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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유전자 - 우리는 왜 죽은 박정희와 싸워야 하는가
김재홍 지음 / 개마고원 / 2012년 10월
평점 :
김재홍 저 <박정희 유전자 : 우리는 왜 죽은 박정희와 싸워야 하는가?> 2012. 10., 351쪽, 개마고원
2011년은 5.16쿠데타 50주년이었고 2012년은 유신쿠데타 40주년이었다.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는 종신 집권을 꿈꾸며 10월 유신을 일으켰다. 1인독재로 군림하던 그는 1979년 10월 26일 심복 김재규에게 총탄을 맞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12일 박정희의 친위대장이었던 전두환이 박정희로부터 배운 듯 다시 쿠데타를 저지름으로써 독재 체제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민주화가 성취된 지금까지도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는 계속되고 있다.
군사독재 시기에 자행된 수많은 국가 범죄는 여전히 묻혀 있고,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정치-문화-경제-사회의 여러 퇴행적인 제도와 관습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강산이 네다섯 번은 바뀔 시간이었지만 박정희의 시대는 아직 청산되지 않고 있다. 그의 딸 박근혜와 극우보수세력들이 박정희가 한국사회에 뿌려놓은 ‘유신’이라는 암을 청산시키기는 커녕 ‘유신체제를 부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에도 여전히 박정희식 사고방식과 언행을 보이는 직간접적 후계자들이 사회 지도층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장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면서 일본제국주의 통치를 찬양하거나 헌정을 유린하고 정부와 국회를 불법과 무력으로 전복한 516 군사쿠테타와 유신쿠테타를 ‘혁명’으로 부르면서 버젓이 기념사업에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고 있다.
문제는 기득권 세력이나 여당 뿐 아니라 야당이나 시민사회진영에도 적지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박정희 체제의 흔적들을 ‘박정희 유전자’로 명명한다. 이 책은 우리가 구시대를 넘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박정희 유전자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그는 21세기까지 한국사회에 이어져 온 ‘박정희의 유전자’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박정희 유전자’의 첫 번째는 경제구조, 즉 ‘1% 대 99%의 재벌 중심 경제’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인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박정희가 만든 경제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에 있다. 전 경제부총리는 이헌재는 최근 저서에서 박정희 이후 모든 정부는 경제적으로 ‘박정희 체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부의 쏠림 현상은 선별한 소수 기업에 모든 특혜를 몰아주던 박정희 시기의 경제개발에서 비롯되었다.
두 번째는 언론에 대한 통제다. KBS, MBC, YTN 등 언론노조의 파업사태는 언론탄압의 박정희 유전자를 잘 보여주었다.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는 박정희 시기 한국을 언론자유 5등급 국가라고 평가했다. 4등급 국가였던 이집트나 파키스탄보다 낮았다. 민주화 이후 한국은 언론자유국으로 평가받았지만 2011년 프리덤 하우스는 한국을 다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시켰다. 한국은 2011년 언론자유 순위가 44위로 탄자니아(34위)와 가나(41위)보다 뒤졌다.
세 번째는 제왕적 대통령제다. 대선후보 3인방이 모두 강조하는 정치개혁을 위해서도 박정희 유전자를 청산해야 한다. 박정희정권 아래서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기보다 정권의 들러리에 그쳤다. 독재정권 시기 여당이었던 공화당과 민정당은 정부 정책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며 야당들도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박정희가 사라진 이후에도 이런 문제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와 정치개혁에 대한 강한 요구가 나타나고 있다.
네 번째는 남북 간 적대적 공생과 대결주의다. 박정희는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독재를 정당화했다. 한편으로는 유신 선포를 미국보다도 북한에 먼저 알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북한과 뒤에서 협력하기도 했다. 국가 안보가 아니라 권력 확보를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수법은 박정희가 원조이다.
마지막은 검열과 사찰 등 사상에 대한 통제다. 박정희정권의 사상 통제는 우리나라에 세계 최장의 장기수 보유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박근혜 후보가 부정투표 의혹을 받은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겨냥해 “국가관이 불분명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이나, 트위터에 북한 관련 농담을 올린 죄로 징역 2년을 구형받은 박정근 씨의 사건은 이런 사상 통제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여섯 번째는 일본군 위안부 보상 문제와 독도 영유권 분쟁이다. 양국 간 국민감정을 악화시키고 있는 독도 영유권 분쟁의 기원은 박정희 시기 체결된 한일협정이다. 이 협정에서 한일 양국은 독도 영유권을 서로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밀약을 맺었다. 일본군 위안부 보상 청구권이 소멸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2015년 12월 28일 박정희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박근혜는 한국인들의 뜻과 관계 없이 일본 정부와 ‘제2의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하였다.
한국 국민이라면 박정희가 누구인지는 다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독재 시기의 일들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쯤으로 알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의미가 크다.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식 서술과 오늘날의 시각에 근거한 평가로 박정희 시대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권으로 읽는 박정희’라 할 만하다. 핵심 관련자들의 증언 녹음테이프와 여러 정치인과 군부 인사들에게서 듣고 메모한 취재노트, 그리고 주요 인물들의 회고록과 사건 실록 등을 바탕으로 5.16과 12.12의 진실을 실감나게 보여주며, 그로부터 배태된 박정희 유전자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고 지금도 일으키고 있는지 지적하고 있다.
박정희의 5.16군사반란은 이후 최악의 헌정유린인 유신쿠데타로 이어졌고, 박정희 사후에도 그의 후계 세력들이 박정희 체제를 지속해나가고 있다. 인물과 세력만이 아니다. 재벌 중심 경제 체제, 경제성장지상주의, 권위주의, 군사주의, 지역주의, 색깔론 등 박정희 유전자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의 사고에 깊이 박혀 있다.
출판사는 이 책에 대해 "박정희를 떠나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박정희를 떠나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일본에 과거사 사죄를 요구하듯이 독재정권 시기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2013년 새 정부가 유신독재 아래서 저질러진 모든 체제폭력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과거사평가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럴 때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소개한다.
[ 2016년 6월 2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