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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마빈 클로스 외 지음, 박영록 옮김 / 생각의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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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맷데이먼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스포츠 영화로 얼마 전에 개봉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남아공이 시작되었을 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모두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흑백 갈등과 빈부의 격차가 존재했고 해결되지 않은 증오심은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어렵사리 출범한 남아공이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인빅터스는 이런 갈등 해결에 럭비가 한 몫을 담당했음을 보여준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왕따를 당하던 남아공이 럭비 월드컵을 개최하고 우승하는 영화의 전재를 지켜보면서 남아공 사람에게 이미 럭비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동일한 것을 발견한다. 새롭게 출범한 남아공이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내에 월드컵을 주최하게 되었는가? 수없이 많은 국가 중에서 남아공이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처음으로 개최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그 이유를 이 책에서 발견했다. 남아공 사람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게임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가 무엇일까? 그냥 공놀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공놀이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 나는 축구를 통하여 함께 노는 즐거움을 배웠고, 협동의 필요를 자연스럽게 배웠다. 몸을 단련했고, 정신을 단련했으며, 사회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배웠다. 게다가 축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하여 많은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2명 이상의 사람과 조그마한 공터와 공만 있으면 되었다. 게다가 룰도 상당히 간단한 편이다. 개인기와 팀플레이가 절묘하게 결합이 되어서 개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으며, 승리를 위한 전술적인 사고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축구다. 축구를 통하여 소속감을 얻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하고 공격적이고 즐겁다.

  로벤섬에 갇혀 있던 수감자들이 축구를 하기 위해 투쟁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지루한 감옥 생활, 인간이길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수감 생활 속에서 심신을 단련하고 사회성을 배운다는 일차적인 목표 외에도 자극을 줄 수 있는 축구는 수감자들에게 단순한 게임 이상의 것이다. 럭비와 다른 스포츠에 비하여 축구라는 종목이 초창기부터 시작되었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의 머리 속에 사진을 찍은 듯이 남겨져 있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수감자들은 축구를 통하여 삶의 즐거움을 배웠고, 의미를 배웠고, 인간성을 잃지 않았다. FIFA규정에 근거하여 리그를 만들어 운영하고 심판을 교육하고, 조직을 운영한 것은 이미 축구가 그들에게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축구의 소중함을 알고, 그 축구 때문에 감옥에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고, 투쟁을 통하여 축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낸 사람들의 나라, 남아공! 그곳에서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축구의 기본 정신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ps 오타: 90p 6번째 줄 <발표을=>발표를> 153p 11번째 줄 <교도관 편지와=>교도관을 편지와> 232p 5번째 줄 <소개되면=>소개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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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흔드는 사람 - 위대한 지도자 레비야 카디르의 도전과 투쟁
레비야 카디르, 알렉산드라 카벨리우스 지음, 이덕임 옮김 / 열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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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재미있는 우화를 즐겨 들려 주었다. 일생을 살면서 마음에 간직했던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우화는 작은 개미에 간한 이야기다. 어느날 개미가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새 한마리를 만났다. "너, 어디 가니?" 새가 개미에게 물었다. "서쪽으로 가는 길이야. 유럽에 가려고." 개미는 이렇게 대답하며 계속 기어갔다. "그렇게 먼 곳까지 어떻게 가려고? 가는 도중에는 험한 산과 물살이 센 강도 있을 텐데.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걱정하지 마. 산은 기어서 넘으면 되고 강은 헤엄쳐서 건너면 되니까. 물살이 세면 나무조각 같은 걸 꽉 붙잡고 가면 돼." 개미는 자신 있게 대답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버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몇 년이 흐른 후, 그 새는 유럽의 어느 나무 위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던 어느 날 , 갑자기 엄청난 수의 개미 떼가 나무 위로 기어오르더니 새 둥지를 마구 허물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가 둥지를 버리고 막 도망가려는 순간, 개미 한 마리가 말을 걸었다. "반가워, 친구. 도망가지 마! 내가 친구들에게 네 둥지는 건드리지 말라고 할께." 개미의 말에 새가 깜짝 놀라 물었다. "넌 누구니? 나를 아니?" "몇 년 전에 저 먼 나라에서 만났었잖아. 같이 이야기도 했었는데 기억나지 않니?" 새는 그제야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 "아무리 작은 생명체도 자신에 대한 믿음과 용기만 있으면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구나!"  

