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하여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 펭귄클래식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안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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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아름답다. 체호프 식으로! 

  체호프 삼부작을 완성한 긴카스의 평가란다. 책을 다 읽고 뒤부분의 작품 해설을 읽다가 발견한 부분인데, 어쩜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하는지? 이 한 문장에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끝나버린다. 여기에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 것인가? 사족같아서 쓰기가 망설여지지만 이 책이 특별히 cyrus님에게 받은 책인지라,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책에 대한 감상이라도 올려 놓는 것이 선물해 주신 분에 대한 예의 같아서 간단하게나마 적어본다. 

  굴이라는 글로 시작하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으로 끝이 나는 이 책의 지은이는 체호프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러시아 문학이라고는 도스트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이 전부인지라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톨스토이와 도스트예프스키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두 문호의 작품은 무엇인가 상당히 교훈적이고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얻은 것 같지만 그냥 즐기기에는 무거운 감이 있다. 죄와 벌을 읽고 그냥 재미있다고 넘어갈 수 있겠는가, 아니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혹은 톨스토이 단편선을 읽고 그냥 재미있게 읽었다고 넘어갈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것들을 읽는 순간부터 머리를 팽팽 돌기 시작한다. "러시아 문학은 왠지 읽기 난해하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게 만드는 철학서에 가까운 책이다." 내가 러시아 문학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편견이 이것이다. 그렇지만 체호프의 책은 상당히 다르다. 그냥 읽는 것이 즐겁다. 재미있다. 들고 다니면서 어디에서나 읽어도 편안하다. 그러면서도 천박하지 않다. 가볍지도 않다. 

  체호프의 성장 배경이 그래서인지 이 책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굴이라는 첫 소설부터 시작해서 사회배경이라든지, 경제적인 부분이라든지, 사람들의 생각이라든지 패배주의도 나타나고, 굶주리기도 하고, 돈이라는 천박한 것들에 의하여 휘둘리기도 한다. 부인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장부를 펴서 손해본 돈을 헤아려 볼 정도로 몰인정하기도 하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이 불륜이요, 평생 상자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도 있다. 체호프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이렇게 우울하다. 그렇지만 이 우울함 때문에 눈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그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된다. 긴타스의 말처럼 체호프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 버리기 연습이다.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갖기 위해서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묘하게도 바로 다음에 읽은 이 책에서는 마음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보다는 그냥 자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기괴스럽고, 때로는 우습기도 하고, 때로는 벽창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체호프식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다.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 문학이란 굳이 계몽적이지 않아도 좋고, 억지스럽지 않아도 좋다. 그냥 삶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여도 좋다. 상자 속에 갇혀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 시켜도 좋다. 자기 욕심에 빠져서 인생을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도 좋다. 그것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며,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이게 바로 체호프식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러시아 문학에 대한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 cyrus님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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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09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을 여기서 쉐어하셨군요.
새로이 등극하신 러시아 문학 전도사에게 저도 홀라당 넘어가봐야겠는걸요~^^

saint236 2011-04-09 13:04   좋아요 0 | URL
원래는 못받는 것인데(2등이었거든요) 그런데 cyrus님께서 한권을 주문해 주셨더라고요.

cyrus 2011-04-11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서야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재미있는 내용의 단편 몇 편이 있어서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도 이 책 리뷰 써야하는데,,
쓸 시간이 없네요,, -_-;;

saint236 2011-04-11 12:15   좋아요 0 | URL
하하하...리뷰 기다리겠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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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인가 교회 청년을 데리고 반디에 갔다. 조만간 군대에 가야하는 21살짜리 머슴아인지라 무엇인가 해 주고 싶었다.

  "돈이 없어서 여러권 사줄 수는 없고 원하는 것 하나만 골라라." 

  머뭇거리면서 책을 고르는 그 녀석을 보면서 오랫만에 트윗을 했다. 이매지님에게 어느 책이 좋을지 추천해달라는 긴급 트윗을 했더니 한참 뒤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도 좋다는 답변이 왔다. 이미 그 녀석은 다른 책을 고른 이후였다. 그 후 2주가 지났을까? 이번에는 22살짜리 여자 청년으로부터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입에 실패하고 다시 한 해를 힘들게 보내야 하는 그 녀석이 이야기 끝에 잠시 꺼낸 책이 이 책이다. 혹 나에게 이 책을 가지고 있냐고, 있으면 빌려달라는 것이다.(요 몇년 교회에서 사서 노릇을 하고 있다.) 아쉽게도 그 책은 없다고 돌아서는데 마음 한켠이 아리더라. 힘들어서 찾아왔고, 올해도 힘들어할 녀석인데 그까짓 책이 뭐라고. 결국 이렇게 저렇게 둘러쳐서 한권 구입했다. 순전히 그녀석 때문에 구입한 거다. 그런데 내가 읽어보지 않았으니 권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 녀석을 주기 전에 먼저 읽었다.(내가 보지도 않고 주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인 것 같아서...) 책을 다 읽고 나서 여러가지 밑줄 그을만한 부분들도 발견했고, 왠지 힘을 얻은 것 같다. 올해 접하게 된 의외의 책 가운데 아마 이 책은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 것이다. 

