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45분 경에 출발하는 그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만에 신도림과 구로 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그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가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새벽 4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가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물 세 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그 다섯 분도 역시 마찬가지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이 진보정당,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 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었습니까?


  강물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중 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여러분.

  진보정당의 공동 대표로, 이 부족한 사람을 선출해주신 것에 대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수락하고자 합니다. 저는 진보정의당이 존재하는 그 시각까지, 그리고 제가 대표를 맡고 있는 동안, 저의 모든 것을 바쳐서 심상정 후보를 앞장세워 진보적 정권 교체에 성공하고,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모든 투명인간들의 당으로 이 진보정의당을 거듭 세우는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털어넣겠습니다.


  김용민의 팟캐스트를 듣다가 다시 한번 듣고 눈물이 났다. 다 큰 남자 어른이 훌쩍이는 것이 창피한 일이었는데 다행히 이비인후과라 내가 비염 때문에 훌쩍이는 줄 알았을 것이다. 이런 정치인이 또 있을까? 우리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알고, 경험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모 재벌 총수는 버스비 70원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모 대표는 서울역 플랫폼에 차를 밀고 들어갔다가 욕을 먹었다. 모 대변인은 10억 이상의 대출을 받아 건물을 구입했다가 낙마하고 되려 큰 소리로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했다가 국민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 모 정치인은 돈 받고 죽은 그로 인해 재보선이 일어났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내가 노회찬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우리의 삶을 살았고,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누구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어떤 정치인에게 우리의 희망을 투영할 수 있을까? 하늘이 너무 푸르다.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푸르다. 그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 길을 가기까지 얼마나 고민이 되었을까 하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이게 하는 재보선 결과를 보고 더 미안하다. 유난히 푸른 하늘이 유난히 더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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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4-09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새벽에는 아니지만 6411번 버스를 자주 타는 편이에요^^

saint236 2019-04-13 19:3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은 버스를 탈 때마다 남다른 느낌이 들겠네요.

카스피 2019-04-16 08:03   좋아요 0 | URL
뭐 가끔 TV에서 제가 타는 버스가 나오면 무척 신기하더군요^^
 

  양승태

 

  대한민국에서 잊혀지지 않을 이름이다. 대법원장의 이름이 이렇게 잊혀지지 않는 경우는 참 드문 경우인데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는 면에서 그는 성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국민학교에서 우리 나라는 삼권분립을 택했다고 배웠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라는 3개의 기관으로 권력이 분립된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배웠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전주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의 사진을 학급과 교과서에서 봤으니 이 사실을 배운 것은 삼권 분립 알기를 우습게 알던 군부 독재 정권 시절이다. 현실이 어땠든 그때고 그렇게 배웠다. 시험 문제에 곡 나오는 것이었으니 달달 외웠고, 당연히 시험 문제에서도 자랍스럽게 "우리 나라를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로 이루어진 삼권 분립을 국가의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적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현실이 어떻든, 입법부와 행정부가 어떻게 야합하든 사법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배운 사람들이, 그래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상식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생각해왔다. 이 사회의 마지막 보루는 사법부라고 생각했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헌법재판소에 판결을 의뢰했던 것도 이러한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법부는 생각보다는 상식적인 재판을 통하여 이 사회를 이끌어 왔다. 물론 군부 독재 시절 재판이 상식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21세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지랄맞던 MB 시절에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검찰들이 온갖 정치쇼를 펼쳐도 사법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전 양승태 대법원장을 통하여 이러한 기대가 무너졌다. 그동안 이해못할 수많은 판결들을 보면서 검찰과 정치권을 욕했는데 사법부에도 여기에 한 다리를 걸치고 있을 줄이야.


  도대체 사법부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사법부는 누구에게 충성하는 존재인가? 매일 청와대 앞을 지나가면서 이석기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개인적인 판단으로 "저건 좀 그러네"라고 하면서 KTX 승무원들의 판결을 다시 곱씹어 본다. 정의의 신인 니케는 눈을 가리고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하여 저울을 들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이미 저울울추가 기울어져 있다니 앞으로 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품고 판사가 되려고 할까?


  요 며칠 "The Post"라는 영화를 보았다. 베트남전을 치르던 미국 정부의 기밀 문서, 승리의 희망도 없으면서 전쟁을 지속하는 국가의 비리를 파헤친 영화이다. 솔직하게 박진감 넘치는 액션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도 아니지만 마지막 판결문만큼은 강하게 다가온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국가의 온갖 공작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판결을 내린 대법원이 부럽다. 그러면서 문득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생각이 났다. 만약 그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만약 이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기무사 문건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폭로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삼성의 비자금 판결과 MB시절의 판결을 보면 충분히 답이 나올 것이다. 


