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들 로드 - 3천 년을 살아남은 기묘한 음식, 국수의 길을 따라가다
이욱정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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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잔치 국수, 파스타, 우동, 메밀 소바, 막국수!

 

  잔치집에 가면 뷔페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음식이다. 이 음식들의 특징은 국수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먹기가 매우 쉽다는 것이다. 맛또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평타는 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국수는 과연 어디에서 먼저 시작했으며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잔치국수와 막국수는 한국 음식이고, 파스타는 이탈리아 음식이고, 우동과 메밀 소바는 일본 음식이다. 짜장면과 짬뽕은 중국음식이며, 신장을 비롯한 중앙 아시아에는 라그만이라는 국수가 있다. 이 중에서 도대체 어느 민족이 어떤 이유로 국수를 먹기 시작한 것일까? 그리고 한국에서는 밀가루는 꽤나 귀한 음식 재료인데(예전 대장금에서 아주 귀한 음식 재료로 소개되었던 적이 있음을 기억해보라.) 언제부터 국수를 먹기 시작했을까?

 

  이 책은 누들(국수)이라는 음식을 문명사적으로 접근해 가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는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꽤 자세하고 재미있게 기록하고 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중국에서 국수는 자국의 음식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조작의 냄새가 다분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초의 국수 유물인 신장 지역의 국수 유물을 놓고도 그걸 몰라서 5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고 그 유물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발굴 후 얼마되지 않아서 사그라져 버렸다는 웃긴 변명을 늘어 놓고 있는 모습은 꽤나 재미있어서 이번 인사 청문회를 보는 듯 했다.

 

  지난 열흘간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낯선 중앙 아시아에 여행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구 소련 연방에서 해체된 나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다.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거의 알려진바가 없는 나라였지만 어찌어찌하여 방문하게 되었다. 가볍게 읽을 책이라 생각하고 가지고간 책은 내게 꽤나 흥미로운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책이 말하는 내용을 책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매일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흔하게 먹는 음식 가운데 라그만이라는 것이 있다. 볶음 짬뽕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나는 이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 음식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렇게 며칠을 지낸 후 7시간을 차를 타고 가면서 꺼내든 책에는 놀랍게도 신장에서 발견된 국수 유물과 국수 음식의 종류로 내가 방금전까지 먹었던 라그만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라그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먹었던 음식이고, 조리법도 오랜 시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을 접하면서 책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읽고 체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차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이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계속 이동하면 파스타의 나라 이탈리아가 있고,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면 라그만의 신장, 다양한 면요리의 중국을 거쳐, 막국수와 잔치국수의 한국, 우동의 일본에 까지 이르게 된다. 시대적으로 보면 라그만이라는 오랫된 음식에서부터 인스턴트 라면이라는 초현대식 음식까지 이르게 되는데 우리가 매일 접하는 한 그릇의 음식 속에, 내가 방금전까지 먹고 즐겼던 그 음식 속에 인류 문명의 태동과 접촉, 변화와 발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국수 한 그릇에 담겨 있는 인류의 문명에 감탄하고, 도보로 이동하고, 차를 타고 이동하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면서 국수가 내가 걸은 그 길을 걸어서 전파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경이롭고, 꽤나 재미있다. 국수를 조리해 먹던 사람들이 이 중앙 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했을 상상을 하면서 마치 내가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된듯한 느낌을 갖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독서의 즐거움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다큐멘터리를 책을 만든 것이라 그런지 삽입된 그림과 사진들이 선명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진에 대한 설명이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보강이 된다면 이 책은 젊은 친구들도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화사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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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곰과 안경
곤노 히토미 글, 다카스 가즈미 그림,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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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큰 딸 진이가 둘째 현준이가 어린이 집에서 책을 빌려온다. 같이 놀아 주는 시간이 없어서 가능하면 아이들이 빌려오는 책은 내가 읽어 주려고 한다. 같이 놀아 주지 않고 책만 읽어 준다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놀라고 아내는 내게 잔소리를 늘어 놓지만 아이들이 빌려온 책만큼은 읽어주려 애쓴다.

