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안 수업 - 어떻게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가
윤광준 지음 / 지와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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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어는 아니지만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 있고 그런 건 찾아보면 의외로 많을 것이다. '심미안'이란 단어도 그렇지 않나 싶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면, 심미안이라고 하면 뭔가에 쉽게 흔들리고 빠지고 마는 나약한 심성이나 또는 호사가와도 짝을 이루면서 돈 많고 하릴없는 사람들이 취미 삼아 예술을 즐기는 심리 뭐 그런 걸 연상하지 않나 싶다. 또는 제 눈에 안경이라고 남들은 별 볼 일 없는 걸 혼자만 좋다고 우길 때 농담 삼아 그렇게 말하기도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다지 긍정적으로만 쓰이지 않는 이 단어를 글 잘 쓰기로 유명한(기자 출신 작가들은 글을 잘 쓴다) 윤광준이 전면에 내세우며 아예 수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심미안이란 단어는 지금은 고풍스럽지만 과거 우리 세대(모르긴 해도 작가의 세대가 386이나 그 보다 조금 윗세대가 아닐까 싶은데)에서는 매우 익숙한 말이라고 했다. 고풍스럽단 말엔 동의하지만 익숙하다는 말엔 좀 갸웃거려진다. 과연 그랬던가? 적어도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해도 우리나라 대중이 심미안에 익숙하기까지 엄혹한 80년대는 지나야 가능하지 않았을까. 또한 심미안은 인간이 가진 (어떤) 능력보다 우월한 능력이며 '아름다움을 살피는 능력'이라고 했다.  


저자는 자신을 가리켜 딜레탕트라고 했다. 그것은 예술 애호가란 뜻으로 어원은 이탈리아어의 '딜레타레'고 기쁘게 하다는 뜻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기쁨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술이 어디 그리 쉽게 찾아지는 것이던가. 그건 예술이 귀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공기와 같아서 그것을 알아보고 구체화하고 내면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아서다. 남자용 소변기가 예술품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금도 그것이 예술품인 것에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또 그런 걸 보면 무엇이 예술이고 예술이 아닌지 경계가 모호한 것 같다. 그러니 예술을 살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그래서 경험하고 공부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저자는 예술을 교과서에서만 배우고 마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학교에서 배우는 건 한계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타인의 적극적인 개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미술이나 음악을 배우도록 강제하는 건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당연히 자녀가 관심과 소질이 있다면 적극 밀어줘야 한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본인의 의지나 의향은 무시하고 남의 집 아이가 하니까 내 아이에게도 시킨다는 건 별로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요즘 그런 거 안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냐고 할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원하든 원치 않던 그건 기본이라면서. 하지만 저자가 말하지 않는가 예술은 스스로 하는 거라고. 그건 정말 스스로 알을 깨는 노력과 기쁨이 있어야지 누가 망치로 깨 주면 즐겁지 않고 부작용만 있다. 


사실 이건 내 얘기다.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해 주시면서 나더러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하셨다. 그건 내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부모님의 일방적인 선택이었고 바람이었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피아노를 좋아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난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았고 피아니스트란 단어만 들어도 오글거리다 못해 주눅이 들었다. 또한 그걸 배우느라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난 피아노가 좋아지기도 전에 질려 꽤 오래도록 뭐가 그렇게 좋은 악긴지 알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나를 위한 부모님의 그런 노력이 전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경험은 나름 오랫동안 내 안에 조용히 잠자고 있다가 초등학교 6학년 우리 반이 합주 경연 지정반이 되면서 깨어났다. 나 스스로가 합주를 하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사실 난 처음에 내가 무슨 합주를 하나 그저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멜로디혼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건 내가 음악을 하기로 선택한 것과 같다.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습하면서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물론 연습하는 동안은 힘들고 지겹긴 했다. 하지만 학교를 대표해 합주 경연 대회에서 값진 3등을 하고 그 경험은 내가 클래식을 아는데 귀한 밑거름이 됐다. 예술은 이렇게 경험되는 것이고 심미안이란 그렇게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때 나는 사춘기가 막 시작되었다. 사춘기를 잘풍 노도니 반항 기니 하지만 이때만큼 예술에 대한 갈증이 증폭되는 시기도 없는 것 같다. 한마디로 빅뱅이 일어나는 시기는 시기다. 아무리 예능의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지만 차라리 이 시기에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을 공부한다면 엄청날 것 같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부모님은 이미 오래전에 나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나 역시 더 이상 부모님께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책이나 많이 읽게 해 주면 좋겠다는 정도? 어찌 보면 부모님은 너무 일찍 나를 포기하신 것 같다. 뭐 그게 아니어도 초등학교 6학년이면 상급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다. 이미 아이들에게 예능 교육을 시켰던 부모도 그만두게 하고 공부에 집중하라고 할 때다. 그러니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무슨 (얼어 죽을) 심미안이겠는가. 


아무튼 그때 이후 내가 들었던 클래식과 팝송, 사 들였던 음반들, 영화와 책 대한 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없지만 친구들 중에 가장 앞서있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대단한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다 상대적이다. 나는 그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런 잡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내 친구들은 그런 부분엔 거의 문외한인 대신 학과 공부는 충실했으니 말이다. 그러데 저자는 말한다. 심미안은 마음의 눈을 뜨는 일이며 미적인 가치를 느끼는 능력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무기가 된다고. 그건 맞는 말 같다. 학과 공부를 열심히 쫓던 친구들은 졸업과 동시에 공부를 잊지만 그 시절 내가 들었던 음악과 책들과 영화들은 졸업 후에도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있다. 가끔 아티스트들 중엔 학력은 낮지만 자신의 분야에선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것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의 무기가 될 것이다.  


이 지면에 나의 어렸을 때 경험을 얘기했지만 그 이후로도 나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크게든 작게든 했다. 물론 그건 또 어느 순간 약화됐다가 강해지기도 했고, 어떤 건 이내 사라지기도 하며 그 대상이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린 예술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눈에 들어오고 관심이 생기거든 한때의 심미안이라고 접어두지 말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앞으로의 시대를 문화의 시대 또는 문화 전쟁의 시대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리고 그것은 적중했고 이제 한 나라의 국운까지 좌우하게 됐다. 지금도 보라. K팝 때문에 우리나라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거기엔 예술이 있고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안목 즉 저자가 그렇게 강조해 마지않는 심미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저자는 말한다. 미적 감각은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나은 아름다움을 선택하고 골라내는 능력이라고. 이것은 또 즐기지 않으면 절대로 얻지 못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그것을 역행하기까지 하니 안타깝다. 내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기 전 피아노가 얼마나 멋진 악기인지 어느 음악회에서나 그 누구의 음반에서라도 체험해 봤다면 나의 시작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듣기도 전에 치기부터 했으니 이건 걷기도 전에 뛰기부터 하라는 것과 같다. 그러니 무엇이 기쁘고 즐거웠겠는가. 무턱대고 아티스트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먼저는 예술을 즐길 줄 아는 딜레탕트로 키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저자는 딜레탕트에 대해 좋게 말하면 예술 애호가지만 나쁘게 말하면 예술에 관심은 많지만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 어떤 분야를 깊이 탐구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겸손해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공공의 적이다. 나는 이 책을 받고 목차를 보다 기겁했다. 아무리 즐긴다고 하지만 사실은 공부한 거다. 한 가지 분야도 쉽지 않은데 무려 다섯 가지 즉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을 공부하고 이런 책을 냈으니 말이다. (농담이지만, 저자가 문학이나 연극을 다루지 않은 것을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는지. 만일 그것까지 다뤘다면 나도 질투에 눈이 멀어 그를 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ㅋ) 


이 책을 읽으면 왜 저자가 겸손해했는지 알 것 같긴 하다. 사실 이 책은 각 분야에 대한 입문서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관심을 끌기엔 충분히 좋지만 깊이를 기대하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 분야는 이렇게 즐기라고 조언을 담고 있는데 또 그러기엔 나름의 격조를 담고 있어서 선택에 후회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읽으면서 진정한 딜레탕트가 되려면 진짜 부지런한 사람이 되야겠구나 싶었다. 어느 한 가지 분야만 공략을 해도 그런데 저자는 무려 다섯 가지 분야를 섭렵했으니 과연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싶다.


그래도 이 책은 어딘가 모르게 조금 아쉽다. 예술 전반을 다루긴 했지만 정작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뭔지 모르게 간과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심미안도 결국 사람의 눈 아닌가. 못 생겨도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평범한 것 같은데 매력적인 사람이 있다. 이것도 심미안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런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가 너무 엉뚱한 상상을 한 걸까. 


