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 내 인생을 바꾼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
김남준 지음 / 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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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더구나 요즘엔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선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일종의 회의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독서를 하는 것일까? 적어도 여기 책으로 구원을 받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김남준이다.


글쎄,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면 좀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책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책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독서 회의론자는 왠지 김빠지는 느낌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그래도 책으로 개안을 하고 구원에 이르는 건 아직도 유효하다. 비근한 예로 역대로 성경을 읽고 회심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어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는가 보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 에세이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언젠가 TV에서 저자의 인터뷰를 보면서였다. 그리고 뭔가에 이끌리듯 이 책을 꼭 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사춘기 시절 엄청난 정신적 방황을 하다 21살에 톨스토이를 읽고 기독교에 귀의한 후 아우구스티누스를 사숙한다. 이 책은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을 뽑아 글을 썼다. (8문장은 차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물이 상당히 많은데 그중 여덟 문장을 뽑았다니 놀랍기도 하고 그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돈지 짐작이 갈 것 같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누구인가. 가톨릭과 기독교를 통틀어 사제와 목회자들이 가장 존경하고, 서양 사상을 논할 때 그를 빼놓고 논할 수 없는 탁월한 사상가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의 불멸의 저서 '참회록'에 보내는 연가(?) 내지는 해설서를 낸 사제나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중 저자 김남준도 당연 이름을 올렸는데,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란 일종의 묵상집(?)을 내므로 참회록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런 만큼 이 책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을 가지고 썼다는 건 어찌 보면 일리가 있는 시도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이 책을 쓸 때 이미 '참회록'을 120번,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는 100번을 읽고 썼다고 한다. 그 정도라면 이젠 안 보고도 외울 정도일 것 같다.


문득 내가 언제 100번, 120번까지는 아니어도 반복해서 읽었던 책이 있던가 싶다. 사춘기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지금까지 성경은 20번도 읽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100 독은 고사하고 50 독도 읽지 못할 것 같다. (성경은 1년에 한번 읽기도 쉽지 않다. 저자는 목사이기도 한데 성경은 또 얼마나 많이 읽었을까 싶다.) 난 아무리 좋은 책도 세 번 이상 읽었던 적이 없다. 나도 저자처럼 성경 외에 평생 거듭해서 읽고 싶은 책 한 권쯤 가지고 싶다. 그것이 참회록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책이 될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래서일까? 이 책은 자전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늘이 짙다. 거짓말 좀 보태서 말끝마다 아우구스티누스다. 자꾸 그러니까 왠지 지금이라도 '참회록'을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나도 20대 시절 강의 시간에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그 책을 추천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듣는 순간 잊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 책을 읽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세기를 건너 여기서 맞닥뜨리다니. 마치 저자는 나를 만나려거든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만나 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낯간지럽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내가 중첩될 뻔하다 비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무척 싫어해 책 속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것 하나만큼은 나와 같아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구나. 난 잠시라도 내가 학교에 있다는 것을 잊기 위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한때 허무주의에 빠졌던 것도 비슷하기도 하다. 어차피 죽을 건데 학교는 다녀 뭐하고, 힘들게 살아 뭐하나 그게 호르몬의 변화일지도 모르면서 나는 나름 진지했다. 하지만 저자와 내가 다른 건, 저자는 자살을 꿈꿨지만 나는 꿈꾸지 않았다. 조심스럽지만 그건 자살을 하면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난 아직 세상에 못다 읽은 책들이 많은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다.


사춘기 시절을 꿈동산처럼 보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난 그 시절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저자와 같은 방황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정신적 방황은 제법 길고 깊었다. 책 제목도 보라. 얼마나 처절했을지 알 것도 같다.


저자는 그나마 청년이 되어서야 톨스토이를 읽고 신앙에 귀의할 생각을 했다. 난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부활'을 읽고 이거 뭐지? 했다가 정작 톨스토이의 주요 저작은 읽지 못하고 멀어졌다. 참회록도 그렇다. 저자는 나와 비슷한 20대 때 그 책을 읽었지만, 나는 그 나이 때 볼 생각을 아예 접고 말았다. 어떻게 비껴가도 이렇게 비껴갈 수 있을까.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걸 쓴 사람이 천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주 조금 뛰어나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책 두 권을 읽었다.

위대한 지성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건 사랑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이었다.