 

  큰 딸 진이가 3살인가 4살 때 빌더 베어에 가서 비싼 돈을 들여서 곰 인형을 사줬다. 혹 아이들을 데리고 곰 인형을 사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빌더 베어를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비싸긴 하지만 곰 인형을 그냥 사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고르게 하고, 그 인형에게 심장도 넣어주고, 탯줄을 끊듯이 봉제를 하고 남은 실을 끊는 시간까지 준다. 아이들에게 여러가지 인형을 사주었지만 진이는 아직까지도 그 곰 인형을 무척이나 아낀다. 매일 냄새를 맡으면서 잠자리에 든다. 곰 인형 이름은 내가 지어줬는데 "웅이"다.

 

  그렇게 웅이를 끼고 사는 진이라서 아기곰이 나오는 책만 보면 좋아한다. 웅이라고 하면서 빌려온 것이다. 그렇게 빌려온 책을 읽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아기곰은 매일 안경을 쓰고 생활한다. 그 안경은 할머니의 안경인데 할머니가 죽고 난 이후에 그 안경을 쓰고 있으면 할머니를 잃은 슬픔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안경은 돋보기인지라 세상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먹고 생활하는 것도 어렵다. 매일 할머니와의 추억에 빠져 슬픔을 잊고 사는데 그런 아기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친구가 있다. 아기 토끼다. 매일 아기곰을 위해서 도토리를 집 앞에 두고 가지만 아기곰은 안경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기곰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쓰러진다. 아기 토끼가 아기곰을 위해서 도토리 스프를 만들어서 먹인다. 아기곰이 기운을 차리고 밖으로 나오다가 미끄러져서 안경이 벗겨진다. 멀리 날아간 안경은 나무에 부딪혀 깨지게 되고 아기곰은 한참을 운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런 아기곰을 바라보는 아기 토끼도 슬퍼서 함께 운다. 울음소리를 들은 아기곰은 자기를 위해 울고 있는 아기 토끼를 발견한다. 그가 지금까지 자기 옆에 있어 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아기곰은 아기 토끼에게 다가가 지금까지 네가 내 옆에 있었구나라면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

 

  아이 동화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눈 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도 한참 울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순간에 멈추어 현실을 포기하려는 아기곰과 그런 아기곰을 안타깝게 여기고 함께 울어주는 아기 토끼의 모습은 내게 사랑과 위로, 공감의 의미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주중에 시사인을 받았다. 그 안에 노란 봉투가 들어 있었다. 지난번 노란 봉투를 보내지 못해서 미안해 하던 내게 노란봉투는 기다리던 것이다. 이번에는 기필고 43,000원을 넣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번 봉투는 다른 내용물을 넣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보내는 위로의 손길을 넣어달라는 것이다. 세월호가 이렇게 묻히지 않도록 서명을 담아서 보내달라는 것이다. 20명의 서명을 담아서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난 최소한 우리 가족의 서명만이라도 넣어서 보내고 싶다. 그것이 아기 토끼가 아기곰에게 건네준 작은 도토리 스프와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들은 4월의 그 날에 시간이 멈추어져 있다. 아이들의 사진을 하염없이 보고 또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내일로 나가는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울까? 팽목항에 가져다 놓은 신발을 보면서, 메이커 옷들을 보면서, 라면이 빠져버린 식탁을 보면서 부모들의 마음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죽을만큼 아프다. 그런데 그들을 향하여 모 의원은 유가족은 그냥 조용히 있으라고 호통을 친다. 어느 벌레들은 시체 장사한다고 한다. 벌레의 도를 넘어서 무뇌충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가지고 성적인 이야기를 지껄이면서 자신들의 현실에 대한 진통제로 삼는다. 공권력은 안경을 벗겨 주기 보다는 아예 안경을 눈에 이식해 버리려고 한다.

 

  그런 그들이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망언을 내뱉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찾을까?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아이들을 죽이더니 이제는 자신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호통치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찾을까? 어디에도 희망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죽었으면 싶을지도 모른다. 비단 그들만 그렇겠는가? 세상에는 아기곰들이 너무 많다. 쌍차도, 재능교욱도, 콜텍도, 용산 참사 희생자들도, 성수대교 희생자들도, 삼풍백화점 희생자들도, 월드컵의 희생자들도, 그리고 우리도...세상에는 아기곰들이 널려 있다. 누가 그들의 눈에서 안경을 벗겨줄 것인가? 누가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함께 아파하고 울어줄 것인가? 누가 아기 토끼의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