  청춘! 20대! 스무살!  

  뭐라고 딱히 규정할 수가 없는 나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지독히도 아픈시기라는 것이다. 지난 내 삶을 돌아봐도 그렇다. 정말 질풍노도의 시기였고, 고민도 많이 했고, 아파하기도 많이 했다. 어머님께 떠밀려 원하지 않는 학교에 들어갔고, 공부대신 다른 곳에 한눈을 팔았다. 세상이 너무 부조리 해 보여서 뒤엎어 보고 싶어서 학생운동에 참여했으나 프락치 사건에서 보여준 비윤리적인 행동에 실망해 탈퇴하였다. 기독교 신앙마저 김홍도 목사 사건과 옷로비 사건으로 인하여 밑뿌리부터 흔들렸다. 사랑의 열정과 아픔 앞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문제 앞에서 정말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아파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지금에 와서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깊이, 아프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아파할 수 있고, 불안해 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었던 것도, 열정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실연 때문에 아파할 수 있는 것도 스무살의 청춘이기에 가능한 것이며, 축복이다. 

  스무살 아파할 나이다. 아니 아파해야 하는 나이다. 그때는 죽을 만큼, 토할 만큼 힘들고 아프지만, 그것이 삶을 진지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식상한 말이지만 성장통이다. 나는 다만 조금만 덜 아프라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옆에서 이야기 들어주고, 책 한권 사주고, 커피 한 잔 사주고, 위해서 기도해 주는 사람이고 싶은 것이다. 내가 때론 짜증도 나고, 힘들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면서 교회안에서 여전히 스무살 청년들 곁을 맴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이 책을 이런 책으로 본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자기 계발서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저 그런 책, 팔아먹기 위해 꼼수를 부린 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만약 그런 의도로만 만들어진 책이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아프지마, 힘내라."하지 않고 "아파해라. 당연한 거야. 다만 조금만 덜 아파해. 너도 살아야 하잖아."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와 위안을 주는 까닭이 아니겠는가? 아마 앞으로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청년들에게 나도 같은 말을 건넬 것이며, 이 책을 선물로 줄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1~3장까지 이어온 감동과 위로가 4장을  인하여 반감되었다는 것이다. 1~3장까지의 내용만 보면 에세이인데, 4장으로 인해 갑자기 자기 계발서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 같다. 마지막으로 딴지를 하나 걸자면 굳이 책의 표지에 "서울 대학교 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강의"라는 타이틀을 붙일 필요가 있었나 한다. 김난도 교수가 서울대 교수라서가 아니라 출판사의 판매 전략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일까? 그 한 줄의 카피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인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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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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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나온 책이다. 대충 무슨 내용인지도 알고 있다. 내가 단골로 애용하는 서점에 가면 항상 빠지지 않고 꽂혀 있던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다. 촌스러운 표지 때문일까? 아니면 주인공의 촌스럽고 아동틱한 이름 때문일까? 분명한 것은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책이라는 점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 여자 청년이 나에게 이 책을 읽어 봤냐고 물었다. 책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고 하는 나의 말에 정말 좋은 책이라고 강추를 하더라. 원체 이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저러나 싶었다. 혹시 내가 이 책의 내용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다 읽으면 빌려 달라 부탁을 해놓았다. 이미 사놓은 책들이 한 가득이요, 그 덕에 대폭 얇아진 지갑 때문이다. 일단 빌려 달라 부탁을 해 놓고 다음날 알라딘을 하던 중 대폭 세일하는 도서 명단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그렇게 사지 않으려고 애썼건만 할인 중인 책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주문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이 책만이 아니라 다른 책들까지 이것저것 포함해서 말이다. 꼭 5만원을 넘겨서 주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알라딘의 상술에 넘어간 것인지 몰라도 이 책 한권 때문에 5만원 어치의 책을 주문한 것이다.