그런 말이 있다. 평생 아름다운 것만 봐도 다 못 보는 세상이고 인생이라고. 그렇다면 시간 낭비하지 말자. 누굴 미워하거나 게으름 피울 새가 없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도 실연의 아픔을 잊는다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아름다운 것을 찾고 연구하는데 전력투구해 보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사람만큼 아름다운 존재도 없다는 말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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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1-01-11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이야기네요 ^^
특히나 심미안과 취향의
경계를 생각한다면요.
예술의 사조만큼이나 심미안이 걸어온 발자취도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문장 ˝사람만큼 아름다운 존재도 없다˝라는 희망도 늘 가져야겠어요.^^


stella.K 2021-01-11 14:42   좋아요 1 | URL
ㅎㅎ 이 책은 어렵지 않아요.
쿠키님은 금방 읽으실 거예요.^^

cyrus 2021-01-11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MF만 아니었으면... 피아노 연주를 더 열심히 했을 거예요. IMF로 살기 힘들었던 시기에 피아노 학원을 그만뒀어요. 그 때부터 피아노 건반에 손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어요.

stella.K 2021-01-11 19:32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아픈 추억이...!
지금이라도 다시 배워 볼 생각은 없니?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꼭 다시 해.
너의 심미안을 위해.ㅎㅎ

레삭매냐 2021-01-13 10:27   좋아요 0 | URL
이 이야기는 참 슬프네요.

머니 때문이라니.

레삭매냐 2021-01-13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술도 즐기려면 돈이 드는 지라...

갠춘한 미술관 정도 가보려면 지방
에 사는 이들에게는 언감생심이지요.

모든 게 다 서울에 몰려 있으니깐요.
음악회, 뮤지칼, 빨레 기타 등등...

문화에 대한 접근성 문제도
결국 기승전 아파트로 귀결되나 봅니다.

stella.K 2021-01-13 13:32   좋아요 2 | URL
그건 그래요. 그래도 잘 찾아보면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곳만해도 구청에서 주관하는
음악회가 무료로 즐길 수 있어요.
지금은 온라인으로 하지만.
물론 항상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나름 노력하는 단체들이 공연을 하죠.
그래서 지방지자체 의원들의 활동이 중요한 것 같아요.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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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던 하루키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지금까지 드문드문 읽어도 몇 권 읽었다. 하루키 빠도 아니면서 읽게 되는 걸 보면 정말 하루키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하긴 그의 책은 제법 많고 명성도 있으니 아무래도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다. 


본격 에세이를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 하루키가 인기를 끌면서 하루키 문체 또한 주목을 받았었다. 정말 누구라도 하루키를 따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한다. 결국 이것 때문에 그의 오리지널리티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를 두고도 장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가 보다. 누구는 단편이 좋다고 하고, 누구는 장편이라고 하고, 누구는 에세이라고도 한다. 이쯤 되면 이 사람을 두고 장르를 말한다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저 독자로서 즐기는 게 서로 다를 뿐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오죽하면 그의 독자들을 가리켜 하루키 안이라고 하겠는가. 그래도 굳이 말하라면 난 에세이가 좋고 단편이 좋은 것 같다. 장편은 분량이 만만치 않아 늘 읽기에 실패한다. 그놈의 <1Q84>도 1권만 두 번씩 읽고, 2권을 3분의 1쯤 읽었던 것 같고, 3권은 아예 손도 못되고 있다. 하루키가 다시 좋아지면 모를까 앞으로 계속 내 방 어딘가에 나만 째려볼 것 같다. 이럴 것 같으면 나를 왜 샀냐고 절규하는 것 같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그래도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책을 몇 년 전에 사긴 했다. 그런데 몇 년이 흘러도 안 읽고 있기에 나완 인연이 없는가 보다고 중고샵에 미련 없이 팔았다. 그리고 다시 몇 년 만에 이렇게 중고샵에서 다시 건져 와 읽은 걸 보면 언제고 <1Q84>도 완독 하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은 갈대다. 책은 워낙에 많아서 어떤 책은 멀어지다가도 또 어느 순간 가까워진다. 


솔직히 같은 책을 다시 사니 좀 한심하긴 했다. 이렇게 다시 읽을 거면서 그땐 왜 팔았을까 싶다. 책 중독 테스트 중 같은 책을 두 번 산적이 있다는 항목이 있던데 나는 절대로 이 항목엔 해당 사항이 없을 줄 알았다. 뭐 그것도 독자의 권리라면 권리일 것이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다는 건 약간 김 빠진 맥주를 마시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는 하다. 그의 삶 자체가 딱히 극적이고 실험 정신으로 무장돼 있고, 모험 가득하고 뭐 그런 건 아니지 않나. 또한 그의 사진을 본 사람은 알 것이나 그 특유의 무표정. 기껏 표정을 짓는다면 떨떠름함 정도가 전부다. 그나마 노년이 되니 조금은 멋있고 표정이 유해진 느낌도 든다. (나만 이러나?) 게다가 그의 일상은 어떠한가, 매일 조깅을 한다고 그러지. 잠은 밤 9 신지 10시쯤에 자고 새벽 5시면 일어난다고 하지. 글은 그 사람을 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의 에세이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이미 그의 명성이 그렇게 할 수도 없겠지만 실제로도 그 안에 유머와 위트가 있다. 무심한 듯 시크해도 예리한 관찰력이 있다. 그것 없이는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의 에세이도 오리지널스럽긴 하다. 모든 에세이는 하루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산문은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거라고 하지만 단서가 있다. 정제되었다는 것. 하지만 이 둘은 엄밀한 의미에서 조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화면 조화고, 자유면 자유다. 많은 작가들이 산문을 쓸 때 전자 보단 후자에 방점을 찍고 있지 않을까. 그래야 공감을 얻고 뭔가 글의 품위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하루키는 자유롭게 쓴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의 글을 선택한다. 기존에 점잖게 글을 썼던 작가는 좀 당황하지 않았을까?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이렇게 쓸 걸. 내가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흐흑. 그러면서 어쩌면 하루키는 작가들 내에서는 공공의 적이 돼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리지널리티를 이뤄낸 사람의 비애쯤이라고 해 두자. (내가 지금 뭐라는 거니?) 


어쨌든 글은 그 사람을 닮는 법이다. 잔뜩 기대를 하고 읽으면 김이 빠지기 시작한 맥주 같기도 하지만 또 좋게 말하면 그가 재즈를 좋아해선지 재즈의 자유분방함을 닮은 것도 같다. 사실 산문은 그 정제된 문장 때문에 뭔가 밑줄 그을 부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하루키의 글도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아주 없는 것 아니지만 그냥 넘어가도 크게 나쁘지 않다. 어쩌면 그게 하루키 인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처음 글을 쓸 때부터 독자를 의식하고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독자를 의식했다면 이렇게 오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신문 연재를 그렇게 싫어했다면서 이 책은 무려 5년간 모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거라고 한다. 하루키는 거짓말쟁이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80년대 중반에 쓴 글들이다. 작가로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고 전업을 진지하게 생각했거나 막 했을 때였을 것이다. 기회가 왔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그의 일화 가운데 한때 재즈 바를 운영하면서 밤에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한데 그럼 가난하게 살진 않았겠지 싶지만 그도 가난한 때가 있었다. 그게 이 책 맨 마지막 장 '가난은 어디로 가버렸나?'에 나온다. 어찌나 그리도 시크하면서도 명랑하게 쓰고 있는지. 우린 가난을 경제적인 관점보다 문학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건 그의 유명한 단편소설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쓰게 만들었겠구나 생각했다. 거기선 가난을 얼마나 낭만적으로 그랬던지. 난 여기서부터 하루키가 좋아지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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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15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표 에세이 장르를 탄생 시킨 장인! 이분에 에세이는 사물과 풍경이 살아 숨쉬고 꿈틀거리게 만드는 문장을 구사해요. 안자이 미즈마루랑 콜라보레이션한 에세이들이 최고에요.

stella.K 2020-12-16 18:23   좋아요 1 | URL
오, 생각 보다 깊게 보시는군요.
저 <치즈케이크...>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상당히 오래 전에 읽었는데
알라딘에서 찾아 보니까 이미 절판되면서
헌책방에선 희귀본이 돼서 2만원에서 4만원 선까지 거래가 되고 있더군요.
작년까지 책 박스에 담겨 있었는데 가을에 통째로 들어냈는데
아까워 죽을 것 같습니다.ㅠ

