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주를 향해 - 기적의 사나이 팀 티보
팀 티보.나단 휘태커 지음, 유정희 옮김 / 시공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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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팀 티보우가 어떤 사람인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충분히 알테니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을테고. 한대 영국의 정치인 윌버포스가 영국의 양심이라 불리우면서 우리가 본받아야할 크리스천이라 치켜세우며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책으로 영화로 하도 떠들어 대서 윌버포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본받아야할 사람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업적에 대해서 바르게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는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그런 노력 없이 단선적으로 본받아야만 하는 사람으로 추켜 올렸다. 비단 윌버포스의 경우만은 아니다. 기독교인이 본받아야 할 위인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경우 이런 접근 방법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렌데 아이러니하게도 본받을만한 자랑스러운 기독교인에 대해 말할수록 그런 인물을 잃어버리는 기묘한 결과를 초래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대 기독교인이 본받아야할 위인으로 한때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을 뽑았던 적이 있었다. 한국의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교회치고 박성수 회장을 불러서 간증을 듣지 않는 교회가 없을 정도로 한국 교회 안에 박성수 열풍이 불었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박성수 회장은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대표적인 기독교 인사가 되었다. 홈에버 사태, 비정규직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 불투명한 경영 등 여러가지 문제가 부각되었고, 그는 존경받는 기독 실업인에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악던 기업주가 되었다. 이 사태에 대해서 교회는 크게 두 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의 주류에서는 이는 박성수 회장을 모함하는, 혹은 교회를 대적하기 위한 빨갱이들의 음모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박성수 회장에 대한 비난에 편승하는 것이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지 모양이 좋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한 인물에 대한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고 영웅 만들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 성공한 인물, 유명한 인물, 학벌 좋은 인물에 대해서 종합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여전히 영웅 만들기에 몰두한다. 어느 누구는 하버드에 갔다더라, 누구는 유명 연예인이 되었다더라. 그러면서 불러서 비싼 돈을 주고 간증을 듣는다. 초청집회를 한다. 그렇지만 그런 이벤트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킬 때가 많다. 이명박 대통령, 이혁재, 신현준 등등. 얼마나 많은 예들이 존재하는가?

 

  한권의 신앙서적이 새로 나올 때마다 우려섞인 눈으로 바라본다. 이 사람은 과연 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인가? 책 따로, 삶 따로 이지는 않을 것인가? 그저 포장지로 잘 포장된 정도가 아닐까? 여러가지 우려가 들기 때문에 이런 책을 받아 보는 것이 달갑지는 않다. 더군다나 젊은 사람이 기록한 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변할 기회가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팀 티보에 대한 책도 비슷한 우려를 가지고 읽었다. 그의 삶이 우리 주변에 흔한 사람과는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지만,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티보우의 삶이 순수하고, 하나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차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자기의 역할과 사명에 대한 자각이 분명하다. 이는 티보우로 하여금 더욱더 자신의 삶에 대해서 조심하게 만드는 동력이 될 것이다. 비록 투박한 글솜씨와 짧은 시간을 다루고 있고, 한국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 미식축구를 다루고 있지만,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인다운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 것은 권한다. 확실히 다른 책보다는 순수한 맛이 있다.

 

ps. 시공사에서 제공해 준 책을 읽었다. 이 자리를 빌어 시공사 관계자 분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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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11-24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서평의 제목과는 다르다 수정을 했는데 수정이 안된다. 원래를 박주영과 티보우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보려 했었다.

노란가방 2012-11-24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그런 우려는 아직 좀 이르지 않을까요? ^^;;

saint236 2012-11-25 22:57   좋아요 0 | URL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격이죠.^^

transient-guest 2012-11-29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선수의 Florida대학 시절부터 팬이었지요. 제 관점에서는 너무 근본주의적인 신앙인지만, 그 열정으로 사는 모습은 아릅답습니다. 신념을 지켜면서 사는 것, 특히 종교적인 경우, 미국에서는, 그리고 프로 스포츠에서는 쉬운일이 아니거든요. 덴버 (Denver Broncos)에서 있다가 지금은 뉴욕 젯츠 (New York Jets)에서 backup QB로 있는데, 언젠가 더 피어나서, 주전으로 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월한 유전자라는게 있다면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ㅎ

saint236 2012-11-29 18:03   좋아요 0 | URL
부시처럼 전쟁을 옹호한다거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근본주의적인 신앙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티보우처럼 그 신앙에 맞추어서 산다든지, 혹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면 더 좋겠지요? 앞으로 그 재능이 더 꽃피기를 기대해봅니다.

