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8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8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식e 시즌 8이 나왔다. 시즌 1부터 꾸준히 읽어 왔으니 벌써 몇년이 되었다. 항상 책의 첫머리에 내 마음에 묵직한 돌을 던져 주는 말 한마디가 있다.

 

  "가슴으로 읽는 우리시대의 智識"

 

  지식이라는 말이 놀랍게도 知識이 아니라 智識이다. 우리가 흔지 지식이라고 사용하는 단어는 知識으로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식e에서 말하는 지식은 智識으로 "생각하여 아는 작용. 또는 지혜와 견식"이라는 뜻이다. 지식e에서 가슴으로 읽는다는 말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e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다른 책을 읽듯이 냉철한 이성과 학식을 가지고 분석하면서 읽을 것이 아니라 가슴을 열고 각 사람의 사연을 나의 사연을,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 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흔해빠진 그러나 역사를 바꾼 사람들,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양심을 지키는 언론인들, 독재 정권에 자식을 잃었지만 타협하지 않는 어머니들, 복사할 돈이 없어서 자료를 필사하면서 친일 인명 카드를 만든 부자, 사랑하는 가족의 자살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 이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을 기록하고 있다. 활자라는 한계 때문에 영상이 주는 감동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대신 활자가 주는 묵직함을 간직하고 말이다. 내용 자체가 주는 묵직함에 활자가 주는 묵직함이 더하여져서 이 책에는 가슴으로 읽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개개인의 생생한 숨결이 담겨있다. 이 숨결은 8권이 되었다고 해서 결코 퇴색하지도 않았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런데 그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내 마음이 닫혀 버린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어느새 나도 智識을 知識으로 그리고 止息으로, 결국에는 指示로 나아가는 이 시대의 조류에 순응해 버린 것일까? 이 안에 담긴 사람들의 숨결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인데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그 흔한 촛불 한번 안켜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이렇게 초라해지는 내 마음을 달래보고자 키보드 자판 앞에서 있는척 끄적거리면서 무엇인가를 적고, 난 안그래라면서 자위하는 내 자신이 더 초래해 보인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느새 "of the country, by the country, for the country"로 바뀌어 버렸고,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기에 앞서서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가 국민의 절대적인 책무가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하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삶이 부서져도, 빈곤해져도, 사라져버려도 무방하다. 이미 나만 아니면 돼라는 절대가치가 국민들을 파편화시켜 버렸고, 언론들은 권력의 나팔수가 되어서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오늘의 이야기이다.

 

  2013년 대한민국을 사는 나에게 과연 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가슴은 있는가? "국가는 국민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 그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타게 에르란데르의 말을 말하고 믿고 실현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에 집중한다. 원 취재 대상은 정부와 기업이다. 그들이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라는 프로퍼블리카의 이념을 신뢰하고 응원하고 있는가? "세상에서 서기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목소리 큰 사람이야 얼마든지 많은데 작은 것을 꼼꼼히 기록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한창기의 자애로움이 나에겐 있는가? "사면 제도는 누가, 왜 사면권을 행사하는지에 따라 악법이 될 수도 있고 관용이 될 수도 있다."는 윌리엄 블랙스톤의 말을 기억하고 사면권이 악법이 아닌 관용으로 사용되도록 깨어서 감시하고 있는가?

 

  많은 질문 앞에서 그저 부끄럽다. 어느새 현실에 타협해 버린 내가 한없이 부끄럽다. 이 시대를 읽을 가슴조차 열어두지 못하고 닫아버린 것 같아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자화상을 쓰면서 느꼈을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서 더 아프다. 오늘도 아픈 마음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거울을 닦다가 문득 이런 사람이 나만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시대를 가슴을 읽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거울을 닦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을 받고 용기를 내 본다.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던 내게 이 책이 마지막으로 준 말 한마디에 위로를 얻는다.

 

  나는 이 지상에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간단한지 보여주고 싶었다. 혼자 꾸면 그건 한갓 꿈일 뿐이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출발이 된다.-훈데르트바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3-10-26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권도 사둔채 못 읽어서 8권은 아직 구입을 안했는데...
아래 역사e와 같이 사야겠네요.

saint236 2013-10-26 12:01   좋아요 0 | URL
영상이 문자로 변환되어서 이렇게 감동을 주는 것도 드문 일이죠. 그덕에 지식e를 꾸준하게 읽게 되네요.
 