  빌려 읽으려던 책을 산 것이기 때문에 안 읽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내가 소설책을 열일 제쳐두고 읽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린 왕자와 같다고 할까? 그렇지만 어린 왕자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어린 왕자가 여러 가지 챕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모자이크와 같다면 이 책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기승전결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나 할까? 읽기 시작한지 몇 시간만에 뚝딱 읽었지만 그 여운은 정말 오래 갔다. 이 책을 권해준 사람에게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

  시간을 아껴 미래를 대비하라는 회색 양복의 세일즈맨들. 그들의 삶이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들의 삶이 꼭 그러하기 때문이리라. 살면서 시간을 아끼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다. 온갖 자기 계발서에서도 시간 관리가 곧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가르친다. 그토록 중요한 시간 관리를 위해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간들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 잠시 쉬는 시간, 이웃들과 사랑과 친교를 나누는 시간들이 대부분 불필요한 것들로 간주되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 안에 빙하기가 시작된다. 온갖 삭막함과 쌀쌀함, 그리고 고독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과거에 비해 우리 사는 삶이 팍팍해졌다면 물질적인 빈곤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빈곤, 시간의 빈곤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책에서도 보듯이 그렇게 아끼고 아낀 시간이 무엇을 보장해주는가? 그렇게 아낀 시간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가? 아니다. 그렇게 아낀 시간은 결국 회색 양복의 세일즈맨들의 삶을 배불리듯이 다른 헛된 곳으로 조용히 사라져 버릴 뿐이다. 모모와 함께 하는 여행이 나에게 큰 즐거움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아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 소진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그 소진이 얼마나 값진 것이냐 하는 것만 다를 뿐이다.

  이것과는 다른 의미로 모모는 나에게 또 한 가지 즐거움을 주었다. 모모가 가진 그 특별한 재능이 정말 부럽다.

  하지만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였다.
  그게 무슨 특별한 재주람. 남의 말을 듣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많으리라.
  하지만 그 사람의 생각은 틀린 것이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더욱이 모모만큼 남의 말을 잘 들어 줄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P.22 ~ 23)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 정말 비상한 재주가 아닐 수 없다. 모두 제 할 말만 쏟아 놓는 시대에 모모의 이러한 재능은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재능이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말하다가 주먹다툼을 하는 여의도의 금배지를 단 높으신 분들을 보면서 어린 모모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끌끌 혀를 찬다. 국회 예산 가운데 조금만 전용해서라도 그 분들 모두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는 것은 어떨까?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말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 이것이 모모의 재능이다. 그렇지만 그 재능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안 되는 것일까? 국민의 의견을 귀담아 듣겠다고 나서는 분들이 왜 모모의 모습을 닮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혹 동화라고 무시해서일까?  

  어찌되었든 그 분들의 모습이 아니라 모모의 모습을 닮아보려고 노력한다. 모모와 함께한 짧은 몇 시간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얻게 해준 정말 귀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아마 이 책도 젊은이들에게 선물해주는 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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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1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모 읽으면서,
미카엘 엔데는 천재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동화 속에 숨겨진 수많은 은유들. 너무나 심각한 이야기를 가볍게 아름답게 소화해낸
그 책을 무척 좋아해여. 그리고... 세인트님의 리뷰도 참 좋네요.

추운날이예요, 따뜻하게 입고 나가셔염.

saint236 2010-12-15 14:49   좋아요 0 | URL
여러가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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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970년대에 씌여진 책이다. 노사 갈등과 빈부의 격차를 주제로 씌여진 연작 소설인데, 내가 대학교 새내기였던 10여년 전의 어느날 한 선배가 나에게 보라고 빌려줬던 책이다. 지엄하신 선배의 명령인지라 읽기는 했지만 그저 읽는 시늉을 했기 때문에 내용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그냥 그런 책이 있구나, 동화책은 아니구나 하는 수준이었는데 재작년인가 목사님께서 혹시 이 책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 보시기에 가지고 있다는 말하고는 얼른 가서 책을 사왔다. 워낙 유명한 책이고, 내 딴에는 사두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샀던 책인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겨우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덮으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어떤 분이 TTB 리뷰의 제목으로도 적었지만 "지난 30년 동안 나아진 것이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가?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민주화 되었는가? 말이 어렵다면 톡 까놓고 이야기해서 얼마나 살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지난 몇년 사이에 들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계가 거꾸로 간다는 말이다. 정치가, 사회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민주화 투쟁을 겪었던 분들의 경험담들, 그리고 내가 새내기였던 당시에 겪었던 일들이 다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가 실제 데모 현장에서 백골단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세대가 아닌가 싶다. 1997년 새내기였던 당시 아무 것도 모르고 끌려 다녔던 데모의 현장, 장충단 공원에서의 메이데이 행사, 이어서 전경의 페퍼포(아는 사람들은 안다.)와 지랄탄, 백골단의 돌격을 피해 동국대 담을 넘었던 사건이 아직도 머릿 속에 생생하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 문화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동국대는 불교 학교요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곳이었는데 그날 고맙게도 경찰은 나를 동국대에 가게 만들어 줬다. 게다가 하늘에서 형광 페인트를 쏟아부었던 헬기(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의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도 여전히 귀에 쟁쟁하다. 그 당시의 공포와 분노감 또한 마찬가지다. 한총련 발대식 때 한양대 앞에서의 가투, 프락치 사건으로 인해 윤리적인 타격을 입고 나에게 실망을 안겨 줬던 당시 한총련 집행부들, 도시 빈민들의 힘겨운 투쟁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이젠 그런 시절은 끝난 줄 알았다.  

