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흐리고, 비


오랫동안 가물다 비가 내려서 좋긴한데 대신 꽃잎이 많이 떨어졌다. 

비만 오면 좋을텐데 바람이 부니 봄꽃들로서는 좀 억울할 것이다.


1. 안 좋은 일이 있었다. 

미주알 고주알 쓰진 않겠지만 하도 마음이 상해서 잠도 못자고 한동안 좀 부글댔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안정이 됐고, 점점 나아질 것이다.


1-1. 그런 일이 있기 전 한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난 한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지금까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안 당해 본 일이 없는데 그때마다 사람이 바닥을 치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위로삼아 얘기하던데 그거 다 뻥이라고 했다. 올라가긴 뭘 올라가냐고. 올라 간다고 나아질 것도 없다고. 단지 바닥에 내려 앉았을 때 처음보단 좀 단단해져서 덜 놀라고 당황하지 않는다는 정도라고.과연 그 말이 맞겠다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지 일주일쯤 지나서 그 일을 당했고 또 일주일이 지나서 새로운 일로 마음을 확 긁히고 말았다.

   

1-2. 나는 정중동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떠한 것에도 흔들림이 없는 사람. 그도 그럴 것이 그 두 가지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다 과거에 경험해 봤거나 연장선상에 있던 일이다. 그러나 난 그런 사람은 결코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안다. 대신 이런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욕쟁이 여사. 그러다 나중엔 욕쟁이 할머니가 되겠지. 

뭐 그런다고 해서 정말 욕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뭐든 마음에 쌓아두지 않고 사안에 대해 그냥 명중시켜 버리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정중동의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가만히 있으면 정말 가마니로 보겠더라. 그래서 그 사람을 앞으로 다시 만날 것 같지는 않아 이메일로 당신이 지금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낱낱이 까발려줬다. 그랬더니 속이 좀 후련해졌다. 까짓 거, 내가 앞으로 세상을 얼마나 더 살겠다고 할 말도 못하고 산단 말인가. 하도 하고 나오는 행색이 우습고 구려서 (아니 구린 것도 아니다. 이건 완전 저능이다.) 한마디로 까줬다. ㅎㅎㅎ 

하지만 그렇다고 잠을 잘 잤던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잠은 못 잤는데 그래도 할 말은 해줬다는 것에서 뭔가 차오르는 쾌감은 있었다. 무엇보다 다시 만날 것도 아닌데 할 말도 못하고 안 만나는 거 보다, 할 말은 하고 안 만나는 것이 낫지 않나?  

그러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난 단순히 욕쟁이가 되려는 게 아니라 싸움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걸 알았다. 상대의 급소를 정확히 알아 명중시키는 사람.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지난 날을 회상하며 그때 내가 좀 참고 있을 걸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을까 후회한 적도 있는데 과거는 과거고, 난 평화주의자는 못 될 것 같다. 평화주의자가 되려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허허거려야 하는데 글쎄 막상 상황에 돌입하면 그게 안 된다. 아직도 덜 여물어서일까? 아직은 싸우는 쪽을 택하고 싶다. 물론 항상 싸우겠다는 건 아니고 적어도 싸워야 할 때는 싸우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해야하는 일은 어설프게 사랑하고 평화하는 일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일하고 최선을 다해 싸우는 일인거 같다. 사랑과 평화는 진심일 때만 하는 것이여야 하는 것 같다. 


1-3. 내가 그렇게 아파서 끙끙거리는 동안 나를 위로해 줬던 것들이 있었다.


사실 안 좋은 일을 당할 땐 뭐가 눈에 들어오겠냐만, 특히 책에 눈을 박고 있기는 쉽지가 않은데 나는 요즘 저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 잡고 있는 중이다. 

정말 괜찮은 책이다. 특히 저자의 논조가 뭐랄까, 이 저자야말로 진정한 욕쟁이 할아버지인 것 같다. (실제로 도수 낮은 욕이 등장하기도 한다) 냉소적이면서도 거침이 없고, 정확한 곳을 긁어주거나 냉정하게 찔러준다. 한마디로 직설화법의 달인. 정말 아껴 읽고 싶은 책인데 이 책의 큰 장점은 그렇다고 정말 아껴 읽으면 언제 다 읽을지 모를 정도로 두껍다는 것과 저자가 인세를 포기하는 바람에 말도 안 되게 가격에 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이건 책 읽는 사람에겐 실로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솔직히 요며칠은 거의 모든 것을 작파하다시피(? 그래봐야 특별히 하는 일도 없다. ㅎ) 하고 보고 있는 중인데 정말 재미있다. 이 드라마는 한마디로 다윗과 골리앗 구조인데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늘 다윗 즉 송중기가 이긴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드라마는 송중기가 아닌 이성민의 드라마란 생각이 든다. 이성민이 진양철 역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난 솔직히 이성민을 보기 위해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나이를 먹었다 싶다. 송중기가 안 보이고 늙은 진양철이 보이다니.ㅠ) 

아, 그러고 보니 영화도 나름 꽤 챙겨봤는데 여기선 생략한다.

아무튼 속상할 때 마음에 드는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는 건 영혼의 스프를 먹는 것과 같다. 

하지만 속 아플 때 이런 걸로 위로 받기 보단 루틴을 유지하는 게 오히려 더 빠른 회복의 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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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4-07 0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드리려 했더니 마음이 안녕하지 못하시네요.
마음이란게 그렇습니다.
좋을 때는 온 세상 바닷물을 다 담아도 될 만큼 넉넉하다가도
속상할 때는 바늘 하나 꽂을 데가 없는게 사람 마음입니다.
따지고 보면 지구별에 잠간 왔다 가는 인생살이가 다 외롭고 고단한 일이지요.
좋아도 한세상 싫어도 한세상 아닌가요.
마음에 담지 말고 세월의 강물에 띄워 보내며 사시길 바랍니다.
재미있는 책과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요.
힘내세요. 스텔라님^^

