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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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붓 글씨로 써드렸던 글귀를 엽서 끝에 적습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아마도 이 책의 제목이 이 글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세상이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불평하는 이들에게 "두려워 할 것 없다. 우리들이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한 결코 그들은 우리를 해칠 수 없다."고 다독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다루는 콘텐츠들이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는 1박 2일, 책으로는 한비야씨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반", 거기에다 올레길, 둘레길 등 무슨 무슨 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간 도서 목록에는 여행 관련 책들이 꼭 한두권씩 끼어있기 마련이다. 언젠가 동생이 야심차게 서울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서울 유적지와 여행 관련 책자를 살 대 따라간 적이 있었다. 서울 관련 여행 정보 책자들이 그렇게 많고, 종류도 다양한 줄은 그 때 처음 알았다. 추리고 추려서 산 것이 대략 스무권이다.   

  여행 관련 콘텐츠들이 이렇게 홍수를 이루는 것은 아마도 떠나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소망을 반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대로 좋은 것일까? 모 CF의 카피처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생각을 우리의 머릿 속에 집어 넣어주면서 여행을 소비 산업의 신개척지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인생의 성숙을 위해서, 성장을 위해서 떠나는 여행이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한 소비 향락 주의로 변질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여행 정보지에 보면 싼 값에 맛있게 먹고 즐길 수 있는 곳을 소개하는 곳은 많지만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는 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 않은가? 신영복 교수가 말한 것처럼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같이 거추장스럽게 포장된 콘텐츠들만이 넘쳐나지 여수에 살아 있는 이순신 장군의 숨결은 느끼기 힘들지 않은가?   

  신영복 교수의 이 책은 여행의 본래적 의미에 충실하다. 그래서 색다르다. 그가 여행하는 자리자리마다 현실에 대한 통찰과 아픔이 배어 있다. 백담사에서 만해의 시비와 일해의 편액이 같은 공간에 걸려 있음을 보면서, 가야산의 최치원 시비를 보면서, 이천의 도자기 가마와 백마강을 보면서 그곳에 담긴 아픔과 한과 교훈과 모든 것들을 깊이 새김질한다. 그리고 한 장의 그림엽서를 띄운다.   

  그가 띄우는 그림엽서의 수취인은 누구일까? 뚜렷한 수취인이 없는 수취인 불명.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접하는 모든 독자들이 수취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가 밟고 다닌 자리에서 살아왔던 민초들이 그럴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자신에게로 되돌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이 받아 볼 수 있는 엽서가 될지, 저자에게로 되돌아가는 엽서가 될지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도끼 자루가 되어 줄지 되어 주지 않을지는 나무 각자의 몫인 것처럼.  

  책을 덮고 나서 한없이 아쉽다. 내가 책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만한 동행과 이런 여행을 한다면 그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기억에 남는 문구로 끄적거림을 마무리한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鑑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바로 표면에 집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鑑於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업 속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보기를 이 금언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어깨동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1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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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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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꺽정, 길 위에서 펼치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제목은 화려하다. 게다가 알라딘 서평단 도서였던 탓에 리뷰도 꽤 많이 올라왔다. 게다가 열하일기, 호모 쿵푸스, 호모 에로스 등 많은 저서로 이름을 알린 고미숙 씨의 작품이다. 고미숙 씨의 다른 작품을 못봤지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꽤 호의적이었던 탓에 주저 없이 책을 샀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읽고 난 후의 솔직한 감정은 완전 실망이다. 이 책을 읽은 것이 벌써 1년이 더 넘어가는데 아직까지도 리뷰를 작성하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내가 얼마나 이 책을 보고 실망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책을 보고 실망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 이다.  