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록과 기억!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의 차이는 무엇일까? 철학적으로 딱딱하고 복잡하게 규정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자. 기록은 어떤 사건을 문서나 그림과 같은 형태로 작성하는 행동이다. 기록의 행위를 더 넓게 해석한다고 해도 그것을 보관하는 것까지가 기록의 역할이다. 이에 비하여 기억은 기록된 것을 토대로하여 재구성하는 단계까지를 포함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더 어려운 것 같다.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영화의 한토막을 빌려서 설명을 해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아는가? 멀게는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 인셉션을 감독했고, 가깝게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을 제작한 사람이다. 항상 블록 버스터 영화를 만들지만 밝게, 화끈하게만 만들지 않는다. 영화 속에 철학적인 질문들, 정의에 관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이 사람을 주목하게 만들었던 영화가 메멘토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주인공은 단기기억 상실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을 앓고 있다. 그의 기억력은 딱 10분간만 유효하다. 10분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다. 주인공은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하여 자기 몸에 문신을 새긴다. 주인공은 이 문신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지만 그 문신이라는 것도 완전하지는 않다. 어떤 것은 볼펜으로 새겨서 사라져 버리기까지 하고, 어떤 것들은 재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왜곡되기도 한다. 게다가 자기가 옳다고 믿었던 기억 조차도 실은 타자에 의해서 왜곡되기도 한다. 주인공의 행위 가운데 사건의 단서를 남기기 위하여 문신을 새기는 행위를 기록, 그것을 토대로 사고를 재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심지어는 왜곡된 것일지라도)을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잠간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지만 메멘토라는 제목에서 나는 기록이라는 행위에 집착하지만 그것을 재구성하는 기억의 단계에서는 심각하게 왜곡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이용당하는 주인공의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기록과 기억은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철저한 기록은 기억의 근거들을 제시해 주고, 이렇게 생성된 기억은 우리에게 현실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제공해 준다. 그만큼 중요한 기록과 기억이라는 것이 중요하지만 문제는 오늘날 기록과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록과 기억이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줄 사이의 관계가 불완전한 것이다. 사회가 어찌 되었든, 우편향이든 좌편향이든 일단 데이터는 남는다. 작심하고 숨기려고 해도 인터넷이라는 도깨비 방망이는 모든 기억들을 차곡차곡 그 안에 채워 넣는다.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지는 관심밖의 일이다. 이렇게 기록에 충실했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말바꾸기가 과거에 비하여 잘 드러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렇게 충실한 기록(비록 그안에서 진위 여부를 가리는 작업이 필요하지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10분이 지나면 기억들을 잃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그 시간이 지나버리고 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피흘리고, 투쟁하고, 이러면 안된다는 자성도 그때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또 반복될 뿐이다. 기록은 있느나 기억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이다. 혹은 기억을 한다고 할지라도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어떻게 하면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 책의 세 장의 제목이 이에 대한 답변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라티어로 보면 의미가 더 정확해진다. "Quaestio! Cogito! Memento" "질문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기억한다." 우리의 기억이 왜곡되어서 누군가에게 이용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지,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이 상황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 등등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시대를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과연 이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가, 우리가 존재하는 양식이 과연 옳은 것인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리고 행동들과 생각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물론 기억하는 과정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 세단계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결여되어 버린다면 영화 메멘토의 비극이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될 것이다.

 