stella.K 2023-04-07 10:59   좋아요 2 | URL
아, 니르바나님. 저 안녕해요.
저 잘 자고 일어났구요,
오늘은 아침 잠도 길게 늘어지게 잤어요.
저는 잠은 포기하지 못하는 체질이라
며칠 못 자면 며칠은 또 원수 갚듯이 잘 잡니다.ㅋ
그러게요. 정말 좋을 때는 온 세상 바닷물을 다 담아도 될 만큼 넉넉하다가도
속상할 때는 바늘 하나 꽂을 데가 없는게 사람 마음이니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 사람하고 내내 잘 지냈거든요.
알아 온지도 20년이 넘었구요. 물론 드문드문 만나서 그렇지.
알고 보면 분노조절장애자였나 싶더군요.
전 온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무튼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페크pek0501 2023-04-07 1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살다 보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곤 하죠. 누구나 그럴 거라고 짐작해요.
저는 후회가 될 때 괴롭더군요. 어떤 땐 참지 못해 말로 확 질러 버려서 후회하며 괴로워합니다.
어떤 때는 바보같이 말 한마디 못하고 참기만 한 게 화가 나서 괴롭고요.
지금 와 돌아보면 어느 쪽을 택하든 저는 괴롭고 후회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알맞은 수위를 모르겠거든요.
괴로울 땐 책도 좋지만 맛있는 음식을 드세요. 배달해 먹는 것도 때론 위로가 된답니다.
자신을 위한 위로의 음식인 거죠. 자신을 사랑해 주기.^^

stella.K 2023-04-07 11:50   좋아요 3 | URL
물론이죠. 먹는 걸 어떻게 포기하겠습니까?
나름 잘 먹고 있습니다.ㅎㅎ
맞아요. 두 가지 다 후회해요.
그런데 그렇게 두 가지를 다 후회한다면 그건 어쩌면
공격본능 보단 방어본능이 더 많은 사람이 그러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전 질러버리고 후회할래요.
이번 경우는 상대가 먼저 불같이 화를 내서 번진 일이거든요.
그 사람이 그런 건 과거에 본인도 뭔가의 일을 겪어왔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그것까지 떠 안고 무한히
인내해 주고 봐 줄 수는 없잖아요.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할 일인데. 안타깝죠.

꼬마요정 2023-04-07 15: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 토닥토닥 힘 내시면 좋겠습니다. 감정 없이 객관적으로 사건을 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정중동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정말 쉽지 않아요ㅠㅠ 당장 올라오는 그 화나 억울함 때문에 좀 더 멋지게 쏘아붙일 수 있는 걸 그 때 못하더라구요. 그래도 스텔라님 멋져요. 아마 다음번엔 더 잘 지를 수 있지 않을까요? 담에 이런 일 있으면 꼭 이렇게 해야지, 이런 게 쌓이는 게 바로 연륜이지 싶습니다. 사실 바닥을 치고 있을 때도 힘들고 성공을 해도 공허하고... 삶이란 참 어렵네요.

송중기보다 이성민이 눈에 들어온 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ㅎㅎㅎ 예전에 영화 <스피드> 보고 키아누 리브스 좋아서 영화 <드라큘라> 보고 게리 올드만만 봤던 기억이 나네요. 아, <갱스 오브 뉴욕>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때문에 봤는데 영화 보는 내내 다니엘 데이 루이스만 봤죠. 다들 연기가 정말... ㅎㅎㅎ

stella.K 2023-04-07 18:56   좋아요 3 | URL
그렇죠? 정말 요즘은 빛 좋은 주연 빛나는 조연같습니다.
감정이입이 막 되더라구요.ㅋㅋ
무슨 미쿡 드라마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책을 사 보고 싶다는 생각도 막 들어요.이런 스토리는 좀
보고 배울 필요가 있거든요.

위로의 말씀 고마워요.
그러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거겠죠?
주말 잘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3-04-07 22: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들과 싸우는 게 잘 안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늘 좋은 게 좋은 거! 그러고 살지만 실은 속은 좀 문드러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확 내지르고 싶은데 가족들에겐 되는데, 밖에 나가면 그게 잘 안되어 뭐랄까요? 좀 제 자신이 비겁하단 생각이 듭니다. ㅋㅋ
그래서인지 전 용기 있는 사람들이 좋아요.
이건 아니다! 논리적으로 빡~~ 두 손 두 발 들게 만들어 버리는 사람 말이죠.
이건 연습이 많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암튼 할 말이 있는데 끙끙 거리지 않고 빡!!!!! 내뱉고 나면 순간 묵은 스트레스는 좀 풀리지 않으셨을까? 싶네요.
이제 시간이란 게 마음을 다스려 주겠죠?^^

그나저나 저 책이 그런 책이었나요?
<세이노의 가르침>이요!
저 책 제 남편이 웬일로 자기 돈을 주고 서점에서 사왔길래, 전 저 책이 경제서적인 줄 알았습니다. 경제서적치곤 제목이?? 그러면서 겉표지만 봤네요. 남편은 주식관련 경제 서적만 좋아하거든요. 아님 자기 계발서만ㅋㅋㅋ
남편이 다 읽고 나면 저도 한 번 받아서 읽어봐야겠군요^^

편안한 밤 되시옵소서!!!

stella.K 2023-04-08 19:02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하지만 가장 좋은 건 역시 안 싸우고 평화롭게
잘 사는 거겠죠.
사실 저도 다혈질이라 싸움은 잘 못해요.
어떤 사람은 상대가 화가나면 오히려 냉정한 사람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싸움을 잘하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다시 안 만날 생각하고 싸우는 거고. ㅎㅎ
근데 명백한 건 상대가 먼저 화를 냈다는 거죠.
그럼 벌써 지는 싸움을 하는 거거든요.
싸울 때 화내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반은 이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자기계발서쯤 될 것 같아요.
이 세이노라는 사람 블로그에선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더군요.
책으로 낸 것도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은 거구요.
저는 자기계발서를 잘 안 읽는 편이라 이렇게 싸게 나오고 평도 좋은데
안 읽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합니다.ㅋ
경제나 사회를 보는 식견도 나름 탁월한 면도 있고.
나이 먹으면 어디가서 누가 이런 가르침을 주겠어요?
재미는 있는데 진도는 잘 안 나가요. 마냥 읽어야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책나무님도 좋은 휴일 보내세요.^^

희선 2023-04-08 0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분이 안 좋을 때 위로가 되어준 게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런 것도 없었다면 더 안 좋았겠습니다 사람이 늘 흔들리지 않기 어렵겠죠 하고 싶은 말 하셔서 마음이 편해지셨다면 좋겠네요 저는 별 말 아닌데도 실제 하는 말은 아니고, 이렇게 쓰는 말도 다른 사람 기분 나빴으면 어쩌나 할 때도 있어요 별거 아니어도 그러네요 사람과 사귀는 건 쉽지 않습니다


희선

stella.K 2023-04-08 19:13   좋아요 1 | URL
사실 제가 진짜 위로가 되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인 것 같습니다.
오래 전 저의 싸부님께서 뭔가의 분노가 있으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거든요.
분노를 글로 쓰는 거죠.
아, 근데 글 쓰는 건 너무 어렵운 것 같아요.
사람과 잘 지내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바로 10분전까지만 해도 잘 지내다도 바로 10분 뒤에
돌변해서 물어 뜯거든요.
그 사람하고 만나고 헤어진지 3시간이나 지났을까요?
그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밑도끝도 없이 화를 발칵 내는데 얼마나 황당하던지.ㅋㅋ

yamoo 2023-04-11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네요....어떤 일이 있으셨길래..^^;;
저도 1-1 지인 말에 무조건 동의합니다..ㅎㅎ