scott 2020-12-16 20:23   좋아요 1 | URL
오! 혹시 ‘치즈케이크와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가난‘이라는 단편인가요?
우리는 그 땅을 ‘삼각 지대‘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자를 대고
그린 듯한 완전 한 삼각형의 땅이었던 것이다.
나와 그녀는 그러한 땅 위에서 살았다. 1973년인가 1974년 무렵의
이야기다. ‘삼각 지대‘라고 해도, 이른바 델타 모양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던 ‘삼각 지대‘ 는 훨씬 가늘고 길어 쐐기 같은 모양
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우선 완전한 사이즈의 둥근 치즈 케
이크를 머리에 떠올려 주기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칼로 12등분해 주
기 바란다. 즉 시계의 문자반 같은 모양으로 잘라 나가는 것이다. 그
러면 끝이 뾰족한 부분의 각도가 30도인 케이크 조각 열 두 개가 만
들어진다. 그 중의 하나를 접시에 담아, 홍차라도 마시면서 차분히 바
라봐 주기 바란다. 이것이 - 이 끝이 뾰족하고 기다란 케이크 조각이
- 우리 의 ‘삼각 지대‘의 정확한 모양이다.
어째서 그처럼 부자연스런 모양의 땅이 만들어졌느냐고 당신은 물
을지도 모른다. 혹은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좋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 마을 사람에게 물어 보아도 잘 몰랐
다. 그것은 먼 옛날부터 삼각형이었고, 지금도 삼각형이며, 앞으로도
죽 삼각형일 거라는 정도의 사실밖에 몰랐다. 그 마을 사람들은 그
‘삼각 지대‘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
도 않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왜 ‘삼각 지대‘가 그런 식으로 - 귀 뒤에 있는 사마귀처럼 - 냉담
하게 다루어지는지,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이상한 모양
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삼각 지대‘의 양옆에는 서로 다른 종류
의 두 개의 철로가 뻗어 있었다. 하나는 국철 선로이고, 또 하나는
민영 철도 선로다. 그 두 개의 철로는 상당한 거리를 평행하게 뻗어
오다가, 이 쐐기의 뾰족한 끝 부분을 분기점으로 삼아, 마치 갈라지
는 것처럼 부자연스런 각도로 꺾이며 북쪽과 남쪽으로 각기 방향을
달리하고 있다. 이것은 꽤 볼 만한 광경이다. ‘삼각 지대‘의 뾰족한
끝 부분에서 열차가 오가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파도를 가르고
해상을 돌진해 가는 구축함의 함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쾌적함이나 거주성(居住性)이라는 관
점에서 보면, ‘삼각 지대‘는 정말 지독한 곳이었다. 우선 소음이 심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철로 사이에 꽉 끼여 있는 셈이므로 시끄럽
지 않을 턱이 없다. 현관문을 열면 눈앞에 열차가 달리고 있고, 뒤
쪽 창문을 열면 거기도 다른 열차가 달리고 있다. 눈앞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승객과 눈이 마주쳐 인사할 수 있을 정
도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지독한 곳이 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막차가 지나가 버리면 그 다음은 조용하지 않냐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실제로 이사를 올
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막차 따위는 존
재하지 않았다. 여객 열차가 새 벽 한시 전에 모든 운행을 끝내 버리
면, 다음에는 심야에 운행되는 화물 열차 들이 그 뒤를 이어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새벽녘까지 화물 열차들이 모두 지나가 버린 뒤에는
이튿날의 여객 수송이 시작된다. 이러한 일들이 매일 되풀이되는 것
이다.
아이고 맙소사.
우리가 일부러 그러한 장소를 골라서 살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집
세가 쌌기 때문이다. 단독 주택으로, 방이 셋이고 욕조가 딸려 있고
작은 마당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다다미 여섯 장 방 한 칸 짜리 아파트
의 집세와 비슷했다. 단독 주택이므로 고양이도 기를 수 있었다. 마
치 우리를 위해 마련된 집인 듯싶었다. 우리는 갓 결혼을 하고, 자랑
하는 건 아니지만, 기네스북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난했다.
우리는 역 앞의 복덕방에 붙은 쪽지를 보고 그 셋집이 나와 있는 걸
알았다. 조건과 집세, 방의 배치 등을 감안할 때, 의외로 쌌다.
˝쌉니다, 싸요. 상당히 시끄럽지만 그것만 견딜 수 있으며, 의외로
싸고 진귀한 셋집이라고 할 수 있을 거요˝하고 대머리 복덕방 주인
이 말했다.
˝하여튼 보여 주시겠어요?˝하고 나는 물었다.
˝좋아요. 하지만 당신들만 갔다 오지 않겠어요? 나는 거기에 가면
머리가 아파요.˝
그는 열쇠를 빌려 주고, 집까지 가는 약도를 그려 주었다. 마음 편
하고 태평스런 복덕방 주인이었다.
역에서 바라보면 ‘삼각 지대‘ 는 바로 가까이에 보인다. 그래도 실
제로 걸어 가보면,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철로를 빙 돌아 우회하고, 육교를 건너고, 지저분한 고갯길을 오르내
리다가, 겨우 ‘삼각 지대‘의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다. 주위에
는 가게도 하나 없었다. 정말 초라한 곳이었다.
나와 그녀는 ‘삼각 지대‘의 뾰족한 끝 부분에 외따로 서있는 집 안
으로 들어가, 한 시간쯤 거기서 멍하니 있었다. 그 동안 꽤 많은 열
차들이 집의 양쪽을 지나갔다. 특급 열차가 통과하면 유리창이 덜거
덕거렸다.
열차가 지나가는 동안은, 서로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무엇인
가를 한창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 열차가 지나가면, 우리는 입을 다물
고 열차가 완전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조용해져서 우리가 다시 이
야기를 시작하면, 금방 또 다음 열차가 달려왔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의 분단이라고 할까, 분열이라고 할까, 상당히 장 뤽 고다르풍이다.
그래도 소음을 제외하면, 집의 분위기 자체는 꽤 나쁘지 않았다. 구
조는 확실히 고풍스럽고 전체적으로 파손되어 있었지만, 도코노마(역
주:일본식 방의 상좌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 벽에는 족자를 걸
고, 바닥에는 꽃이나 장식물을 놓아 꾸민다. 보통 객실에 꾸밈)나 덧
문 밖의 툇마루 등이 있어 좋은 느낌 을 주었다. 창문으로 비쳐 드는
봄의 햇살이, 다다미 위에 작고 네모진 ‘양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과 유사했다.
˝이 셋집에 들기로 하지. 시끄럽긴 하지만, 곧 익숙해질 거야˝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 있으니까, 마치 내가 결혼하여 가정을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
˝하지만 정말로 결혼했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우리는 복덕방으로 되돌아가 그 셋집에 들겠다고 말했다.
˝시끄럽지 않았어요?˝하고 대머리 복덕방 주인이 물었다.
˝시끄럽긴 하지만, 그럭저럭 익숙해 질 거예요˝하고 나는 말했다.
복덕방 주인은 안경을 벗어 거즈로 렌즈를 닦고, 찻잔에 담겨진 차
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안경을 다시 끼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젊으니까˝하고 그는 말했다.
˝네˝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임대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이사를 하는 데는, 친구의 라이트밴 한대로 충분했다. 이부자리와
옷, 식기, 전기 스탠드, 몇 권의 책,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등이 우리
의 전 재산이었다. 라디오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었다. 세탁기나 냉장
고, 식탁, 가스 스토브, 전화, 물을 끓이는 주전자, 진공 청소기, 토
스터 따위도 없었다. 우리는 그만큼 가난했다. 그래서 이사라고 해도
겨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인생은 아주 간
단하다.
이사하는걸 거들어준 친구는, 두 선로 사이에 끼인 우리의 새 거주
지를 보고 꽤 놀란 듯했다. 그는 이사를 끝낸 다음에 나를 향해 뭔가
를 말하려고 했는데, 마침 특급 열차가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말했어?˝
˝정말 이런 곳에 사람이 사는구나˝하고 감탄한 듯이 그는 말했다.
결국 우리는 그 집에서 2년 동안 살았다. 상당히 아구가 안맞는 집
이어서, 사방의 틈새에서 외풍이 들어왔다. 덕분에 여름철에는 쾌적
했지만, 그 대신 겨울철에는 지옥 같았다. 스토브를 살 돈이 없었기 때
문에, 해가 지면 나와 그녀 와 고양이는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 말
그대로 서로 껴안고 잠을 잤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보면 부엌의 싱
크대가 얼어붙어 있곤 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봄은 근사한 계절이었다. 봄이 오자, 나와
그녀와 고양이도 한숨 돌렸다. 4월에는 철도 직원들의 파업이 며칠 동
안 계속되었다. 파업을 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하루 종일 단 한
대의 열차도 선로 위를 달리지 않았다. 나와 그녀는 고양이를 껴안고
양지바른 선로로 내려가 햇볕을 쬐었다. 마치 호수 바닥에 앉아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우리는 젊고, 결혼한 지 얼마 안되었고, 햇볕은 공
짜였다.
나는 지금도 ‘가난‘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삼각형의 기다란
땅을 연상한다. 지금 그 집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stella.K 2020-12-16 20:3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맞아요! 읽으셨군요!!
와, 근데 이거 내용 전부를 타이핑하신 건가요?
대단하십니다. 스콧님 쵝오!!!!
그렇지 않아도 하도 오래되서 가물가물했거든요
덕분에 다시 읽게되서 넘넘 기쁘옵니다.
고맙습니다. 잘 간직하겠습니다.^^


scott 2020-12-16 20:40   좋아요 1 | URL
헌책방으로 넘어간 책박스에서 꺼내 드림 (⁀ᗢ⁀)