  역사e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Quaestio, Cogito, Memento" 과거를 끄집어 내지만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이다. 과거 그들이 했던 고민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이며,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오늘에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이것들을 오늘 기억하지 못하면 이 일은 머지 않은 미래에도 또 일어날 것이며,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표지에 기록되어 있는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역사뿐이다"라는 연산군의 말과,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은 우리의 가음에 이 책과 함께 묵직한 무엇인가를 던져주고 간다. 그건 아마도 이 시대를 기억해야할 우리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부식과 일연은 왜 - 삼국사기.삼국유사 엮어 읽기
정출헌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1학년 때로 생각된다. 국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책의 첫페이지를 펴시면서 처음으로 하셨던 이야기가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언급하시면서 역사에 대한 2가지 접근 방법을 말씀하셨다. 벌써 20년도 넘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이유는 그 접근 방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며, 역사에 대한 내 태도를 결정지은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선생님께서 하셨던 이야기는 돌아보면 역사란 무엇인가의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였다. 역사에 대한 접근은 객관적인 접근과 주관적인 접근이 있다. 근대까지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 방법은 객관적인 것으로 역사를 있는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 기본이며, 가장 중요하다는 태도를 취해왔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빼먹지 않기 위하여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하겠다. 당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과 이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 앞에서 역사는 과거 사실의 객관적인 기록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역사의 객관적 기록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는 사람이다.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어떤 사실을 얼마만큼 다룰 것인가, 어느 사건의 앞에 배치할 것인가를 결정함에 따라서 역사는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된다. 새누리당에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10년이 잃어버린 10년이라면 민주당에게는 영광의 10년이다. 이 시각의 차이에 따라서 대북정책이 북한을 품는 햇볕정책이냐, 아니면 퍼주기 정책이냐로 해석이 엇갈린다. 그리고 이렇게 엇갈린 해석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역사를 무엇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인과 관계 속에서 서술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이상 그 역사 서술은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 일정부분 주관을 담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역사란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혹 CCTV처럼 24시간의 내용을 전부 담아서 하나도 잃지 않도록 기록할 수 있다면 몰라도, 현실을 책에 기록한다는 것은 일정부분 생략과 강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며(이 경우 생략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들은 강조되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이는 결국 주관적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역사는 없다. 모든 역사는 주관적이다. 다만 대놓고 주관적이냐 은밀하게 주관적이냐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다."라는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삼국 시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책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서로 다르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기록한 것이냐 비교해서 읽을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는 의구심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생략과 강조를 통하여 저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또한 이 내용들이 어떤 역사적인 맥락에서 기록되었는가를 함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조선왕조실록은 실록 제작의 자료가 되는 사초들을 모아 두었다가 해당 왕이 죽고나면 아들 대에 제작에 들어간다. 선왕의 공과에 대해서 가감없이 기록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이다. 그러나 이것도 초반 태조 실록을 기록할 때에는 선왕의 공과를 가감없이 기록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를 받았다. 태종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아들대가 아닌 손자대에 실록을 편찬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을지도 모른다. 왜 이야기를 하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 시기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는 1145년에, 삼국유사는 1281년에 기록되었다. 이게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하면 신라멸망이 935년,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 936년이기 때문이다. 즉 삼국사기는 후삼국 통일이 완료된지 210년 후에, 삼국유사는 340년 후에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아직도 감이 안온다면 한번 지금부터 30년전인 1983년을 떠올려보자. 기억이 나는가? 그 당시 신문 기사를 오늘 날에 읽어보고 그 기자의 시각에 동의하는가? 아니다. 왜? 그 사건을 당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오늘날의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해석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광해군에 대한 해석이 과거와 오늘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최소 200년에서 최대 3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기록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삼국시대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온전하게 기록하기 보다는 오늘의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 이런 일을 하는가? 역사라는 과거의 사건을 가지고 오늘의 정책과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자신의 포지션에 대한 정당성을 직설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넘지시 과거의 비슷한 일을 통하여 주장하는 것은 상당히 교묘한 작업이기 때문에 아차 싶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 쉽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그냥 읽어도 재미있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의심하고, 저자의 주장을 조심스럽게 발굴해 가면서 읽는 것은 더 재미있는 일이다. 거기에 더하여 현실을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만들어주는 시각을 얻는 부수적인 이익도 있으니 도전해 볼만한 일이 아닌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가 사학자가 아닌 한문학자이기 때문에 역사를 비교하고 해석함에 있어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점 때문에 이 책이 역사 전공자가 아닌 나와 같은 역사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에게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저 아쉽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출퇴근 시간에, 혹은 쉬는 시간에 짬짬이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3-09-1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란 승자으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게 객관적일수 없단 생각이 듭니다.또 기술하는 사람이 아무리 공정하게 쓰려고 해도 그 자신의 시각이 들어가기에 객관적일수 없죠.
게다가 말씀하신것처럼 역사책을 읽어도 읽는 사람의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수 있으니 객관적인 접근은 무리가 아닐까 싶네요.

