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20170801_232619_resized.jpg


필명 박생강 작가는 출판사 측의 압박을 받다가 "투덜거리며 몇 분 만에 제목을 바꿨다"는데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을 듯하다. 나부터도 제목에 혹해서 그의 신작 소설을 읽었고,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라는 제목에 끌릴 독자는 앞으로도 많이 있을 테니까. 좀 착각했다. 대한민국 상위 1% 남성, 아마도 권력에 가까워서 '갑질하고픈 유혹'도 클 그들의 정치적 성향과 그들만의 세계를 밀착 취재로 그려낸 소설인 거라고 착각했다. 저자가 실제로 '등단 소설가'라는 직업만으로는 생계 꾸리기가 어려워서 사우나 매니저로서 1년여 동안 근무했었다는 홍보문구 때문에 기대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JTBC"라는 고유명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대통령 탄핵에 대한 사우나 회원의 반응을 묘사한 페이지는 있다).  또한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고급 사우나 회원을 통해 대한민국 노른자 1% 남성의 세계를 집중 보여주는 소설이라기보다는 가방끈 길고 자의식 강한 주인공이 육체노동을 하면서 어떻게 모멸감을 삭히고 이에 익숙해졌다가 마지막에는 모멸 받기를 거부하는지를 그린 소설이라는 인상이다. 

*

 

20170801_235631_resized.jpg

그렇다고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가 재미 없었냐면 그 반대이다. 남의 일기 훔쳐보는 기분이 들만큼 짜릿한 맛이 있다. 저자가 고백하듯, 소설에 등장하는 사우나 회원과의 대화 중 70%는 실제 저자가 사우나 매니저로 일하며 현장에서 수집한 이야기들로 채워졌기에 생동감이 넘친다. 투명인간이거나 청소 노동자가 아니고서야, 절대 들어가볼 일 없을 회원권 3, 4000만원짜리 스포츠센터 남성 사우나의 풍경을 박생강 작가가 아니었으면 어찌 기웃거릴 수 있으리. 사우나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천박한 호기심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도대체 언제 JTBC 이야기가 나오나?' 하는 호기심이 안풀려서 이기도 하지만.  

*
 
20170801_234815_resized.jpg

 
소설의 주인공 '손태권'은 '전직' 소설가이자 학원 강사이다. 1%의 최상위층이 이용한다는 피트니트 센터의 사우나에서 일하면서 사우나 회원들을 초밀착 관찰한다. '뭘 봐서 상위 1%라는데?"라면, 아마도 그들이 사는 '주소 (대한민국에서 주소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알려준다)'와 '회원권 가격'일까? 아무튼, 손태권이 '헬라홀'이라고 낮춰 부르는 그 피트니트 센터에는 전직 장성, 기업인, 남진이나 최민식 등의 연애인, 부모 덕에 금수저를 물고 해외 유학 나갔다 방학이면 들어오는 부유층 젊은이들이 들락인다. 하지만 재정난으로 피트니트 센터에서 제공하는 운동복의 목은 늘어나 있고, 양말도 후줄근하다. 양말 바닥에는 "대여중"이라고 크게 써놨는데 '도둑질'하는 회원이 많아 낸 고육지책이란다.
*
 손태권은 사우나에서 일하며 회원들에게 '락커'라고 불리거나 그림자 같은 존재 취급받으며 자존심이 상한다. 하지만 그 깊은 바닥에는 "나 글 쓰는 사람이야. 너희들은 돈과 권력이 있(었)겠지만, 나는 지성이 있어!"하는 식의 자존심 시위를 한다. 회원들을 동물원 동물들처럼 관찰하고 능멸하는 방식을 통해서. 결국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사우나 회원을 통해서 대한민국 1%의 민낯 훔쳐보기'가 되기보다는 '나 많은 배운 사람이고, 글도 쓰는 사람이야'가 사우나에서 일하면서 자존심을 들었다 놨다하는 개인의 고백기 같은 느낌을 많이 준다. 물론 그 와중에 고령화 문제, 노인의 가족 소외, 구별짓기와 과시하기의 미묘한 정치학, 갑질의 폐해, 청년 실업 등의 사회적 문제도 부드럽게 건드리고 넘어가지만. 흥미롭게도 저자는 소설의 끝 부분에 '소설가로서의 손태권'과 '사우나에서 일하는 손태권'의 가상 대화를 통해, 소설의 이런 약점을 스스로 고백한다. "왜 소설 속의 너는 관찰만 하지? 왜 비판하지 않아? 왜 날을 세우지 않아? 그게 비판적 주인공의 의무 아니냐고 (243)." 빈정거리면서. 그런데 따지고 들자면 독자도 할말 없다. 소설 속 손태권을 관찰하고 판단하려고만 들지, 1% 사회의 부조리와 양면성에 날을 세우지 않았으니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7-08-0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하던 책이었는데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작가 분 필명이겠죠? 생각은 :>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2년생 김지영