psyche 2020-12-19 15:46   좋아요 2 | URL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기차길 앞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어요. 기차가 지나갈때면 티비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런 곳이었죠. 밤에는 낮만큼 자주는 아니만 화물 열차가 지나갔고요. 그 아파트에서 이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읽었어요. 읽고나면 까먹는 저인데 이 책만큼은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scott 2020-12-19 15:57   좋아요 2 | URL
프쉬케님 저는 처음 배정된 기숙사가 옛날 2차세계대전때 야전 병원으로 썼던 곳이였는데 방방마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했고 저는 괜찮았는데 다른 층(수술실이였던)에 살던 학생들은 밤마다 귀신을 목격했다고 난리를 쳐대서 가을학기때 다른기숙사로 옮겼는데 1층으로 바로 창을 열면 달리는 전차 바퀴가 보여서 전차가 달릴떄마다 창문 전체가 흔들리고 탁자 책상까지 요동을 쳤어요 ㅋㅋ
새벽 4시 30분 출발에 그다음날 새벽 12시 30분까지 달리는 전차여서 전차 달리는 시간에 깨서 서둘러서 학교 가서 도서관에서 12시까지 버티다가 막차 타고 기숙사로 돌아와서 자는 생활을 했는데 (방에 놀러온 친구들이 충격을 받을정도로 소음이 심했고 당연히 말소리도 안들림) 그곳에 산지 몇달후에 전차 노동자들이 두달 넘게 파업해서 전차 길에 소복히 눈이 쌓이는 걸 구경하며 고요하게 두달을 보냈었네요.
하루키에 ˝치즈 케이크~‘는 몇번을 읽어도 질리지가 않아요 공감하면서 읽어서 인지 ^*^

stella.K 2020-12-19 19:06   좋아요 1 | URL
아웅~! 프시케님, 스콧님 그런 추억을 남겨 주시다니 감동입니다.
물론 옛날 얘기니까 이렇게 말씀하시지 당시엔 얼마나 괴로우셨겠습니까?
그게 하루키의 단편과 딱 맞물렸으니
정말 하루키는 대단한 사람 같습니!.
더구나 스콧님은 딱 치즈케이크네요. 미국은 파업을 하면 두 달씩하고
그러는가 봅니다. 근데 저는 그렇게 살라고 그러면 못 살 것 같아요.
전차길에 눈이 소복히 내려 쌓이다니. 정말 황금 같은 기간이었겠습니다.
이거 완전 단편 소설인데요? 소설로 완성해 보심이...!ㅎㅎ
저는 뭐 그런 추억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정말 <치즈케이크...>는
그 은유가 기가 막힌 것 같습니다.
귀한 말씀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 2020-12-16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잘 모르면서 하루키 소설 여러 권 보기는 했어요 무라카미 라디오 첫번째 책 볼 때는 재미없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재미있더군요 예전에는 무라카미 유머를 잘 몰랐나 봐요 시간이 흐르고 조금 알다니... 하루키는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할 듯합니다 저는 소설 안 보다 《1Q84》 보고 재미있네 하기도 했어요 좀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상상 같은 건 괜찮기도 해요


희선

stella.K 2020-12-16 18:25   좋아요 2 | URL
하루키는 좀 묘한데가 있는 것 같긴해요.
처음엔 뭔가 기대를 갖고 읽다가
생각보다 별로네 하다가 또 어느 순간 야금야금 읽게되는 것 같습니다.ㅋ

페크pek0501 2020-12-16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고 삼분의 일 정도 읽었을 거예요.(목차에 읽은 제목에 동그라미를 쳐 놓고 읽는 습관이 있고 여러 책을 돌려가며 읽어요.) 이 책은 그의 에세이 중 빼어나지 못한 것 같아요. 오디오로 비밀의 숲 중 몇 개를 들었는데 이건 좋더라고요.

명성 있는 작가라고 해서 작품이 다 좋지는 않고, 몇 개의 수작 때문에 그들이 빛나는 게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어떤 문장은 하루키가 아니라면 쓰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드는 게 있긴 하더라고요.
최근에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라는 책을 구매했죠. 하루키의 문장을 분석, 소개하는 책이죠.
앞으로도 하루키에 속아 더 구매할 것 같은 예감을 느낍니다.

stella.K 2020-12-16 20:15   좋아요 2 | URL
맞아요. 유명한 작가라고 모든 게 다 좋은 건 아니죠.
고 몇 편의 수작 땜에 명성을 얻고 나머지 작품도 덩달아
수작을 반열에,,,ㅋㅋ
말씀하신 책 막 발간됐을 때 모처에서 서평 이벤트 했는데
신청할까 하다 포기했어요. 시간에 쫓겨서 서평을 쓰는 게
점점 귀찮고 부담스럽더라구요.
언제고 중고샵에 나오면 사려고 대기하고 있습니다.ㅋ

근데 하루키에 속으시다뇨. 그냥 즐기십시오.
누가 뭐라고 안 그럽니다.ㅎㅎ

scott 2020-12-16 20:46   좋아요 2 | URL
맞아요 페크님 장편-단편-여행기- 에세이
*비밀의 숲-‘장수 고양이의 비밀(하루키가 30대때 쓴 에세이중 최고로 재미짐 ㅋㅋ)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이윽고 슬픈 외국어 스텔라 케이님께 추천~*
번역가들이 말하는 하루키(한국+미국) 이문장에 이단어를 딱 끼워 맞춰쓰는 기술, 정교하게 문장을 다듬는 장인 글쓰기 장인이래요 ㅋㅋ
사실 하루키는 자신에 창작 서랍장에 있는 여러개 테마중에 주인공이름 직업 배경 기타 등등만 조금씩 바꿔서 변형시키는 귾임없이 글쓰기 태엽을 감는 새 같은 작가에요 ㅎㅎ

장편 ‘태엽감는 새‘에서 그동안 무수히 많은 장편들이 파생되었고 몇몇 단편에서 장편으로 확장 시켜도 하루키표 소설에 가장 큰 테마는 ‘태엽감는 새‘안에 전부 담겨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 하고 하루키가 새책을 출간하면 구매하게 되는 이유가 읽혀지는 글,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영리한 작가에요 ㅋㅋ



scott 2020-12-23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케이님
내일은 미세먹지 최악
그럼에도 불구 하고 크리스마스 이브~*
트리 한그루 심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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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ry ☆ Christmas! ** ★
│Merry..........:+☆+:............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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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rry ..:+ +:.. Christmas! ** ★
┼``:``:``:``:``:``:``:``:``:``:``:``:``:``:``:``:``:``┼
건강하고 행복한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stella.K 2020-12-24 15:56   좋아요 1 | URL
아웅~ 저에게도 이런 크리스마스 이모티콘을
만들어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올해 가장 기쁜 일 중 하나는
제가 스캇님을 알게 되었다는 일일겁니다.
근데 스캇님 활동하신지는 꽤 되셨더군요.
왜 몰랐을까요?
어쨌든 별 볼 일없는 서재에 관심 가져주시고
말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이웃으로 잘 지내보아요.ㅋ
스캇님도 행복하고 뜻깊은 성탄절 되시기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페크pek0501 2020-12-23 2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십시오. 메리 크리스마스!!!!!!!!!!!!!!!!!!!

stella.K 2020-12-24 15:57   좋아요 1 | URL
와~ 느낌표 장난 아닌데요?
그만큼 언니가 저를 많이 애정하신다는 게
뚝뚝 느껴지네요.ㅎㅎ
언니도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십시오!^^

후애(厚愛) 2020-12-24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 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stella.K 2020-12-24 15:58   좋아요 1 | URL
네. 후애님도 기쁜 크리스마스 되십시오.
고맙습니다.^^
 
한동일의 공부법 - 한국인 최초 바티칸 변호사의 공부 철학 EBS CLASS ⓔ
한동일 지음 / EBS BOOKS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하기에 따라선 한동일 교수를 조금 일찍 만날 수도 있었다. 몇 년 전 모처에서 주관하는 독자와의 만남에 당첨이 됐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가지 못했다. 책을 쓴 저자라는 것도 그렇지만 신부님이라고 하니 과연 어떤 분일까 궁금했다. 그땐 그가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라는 것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변호사야 흔하고(?) 단지 이탈리아 그것도 이를테면 교회에서 받은 셈인데 그게 어떤 의민지 잘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허망하게 기회를 날리고 과연 그를 만날 기회가 다시 올까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효자였을까? 뜻하지 않게도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면서 TV로나마 그를 볼 수 있어서 행운 같이 느껴졌다. 더구나 그 유명하다던  <라틴어 수업>으로 강연을 한단다. 그렇게 해서 보게 된 그는 신부라기 보단 어느 기업의 전무(?)처럼 보였고, 기대했던 강연은 의외로 그다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학교 때 우등생이 아니어서일까 역시 나는 '수업'과는 친한 운명이 아닌가 보다 했다.     


그러다 한 달쯤 지났을까? 그가 같은 프로에 또 나왔다. 이번엔 자신의 이름을 단 공부법을 소개한다. 공부도 못한 주제가 자존심은 있어서 난 어떤 수재의 공부 비법을 소개하는 책이나 간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이 분은 좀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면서 신부가 아닌가. 뭔가 공부에 대한 깊은 철학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연은 정말 감동이었다. 난 아무리 좋아도 재방을 보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머리에 남으라고 재방을 봤고, 마침 그 프로 제작진들이 휴가였는지 삼방도 하길래 그것까지 봤다. 그걸 보면서 혹시 이 강연 내용이 책으로 나온다면 난 기꺼이 보겠다고까지 했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여서 나는 약속처럼 책으로도 보았다. 사실 TV 강연은 워낙 짧게 해서 아쉬움이 있었으니. 