  아니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크게 보도 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생존권을 건 투쟁이 있었고, 그것이 크게 불거진 것이 쌍용 사태이다. 밀어붙이기식 개발이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다가 용산 참사로 우리 눈 앞에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참 불쌍하다고 한다. 잘 해보려고 하는데 재수없어서 촛불 집회가 나오고, 광우병 사태가 나오고, 쌍용 사태와 용산 참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노무현이 탓이라고 한다. 전 정부의 실정을 그대로 떠 안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일까? 정말 재수없어서 그런 것일까? 노무현 정부의 실정도 물론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하루 아침에 이러한 문제가 촉발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덮어두고, 아니다.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진압하려고 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적극적인 진압이 이런 극단적인 사태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지난 30년 동안 나아진 것이 있는가? 경제 규모는 커져가고, 자랑스러운 세계 기업 삼성을 외치지만 과연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더 살만해 졌는가? 경제적인 부유가 아니라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여전히 난쟁이는 있고, 난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찌부러져 난쟁이가 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지금에도 그렇게 설득력을 가지고 읽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솔직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서러웠다. 슬펐다. 10여년 전에 읽었을 때도 슬펐겠지만 지금 읽으면서는 더 슬프다. 나아진 것이 없다. 더 팍팍해 졌다. 더 치열해 지고, 더 많은 난장이들이 생겼다. 그래도 당시에는 쇠공을 쏘고 칼이라도 휘둘렀지만, 지금은 그러한 힘마저도 없다. 그저 패배의식만이 있을 뿐이다. 난장이와 연대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난장이를 손가락질하고 빨갱이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도 난장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까치발하기에 고달픈 인생들만 가득하다. 

  진지하게 묻는다. 30년 동안 나아진 것이 있는가? 10년 후에는, 앞으로 30년 후에는 나아질 수 있을 것인가?  

  슬프다. 이 자리를 빌어 쌍용 사태를 통해서 투신한 사람들, 고통을 겪은 사람들,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내시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에게도 애도의 말을 건넨다. 이랜드 노조, 기륭금속 노조원들에게도 격려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진심으로 30년 후에는 더 이상 이 책이 슬픔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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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0-10-21 19:58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면서 많이 슬프더라구요. 조금 더 슬펐으면 엉엉 울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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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둡다. 무겁다. 서럽다. 그리고 침묵! 

  이 책을 통하여 본 것들이다. 흡입력이 매우 강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에 푹 빠져든다. 그리고 소현이 되고, 석경이 되고, 흔이 되고 만상이 되며 막금이 된다. 때론 도르곤이 되고 봉림이 되며, 원손이 되고, 인평이 되며, 기원이 되고, 인조가 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왔다가 들쑤셔 놓고는 다시 나간다. 그후에 느끼는 묵직함... 결코 가볍고 즐거운 느낌은 아니다. 애써 외면하고 싶다. 그러나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나를 이렇게 만든 김인숙이라는 작가의 천재성에 박수를 보낸다. 