  아버지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인자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 세상에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도, 이루지 못할 목표도 없단다." 

  왜 내가 이 우화를 언급하는 것일가? 사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동투르키스탄의 산악 지대에서 태어나 아커수라는 도시에서 집안일을 도우며 자랐다. 어린 시절 기억에는 외세의 압력에 고통 받고 시달리는 우리 민족의 모습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위구르족은 항상 쫓기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 그렇다. 나는 오랜 세월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며 투쟁하는 그 당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문화저그, 경제적, 종교적으로 모든 자주성을 빼앗겼다. 정복자의 고문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 싸웠다. 나는 위구르족의 어머니가 되어 고통을 멎게 하는 치료제가 되고,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이 될 것이며, 비바람을 막아줄 우산이 될 것이다.(p22~23) 

  중국의 자치구 중의 하나인 신장 자치구는 중앙아시아의 교통의 요지이다. 게다가 자원의 보고이다. 오랜 세월 상인으로 방랑자로 자유롭게 살아온 위구르족들을 중국에서 불시에 침공하여 자신들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청나라 시절의 어느 한 순간 청에 복속되었었던 것을 이유로 위구르는 독립된 나라가 아니며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서남공정의 한복판에 티벳이고 있고, 동북공정의 한복판에 조선족이 있다면, 서북공정의 타겟은 신장 위구르 족이다. 

  중국은 한족과 소수민족들을 포함하여 대략 56개의 민족을 그 구성원으로 하고 있다. 천안문 광장에 56이라는 숫자를 써놓고 그 숫자 유기에 목을 맨다고 한다. 소수민족 끌어안기라는 그럴듯한 말을 쓰지만 결국은 한족이 지배층이 되고 소수민족이 피지배층이 되는 강압적인 신분제도일 뿐이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중국은 사해가 동포라는 말로 그들을 중국의 민족으로 교육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의 역사까지도 자기의 역사에 편입시켜 장래 그 역사를 빌미로 또 다른 영토 확장을 꾀하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다. 동북공정에 이어 북한 땅에 눈독을 들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속내를 어찌 모르겠는가? 그냥 모르는 척 눈감아 줄 뿐이다. 중국의 덩치가 조금만 작았다면 아마도 이렇게 눈감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중국의 그 강대함 때문에 소수민족이 중국으로부터 갈라져나와서 독립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중국의 독주를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올림픽 때 중국은 한참 시끄러웠다. 성화봉송시 티벳의 달라이 라마의 항의와 티벳 사람들의 데모. 신장 우루무치에서의 유혈 사태. 한족 아이들에게 소수 민족 전통 의상을 입혀 립싱크를 하게 만들었던 올림픽 오프닝의 희대 사기극. 어떻게 해서든 그럴 듯하게 포장해 보려는 그들의 노력이 눈물 겹다. 그런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지려나? 