We 2016-08-1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회적 현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필요하지만 관점이 약간 빗나간 것 같습니다. 저는 단지 팀 티보우의 신앙적 삶을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 뿐 입니다. 팀 티보우가 향 후 어떤일을 하던지 그가 하나님안에서 승리했었다는 것은 잊혀지지 않을 것 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이 좋은 인물들도 믿음을 저버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무언가 명예를 얻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제3자의 시선에서 기독교인이 우려하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라고 느껴집니다.
 
춘추전국 이야기 5 - 오월쟁패, 춘추 질서의 해체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5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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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신상담!

 

  무엇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고난을 견디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 공부하기 싫어하는 우리들에게 선생님들은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를 형설지공만큼이나 남발하셨다. 그렇지만 그분들이 아셨는지 모르겠다.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폭력성과 잔인함을 말이다. 와신상담이라는 책 제목이 붙은 5권은 말그대로 폭력과 전쟁, 잔인함으로 점철되어 있는 책이다.

 

  지금까지 각 권의 제목들을 보면서 기가막히게 잘 뽑았다는 생각을 했다.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1권), 영웅의 탄생(2권), 남방의 웅략가 초장왕(3권), 정나라 자산, 진짜 정치를 보여주다(4권)! 각 권의 특징과 인물, 그리고 관점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 공원국이란 작가에 대해서 책제목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 책 제목을 보면서 감탄이 아니라 찬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와신상담이라는 네 글자로 책의 내용과 성격, 춘추와 전국의 상황의 변화를 모두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 달린 부제는 또 어떤가? "인간의 복수 vs 역사의 복수" 책 제목만 볼 때는 "이것이 무엇이지?"라는 의문을 품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아하! 그렇구나!"라고 수긍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역사는 오늘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지금까지 봐왔던 책 제목 중에서 단연 톱으로 뽑고 싶다.

 

  책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제나라로부터 시작하여 진(晉), 초(楚)라는 패권국을 거치는 동안 춘추의 역사의 무대는 점차 넓어졌다. 주나라를 정점으로 하던 중국의 편협한 사고가 점차 확장되는 과정을 거친다. 제와 진 즉 중원에서 아웅거리던 중국의 사고가 초를 통하여 남방으로 확장되었고, 오와 월을 통하여 더 남방으로 확장된다. 만약 춘추전국시대의 스타 합려, 구천, 부차가 없었다면 삼국시대의 슈퍼스타 손책 손권, 감녕같은 오나라의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춘추시대를 거치면서 영토라는 물리적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사고의 세계도 넓어졌다. 물론 이런 긍정적인 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춘추시대의 말기로 나아갈수록 춘추시대의 낭만도 사라지고 오로지 음모와 폭력만이 남았다. 비록 전쟁이었다고 할지라도 송양지인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상대방의 비극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상대방을 멸망시켜 흡수한다는 사고는 초나라를 제외하고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춘추시대의 말기로 지나갈수록, 초, 오, 월로 중국의 세계관이 확장될수록 상대방의 비극은 이용해야할 약점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젠 정말로 죽기아니면 살기라는 생존경쟁으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미 5권의 시대는 춘추시대보다는 전국의 시대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 시대에 초와 오와 월을 둘러싼 메인 스토리, 이들을 뒷받침하는 진과 제의 서브 스토리는 5권의 이야기를 더 흥미진진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이야 책을 읽어보면 알겠고, 내가 여기서 생각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복수 vs 역사의 복수이다.