  한 일자로 앙다문 입술, 멀리 응시하는 서글픈 눈동자, 온전히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간신히 반만 내민 얼굴! 그 얼굴이 서글프다. 서른 넷이라는 이른 나이에, 적의 나라에서 8년을 견디고 돌아온지 두달만에 급하게 세상을 뜬 그의 삶이라서 더 서글프다. "조선으로 돌아가리라, 부국강병을 이루리라." 다짐했지만 아버지에 의하여 정적으로 낙인찍히고,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떠도는 그의 죽음이 많이 서글프다. 아내가 아버지에게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어린 자식들도 환국할 때마다 자기 대신 적국에 볼모로 잡혀왔던 열두살짜리 큰 아들이 제주도에서 굶어 죽어야 했기의 그의 삶은 서글픔 그 자체다.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해도 슬프다. 책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책의 곳곳에 서글픔이 묻어 있다. 그리고 트라우마가 묻어 있다. 병자호란을 통해 받은 상처가 사람들의 마음에, 아니 조선 팔도 곳곳에 스며 있다. 가족이 모두 죽고 청에 팔려와 역관이 된 만상에게 재물에 대한 집착이 트라우마이다. 석경에게는 흔이, 흔에게는 막금이, 막금에게는 신기가, 인조에게는 세자가, 세자에게는 조선이 트라우마이다. 죽을 자리임을 알면서도 나아갈 수밖에 없는 자리가, 사람이, 조국이 그들에게는 아픔이자 트라우마이다. 그래서 저마다의 이유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어린 것이 낯선 땅에 묻히는 동안, 종일 비가 내렸다. 그리고 세자는 정일 몸이 아팠다. 심양 관소에서 온 소식에 의하면, 세자가 조선에 있는 동안 세자 대신 인질로 잡혀 있는 원손도 아프고, 인평도 아프다 했다. 봉림의 어린 딸이 땅에 묻혔으니 봉림도 아플 터였다. 아비의 상을 치르러 조선에 들어왔다가 임금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곡 한번 하지 못한 채 다시 도성을 떠나야만 했던 빈궁도 아팠다. 종일 그렇게 비가 내렸다.(P.180)  

  저마다의 이유로 아프지만 어느 곳에도 치유는 없다.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프다.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는 저자의 말이 마치 치유는 독자의 몫이라는 것 같아서 책을 덮는 나도 아프다. 왜 치유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치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치유를 이야기할 여력이 없는 것이리라. 병자호란의 상처가 할퀴고 간 자리에서 재조지은의 케케묵은 가치관에 사수하고, 숭정의 연호를 사용하며 북경을 향하여 절을 올리니 상처가 아물 틈이 있겠는가? 오히려 상처를 찌르고 찔러 덧나게 만드는 것이 될 뿐이다. 왜 그런 미련한 짓을 하는가? 그것이 그들의 존재의 근거요, 이유요,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모든 뜻이 다 있다 하였다. 조선의 글 읽는 자들이 누구나 다 이쪽을 향하여 절을 했다. 그러나 불탄 자리를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불타버린 뜻을 본 자도 역시 아무도 없었다.(P.316) 

  아무도 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 뜻이 있다며 절한다. 세자가 그렇게도 돌아가고자 했던 조선의 글쟁이들은 오히려 남의 나라를 향하여 절을 한다. 세자의 뜻은 조선에 있으나 조선 글쟁이들의 뜻은 조선에 있지 않다. 그러니 돌아간 세자가 설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피폐해진 조선이다. 세자를 위하여 재물을 보내고, 청에 바칠 공물을 보낼 그 조선은 너무나 빈약하고 피폐하다. 세자와 세자빈의 노력으로 재물을 모으고, 그 재물로 조선의 포로를 속환하고, 땅을 사서 정착시켰다. 부국 강병을 꿈꾸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 그날을 기다리는 그를 도르곤은 벗이자 적이라 했다. 그러나 피폐해진 조선의 글쟁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가깝게 지내는 자는 모두 무부와 노비들이었다. 학문을 강론하는 일은 전혀 폐지하고 오직 화리만을 일삼았으며, 또 토목 공사와 구마와 애완하는 것을 일삼았기 때문에 적국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크게 인망을 잃었다. 이는 대체로 그때의 궁관 무리 중에 혹 궁관답지 못한 자가 있어 보도하는 도리를 잃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P.339) 

  세자가 본 것은 무엇일까? 조선의 영광이었을까, 몰락이었을까? 세자가 기다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돌아가 죽을 자리였던가, 왕이 될 그 순간이었을까? 세자가 그토록 돌아가고자 한 곳은 어디였을까? 자신을 적으로 보는 아비 곁일까, 자신을 적이나 벗으로 인정한 도르곤 곁일까? 앙다문 입술,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눈이 너무 서글퍼 눈물이 난다. 죽어서도 도리를 잃어 그리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그의 눈매와 앙다운 입술이 유난히 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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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10-14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아픔, 인질로서 목숨을 부지해야 만 하는 주변상황 등이 맞물리면서 읽는 내내 참으로 무겁고 우울했습니다. ^^

saint236 2010-10-14 23:29   좋아요 0 | URL
맞아요...내내 무겁고 우울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