학교를 졸업한 지 꽤 오래됐지만 지금도 지식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식욕을 항상 채우고 살았다는 건 아니다. 그냥 욕구만 있다.) 그런데 왜 난 한 번도 이런 공부에 대한 강의나 책을 찾아볼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세월이 좋아졌단 생각이 든다. 교과에 맞는 온갖 정석과 비법을 소개한 그렇고 그런 참고서류는 많아도 이런 책은 나 때는 없었는데 지금이라도 나와주니 말이다.    


우린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공부를 시작한다. 물론 이유는 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 이유가 너무 깊이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너무 강력하기도 하다. 대학에 가기 위해 초등학교에 첫발을 내딛는다고 생각하면 그 아이의 시작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입시를 치를 때쯤 되면 모든 사람이 다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텐데 그 출발선이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대학을 가는 것도 아닌데 대학을 나오면 일류가 되고 못 가면 이류가 된다. 시스템이 문제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어느 시점에서 이런 강의를 듣는다면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나마 대학을 가도 그 속에도 또 나뉘고 걸러진다. 설혹 자타가 공인하는 일류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열등감을 불태우는 것을 목도하기도 한다. 반대로 지나친 우월감에 타인으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들 때도 있고.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성숙해져야 하는데 별로 가까운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숨마 쿰 라우데'란 라틴어 단어가 있다고 한다. 이건 유럽 대학이 성적 평가에 쓰이는 표현으로 '최우등'이란 뜻이란다. 이 말은 타인과 비교해서 가장 우수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거둔 성적 중 가장 우수하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상대평가를 하지 않고 절대평가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까지가 그나마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나 초등학교 때만 해도 막 학교에 들어온 입학생에게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면 '참 잘했어요'와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셨다. (이 두 도장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그 시작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걸 계속 고등학교 3학년까지 가져갈 수 있어야 하는데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상대평가를 한다. 

 

나는 학교 내내 내가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주입식 수업 방식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 오로지 공부만을 위해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게 너무 소모적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가 여러 개였다면 나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불행하지마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친구를 사귀고 도시락을 까먹고 자유롭게 상상하는 게 인정되었더라면 나의 학교 생활도 그리 나쁘지마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예 성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런 거야 대학 들어가면 실컷 하는데 뭣 때문에 그런 걸로 시간 낭비를 하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학교는 오히려 좋은 친구를 사귀는 데 있지 않고 친구를 경쟁상대로 삼으라고 조장하고 부추기며 자유로운 생각을 억압한다.  


그나마 그 시절을 버티게 해 줬던 건 독서였다. 학교가 너무 싫어서 책 속으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이 역시 학교 생활에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책 그만 읽고 공부하라고 할까. 독서가 공부고 공부가 곧 독서여야 하는데 이것이 분리되어 있다. 언젠가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독일인 예능인이 TV에 나와 독일의 교육의 모토는 좋은 친구와 독서와 여행하는 것에 있다고 하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그 부러움은 이 책을 읽을 때 또 한 번 마주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수능이라고 할 수 있는 바칼로레아 그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능에 해당한다. 나는 프랑스의 학생들도 우리나라처럼 혼자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시험인 줄 알았다. 하지만 프랑스는 철학과 논술이 아예 국민적 관심 대상이라 입시 문제가 발표되면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그걸 주제로 토론을 하고, 지식인들은 그 문제에 대한 답안을 작성해서 신문에 기고할 정도라고 한다. 즉 바칼로레아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축제 같은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수험생들이 겪는 시험 공포 같은 건 없겠구나 싶다. 우리는 어떤가. 수능이 끝나면 죽을 때까지 수능에 무슨 문제가 나오는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나라 수능이 문제가 많고 해로운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언젠가 외국에서 우리나라 수능을 평가했는데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걸까? 문제는 학교가 공부하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도록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공포로 몰아간다. 아이들을 닦달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문제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 때는 시험 문제를 틀리면 틀린 수만큼 매를 맞아야 했다. 완전 스파르타식이다. 그게 얼마나 서럽고 창피하던지. (그런데 중세시대 유럽의 귀족 가문의 자제들도 맞으며 공부를 했나 보다.) 


물론 공부를 말랑말랑하게 하자는 말이 아니다. 말랑말랑한 건 공부가 아닌지도 모른다. 공부가 그리도 중요한 거라면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린 이제까지 그런 것도 없이 그저 해야 하니까 하고, 남들이 하니까 했다. 엄밀히 말하면 승자독식이란 구조하에 합격생을 배출하기 위해서만 교육 시스템을 운영해 오지 않았는가. 이는 역으로 합격생을 배출하기 위해 그처럼 많은 사람을 불합격생으로 떨어트려 왔다는 얘기다. 너무 소모적이다 못해 말살적이기까지 하다. 거기에 우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런 교육에 저항하라고 부추기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그저 저자의 공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책일 뿐이다. 오히려 현실은 불합리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실존적이고 능동적으로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내용에 보면 부모를 떠나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해냈다면 비상한 머리와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을 것 같지만 저자는 똑똑하지도 않거니와 부모는 항상 싸우기만 했다고 한다. 부모가 서로 화목해도 부족 할판에 늘 싸웠다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어느 날 부모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물리적인 독립이 아니라 정신적인 독립을 한 것이다. 부모는 자신을 낳아준 것만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단다. 그것도 청소년 시절에.


공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교과는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어쨌든 시스템에 맞추어야 다음 기회도 도모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 교과는 교과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지식을 쌓아 가는 건 어떨까. 어차피 천재는 학교에서 만들어 주지 않는다. 천재는 어느 특정 분야에서 나오는 법인데 그 특정 분야는 전문 분야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 교과는 기본으로만 하고 자기 좋아하는 분야를 파라. 누가 아는가 천재가 될지. 농담이다. 말하자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해있든 자신은 자신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의 중학교 3학년 때 국사 선생님이 생각이 난다. 사실 그 선생님은 아이들 사이에선 그다지 인기 있는 선생님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이제 청년을 지나 중년으로 접어들기 시작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더구나 고리타분한 국사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과 좀 달랐다. 다른 선생님은 교과 이상을 벗어나는 적이 없었는데 이 선생님은 일단 가르치는 것을 너무 좋아하셨고 교과 이상을 가르쳐주셔서 중 3의 교실이었지만 일순간 어느 대학 강의실이 되기도 했다. 그 선생님은 단정하지만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다.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것일 게다. 


저자는 학교 때 성적이 좋지 못했다고 하는데 난 그 말을 믿는다. 정말 아이들 중엔 종종 공부를 잘할 것 같은데 못하는 아이가 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은 진단 내리기를 머리가 나쁘거나 방법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학교 공부는 못했어도 그 역시 책을 좋아했고 책을 통해 얻은 그 많은 인문학적 지식은 나중에 그가 학문의 길을 걷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오래전부터 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배경이나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하는 일이 그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이에 해당하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목수는 목수의 일을 함으로 목수가 된다.' 그러려면 변함없이 매일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즉 루틴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또한 그것이 운을 만드는 길이 되기도 한다. 알다시피 행운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오는 법이다. 그는 그가 교수가 될만한 자질과 배경이 있어서라기 보단 그의 루틴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자신을 가리켜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했다. 공부하면서 노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를 노동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공부로 수행 또는 수도한다는 말일 게다. 우리가 오로지 수능이나 무슨 자격증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과는 차원이나 자세가 다르다. 그는 10년마다 한 번씩 공부 계획을 짠다고 한다. 짤 때는 그저 만만하게 해낼 수 있는 정도로 짜는 것이 아니라 이게 가능하겠나 싶게 짠단다. 그 자신도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단다. 하지만 그렇게 짜고 그는 하루하루 루틴을 실천하며 그걸 감당해 간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그 방대한 라틴어 사전이기도 하다.) 


유학을 하게 되면 언어 때문에 고생하는 건 차치하고라도 (그건 누구든 겪는 거니까) 그는 건강이 발목을 잡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안 되었다기 보단 건강관리에 대한 지혜와 요령이 생겼다고 한다. 난 일찌감치 공부의 뜻을 접었던 이유 중 하나가 건강 때문이기도 했다. 더 정확히는 건강염려증 때문이다. 괜히 공부한다고 암에라도 걸리면 어쩌나 했는데 뭐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꼴이다.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뜻을 세웠다면 그 길을 가 봐야 한다. 가다가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늑대가 울어도 먹이를 주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늑대는 사람들이 갖는 걱정과 근심을 말한다. 그놈에게 먹이를 주면 어찌 되겠는가. 


공부는 암벽 타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때로 운동으로 스스로 다지는 것처럼 공부는 우리의 정신을 다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린 하기에 따라선 최소의 수고만 하고 게으르게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앎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짐승이 되어간다고 하지 않는가.