  이 책의 주인공 레비야 카디르는 신장의 달라이 라마랃고 불리운다.달라이 라마가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요, 망명자들의 우두머리라면, 레비야 카디르는 위구르인들에게 그런 위치에 있는 존재다. 민족의 어머니라고까지 불리우는 사람이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없이 많은 불편한 진실들, 부조리, 불합리, 중국의 강압을 세세히 적으면서 자신이 왜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뛰언 들게 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거창한 집안의 사람도 아니었으나 왜 하늘을 흔드는 사람이 되었는가? 왜 강철같은 중국을 흔들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사람이 되었는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개미의 이야기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위대한 일이라고,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사람들이 포기하는 그 순간에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온갖 현실과 당당하게 맞선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을 위해서, 도 다른 위구르 인을 위해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나눈다. 비록 그길이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하는 일이 된다고 할지라도. 평범한 사림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중국 정부에 의해 테러범으로, 분리주의자로 낙인찍혀 불순분자가 되었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그들의 오만 뒤에 가려진 소수민족들의 가슴아픈 현실을 잘 보여 준다.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이라는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중국의 통치가 변하지 않는한 앞으로 다른 소수 민족에게서 제2, 제3의 달라이 라마, 레비야 카디르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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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6-2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든 힘의 논리는 지배하는 것이겠지요.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웠듯이 신장지구의 카디르 또한 그들의 독립을 위해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의가 승리하는 날이 오길 기원해 봅니다.

근데 개미이야기에 대한 기울임밑줄체 읽기가 너무 힘드네요. 세워주셔도 될 듯...

saint236 2010-06-24 23:27   좋아요 0 | URL
알았습니다. 이젠 인용문은 밑줄로만 표시해야겠네요.
 
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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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도 더 된 일이다. 일본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며, 지금처럼 일드나 일본 영화가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 같이 기숙사를 쓰던 형이 일본 영화 한 편을 구해왔다. 흔히 용산에서 빽판이라고 불리면서 암암리에 판매되고 있던 불법복제 DVD였다. 그 당시에는 이 영화가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둠의 경로를 통하지 않고는 구할 수 없던 시절이다.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비롯하여 정식으로 구입할 수 없는 영화의 불법 복제판을 대여해 주던 곳이 있었으니 불법복제 DVD를 시청했다고 나를 범법자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 년 뒤 정식으로 이 영화가 수입되었을 때 정식 DVD를 구입하여 내 책꽂이에 꽂아 놨으니 대충 눈감아 주고 넘어가도 무방할 듯하다. 대충 눈치가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영화의 제목은 러브레터였다. 얼마나 이 영화에 빠졌었는지 하얀 설원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러브레터의 포스터를 1000피스짜리 퍼즐로 맞추기도 했다. 물론 고생은 엄청했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위에 첨부한 이미지샷이다. 사랑하는 연인 후지이 이츠키를 등반 사고로 보낸 화타나베 히로시가 자기 남자 친구의 첫사랑이자 동명이인인 후지이 이츠키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 그 편지를 통해서 후지이 이츠키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동명이인인 후지이 이츠키임을 알게 된다. 첫사랑 후지이 이츠키와 놀랍도록 닮았기 때문에 후지이 이츠키는 와타나베 히로시를 사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가면서 와타나베 히로시는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위의 컷이다. 새하얀 설원 위에서 눈덮인 산을 향하여 와타나베 히로시는 이미 죽은 남자 친구 후지이 이츠키에게 커다란 목소리로 묻는다.  

  "오겡끼데스까?(잘 지내고 계신가요?)"  