세이노의 가르침을 그제 주문해서 오늘 왔습니다. 책이 어떻길래 그리도 좋은 평이 많은지 거들떠나 봐야 겠습니다!

stella.K 2023-04-13 09:46   좋아요 0 | URL
세이노 야무님은 싫어할지도 몰라요.
그냥 기대하지 말고 보세요. 뭐 책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지 않습니까? ㅎㅎ

페크pek0501 2023-04-12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에도 뽑히고 좋습니다.
축하드립니다.^^

stella.K 2023-04-13 09:4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하루요!^^
 
엄마의 정원 푸른사상 소설선 44
배명희 지음 / 푸른사상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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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의 작품집이다. 하지만 작가는 지난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와인의 눈물'이란 작품집이 있다고 한다. 본 작품집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안정되고도 웅숭깊은 문체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특별히 에로틱한 문장도 자주 보이기도 하는데 솔직히 그 부분은 좀 놀라기도 했다. 


물론 이 놀라움은 나 개인적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문장을 접하면 세 가지 정도로 놀라게 된다. (그것은 실례일지 모르겠는데) 저자가 초로의 삶을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뭐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금욕주의자가 되지 않나? 그러다 보면 아무리 작가라고 해도 성애적 표현도 좀 줄거나 에둘러 표현할 것 같은데 상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직설적이다. 그러다 보니 작년 말에 읽은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모 작가가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책에서, 작가라면 성애적 표현을 건너 뛰거나 축소해서 표현하지 말라는 취지의 가르침이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난 어쩌면 소설가는 되지 못하겠구나 했다. 솔직히 영화를 보든, 소설을 읽던  난 그런 표현들이 불편하고 어색하다. 그런 내가 그렇게 쓸 일도 없지 않겠는가. 아무튼 저자의 문체나 표현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밑줄 긋게 되는 문장도 꽤 있었다. 이를테면,


라면 용기에 젓가락을 넣는 순간에는 모든 구별이 사라졌다.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부자인지 가난뱅이인지 상관없었다. 모든 것은 뜨거운 국물 속에 녹아들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심장에 차곡차곡 쌓인 소외감과 불만이 더운 국물을 삼키는 동안 희미해졌다. 누군가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는 것처럼 편안해지는 거였다. ('광장' 12p)  

또는 이런 문장은 어떤가?

내게는 이미 한도가 넘은 신용카드, 그에게는 내 손을 넣어줄 빈 주머니가 있었을 뿐이다. ('엄마의 정원' 90p)


이런 은유적이며 사유적 문장을 볼 수가 있어 저자가 정말 소설에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품 저마다 짙은 고독과 쓸쓸함이 베여있어 답답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어떤 작가든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연대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작가가 40대를 산다면 꼭 40대의 시각으로 글을 쓰고, 60대면 60대 다운 시각과 정서를 가지고 글을 쓴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긴 하겠지만, 그래서 나 개인적으로는 독자로서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작가가 있는데 그건 고 박완서 작가다. 즉 나는 20대 초반 또는 10대 말쯤에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또 작가는 한창 열심히 작품을 써 내기도 했다) 박완서 작가가  글 잘 쓴다는 건 알겠는데 그 나이에서 오는 사고의 폭을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다. 그런 채 작가는 노년까지를 자신의 작품 속에 그렸을 것이고,  나는 그 무렵부터 작가를 잊기 시작했을 것이다. 근데 참 이상하지. 청(소)년 때는 중년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중년이 노년을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지금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 가장 기대가 된다.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저자의 작품은 노년의 삶을 정면에서 그리거나 어떤 식으로든 작품 속에서 표현해 주고 있는데 지금은 너무 절절하리만치 이해가 간다. 그건 당연하다. 청년은 노년을 잘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중년은 곧 도달하게 될 삶이고 우리의 부모가 이미 도달한 삶이기에 예사롭지가 않다. 


어쨌든 그러면서 작가는 인간 전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종차별의 문제라든지, 푸어 하우스의 문제, 재건축과 왕따의 문제 등등을 날카롭고도 노련한 문체로 다루고 있다. 작품을 읽으면서 역시 작가는 이렇게 사회 전반을 돌아보면서 소외의 문제를 대신 읊어주는 얼리버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편 드는 생각은,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의 책이 과연 얼마나 알려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나마 한류의 영향일까 아니면 매스컴의 영향일까. 우리나라 작가들이 국내외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젊은 작가나 문청 때부터  이름을 널리 알려 온 일부 작가의 일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가 힘든 것 같다. 보통 작가의 글은 나이 들수록 농염하고 잘 쓸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건 또 어쩌면 작가의 체력과도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작가들은 집중력도 좋고 왕성하게 글을 쓸 수 있지만, 나이 들수록 글은 신중해지는 것 같다. 건강도 예전만 같지 않고. 그러니 젊은 작가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일견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꼭 일반적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엔 좀 의문이 남기도 한다. 중노년의 작가도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걸 수시로 보여주고, 문학이나 출판계도 그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 


사실 독자의 입장에서 전반적으로 저자의 문장이나 필력은 인정하지만, 그 짙은 고독과 쓸쓸함은 감당하기가 좀 힘들었다. 독자는 단순하다. 심각한 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조금 더 다른 논점과 관점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약간의 아쉬움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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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4-01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문학에도 많은 작가가 나오는데 그들의 글을 제대로 못읽어내는게 좀 미안할 때가 많아요. 스텔라님처럼 이렇게 읽어주는 분이 있어 이렇게 또 새로운 작가를 만나기도 하네요. 라면용기 속 젓가락의 표현 참 좋네요. ^^

stella.K 2023-04-02 18:25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우리나라 작가를 우리나라 독자가 애정해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줄까요? 그런데도...ㅠㅠ
표현 좋죠?^^

moonnight 2023-04-02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 K님^^ 저도 같은 지점에서 나는 소설가는 못 되겠구나 생각했었네요. 물론 될 능력부터 전혀 없지만서도요 ㅎㅎ^^;;;;;
죄송하게도 첨 들어보는 작가와 책이에요ㅠㅠ;;;;

stella.K 2023-04-02 18:28   좋아요 0 | URL
ㅎㅎ 원래 능력이 없겠습니까?
마음이 없는 거겠죠.
제가 글공부했을 때 에로틱하게 쓸려고 하니까 진짜 쓰더라구요.ㅋㅋ
하지만 다시 못하겠더라구요.ㅠㅠ

