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 내 인생을 바꾼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
김남준 지음 / 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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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더구나 요즘엔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선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일종의 회의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독서를 하는 것일까? 적어도 여기 책으로 구원을 받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김남준이다.


글쎄,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면 좀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책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책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독서 회의론자는 왠지 김빠지는 느낌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그래도 책으로 개안을 하고 구원에 이르는 건 아직도 유효하다. 비근한 예로 역대로 성경을 읽고 회심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어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는가 보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 에세이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언젠가 TV에서 저자의 인터뷰를 보면서였다. 그리고 뭔가에 이끌리듯 이 책을 꼭 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사춘기 시절 엄청난 정신적 방황을 하다 21살에 톨스토이를 읽고 기독교에 귀의한 후 아우구스티누스를 사숙한다. 이 책은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을 뽑아 글을 썼다. (8문장은 차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물이 상당히 많은데 그중 여덟 문장을 뽑았다니 놀랍기도 하고 그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돈지 짐작이 갈 것 같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누구인가. 가톨릭과 기독교를 통틀어 사제와 목회자들이 가장 존경하고, 서양 사상을 논할 때 그를 빼놓고 논할 수 없는 탁월한 사상가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의 불멸의 저서 '참회록'에 보내는 연가(?) 내지는 해설서를 낸 사제나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중 저자 김남준도 당연 이름을 올렸는데,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란 일종의 묵상집(?)을 내므로 참회록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런 만큼 이 책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을 가지고 썼다는 건 어찌 보면 일리가 있는 시도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이 책을 쓸 때 이미 '참회록'을 120번,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는 100번을 읽고 썼다고 한다. 그 정도라면 이젠 안 보고도 외울 정도일 것 같다.


문득 내가 언제 100번, 120번까지는 아니어도 반복해서 읽었던 책이 있던가 싶다. 사춘기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지금까지 성경은 20번도 읽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100 독은 고사하고 50 독도 읽지 못할 것 같다. (성경은 1년에 한번 읽기도 쉽지 않다. 저자는 목사이기도 한데 성경은 또 얼마나 많이 읽었을까 싶다.) 난 아무리 좋은 책도 세 번 이상 읽었던 적이 없다. 나도 저자처럼 성경 외에 평생 거듭해서 읽고 싶은 책 한 권쯤 가지고 싶다. 그것이 참회록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책이 될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래서일까? 이 책은 자전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늘이 짙다. 거짓말 좀 보태서 말끝마다 아우구스티누스다. 자꾸 그러니까 왠지 지금이라도 '참회록'을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나도 20대 시절 강의 시간에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그 책을 추천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듣는 순간 잊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 책을 읽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세기를 건너 여기서 맞닥뜨리다니. 마치 저자는 나를 만나려거든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만나 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낯간지럽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내가 중첩될 뻔하다 비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무척 싫어해 책 속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것 하나만큼은 나와 같아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구나. 난 잠시라도 내가 학교에 있다는 것을 잊기 위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한때 허무주의에 빠졌던 것도 비슷하기도 하다. 어차피 죽을 건데 학교는 다녀 뭐하고, 힘들게 살아 뭐하나 그게 호르몬의 변화일지도 모르면서 나는 나름 진지했다. 하지만 저자와 내가 다른 건, 저자는 자살을 꿈꿨지만 나는 꿈꾸지 않았다. 조심스럽지만 그건 자살을 하면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난 아직 세상에 못다 읽은 책들이 많은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다.


사춘기 시절을 꿈동산처럼 보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난 그 시절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저자와 같은 방황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정신적 방황은 제법 길고 깊었다. 책 제목도 보라. 얼마나 처절했을지 알 것도 같다.


저자는 그나마 청년이 되어서야 톨스토이를 읽고 신앙에 귀의할 생각을 했다. 난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부활'을 읽고 이거 뭐지? 했다가 정작 톨스토이의 주요 저작은 읽지 못하고 멀어졌다. 참회록도 그렇다. 저자는 나와 비슷한 20대 때 그 책을 읽었지만, 나는 그 나이 때 볼 생각을 아예 접고 말았다. 어떻게 비껴가도 이렇게 비껴갈 수 있을까.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걸 쓴 사람이 천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주 조금 뛰어나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책 두 권을 읽었다.

위대한 지성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건 사랑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이었다.

내가 그를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

심지어 플라톤보다 더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아아, 위대한 지성, 드높은 사랑이여! (80쪽)


저자는 그렇게 방황을 하다 마침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방황을 멈춘 것 같다. 사랑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이라니. 보통은 사랑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또 그것을 알아보는 저자의 안목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면 지적 욕구를 위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리를 찾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한다.


저자는 그 깨달음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교수가 된다. 그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보 같기도 하다(물론 신앙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하겠지만). 나도 한때 겉멋이 들어 신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그렇듯) 졸업 후 전공 서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또한 저자는 상당한 장서가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수 천권의 책을 가지고 있어도 알아주는 장서가가 되는데 그는 수 만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책으로 구원을 받고 수만 권의 책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아는가? 한국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받게 된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을.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저자의 삶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한 건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였다. .


하지만 알다시피 그렇게 책만 읽는 사람의 단점이 있다. 그건 너무 관념적이고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 또한 책상받이니 교조주의자란 말을 들을 확률이 높다. 저자도 그것을 짐작했을까? 어느 순간 교수직을 내려놓고 목회의 길을 가게 된다. (이 얘기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들은 말이다.) 나는 지금도 책상받이를 면치 못하고, 다행인지 남에게 비판을 받을 만큼 독서를 심하게 하는 것도 아니니 이것 또한 저자와 내가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역시 아우구스티누스나 저자나 방황이 크면 남다른 포스가 있는가 보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시도 아닌 산문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글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책은 우리가 상상하는 흔한 형태의 산문이 아니다. 한마디로 시라고 하기엔 산문 같고 산문이라고 하기엔 시 같다. 깊은 사유적 문장이라 이 책으로 저자에 대해서 알기엔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나 개인적으론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관심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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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2-21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가 먼저기는 하지만, 그 뒤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을 보고 아주 아우구스티누스만 많이 좋아한 듯 합니다 120번, 100번 읽은 책이 있다니... 대단합니다 많이 읽어도 겨우 두번인데... 세번까지 보는 거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나를 그렇게 파다니 대단합니다 지금은 목사군요

책이 저자 삶을 많이 바꿨네요 그런 책을 만나다니... 세상엔 그런 사람 있기도 하겠지요 그런 거 부럽기도 합니다

stella.K 님 많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stella.K 2023-12-22 19:26   좋아요 1 | URL
저는 거의 유일하게 부활을 세번 읽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가능해요. 그래서 고전을 읽으라는 것 같기도 하구요.ㅎ