  욕을 해도 미국을 지금금까지 지탱해 온 것은 용감한 판결을 내린 법관들이 있었기 때문이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도 이렇게 용감하고 신념있는 판사요, 이러한 판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법부의 시스템일 것이다. 앞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어떤 처벌을 받을지 눈을 부릅뜩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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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노빠다. 그런데 노빠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노는 노회찬이요, 뒤에서 말한 노는 노무현이다. 나에게 있어서 노회찬은 노무현보다 더 대단한 정치인이었다. 민노당에서 통진당으로 그리고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겨가면서 그의 정치 행보를 이어갈 때 나 또한 그와 함께 그 행로를 밟았다. 당적을 바꾼다고 그에게 철새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리당략이 아니라 정치적인 견해를 가지고 갈라져 왔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원한다면 그도 메이저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와 동창이었던 사람이, 혹은 그와 함께 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자기의 신념에 반하는 곳에 들어가서 정치행보를 이어갈 때에 그는 그래도 그 자리를 지켰다. 심상정 노회찬이라는 양 날개는 민노당, 통진당,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그 길에서 나로하여금 그래도 희망을 보게 만들었다. 날카롭지만 묵직하게 밀어 붙이는 심상정, 날카롭지만 유머러스한 촌철살인 노회찬. 아직까지도 나에게 전희경 의원의 청와대 전대협 점령 의견에 대해서 "그럼 망명하셔야지요."라는 발언이, 당선되면 KTX를 오원구로 끌고 오겠다는 허준영 후보의 말에 "KTX가 코리아 택시의 약자냐?"라는 발언이, 왜 합당하지 같은 당인 것처럼 행동하느냐라는 발언에 "외계인이 침공하면 우리나라와 일본이 손잡고 싸우지 않느냐?"라는 발언이 새록새록 생각이 나서 혼자 웃어 본다.

 

  그런 그가 이젠 없다. 그렇게 참신한 언어를 쏟아낼 사람이 더 이상 없다. 유시민의 촌철 살인도 노회찬만큼 유쾌하지 않다. 심상정은 전혀 다른 캐릭터다. 그가 보고 싶어서 며칠전 노래를 들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노찾사의 버전이 아닌 MC 스나이퍼의 버전으로 들었다.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말아
  창살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나의 영혼 물어다줄 평화시장 비둘기 위로 떨어지는 투명한 소나기
  다음날엔 햇빛 쏟아지길 바라며 참아왔던 고통이 찢겨져 버린 가지
  될 때까지 묵묵히 지켜만 보던 벙어리 몰아치는 회오리 속에 지친 모습이
  말해주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 여전히 가슴속에 쏟아지는 빛줄기


  아름다운 서울 청계천 어느 공장

  허리하나 제대로 펴기 힘든 먼지로 찬 닭장 같은 곳에서 바쁘게 일하며 사는 아이들

  재봉틀에 손가락 찔려 울고있는 아이는 배우지 못해 배고픔을 참으며

  졸린 눈 비벼 밖이 보이지 않는 숨막히는 공장에 갇혀 이틀 밤을 꼬박 세워 밤새 일하면

  가슴에 쌓인 먼지로 인해 목에선 검은 피가 올라와 여길 봐 먼지의 참 맛을 아는 아이들
  피를 토해 손과 옷이 내 검은 피에 물 들 때 손에 묻은 옷깃에 묻은 현실의 모든 피를

  씻어낼 곳 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 노동자만을 위한 노동법은 사라진지 오래
  먼지를 먹고 폐병에 들어 비참히 쫓겨날 때 여전히 부패한 이들은 술 마시며
  숨통 조이는 닭장에서 버는 한 달 봉급을 여자의 가슴에 꽂아주겠지 

  비에 젖은 70년대 서울의 밤거리 무너지고 찢겨져 버린 민족의 얼룩진 피를
  유산으로 받은 나는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 모든 상황은 나의 눈으로 보고 판단 결단
  살기 위해 허리를 조인 작업장안의 꼬마는 너무나도 훌쩍 커버린 지금 우리 내 아버지
  무엇이 이들의 영혼을 분노하게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저 홀로 속상 할 뿐이지
  인간으로써 요구 할 수 있는 최소의 요구 자식 부모 남편이길 버리고 죽음으로 맞선
  이들에겐 너무도 절실했던 바램 하지만 무자비한 구타와 연행으로 사태를 수습한
  나라에 대한 집단 비판현실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져 몸에 불지른
  전태일의 추락 나는 말하네 늙은 지식인들이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이들은 몸으로 실천했음을 

  이제는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판단할 차례
  7,80년대 빈곤한 내 부모 살아온 시대 그때의 저항과 투쟁 모든 게 나와 비례 할 순 없지만
  길바닥에 자빠져 누운 시대가 되가는 2000년대 마지막 꼬리를 잡고
  억압된 모든 자유와 속박의 고리를 끊고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는
  예술인으로 태어날 수 있는 진짜 한국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말아
  창살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듣다가 왈칵 눈물이 났다. 그가 가는 길에 이 노래 하나 띄워주면서 그를 보내고 싶다.

