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의 편지 김갑수 역사팩션 3부작 2
김갑수 지음 / 615(육일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서평] 김갑수 저 <중경의 편지>를 읽고 / 2013. 09., 292쪽, 615출판

봉건 잔재가 남아 있던 일제 강점기에 압록강 너머로 군자금을 나르며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기꺼이 해냈던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그녀는 자신의 삶과 활동을 회고록 <장강일기>으로 엮어 후손에게 남겼다.
김갑수 작가는 그 <장강일기>를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 반도와 중국 등지에서 벌어진 한국 현대사를 역사팩션 형식의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압록강을 넘어서>에 이어 작가의 이번 작품도 책장을 펼쳐들자마자 푹 빠져 들었다.

1919년 국내외에서 벌어진 거족적인 항일독립운동에 놀란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총독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민족개조론’이라는 정치모략을 이용한다. 한낱 친일파에 불과한, 이광수를 비롯한 계몽개화주의자들은 조선이 망한 것은 낮은 민족 수준 때문이므로 스스로 독립하기가 불가능하고 떠들고 있었다. 따라서 기껏해야 희생자만 낼 따름인 민족해방투쟁이나 항일무장투쟁 같은 것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식인 김영세는 이들이 조선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데 심각한 문제인식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상해 임시정부의 자금을 모금하러 국내에 들어왔다가 일본경찰에 쫓기던 정정화를 숨겨주게 되고 그녀의 모습에서 커다란 감동을 받는다. 김영세의 도움으로 그녀는 상해로 무사히 돌아간다. 그 후 김영세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그것은 정정화의 편지였다. 그녀는 한반도와 상해를 오가며 독립자금을 나르고 상해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영세와 정정화는 항일운동의 열정과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교류한다. 교사였던 김영세는 친형이 독립운동을 위해 간도로 떠나고 형수마저 병사하여 조카 김민수를 맡아야만 했다.
일제시대에도 청춘들의 사랑은 존재했다. 삼촌 품에서 벗어나 서울로 유학을 떠나가 된 김민수는 아리랑고개에서 신식 여자 둘을 만난다. 나민혜는 화사하고 밝은 서양화가였고, 조순호는 부드럽고 조용한 대학생이었다. 김민수는 첫눈에 조순호에게 호감이 갔으나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고, 나민혜는 첫눈데 반한 김민수에게 적극적으로 구애공세를 폈으며, 역시 김민수에게 약간의 호감이 있던 조순호는 나민혜의 적극적인 태도와 거짓말에 의해 김민수에 대한 호감을 접어야 했다.

김영세와 정정화, 그리고 김민수와 조순호. 김갑수 작가는 김영세와 정정화를 작품 전개의 중심에 두고, 김민수와 조순호의 사랑 이야기를 배치하여 독자의 관심을 붙잡아 둔다. 
김영세와 정정화가 주고받는 편지는 1920~30년대 한반도와 중국, 만주 등지에서 전개된 항일독립운동과 계몽개화운동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장강일기>가 실존하는 편지이기 때문에 실제 일제시대에 전개된 국내 계화개몽운동이 친일파로 변절되는 과정, 상해 임시정부의 고난, 광둥과 만주에서 벌어진 항일무장투쟁, 일본과 미국 그리고 해외에서 전개된 외교운동의 실상도 드러난다.

<중경의 편지>에는 작가의 역사의식과 일제시대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평가도 담겨 있다. 작가는 일제시대에 국내에서 활동한 이광수와 잡지 <개벽>의 친일 행위, 동아일보 창간비사, 계몽주의, 정약용과 김옥균의 연관성, 일본의 왕궁 훼손, 안창호의 실상과 허상, 독립협회의 위선과 서재필의 악행, 항일무장투쟁과 양세봉과 김형직, 조선의용대와 조선혁명군의 모습 등을 작품 곳곳에 배치하였다.
역사팩션이니만큼 주인공들의 사상과 언행이 당시 사회역사적인 현실과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런 작품을 통해 왜곡되어 주입된 한국현대사의 인물과 활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라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서는 조선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매국노와 변절자 그리고 기회주의자와 '꺼삐딴 리'가 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죽도록 일본 황제에 충성했던 친일파들의 작태는, 미국이 멸망하지 않을 것 깉다는 생각으로 미국 찬양과 미국으로의 종속을 갈구하는 '제2의 친일파'가 가득한 21세기 한국사회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100년 전 영원할 것 같던 일제에게 충성을 다한 친일파의 유령이 되살아난 듯 하다.
물론, 그런 매국노들의 반대편에는 오로지 독립과 항일투쟁을 위해 일신의 안위와 가족의 안녕까지 버리면서 국내외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애국지사들의 모습도 담겨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독립과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해 생사를 넘나들며 진심으로 싸우는 이들은 누구인지...

김갑수 작가의 팩션소설 3부작 중 첫 번째인 <압록강을 넘어서>를 읽은지 1년도 더 지났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을 잊을까 걱정했지만, 시대의 흐름이 연속됨에도 각 작품이 별도의 스토리와 주인공으로 구성되어 작품을 감상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압록강을 넘어서> 속에 깃들어 있는 우리 선조들의 투철한 애국애민 정신은 <중경의 편지>에서도 그대로 담겨 있는 듯 했다.
세 번째 작품인 <전쟁과 운명>은 이미 구했다…ㅎ

[ 2014년 12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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