 

  책의 부제가 인간의 복수 vs 역사의 복수이다. 복수가 이 책의 화두이다. 아버지를 죽인 초 평왕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합려를 택한 오자서, 그는 일단 아버지의 복수에 성공하지만 주군 합려의 아들 부차에 의해서 자결을 강요받는다. 대쪽같았던 그의 성품으로 인해 그의 시신마저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백비는 어떠한가? 그 또한 여러번 배신을 해가면서 원한을 풀었고, 권력을 차지했고, 심지어는 오자서까지 죽였지만 결국 협력해던 구천에 의해서 죽임 당하지 않았는가? 아버지의 복수에 성공한 부차도, 부차에게 치욕을 갚았던 구천도 모두 쓸쓸하고도 비극적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오와 월이라는 나라도 이후 사라져 버리고, 다만 패배자였던 초나라만이 재기에 성공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의 묵직함을 발견하게 된다. 단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한 사람의 일생으로 볼 때 분명 초나라는 패배자이다. 초평왕에 의한 실정을 심판받는다. 그렇지만 역사라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초 평왕으로 인한 실패는 초 소왕으로 인해 만회가 된다. 초 소왕은 초 평왕의 실정을 깨끗이 인정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그 힘이 인간의 심판을 받았던 초나라가 역사의 심판을 받고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게 한 힘이다.

 

  책을 덮으면서 인간의 심판과 역사의 심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요즘 과거사 논쟁이 한참이다. 대선판에서 앞서나가던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가 과거사 논쟁에서 발목을 잡혔다. 아니다. 발목을 잡히는 수준이 아니라 그나마 있던 이미지까지도 까먹고 있다. 최고봉은 5.18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자기 모순적인 어법이며, 민혁당 사건이다.(도대체 이런 역사인식을 가지고도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는 나라는 무엇인가?) 아무리 헷갈려도 자기 아버지가 행했던 사법살인인 인혁당을 민혁당으로 말하면서 과거사를 정리하겠다는 것은 무슨 생각인지. 러면서 항상 하는 말이 이것들은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한다. 역사의 심판을 운운하는 박근혜 후보의 얼굴에 오월과 부차와 구천이 오버랩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인가?

 

  역사의 심판을 운운한다면 초소왕의 행적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는 초 평왕의 일을 잊자,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하지 않았다. 초 소왕은 자기 부친의 실정을 인정하고 난 뒤 영정 사진을 붙들고 오열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반성하고 두번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했다. 초 소왕은 자기 부친의 실정에 대해서 한 나라의 왕으로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심판을 내린 것이다. 오월과 초와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오월은 타인에게 인간의 심판은 내리지만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한없이 관대했다. 그러나 초나라는 다른 나라에 하는 것만큼 자기에 대해서도 꼬장꼬장했다. 역사의 심판이란 이런 것이다. 타인에 대해서 특별히 너그럽다거나, 자신에 대해서 특별히 너그러울 것이 아니라 한 가지의 잣대를 가지고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도 반성하는 것! 이것이 역사 의식이고, 양심이고, 여기에 근거하여 바른 역사의 심판이 내려진다.

 

  누가 진정한 승자인가? 역사의 심판대 앞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단순히 표로 밀어 붙여서 반쪽짜리 승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대 통합을 이끌어내는 영수인 대통령이 될 사람은 누구인가? 특별한 후보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박근혜 후보도, 문제인 후보도, 안철수 후보도, 이정희 후보도, 심상정 후보도 모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 지금은 꿈이지만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역사의 심판 운운하면서 어영부영 넘어갈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역사의 심판을 의식하면서 자기를 반성할 줄 하는 사람이다. 역사에서 현실을 배운다는 말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한번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ps. 자산의 현실 정치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오월과 초, 제와 진의 미묘한 관계가 자산의 현실감각과 만나자 강소국의 길을 보게 된 것이다. 미중러일 사이에 끼어서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이 미일 동맹을 공고히하면서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는 한국보다는 자산의 강소국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면 국보법에 걸리려나? 그냥 소설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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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11-2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까지만 사놓고 아직 시작을 못했는데 벌써 5권까지 나왔군요. 겨울되면(벌써 겨울인가요?) 슬슬 읽어봐야겠습니다. ^^

saint236 2012-11-21 18:49   좋아요 0 | URL
이젠 읽기 시작하셔야겠군요. 벌서 겨울이니.. 전 이제 2권만 올리면 서평은 다 올립니다. 올릴 때 안올리니 밀리는군요.
 
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 표정있는 역사 3
이한수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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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찰자 뒤웅박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지는 박을 전반으로 쪼갠 것인데 이것 말고 한부분만 잘라내어서 그 안에 물건을 담아둘 수 있도록 만든 박이 있다. 이것을 뒤웅박이라고 한다. 네이버를 뒤져서 뒤웅박 이미지는 가져왔다.