  언뜻 보면 첫사랑을 다루고 있는 멜로물에 왜 그리 빠졌었던 것일까? 가슴 한쪽이 아릿할 정도로 아픈 사랑이야기 때문일가? 아니면 나카야마 미호의 깨끗하면서도 청순 가련한 외모에 빠졌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치밀한 연출력 때문일까?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차기작 4월 이야기를 그렇게재미있게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왜그렇게 러브레터에 빠졌던 것일까? "오겡끼데스까?" 이 한 마디 때문이다. 어느날 급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렇지만 그를 떠나 보낼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그를 떠나보내는 여정인 편지 교환, 그리고 정지된 후 진심을 담고 물어보는 "오겡기데스까?". 그렇다. 내가 이 영화에 빠진 것은 와타나베 히로시의 오겡끼데스까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그 영화를 보기 4년전(그러니까 고1때) 나는 아버지를 떠나 보내야 했다. 1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시던 아버지를 보면서 진심으로 기도했다. 병이 완쾌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름방학 보충 수업을 마치고 1주일간 병원에서 살면서 아버지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2학기 개학과 동시에 있었던 야영. 그곳에서 저녁을 해먹고 쉬던 나를 담임 선생님이 부르셨다. 왠지 불안했다. 집으로 가라고 하셨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하늘이 노래졌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에 도착하니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동네 사람들도 전부 와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고모와 어머니께서 우시기 시작하셨다. 방에 들어가니 이미 상황은 긑이 나 있었다. 무엇이 그리 맺히셨는지, 큰 아들을 못보고 가는 것이 그렇게 서운하셨는지 눈을 못감고 돌아가셨다. 눈을 감겨 드리고 그대로 욕실로 향해서 깨끗하게 씻고 3일간의 장례 절차를 마쳤다. 삼오제까지 지내고 학교로 돌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변함없이 수업시간에 만화책도 보고 딴 짓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위로하면 괜찮다는 말로 대꾸했다. 

  나는 아버지를 그렇게 떠나 보낸 줄 알았다. 4년 뒤 러브레터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러브레터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속으로 오겡끼데스까를 얼마나 많이 되뇌였는지 모른다. 비로소 나는 아버지를 떠나 보낼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 후로 5년을 더 아버지를 붙잡고 사셨다. 돌아가신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아버지를 붙잡고 사셨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셨지만 아버지의 옷가지들은 여전히 장롱에 보관되어 있었고 그 옷은 대학생이 된 내 몫이 되었다. 품은 작고 다리 길이는 길지만 그것들을 수선해서 입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옷이 아니었기에 불편했다. 마치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했던 우리 가족의 마음처럼.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서평을 쓰기 전에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천지를 잃고(그것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으로 충격적인 방법을 통해서) 떠나보내지 못해 힘들어하는 가족들, 친구들의 이야기가 이 책의 기본 구조이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는 충격적인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에 관한 기록이다. 아직 떠나보내지 못하고 보신각을 드나들며 수시로 천지를 떠내 보이는 엄마, 떠나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화연을 붙잡는 만지, 천지라는 친구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유령처럼 떠도는 화연, 천지를 원망하는 미라, 그런 미라와 만지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미란. 그들은 모두 천지의 예상치 못한 부재 때문에 힘들어 하고 방황한다. 아직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이들에게 천지는 곁을 맴도는 유령과 같은 존재이다. 아직 오겡끼데스가를 진심을 담아 외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오겡끼데스까라는 인삿말을 건넨다.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하는 진심이 담기지 않는 안부의 인사! 이것이 우아한 거짓말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닌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하는 거짓말. 