내가 그를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

심지어 플라톤보다 더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아아, 위대한 지성, 드높은 사랑이여! (80쪽)


저자는 그렇게 방황을 하다 마침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방황을 멈춘 것 같다. 사랑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이라니. 보통은 사랑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또 그것을 알아보는 저자의 안목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면 지적 욕구를 위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리를 찾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한다.


저자는 그 깨달음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교수가 된다. 그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보 같기도 하다(물론 신앙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하겠지만). 나도 한때 겉멋이 들어 신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그렇듯) 졸업 후 전공 서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또한 저자는 상당한 장서가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수 천권의 책을 가지고 있어도 알아주는 장서가가 되는데 그는 수 만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책으로 구원을 받고 수만 권의 책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아는가? 한국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받게 된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을.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저자의 삶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한 건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였다. .


하지만 알다시피 그렇게 책만 읽는 사람의 단점이 있다. 그건 너무 관념적이고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 또한 책상받이니 교조주의자란 말을 들을 확률이 높다. 저자도 그것을 짐작했을까? 어느 순간 교수직을 내려놓고 목회의 길을 가게 된다. (이 얘기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들은 말이다.) 나는 지금도 책상받이를 면치 못하고, 다행인지 남에게 비판을 받을 만큼 독서를 심하게 하는 것도 아니니 이것 또한 저자와 내가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역시 아우구스티누스나 저자나 방황이 크면 남다른 포스가 있는가 보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시도 아닌 산문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글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책은 우리가 상상하는 흔한 형태의 산문이 아니다. 한마디로 시라고 하기엔 산문 같고 산문이라고 하기엔 시 같다. 깊은 사유적 문장이라 이 책으로 저자에 대해서 알기엔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나 개인적으론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관심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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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2-21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가 먼저기는 하지만, 그 뒤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을 보고 아주 아우구스티누스만 많이 좋아한 듯 합니다 120번, 100번 읽은 책이 있다니... 대단합니다 많이 읽어도 겨우 두번인데... 세번까지 보는 거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나를 그렇게 파다니 대단합니다 지금은 목사군요

책이 저자 삶을 많이 바꿨네요 그런 책을 만나다니... 세상엔 그런 사람 있기도 하겠지요 그런 거 부럽기도 합니다

stella.K 님 많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stella.K 2023-12-22 19:26   좋아요 1 | URL
저는 거의 유일하게 부활을 세번 읽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가능해요. 그래서 고전을 읽으라는 것 같기도 하구요.ㅎ

아까 잠시 나갔다 들어왔는데 춥긴 춥더군요.
그래도 바람이 안 불어서 그나마 낫지 싶네요.
내일부턴 서서히 풀릴 모양이니 조금만 견디면 될 것 같네요.
또 추워질 수도 있겠지만 한동안은 괜찮지 않을싶네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감기 조심하길요.^^

페크pek0501 2023-12-22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 이상을 읽다니요... 저는 한 단편소설을 일곱 번까지 읽어 봤고 그게 신기록이에요. 두 번 읽은 책은 있지만 백 번은커녕 열 번 읽은 책도 없어요. 어느 한 분야의 책을 파 보는 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은 공부가 될 듯합니다.
스텔라 님은 부활을 꽤 일찍 읽으셨네요. 저는 삽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에 읽은 것 같아요.
6학년 때는 책이 아니라 오자미를 갖고 놀았던 게 생각납니다. 4학년 때는 공기놀이. 히히~~ 어릴 때 너무 놀아서 이젠 노는 게 시시하고 독서가 좋아졌나 봅니다.
리뷰 쓰신 책, 유익한 책 같습니다.^^

stella.K 2023-12-22 22:04   좋아요 0 | URL
오자미. ㅎㅎㅎㅎ 진짜 그런 게 있었죠? 추억 돋네요.
뭐 어린이 세계 명작으로 마침 나온 게 있어서 무심코 본 건데
그게 그렇게 대단할 줄은...
와, 7번! 대단하네요. 솔직히 저자는 넘사벽인 게 넘 많아요.
아우구스티누스의 심위일체론이란 책은 누구도 범접 못하는 책인데
읽으면서 거의 황홀경에 빠졌더라구요.
책 보다는 혹시 기회되시면 이 분의 설교 시청을 권합니다.
나름 깊이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