saint236 2013-09-13 10:56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역사는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초한지 세트 - 전10권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문열이라는 작가를 꽤 좋아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나에게 한국 현대사에게 대해서, 사람의 아들은 내가 믿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삼국지를 삼국지 중 최악의 작품이라고 일컫지만 한국 작가 중에 삼국지를 꽤 재미있게, 그리고 자신의 비평을 곁들이면서(거기에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기록한 이들 중에 대중들에게 이만큼 인지도를 얻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그의 삼국지를 통하여 평역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서 역사 소설이라는 것을 이렇게 읽는 것이 의미가 있는 거이구나 생각을 했다. 중고등학생 때 삼국지를, 조금 더 커서는 사람의 아들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여러번 읽었고, 끝까지 읽는 것이 고문이리만치 힘들었던 선택이라는 책, 그외에도 수호지를 비롯하여 틈틈히 그의 책들을 읽어 왔으니 나를 이문열 키드라고 불러도 그렇게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문열 키드라고 자칭한 것처럼 그의 책은 내 사고 형성에 꽤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선택이라는 책은 그에 대한 나의 긍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퇴색시켰다. 그래도 이문열이 실수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 않았지만, 몇년전 그의 극우적인 발언들은 그가 실수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한가닥 희망만큼은 잃지 않았기에 이문열 책 장례식을 펼치는 이들을 보면서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비판했었다.

 

  그러다가 이문열의 초한지가 나왔고 초한지와 이문열이라는 조합에 한번 사볼까라는 생각으로 품었다. 그러나 반값 할인을 했던 기회를 놓치고 난 후에 정가를 주고 사기 아깝다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막내 동생에게 생일 선물로 받아냈다. 책박스 채로 않고 그대로 두길 몇 주... 20권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두번째로 이 책을 읽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기대감으로 책을 폈다가 괜히 폈다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책의 내용 때문이 아니다. 책은 삼국지에 비해서 진도가 안나가긴 하지만 이문열의 글솜씨가 쇠퇴해서가 아니다. 여전히 이문열이구나, 썩어도 준치구나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만들 정도로 꽤 재미있다. 다만 삼국지에 비해서 스토리 자체가 가지는 힘이 많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괜히라는 후회를 했던 이유는 한가지다. 그의 서문 때문이다. 서문의 내용을 정리하기 보다는 그 대목들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 오해의 소지가 없을 것 같아서 간략하게 옮겨본다.

 

  5년이 넘는 중국사 장정이 드디어 끝났다. 돌이켜 보면 이 장정은 내 문학의 어둡고 쓸쓸했던 한 계절을 어렵게 헤쳐 나온 궤적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내 문학을 조여 오던 묵살(默殺)의 카르텔은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일방적인 단죄의 선고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판 홍위병들이 그 선고의 어설픈 집행자로서 내 문학의 장례식을 되풀이 거행하자 나도 격렬하게 응전하였다. 그러나 득세하는 인터넷 대자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리며 나날이 괴물이 되어 가던 나는 갈수록 더 흉흉해지는 전의(戰意)만큼이나 주체 못할 피로와 무력감에 빠져 들었다.  ....(중략)...

  한입 가득 불평을 물고 앙앙불락 지내는 사이에 한 시대가 가고 새해가 밝았다. 바라노니, 이제 더는 시대의 아이들과 불화하고 싶지 않구나.(이문열의 서문 중에서)

 