  첫째는 책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고전 해설가 혹은 고전 평론가라는 저자의 입장이 인문 고전을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재미있게 읽도록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가볍다. 오늘의 시각에서 고전을 다시 읽는 것은 좋지만 당시의 상황을 너무 가볍게 다뤘다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당시 칠두령들은 모두 백수들이고 사농공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면서 그들은 그렇지만 지지리 궁상으로 살지 않았다고 말한다. 백수이지만 지지리 궁상으로 살지 않았고 재미있고 유쾌하게 살았다고, 현재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고 말하는 것은 오늘날 백수인 젊은이들에게 작은 위안 혹은 동질감을 줄 수 있지만 고전을 충분히 읽기에는 부족하다. 왜 그들은 백수일 수밖에 없었으며 사농공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했는가라는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을 충분히 밝히지 않는다면 그들이 왜 청석골에 모였는지, 아니 세상은 왜 그들을 청석골에 몰아 넣었는지, 왜 서림이가 배신했는지 등등 소설의 중요한 포인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청년 백수를 위한 케포이필리아"라는 에필로그의 제목답게 이 책에는 이 시대 청년 백수들을 향한 애정이 담뿍 담겨있다. 그러나 이런 애정이 고전의 속살 깊은 곳을 음미해보기보다는 현재의 삶에 쉽게 쉽게 적용될 수 있는 수박 겉핥기에 멈추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게다가 이 수박 겉핥기마저도 청년 백수들에게 몰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는가 싶어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둘째 고전이 이상하게도 자기계발서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형편은 찌질하지만 삶이 지지리 궁상이어서는 안된다. 아무 이유 없어도 그냥 배워라, 의리는 피보다 더 진하게 여겨야 한다 등등. 마치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것 같은 이런 이야기들이 임꺽정 해설서에 가득 차 있다. 임꺽정이라는 고전이 이렇게 읽힌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겠으나 임꺽정이 전해주는 진짜 의미는 자기계발이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 해설 또한 아닐 것이다. 임꺽정이라는 고전을 구해 읽고 강연을 따라 다니고, 이 책을 구해 읽을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그런 가벼운 가르침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가르침을 원한다면 굳이 고전을 읽을 필요가 무엇인가? 서점에 가면 수도 없이 널린 것이 자기계발서인 것을. 물론 저자가 청년 백수들에게 "당당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라 이것이 우리 시대 모든 마이너가 전수받아야 할 삶의 노하우이다."라고 외치는 의도는 알겠지만 꺽정이의 삶에서 우리가 읽어낼 것이 고작 자기계발, 자기 만족 밖에 안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고전을 읽을 필요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이 정이 안가는 이유는 이것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마치 노홍철의 개그를 본 느낌이 든다는 것 말이다. 요즘 CF에 보면 노홍철을 가리켜 이렇게 말하더라. "너무 가벼워? 그럼 무게 잡을까? 가벼워야 재미있다." 이 책이 딱 그렇다. 가벼워야 재미있다. 고미숙 씨는 충분히 가볍고 재미있게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난 고전에서 묵직함을 원한다. 한때 유행했던 말로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이 낯설다. 고미숙이 친해지지 않는다. 그의 다른 책을 구입하거나 읽어볼 마음이 들지 않는다. 1년이나 지나 간신히 리뷰를 작성한 내 게으름에 대한 변명아닌 변명을 구차하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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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6-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별 2개였습니다. ^^;;

saint236 2011-06-07 17:31   좋아요 0 | URL
하하...마립간님도 그러셨군요...

순오기 2011-06-0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 책 재밌게 술술 읽히기는 하던데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였어요.ㅜㅜ

saint236 2011-06-07 23:44   좋아요 0 | URL
재미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볍다는...
 
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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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恨中錄!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영조, 그런 아버지에 의하여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사도 세자, 장수하였지만 한창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아들 정조를 앞세우고 친정의 몰락을 지켜본 혜경궁 홍씨,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항상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정조! 한중록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권력의 핵심층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언제라도 굴러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한중록을 恨中錄으로 잘못 알고 있다. 한중록은 閑中錄 즉 한가한 날들의 기록이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한스러운 날들의 기록이라는 의미의 恨中錄이 더 잘 어울린다. 이 책을 기록한 혜경궁 홍씨는 물론이거니와 이 책의 일차 독자였던 혜경궁 홍씨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2차 독자인 나도 이 책을 閑中錄이 아니라 恨中錄으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이 책에는 혜경궁 홍씨의 슬픔과 한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스캔들이 기록되어 있다. 어우동의 섹스 스캔들, 태종과 세조의 친인척에 대한 스캔들, 연산군에 의해서 저질러진 많은 스캔들, 노론의 택군 스캔들, 그리고 영조에 의해 저질러진 임오년의 스캔들! 이중 가장 최고는 임오년에 저질러진 스캔들이라고 할 것이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왕이 차기 왕이 될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건은, 그것도 뒤주에 가두어 7일간 말려 죽인 사건은 나라의 근본을 뒤흔들만큼 거대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몰고 올 후폭풍은 한두사람의 죽음으로는 덮어질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이 사건에 연관된 어느 한쪽이 죽고 나서야, 혹은 모두가 죽고 나서야 끝이 날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조도, 정조도, 그리고 이 사건에 연관된 모든 신료들도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모년 모일의 참변 혹은 임오년의 사건이라고 얼버무리는 것이다. 뒤주라는 말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목기 혹은 일물이라고 절묘하게 표현한다. 사도세자는 대하는 태도가 어떻든 간에 영조에게도 정조에게도 지워버리고 싶은 비극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세자를 복권시키려는 정조조차도 그 첫번째 단계로 이와 관련된 사료들을 세초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덮어버리려고 노력하였던 문제가 그 누구보다도 이 사건의 정치적인 의미와 몰고올 파장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혜경궁 홍씨가 폭로하였을까? 무엇이 그렇게도 한스러워서 그것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묻어버리지 못하였던 것일까? 비록 한가한 날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에둘러 표현하지만 자신의 한을 풀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조카의 요청으로, 순조의 어머니의 요청으로 기록하였다고 하지만 혜경궁 홍씨의 의도는 한을 풀기 위해서이다.  