아까 잠시 나갔다 들어왔는데 춥긴 춥더군요.
그래도 바람이 안 불어서 그나마 낫지 싶네요.
내일부턴 서서히 풀릴 모양이니 조금만 견디면 될 것 같네요.
또 추워질 수도 있겠지만 한동안은 괜찮지 않을싶네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감기 조심하길요.^^

페크pek0501 2023-12-22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 이상을 읽다니요... 저는 한 단편소설을 일곱 번까지 읽어 봤고 그게 신기록이에요. 두 번 읽은 책은 있지만 백 번은커녕 열 번 읽은 책도 없어요. 어느 한 분야의 책을 파 보는 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은 공부가 될 듯합니다.
스텔라 님은 부활을 꽤 일찍 읽으셨네요. 저는 삽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에 읽은 것 같아요.
6학년 때는 책이 아니라 오자미를 갖고 놀았던 게 생각납니다. 4학년 때는 공기놀이. 히히~~ 어릴 때 너무 놀아서 이젠 노는 게 시시하고 독서가 좋아졌나 봅니다.
리뷰 쓰신 책, 유익한 책 같습니다.^^

stella.K 2023-12-22 22:04   좋아요 0 | URL
오자미. ㅎㅎㅎㅎ 진짜 그런 게 있었죠? 추억 돋네요.
뭐 어린이 세계 명작으로 마침 나온 게 있어서 무심코 본 건데
그게 그렇게 대단할 줄은...
와, 7번! 대단하네요. 솔직히 저자는 넘사벽인 게 넘 많아요.
아우구스티누스의 심위일체론이란 책은 누구도 범접 못하는 책인데
읽으면서 거의 황홀경에 빠졌더라구요.
책 보다는 혹시 기회되시면 이 분의 설교 시청을 권합니다.
나름 깊이가 있어요.
 
함께 걷는 천로역정 - 이동원 목사와
이동원 지음 / 두란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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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2014년에 저자가 섬기는 교회(저자는 현재 지구촌 교회 원로 목사다)에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가지고 시리즈 설교를 했던 것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올해 늦여름인가 초가을 무렵, CBS TV의 '울림'이란 프로(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계 원로 목사들의 지나간 설교를 편집해서 보여주는 프로다.)를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저자가 좀 유명하다. 19세기 영국 교회를 부흥을 이끈 명설교가인 스펄전이란 목사가 있는데 얼마나 유명한지 '설교의 황태자'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 그의 사후 '스펄전 상'을 제정하였는데 (짐작했겠지만) 세계적인 명설교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그리고 저자가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세상에 기라성 같은 설교가가 좀 많겠는가. 아무에게나 줄 상이 아닌데 대단하다 싶다.


이 책은 읽기에 따라선 다소 평이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뭐든 어려운 것을 쉽게 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은 안다. 저자의 평이함은 바로 그런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저자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저자는 특별히 평신도 설교자를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가 성직자만 설교하기엔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평신도도 훈련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저자의 그런 생각이 놀라웠다. 지금까지 난 설교는 성직자만이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저자의 그런 생각이 어디서부터 왔을까, <<천로역정>>의 탄생 배경을 알고 나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존 번연이 살았던 시절은 평신도가 설교를 하면 안 되는 시대였다. 참고로, 그는 1628년생이고 이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100년이 흐른 뒤다. 종교개혁이 무엇인가, 종교적 모든 권한과 제도가 너무 성직자에게 경도되어 있어 그에 대한 반발로 일나지 않았는가. 비근한 예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성경은 성직자만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을 종교개혁 이후 평신도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건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0년. 존 번연이 살았던 시대 평신도는 설교를 할 수 없다면 종교개혁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존 번연은 광장에서 설교를 했다는 죄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는 거기서 7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오직 성경만을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이후 <<천로역정>>을 탄생시켰다. 또 그런 (평신도도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저지의 시대까지 300년 이상이 흘렀다. 그동안 평신도가 설교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히는 일은 사라졌겠지만 여전히 설교는 성직자의 고유 권한이란 생각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고 있다. 저자는 바로 이 생각에 도전하기 위해 그런 교육과 이 시리즈 설교를 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천로역정>>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온갖 모험과 유혹을 이기며 천국을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알다시피 성경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건 사실이지만 끝까지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솔직히 나도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성인이 되고도 꽤 오랫동안 성경을 완독하지 못했다. 이건 성경을 읽는 사람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아닐까 싶다.


그러면 성경을 잠시 밀쳐두고 읽게 되는 책이 <<천로역정>> 이기도 하다. 또한 이제 막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신앙과 관련된 책을 선물받는다면 손에 꼽는 책 중 하나가 이기도 하고. 나도 지금까지 두 번 정도 읽었다. 물론 성경보단 수월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 그다지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고전은 재미로 보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치로 보장받는 것이니까. <<천로역정>>도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은 '천로역정'의 내용이 정리되면서, 무뎌진 신앙도 점검하게 만든다. 나아가 다시 한번 '천로역정'을 읽고 싶게 만든다. 매 챕터가 끝날 때마다 정리할 수 있도록 적용 질문도 있다.


모르긴 해도 존 번연이 이 책을 본다면 흐뭇해하면서 저자에게 고마워할 것 같다. 그만큼 잘 쓴 책이다. 혹시 '천로역정'을 읽다가 실패했다면 이 책에서 용기와 위로를 얻고 완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성경도. 독자의 완독과 쾌독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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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2-06 0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습니다. ˝저자가 섬기는 교회˝라 하셨는데요, 요즘엔 어느 교회에 다니면, 그 교회를 ˝섬긴다˝라고 말하나요?

stella.K 2023-12-06 10:44   좋아요 1 | URL
헉, 제가 뭔가 실수를 했나 봅니다. 담임 목사라고 했어야 옳았을까요? 저는 교회는 어느 특정인의 교회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믿는다면 그 교회를 섬기는 게 맞다고 보거든요. 그게 아무리 담임 목사여도. 그뜻에서 썼을 뿐인데 혹시 제가 뭘 잘못 알고 있는건가요?