페크pek0501 2023-04-02 0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이 리뷰다운 리뷰를 쓰셨다고 봅니다. 잘 쓰셨네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 중 잘 쓰는 작가들이 많지요. 그럴 경우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건 실력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운이 따라야 한다, 겠지요. 잘 쓰는 것과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별개 문제인 듯.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갖추기도 쉽지 않고, 문장이 좋으면서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쉽지 않죠. 그래서 특히 소설은 늘 고지에 자리 잡은 무엇으로 여겨지곤 해요.
해서 소설을 좋아하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너무 어렵거든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23-04-02 19:02   좋아요 1 | URL
잘 쓰는 것과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별개라는 말
백번 동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작가들은 조금이라도 그 거리를 좁힐 가능성이
많겠지만 나이든 작가는 그런 거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내가 쓰고 싶은대로
쓸 수 있는 장점이 더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어찌보면 우리나라 작가는 조금 더 이기적이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눈치 보지 않는 작가.
에효, 말은 이렇게 해도 쉽지 않겠죠?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2023-04-02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2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23-04-02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명희 작가님이 스텔라님의 이 리뷰를 보면 힘이 불끈 나겠는데요.
자고로 자기를 알아주는 분이 최고니까요.
문학지망생들 최고의 등용문이었던 신춘문예를 통과하는 많은 분들 중에서
문예지에서 다시 작품을 청탁받아 다음 작품을 출간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소설가로 일가를 이루기도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기는 알라딘 이달의 리뷰도 아무나 뽑히는게 아니니까요.^^

stella.K 2023-04-03 15:58   좋아요 1 | URL
아유, 그 무슨…ㅎ
그런데 그런 말이 있긴하더군요, 좋은 작품을 쓰기보단 많이
써 보라고. 그게 결국 작가를. 만드는 거라고요.
사실 관심을 받지 못하면 위축되서 안 쓰게되기도 하거든요.
그걸 뛰어넘기가 참 쉽지 않은 거 같아요.ㅠ

레삭매냐 2023-04-03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보니 오래 전에 나온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서구에서 다시 평가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아
요.

좋은 책이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독자들에게 널리 알
려지지 않아 사장되는 책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책과 독자와의 만남 그리고
흥행, 어쩌면 운명일 지도요.

독자는 단순하다, 공감합니다.

stella.K 2023-04-03 17: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인가 후보에 올랐다는 얘기들었는데 아직 발표 안났나요? 읽어보진 않았지만 시나리오
를 썼던 사람이라 잘 썼을 것 같아요. 한강 작가 이후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합니다.^^

yamoo 2023-04-04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이 리뷰쓰신 엄마의 정원이네요. 스텔라 님두 읽으셨나봅니다. 배명희 작가가 글을 잘쓰는가 봅니다. 글을 잘쓰는 것과 소설 작품이 좋은 건 저는 별개로 생각하는 1인지라..
서사가 없고 문체만 좋은 한국 작가들을 많이 봐서뤼..--;;

한국소설은 더이상 읽지 않기에 이 소설이 좋은지 안좋은지 확인할 길이 없네요...단지 스텔라 님 리뷰로 좋은 건가 보다..생각하고 있겠슴돠~~ㅎㅎ

stella.K 2023-04-04 18:41   좋아요 1 | URL
그래도 우리나라 작가를 많이 사랑해 주세요.ㅠㅠ ㅋ
 


#문동챌린지 #문동책장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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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3-29 1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읽었지만 부활, 노인과 바다, 를 읽었지요.
부활이 꽤 분량이 많아 보이네요. 저는 축약된 책으로 읽은 모양입니다. 한 권짜리인 걸 보니...
즐거운 독서 하시길... 저는 앞으로 세이노의 가르침, 을 읽을 겁니다. 두꺼워서 보기만 해도 뿌듯한 책이죠.^^

stella.K 2023-03-29 19:15   좋아요 1 | URL
아, 세이노의 가르침 저도 조금 읽었는데 좋더군요.
문체가 톡톡 튀면서도 색다른 통찰을 줘서 저자의 내공이
남다르구나 했어요. 저도 틈나는대로 읽어보려구요.

맞아요. 저도 성인이 되서 읽은 부활은 한 권짜리였어요.
범우사였던 것 같은데...
문동은 한 권이 400페이지 가량되요.
뭐 아무래도 옛날이고 러시아 상황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
다 이해하며 읽은 건 아니지만 남자주인공 네흘류도프만 쫒아도
좋더라구요. 매력적이예요. 현실에서 만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겠지만. ㅋ

아, 사진은 올해 문동 30주년이라고 이벤트하는 거예요.
SNS에 인증샷을 올리고 주소 알려주면 책갈피를 준다네요.
이달 말까지니까 얼마 안 남았죠?
몇권 더 있는데 그것까지는 차마 못 올리겠어요.
그럼 책탑이 무너지는 사태가...ㅋ

yamoo 2023-04-04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 벨로....이 작가의 책은 죄다 지루하더라구요. 부활은 저도 문학동네판으로 읽었습니다만 타출판사 것두 사두었습니다. 부활은 진짜 명작이라 생각하고, 톨스토이의 삶...그 자체같아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이에요~~ㅎ

stella.K 2023-04-04 19:01   좋아요 1 | URL
그래도 저 이 책으로 지난 달에 이달의 리뷰 당선되서
적립금을 챙겼다는 거 아닙니까? ㅎㅎ
그때 야무님 솔 벨로의 책 아무래도 팔아야할 것 같다고 쓰셨는데
파셨나요?
미쿡 작가의 책이 좀 호불호가 많더라구요.
저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좋다고 하는 것 같던데...ㅋ

yamoo 2023-04-05 17:08   좋아요 1 | URL
솔 벨로의 책을 아무도 안사더라구요..--;;
그냥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ㅎㅎ

미국 작가의 책들중 맥스웰이나 윌리엄 트레버의 책들은 정말 좋습니다. 카버의 단편집들도 좋구요. 헌데 너무나 많은 작가들이 있어 선별하기도 힘들어요..ㅎㅎ
 
부활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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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세 번째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초등학교 때였다. 당연 어린이 세계명작 뭐 그런 정말 아이들 눈높이에 맞혀 나온 것을 읽었고, 두 번째는 성인이 되어서였다. 근데 이상하지. 성인이 되어 읽으면 더 의미 깊게 읽을 것 같은데 어릴 때 읽었을 때 보다 별 감동 없이 읽었던 것 같다. 그때는 또 소설이 시큰둥해져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지금 다시 읽고 나니 '역시 톨스토이!'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읽었다. 그리고 자꾸 어린 시절 이 작품을 읽었던 때가 생각났다. 