 

  짧은 아이들의 동화책이지만 내겐 너무 많은 것들을 한번에 던져준 책이다. 이런 책을 빌려온 진이에게 너무나 고맙고, 진이가 아기 토끼처럼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자라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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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7-06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는 아이와 그림책을 들고 가까운 공원이나 놀이터에 가셔서
그림책도 함께 읽고 놀이터에서도 함께 놀아 보셔요.
두 가지 다 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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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한번 봤던 그림일 것이다. 누가 했는지 기가 막히게 잘 그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공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그림이 생각났다. 오늘날 20대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아마도 나랑은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그저 씁쓸해졌다. 이 그림이 공감을 받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공감의 능력!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동감은 아니더라도 공감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성품이고, 이것은 이 사회를 살만하게 만들고,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리프킨이 공감의 시대라는 장문의 책을 냈겠는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글자를 꼽자면 소통일 것이다. 명박 산성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불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한다. 불통이라는 말의 의미를 깊이 파고든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공감의 부재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정치인들이 소통을 말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불통을 말했던 것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 책은 더 나쁜 상황에 대해서 말한다. 불통, 즉 공감의 부재가 정치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에 보편적으로 퍼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지금까지 자기가 만났던 젊은이들의 삶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사회 정의에 대해서 말하면서 같이 데모에 참석했던 이들도 비정규직 문제라든지, 월세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약자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나름대로 그 문제에 대한 원인도 분석하고 있다. 자기 계발의 논리에 경도되어 있음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고개를 끄덕였던지 아직도 고개가 뻐근하다.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젊은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열심히 스펙을 쌓는 이들도 있고, 꿈을 가지고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마냥 기특하지만은 않다. 저자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열심히 스펙을 쌓고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한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고민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말랑말랑하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나도 과거 이러한 벽에 부딪혔었고, 그래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요즘 친구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자기를 더 채찍질한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자위한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야! 그래봐야 소용없어. 너희들이 도무지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해. 그 부분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너희들이 노력할수록 더 힘들 뿐이야!"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한다. 대신 "열심히 해봐. 언젠가는 누가 알아주겠지!"라는 마음에도 없는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돌아서서 안쓰러움과 미안함, 답답함에 고개를 숙인다.

 

  이 책에서도 많이 말했던 책이 있다. 천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이다. 나도 이 책을 몇번 읽었고, 선물도 많이 했지만 그러면서도 "꼰대 정신에 투철한 책"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당장 아픈데 이 순간만 넘기면 괜찮아진다는 공허한 위로가 얼마나 그 친구들에게 공감이 될까?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꼰대짓 같아서 미안하다.

 

  맑스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자계서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하고 싶다. 특별히 20대의 아편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난도, 이지성, 혜민 등등의 글을 보면서 참 쉽다는 생각, 그리고 옐로우 페이퍼보다 더 해롭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렇게 자계서를 읽고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에 투철한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그냥 답답해서 적다보니 끄적거리는 것도 만만치 않다. 두서도 없다. 그러면서도 끄적거리는 이유는 젊은이들이 공감의 능력을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그들에게는 꼰대짓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을 더 이상 괴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더 답답할 것 같아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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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사회 -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 팀 지음, 김범수 옮김 / 용오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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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my opinion, all men are island.

 

  휴 그랜트를 꽤나 좋아하거나, 크리스마스에 잔잔한 로맨틱 코미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꽤나 친숙한 대사이리라. 본조비의 "No man is an island"라는 말을 비웃으면서 시작하는 독신남의 독백은 이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된다. 섬으로 존재하던 사람이 결국은 섬이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바다 밑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다. "섬"으로서 존재하던 사람이 "사회" 속으로 편입되어 들어가는 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잔잔한 교훈이다.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흐름도 이런 것이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우연한 계기를 통하여 사회에 편입하게 되고, 고독한 상태에서 벗어나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 과정을 살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힘이 되고, 삶에 대한 큰 위안이 된다. 그렇지만 이 책은 세상이 그렇게 말랑말랑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음을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 책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 책은 NHK의 기획 다큐멘터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어어서 1인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인간관계로부터 축출되고, 혼자 죽어가는 지를 보여준다. 고향을 더나서 도시 속에서 고독하게 살다가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고독하게 죽어간다. 이런 경우는 대개 죽고나서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발견된다. 심한 경우는 시신이 상당히 부패가 진행된 뒤에 발견되기도 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사라져가고, 정년 퇴직, 명예 퇴직이라는 온갖 합법적인 제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혹은 아직 제도가운데 머문다고 할지라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서 스스로를 섬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 섬들은 홀로 고군분투하다가 외로운 섬으로 인생을 마무리한다.