페크pek0501 2023-12-06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경을 읽다가 완독하기 어려우면 천로역정을 읽고,
천로역정을 읽다가 완독하기 어려우면, 함께 걷는 천로역정, 을 읽으면 되는 거네요.
셋 다 읽으면 가장 좋겠지만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stella.K 2023-12-06 12:47   좋아요 1 | URL
아마 이 셋 다 읽게될 걸요? ㅎㅎ 읽어주셔서 감솨요!ㅋ

yamoo 2023-12-06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천로역정으로 시리즈 설교를!!
오~~~신선합니다. 이런 목사가 있었네요..헐~
근데 지구촌교회는 엄청 크더이나 양천구에만 매우 큰게 2개 있던데....헌금도 무쟈게 들어오는 거 같아요...ㅎㅎ

stella.K 2023-12-06 19:34   좋아요 0 | URL
와우~ 야무님 관심에 제가 다 놀랍니다!
야무님 이제 뵈니 신앙 배경이 있으신 분인가 봐요.
몰라뵜네요. ㅎㅎ
양천구에 있나요? 죽전인가 어디에 있는 줄 알았더니.
암튼 관심 있으시면 강추합니다.^^

2023-12-09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9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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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작가를 광범위하게 쓰고 있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예전엔 소설가나 시인 정도에게만 그 이름을 허락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소설가나 시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퍼붓지 않았던가. 누가 장래 꿈이 뭐냐는 물음에 작가라고 하기만 해도 우와~! 하며 탄성 겸 환호를 했던 것 같다. 아직 되지도 않았고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멋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괜히 대대로 문(文)을 숭상했던 나라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소한 세 번 정도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한번은 아버지가 사춘기에 접어든 나에게 네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작가(더 정확히는 소설가)라고 했더니 와~~! 해 주셨고, 몇 년 후 학교 선생님이 물으시길래 그때도 똑같이 대답을 했더니 와~~!해 주셨다. 그리고 지금부터 한 10년 전쯤 어느 집사님이 나를 보더니 "와~~ 저 지금 작가 처음 봐요." 했다. (그때 그 집사님은 희곡 작가로 처음 본다는 얘기다. 나는 살다 보니 그렇게 됐고, 그나마 지금은 그것도 안 쓰고 있다.)


하지만 막상 작가로 살아 봐라. 작가가 어디 와~~만해서 되는 직업인가. 심하게 말해 요즘은 개나 소나 작가라고 하는 시대고, 길에 채이는 게 작가다. 책 한 권만 내도 작가라고 하고, 하다못해 자신이 뭔가의 글을 끄적이기만 해도 작가란다. 그건 아마도 SNS의 발달로 자신의 글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작가는 ~씨나 ~선생처럼 하나의 존칭어로 쓰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처음 대본을 쓰고 원고료라는 걸 받았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 지진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 내가 원고를 쓰고 고료를 받다니? 그럼 나 작가 된 거 아냐? 그때 얼마나 뿌듯했던지. 그때가 작가 지망생에서 작가로 등극하는 순간 아닌가. 신인문학상이나 신춘문예 등단만이 작가가 되는 건 아니다. 이런 자본주의 세상에서 내가 글을 쓰고 만원 한 장이라도 고료로 받았다면 그게 바로 작가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노 개런티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그렇게 두질 않았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경험했을 줄 안다. 작가라고 와~~! 하는 사람들은 주로 작가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고, 작가를 좀 안 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작가를 속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작가가 돈 없이도 살아가는 무슨 명예직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코로나 전 나는 어느 공인된 기관에서 일 할 뻔했다. 근데 그곳에 총괄 이사라는 사람이 나를 보자 일 하나를 맡겼다. 무슨 일인지는 구구절절 쓰지는 않겠지만 한마디로 각색을 하라는 거다. 일을 받고도 좀 찜찜했다. 각색이 내 전문이긴 하지만 워낙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고 굳이 손볼 필요도 없는데 각색을 하라니. 그 저의가 좀 수상했다. 그래도 어쨌든 시키는 일이니 해서 넘겼는데 한 달이 가까워 오도록 원고료에 대한 얘기가 없다. 알고 봤더니 이 사람 머리에 구멍이라도 난 걸까? 깜빡 잊었다고 하는데 그는 내가 돈 없이도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사비를 들여서라도 고료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사비든 공비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그저 고료만 받으면 된다. 그런데 그는 끝내 고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느껴야 했던 자괴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누구한테 하소연할 때도 없고. 그런 일은 이전에도 있었고 후에도 있었다. 이름 있는 작가들도 그런 경험이 한 두 번 있었다고 하는데 말에 위로 아닌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나라는 도대체...


추석 무렵, 모 작가가 작가 노조를 만들 거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 작가는 20만 원짜리 원고 쓰는 걸 거부했다고 한다. 그 20만 원은 20년 전에도 20만 원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우리나라 작가들 미친 거 아닌가? 요즘 세상에 안 오른 물가가 없고 하다못해 우윳값도 오른 마당에 어쩌자고 20년째 20만 원인 걸 그냥 두고만 보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작가는 이슬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미국은 벌써 노조가 있어 작가의 인권에 조금만 위협을 느껴도 시위하고 난린가 보다. 얼마 전 챗GPT가 자신들의 일을 점령할 것 같으니까 시위하지 않던가. 우린 이제 작가 노조가 생겼다는 것도 아니고 생길 거라니 실제로는 언제 만들어 언제 활동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거 보면 미안한 얘기지만, 사람들이 작가를 명예직으로 보는 건 비작가들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그렇게 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글 써서 돈을 안 벌어도 예전에 활동이나 쓴 작품으로 작가라고 불리기도 하니까. 20년 전에 우리나라 문단을 쥐락펴락했던 작가들 지금 뭐 하고 있는가. 그래도 그들은 작가다. 한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글만 써 가지고는 생활이 안 되니까 과외로 일을 해서 충당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앞서 말한 총괄이사처럼 작가에게 돈을 안 주는 것에 대해 별 죄책감도 없다(그는 심지어 나한테 큰 소리로 야단까지 치려고 했다. 똥 싼 놈이 성낸다더니). 너 이거 아니어도 돈 벌지 않니? 안 번다고? 너 참 희한하구나. 어떻게 글만 써서 돈 벌 생각을 하니? 뭐 이런 식이다. 게다가 이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과외로 하는 일이 때론 원고료 보다 더 나을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작가는 명예란 생각이 든다. 존칭어던가.