 

 

  이렇게 생긴 것을 뒤웅박이라고 한다. 여자팔자를 왜 뒤웅박이라고 했냐면 뒤웅박은 그 안에 물건을 담아두게 만든 바가지로 부자집에 시집을 가면 그 안에 곡식을 담아두고, 가난한 집에 시집을 가면 그 안에 여물을 담아 둔다는 의미란다. 여자가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달라진다는 뜻인텐데 벌써부터 기분나빠하시는 여성 알라디너들의 눈초리가 무섭게 마음에 꽂힌다. 여자팔자만 뒤웅박은 아니다. 남자팔자 또한 뒤웅박이다.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일생이 달라진다는 것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동일하다.

 

  뜬금없는 뒤웅박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가? 이 책에 나오는 몽골 공주들과 고려 왕들의 신세가 꼭 뒤웅박이기 때문이다. 몽골과의 항쟁에서 생각보다 끈질기게 버텼던 고려는 자신들을 비싸게 몽골에 팔 수 있었다. 고려는 국호를 유지했다느니 왕조를 유지했다느니 하면서 고려를 몽골의 독립국으로 보는 것은 자기 위안일 뿐이다. 생각보다 끈질긴 항쟁의 대가가 국호와 왕조유지였으며, 나머지는 몽골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몽골은 다루가치라는 몽골인 관리를 두어 고려의 국정을 감시했으며, 이것으로 부족해서 고려를 자신들의 편으로 묶어두기 위하여 혼인정책을 시작했다. 왕이 될 사람을 몽골 부인과 혼인하게 하여 고려를 친몽골 성향의 국가로 묶어두기 위해 애썼다. 물론 고려의 왕 또한 몽골의 공주와 혼인함으로 인해 몽골 제국 내에서의 서열이 급상승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양자의 필요에 의해서 몽골의 공주들은 고려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이 일이 반복되면서 벌어진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초반에는 여자가 억지로 시집을 가게 되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왕위를 노리는 고려의 왕자들이 자청해서 몽골의 공주와 결혼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민왕 또한 고려의 왕이 되기 위하여 노국공주와 결혼했음은 신돈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누가 뒤웅박이란 말인가? 아마도 고려의 왕자들이 뒤웅박이지 않았을까?

 

  몽골의 공주가 아니라 칭기스칸의 딸들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삶은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성품은 우리가 알듯이 조용하고 순종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례적으로 관계가 좋았던 공민왕의 부인 노국공주도 결코 얌전하게 운명에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민왕의 모든 개혁정책과 반몽골 정책을 뒷받침하고 흔들리는 왕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다. 노국공주만 그러한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여인들의 삶이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공주상은 아니다. 예쁘고, 갸냘프고, 하늘거리는 드레스만 입고다니는 디즈니풍의 공주가 아니라 말을 타고, 정치감각이 뛰어나고, 거칠고, 남편 이외의 남자를 선택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물들이었다. 결코 남자 입장에서는 좋아할만한 성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왕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아 단순히 고려에 볼모로 잡혀 온 것도, 도매금에 팔려온 것도 아니다. 물론 전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이 왕 못지않은 권력을, 오히려 왕보다 더한 권력을 휘둘렀던 경우도 있었다. 간혹 왕의 부재시에 왕을 대신해서 정무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화냥년이라는 기억만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아픈 사람들에 대한 기억조차 잊기 위해서 일부러 그 시대의 역사를 추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보니 그 당시 지배자들의 입장에 서 있던 사람들의 삶을 기억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고려에 시집왔던 몽골 공주들의 삶이 이런 것이었구나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아서 꽤 흥미로웠다. 권력을 휘둘렀던 그들이지만 꼭 승자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들에 삶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조명해 보는 것도 꽤 재미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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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2-11-17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책이네요. 역사를 새롭게 보게 해줍니다.. ^^

saint236 2012-11-17 23:30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시리즈 꽤 재미있습니다. 역사의 전면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불러내거든요. 역사 속의 첩자라든지, 왕을 낳은 후궁이라든지...시리즈 제목도 표정이 있는 역사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11-18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정녕 이런 책이 있단 말이지요. 흥미롭습니다. 역사 이면의 역사, 관심 많은데 굉장히 재미있고 의미있겠네요. 일단 보관함으로 담습니다. 고맙습니다. 세인트님.

