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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과 죄의식 -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
강준만.김환표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추천 [서평] 강준만, 김환표 저 <희생양과 죄의식 :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 >를 읽고/ 2004. 10., 296쪽, 개마고원
얼마 전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국회에서 "한국에 간첩 2만명”이 존재하며 "간첩에게 친절한 법관들” 때문에 공안사건 전담 재판부를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인 황교안도 "크게 공감”했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1440) 21세기에 벌어진 이 어처구니 없는 발언에 대해 “때아닌 색깔론”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의 발언이 “때아닌 색깔론”일까? 매일 시간마다 종편에서 탈북자를 동원하여 방송하는 온갖 선동적인 것들도, 한 달에도 몇 번씩 언론에 보도되는 새누리당과 공안기관의 색깔론이 갑작스러운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의 서문을 보면 2004년 참여정부 집권기에도 ‘교과서 파동’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참여정부의 과거사진상위원회가 발족하기 전에 이미 한나라당은 ‘좌파 교과서’라는 프레임을 제기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1998년 이후 그 전까지 일방적으로 왜곡한 한국근현대사를 사실에 근거하여 수정한 내용을 문제삼아 정치적, 이념적 목적으로 색깔론을 편 것이다. 대통령 탄핵정국에 대한 역풍으로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희생양과 죄의식>에는 저자들이 담은 1940~90년대 60개의 사례는 ‘색깔론의 역사’가 과거에 끝난 역사가 아니며, 1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도 남는다.
저자들은 대한민국 반공사(反共史)에서 발생했던 60개의 에피소드로써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우리가 이런 야만의 세월을 살아왔단 말인가?” 하고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우리의 과거사가 아니라 2014년인 지금도 여전히 피 흘리는 살아 있는 상처임을 확인하면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한반도에서 반공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일제였다. 1940년대의 반공 에피소드의 첫 번째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독립투사들을 탄압하고 항일세력을 이간질시키기 위해 이들을 적색분자, 즉 빨갱이로 몰아 언어 테러를 가했던 사례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해방정국에서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들이 저지른 테러와 만행의 생생한 기록을 보여준다.
이어서 1950년대의 반공은 한국전쟁시 벌어진 '함정 학살'로, 1960년대의 반공은 공포의 중앙정보부로, 1970년대의 반공은 서승, 서준식 형제에 대한 간첩조작 사건으로, 1980년대의 반공은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의 5.18 용공조작 음모로, 1990년대의 반공은 한반도 전쟁위기설로 시작되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에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힘없는 민중들이 감당해야만 했던 수많은 공포와 절규와 슬픔과 한이 담겨 있다.
<희생양과 죄의식>의 개정증보판을 2014년에 발간했다면, 2000년대는 김대중 정부에 대해 "이북에 대한민국을 가져다바친 정권"으로 시작될 것이고, 2010년대는 "천안함은 이북 소행"으로 시작될 것이고, 마지막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일 것이다.
끊임없는 간첩조작,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색깔론, 시도때도 없이 반복되는 "종북세력 2만명, 종북좌파 200만명". 이명박 정권 집권 기간 내내 그리고 박근혜 정권 2년차까지 동일한 경험을 반복하면서 이제는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 색깔론의 역사 즉,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은 ['희생양 만들기'와 '죄의식 털어내기']였다. 생존자들은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존경했던 사람을, 마을의 지도자급 인사를, 항일독립투사를, 아무런 죄가 없던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지만 생존자들은 인륜을 저버린 자신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개인과 집단은 부지불식 간에 '죄의식 털어내기'가 이루어진다. "그들은 죽어야만 했던 나쁜 사람들이었다"라는 합리화와 조작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희생양 만들기'와 '죄의식 털어내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지 못하고 합리화하게 되는 경우에 대한 심리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최근 10~20여 년 동안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주었다.
반공반북 세뇌교육과 이데올로기 압박은 한국인들을 어떻게 만들었나?
한국사회의 치열한 반공교육, 반북언론, 종북공세에 대해 홍세화씨는 “인간을 알기도 전에 이미 인간을 증오하게” 만들었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알기 전에 증오부터 가르쳤다”고 말한 바 있다.