비록 어린이 세계 명작이라고 하지만 읽는데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었던 걸 보면 출판사가 나름 편집을 잘한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그 시절은 내가 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고, 동시에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때이기도 해서 더 의미 깊게 읽지 않았나 생각한다. 카튜샤와 네흘류도프의 사랑도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뭔지는 모르겠지만 웅숭깊은 톨스토이의 문장이 인상 깊어 계속 따라 읽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모름지기 작가는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하는 일종의 문학의 전범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이후 난 이러저러한 변화를 겪으며 요 모양 요 꼴이 됐지만, 그래도 그 시절은 정말 타락하기 전의 카튜샤처럼 순수했던 것 같다.  

(그때 톨스토이를 계속 파기 시작했더라면 지금쯤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르는데...ㅠ)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읽은 '부활'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인정해야 하는 건 톨스토이의 사고는 정말 방대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철학과 법학, 신학의 바탕 위에 고통받는 민중과 귀족들의 이야기를 그야말로 산성처럼 쌓아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나의 일천한 사고가 그것을 다 쫓아갈 수 없음이 아쉬웠다. 하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뭔가 머리가 쨍하고 차가워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독서는 실로 얼마만인가, 내가 톨스토이를 너무 잊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부끄럽게도 난 장편은 '부활' 밖엔 읽지 못했고, 몇 편의 단편을 읽은 게 전부다. 그의 주요 작품은 손도 못 댔다. 뭐 할 말은 없지만 점점 고전에 대한 진입장벽이 만만치 않고, 새로운 책은 항상 정신 못 차리게 나오고 있으니 늘 순위에서 밀린다.)           

기억이란 놈은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다시 펼 쳐들자 예전에 읽었던 이미지들이 하나하나씩 떠올랐다. 특별히 카튜샤의 약간의 사시. 그동안은 가끔씩 머릿속에만 빙빙 돌더니 읽기도 전에 그녀에 대한 인물묘사가 떠오른다. 그리고 자주 눈에 뜨였던 몇 개의 단어들도. 


어렸을 땐 다른 건 관심이 없었고 오직 카튜샤와 네흘류도프가 사랑을 이룰 것인가 말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지금은 로맨스나 멜로엔 별관심이 없지만, 그 시절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 아이가 그것에 관심이 없다면 다른 무엇에 관심을 두겠는가. 결국 카튜샤와 네흘류도프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꽤나 아쉬웠다. 카튜샤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함께 유형지까지 동행했는데 그쯤 되면 아름다운 엔딩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세상은 반드시 노력한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세드엔딩이나 열린 결말도 있다는 걸 한참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난 그런 결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 영화나 소설을 접하면서 세드엔딩이나 열린 결말이 해피엔딩 보다 사람의 뇌리에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알았다. 


만일 이 작품을 해피엔딩으로 했으면 이렇게 삼독까지 할 생각을 못했을 것 같다. 이건 확실하다. 무엇보다 내가 이 작품을 보는 눈이 예전과 달라졌다. 물론 이미 결말을 알고 읽기 시작한 것도 있지만, 네흘류도프의 모든 선한 노력으로 카튜샤와 사랑을 이룬다면 결국 그가 한 여자를 구원했다는 얘긴데, 그러면 이 이야기는 한낱 그렇고 그런 가부장 소설이 되었을 것이고, 톨스토이도 반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니겠지만 한낱 보통 작가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가? 그것도 남자가 여자를? (물론 난 여자가 남자를 구원하는 얘기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럴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착각이고 허세일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남자는 한 여자를 정복했다는 생각으로 바뀔 것이다. 내가 너를 그 모든 불행에서 구원했어. 하며 상대를 자기에게 굴종시키려 하지 않을까. 경제적 환경적 구원은 진짜 구원이 아니다. 그러면서 사랑과 구원을 결혼에 결부시키면 이야기는 최악이 된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고 또 하나의 시작이다. 어린 시절 읽는 동화마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은 얼마나 가식적이고 무책임한 결말인가.  


만일 이 이야기도 둘이 결혼했다면 어쩔 뻔했을까. 네흘류도프 자신이 지은 죄가 있으니 처음엔 무한 인내하겠지. 카튜샤는 카튜샤대로 처음엔 고맙고 행복해 하지만 끊임없이 남자의 사랑을 확인하려 들지 않을까. 그러다 서로 지치고 불행해지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한 결말을 상상할 수가 없다. 오히려 둘이 사랑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야기는 더 풍성해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특별히 톨스토이는 카튜샤를 당대 그저 그런 여자로 그리지 않고 결말에 도달할수록 꽤 실존적인 인물로 그렸다. 열악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자기 스스로를 선택하는 인물로. 물론 그 배후엔 네흘류도프가 있어 가능했다. 카튜샤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면 그렇게 받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 사람 없이 못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구원이라고 하지 않는가. 또한 네흘류도프에 대한 용서도 가능했다.     


그도 그렇지만 역시 이 작품은 네흘류도프의 의식의 변화를 쫓아가는데 방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절 결혼하지 않은 도련님(귀족 남자)이 하급 여자를 취해 욕망을 채우고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는 건 어디에도 없다. 사실 이 작품은 어찌 보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될 수가 없다. 물론 그래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 소설이겠지만. 솔직히 계급을 떠나 사랑했던 사람을 그것도 까맣게 잊고 있다 우연히 10년 만에 법정에서 만났다. 그런데 상대가 부조리한 상황에 놓여있다. 내가 네흘류도프라면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을까? 처음엔 일말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몇 번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나름 무죄 박면을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곧 한계를 느끼고 어느 때가 되면 스스로를 놔버리지 않을까. 그래. 난 할 만큼 했어. 그리고 한동안 괴로워하다가 이내 동정하다 차츰 멀어지겠지. 가진 건 돈 뿐이니 상대가 유배지로 떠날 때 넉넉한 돈을 쥐어줄 수도 있다. 그리고 곧 미련 없이 잊겠지. 그녀와 난 처음부터 안 맞는 상대였어하며. 


사랑은 확실히 미친 짓이라고 하지만 네흘류도프는 정말 미쳤다.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특별히 물려받은 땅을 농노들에게 나눠주고 카투샤와 동행하지 않는가. 책에서 거듭 반복해서 네흘류도프의 말은, 카투샤는 아무런 죄 없이 누명을 썼고 나는 그녀의 누명을 벗겨주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라. 충분히 네흘류도프의 입장을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하나 같이 정당히 하라는 식이다. 