 


20170724_183643_resized.jpg


 소설 잘 안 읽는 나조차도 2017년 뜨거운 '베스트셀러'가 <82년생 김지영>임을 안다. 여러 매체를 통해 혹은 입소문으로 많이 듣다보니 제목까지 친숙해졌다. 궁금함에 허겁지겁 게걸스럽게도 읽어버렸다. 1978년생 조남주가 썼다. 여대를 졸업한 조남주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하면서 등단한 소설가이다. 어린 딸의 엄마이기도 하다. 소설을 잘 모르지만, 적어도 김훈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자세를 절로 고쳐 앉는 예를 갖추게 되는 독자의 눈에 <82년생 김지영>은 그렇게 치밀한 소설은 아니다. 작가님께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역작"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작품이 아니다. 뭐랄까, 여성잡지나 온라인 까페 '미즈들의 수다방'에 나올법한 수기 모음집같은 느낌? 그런데도 사람들은 <82년생 김지영>을 찾고, 읽고 또 권한다. 그 김지영에게서 누군가의 모습을 투영하여 공감하고 열광한다. 나로서는 이런 소설이 2017년 한국의 대중에게 잘 어필하게된 이유가 흥미롭다.

*

먼저 '김지영'이라는 흔해빠진 이름을 앞세운 작가의 의도는 뚜렷해보인다.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80년대생 대한민국 여자들이 흔히 겪어보았고 겪고 있을 불평등의 모습을 그리되, 그 모습이 스펙트럼의 끝에 위치하지 않고 대표성을 지니게 한다. 그럼으로써 김지영의 경험이 많은 이들과 공통분모를 나눠갖게 하려는 전략이다. 실제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자꾸 김지영 씨가 진짜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 선후배들, 그리고 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177)"라고 적고 있다.

*

가장 후련하고도 참신한 장은 1장인데, '빙의'들린 듯 김지영은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을 툭툭 해낸다. 말투, 몸짓 언어, 어휘까지 대상의 것을 가져와서 자신의 처지를 항변하는 데 쓴다. 예를 들어, 추석날 시댁에서는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중략)...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주셔야죠."라고 친정엄마의 목소리를 빌어 시아버지에게 한 마디 따끔하게 던진다. '할 말 다 하고 살려는' 아내로 인한 불협화음과 아내의 정신건강이 걱정이 된 남편 정대현씨가 아내를 정신과 의사에게 의뢰하면서 김지영 씨의 생애사가 펼쳐진다. 2장에서는 82년생 김지영씨가 2남 1녀의 둘째, 샌드위치로 태어나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모습을, 3장에서는 중, 고딩 때의 삶을, 4장에서는 대학생활과 사회 초년병 생활, 그리고 다시 5장에서는 결혼과 출산 그 이후의 모습이.......

*

읽는 내내, 정말 조남주 작가의 말처럼 '82년생 김지영'씨가 내 친구 중에, 내 동료 중에, 혹은 내 안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왜 나는 한번도 "국민학교" 시절 '남학생부터 1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남녀공학 여학생이었을 뿐인데  남학생과 똑같이 귀를 덮지 않는 길이의 짧은 머리카락을 강요당했을까? 여학생들 머리카락이 1cm씩 길어질 때마다 남학생들 SKY 1명씩 더 못들어간다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뭔소리인가?"하며 못알아들었을까? 못알아듣는 척했을까? 생각해보면 김지영씨 못지 않은 벙어리였던 것 같고, 나뿐이 아닐 듯 하다.