saint236 2012-11-18 16:03   좋아요 0 | URL
저도 우연한 기회에 건진 것인데 꽤 재미 있습니다. 아들뻘인 고려왕에게 강간당했던 몽골 공주도 있고, 이 때문에 그 고려왕은 왕에서 쫓겨나 유배를 가다가 죽었고. 우리가 잘 모르던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춘추전국 이야기 1 -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1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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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된지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성공한 CEO라는 포장 속에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것이고, 경제는 살아날 것이며, 서민들은 살기 좋아질 것"이라는 취지의 연설을 수도 없이 했던 것으로 기억하다.(나꼼수 초반 에피소드를 듣다보면 본인의 육성으로 이 부분을 확인할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이 되면서 747 공약을 자신있게 내세웠던 것으로도 기억한다. 국민들도 이명박 후보가 흠이 많은 사람이지만 경제는 살려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욕쟁이 할머니가 등장했던 CF도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결과가 무엇인가? 매년 7%의 경제 성장, 1인당 4만달러 시대, 세계 7대 강국이라는 그의 정책은 5년간 합계 성장율 7%가 아니냐는 조롱을 받고 있다.

 

  어느덧 5년이 흘러서 새로운 대통령을 뽑을 때가 되었다. 모든 후보들이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한다. 물론 새누리당의 경제 민주화라는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은 얼마전 김종인씨를 통해서 만천하에 공개 되었다. 시사인 265호 10페이지에 아주 멋있는 캐리커처와 함께 이에 대한 김종인씨의 발언이 기록되어 있다.(시사인을 구독하다 보니 시사인을 인용한 것뿐이니 색깔론 공세를 펼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전까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모두 재벌 개혁, 경제 민주화를 주장했고, 문재인과 안철수는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거창하게 경제 민주화를 말하고, 재벌 개혁을 주장하지만 문재인이나 안철수나 모두 이렇다할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뜬 구름 잡는 식이다. 오히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심상정과 노회찬이 독보적이다. 다만 그들은 통진당 사태를 통해서 치명타를 맞았기 때문에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은 경제가 전부였고, 이번 대선에도 마찬가지다. 복지를 말하는데 복지라는 것도 결국은 경제 문제와 같이 가는 것이니, 이번 대선도 경제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 통일 문제는 한번도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있으며, 오로지 복지와 경제에 관한 말뿐이다. 내가 판단컨대 이대로라면 문재인이 가장 불리하지 않겠나 싶다. 문재인 선거 참모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왜 통일과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조용하면서 박근혜와 안철수가 선점한 경제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서 정신을 못차리느냐는 것이다. 이 때 통일과 안보 문제를 가지고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하는 것이 문재인에게 가장 효과적이지 않겠는가?(어찌되었거나 그는 특공대 출신이 아닌가?)

 

  이야기가 딴 길로 샜지만 경제와 복지를 말하는 이번 대선 후보들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벤치마킹해야 할 사람이 있으니 관중이다. 관중에 대한 공원국의 평가대로 그는 최초의 경제학자이자, 철저한 현실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갈공명은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견한다. 관중은 최초의 경제학자로 국가를 잘 경영한 사람이요, 악의는 전쟁터에 나가서 국가의 안보를 지킨 지용을 겸비한 장수다. 행정과 군무, 즉 경제와 안보를 모두 중요하게 여기겠다는 제갈공명의 포부를 볼 수 있다.

 

  각설하고 왜 공원국은 관중을 최초의 경제학자라고 하는가? 제환공을 천하의 패자로 만든 관중의 힘이 어디에서 연유되었는가? 그의 현실감각이다. 관중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관중은 참으로 기회주의자요, 비겁한 사람으로 평가절하될 수도 있다. 포숙아와 같이 사업을 하면서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거나 뒤로 물러나거나, 혹은 같이 죽지 않고 살아서 적군이었던 제환공의 신하가 되었거나 하는 모습들을 보면 관중은 참 비루한 사람이요, 변절자로 보이지만 그의 변절과 비루함은 철저하게 현실에 그 기반을 둔다. 능력이 안되면서 체면을 차리느라 무리하지 않고, 자기를 가장 잘 써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현실적으로 판단한다. 그런 그가 내놓은 경제 정책의 핵심이 무엇인가?

 

  백성이란 근심과 고생을 싫어하니, 나는(군주는) 그들을 즐겁게 해줘애 한다.