  그의 생각이 나와는 다를 수도 있다. 그가 극우에 서 있을 수도 있다. 그의 발언을 가지고 그의 문학적인 성과들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의 문학적인 성과들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면 논리적인 평을 하던지, 그것도 아니면 요즘 힙합 뮤지션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디스를 하던지 하면 될 것을 그의 책들을 모아서 불태우는 것은 도가 지나치지 않았는가 싶다. 이런 견지에서 보자면 이문열의 분노가 이해가 안될 것도 없지만 문제는 그의 홍위병 발언이 자기의 책을 불태운 이들에 대한 분노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부모에게 받은 소중한 머리칼을 자르느니 차라리 내 목을 베라."는 말이 단순히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겠다는 멋쟁이의 고집이 아니듯이 그의 홍위병 발언은 자기 문학적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다. 그의 발언은 이것과는 상관없는 정치적인 발언이다. 이미 홍위병 발언은 그 전에 있었고, 전라도 발언 또한 같은 맥락에서 여러번 있었다. 이 사실을 간과하면 일의 전후가 뒤집어지게 되며 이문열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일의 전후를 뒤바꾸어서 자기를 억울한 희생양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과 다투지 않고 홀로 독야청청하는 탈속한 사람으로 만드는 기술을 보면 이 사람의 글솜씨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의 서문에 대한 이야기는 더 할말이 많지만 이 정도에서 줄이고, 왜 하필 고전, 그 중에서도 초한지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뜬금없다 여기지 말라. 모든 일에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가 있고, 그 의도라는 것이 글솜씨가 좋은 사람일수록 더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서 술렁술렁 넘어가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고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초한지는 이미 말했듯이 삼국지에 비해서 재미가 없다. 삼국지가 수많은 등장인물과 전략과 전술, 계략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면 초한지는 무협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항우라는 걸출한 절대 지존이 등장한다. 그는 초반부터 넘사벽이다. 그의 주변에는 기막히 스펙을 자랑하는 그의 부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런데 그의 반대편에 출신도 미천하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 하층민이 등장한다. 그가 어울리는 친구들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개장수, 곡소리꾼, 건달, 하급관리 등등 뛰어난 능력도 든든한 배경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넘사벽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의 주인이 된다. 아마도 이문열은 이런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 시대에 우리를 이끌어갈 영웅을 간절히 소원했는지도 모른다. 일반 시민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현실 앞에서 이건 아니라면서 우리를 이끌어줄 영웅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문열의 기다링 때문일까? 그 영웅이 등장했다. 물론 그 영웅이 진짜 영웅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만 일단 이것은 뒤로 젖혀두고 이문열이 기다리던 영웅의 행적에 대해서 살펴보고 싶다. 아마도 이문열은 항우형보다는 유방형을, 가능하면 항우형과 유방형을 섞은 타입의 영웅이었으면 생각했을 것이다. 이문열은 보수의 아이콘이 되어서 모든 보수 세력을 아우르고 진보진영과 한판의 싸움을 벌리고 최후에 권력의 승자가 되는 영웅을 기다렸을 것이다. 물론 가능하면 이 영웅의 출신이 운동권도 아니고, 장돌뱅이도 아니고 둘째가면 서러워할 그런 가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문열의 기다림이 결실을 맺었던 것일까? 이에 부합하는 한 인물이 등장했고 권력 쟁투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겉보기는 이문열의 바람대로 된 것 같지만 그 실상은 이문열이 제일 꺼려하던 형태로 나타났다. 유방을 베이스로 하여 항우의 스펙이 뒤덮인 것이 아니라, 항우를 베이스로 하여 유방의 교활함이 가미된 것이다. 유방의 교활함과 권력에의 의지라는 것도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하고 인재를 받아들이고, 몇번을 실패해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전제가 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비교할 수 없는 항우와 유방의 싸움에서 유방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외연의 확장 능력 때문임을 기억한다면 이것이 지도자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에게, 한 진영을 이끌고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람들에게 맹박이, 쥐박이, MB라는 명칭으로 조롱을 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소통의 부재가 아닌가? 명박 산성이라는 컨테이너 차폐물이 그의 소통 방식의 상징이 아니던가?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많이 거론했지만 수첩공주라는 그의 별명이 의미하듯이 그 또한 소통에 취약하다. 페북을 하고, 여러가지 SNS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소통을 하는 것은 아니다. 소통이란 다른 이의 말을 듣고 반응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타작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소통이라고 한다면 항우는 소통의 달인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자기의 생각을 타자에게 전달하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초한지를 읽으면서 여러모로 생각할 만한 사안들이 많았다. 이게 고전이 가지는 힘인가 보다. 아마도 이것이 이문열이 고전으로 피했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쉬운 것은 홍위병 운운하면서 자신의 정치적인 스탠스와 변명을 저자의 서문에 실어 놨다는 것이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꼰대 정신으로 똘똘 뭉쳐 나는 시대의 피해자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가 정말로 작가의 자존심이 있다면 초한지 서문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나는 시대를 잘못만난 피해자다 주장할 것이 아니라 작가다운 다른 방법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차라리 안도현처럼 절필 선언이라도 했다면 논란은 있겠지만 덜 구차하지 않았을까?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서문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변신은 김지하의 변신만큼이나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3-09-07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문열 초기작들이 좋습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등등..근데, 진짜 <아가>부터는 뭐랄까, 욕먹어도 뭐라 할말이 없을 정도..이후 저도 이문열 작품에서 멀어져갔지만, 이문열은 확실히 작가로서의 아우라는 있습니다. 요즘 신인작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죠. 그런 포스를 가진 사람이 정치적 행보, 것두 우리나라 보수의 기수로서 발언하는 걸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말씀하신 논의들에 공감 만빵~~이구요, 단지 저는 이문열의 초한지는 아직 읽지 않아서, 재밌는지 살짝 여쭤봅니다.^^