 

  마침 이 책을 읽을 때가 한참 바쁘던 시기였다. 매일 집에 들어가도 아내는 아이들과 자고 있고, 혹은 자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잠시 후에 잠자리에 들면 내 옆이 아닌 아이들 옆으로 간다.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서 혼자 잠자리에 들 때의 기분은 정말로 "고독"하다는 것이다. 한번은 아내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말했더니 이해해달라,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산다고 한다. 아내의 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운한 것은 서운한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나도 이런 고독을 느끼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이 느꼈을 고독이라는 것이 얼마만한 무게로 이들의 마음을 짓눌렀을지는 약간이나마 상상이 된다.

 

  이 책은 일본의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상태로 몇십년이 흐르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멸종해 버릴 것이라는 우스개소리는 공포를 조장하는 쓸데 없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 된지 오래다.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집이 없고, 자동차가 없고, 결혼이 없는 세대라는 말이다. 혹은 초식남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연애를 스스로 포기해 버린 세대가 오늘의 젊은이들이며, 오늘도 구직자로 답답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이미 은퇴해버린, 혹은 은퇴가 몇년 앞으로 다가온 젊은이들의 부모 세대들이다. 출산율틀 높이기 위해 현상금을 건다면서 온갖 난리 법썩을 떨지만 젊은이들은 좀체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가지 해왔던 대로 고독을 강요받으면서, 섬으로 존재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고독사는 점점 늘어만 간다. 부모의 조의금을 받고 시신은 남겨둔채 떠나버린 자식들의 몰상식과 비도덕적인 행위를 지탄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누구에게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오히려 이 사람들은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장례식은 가족들이 치러줬으니 말이다. 무연고자라는 한 어 속에 오늘도 많은 이들이 소리없이 고독하게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 시신은 안식을 찾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떠돈다.

 

  스스로 가족을 떠나는 출가가 아니라 고독을 강요받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 그저 한 숨만이 나온다. 다만 이 책의 마지막 주인공이 살아갔던 삶의 궤적이 작은 위안과 희망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표류하는 김씨들에게 어떻게 하면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것인가? 더 늦기 전에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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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 ‘동굴’ 속의 권력 ‘더러운 전쟁’
김재홍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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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대통령 중에 누가 최악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정치적인 견해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 누가 가장 영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는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업없다.

 

  "박! 정! 희!"

 

  멀리갈 것도 없다. 몇년 전 이정희 의원이 대선후보로 나왔던 시절 박근혜 당시 후보를 바라보면서 그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라는 한 마디가 대선판을 얼마나 크게 흔들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 이름 석자가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그의 이름이 가지는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글이 있다.

 

  혹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네이버에 "다카키 마사오의 뜻"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블로그 가운데 가장 위에 아주 재미있는 글이 뜬다. "박정희 다카키 마사오의 숨은 뜻"이라는 글이다. 혹 시간이 안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아주 친절하게 링크를 건다. 링크가 안되면 주소를 복사해서 넣으면 쉽게 그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kilnomu?Redirect=Log&logNo=60203552260)

 