이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작가들 거의 대부분 개인주의자들이다. 이거야말로 좀 치명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건 곧 잘 뭉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원고료 20만 원이 언제 적 20만 원인지, 그걸 어떤 작가가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관심도 없다는 얘기 아닌가. 천성적으로 혼자 놀기 좋아하고, 안 그래도 자기 하는 일도 바쁜데 뭉쳐서 작가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마땅히 호소하거나 보호받을 창구가 없다. 난 하루속히 아니 몇 년이 걸려더라도 우리나라에 작가 노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또 그런 만큼 장강명 작가는 스스로를 '월급 사실주의자'라고 했다. 처음엔 장난스럽기도 하고 왜 이렇게 이름 지었을까 했다. 오히려 더 센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아서다. 요즘엔 통반장도 월급을 받는다. 박해서 그렇지. 하물며 작가가 월급을 받지 않는 데서야 말이 되는가? 하지만 월급은 고용관계에서 갑이 을에게 주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작가는 누구에게 받는단 말인가. 노조도 없는데. 그건 아무래도 샐러리맨이나 노동자처럼 더 이상 명예직 그만하고 글 써서 돈을 벌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월급 사실주의자가 아니라 '소득 사실주의자'가 더 맞는 표현 아닐까. 그걸 어떤 작가는 매문가라고도 했다. 글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


뭐가 됐든 그런 작가가 되려면 편하고 점잖아서는 안 되고 전사가 되어야 한다. 장강명 작가는 매일 8 시간 글을 쓰고, 그 밖에 취재와 강연 등으로 수험생 보다 더 바쁜 생활을 살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렇게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문득, 이 책을 누가 읽을까 궁금했다. 나야 예전에 작가의 연재물을 읽었고 책으로 나온다고 해서 내심 기다렸다. 나는 '소설가(작가)'를 페티쉬에 가까울 정도로 애정 하니 이 책만큼 관음증을 충족시켜 주는 책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소설가에 대해 결코 부풀려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쳇말로 찌질이에 가까울 정도로 쓰고 있다.그건 작가가 정말 찌질이어서가 아니라 장강명 특유의 겸손한 문체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일반인들이 읽는다면 결코 무조건 와~~!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좀 더 다른 차원에서의 와~가 나오지 않을까. 그도 소설가인 만큼 조금 춰줘도 누가 뭐라지 않을 텐데 박하다 싶을 정도다. 하지만 전직 기자인 만큼 객관성은 잃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소설가가 쓴 소설가에 관한 사회적 고찰 내지는 보고서 같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간간이 소개해 놓은 책을 읽는 유익도 있다. 그동안 제목 정도는 알고 있던 책을 읽어? 말아? 망설였던 책들이 몇 권 읽었는데 작가는 벌써 독파하고 리뷰를 한다. 그런 거야 여타의 작가도 흔히 하지만 소설가에 관해 얘기하면서 소개하고 있으니 묘하게 마음이 가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내가 전혀 모르는 작가를 소개 받고 좀 놀라기도 했다. (그건 주원규란 작가다. 그는 현재 목사면서 공산당 선언을 700번을 읽었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의 연재 글뿐 아니라 뒤에 그의 에세이와 지난날 어디선가 했던 작가의 강연록을 실기도 했다. 그중 내가 유심히 본 건 '타자도 되지 못한'이란 글이다. 이 글은 지난 2017년 서울 국제문학포럼에서 발표한 글이라고 한다. 그는 그 글을 통해 우린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짚으면서 작가들의 관심을 호소 아니 오히려 통렬하게 비판했다.


비근한 예로, 북한 출신 장진성 작가의 수기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를 영어로 옮긴 번역자는 작가에게 "왜 이제껏 어떤 한국인도 북한 현실을 문학작품으로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장진성은, 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는 북한 인권에 대해 (무관심도 아닌) 몰지각하며,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이가 더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소설로 쓰면 노벨상도 받을 텐데 그러고 있다고 했다(340p). 문득 비록 실각은 했지만 예전에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 생각났다. 그게 어쩌면 그냥 했던 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장강명 작가는 지금까지 한국 작가들은 북한 인권에 대해 성명서나 선언문 한 번 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부끄러움을 넘어 놀랍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지금 출판계는 젊은 작가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장 작가도 지적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북한이나 통일에 대해 관심이 없다. 게다가 개인주의가 그토록 강해 자신들의 인권도 챙기지지 못하고 있는데 북한 인권이 가당키나 한가.


나는 장 작가가 알려 준 북한 문학이나 실정을 다룬 책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그랬더니 몇 권은 여전히 유통되고 있었지만 적지 않은 책들이 절판된 것으로 나온다. 나는 도무지 이런 책이 언제 나와서 절판됐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 책들이 한 번이라도 매스컴이나 서점 매대에(인터넷 서점 메인에) 봤다면 이해를 하겠다. 이건 독자의 무관심도 무관심이지만 서점이나 매스컴의 책임이 더 크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알아야 뭘 하지.


그러면서 새삼 문학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한 시대마다 그 시대를 풍미한 작품 성향이란 게 있다. 어느 시대엔 이념의 문제를, 어느 땐 노동문제를, 그것이 지나자 후일담 문학이, 그다음엔 자아와 성적 방황을 다루기도 했다. 그에 따라 작가들 저마다 그것을 쫓아 다른 듯 비슷한 글을 쏟아내고 희비를 엇갈리곤 했다.


무슨 글을 쓸 것인가는 항상 작가의 고민이고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역시 작가는 남들이 가지 않은 잘 알려지지 않는 길을 안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다 같이 아는 넓은 길을 가서 다 같이 잘될 수도 있겠지만 다 같이 망할 수도 있다. 더 정확히는 독자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오래전, 조경란 작가가 그런 말을 했다. 작가는 나쁜 사람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달리 말하면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소설가.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족속이란 거 안다. 하지만 때로 뜻있는 일에 목소리를 내고, 자신보다 공동체를 위할 줄도 아는 그런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몇 년 전, EBS에 나와서 열심히 글쓰기에 관한 강의를 했던 작가를 기억한다. 얼마나 열심히 강의를 하던지 얼굴이 벌게질 정도인 것을 보고 아, 이 사람은 작가에 진심이구나 했다. 내가 서두에 길에 채이는 게 작가라고 했지만 우리나라 전체 인구 대비 작가 그것도 소설가는 극히 낮다. 난 왠지 EBS에 나온 그와 이 책이 오버랩되면서 그는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소설가란 이런 사람들이라고 까놓고 얘기하면서 이 길로 초대하고 있는 전도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진정한 전도자는 무조건 그 길이 좋고 복 받는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과 역경이 있을 거라고 솔직히 말한다. 소설가의 길이 뭐 그리 영화롭고 복되기만 하겠는가. 그래도 그 길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작가를 응원한다. 장강명 작가와 작가라는 직업 모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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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0-19 2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고야, 징글 맞게도 썼다. 이렇게 긴 글을 누가 읽는다고...ㅠ

2023-10-20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감 2023-10-20 09:06   좋아요 2 | URL
그게 바로 접니다... 저는 이 쪽 바닥을 잘 모르거든요. 해서 씁쓸한 이야기에 비해 재밌게 읽었어요. 그나저나 고료에 대한 부분은 좀 충격이군요....