공부하는데 금지 언어가 있다. 바로 공부해서 남 주냐는 말이다. 공부로 경쟁하고 입신양명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아직 유효한 말이긴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선 그런 말은 해당하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공부해서 남을 주라고 한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에게 한 학생이 인류문명의 첫 신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부러졌다가 붙은 흔적이 있는 넓적 다리뼈'라고 했단다. 그것은 뼈가 부러진 사람이 회복할 때까지 누군가 곁에서 도와주었다는 흔적이고,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돕는 게 문명의 시작이라고 했다(319p). 앞으로의 우리의 공부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  


저자가 정말 공부 노동자를 자처해서일까, 그는 신학교 때 두꺼운 철학사 두 권짜리를 독파하기도 하고, 잘 사 보지도 않는 라틴어 사전을 번역하기도 하고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한다고 한다. 우리가 느낄 땐 참 쓸 때 없는 공부 같아 보인다. 더구나 라틴어는 사어가 아닌가. 그런 남아 알아주지도 않는 공부를 매일 아침 7시에 시작해서 밤 11시에 마친다고 해서 세븐 일레븐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나마 이 별명도 최근에 떼었다고 한다. 건강이 받혀주질 않아서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심기일전하여 다시 공부해야지 싶다. 뭐 꼭 공부란 게 학교나 학원을 가야 하는 건 아니다. 평생 공부하려면 결국 혼자 공부해야 한다. 저자가 마지막에 얘기하는 것도 독학이다. 그게 또 공부하는 노동자에 맞고. 그런데 이렇게 리뷰까지 써도 공부는 참 쉽지가 않다. 이 책에 은혜받아 오랜만에 어렵고 힘든 책에 도전해 보는 중이다. 그나마 나는 두꺼운 책 한 권인데도 갈수록 하루 동안 읽는 양이 점점 얇아지고 있다. 눈도 아프고 몸이 꼬이고 언제 다 읽을는지 모르겠다.


난 이 책을 읽기 전 그 강연이 너무 좋아 늦게나마 <라틴어 수업>을 읽었다. 알다시피 <라틴어 수업> 은 그가 모 대학에서 라틴어를 강의했던 것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라틴어 격언이나 속담을 풀이하면서 저자의 생각을 덧붙인 것이다. 이 책은 그 연장이기도 하다. 라틴어에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라틴어 격언과 함께 공부에 대한 깊은 울림과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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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0-14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탁환 저자의 책 리뷰로 이달의 당선작에 뽑히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한동일 저자의 다른 책 - 라틴어 수업, 인가 읽었었는데 괜찮았어요.
그런데 어려운 공부를 하는 너무 대단한 분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이 들었었어요.
하나는, 그런 능력이 있어 좋겠다, 였고(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으니.)
또 하나는,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 필요가 있나, 하는 거 였어요.ㅋ

stella.K 2020-10-14 18:46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렇죠? 맞아요. 근데 이 책 읽으니까 내가 너무 말랑말랑거리며
살았지 싶더라구요. 솔직히 전 학교 때도 요리조리 힘들고 어려운 건
피하고 살았거든요. 그랬더니 나이들면서 문제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지
않나 싶기도 하더라구요. ;;

언니 책으로 됐으면 좋았을텐데 그 리뷰에 너무 힘을 뿜뿜 준 것 같습니다.
근데 생각해 봤더니 저의 책은 아무도 당선작이 된 분이 없더라구요.ㅎ

레삭매냐 2020-10-14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독서 모임에서 <라틴어 수업>
이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진짜 라틴어에 대한 수업 이야기라
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어서 실망 했
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stella.K 2020-10-14 20:12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라틴어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이런 접근법이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도 중학교 때 처음 배우는 문장이
I am a boy 등 말도 안 되는 굉장히 단순한 문장이잖아요.
그에 비하면 한동일 교수는 라틴어 명언이나 격언 가지고
했다면 좋은 건데.
모르긴 해도 이 분은 거의 모든 책을 그런 식으로 풀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어떤 사람은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어찌보면 그건 저자의 시그니처 같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작가들은 자신만의 문체가 있잖아요.

축하 고맙습니다.^^

han22598 2020-10-15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스텔라님처럼 어릴 때부터 독서에 빠져 많은 책을 섭렵하셧던 분들이 가장 똑똑한 것 같아요^^ (많은 알라디너분들이 그런 것 같고요) 실제로 한 분야를 오랫동안 공부하는 박사님 (^^)님들과 그것을 업으로 하신 분들은 한분야만 드립다 파기 때문에 오로지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만 알기 때문에 (조금 오바해서) 그외에는 굉장히 무식(ㅋㅋ)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stella.K 2020-10-15 17:56   좋아요 0 | URL
ㅎㅎ han님의 생각엔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제가 또 생각만큼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
예전에 블로그라는 게 없었을 땐 정말 비교가 불가능해서
전 책을 얼마나 읽는지 몰랐습니다.
근데 말씀마따나 알라디너분들 정말 책을 많이 읽더군요.
그런 걸 보면 저도 분발하려고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는 않더군요.
암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애(厚愛) 2020-10-19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 챙기세요.^^

stella.K 2020-10-19 21:16   좋아요 0 | URL
네. 후애님도요.^^

scott 2020-10-19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분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책을 쓰실때 스탠딩 책상에서 쓰시고 눈도 한쪽이 온전한 시력이 아니신데 이렇게 줄줄이 책도 써내셔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학생들한테 히스텔 부리는 여자 선생들 너무 싫어했네요
stella.K님 말처럼 교과서 밖 그이상을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가장 기억에 남고 배운것도 많았어요.
독일어시간에 연극 영화 비디오 보여주고 음악시간에 오페라 공연 보여주고 영어수업 시간에 애거사 크리스티 원서 읽으며 토론했던 (물론 시험범위를 다마친후에) 수업들....

stella.K 2020-10-19 21:56   좋아요 2 | URL
오, 앞으로 스코트님과 친하게 지내야겠어요.
어떻게 제가 모르는 걸 알고 계시죠? ㅎ

그렇구나. 건강이 안 좋으시구나.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세븐일레븐으로 공부한다니
너무 열심히 공부하셨나 봅니다. 눈이 나빠지고 앉아만 있어
좌골이며 다리도 안좋아졌겠죠.
그래도 강연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던지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선생님은 꼭 어느 학년 어느 시절이나 꼭 계시는 것 같아요.
정말 산소 같은 선생님이시죠.^^

카알벨루치 2020-10-27 19:58   좋아요 1 | URL
남들이 다 보는 걸 못 보는 분은 남들이 볼수 없는 부분을 볼수있는 혜안이 있으시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20-10-27 1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인싸 모임 하는것 같군요! 전 인제 앗싸 ㅋㅋ한동일 작가가 신부님이셨구나 저도 <라틴어수업> 읽다가 말았는데 신부님이시라니...암튼 띠엄띠엄한 이 성격은 참 어쩔수 없네요 대학때 라틴어수업을 들었는데도 까막눈이네요 ㅋ

일본의 작가가 그런 표현은 하더라구요. “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비로소 등산이 시작된다” 공부가 그런듯 합니다 평생공부...인제 4차산업시대는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가 더 되어가겠지요 ㅎ

stella.K 2020-10-27 18:32   좋아요 1 | URL
아, 그렇지 않아도 카알님 글이 오랜만에 올라와
인사를 전할까 하다가 좋아요만 누르고 나온 게
죄송해지려고 하네요.
잘 지내시죠? 이렇게 가끔씩이라도 뵐 수 있다는 게
반가운데 표현도 못하구.ㅠㅠ

그거야 책 좋아하는 사람의 공통점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전 한동일 교수 글 마음에 듭니다.
라틴어 수업 재미없으셨다면 이 책도 재미없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분은 모르긴 해도 이런 스타일로 쓰는 것 같습니다.

하~! 한숨 나오네요. 4차산업 시대라고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니
전 그냥 저 읽고 싶은 책이나 읽으며 안빈낙도 하고 싶은데 말입니다.ㅠ
 
피은경의 톡톡 칼럼 - 블로거 페크의 생활칼럼집
피은경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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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려면 칼럼을 많이 읽으라는 말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같은 블로그를 쓰는 관계로 자주 저자의 글을 읽는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처음 블로그 활동을 할 때부터 칼럼을 계속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생활 칼럼을.


오랫동안 저자의 글을 봐 와서일까? 물론 난 아직도 칼럼을 쓸 자신은 없지만 이렇게 쓰는 걸 칼럼이라고 하는구나 싶다. 무엇보다 저자의 글은 자칫 일상에서 흘려버릴 수도 있는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들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잘 포착해 전달해 준다. 그것도 매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수필은 비교적 좀 사적이고 감정에 호소한다면, 칼럼은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나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사고에 과연 그런가 하며 좀 다르게 생각해 보기를 유도한다. 그것은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안정적인 사고와 저자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서 저자는 생활 칼럼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생활 수필이란 장르가 있었는데 그것이 생활 칼럼으로 바뀐지도 모르겠다.) 


이런 저자의 글이 언젠가 책으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드디어 나오게 돼서 기뻤다.