  내용인즉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 다카키 마사오는 고목정옹(高木正雄)으로 고령박씨인 자신의 이름을 지킨다는 뜻, 즉 일본의 창씨개명에 반대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면서 김대중의 일본식 이름과 비교하면서 박정희는 역시 민족의 영웅이다, 뚝심이 있다, 당시 박정희만 창씨 개명했냐는 아주 복잡한 의미를 담긴 짧은 글을 남기고 있다. 박정희라는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 영향력이 있는지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친일청산의 문제를 단 몇줄로 해결해 버리냐는 말이다. 그 이름 앞에 서면 왜 그렇게 작아지는 사람들이 많은지? 박정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를 민족의 영웅, 혹은 먹고 살게 해준 사람이라고 말한다. 최소한 공부를 하고나서 그렇게 말한다면 이해는 가겠는데, 전혀 알지도 못하고, 주워 들은 풍월로 그렇게 확신한다는 것은 무지한 것인지 순수한 것인지, 무식한 것인지 용감한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일명 박정희 통으로 불리는 몇 사람 가운데 하나다. 박정희에 대해서 야부리를 풀 시간만 준다면 3박 4일 동안 쉬지않고 떠들어댈만한 내공이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알싫에서 김재홍과 정운현은 몇 회에 걸쳐서 쉬지 않고 떠들어댄 전력이 있는데(그 전력은 박정희소백과 사전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 팟방들이 대본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오늘은 뭐할까?"라면서 이야기하다가 떠들어댄 것이라는 후문이 있다. 그런 실력자가 박정희에 대해서 아주 솔직하게 까발렸다. 그것도 감정을 싫어서 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내용들을 토대로 해서 말이다.

 

  박정희의 야망, 변신, 도덕적인 타락, 권력욕, 용인술 등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치인 박정희는 물론, 개인 박정희까지 점검해 본다. 그 과정을 통하여 저자는 박정희라는 신화와 우상을 깨뜨리고 역사적인 현실을 직시하라고 우리에게 주문한다. 반인반신으로 승격된 박정희를 다시 이 땅으로 끌어내리는 과정을 통하여 도대체 누가 이러한 일들을 획책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도대체 누구에 의해서 어떤 과정으로 박정희라는 인간이 신의 반열에 올라갔는지, 민족의 영웅이 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창조경제를 말하고, 비와 구름을 헤치고 햇빛을 볼고오신 박근혜 대통령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배후가 아닐까 의심만 가져본다. 절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실 분이 아니다. 그냥 추측이다. 아는 사람은 안다. 느낌 아니까...

 

  김재홍은 분명하게 묻는다. "누가 박정희를 용서 했는가?" 그리고 분명하게 대답한다. "나는 안했어!"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대답한다. "나도 아직 용서 안했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용서를 하든 안하든 일단 뒤로 미루어 두고 공부나 제대로 해보자면서 몇자 끄적여 본다.

 

PS.책을 읽다보니 화려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오늘날 신문을 장식하는 여러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역시 "왕의 귀환"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법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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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4-06 0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용서하고 자시고 할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해요.

배고픔을 잊게 해 주었다고 해야 옳지 싶어요.
'잊게' 말입지요. 배고픔을 '없이' 하지 않고.

새마을운동을 앞세워 시골집을 죄다 슬레트지붕으로 바꾸었고
흙길을 시멘트길로 바꾼 영향이
오늘날 아이들을 병원신세 지게 만든 지름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해요.
이 한 가지 때문은 아니지만 아주 크지요.
요새는 시골에서 '석면(슬레트) 철거'를 군청과 도청에서 예산을 들여서 하는데,
이뿐만 아니라, 새마을운동 때문에 농약과 화학비료가 퍼졌고,
농약과 화학비료와 석면과 시멘트가 골고루 어우러져서
현대 질병이 생기고, 병원 지어서 약 팔고...
이런 경제성장이지요...

saint236 2014-04-06 23:37   좋아요 1 | URL
후대를 삥뜯었지요..

transient-guest 2014-04-10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진국 병이죠. 박정희-박근혜 계보와 그 당시 정치인들의 귀환은 부시-부시 계보와 레이건 시절부터 정부에 붙어먹던 놈들이 늙어서 다시 귀환한 것과 여러모로 비슷한데, 여기에 우리 국민 특유의 '정'과 '용서' 그리고 나쁜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된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이 좀 다르지만요.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나쁜건 다 박정희 때 만들어졌다고도 봐요.

saint236 2014-04-10 19:19   좋아요 1 | URL
매일 치이기만 해서일까요? 용서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덮어주는 것이 용서는 아닌데

transient-guest 2014-04-11 00:59   좋아요 1 | URL
용서했다고 자위하는 것 같아요. 일진한테 맞고 빵셔틀 하면서 달리 해결이 안되니까 속으로 '난 친구를 위해 빵을 사주는거야'라면서 정당화를 하는 심리와 같는게 아닐까요?

saint236 2014-04-11 11:52   좋아요 1 | URL
그렇죠.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뭐 이런...서글픈 처세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