  백성이란 가난과 비천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줘야 한다.

  백성들이란 위험에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존해야 한다.

  백성들이란 자신이 죽고 후대가 끊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이 수명을 누리고 후대를 잇도록 화육해야 한다.(p232)

 

  좋은 금속(양질의 청동)으로는 검과 극을 만들어 개나 말로 예리함을 시험하고, 나쁜 금속(불순물이 많은 청동)으로는 호미 등의 농기구를 만들어 땅을 가는데 시험하십시오.(p233)

 

  관중은 현실주의자답게 욕망을 긍정한다. 그렇다고 뉴라이트처럼 엉뚱하게 욕망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욕망을 긍정한다. 그리고 그 욕망을 위해 자본을 어떻게 투자해야할지를 판단한다. 물론 투자 판단의 기준은 긍정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가장 효율적인 것이 무엇인가이지 누구처럼 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강바닥에다 쓸어 붓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는다. 현실을 고려한 경제 정책은 이런 것이다.

 

  대선후보들이 경제를 말하고 싶다면 현실에 기반한 경제정책을 세워라. 버스값 70원 드립을 치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판타스틱한 경제관념이 아니라, 부자되세요라면서 개인의 부정적인 욕망을 자극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상생할 수 있는 긍정적인 욕망을 먼저 생각하라. 747 같은 탁상공론식 정책이 아니라 서민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먼저 챙겨라. 선거철이 되면 떡볶이, 순대 한번 먹고, 시장에서 물건 한번 살 것이 아니라 촌놈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관중처럼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전셋사는 사람들의 애환을 경험해 봐라. 박세일이나 김문수처럼 택시기사라도 해봤다면 최소한 버스값 70원 드립은 치지 않았을 것이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부담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혹은 주어가 없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지 말고, 얼마나 힘들게 등록금을 벌어서 대학을 다니는지, 최저 임금이 4500원 수준임을 먼저 알려고 노력해라. 최저임금 5000원 발언하면서 복지와 일자리를 이야기하고, 쌍차를 저렇게 절단내면서 전태일 다리를 찾아가는 그런 체면차리기식 정치를 내세우지 마라. 사람들이 왜 기존 정치인들에게 분노하는지 진정 모르는가?

 

  관중의 현실 정치는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안다. 과도하게 몰아붙이지 않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관리하는 차원에서 머문다. 과도하게 통제를 하려고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방임해서도 안된다. 적절하게 균형을 맞춘 관리가 필요하다. 자기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만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몰라서 나 몰라라 해서도 안된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이미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면 재벌의 막강한 권력을 방임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면서 모드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런 통제가 재벌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국민과 언론에 대한 통제인 것이 문제다. 경제도, 정치도, 외교도 자기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버려라. 관중은 자신의 한계와 제나라의 한계를 냉철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패자라는 새로운 정체를 만들어 낸 것이다.

 

  대선이다. 곳곳이 시끄럽고 네거티브 공세가 판을 친다. 경제를 말하지만, 복지를 말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현실적인 대안은 없다. 박근혜는 그네를 타면서 땅으로 내려와 현실을 직시할 생각이 없다. 그저 공기를 밟고 있다. 문재인은 문제를 제기하지만 대안이 없는 것이 문제다. 안철수는 영희의 도움으로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경제와 정치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만고만한 지지율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삼국시대를 열고 있다. 누가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 관중을 통해 현실 감각을 배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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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5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8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2-10-28 17:28   좋아요 0 | URL
자신과 자기 당에서 뭐든지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독재라는 말이겠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사춘기를 지날 때 눈물 지으면서 봤던 책들이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아마도 아스라이 추억의 저편에서 이 제목을 꺼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덜하긴하겠지만 당시에도 성적이라는 것은 학생들, 특히 고3에게 가장 큰 짐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담임선생님이 한 말이 또 걸작이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닐지는 몰라도, 성적을 무시하고 행복을 말할 수는 없다."

  교회에 다니시던 선생님이어서 그런지 목사 아들인 나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져 주셨고, 엄하게 대하기도 하셨지만 그 분이 나에게 애정과 관심이 있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는 말을 허투루 넘기지는 않았다. 그 덕에 나는 꽤 공부 잘하는 축에 들어갔고, 입시에 실패하지 않고 지금껏 성적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오고 있다.(물론 이 말이 내 인생이 평탄하다는 뜻은 아니다. 성적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문제들로 충분히 힘들었다는 의미다.)