  살면서 이런 거짓말을 참 많이 한다. 잘 지내고 계시죠? 언제 한번 보죠. 언젠 한번 밥 먹죠. 언젠 한번...언제 한번...언제 한번...언제 한번이라는 말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당히 넘기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언제 한번이라는 말을 남발하면서 살아간다. 마치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는 당신을 싫어하지 않아요,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하듯이. 매끄러운 사회 생활을 위해 언제 한번같은 우아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 때가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성장 소설이 맞다. 비록 서글픈 현실이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분이 더 떠올랐다. 나와 같은 나이의 아들을 잃고서(그것도 자살로) 힘들어 하셨던 그 분. 옆에서 위로해줘서 고맙다면서 옷 한벌 사주신 그 분. 그 분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낼 준비가 되셨을까? 절대로 화장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던 그 분을 설득해서 화장하고 납골당에 봉안하게 했었는데. 몇 년 뒤 다시 뵜을 때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자기 부부가 죽기 전에 아들의 유골을 훌훌 뿌려서 자유롭게 해주시겠다고, 그게 둘째 아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 길이라고 하셨는데. 그 후로 또 1년을 사는게 바빠서 연락도 하지 못하고 지냈다. 그래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그 분은 그 분 나름대로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 보낼 준비를 하고 계신 것 같아서이다. 언젠가 그 분도 우아한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들에게 오겡기데스까를 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s.글샘님의 이벤트로 받게 된 책이다. 같은 리뷰어로서 관계를 맺게 되고 이렇게 책까지 받게 되었는데 그 책이 참 좋다. 글샘님께 감사들 드린다. 글샘님의 리뷰를 일부러 찾아 읽었는데 이 책이 그 분에게도 많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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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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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人間)이라는 말은 존재의 본질에 대하여 정확하게 가르쳐 준다.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에 달려 있는 존재 즉, 관계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일까? 사람 人자도 서로가 서로에게 비스듬이 기대어 선 모양이다.  개개인이 부족해서 각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찾고 만나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문명이라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삶들이 모여 얽히고 섥혀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사람은 운명적으로 관계 지향적인 존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유일하게 고독을 느끼는 존재이다. 짐승과 인간의 차이점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고독은 가장 뚜렷한 인간만의 특징일 것이다. 물론 홀로 생활하면서 사냥하는 맹수를 일컬어 고독하다 표현하지만 실제로 그 짐승이 고독한 것은 아니다. 그 짐승을 바라보는 내가 고독하다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인가에게만 있는 고독이란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좌절하게도 만들고 성숙하게도 만들며 자신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마법의 약이다. 고독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생각이 더 깊어지고 성장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깜작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고독에 관한 책이다. 시대의 지성이 고독이라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문제를 만나 어떻게 그 문제를 풀어가고, 또 어떻게 영성의 세계로 넘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고독에 몸부림치는 이 시대의 많은 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양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령씨는 한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다. 물론 유명 아이돌들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젊은이들이 그만큼 책을 읽지 않는 것 같아서 이러한 현실이 정말 안타깝다.)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고, 글을 참 맛깔나게 쓰며, 시대의 지성이요, 무신론자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사람이다. 이런 이어령씨가 세례를 받았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참 의아해했다. 자기 딸과 자폐증을 앓고 있던 외손자의 일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시대의 지성이요 무신론자의 대부라 일컬어지던 그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짐작이 되었고, 그를 둘러싼 상황들이 얼마나 힘든 것들이었는지 약간이나나 상상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바로 구입하게 되었다. 이미 이어령씨의 화려한 글솜씨와 맛깔난 책을 접해본 나로서는 굳이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다루는 것이 아닐지라도 바로 구입했을 것인데 더더군다나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다루는 것이라면 안살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책을 구입만 해놓고 한동안 읽지 않았다. 읽어야할 책들도 많고 써야할 서평도 많아서이다. 그런데 어제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라는 이택광씨의 책을 읽다가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잠시 쉰다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역시 이어령이다. 책을 편 순간 그 글맛에 빠져서 마지막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어제 약속이 없었더라면 이 서평은 어제 밤에 올라왔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 책이다. 

  시대의 지성도 결국은 고독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나 보다. 이어령씨가 딸의 문제, 손자의 문제라는 위기를 만나면서 직면하게 된 것은 존재의 고독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독하게 그를 따라다녔던 고독이라는 녀석이 어느 힘겨운 순간에 불쑥 고개를 내민 것이다.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일본에서 초빙받아 연구를 하면서 느꼈던 것도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었고, 미치도록 사람을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었으며 자기 존재의 무력감이었다. 시대의 지성으로서도, 철학으로서도 채울 수 없는 갈증과 허기는 결국 그로 하여금 영성의 문을 두드리게 만들었고 그곳에서 채움을 받았으며 자신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번의 망설임 끝에 자신의 경험을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이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책을 보는 내내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그래도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왜 이 책을 보면서 눈물이 나왔는가? 그가 느꼈던 고독감이 남의 이야기가 같지 않아서였다. 이어령씨와는 달리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나는 습관처럼 교회를 다녔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언저리에서 알짱거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큰 실패와 견딜 수 없는 고독을 맛보며 하얗게 밤을 지새우던 그 시간을 견디고 난 후 종교가 아닌 영성에 대하여 아주 조금이나마 눈을 뜨게 되었다. 아니다. 눈을 떴다는 것은 너무 교만한 생각이고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는 것, 혹은 그러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 신앙의 기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로운 그의 지적인 사고는 성경을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게 만들었다. 특히 기도에 대한 그의 사고는 무릎을 탁치게 만들 정도였다. 잠시 그의 글을 인용해 본다.  