  그녀가 그리도 풀고자한 한이 누구를 위한 한인가? 비명에 간 사도세자의 한인가? 아니면 그렇게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영조와 사도세자의 어머니의 한인가? 아버지를 왕으로 추숭하지 못하고 급하게 세상을 떠난 정조의 한인가? 아이면 젊어 과부가 되고 사랑하는 아들 정조를 먼저 떠나보낸 자신의 한인가?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되겠지만 혜경궁 홍씨가 풀고 싶었던 것은 자기 친정의 한이다. 1804년이면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집안을 복권시켜 주겠다는 말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의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정조가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순조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1804년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1804년은 순조가 성인이 되거 친정을 펴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순조에게 친정을 펴면서 할머니인 자기 집안의 한을 풀어달라는 정치적인 로비인 것이다. 

  혜경궁 홍씨 집안의 한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그녀는 자기 집안이 성심으로 사도세자를 섬겼지만 그의 병증으로 인하여 부자관계가 악회되었고, 아버지 홍봉한이 충심으로 노력하였지만 결국 죽임을 당했다고 말한다. 작은 아버지 홍인한의 삼불필지라는 것도 영조의 말에 대꾸하다가 실수한 것이 원래 그런 의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이러한 충심을 몰라주로 색안경을 끼고 자기 집안을 몰락시킨 모리배들을지탄한다. 과연 그럴까?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혜경궁 홍씨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덕일씨는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병증이라기보다는 그와 당색을 달리하는 혜경궁 홍씨와 그의 친정이 권력을 얻기 위하여 만들어낸 정치적인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꽤 흥미로운 이야기임은 분명하다.(이에 관련하여서는 이덕일씨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역사는 개인들의 삶이 모여 만들어진 기록이다. 일반 대중의 삶의 기록들을 모아 연구하여 민중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물며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의 개인사를 소홀히 하는 것은 말이 안될 것이다. 이 책은 혜경궁 홍씨의 일생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지만 그녀가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는 점, 이 책의 발간의도, 그리고 그녀가 공격하는 사람들 또한 권력의 핵심이라는 점, 그녀가 전한 이야기들이 기록된 역사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지고 깊이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녀의 개인사는 조선 후기 영조에서 정조 그리고 순조에 이르는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역사를 떠나서 그녀의 삶은 정말로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듯이 읽어보는 것도 그 자체로 꽤 재미있다. 다만 문제와 글자체가 눈에 잘 안들어온다는 단점때문에 읽기가 쉽지않다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산문 문학 중 수작이라는 평가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마지막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에 꼭 들어맞는 책이라는 평가를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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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1-06-05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입니다....잘 읽고 갑니다~~

saint236 2011-06-05 13:33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이젠 완전 무덥습니다. 조선 참모열전은 재미있나요?
 
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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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정!!! 