솔직히 같은 글이라도 인터넷에서 읽는 것과 책으로 읽는 맛이 다르다. 인터넷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파편화된 느낌이지만 책은 그 여러 편의 글을 모아 다듬어 저자의 생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나는 저자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글을 보면서 저자가 글쓰기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가를 느끼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글 쓰기를 위해 많은 공부를 해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도 그 노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물론 그건 저자뿐만 아니라 글쟁이라면 평생 감당해야 할 업보 같은 건 아닐까. 또한 저자의 특징 중 하나는 칼럼에 문학 작품을 녹여 칼럼으로서의 품격을 높이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저자가 한 편의 칼럼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글 쓰기도 여러 장르가 있지만 저자는 언젠가 칼럼을 가장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쓴다고 했다. 물론 작가가 다방면으로 글을 잘 쓰면 좋지만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를 골라 전문이 되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칼럼은 보다 많은 독자들을 포용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신비주의 작가도 나름 나쁘진 않겠지만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하다 작가가 되는 경우가 많아진 만큼 독자 같은 작가, 작가 같은 독자가 더 중요해졌고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니 문득 생활 칼럼니스트가 되는 몇 가지 요건이 발견됐다. 그걸 정리해 보면, 먼저 생활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걷는 것을 좋아하고 (지금은 코로나로 좀 어려워지긴 했지만) 발레로 꾸준히 몸을 다진다. 저자는 몸이 안 좋아 시작했다고 전하기도 하지만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생각이 깃드는 법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삶에서 늘 긍정적인 요소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정말 생활이 문란하다던가 어딘가 건강하지 못하서야 그런 글을 쓸 수 없다. 또한 '우정은 정이오'란 제목의 글에선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이 말은 친구와 건배할 때 하는 건배사라고 한다. (건배사가 참 그럴듯하다.) 마음을 나눌 친구 둘, 셋만 있어도 그 사람은 평생 외롭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이야 말로 좋은 칼럼니스트가 되는 요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책이 빠지면 안 된다. 저자는 책에 대하여 이런 말을 썼다. 

 책을 보면 참 잘생겼다고 느낀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바라보면 또는 방바닥에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면 그것의 잘 생긴 외양에 감탄하곤 한다. 이보다 더 잘 생길 수는 없을 듯싶다. 아무리 전자책의 출현으로 인해 종이책이 종말을 고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한 장 한 장 넘기는 종이의 질감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93p)

읽고 좀 놀랐다. 나도 내내 책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요즘 어떤 책들은 잘 생겨도 너무 잘 생겼다. 읽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하고 배가 부르다. 이 잘 생긴 녀석들 언제 다 읽을까 고민도 하며, 손때 한 번이라도 더 타게 해 줘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서글플 때도 있다. 책은 이리도 잘 생기고 많은데 내가 죽기 전에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또한 내가 죽고 나서도 어떤 책들이 세상에 나올까 그 책을 읽을 수 없음이 아쉽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잠시도 지루하다던가 우울할 새가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 책에 감탄하지 않고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저자가 될 수 없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건강한 몸과 마음. 긍정적 사고, 좋은 친구와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책을 사랑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쓸 글감이 있다는 건 정말 최적의 생활 칼럼니스트가 될 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생활 칼럼니스트에게만 요구되는 건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삶을 견지한다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넉넉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 저자의 글을 생각하면 별 다섯 개도 아깝지 않지만 책 장정이 참 많이 아쉬웠다. 출판사는 분발하라는 의미에서 하나를 뺐다. 저자의 양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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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30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를 너무 좋게 쓰신 거 아닌가요? 제가 꼭 바른 생활의 어른 같습니다.ㅋ 건강을 중요시해서 무용도 배우고 걷기도 하고 그럴 뿐입니당~~
제 책에 대해 리뷰를 쓰신 분들의 글을 읽어 보면 제각각 중요 포인트가 달라서 저로선 흥미롭습니다.
책 표지는 저도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속지(본문)는 질 좋은 종이를 써서 두껍답니다.그리고 글자의 잉크를 진하게 해 달라고 부탁해서 진하게 나왔어요. 눈이 피로하지 않기 위함이에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 리뷰를 써 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stella.K 2020-09-30 18:37   좋아요 0 | URL
좀 더 멋지게 써야되는 건데 어떻게 쓰다보니 그렇게 쓰게 됐습니다.
그게 참 놀랍고 재밌죠?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다 다를 수가 있는지
정말 흥미롭더라구요.

맞아요. 솔직히 하나 하나 뜯어보면 공이 안 들어간게 아닌데
뭔가 모르게 아쉽단 생각이 들더라는 거죠.
어쨌든 출판사가 좀 알아야 할 것 같고 다른 책도 이러나 싶어서.
우린 이제 사람 잘 생긴 것 보다 책 잘 생긴 걸 더 좋아하고 따지는
사람이 되었잖아요. 그렇게 이해하시길.ㅋㅋ

2020-09-30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20-10-05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껴 읽으려고 아직 손도 안 댔는데 우아 빠르십니다.ㅎ
행복한 한 주 되시고 항상 건강 챙기세요.^^

stella.K 2020-10-05 18:34   좋아요 0 | URL
아유, 빠르긴요. 후애님 아직 안 읽으셔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빨리 읽으시잖아요.
고맙습니다. 후애님도 건강하십시오.^^
 
김탁환의 원고지 - 어느 예술노동자의 황홀한 분투기, 2000~2010 창작일기
김탁환 지음 / 황소자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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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왔다. 다시, 쓰는 수밖에 없다. -321p'


그런 말이 있다. 작가가 되려면 글을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어느 한 분야에 도통한 사람이 되라고. 다소 의아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을 가장 잘 증명해 낸 작가로 김탁환 작가만 한 사람이 있을까.


그가 작가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때가 언제였을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은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그가 어떤 작가가 될지 알지 못했다. 한때는 열심히 작품을 내다 소리 소문 없이 독자에게서 멀어져 간 작가도 많으니 그도 그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이름 하나가 특이해서 잘 잊히지는 않겠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시쳇말로 그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권만 읽은 사람은 없다 할 정도로 유명을 넘어 대작가 되었다. 나 역시도 그의 책을 몇 권 읽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그는 조선을 쓰고 있다. 물론 현대물도 쓰고 다른 여타 장르의 글도 쓰지만 그는 조선 전문 역사 소설가라고 해야 가장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백탑파니 방각본이니 하는 말도 그가 아니면 평생 알지도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니 몇 년 전 그를 독자와의 만남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익숙히 보아 온 사진과 달리 턱에 난 거뭇한 수염을 제외하면 그는 의외로 소담하고 조근조근한 스타일이었다. 그는 일생동안 조선에 관한 책을 60권 쓰겠다고 했다. 그때는 그가 <목격자들>이란 책을 30, 31번째로 내놓고 작업의 반환점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조금은 부러웠다. 자기 분야가 확실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뭔가의 자신감을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도 그렇지만 그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 작품을 탈고하면 바로 다음 날 새로운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고 하니 말이다. 대단하다 싶었다. 나 같았으면 탈고했으니 한 일주일 적어도 3, 4일은 쉬어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책은 작가의 지난 2000년에서 2010년까지 기록한 창작 일기다. 

일기만큼 사람의 관음증을 만족시켜주는 장르가 또 있을까. 나는 읽자마자 금세 빠져들었다. 왜 이 책을 이제야 읽었을까. 이 책이 막 발간될 때만 해도 비슷한 시기에 발간된 책들 중 단연 읽고 싶은 책으로 특 A 였는데 말이다. 솔직히 난 그때만 해도 이 작가를 완전히 좋아하지 못했다. 그러니 자꾸 다른 책이 끼어드는 바람에 이내 잊혔다. 변명은 또 있다. 역사 소설을 좋아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좀 그렇지만 한때는 사극의 열풍이 거셌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 꼭 그 사극의 배경은 조선 시대다. 그것도 당파 간의 싸움과 임금의 여자들의 알력 다툼으로만 모아지는 구조. 그래서 끝까지 본 드라마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의 작품을 생각할 때 왜 하필 조선 시댈까 할 뿐이다. 확실히 사극은 양날의 칼이다. 사극을 통해 역사에 더 가까이 가던가 멀어지던가. 하지만 무엇이 중하단 말인가.


작가만큼 아름답고도 신비한 존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주관이다. 작가는 인간적으로 부족하고 나약하고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지적 시점을 견지할 수 있다고 신의 전지전능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격적으로 완벽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자꾸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싶고 그들을 알고 싶어 진다. 무엇보다 난 그들이 치열하게 쓰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김탁환 작가는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이 김탁환 작가만 있는 것은 아닐진대 업계(?)에서는 또 그런 작가를 특별히 반기진 않는가 보다. 가르치는 건 호구지책인 경우가 많으니까. 그는 그런 소리 듣지 않으려고 이 두 가지에 최선을 다한다. 인간은 원래 한 가지도 안 하는 게 문제지 닥치면 두 개, 세 가지 일도 해낸다.