 

  *그의 죽음을 두고 생각이 맞지 않다고 헬기 추락은 그냥 내버려 두면서 부패한 놈 죽었다고 왜 슬퍼하냐 운운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나라가 어찌 이리 망가졌는지, 6.25 시절로 돌아간 것은 아닌지, 유신 시절로 돌아간 것은 아닌지하는 씁쓸함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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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언론이 참 지랄 맞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영화 1987에서 처럼 칠판에 분필로 적혀 있는 보도 지침을 지우면서, 언론을 뭘로 보고, 사실대로 써라고 일갈하는 언론을 상상했던 내가 너무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철이 없는 것인지...언론의 역할은 감시의 역할이어야 하지, 결코 여론을 조장하여 누군에게 이익을 주어서는 안된다. 가령 누군가에게 이익을 주기 위하여 애를 쓴다고 해도 그 대상은 재벌이나 권력자가 아닌 정말 힘없는 약자들을 위해서여야 한다.

 

  그런데 요즘 언론이 참 지랄 맞다. 기레기라는 말이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기레기라는 말이 원래는 "기성용 쓰레기"로 시작했던 말로 기억한다. 기성용의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라는 발언을 싸이월드에 기재했던 2013년 경의 일로 인해 기성용의 도덕성을 이야기하면서 기레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별명이 여기저기에 나오기 시작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이다. 처음에 아무 것도 몰랐던 나는 도대체 기성용이 또 어떤 말을 했기에 기레기라는 용어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가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 기레기가 기성용 쓰레기가 아니라 기자 쓰레기라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기성용이 좋아하겠다라는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면서 킬킬댔던 기억이 있다.

 

  기레기라는 용어에 담긴 언론에 대한 사람들의 불편함, 이것을 뛰어 넘는 반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요지부동이다. 자신들에 대한 공격을 마치 사탄의 세력이 음해하는 것이라는 말로 뭉개는 일부 목사들처럼, 자신들에 대한 공격은 좌빨들의 선동이라는 말로 깔아 뭉갰다. 조중동에 반기를 들거나 불편함을 이야기하면 좌빨로 매도되었고, 사상 검증을 위해 "김정일 개객끼"를 외쳐야 했다. 국방부 장관이 되기 위해서는 때아닌 신앙고백을 해야 했다. 물론 신앙 고백문은 "천안함은 북한의 소행이다. 김정일 개객끼해봐."였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에 대해서 그 어떤 언론도 날카롭게 비판하지 않고 좌빨들이 설친다면서 때아닌 매카시즘을 조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언론이 장춘기 백일장으로 그 밑바닥을 드러냈다. "충성 충성"을 외치는 그들의 충성의 대상은 누구이며, 왜 사주가 아닌 삼성의 임원에게 승진되어서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야 하는 것인지...

 

  그 충성심의 발로였는지 날마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을 까대기 시작했고, 결국 낙마시켰다. 그런데 그 의혹이라는 것이 옐로페이퍼 수준이다. 왜 도대체 그렇게 목숨걸고 씹어댔을까? 자한당이라면(그들은 자한당이라 부르지만 나는 자유당이라 혹은 자해당이라 부르고 싶다.) 이해가 가겠지만, 삼성이라면 이해가 가겠지만 도대체 삼성의 특혜를 철폐하고 금융을 바르게 세우겠다는 김기식을 향하여 맹공을 퍼부은 이유가 무엇일까? 여전히 네이버에 김기식을 치면 "김기식 여비서"라는 연관어가 먼저 뜨는 이 상황을 보면서 그의 가족들은 얼마나 답답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기식의 낙마 이후, 이제는 조국을 향한 공세를 시작했다. 정권 초기 임종석에 대한 언론의 공세에 이어 조국에 대한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그 덕일까?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임종석과 조국이 차기 대통령이라고, 비선 실세라고 생각한다. 언론은 이러한 생각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 참 가지가지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언론이 팟 캐스트에서 "왜 그래? 그건 언론이 아니잖아"라고 말을 하면 너희들이 언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격할 때에는 언론이라는 프레임으로 그들을 처벌하려고 애를 쓴다. 이건 기울어져도 너무 기울어져 있다. 어떻게든 바로 잡아 보려고 불매 운동도 하고, 사장 교체를 요구하기도 하고, 방송사 앞에서 시위를 해보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이다. 정권이 바뀐 다음에나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함은 더 커져만 간다. 그런 나에게 언론이 그 지랄맞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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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5-0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론사가 그 유지비를 광고에서 대부분 가져오면서 이미 주도권이 넘어갔다고 봅니다. 물론 일종의 공생관계이기도 하고 갑을관계가 역전되기도 하지만 장충기사건을 보면 결국 큰 광고주가 다 잡고 흔드는 걸 막을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기자다운 기자보다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고 2030이든 4050이든 결국 월급쟁이 이상의 수준을 기대하긴 힘든 것 같네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뉴스를 가려 보고 듣는 혜안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필수조건이 활발한 독서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니까 답답하네요..
 