분단 체제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는 사회 구성원들의 개인적 자유를 확대하는 의미라는 교과서적 의미가 아니라 공산주의(1990년대부터는 북한)와 대적한다는 '반공'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자유'와 전혀 관계없는 집단과 단체들이 '자유'라는 단어를 독점하다시피 한다. 자유총연맹과 자유기업원, 자유주의연대, 자유학생연합 처럼. 그래서 이 땅에서는 '자유000'라는 단체의 단어를 들으면 자유가 연상되는 게 아니라 전쟁과 부자유가 연상되어 버린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반공은 지배집단의 억압체제로 인식되어 왔다. 지난 시절 권위주의 정권들이 국민들을 통제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공을 효율적, 억압적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런 분석에 대해 절반만 동의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공안정국'이라는 카드를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집권 기간 내내 색깔론에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나는 저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몇 년간 정치권력, 즉 행정부의 상층 일부를 장악했다고 해서 '한국사회의 지배집단'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지배집단'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세력은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 언론, 자본, 지식(학계), 문화 등 전반에 포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부의 경우에도 장차관 한두 명이 문제가 아니라 지난 군사독재 정권과 자본권력과 결탁한 적지 않은 수의 정치관료들이 지배집단의 하부구조를 장악하면서 지배집단의 상부로 진출하기 위해 결탁해 있는 게 아닐까?
저자들은 교과서 파동이나 정치적, 이념적, 사회적 갈등의 뿌리를 '폭압과 반발'에서 기인한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에서 찾는다. "한국사회 곳곳에서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숱한 상호 ‘적대 전선’들의 뿌리는 ‘해방정국의 이념 갈등’과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정권의 폭압과 그에 대한 반발’의 과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반세기가 넘게 지속되어온 '폭압과 반발'의 과정 속에 "집단최면이라 할 ‘세뇌’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의 악순환에 갇혀 있게 했다."는 것이다.
민족화합을 외치고 교류협력을 말하면서도 남한 사회 내부에서조차 여전히 ‘타협과 화합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이 이성(理性)적 차원에서 제어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러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반공’의 상처가 짐작 이상으로 엄청나게 깊고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우리가 아직도 그 상처가 얼마만한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상처의 실체를 제대로 직시하여 아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상처의 깊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화해를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저자들에게 <희생양과 죄의식>은 실체를 직시하는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의 악순환"과 "상처의 실체에 대한 직시와 치유"라는 저자들의 결론에 일면 수긍하면서도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물론, 2003년 2월 출범한 참여정부의 인사들이 1년 반 넘게 보여온 언행이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지 않았음은 인정한다. 색깔론 공세를 펴는 사람과 이에 동조하는 국민들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면서 그들에게 부정적인 딱지를 붙이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지금도 그런 정치인이나 시민들이 없지는 않다.) '독선과 오만'으로 비판받을만 했다. 참여정부 인사 뿐 아니라 진보진영의 일부 사람들 역시 독선과 오만인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저자가 '적대와 증오의 악순환'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당시 짧은 기간에 발현되었던 일부 인사들의 독선과 오만을 민주세력 전체나 진보진영 전체에게 일반화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적대와 증오의 악순환'을 한국인 전체로, 민중들에게로까지 확대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않은 진단이다.
<희생양과 죄의식>에 나오는 60개의 '반공 에피소드'에서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이 악순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당시의 7~8년 기간이라 할 수 있다. 1953년 정전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반공의 역사'는 독재정권과 기득권자들의 탐욕을 위한 무한질주였다. 군사독재정권이 폭압과 이에 대한 민중들의 반발 내지 저항은 필연적이었다. 그 반발 내지 저항도 폭압이 벌어질 때마다 일어난 게 아니라 한일회담 반대 시위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과 같이 일정한 기간동안 지속된 폭압에 대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발생하였다가 무자비한 군화발에 금새 사라지고 마는 그런 수준의 반발과 저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준에 불과한 민중들의 반발과 저항이 '집단최면이라 할 세뇌'로 작용하고 그것이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의 악순환을 가져왔다는 저자들의 평가는 동의하기 어렵다.
53년 이후 지난 60년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적대와 증오의 순환'이 아니라 일방적인 적대, 일방적인 증오가 지속되어 왔다. 가정에서 학교, 직장에서 사회, 정치경제 분야에서 사법, 언론, 문화까지 사회 전분야에서 반공과 반북 이데올로기 세뇌교육과 선전선동은 반복되었다. 친일과 독재를 비판하고, 강대국의 횡포와 정권의 폭압을 비판하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하면 곧장 빨갱이로 매도되었고 매장되었다.