그렇더라도 그는 언제 가르치고 언제 글을 쓸까 그저 놀랍기만 하다. 또 그 바쁜 중에도 짬짬이 전시회도 다니고, 영화도 보며 그때그때의 소회를 적기도 한다. 그뿐인가 작업실이 두 갠가 세 곳쯤 되는데 1, 2년마다 한 번씩 두 개를 하나로 합치거나 이사를 하기도 한다. 이사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못할 일 수위에 드는 일이 바로 이사하는 일이다. 책이 오죽 많을까. 소설 쓸 자료들을 모으느라 책이라면 질릴 만도 할 텐데 어떤 이유와 어떤 경로로 책을 손에 넣건 그 책을 읽을 욕심에 그의 헤벌쭉한 미소가 보이는 듯하다. 물론 그 책들에 대한 간단 리뷰도 빠지지 않는다. 또한 40을 넘긴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입을 앞둔 고3 학생 이상으로 공부를 하기도 한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겐 체력이 관건이다. 그래서 하루키는 마라토너를 자청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작가가 마라토너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책엔 작가의 건강 관리법에 대해선 특별히 나와있지 않다. 그저 아프면 모든 일을 작파하고 한 번씩 호되게 앓고 일어나는 게 전부다. 그래서 그는 아픈 때를 생각해서 쉬지 않고 글을 썼던 것일까. 아님 그 안에 있는 뭔가의 힘이 그렇게 몰아붙이는 걸까. 라틴어 격언에 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나는 나를 일에 매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내게 매이게 하려고 애쓴다." 아마도 그도 그러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새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퇴고다. 퇴고에 대해서 그는 굉장히 섬세한 작업이라고 했다. 하루라도 쉬면 표가 나며 빨리 정상궤도로 돌아가야 한다며, 밤을 새우고 호흡을 되찾아 급해질까 봐 천천히를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그리고 퇴고에 관한 글은 책 여기저기에 빈번히 나타난다. 새 책을 쓰기 위해 부지런을 떨었던 것이 아니라 퇴고하기 위해 글을 썼던 것이다. 작가의 지난한 작업이 종이를 뚫고 전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의 일기 끝자락에 이런 말을 남겼나 보다. 하나가 완성되면, 또 다른 미완성으로 가는 것! 그게 바로 작가의 운명이라고. 이쯤 되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누가 생각이 난다. 그렇다. 시지프스. 세상을 사는 사람 치고 시지프스의 후예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시지프스의 후예이기에 시지프스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하는 사람 그가 김탁환이고, 세상의 모든 작가다. 누구는 퇴고로 밤을 새우지만 누구는 이 수고를 감당할 수 없어 대신 이 책을 읽고 있나 보다.      


나는 작가가 외롭고 고독하게 혼자 글만 쓴다는 것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이 글을 쓰는 것도 알고 보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뭔가의 재능이 있다는 건 세상과 소통하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그는 그런 말을 한다.


...... 이은미의 노래와 말을 많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적어도 그녀는 이쁘게 노래하는 단계에서 벗어났다. 나는 안다. 그 예쁜 단계를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가를. 나 역시 미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직까지 몸부림치고 있다. 물론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때문에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나는 아름답게 쓰지 않고 정확하게 쓰고 싶다. 그 길은? 일단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 그래서 그것을 만들어낸 앞뒤 문맥을 모두 파악한 상태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 그러나 나는 또 정확하다는 것이 그런 공부를 넘어선다는 것도 안다.(45p)   


미문만이 최고의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뭔가 뒤통수를 때리는 말 같다. 우린 왜 미문을 최고의 문장인 양 알고 살아왔던 것일까. 나도 동의한다. 이은미는 정말 예쁘게 노래하는 가수는 아니다. 마치 어느 흑인 가수가 노래 부르는 듯하다. 흑인들이 언제 예쁘게 노래 부르는 것 봤나? (물론 역으로 예쁘게 부르는 흑인도 있긴 한다.) 하지만 누가 감히 그들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밉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예쁜 모습을 포기하고 영혼을 다해 노래를 부른다. 이은미도 그렇다. 나는 어떨까. 나의 문장 하나가 어느 독자에게 와 닿았으면 그래서 글 잘 쓴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TV 드라마 작가 중에 시나 독백을 하듯이 대사를 쓰는 작가들이 있다. 얼핏 굉장한 능력처럼 보이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채널을 돌리곤 한다. 저건 드라마가 아니다.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일상에서 저렇게 대사 하지 않는다. 배우가 저런 대사를 하는 건 그 배우를 통해 작가를 드러내겠다는 속셈인데 드라마에서 작가가 드러나는 건 그 드라마의 실패를 의미한다. 드라마는 오직 주제와 상황과 캐릭터로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탁환 작가의 저 말은 맞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예쁘게 쓰기 전에 먼저 정확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글로써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은 명심해 둬야 할 것 같다.    


그런 그가 어느 날의 일기에 40의 나이에 고별 무대를 갖는 어느 발레리나와의 대화를 적기도 했다. 그 발레리나는 그에게 소설가가 부럽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했더니 발레리나는 40이면 은퇴를 하지만 소설가는 늙어서도 계속 이야기를 만들지 않냐고. 그러자 그는 늙어서까지 진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는 아주아주 드물다고 했다. 오히려 마흔 살도 되기 전에 이야기와 이별을 고하는 소설가도 적지 않다고. 정말......? 순간 내 나이를 생각하고 뜨끔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선 소설은 못 쓰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난 '아직' 이야기를 시작도 하지 않았다. 늦게 시작해서 늦게 마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소설을 쓰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작가는 자신이 절필하지 않는 이상 은퇴도 없다. 소설가 중에 절필은 선언해도 은퇴를 선언하는 작가는 있는가? 그는 그저 조용히 사라져 갈 뿐이다. 그러니 김탁환 작가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작가가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시작하라. 


이 책을 읽으니 비로소 이 작가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생겼다. 김탁환 다시, 돌아왔는가? 다시, 쓰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다시, 그의 책을 읽어야겠다. 그의 책 모두를 읽지는 못하겠지만 중요하게 읽고 싶은 책은 목록을 추려서 다시 읽어가야겠다. 


그런데 이상하지?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나도 덩달아 일기를 비교적 충실하게 썼던 것 같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다시 옛날로 돌아가 아주 드문 드문 쓰고 있다. 남의 일기를 읽는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나도 덩달아 쓰고 싶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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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20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론 역사 소설을 쓴다는 건 자기 글감이 떨어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역사 소설을 쓴다고 하면 문단계에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생각해 보면 자기 삶에서 글감이 넘친다면 굳이 왜 역사 분야에 손을 댈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 소설은 백 프로 창작이라기보다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이것 또한 편견일 수 있겠지만...ㅋ

stella.K 2020-09-20 17:04   좋아요 1 | URL
헉, 그런가요? 그래서 역사소설가들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어있는 건가요?
그래도 김탁환 정도면 꽤 성공한 작가 아닌가요?
역사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도 쓰고, 현대물도 쓰잖아요.
사실 김탁환에 대해선 작가 보단 스토리텔러로 보는 경향이 있긴하죠.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어쨌든 자기 분야가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말씀마따나 자기 글감이 떨어지면 그거 파서 써 먹으면 되잖아요.ㅋ

hnine 2020-09-21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stella님이 김탁환 작가 좌담회 다녀와서 올리셨던 글 생각나요. 그래서 더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고요. 제가 생각하는 김탁환 작가는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노력형이기도 하고 완벽주의형이기도 한 것 같았어요. 치밀하기도 하고요.
stella님 말씀대로 작가란 정말 매력적이고 신비한 작업을 하는 사람 같아요. 감히 저도 되고 싶기보다는 그들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결과물을 충실히 음미하고 만끽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요. 그것도 좋아요 저는.
이 페이퍼도 몇년 후까지 기억할것 같네요.

stella.K 2020-09-21 18: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지독한 노력형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만큼 명성을 얻고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밑줄 그은 페이지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저 글은 제가 느낀 것의 3분의 1도 채 못 쓴 거예요.
도톰한 책인데 중간중간에 사진이 들어가 있는데
차라리 빼고 본문을 더 늘리지 그런 아쉬움도 들더군요.
기회되시면 한 번 읽어 보세요.
저는 운 좋게도 중고샵에서 천원에 구입했는데
고맙고도 미안하더군요. 김탁환 작가의 책을 이렇게 싸게 구입해도 되나
그런 생각도 들고 꽤 오랫동안 천원에 올라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 좋은 책을 왜 안 사 가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군요.ㅋ

han22598 2020-09-2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역사에 너어무 관심이 없는 일인이지라 김탁환 소설책은 단 한권도 읽지 않았는데,
스텔라님 글 읽으면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역시 탁월한 능력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네요. 열정, 성실. 집념..수많은 노력들이 이루어낸 결과인가 봅니다.

stella.K 2020-09-22 18:5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김탁환의 소설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죠.
쉬엄쉬엄 한 번 읽어 보세요.^^

페크pek0501 2020-09-29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 맛있는 음식 드시고 푹 쉬기도 하는 추석 연휴를 보내세요.

stella.K 2020-09-29 17:54   좋아요 0 | URL
아고, 친히 오셔서 글남겨 주시고. 고맙습니다.
언니도 행복하고 여유로운 추석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