사실 사람들의 그런 반응은 그도 어느 정도 짐작했을 것이다. 소설에서의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점잖은 편인데 그건 아무래도 톨스토이의 개인적 취향을 반영한 것도 같다. 실제로는 더 현실적이고 가혹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준다는 건 어떤 사람에겐 근간을 흔들어 놓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듣는 데에서만 머무는 경우도 많다. 작품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 무서운 변화는 그가 더 이상 자신이 아니라 남들을 믿기 시작하면서 일어난 것이다. 그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들을 믿기 시작한 것은 자기를 믿고 사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으면서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이한 기쁨을 찾는 동물적 자아를 언제나 거슬러야 했다.  남들을 믿으면서 살면 해결해야 할 문제란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모든 게 이미 다 해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언제나 정신적 자아를 거스르고 동물적 자아를 위한 방향으로 해결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믿으면서 살면 항상 사람들의 비난이 따랐으나, 남들을 믿으면서 살면 사람들의 칭찬이 따랐다. (1권, 80~81p)

바로 여기서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잠자고 있는 양심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지는 대로 살면 편하긴 하겠지만 대신 진정한 자유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일생에 한 번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대로 살아 볼 필요가 있다. 그걸 외면하면 자기 생의 마지막날에 후회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했을 때 적지 않은 파장과 비난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훗날 후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네흘류도프는 그 내면의 소리를 기꺼이 들었고 실행했다.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사랑을 위하여. 그나마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우린 네흘류도프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것의 결과가 아니라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톨스토이의 페르소나다. 

톨스토이가 독실한 신자지만 원래 그렇게 독실했던 건 아니었다. 그도 50세까지는 방탕한 삶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 훗날 회심하고 독실한 신자가 되었는데 그래서일까, 네흘류도프에게서 톨스토이의 그림자가 느껴지기도 하고, 잠깐 등장하다 사라지는 인물 속에서도 역시 그가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그는 그다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않은 것도 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가 무슨 작품을 쓰고 저작권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아내는 거의 죽을 듯이 난리를 쳤다고 한다. 작가가 저작권을 포기한다는 게 그렇게 경을 칠 일인 줄 몰랐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작금에 들어서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는 자꾸 교회와 교인을 희화화하고 있다. 급기야 최근 대박을 터트린 한 드라마에서 이점을 지적하며 우려하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서양 고전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거의 대부분이다. 즉 다시 말하면 그 고전을 썼던 작가들은 끊임없이 신 즉 하나님과 인간의 이해와 화해를 모색했다. 어차피 신의 관점에서 인간은 타락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인간의 이야기 속에서 이것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타락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신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니까. 나는 소설가를 비롯해 이야기를 다루는 모든 스토리텔러들이 이것을 다시 한번 직시해 주길 바란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작품 속에 교회를 회화화하든 진지하게 표현하든 했으면 한다. 톨스토이 같이 오래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 구원이 무엇인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작품을 썼다. 오늘날의 스토리텔러들에게 과연 그런 진지한 고민이 있기나 한 걸까?                       


...... 인간은 인간이 교정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유일한 합리적 해결책은 무익하고 해롭고 비도덕적이며 잔혹한 짓을 멈추는 짓이다. 당신들은 지난 수 세기 동안 당신들이 범죄자라고 규정한 사람들을 처벌해 왔다. 그래서 범죄자들은 사라졌는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형벌 때문에 더욱 타락한 범죄자들의 수가, 또 인간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판사, 검사, 예심판사, 간수라는 범죄자들의 수가 불어났을 뿐이다.' 네흘류도프는 그럼에도 사회와 질서가 그나마 유지되는 것은 인간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합법적 범죄자들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부패와 타락에도 불구하고 서로 동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권, 335p)

이것은 톨스토이의 도전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어떠한 작품에도 구원과 사랑을 말하고자 했던 그. 그의 고민이 어떠했을지 우리는 다 알 수가 없다. 단지 조금이라도 알고자 원한다면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한 가지 부언하자면, 톨스토이의 작가 연보를 보면서 그가 부모를 모두 이른 나이에 여의였다는 것이다. 흔히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교하기 좋아하는데 그중 하나가, 그들을 부자와 가난한 자로 구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자인 톨스토이 보다는 가난한 도스토예프스키가 더 서민적이고 자기와 맞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부모가 없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했지만 부모가 성인이 된 후에도 생존했던 것으로 안다. 사람의 부재와 경제적인 가난. 어떤 것이 그 사람의 삶과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지, 나아가서 글 쓰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겠다. 요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런 구분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 톨스토이는 톨스토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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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3-22 2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2년전쯤 읽었는데 벌써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스텔라님 리뷰에서 부활에 대한 이런 심오함 것들을 많이 표현해주셔서 아무래도 다시 읽어야겠어요^^

stella.K 2023-03-23 11:27   좋아요 2 | URL
ㅎㅎ 기억이란 놈은 페페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약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툭하고 나올테니 걱정마십시오. 고전이 참 읽고나면 뿌듯한데 왤케 안 읽어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부활은 읽는데 시간이 거려서 그렇지 정말 좋았어요. 저도 2, 3년후에 다시한번 읽어 볼 생각입니다.^^

니르바나 2023-03-23 0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는 학교앞 만화방에서 만화책에 코박고 있을 때
스텔라님은 어릴 때 부터 톨스토이를 읽으셨다니 진짜 떡잎부터 다른 독서인이셨네요.
김지안 님의 책, <네 멋대로 읽어라>가 그렇게 해서 탄생했군요.
3월의 리뷰로 기대해봅니다.^^

stella.K 2023-03-23 11:33   좋아요 2 | URL
독서도 질량보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더라구요. 어렸을 때 독서한다고 어른되서도 하게되는 거 아니고, 어릴 때 안 했다고 성인되어서도 안하고 그렇지는 않은거 같더라구요. 제가 책을 내게된 건 정말 행운이었죠. 저는 만화를 지금도 못 본답니다.ㅠ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 2023-03-23 0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 때 이 소설을 처음으로 보셨군요 저는 초등학생 때 톨스토이 알지도 못했네요 지금까지도 읽은 게 단편소설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톨스토이는 단편소설 읽었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한편도 못 봤어요 둘 다 대단한 작가겠습니다 달랐기에 다른 소설을 썼겠지요