그렇게 1997년 '빨갱이'로 알려졌던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과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반공과 반북은 한국인의 집단종교였고 불변의 진리였으며 법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였다.
그 과정에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는 민중-대중들을 억압하는 것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세뇌와 처벌, 경험 등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욕망하게 만들었다. 결국 민중-대중들 스스로가 자신의 언어와 행동을 감시하고 통제했으며,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민중-대중들이 '적대와 증오의 악순환'을 반복한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짧게는 지난 60년, 길게는 과거 100년 동안 반공과 반북이라는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 사회에서 살면서 빨갱이로 매도되고 수없이 탄압을 받으면서도 한국민중들은 한국전쟁 전후 몇 년을 제외하고는 가해자들의 적대와 증오를 가해자들에 대한 적대와 증오로 되갚지 못했다. 아니 되갚을 기회를 단 한 번도 갖지 못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반공 반북은 한국인의 집단 트라우마가 되었고, 극우보수세력에 대한 공포 역시 집단 트라우마로 아직까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이 "치유와 해소를 위해 실체를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공과 반북을 체화한 민중들-대중들이 스스로 변하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를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소위 진보적인 인사들, 즉 정치인, 종교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노동조합 간부, 언론인과 학자, 전문가와 법조계 인사, 지식인 등은 좀 더 성찰하고 분발해야 한다. 자신이 무의식 중에 내뱉는 말과 행동이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아닌지에 대해...
[ 목차 ]
1장 1940년대의 반공
'기생충 박멸 작업' / 유사 종교로서의 반공 / '악마와 천사 간의 전쟁' / '씨 말리기 전쟁' / '빨갱이는 흡혈귀' / '손가락 총'의 위력 / 산으로 간 사람들의 아내 / 피의 악순환 / 초콜렛의 유혹 / 보도연맹 20만 명 학살극
2장 1950년대의 반공
함정 학살 / 한글의 수난 / 줄서기의 고통 / '도강파'의 '잔류파' 처단 /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빨갱이' / '그 사람 빨갱이 예요' / '빨갱이 사냥군'으로 변신한 '부역자들' / '희생양 만들기'와 '죄의식 털어내기' / 광기에 전염된 아이들 / '작은 모스크바'의 추억 / '시민증이 없다는것은 죽은 목숨' / 누명을 벗기 위한 전쟁 참여 / 월나 피난민의 생존 방식 / 월북자 가족의 생존 방식 / 연좌제의 고통 / '전쟁이 교과서다!' / '조봉암이 왜 하필 우리 조씨인가'
3장 1960년대의 반공
4.19와 부역자의 가족의 자기검열 / 미국의 인정을 받기 위한 '빨갱이 만들기' / 공포의 중앙정보부 / '반공=바른생할=도덕=국민윤리' / 1963년 10.15 대선의 '색깔전쟁' / 막걸리 반공법 / 국가 테러리즘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4장 1970년대의 반공
서승.서준식 형제 '간첩' 조작사건 / 김추자가 간첩이라는 유언비어 / 반공이 만들어준 '대통령 종신제' / '박정희 사진을 이가 아프도록 씹었다' / 태극기를 보고 통곡한 여학생들 / 막걸리 보안법 / '똘이장군'의 탄생 / 삼척가족간첩단 사건
5장 1980년대의 반공
신군부의 5.18용공조작 음모 /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 '연좌제 폐지' 사기극 / 제자가 스승을 고발하는 세상 / 전두환정권의 '간첩만들기' / '간첩'을 대량생산한 국가보안법 / 빨갱이로 몰리지 않기 위한 몸부림 / 전교조 교사들의 시련
6장 1990년대의 반공
남북회담과 연좌제 자살 / 한반도 전쟁 위기설 / 박홍파동 / 50년 묵은 긴장감 / 권영길의 '레드 콤플렉스' / '통일 되면 거지 떼가 몰려올까봐 싫어요!' / 극우 반공주의의 주도권 교체 / '친북 좌익 400만 시대' / 트로츠키의 부활
[ 2014년 11월 1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