꼬마요정 2023-10-20 10:42   좋아요 2 | URL
저요!!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고 씁쓸하고 또 그러네요. 작가는 아무래도 선비 같은 느낌이라 그럴까요. 글을 쓰는 건 뭔가 고급진 능력이라 그럴까요. 어쩌면 귀여니 이후로 아무나 작가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구요. 많은 생각이 드네요.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에 물질만능주의임에도 불구하고 돈 얘기는 또 천박하게 생각하니까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면 뭔가 큰 일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그런단 말이죠. 사실은 자기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게 아까운 거면서. 그러면 지가 쓰던가, 지가 다 하던가 그쵸? 나빠요!!!!

그나저나 대단하세요!! 희곡 작가라니. 멋집니다. 멋져요!!!

stella.K 2023-10-20 19:53   좋아요 3 | URL
속닥님/ 아고, 고맙습니다. 쓰다보니 그렇게 됐더라구요.
근데 그 무슨 민망한 말씀을. 속닥님의 글이 어때서요? 좋기만 하더만.^^

물감님/ 그러니까 처음엔 작가에 와~~! 하다가? 와, 정말? 그렇게 되죠? 세상 못할 짓이 작가질인 것 같습니다.ㅠㅠ 그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꼬마요정님/ 그러게 말이어요. 돈지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요구할 거 있으면 당당히 요구하자. 그러는데도 뒷통수 맞더라구요. 정신 바짝 차리고 글을 써야하는데. 희곡은 우연히 하게 된 거고 그냥 흉내만 냈습니다. 또 앞으로 쓰게 될까 싶기도 하고. 암튼 읽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초란공 2023-10-20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정보라 작가의 번역가 안톤 허님이 쓴 에세이도 읽어봤는데요, ’안톤 허‘도 국가 번역기관에서 아직 못받은 돈도 있다고 하는데요... 그러면 다른 문학번역가들은 어떨지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음악에서 모짜르트의 곡을 유명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면 ‘누구의 연주’라고 주목을 받지만, 원작 소설을 번역한 이는 주목을 제대로 받지 도 못하고, 영미권에서는 번역가 이름도 책에 잘 안써준다고 하더라고요. ‘문’을 숭상했던 나라에서 글쓰는 이는 투명인간이란 생각도 들고요. 대한민국에서 작가란, ‘원고료 한 번쯤은 안받아본 사람’으로 정의해야할 듯 합니다. ㅜㅜ 그런데 stella.K님.. 희곡 작가 셨네요!!! 저도 희곡 작가 처음 봅니다. 주변에 책읽고 글쓰는 사람이 없디보니^^

stella.K 2023-10-20 21:25   좋아요 1 | URL
와~ 이거야 말로 충격적인데요? 정말 영미권에선 번역가 이름도 안 써 주나요? 그에 비하면 그건 우리나라가 낫지 싶네요. 우리나라는 번역을 잘하면 잘 한다, 못하면 못 한다고 확실히 말하잖아요. 근데 번역료는 의뢰 받는 거라 확실할 줄 알았는데.
정말 큰 일입니다. 작가들의 뭔가의 결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 있을 때마다 그런 얘기 마구마구 떠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누가 원고료 안 줬다고 창피를 주는 거죠.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언젠가 된통 당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래야 정신 차리지 안 그러면 작가를 봉으로 알아요. 정말 화 나내요.ㅠ

저도 제가 희곡을 쓰게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ㅎㅎ

yamoo 2023-10-20 1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가입니다..ㅎㅎ 미전에서 입상해서 작가라고 합니다요...ㅎㅎㅎㅎ

내가 처음 대본을 쓰고 원고료라는 걸 받았을 때가 생각이 난다....라는 문장을 보면서...스텔라 님이 예전부터 작가였음을 알았습니다! 원고료도 받고 대단하십다!!

stella.K 2023-10-20 19:58   좋아요 2 | URL
그러니깐요. 요즘엔 화가도 화가라 안하고 작가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작가는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짓다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뭐.
알아주셔서 고맙슴다. 원고료야 당연한 건데요 뭐 쥐꼬리 만해서 그렇지. ㅋㅋ

니르바나 2023-10-20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야말로 좋은 리뷰, 이 달의 리뷰로 추천합니다.^^

하여간 우리 사회에 총괄이사 같은 인간들이 문제죠.
공인된 기관에서 각색을 의뢰했다면 당연히 예산이 있었을 것인데,
아무래도 총괄이사라는 자가 스텔라님에게 갈 각색료를 떼어먹은 것 같습니다.
예산이 없었다면 확인차원에서 각색을 부탁드릴 때 무료 봉사를 말했어야지요.
하긴 저런 인간들은 자기가 받을 것이 있으면 악착같이 받아내는 족속이긴해요.

각색료 받을 때 까지 달라고 떼(?)를 쓰세요.
옛말에 아기가 울지 않으면 젖을 주지 않는다잖아요.

stella.K 2023-10-20 20:25   좋아요 1 | URL
오, 정말요? 니르바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따 논 당상입니다.ㅋㅋ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야 하는데 벌써 몇년된 일입니까?
당시에 끝장을 봐야하는 건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데
어찌나 가슴이 벌렁걸리던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어요.
제가 싸우는 걸 그다지 안 좋아해서. 누가 대신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ㅠ
앞으론 시작 전에 계약서를 받던가 아니면 가슴에 칼이라도 품고
글을 써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안 그러면 말씀하신 것처럼 미친 척하고 그 앞에 자리 깔고 누워버리던가. 흐흑~

페크pek0501 2023-10-21 16: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고료 인상이 되지 않는 건 저도 개선할 점이라고 생각해요. 글쓰기 노동의 대가치고 원고료가 너무 약하거든요.
노래방의 출현으로 모든 이들이 가수가 되더니 인터넷의 출현으로 모든 이들이 작가가 된 것 같아요. 사실 노래방이 사람들의 노래 실력을 향상시켰듯이, 인터넷도 사람들의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켰다고 봅니다.
스텔라 님은 일찍부터 작가가 되겠단 생각을 했군요. 훌륭합니다. 저는 성장기 때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미리 정해 놓은 사람을 보면 좋아 보입니다!!!