  글을 읽는 내내 그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이 책이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면...누가 배역을 맡으면 좋을까? 다른 사람들은 도무지 이미지가 잡히지 않으나 딱 한사람의 이미지만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선명하다. 바로 윤여정씨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한번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맡을 배역은 무엇일까? 엄마다. 주인공 유안의 엄마! 난 이 소설을 보는 내내 윤여정이 이 역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없는 아버지와의 이혼, 그리고 연기로 다시 돌아온 그 열정,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대는 치열함, 집에서도 고상하게 보이고 싶고 철없는 행동, 그리고 세월의 무게를 다 짊어진 듯 뿌옇게 내뱉는 담배연기...연기를 하다보면 꼭 그 사람에게 맞는 배역이 있다고 윤여정이라는 배우에게 꼭 들어맞는 배역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끊임없이 배우 윤여정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던지는 대사에, 그리고 행동 하나 하나에서 그녀의 자취를 느끼는 것은 이 책을 읽어가는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자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딴에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만 조금만 그 속을 들춰보면 모두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자기의 사랑을 위해 할아버지를 독수공방으로 만든 할머니, 그런 할머니를 조롱하기 위하여 여자를 데리고 온 할아버지, 친구 한주에 대한 마음과 이혼의 아픔을 애써 숨기고자 딸을 탓하는 엄마, 위장 이혼을 하지만 다른 여자를 만나 다른 가정을 꾸린 아버지, 반발하여 나가는 재영, 만나면 커피마시고 모텔로 직행하는, 사랑하지만 감당할 수 없어 헤어진다는 승원, 그리고 승원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는 유안! 모두들 자기 입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에 충실하지만,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그들은 상대방에게 배려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배려를 몰라주는 상대방이 나를 숨막히게 하는 것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 강변한다. 그들은 자기식의 배려를 강요하고 있을 따름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나만 생각하고 있어락 말한다면 덜 답답할 것을. 

  작가의 기가 막힌 의도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난 전자에 이 책을 걸 수 있다. 로맨틱한 세계는 소설의 미니어쳐이다. 승원과 유안의 이야기를 담은 스마트한 시대의 커플 이야기,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재영의 이야기를 담은 성적 소수자의 사랑이야기, 유안을 바라보는 오연출을 떠올리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 소설과 연극을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작가의 말이 더 생생하게 들린다.  

  이 책에는 두 부류의 남자가 등장한다. 유안의 삶에서 튕겨져 나가는 남자와 받아들여지는 남자. 전자의 대표는 승원과 아버지이다. 유안이 끊임없이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그들은 유안을 떠난다. 유안은 끊임없이 그들을 그리워하지만 그 그리움이라는 것은 전원을 꺼버리면 사라져버리는, 24시간이 지나명 생명이 다하는 블로그의 글과 같은 것이다. 기억은 있지만 추억은 없다고 할까? 추억은 있지만 감동은 퇴색해 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후자의 태표는 오연출과 장실장이다. 어느날 무책임하게 유안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사라져버린 장실장. 그의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은 유안에게 무거운 짐이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유안은 장실장을 미워하지 않는다. 외려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장실장의 부재를 안타까워한다. 

  유안에게 아버지보다 더 듬직한 존재는 장실장이다. 무책임한 아버지와 유안을 믿고 신뢰하는 장실장. 장실장이 아버지의 대척점에 있다면 승원의 대척점은 단연 오연출이다. 좋아하는 여자가 가다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든지 같이 넘어져야 한다면서 종로 한 복판에 누워줄 수 있는 오연출의 찌질함은 사랑하지만 감당할 수 없어서 헤어진다는 승원의 쿨함보다 더 매력적이고 로맨틱하다. 소설에 나오지는 않지만 만약 유안이 결혼을 하고 진지하게 연애를 한다면 상대는 오연출이지 않겠는가?  

  장실장과 오연출을 보며 입에서 맴도는 한마디가 있다. "너만 생각해!" 나는 나를 생각해라는 제목이 이상하게 "너만 생각해"라는 말로 들린다. 괜시리 오지랖 넓게 상대방을 배려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기식의 배려를 강요하는 것이 될 뿐 진정한 배려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자기의 인생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장실장이나 오연출 같은 사람이 진심을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라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과거 아픔을 혼자서 삭히기 어려운 시절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나를 떠나 버린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내가 상처를 준 것이 미안하고,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온갖 것이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하고, 더 상처를 주고, 이것이 반복되고. 그 시절 친구가 나에게 해준 한마디..."너만 생각해!" 그렇다. 괜시리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미련한 행동이다. 상대방을 더 아프게 하고, 무례하게 행하는 행동이다. 그냥 그럴 때는 "나만 생각"하면 된다. 

  오늘도 힘들어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고 행여라고 사랑의 아픔, 인생의 아픔을 달래고 있을 사람들에게 한마디만 한다. 

  "너만 생각해..." 

 99페이지 5번째 줄. 알기기=>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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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1-05-2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즐겨읽지 않는데....글을 읽고 나니 흥미가 생기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saint236 2011-05-26 11:13   좋아요 0 | URL
한번 읽어보세요.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마녀고양이 2011-05-26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다른 책의 한구절이 생각나네요.

선물을 주는데, 필요없는 선물만 주는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그 선물을 받으면 도리어 부담스럽고 고민스럽다고.

