액션>을 읽고 / 2013. 11., 200쪽, 615출판

여러 종류의 영화를 즐겨보는 내가 헐리우드 영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어린 시절 유일하게 접한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년에 한두 번 학교 전학생이 동원되어 관람하던 반공영화를 제외하고는.
방 한쪽 구석에 TV가 자리잡은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주말 저녁시간은 ‘타잔’이나 ‘홀쭉이와 뚱뚱이’ 그리고 ‘주말의 영화’에 몰입하곤 하였다.

허리우드 영화 속 세상은 중소도시에 살면서 보고 겪는 일상과 TV 뉴스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가끔 소설책과 위인전도 읽었지만 책에서 경험하거나 상상해볼 수 없는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해서 한동안 헐리우드 영화의 기본적인 패턴이 내 무의식과 '상식' 속에 자리잡았다. 미국은 위대하고 선량한 국가이며, 미국인들은 성실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 아메리카 인디언은 잔인하고 무식하며 사기와 배신에 능하다는 이미지, 첨단기술과 상품은 무조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이미지 등을...

할리우드는 세계 영화 시장의 80-90%를 점유하고 있으며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 연간 20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인다. 매년 수 십 억 명의 지구인들이 한 편 이상의 할리우드 영화를 소비하게 된다. 지구상에서 할리우드가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지역은 아마도 북한 정도일 것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할리우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념과 문화전파자로써 할리우드의 정치적, 사회적 기능이다. 종종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핵무기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저자가 헐리우드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지구촌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미국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동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한다.

물론, 모든 헐리우드 영화가 미국을 비호하고 미국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인 <라스트 모히컨>과 <매트릭스>, <혹성탈출> 같은 경우는 다르다.
<라스트 모히컨> 속에는 미국인들의 선조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잔인한지 이야기해 준다. 반면에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물론 모든 인디언을 그렇게 설정하지는 않지만)은 선량하고 용감하고 지혜롭고 당당하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기본'이 허위와 허상으로 가득찬 역사이며 현실일 수 있음을 말해 준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내 한계였다. 내가 영화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훈련도 덜 되었기에 저자가 비교,분석해주는 헐리우드 영화는 나에게 또다른 깨달음과 생각을 안겨 준다.
<대부> 시리즈와 <갱스 오브 뉴욕>를 비교하면서 저자는 "미국인들은 왜 조폭영화를 사랑할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역사이며 자신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큰 폭력조직은 미국,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답한다.
저자가 "조직폭력은 미국인들의 삶"이라는 주장하는 이유는 실제 미국이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수사국 FBI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미국에서 발생한 범죄는 총 1,190만 건이고, 살인사건은 16,110건이었다. 미국이 폭력조직은 21,500개이며 조직원은 모두 104만 명에 달한다.

언젠가부터 TV와 극장가를 주름잡는 좀비영화를 '도살영화'라고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나 역시 아찔했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각도에서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대해 저자는 '미치광이 살인마'는 좀비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잔혹행위는 모두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비영화에서 영화의 관객들은 살인과 학살의 쾌락(?)을 공유하면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제작된 시기(1968년)를 고려한다면 이 작품이 베트남전쟁의 은유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소개한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밀려드는 베트남 민중을 보며 미국인들이 '살아있는 시체', 즉 좀비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웜 바디스>를 분석하면서 좀비영화가 십대 취향의 로맨스영화와 좀비영화를 결합이지만, 혐오스러운 존재인 좀비를 호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좀비, 즉 유색인종과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저자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와 <링컨>, <더 레슬러>와 <부기 나이트>, <엘리시움>과 <식코>, <아르고>와 <계엄령>, <화씨 911>과 <세계무역센터>, <그린 존>과 <하트 로커>, <인디펜던스 데이>와 <디스트릭트 나인> 등을 비교한다.

헐리우드 영화, 즉 미국 문화와 한국의 관계는 다른 국가와는 크게 다르다. 1945년 9월 8일 인천으로 들어온 미군정은 일주일 뒤인 9월 15일 서울중앙방송국 등 남한의 10개 방송국을 모두 접수하여 미군정의 군정정책에 대한 홍보매체로 이용하였다. 이때부터 미군이 공급하는 뉴스와 헐리우드 영화가 한국에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TV와 영화관에서 여전하다. 미군정이 왜 방송국과 극장을 장악했는지, 신문과 라디오를 검열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다.
미군정의 방송과 영상매체 장악은 이승만 정권 이후 김대중 정권이 수립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방식만 바뀌었을 뿐 영향력은 그대로다. 52년 동안 미국과 한국정부로 이어져온 방송과 영상매체의 편파적 운영은 아무런 반성도 평가도 없이 그대로 '미국이 천국인줄로만 아는' 재벌과 관료들, 역사의식 없는 사업자들과 기술자들에게 승계되었다.

그렇지만 저자가 헐리우드 영화를 전적으로 거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헐리우드의 부정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이념과 가치, 정책을 세계로 전파하는 창의 역할을 하지만 역으로 우리는 그 창을 통해 미국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물론 할리우드의 창은 완전히 투명하지 않다. 그 창은 반투명 혹은 불투명한 유리로 가려져 있으며 외부로 수많은 커튼이 드리워져 내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부를 전혀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 깊게 할리우드영화를 관찰하면 그 속에서 진짜 미국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올바른 한미관계의 정립은 미국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자신은 물론 미국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의 변화는 어쩌면 우리의 변화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 인상 깊은 문장 ]

"할리우드는 미국의 ‘문화통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비공식공무기구이다. 헐리우드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보다 세련되고 유연한 방식으로 미국의 가치와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침투시킨다."

"우리는 할리우드의 영화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미국의 문화에 젖어들며 자연스럽게 미국식 사고와 생활방식을 받아드리게 된다. 또한 미국의 국가이념과 가치, 정책에 대해서도 학습하게 된다. 그래서 할리우드의 영향권에 있는 지구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에 동화되고 스스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혹자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누구나 미국의 이념과 가치, 생활방식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 정부와 헐리우드의 밀월관계가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는 상항에서 헐리우드는 단지 오락을 제공할 뿐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우리를 헐리우드의 부정적인 영향에 무방비로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 2014년 11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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