stella.K 2023-10-21 18:17   좋아요 1 | URL
아고, 그러면 뭐하겠습니까? 무명작가인 것을. ㅋㅋ ㅠ 근데 그런건 있는 것 같아요. 방황을 많이 안한다는 거. 물론 한때는 작가가 싫을 때도 있지만. 결국 돌아오는. 꿈은 없는 거 보다 있는 게 훨씬 좋은 거 같아요. 이루던 못 이루던지간에.^^
 
예수의 양 주기철
김인수 지음 / 홍성사 / 201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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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얼마 만에 완독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언젠가 한 번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4분의 1 정도를 남겨놓고 완독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리 두꺼운 책도 아니었고 4분의 1이면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 읽을 수도 있었다. 왜 그랬을까. 오래전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읽고 굉장한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손양원 목사는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해서 두 아들을 공산당 앞잡이에 의해 잃고, 그 앞잡이를 오히려 양아들로 삼았으며 나중에 본인도 순교한 인물이다.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는 거의 동시대 사람이긴 하지만 주기철 목사가 연배가 조금 더 높긴 하다. 또 그런 만큼 주기철 목사가 손양원 목사의 목회에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주기철 목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순교를 당했지만, 손양원 목사는 공산당에 의해 순교를 한 것이 다르긴 하다.

 

솔직히 오늘날 순교에 대해선 양가감정이 있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시대에 순교가 어디 있냐고 반문하거나 나는 과연 순교의 순간이 온다면 정말 온전히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도 순교는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강화도에 도착했지만 그는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죽었고 죽을 때 조선어 성경을 뿌리고 죽었다. 그 후 적지 않은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이 우리나라에 왔지만 풍토병으로 선교는 고사하고 짧게는 몇 개월 만에 사망했다. 그들 중엔 난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단지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겠지. 

 

그로부터 200년이 넘어서 우리나라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갔다가 비슷한 이유로 사망한다. 그 역시 죽을 것을 모르고 갔을까? 그렇지 않다. 그의 어머니도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의 선교의 길을 막지 못했다. 죽은 지 8년쯤 되었다는데 지금도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아프리카 오지 어느 마을에 묻혀있다고 한다. 

 

한때 나는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가 너무 감동스러워서 그것을 각본으로 쓰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후 얼마 안 있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후회했다. 혹시 그때 그 작품을 보고 자신도 순교하겠다고 하는 관객이 나올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나 자신도 순교하지 못할 거면서 누구에게 순교를 강요했던 걸까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후 난 지금도 순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늘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역시 또 생각했다. 사실 토마스 선교사나, 주기철, 손양원 목사를 비롯해 이름 없이 죽어간 순교자들의 죽음은 모두 고귀하고 훌륭하다. 그런데 오늘날 순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너무 양극단을 달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 아니면 도라고, 순교하신 분들의 신앙은 고귀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의 생은 실패자인 양 취급하는 건 위험하다. 사실 순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순교하지 못한 사람은 적은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순교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매일 죽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순교의 순간이 왔을 때 그는 담담히 죽음을 맞이했다. 반면 죽기를 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사도 요한이 그렇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평생 그곳에서 살다 죽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이 순교당한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못하다고 누가 그러던가.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복음서를 쓰는 일을 완수했다. 

 

또한 내가 아는 어떤 목사님의 아버지는 주기철 목사와 동문수학 했다고 한다. 그분도 주기철 목사님과 함께 순교 당하리라고 다짐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하해 지방 어디에 교회를 개척하고 50이란 이른 나이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마도 시기적으로 주기철 목사의 순교와 별반 차이도 없었을지 싶다. 어쨌든 그걸 보면 순교도 내가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죽기 위한 잠깐의 고통 그 이후의 영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단숨에 순교하는 것과 순교하지 못해 그것을 평생 한으로 여기며 사는 삶과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난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 뭐 그런 이분법으로 육체적 순교와 순교적 삶을 구분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순교적 삶도 쉽지는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이 책이 순교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 뭐 그런 극단에 치우친 책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주기철 목사의 삶을 좀 더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거기에 순교를 다뤄야 하는 것 같은데 자꾸만 순교하신 분으로만 인식하고 몰아가는 것 같아 아쉽다. 

 

관련해서, 이번에 완독을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었다. 

사실 주기철 목사는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이 아니다. 그건 당연하다. 굳이 말하면 우리나라 기독교 1.5 세대다. 그의 아버지 주현성이 경남에 있는 웅천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따라서 교회를 다니게 된 것. 그게 주기철의 나이 17세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의 교회 분위기는 사뭇 엄격했는가 보다. 여러 번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엄하게 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어느 정도로 엄격했냐면, 계율위반자 즉 신앙과 정치 위반을 하면 책벌 내지는 출교까지도 과감하게 감행했고 그것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기도 했다. 

 

오늘날의 교회 풍경과는 참 많이 다르다 싶다. 물론 오늘날의 교회도 엄한 측면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교회 안 나온다고 징계를 한다는 건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그 시절의 교회는 학교와 비슷했던 것 같다. 학교도 무단결석을 하면 정학 내지는 퇴학까지 시키지 않는가. 당시론 학교가 흔하지 않고 교회의 기능 중엔 교육의 기능도 있었으니 이런 조처는 어찌 보면 당연했을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교회도 개인주의화 하는 경향이 있어 예배만 드리는 경우도 많고, 인터넷의 발달은 교인을 더욱 익명화 시켰다. 그러니 유구무언인데 그렇더라도 이거 하나는 지적하고 싶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좋은데 늦게 와서 일찍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 저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그것에 대해 설교자나 사회자(그들은 다 교회 교역자들일 것이다.)가 제재를 하지도 않는다. 이 사실을 우리나라 초대 기독교인들이 알면 기함할 일이다. 

 

오늘날의 담임 교역자들은 신앙을 북돋는 설교를 할지언정 죄를 지적하는 설교는 거의 하지 않는다. 또한 예배를 정화시키려고 하는 어떤 의지도 없어 보인다. 어쨌거나 예배조차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면서 그 귀에 대고 순교를 논한다는 건 소귀에 경 읽기다. 순교를 말하기 전에 예배 태도만이라도 고치자고 말하고 싶다. 