  아버지가 기도를 하실 때면 사람들은 웃음을 참느라고 애썼지만 나는 그 기도를 들으면서 전통적인 기독교 정신은 바로 저런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작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기도는 언제나 우리와 가장 먼 나라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셨던 것이지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들으신 외신 뉴스 가운데 보스니아처럼 전쟁을 하거나 아프리카처럼 기근으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이나 우리는 관심조차 갖지 않은 지역에서 일어난 태풍이나 홍수로 가족을 잃은 난민을 보살펴 주시라는 기도였던 것이지요.
  그 긴 기도의 끝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국과 우리 가족을 위한 기도를 하셨는데 그것도 아주 작고 멋쩍은 소리로 혹시 남은 복이 있으시면 우리 식구들, 어린 손자들에게도 좀 나눠 주십사라고 끝을 맺으십니다.(P.41)  

  지금껏 내 기도에, 내 가족을 위한 기도에 열중했던 내 얼굴을 뜨겁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기도는 먼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에게서 멈춘다는 기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어 주었다. 그의 이러한 신앙의 순수함이 여러번의 간증과 세미나를 통하여 때가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책의 오타가 너무 많다. 이어령씨가 오타를 내었다고 생각할 수 없으니 출판사의 책임이려나? 설령 이어령씨가 오타를 내었다고 할지라도 출판사에서 교정을 충실하게 봤다면 이 정도로 오타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충 눈에 들어오는 오타들을 적어본다. 

  124p 6번째 줄 (들였던 것입니다.=>드렸던 것입니다.) 170p 3번째 단락 첫번째 줄 (흥동백서=>홍동백서) 178p 9번째 줄 (단신을 믿겠노라고 사다처럼=>당신을 믿겠노라고 사사 입다처럼) 262p 첫번째 줄 (목사님의 대한 애길=>목사님에 대한 이야길, 혹은 목사님에 대한 얘길) 262p 두번째 단락 네번째 줄(집회를 시작하는=>집회를 시작하는데) 마지막 페이지 2번째 (이어령 선생님와=>이어령 선생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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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
마리아 블루멘크론 지음, 유영미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고구려가 자신들의 역사라고 우기는 중국의 생떼와 이를 기정사실로 만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에 알려진 티벳. 신강자치구와 마찬가지로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는 곳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 티벳은 그저 무협지에서 서장으로서, 혹은 동북공정과 맞먹는 프로젝트인 서남공정으로서, 혹은 달라이 라마, 혹은 승려의 나라라는 막연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알 수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에 대하여 이야기해 준다.  

  히말라야라...우리에게 히말라야는 오은선에 의하여 14좌가 모두 정복된 곳이며 산악인 윤치원씨가 실종된 곳이다. 우리에게 히말라야는 도전이라는 낭만을 불러일으킬만한 세계에서 높은 산봉우리 중의 하나일 뿐이다. 도전하다가 죽는다면 그것 또한 개인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이지 타인에 의하여 강요된 생존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어린 아이들을 비롯하여 수십만의 티베트인들에게 히말라야는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는 미아리 눈물 고개이며, 굴종과 자유 사이에서 목숨을 걸어야 투쟁의 공간이다. 이 투쟁의 공간을 탐딩과 치메와 돌커, 리틀 페마, 돈둡, 롭장, 락커는 어던 마음으로 넘었을까? 그들을 떠나 보내는 이들의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떨까?   