saint236 2013-09-07 15:58   좋아요 0 | URL
이문열인지라 기본은 합니다. 수호지 정도의 레벨은 되는 것 같구요. 다만 삼국지보다 처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같은 평역이긴 하지만, 레벨차이가 나기는 하네요.

마태우스 2013-09-07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욕을 많이 했지만, 젊은 날의 상당부분을 그에게 빚진 것도 맞죠. 그는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였어요. 그 이후의 행적으로 인해 존경심은 싸그리 없어졌지만요. 그가 정말 이해 안되는 게요, 몇백만부의 책을 판 사람이 시대와의 불화 이러고 앉았으면 몇천부 판 작가는 시대의 저주, 뭐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건지요.

saint236 2013-09-08 20:21   좋아요 0 | URL
몇백만부의 책을 팔았기 때문에 자신이 특별하다 생각한게 문제죠

transient-guest 2013-09-11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방을 베이스로 하여 항우의 스펙이 뒤덮인 것이 아니라, 항우를 베이스로 하여 유방의 교활함이 가미된 것이다"는 명문인 것 같습니다.
이문열은 어릴 때 참 좋아했었죠. 그의 독단과 독선이 시원하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고, 나름대로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그의 비판적인 논리도 좋아했었죠. 그래서 한때, 이문열은 좌/우 모두에게서 환영받지 못하는, 솔직한 비판을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삐진' 그는, 점점 더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다가 이제는 돌아올 수도 없을만큼 그 사람 자체가 바뀐 것 같습니다. 물론 글에서 교묘하게 자기 집안과 자기를 포장하는 것은 전부터 좀 싫었지요.ㅎㅎ 아마도 '변경'을 전후로 해서, 필력이 떨어지고, 이 시점에서 진보를 비판하는 것으로 부족한 글솜씨를 때워가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나저나 무려 '마태우스'님이 댓글을 남기는 것을 보니 saint님이 마구 존경스러워집니다.ㅎㅎ

saint236 2013-09-11 11:0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문열씨는 누구라도 댓글을 달고 싶어 할만한 사람입니다.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국사 시간에 실학에 대해서 배웠을 것이다. 이론을 가지고 박터지게 싸우는 성리학에 반발하여 실사구시라는 명목하에 실생활과 밀접한 내용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학파라고 말이다. 이 학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즈음에 태동하여 정조 시대에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세도 정치 때문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가 조선 말에 젊은 개혁가들을 통하여 새롭게 부상하게 되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수면 밑에서 실학은 꾸준하게 연구되었으며, 이 학문의 사조가 조선 개항시에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그러니 굳이 이름도 어렵고 용어도 생소한 외국 경제학자들을 끌어들이지 말고, 그들 때문에 주눅들지도 말 것이며, 한국의 실학자들(저자는 이들을 경제학자라 지칭한다.)을 연구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라. 이게 320페이지의 분량으로 13명의 경제학자들의 삶을 살펴본 저자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내개 글의 서두에서 이렇게 책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고 들어간다는 것은 내가 꽤나 이 책에 대해서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는 표시이다. 물론 한번은 읽어보면 좋은 책이라는데는 동의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후하게도 이 책에 별점을 세개를 주었다. 13인의 실학자들이 이런 학문적인 흐름 속에서 이러한 것들을 연구했구나 정도 아는 데에는 꽤나 도움이 된다. 더군다나 생소했던 여성 실학자에 대한 부분은 꽤나 참신하다. 그렇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그마치 "조선을 구한"이라는 타이틀에는 동의할 수 없다. 바로 이 부분이 내가 이 책을 삐딱하니 바라보는 이유이다.