 

교회는 순교의 피를 마시고 세워졌다는 말이 있다. 순교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말도 있고. 이건 그냥 수사적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 역사에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책을 읽으면 내가 지금 얼마나 편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는가. 예전엔 우리나라에도 신구교를 합쳐 성당이나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했던 엄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지구촌 어디에선가 예배는 고사하고 성경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다는 이유만으로 순교를 당해야 하는 나라가 있다. 먼 데서 찾을 것도 없고 당장 북한만 하더라도 그 핍박이 말도 못 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그렇게 허투루 예배를 드려서야 쓰겠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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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8-16 1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순교는 대단한 일이죠. 요즘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신문의 부고 기사 보면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 떠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50대, 60대에 죽은 경우가 그래요.
스텔라 님은 성경 공부도 많이 하셨을 것 같네요.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공부 잘하는 주인공을 목사로 만들려고 하고, 또 다른 소설에서도 그런 것 보면 예전 시대에는 목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것 같습니다.^^

stella.K 2023-08-16 13:39   좋아요 2 | URL
ㅎㅎ 저 많이 안했어요. 다 귀동냥이죠. ㅋ 주기철 목사님이 나온 학교가 평양신학교인데 명문이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해서 기독교 부흥의 진원지였는데 지금은 초토화가 됐죠. 지금은 목사가 너무 많은 시대에요. ㅠ
 
글로 지은 집 - 구십 동갑내기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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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책으로 지은 집'으로 오독을 했었다. 오독을 하던 제대로 읽든 제목은 뭔가 상징성이 있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정말 책으로 집을 지을 수도 있을까? 얼핏 페트병이나 아이스크림바(일명 하드)를 먹고 나오는 나무 막대기를 모아 집을 지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아주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책의 재질은 나무가 아닌가. 집 짓는데 나무가 사용되기도 하니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다.


이 책은 1958년 이어령 교수와 저자가 결혼해 살아온 과정을 집의 연대기로 풀어간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발간 때부터 나의 관심을 끌었다. 발행 시점이 이어령 교수의 타계 1주기에 맞혀 나온 걸로 알고 있다. 이어령 교수는 자신을 위해서는 글을 쓰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어느 때가 되면 평전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때까지는 이어령 교수에 대해서는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집 이야기다.


나는 왜 집 이야기를 좋아할까. 그것은 나의 향수를 가장 많이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다른 것들도 많을 텐데 하필 집이라니. 더구나 난 이사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집에 관해서는 (저자만큼은 아니어도) 꽤 쓸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집을 부동산의 가치로만 보는 것 같은데 집도 오래 살면 영혼이 깃드는 법이다.


이 책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보이는데, (교수도 누구도 아닌)남편 이어령 교수와 직업인, 아내, 어머니로서 치열하게 살았던 저자와 집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들 부부가 함께 어울렸던 당대 문인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등장한다.


남녀가 결혼하면 아이 낳고, 살림 늘리고, 좀 더 넒은 평수로 이사하길 바라는 건 70년 전이나 후나 똑같은 것 같다. 이어령. 강인숙 부부도 부부의 연을 맺은 이상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서재를 꾸밀 수 있는 집을 갖게 되길 바랐다. 어쩌면 그것을 위해 그처럼 많은 이사를 하고 살았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 이들에게 서재가 그처럼 중요했을까. 저자는 책에서 몇 번씩, 남편은 평론을 쓰려면 늘 책을 펼쳐놓고 써야하기 때문에 서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썼다. 그러자 평론가들을 조금 이해가 된다. 요즘엔 서재나 연구실을 갖지 않은 평론가가 있을까. 하지만 이들이 결혼생활을 시작했을 50년대 후반 60년대는 여간 부자가 아니면 서재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어느 시인에게 왜 시인이 되었느냐고 묻자,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평론가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런데 이 책 읽으면 읽을수록 묘하게(?) 빠져든다. 나 역시 저자가 살았던 세대 안에 교집합처럼 살았으니까.


그렇게 저자는 고진감래 끝에 드디어 2층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남편과 자신을 위한 각각의 서재를 만들어 좋아라 했단다. 그러나 그도 잠시. 2층 집이 그렇게 추운 줄은 몰랐다는 쓴다. 그때는 새마을 운동 때문이었을까. 2층을 올리는 집도 많았다. 하지만 나의 엄마는 가장 쓸모없는 집이 2층 집이라고 했다. 아직 가스나 기름을 쓸 수 없고 대부분 연탄을 썼는데 그 연탄이 2층까지 덥히진 못했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피아노 선생님댁이 2층 집이었는데, 추운 날 피아노를 치러 갔더니 선생님이 입고 온 오버코트를 벗지 못하게 했다. 입에선 허연 김이 나왔고, 피아노 치는 손이 굳어질까 봐 선생님은 조그만 전기 곤로를 켜고는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손을 쬐게 하곤 했다. 그래서 대개 2층 집은 겨울 한 철은 비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불편하고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런 집을 저자는 7년인가를 살았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정말 입에서 김이 나올 것만 같다.


그렇게 이 책에 빨려 들어가고 있을 때 내 눈이 저자가 시구문 근처에서 살았다는 사실에 멈춘다. 와, 시구문! 우리 집도 시구문 근처에서 살았다. 지금은 철거된 지 오래지만 조선시대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저자의 삶의 배경과 내가 자꾸 오버랩되니 무슨 퍼즐을 맞추듯 이 책이 자꾸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지 않아도 저자의 세 분의 자제 중 한 분이 나와 나이가 같거나 비슷한 연배인 걸로 알고 있다. 실제로 두 분은 나의 큰아버지, 큰어머니 벌쯤 된다. 아, 이거 너무 오버하나?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와 조금만 비슷해도 뭔가의 동질성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던가. 이해하시라.ㅠ


그러다 결정적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저자는 윤남경 씨가 학교 선배고 친하게 지냈다고 짧게 밝히고 있다. 이럴 수가.


윤남경 씨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분은 소설가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80년 대 초중반 K 본부에서 했던 '사랑방 중계'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원종배라는 아나운서와 YMCA 총무를 역임했던 전택부 선생이 MC를 맡고, 가끔 이분이 게스트로 나오기도 했다. 제목 그대로 내 이웃의 이야기를 사랑방에 온 느낌으로 오손도손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였는데 나름 인기가 있었다.


이분의 백부가 윤보선 대통령이다. 그러니 어떤 집 자제인지 알겠지. 그런데 나의 아버지는 그 프로에 나온 윤남경 씨만 보면 왕고모, 왕고모 했다. 촌수에 그리 밝지 않은 나는 사촌 이상만 넘어가면 누가 누군지 잘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와 이분을 둘러싼 복잡한 촌수를 정리했다.