희선

stella.K 2023-03-23 11:41   좋아요 2 | URL
그때 그런 어린이 세계명작이 나와주지 않았다면 한참 후에나 읽었을 겁니다. 그때 책 한권 값이 페이퍼북으로 350원이었어요. 문방구에서 팔았는데 3권 사면 천원에 해 줬거든요. 희선님 상상이 안 가시죠? 그런 시절이 있었답니다. ㅋㅋ 지금 그런 책 못해도 7, 8천원은 줘야할걸요?ㅋ

transient-guest 2023-03-23 1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고전이 많이 있습니다. 톨스토이도 분명히 완독을 거쳐 여러 차례 다시 읽고 싶은 작가인데 언젠가 시작한다면 ‘전쟁과 평화‘로 하고 싶습니다. 오드리 햅번, 그리고 나타샤 왈츠로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stella.K 2023-03-23 11:48   좋아요 2 | URL
앗, 톨스토이를 아직 안 읽으셨나요? 하긴 저도 부활외엔 그의 주요작품은 영화로 봤죠. 책과 영화는 같은게 아닌데. 기왕 동력 받은김에 저도 전쟁과 평화를 읽고싶긴한데 워낙 장편이라 읽다가 포기할까봐 좀 그게 염려가되긴 하더군요.
꼭 한번 읽으십시오.^^

yamoo 2023-03-28 14: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걸 작년에 읽었는데...예상을 깨고 매우 매우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명불허전이란 말은 이 작품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왜 명성이 자자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고할까요...스텔라님 리뷰를 보니 다시금 장면 장면들이 떠오르네요~^^

stella.K 2023-03-28 14:21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죠? 그래서 고전을 읽어야한다고 그러는가 봅니다. 막상 다른 고전을 읽으면 고전할텐데. ㅋ 언젠가 얼핏 들으니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전쟁과 평화나 안나는 얼마나 잘 썼을까 그런 기대를 막 가져보게 되더군요.ㅋ

레삭매냐 2023-03-29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고저 -

전, 한 번도 읽지 못한 책이랍니다 ㅠ
톨스토이 읽어야지요 암요.

stella.K 2023-03-29 16:41   좋아요 1 | URL
헉, 의왼데요? 전당연히 읽으셨는줄ᆢㅎㅎ
꼭 읽으십시오.^^

페크pek0501 2023-03-29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활, 저는 읽었지요. 예전에 읽은 거라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요...
책장에 꽂힌 책을 보며 저건 읽었어, 그럽니다.ㅋ

stella.K 2023-04-07 18:15   좋아요 0 | URL
언니, 제가 미쳤나 봐요.
언니의 이 댓글 분명 봤는데. 답글 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안 달았네요. 미안해요.
근데 저 이달의 당선작 됐어요. 이럴수가...
이거 확인하는데 심장이 쪼그라 붙네요.
제가 왤케 소심해졌을까요? ㅠㅋㅋ

희선 2023-04-08 0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 님 축하합니다 주말 편안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3-04-08 09:35   좋아요 1 | URL
아, 희선님도 축하드려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니르바나 2023-04-12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 혜안이로군. ㅎㅎㅎ
월간 스텔라님, 이제 안뽑아준다고 불평 없기.^^

stella.K 2023-04-12 17:54   좋아요 1 | URL
당선 방법을 조금 알 것 같더라구요. ㅋㅋ
 

0. 흐림

지난 주일 비가 찔끔내린 후 이렇게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고 날씨만 흐리다.

이러다 어느 날인가 비가 오겠지. 뜸들이지 않기를...


1.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곤혹은 치르고 있는데 러시아내에서의 푸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고 한다.

이건 또 미국이나 서방 몇몇 국가도 다르지 않은데, 미국 같은 경우 트럼프의 인기가 바이든을 앞서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극우라는 것. 또한 그런만큼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들을 경쟁자가 아니라 적대자라고 보고 있다는 거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과연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정말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3차 대전은 예약됐다고 봐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와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10년을 맞이했다고 하는데 누군가 지금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 뭐냐고 물으니 평화라고 대답했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그처럼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평화를 바랄뿐이라고 했다나. 

과연 교황답다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평화를 바라지 않는다면 달리 무엇을 바랄 것인가. 


3. 난 아직 고양이 보단 개가 좋다. 나이들수록 개 보단 고양이를 키우라고 하던데 둘 다 키우지 않는 현입장에서 얘기할 바는 못되지만 그래도 키운다면 개를 키우고 싶다.

         

                                  TVN 사진 캡쳐


어제 '유키즈...'에 이번 튀르키에에 급파된 대원들과 역시 구조견으로 함께 간 토백이가 소개됐는데 정말 뭉클했다. 특히 토백이의 활약상이 나오는데 얼마나 가슴이 푸근해지고 좋던지.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구조대가 간다고 했을 때 저들의 마음이 과연 어떨까. 여진으로 인해 추가 건물 붕괴가 있을텐데 과연 저들은 어디에서 머물며 구조를 하는건가 궁금했다. 그들의 몸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지만 그들도 가족이 있고, 자식이 있고 구조하다 어떻게될지 모르는데 보내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래도 큰 부상없이 무사히 다녀와서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그 와중 토백이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였는데, 토백이는 김형철 소방위의 파트너로 말에 의하면 머리에 구멍이 날 정도로 그곳 현지인의 예쁨을 많이 받았고 또 그때문에 약간 군기가 빠졌다고 한다. 6년된 라브라도리트리버종이라고 하던데 척 보기에도 더 이상 젊어뵈지 않고, 모르긴 해도 은퇴가 얼마 남지않아 보인다. 건강하게 오래 예쁨 받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3. 나는 길에서 버스를 잡겠다고 절대로 뛰지 않는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더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령 내가 자주 타는 버스는 버스대수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 주말 같은 경우 한 번 놓치면 거의 20분은 그냥 길에서 버려야 한다. 그 20분을 버리지 않기위해 버스를 잡겠다고 하다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며칠 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어느 50대 남자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뉴스 보도에 의하면 버스를 붙잡으려고 쫓아가다가 차의 뒷바퀴에 다리가 끼어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럴 수가 있을까. 

그 사람은 어디를 가려고 했을까. 사고가 난게 밤이었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런 걸 보면 귀가중 아니었을까. 그날 집에 가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갈 거라고 그날 상상이나 했을까. 