  당시 함께 읽었던 책 가운데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책이 있었다. 아마 위의 책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 책도 기억해 낼지도 모른다. 수험생일 때에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책에 더 깊이 공감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책에 공감하게 된다. 아마도 삶의 자리와 형편이 바뀌어서 그런 것 같다.

  대학 입시 이후 서울에 올라와서 쭉 살고 있는데 정신 없이 달려 왔던 것 같다. 무엇에 쫓기듯이 하늘 한번 쳐다볼 여유도 없이 지나왔다. 가끔 고궁으로 돌아다니면서 여유를 만끽한다고 하면서도 마음만은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살아왔다. 가정에 쫓기고, 등록금에 쫓기고, 친구에 쫓기고, 애인에 쫓기고. 졸업해서는 직장에 쫓기고. 내가 이렇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주 작은 에피소드 때문이다.

  어느날 지하철을 타러가고 있는데 시간이 급했던 나는 무빙워크에서 열심히 걸어서 지하철 플랫홈 근처에 이르렀다. 계단만 내려가면 되는데 "지금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안내 멘트를 들었다. 이것을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계단을 날듯이 뛰어 내려 간신히 세이프했다. 그런데 젠장이다. 반대쪽 방향 지하철을 탄 것이다. 급하게 타다 보니 방향도 확인안하고 무작정 지하철을 탔던 것이다. 그 덕에 결국 지각! 잠시만 멈췄더라면, 그 지하철을 놓쳤어도 상관없었는데 무엇이 그리 급했었는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이와 속도가 아니라 밀도와 방향이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고,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제대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을 삶에서 제대로 기억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빨리와 오래가 인생 최고의 목적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말이다. 빨리 갔는데 나처럼 거꾸로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하철이야 다시 돌아오면 되지만 우리 인생이 순환선도 아니고 되돌리기 쉬운 것도 아니지 않는가? 오늘도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저자는 조용하게 속삭인다.

  "그렇게 빨리 어디로 가십니까? 그게 인생의 전부입니까? 잠깐만 멈춰보시지요."

  맞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대로 가는 것이라면 우선 쫓기듯 달려가는 세상 속에서 멈추어 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모두가 달려가는데 나 혼자 멈추어 설 수 있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에서 멈추어 서는 것과 동일하게 보인다. 잠깐 멈추는 순간 뒤 쳐지고, 인생은 끝이 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멈추어서면 지금까지 못보던 것들이 보인다. 주변이 보이고, 가족이 보이고, 친구가 보인고, 인생이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그리고 내 인생의 목표가 보인다.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눈을 감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가? 멈추어 서서 인생의 방향을 한번씩 점검해 보자. 빨리가 아니라 제대로 사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하자.

 

ps. 저자가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모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일까? 내용이 몇 줄의 문장이다. 짧은 문장 덕에 여유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들에 친근감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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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0-1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류의 책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좀처럼 사서 읽는 경우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금년 6월엔가 잠깐 바쁜 일상을 '멈추고' 지인들 셋과 함께 태국으로 며칠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답니다. 그 때 마침 여러권의 책을 주문할 때 이 책도 함께 사서 여행가방 속에 챙겨 갔었는데, 인천공항에서 우리 일행중 한 명이 이 책을 들고 있더라구요. "엇, 그거 내책인데..." 했더니 그 후배가 "제꺼 맞아요. 며칠 전에 산 건데.." 하더군요. 넷 중 둘이 이 책을 들고 여행길에 오른 셈이었지요.

저는 '하늘을 날며' 이 책을 다 읽었는데, 책 제목도 너무 멋있고 해서 풍성한 '볼꺼리'들을 기대했었는데, 정작 보이는 건 '그림' 말고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고, 어금니로 꽉꽉 깨물어야 맛이 날 것 같은 '단단한 알맹이'는 별로 없어서 많이 허전하더군요.

(한달쯤 전엔가 제 딸아이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사달라고 엄마한테 조르더군요. 그래서 제가 얼른 이 책을 넘겨줬는데, 그 때 들었던 생각도 '책 제목' 하나는 정말 잘 만들었다 싶더군요.)

saint236 2012-10-17 20: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 제목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지었더라고요. 법륜스님 책도 읽었는데 그것도 비슷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