행동하지 못하고,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데 가장 불쌍한 건 머리가 깨어 있는 사람이다. 머리로는 부조리, 불평등을 인지하면서 바꾸려고 목소리를 내지도 저항의 몸짓도 못한다. 그러니 소극적인 '빙의'형식의 연극을 벌이는 것이다.

*

일부러 페미니즘 서적을 찾아 읽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에 읽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 덕분에, 한동안 으쓱했다. 리베카 솔닛은 뼛 속까지 독립심이 강하다. 그래서 타격을 받아도, 내면의 힘이 강하기에 쉽게 굴하지 않는다. 차갑게 관조한다. 조용히 관조했다가 매가 먹이를 낚아 채듯 쏘고 간다. 그런 전략이 필요할 것 같다. 구조나 시스템의 변화, 인식의 변화는 좀 더 천천히 이뤄질 테니 개인들이 필요한 순간에 쏘고 갈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82년생 김지영>과 함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대한민국 사회 중년 남성들의 관점에서 남자로 살기의 애환을 그리고 있으니. <82년생 김지영>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바바리맨, 성희롱 상사, 관음증 몰카를 즐기는 직장 동료처럼 다 비루한 모습을 하고 있어 열이 받는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2f250d91df7544e999830286aa6130a5.jp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의 수용소에서

1485392681807.jpg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He who has a 'why' to live for can bear with almost any 'how'”. (본문 137쪽)  

 

 불손한 목적에서 이 책을 골랐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이 애서를 소개하는 글에서 누군가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원제: Man's Search for Meaning) 를 두 번 읽었다며 격찬했는데, 너무 의외였다. 그래서 직접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폭염 속 쏟아지는 장대비 소리를 못 듣었을 만큼 푹 빠져 들었다. 내 눈으로  훑어지나가는 활자야 한 줄을 차지하겠지만, 빅터 프랭클이 그 한줄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겪고 생각했을지를 상상하면 죄스러울 지경이었다.

*

1946년 초판된 1부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와 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에 더해 1984년 개정판에서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장이 더해졌다. 1997년 집계했을 때 총 24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1억원 이상 팔렸다는 의 한국어판은 이시형 박사가 번역했다.

20170723_184331_resized.jpg

 

20170723_210605_resized.jpg


 

20170723_211056_resized.jpg


 

20170724_095048_resized.jp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00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20170717_101644_resized.jpg


"사람도 100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선생님은 어떻게 수십년을 버텨내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그렇게 믿어야지."


 

20170717_102351_resized.jpg

*

 5시 마감하려는 도서관에서 아주 우연히 제목, 아니 부제를 보았고 지체없이 대출했다. <100도씨>의 부제는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이었다. 주말 새로 읽기 시작할 책을 예닐곱권 쌓아두었는데도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단순히 기억하자면, "알아야 겠다. 잘 모른다."

*

비슷한 이유에서 저자 최규석은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로부터 처음 작업 의뢰가 들어왔을 때 거절할 심산이었다고 한다. "첫 이유는 내가 그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1987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고 주변의 어른들 또한 직접적 기억이 없었다. (208)" 그런데 속상하게도 분명하게 기억나는 그 당시 사건은 있다. 바로 IMF 때, "금모으기운동"에 비할 수 있는 "평화의 댐 모금" 사건이었다. 오후 5시가 되어야 시작하던 공영방송이 이 무렵 왠일인지 종일 전파를 타면서 코 질질 흘리면서 돼지저금통 안고 나온 초등학생이며 쌈짓돈 들고 나오신 할아버지를 보여주었다. '참 신기하다.'하면서도 나 역시 저금통을 깬 돈을 "애국"하는 마음으로 모금함에 넣었다. 본문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고문하고 죽이고 단일사건으로 천명을 넘게 잡아가도! 댐 터진다고 공갈치면 그걸로 끝이야. 북한에 마징가가 있다고 해도 믿을 사람들이야 (76)"

 20170717_101857_resized.jpg

 

 