 

  실학! 이 글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좋은 것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정약용을, 어떤 이는 조선의 근대화를, 어떤 이는 허생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난 실패를 떠올린다.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난 실학을 실패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의 방향이 잘못되어서 실패했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 실사구시는 당시 조선이 나아갈 방향은 맞다. 다만 왕조국가(입헌군주제가 아니라)에서 이념이 아닌 실리를 추구하는 학문이 결실을 맺고 정착되기 위해서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바로 이 부분에서 실학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의 세종이라 불리는 정조의 시대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떤 이들은 영정조를 조선 후기 중흥의 대명사로 지칭하지만 난 이덕일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진정한 중흥기는 영정조시기가 아니라 정조의 시기라고 본다. 영조는 터무니 없이 왕위에 오래 앉아 있으면서 선왕들과 마찬가지로 이념 투쟁으로 그의 치세를 소진하지 않았던가?

 

  맹자가 왕도론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하늘의 때는 땅의 이득만 못하고, 땅의 이득은 인화만 못하다." 그렇다 실학이 실패한 이유는 실학이 요구되는 시대적인 요청이 있었고, 여러가지를 연구할만한 외적인 여건이 구비되어 있지만 단 한가지 이들이 뜻을 자유롭게 펼 수 있도록 지배층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데 있다. 이들 또한 정조 사후에 복잡한 정치 속에서 남인이 숙청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지 않았던가? 오랜 세월이 흘러 조선이 망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된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들을 재조명하게 된 것이 솔직하게 실학의 현주소가 아니던가?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실학이라는 이름은 들었고, 유명한 학자들의 이름은 시험에 나와서 공부했지만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연구했는지, 그들의 연구서는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더군다나 그들의 학문을 깊이 연구해서 현대에 경제학으로 되살린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게다가 설령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멜서스, 아담 스미스, 칼 맑스를 지껄이기도 힘든 오늘날 이러한 학문적인 성과가 얼마나 대중들에게 읽혀질 것인가? 여러가지를 고려한다면 실학은 새로운 시도였지만, 안타깝게 꽃을 피우지 못한 학문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감히 조선을 구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도 조선을 구했다는 말은 과하다. 차라리 부제로 씌여진 18세기 조선 경제학자들의 부국론이 이 책의 제목으로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 역사를 즐겨 공부하는 이들 중에 이상한 사람들을 본다. 대표적인 예로 환빠를 들 수 있는데 세상의 모든 민족과 역사가 한민족을 통해서 시작되었다는, 심지어는 유태교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는 우리나라의 고대 설화 속에 등장하는 여와에서 파생되었다는 식의 억지 주장은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우려는 금치 못하게 된다. 최초의 금속 활자가 구텐베르그보다 훨씬 더 전에 발명되었다는 것을 가르치며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을 강조하지만 그것가지고 뭐했는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지 않는가?

 

  역사는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한다. 어느 한면만 바라보고서 내 입맛을 고집하면 NLL 발췌 발언을 일삼은 모모모 당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저자에게 솔직하게 묻고 싶다. 정말 다각적인 면에서 판단해서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인가? 혹 사람들의 기묘한 애국심을 자극해서 책을 팔기 위해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닌가? 꽤 괜찮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에 열받아서 열대야가 한창인 이밤에 뜨거운 방에서 끄적거려 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3-07-31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왕도론의 천-지-인 등급이 사실 현실보다는 이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천운이 없으면 무엇인가 큰 일을 이루는 것이 매우 어렵지요. 오죽하면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고 하겠습니까. 다만, 천운은 타고 나는 것이기에, 지나 인을 얻으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많은 것을 이룰 수는 있겠지요. 큰 부자도 그렇고, 큰 인물은 하늘이 낸다고 하잖아요.

위에서 말씀하신 내용에 크게 공감합니다. 수정주의적인 역사인식이 사실 참 위험한 것이 있어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역사책을 쓰면 또, 결론을 정해놓고, 자료를 취사선택하여 왜곡하게 되는 경우도 (작가의 본의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발생할 소지가 높다고 봅니다. 그저 하나의 시도로써, 또는 심하게 기울어진 축을 땡겨오는 방편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조금 잠잠해졌지만, 환빠의 시작도 그러했지요.

saint236 2013-07-31 21:53   좋아요 0 | URL
환빠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요...역사는 공부할수록 어렵네요 팩트를 근거로 합리적 해석을 내린다는 것이요. 그래서 과거에 식자층들이 그렇게 역사를 살폈는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