정확히는 이분의 어머니가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나의 친할아버지의 누이시다. 그러니까 이분과 나의 아버지와는 고종사촌 지간이 되고, 따라서 아버지가 왕고모라고 했던 건 이분의 어머니가 나에겐 왕고모님이 되신다는 말이었다. 처음엔 이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 집은 그렇게 뼈대 있는 집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런 뼈대 있는 가문과는 단 1도 연관되어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년 시절 명절 때면 할아버지가 고모가 사는 집으로 심부름을 보내곤 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명절 선물을 드리고 오라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 봐 남매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출가외인이고, 워낙 세도가다 보니 처가에서 무슨 말이라도 잘못 흘러 들어갈까 봐 조심이 지나친 거겠지.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게 내외를 하는데 아버지라고 그 심부름이 쉬웠겠는가.


그래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도 한동안 왕래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이 책을 엄마한테 소개하면서 저자와 윤남경 소설가의 관계를 말씀드렸더니 엄마도 이분에 대한 기억 한 자락을 털어놓는다. 엄마가 시집온 지 얼마 안 돼서 자매가 놀러 왔는데 얼마나 자로 잰 듯 바른지, 나의 큰 고모 즉 아버지의 누나가 머리를 잘못 빗어서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그러자 그걸 그냥 안 지나치고 콕 집어 지적하더란다. 나는 역시 양반은 다르구나 했다.


내가 왜 이 얘기를 털어놓냐면, 사실 그때 내친김에 윤남경 소설가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시절 기자도 하고(대단하지 않은가? 하물며 여자가.) 소설도 꾸준히 써서 그 편수가 꽤 여러 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하면 동명이인의 책은 있지만 이분의 책은 단 한 권도 찾을 수가 없다. 심지어 절판된 것으로도 나오지 않는다. 이분의 출신학교 도서관에 가면 찾을 수 있으려나.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 아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 좀 이 분의 책을 발굴해 줬으면 좋겠다.


누구는 6명만 건너면 (누구는 4명이라고도 하고) 우린 어떤 식으로든 아는 사람으로 연결되어 있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저자와 나의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먼 친척이 아는 사이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이 책이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면서 본의 아니게 사심 가득한 리뷰가 되어버렸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면 이 책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모일 사람이 어느 학교 운동장 한가득은 되지 않을까.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책은 이렇게 저자와 독자가 어느 지점에선가 만나고, 공감하고 더불어 사고의 폭이 함께 넓어지는 책은 아닐까. 


요즘 저자는 어떻게 지낼까 감히 상상해 본다. 워낙에 이어령 교수가 드리운 그늘이 크다 보니 오늘도 홀로 영인문학관을 지키고 있을 저자의 고독이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모쪼록 건강하고 평안하셨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좋은 책을 내주셔서 깊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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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5-09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그러고 보니 뼈대있는 가문이시군요.
왕고모면 5촌이니 아주 가까운 친척이니까요.

집도 오래살면 영혼이 깃드는 법이란 말씀 맞습니다.
사람이 떠나가면 집에 귀신이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시골에 있는 빈집 뿐 아니라 잘 지어놓은 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표시가 납니다.
집은 사람이 살면서 호흡하면서 관리를 해주어야 제 구실을 하니까요.
스텔라님 피아노 배우셨구나. 어디까지 치셨어요?
저는 바이엘로 졸업했습니다.



stella.K 2023-05-10 16:40   좋아요 1 | URL
ㅎㅎ 이론상으로는 그렇긴하죠.
하지만 저의 선대분들이라 그냥 풍문으로만 듣는 거죠.
저희 집은 사촌하고도 친하지 않아 안 보고 산지가
꽤 됐니다. 아마 길거리에서 만나도 잘 모르고 지나칠 걸요. ㅋ

저는 체르니도 치고, 하논도 친 기억이나요.
바이엘이면 가장 먼저치는 건데
니르바나님 정말 피아노와는 별로 친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yamoo 2023-05-10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 소설도 꾸준히 읽으시는 스텔라님~^^

작가와 평론가는 하늘과 땅 차이죠..ㅎㅎ
우리나라 평론가의 글 쳐놓고 좋은 글을 거의 못봤습니다.
평론은 창작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주로 가는 루트...

작가는 책이 없어도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죠..ㅎㅎ
책이 필요한 평론가는 아마도 대가는 아닐 겁니다..^^

stella.K 2023-05-10 16:52   좋아요 0 | URL
아유, 전혀요. 그냥 관심만 많습니다.ㅠ

그렇긴 하죠. 사실 우리나라가 책을 안 읽으니
평론집이라고 읽겠습니까? 평가절하된 것도 있죠.
근데 가끔 평론집도 읽으면 읽을만 해요.
우리나라 문학의 흐름도 알 수 있고.
특히 요즘 젊은 평론가들은 나름 톡톡 튀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 같더라구요.
어쨌든 튀어야 사니까.^^

서곡 2023-05-10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한 가지 배웠습니다 시구문 ㄷㄷㄷ

stella.K 2023-05-10 16:52   좋아요 1 | URL
시구문을 모르신다니 서곡님은 저 보단 젊으신 분이신가 봅니다.ㅋ
그것도 모르긴 해도 사람을 살리기 위한 방편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옛날엔 역병이 워낙 많았으니 산 사람과 죽은 자를 빨리
격리시켜야 하지 않았을까요?
예전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없애는 것도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결국 철거됐죠. 시구문은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게 없어진 것 같더라구요.

페크pek0501 2023-05-12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부가 책을 가까이 하는 이들이라 얘기가 잘 통했을 듯하네요.
각각의 서재를 꾸며 놓는다면 멋질 것 같아요. 우선 집이 커야겠지요...
저는 집 구경이 재밌어서 그런 프로가 눈에 띄면 채널 고정하고 시청합니다.

stella.K 2023-05-12 19:34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먹방이나 집방 같은 예능은 또 의외로
거의 안 보죠. 어차피 저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라
좌절을 느끼게 해 줘서 싫어한답니다.
대리 만족이 절대로 안 되는 인간이죠.ㅠㅠ

transient-guest 2023-05-20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부가 각자의 서재를 따로 가졌다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 인연을 맺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 강남인지 사대문 안인지 몇 건너면 아는 사람들이 겹치는 경우가 있다던데 정말 그럴 수 있겠습니다. ㅎㅎㅎ

stella.K 2023-05-20 10:20   좋아요 1 | URL
저자의 서재는 조그만 방이 남아서 그렇게 했다고 하더군요.

어디 어느 특정지역 만이겠습니까? 페이스북만 봐도 알 수 있죠. 나는 잘 모르는데 내 아는 사람이 안다고 그러기도하고 나 아는 사람 때문에 오래 전에 알았던 사람과 다시 알게되는 연극같은 일이 있지않나요? ㅋ 그래도 또 안 만나게되는 사람은 안 만나긴 하더라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