그런데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내주는 사랑이라고,

나와 너의 관계란 참 어려워요.... ^^

saint236 2011-05-26 11:14   좋아요 0 | URL
앗....어디선가 본듯한 구절인데...정확하게 생각이 안나네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정말 힘든 것 같네요. 특히 연인이나 가족으로 맺어진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이리시스 2011-05-2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인문평가단 같이 할 때 저보다 깊게 보고 저는 따라갈 수도 없는 글을 쓰셔서 자주 읽었는데 즐찾이 안되어있는 줄 몰랐어요. 그래서 어쩌다 [너만 생각해] 검색했는데 리뷰가 있어서 들어왔다가 얼른 하고 가요. 저는 몰래 와서 종종 읽을게요.^^

saint236 2011-05-29 10:3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오랫만에 뵙습니다.
 
톨스토이 단편선 1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권희정.김은경 옮김, 이일선 그림 / 인디북(인디아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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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몇 년에 한 번?) 복권을 산다. 재미도 있지만 돈 좀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이다. 새로 나온 소형 가전에는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간다. 그래서 2월에는 아이패드도 샀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다. 왠지 모르게 허전함을 느낀다. 복권은 꽝이고, 소형 가전이 주는 즐거움은 며칠이다. 왠지 허전함을 느낄 때마다 이 책을 만지작 거린다.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이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인데 리뷰를 써야지 하고 벌써 1년이 지났다. 나중에 읽은 톨스토이 단편선 2권의 리뷰를 먼저 올린 마당에 이제서야 리뷰를 올리는 것이 낯간지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자꾸 리뷰를 미뤄두었던 책들이 눈에 밟히는지라 이제라도 올린다. 

  1달전인가? cyrus님이 주셨던 체호프의 책을 읽고 톨스토이의 단편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톨스토이와 도스트예프스키의 책이 러시아 문학의 전부인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왠지 책을 읽을 때에는 마음이 따뜻해지지만 리뷰를 올리는 것은 왠지 어려운 일로 느껴졌다. 톨스토이가 동화처럼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노동의 신성함, 치부의 부적절함, 인생 무상, 그리고 신앙의 숭고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면, 도스트예프스키는 조금은 더 어려운 내용으로, 더 묵직하게 같은 주제를 다룬다. 쉽게 말하자면 톨스토이는 전 연령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도스트예프스키는 성인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달까?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죄와 벌을 읽었지만 그 내용이 당시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 정도였다는 것? 만약 그 당시 내가 체호프를 만났다면 러시아 문학에 대하여 더 관심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체호프의 이야기는 최소한 40 이후에는 읽어야 그 맛이 진하게 느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서른 중반인 나에게 지금도 체호프의 소설은 아직도 많이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톨스토이 단편선에서 가장 유명한 글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바보 이반"이다. 다른 것들을 다 읽지 않는다고 해도 이 세가지만 읽는다면 톨스토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깊이 생각해본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세상을 살면서 더 많은 돈, 더 많은 연봉, 더 좋은 여건을 추구하면서 대기업 정규직에 목을 거는 20대들에게 톨스토이 단편선은 어떻게 읽힐 것인가? 물론 그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이지만 단순히 재미가 있다고 해서 그 글이 목표하는 바는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톨스토이가 무엇을 말하는가를 기억하면서 이 책을 읽어간다면 꽤나 읽기 곤혹스러운 이야기가 아닐까?  

  자본을 최고의 선으로 가르치는 자본주의에서, 그것도 한국식의 역사가 짧고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리고 그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기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차포 다 떼고 장기를 두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왜 이 책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는가? 아마도 그의 책은 자본과 물질, 그리고 현실 너머의 현실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권력을 얻어도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한 몸 뉘울 수 있는 땅이 필요한 것은 죽은 사람뿐이라는 체호프의 말처럼 톨스토이가 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범인으로서는 이르기 힘든 경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톨스토이의 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이다. 바보이반처럼 재물도, 권력도, 즐거움도 모두 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다. 게다가 이 시대에는 정말 바보같은 짓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시대에는 그러한 바보같은 이반식의 삶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보 이반식의 삶을 흉내낼 때 비로소 우리는 인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것이다.  

  내가 지금보다 10살을 더 먹었을 때 최소한 바보 이반을 흉내내는 삶을 살고 싶다. 단 두세평의 땅으로 만족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적이 나이지만 바훔처럼 그렇게 목숨 걸고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둥바둥대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톨스토이 단편선 중에 인디북에서 나온 이 책이 가장 맘에 든다. 번역이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예쁜 디자인과 삽화는 내 마음에 쏙 든다. 이 책 하나만으로 나는 인디북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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