미투 운동이 한창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한국의 미투 운동은 기다렸다는 듯이 각계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범조계, 문학계, 연극게, 이제는 정치계까지... 그동안 쌓여왔던 적폐들이 이번 기회를 통하여 한꺼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온갖 권력으로(그것이 직위가 되었든 재물이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찍어 누르던 것들을 더 이상 찍어 누를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르러 터져나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지렁이가 밟히다 밟히다 꿈틀 한번 한 것이며, 쥐가 죽으면서 찍 소리 내보는 것이다.

 

미투 운동이 무엇인가? 자기 이름 걸고 나도 성폭력을 당했다는 뜻이 아니던가? 한국 사회처럼 약자를 보듬어 안아 주는데 인색한 사회 속에서, 더구나 여성 피해자에 대해서는 더한 한국 사회 속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내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목숨을 걸고 돌진하는 저항이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니 내가 최소한 너에게 상처라도 하나 남기고 죽겠다는 옥쇄(3.1절이 지난지 1주일이 안되었는데 이런 말을 쓰기가...그러나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이다.

 

그 처절함 때문일까 과거와 달리 미투 운동이 사회에 끼친 영향이 만만치 않다. 나아진 것이 뭐가 있느냐 반문하겠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성폭력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니던가? "성폭력=성폭행=강간" 이런 등신같은 등식을 보편적인 상식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강간당한 것이 아니니까 괜찮지 않느냐, 혹은 청바지를 입었는데 강간이라니 당치 않다라는 식의 이야기들이 법원에서도 흘러나오지 않는가? 미투 운동은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 한 줄기 빛과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미투 운동이 진행되면서 언젠가부터 물타기가 시작되고 핵심쟁점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아픔과 용기에 공감하기 보다는 얼굴을 보면서 품평회를 한다. 페미냐 아니냐 말하기 시작하고, 한남이냐 하니냐, 남성 공격이냐 아니냐 등등 여러가지 불필요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미투 운동이 정치권으로 옮겨붙으면서 색깔론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어제 안희정 지사와 관련된 사건을 보면서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 되기 시작했다. 참다 못한 비서가 용기를 내어서 고백했다. 안희정 지사 측은 이 부분에 대해서 강간이 아니라 화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팩트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공작이다 아니다, 김어준이 알고 있었느냐 아니냐 등등 여러가지 말하는 것들은 미투 운동의 핵심을 가리는 일이다.

 

안지사 사건의 핵심은 이거다. 강간인지 화간인지는 아직 모른다. 거의 대부분의 성폭행 사건이 그러하듯이 피해자는 강간이라 주장하고, 가해자는 화간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증거는 없다. 자기가 증거라고 한다. 앞으로 재판이 난항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것은 안희정 지사는 성적으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딱 여기까지가 팩트다. 나머지는 진행되는 사안을 바라보면서 판단해야 한다. 섣불리 판단하고,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돌을 던지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진흙탕 싸움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지 주시하고, 이 일을 통하여 모든 미투 운동을 덮고 가려는 세력이 있는지, 혹은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여전히 유지하려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물타기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물타기는 바다에 가서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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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3-0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간이 뭔가 했습니다.ㅋ
고은 시인도 그렇습니다. 상습적이진 않았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거기에 완전히 비껴가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차라리 어느 정도 잠잠해질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게
그나마 나을 것도 같은데.
어쨌든 이런 진흙탕 싸움이야 예상했던 바고
이 운동이 뭔가 획기적인 전환이 되길 여자의 한 사람으로서
바랄뿐입니다.

saint236 2018-03-06 16:37   좋아요 0 | URL
잘못했는데 상습적이지 않았다, 좋아서 했다 그러면 죄가 없어지는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어쩌면 이 기회에 정치권으로 미투 운동이 번져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