  부모님은 너희와 함께 살기 싫어서 너희들을 떠나보낸 것이 아니었어. 너희들이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도록 다람살라(Dharamsala)에 있는 달라이 라마에게로 보낸 거야. 부모님은 너희들이 티베트에서처럼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들지 않기를 바랐어. 또 티베트인 선생님이 티베트 말로 수업하는 학교에 다니면서 너희들이 티베트 고유의 문화에서 성장하기를 바랐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를 누리기를 바랐어. 너희들을 떠나보내기로 결정하기까지 부모님은 무척 상심했을 거야. 그리고 떠나는 너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울었을 거야.(P.8 ~ 9)  

  "노란색은 우리의 땅을, 초록색은 물을, 붉은색은 불을, 흰색은 구름을, 파란색은 하늘을 상징하는 거란다."(P.94)   

  느기 닝 니 체위 우. 사랑스런 우리 아가, 우리 아가(P.193)  

  1950년 이래로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나는 너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속으로 얼마나 되뇌였을 것이며 울음을 삼켰을 것인가? 떠나는 아이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 엄마에게, 아빠에게 버림받았다는 배신감과 상실감, 혹한과 싸워야 하는 고생, 공안의 추적에 대한 두려움, 인도에서의 미래에 대한 답답함과 암울함. 떠나는 자와 떠나보내는 자의 마음이 타르초를 통하여 국경에 걸릴 때 그들은 남이 아니라 나의 형제가 되고 가족이 된다.  

 

http://greensol.tistory.com/151?srchid=IIM21tIp000&focusid=A_184CFB044B6F411952663(출처) 

  그들은 왜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히말라야를 넘어야 했을까? 왜 부모들은 아이들을 멀리 인도로 보내야만 했을까? 중국의 지배는 단순히 집권층이 바뀐 것이 아니다. 문화가 깨어지고 전통이 단절되고,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롭장의 말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증언한다.  

  나는 열한 살에 승려가 되었어요. 당시 우리 사원에는 삼백 명의 승려가 살았지요. 하지만 그 후 열일곱 명의 승려가 구금당하고 오십 명이 넘는 승려들이 인도로 도망쳤어요.. 남아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중국인들과 타협했고, 심지어 어떤 승려들은 중국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지요. 가장 난감한 것은 공동체 안에 더 이상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아무하고도 터놓고 대화할 수 없었어요. 누가 변절자가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P.180 ~ 181)  

  신뢰할 이가 하나도 없는 곳,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터 놓을 수도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겠는가? 티벳사람들은 오늘도 자유와 신뢰, 동료를 찾아 히말라야를 넘는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나이의 아이들도 초라한 장비를 가지고 히말라야를 넘는다. 이들의 앞길에 함께 할 수 없는 부모들은 타르초에 자신들의 간절한 바램을 담아 하늘로 올려보낸다. 바람은 마치 이들의 바램을 하늘로 실어 나르듯 오늘도 히말라야를 휩싸고 돈다. 

  책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타르초를 보는 순간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던지. 동북공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고구려는 우리 역사만을 줄기차게 외치는 나에게 서남공정에 의해 희생되어 가던 티벳인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아주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종교는 다르지만 오늘도 히말라야를 넘는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의 은총과 예수님의 평화가 그들과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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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5-0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좋습니다. 몇 년 안에 히말라야를 가려고 하는 저는...
생각지도 못 했던 곳에서 가려진 히말라야를 보았습니다.

saint236 2010-05-07 13:34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보면서 그렇게도 안울려고 노력했는데 책에 나온 타르초 사진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마녀고양이 2010-05-07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입니다. 티벳도 참 슬픈 나라인 듯 합니다.

saint236 2010-05-08 22:55   좋아요 0 | URL
그렇죠. 티벳이라는 나라도 참 슬픈 나라입니다.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는 최소한 티벳이나 신강 문제만큼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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