그는 그날 하루종일 뭘하며 지냈을까. 누구를 만나고, 뭘 먹고, 어디를 갔을까. 무슨 꿈을 꾸며 살았을까. 그러다 무슨 생각으로 그 버스를 타겠다고 필사적으로 뛰었을까. 그게 죽음을 향한 뜀박질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정말 삶과 죽음이 멀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매일 죽음을 상상해도 그 죽음이 어떤 건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매일매일 조심하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엔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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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3-16 1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금 받고 싶은 선물이 저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입만 벌리면 전쟁 타령하지요.
전쟁나면 제일 먼저 도망갈 인간들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강토를 지킨 분들은
이름없이 빛도 없이 산화하신 의병들 뿐입니다.
삶의 평화를 위해 조심조심 살아야겠다는 말씀에도 공감하구요.

stella.K 2023-03-16 19:01   좋아요 2 | URL
참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하며 살까.
나치시대가 다시 도래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요.
오랜만에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는데 그런 말이 나오더군요.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그렇게 많이 나왔는데 세상이 더 좋아졌냐고,
결국 세상을 구원했던 사람은 도덕성과 서로를 배려하고 이런 것들이
구원했다고. 그게 맞잖아요.
제발 이런 것들이 세상을 구원했으면 좋겠어요.ㅠ

페크pek0501 2023-03-17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샌델의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라는 책과 어떻게 민주주의는~이란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네요.

저는 선택한다면 개보단 고양이를 기르겠어요. 나를 너무 좋아해서 따르는 개라면 나도 그만큼 사랑을 줘야 해서 부담스럽고, 새침하고 도도한 고양이라면 부담 없이 키우겠고 또 영리하고 깨끗하게 뒤처리를 한다는 점이 좋습니다. 고양이를 한 번 키워 보면 사랑스러워 못 빠져 나올 것 같아요.

stella.K 2023-03-18 09:56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샌델의 책 한권 모셔놓고 읽어보지도 못 했는데 마침 나와줘서 관심이 가더군요.
맞아요. 개가 그런 면이 없지않죠. 근데 개도 주인을 마냥 좋다고 치대지는 않더라구요. 쌀쌀맞을 땐 얼마나 쌀쌀맞은지.ㅎ그래도 녀석의 충직함 가식없음 이런게 전 좋더라구요. 보고있으면 푸근해져요. ^^

우끼 2023-03-19 18:24   좋아요 3 | URL
냥바냥이라 저희집 고양이는 엄청 따라요..문 소리 들리면 마중나오고 밥먹고 있으면 계속 쳐다보면서 대기하고… 삐지면 등돌리고 기다리는데, 제가 눈치보면 다가오고, 한참 기다리다 지치면 다리를 붙들고 저 쓰다듬어달라고 아니면 놀아달라고 보채고… 저 따라오는 것 같으면 신나서 앞서가고. 고양이 키우는게 처음인데 이렇게 애정을 갈구할 줄은… 똥도 기분좋으면 화장실에 제대로 싸고 저 스트레스 받을 땐 바닥에 .. 어찌 행동해도 참 안타까워요 인간한테 기대어서 살 수밖에 없는 이 작은 생명체가 ㅠㅠ 안쓰럽고 사랑스럽고 반이상 의무감으로 같이 살아요.

stella.K 2023-03-19 18:22   좋아요 2 | URL
우아, 우끼님 지금 가장 행복한 때를 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부러운데요? ㅎ
저의 집은 일부러는 못 키우고 어떤 운명이 와줘야 키울 수 있습니다.
먼저 키우던 반려견도 그랬거든요.
고영은이 그런데가 있군요. 상당히 매력적십니다.
솔직히 반겨동물 키우는 거 힘들긴 하죠.
건강할 때는 그나마 난데 아프고 죽을 땐 정말 힘이 듭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키우시기 바랍니다.
고것들이 주는 기쁨이 더 크잖아요.^^

yamoo 2023-03-18 10: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굥 체제하에서 아주 빠르게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게 도처에서 보입니다. 이번 대판을 뒤집는 일본 배상문제 건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한동훈이 하는 짓도 그렇고...
왜 탄핵 소리가 안 나오는지 신기합니다. 박근혜 보다 더한 행태를 하고 있는데...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습니다만...계속 참고 있으려니 깝깝하고 얼마나 더 후퇴해야 하는지..에효~

stella.K 2023-03-18 12:19   좋아요 2 | URL
윤이 뭔가 운이 있는 사람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아무래도 박근혜는 여자고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은 건 아니니 끌어내리기가 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정권은 함부로 바꾸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여야의 강대강 구조는 좀 바뀌었으면 하네요.
과연 협치의 시대는 올건지 싶기도 하고.
남북문제보다 심각한게 여야의 문제고 동서의 문제라잖아요.ㅠ
이쯤해서 민주주의를 공부할 필여가 있긴 한 거 같습니다.

우끼 2023-03-18 15:44   좋아요 1 | URL
탄핵 이후에 대책이 없는 것도 이유일까요? … 그렇다 하더라도 윤이 하는 걸 더 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것같아요 ㅠ

stella.K 2023-03-18 16:26   좋아요 2 | URL
그도 이유가 되긴하겠죠.
박근혜 탄핵하고 민주주의 승리라고 좋아라 했지만
문재인 정권도 대안은 되지 못했잖아요.
누구 말마따나 이러고도 망하지 않는 거 보면
희안하긴 해요. 정말 망하면 끔찍하죠.ㅠ

희선 2023-03-19 02: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쟁이 길어졌네요 평화가 찾아와야 할 텐데... 전쟁으로 죽은 사람 많네요 러시아에서 푸틴이 인기가 많다니...

한국에서 구조대원과 구조개가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네요 그때는 잘 몰랐는데, 여진이 이어지고 위험하니... 거기에 비가 와서 물난리가 났더군요 비는 와야 할 곳에 안 오고 덜 와야 할 곳엔 많이 왔네요


희선

stella.K 2023-03-19 18:30   좋아요 3 | URL
오늘 신문 보니까 지금 남부지방은 50년만에 최악의 가뭄이라네요.
지진이 또 낫다고 그러죠? 어디더라...
아무튼 난리입니다.ㅠ

푸틴이 무슨 국제 재판소인가에 체포령이 냈다고 하던데
그런다고 실재로 체포되지는 않는다고 해요. 러시아가
거기를 탈퇴해서. 하지만 상징성은 있다고 해요.
지금 극우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프랑스나 이탈리아도 극우성향의 사람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어찌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황청이 할 일이 더 많아지겠어요.ㅠ

레삭매냐 2023-03-21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히틀러도 전쟁 시에 인기가
하늘을 찔렀답니다.
푸틴이나 히틀러나 그 나물
에 그 밥이지 싶습니다.

다만, 러시아가 예나 지금이
나 서방세계에 조리돌림 당
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사
람들의 지지를 받는 게 아닌
가 싶긴 하네요.

평화 평화로다... 라는 찬양
이 생각나네요.
역시 교황님 다우십니다.

stella.K 2023-03-21 19:04   좋아요 2 | URL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른 여러 나라와
두루두루 잘 지낼 생각은 안하고
무슨 당찮은 허센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사람 못 살게 만들고.
그래서 어느 나라든 독재하지 말아야 하는데...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