최규석 화백은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겁을 먹고 벌벌 떨 (211)"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100도씨> 덕분에, 왜 사람이 끓어야 하는지, 한 사람의 열걸음이 아닌 "열사람의 한 걸음"이 더 힘이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말에서 최규석 작가는 "6월항쟁 당시 명동성당에 격리된 사람들에게 밥을 해 먹였던 철거민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맞고 쫓겨나고 잇고, 노동자들은 제 처지를 알리기 위해 전태일 이후로 수십년째 줄기차게 목숨을 버리고 있지만 연예인 성형 기사에 묻히는 실정이다. (208)" 마찬가지로 본문의 표현인 "타인의 피로 얻을 과실을 따먹고 있는 (209)"사람들이 감사는 커녕, 애써 얻은 과실이 썩어가는 데도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20170717_102225_resized.jpg
 
20170717_102209_resized.jpg


 

20170717_102215_resized.jpg

 

 

20170717_102808_resized.jpg


 <100도씨>는 처음에 학교에 배포될 목적으로 CD롬 형태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애초 교재의 용도였는데, 강좌형식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강의를 덧붙여 다시 펴낸 것이다. 아주 많은 사람이 읽었을 테고, 더 많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프2주차의 도서 자유리뷰를 <100도씨>로 정해보았다.  작년 가을부터 올 봄, 촛불이 뜨거웠는데 100도씨였을까? 촛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한 사람이 아니라, 열 사람, 또 백 사람, 염원하고 움직여야 겠다. 남의 피로 얻은 과실을 따먹지만 말도록 염치를 가지고 움직여야겠다.

20170717_102919_resized.jpg


 

20170717_103141_resized.jp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맛있는 코리아 - 파란 눈의 미식가, 진짜 한국을 맛보다 처음 맞춤 여행
그레이엄 홀리데이 지음, 이현숙 옮김 / 처음북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맛있는 Eating  코리아 Korea



20170713_163226_resized.jpg

 

 <맛있는 코리아 (원제: Eating Korea)>의 2017년 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2015년에 저자 그레이엄 홀리데이 (Graham Holliday)의 <맛있는 베트남 (원제 EATING VIETNAM : Dispatches from a Blue Plastic Table)>덕분에 알게 된 저자의 블로그 "누들파이" http://www.noodlepie.com/에서 반가운 한국 음식 사진과 출간 광고글을 보았으니까.   

51e5c   Eating-Korea-by-Graham-Holliday-678x1024


 

1995년 영국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젊은이로서 1996년 한국 익산에 와서 영어를 가르쳤던 그레이엄 홀리데이은 이후 베트남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짬짬히 베트남의 거리 음식을 섭렵해나가던 그가 냈던 첫번째 저서 <맛있는 베트남>은, "처음북스" 출판사의 북디자이너가 누구였던지 정말 단조로웠다. 한 컷의 음식 사진도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활자 after 활자"인 음식책이었으니까. 하지만 <맛있는 코리아>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는데도 사뭇 다르다. 편집이 깔끔하고, 입맛 돌게하는 음식 사진이 자주 등장한다. 현재는 소설도 쓰고 있고 명성을 많이 얻은 그레이엄 홀리데이의 문장력도 일취월장한 듯 하다. 재미있다. 게다가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변화하는 한국의 모습, 그리고 한국인의 독특성을 관찰한 부분이 참 흥미롭다.

*

20170713_163245_resized.jpg

20170713_163308_resized.jpg
 
처음엔 그 진정성을 살짝 의심했다. 요샌 음식 이야기를 하면 다들 재미있어하니까. 게다가 홍어를 발효시킨 음식이나, 살아 있는 문어 멍게가 등장하면 영어권 독자들이 더욱 신기해할 테니까, 약간의 쇼맨쉽이 있지 않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맛있는 코리아>를 읽어갈수록 그레이엄 홀리데이가 진심으로 한국의 음식을 알고 싶어하고, 이에 열정적인 노력을 쏟음이 느껴졌다. 6주 예정의 한국 여행을 마치고 아내에게 들려줄 선물로 강릉의 "반건조 오징어"를 사는 파란 눈의 외국인이 얼마나 있을까? 간장 명인이 차려낸 간장게장 밥상을 앞에 두고, '양반다리'로 앉지는 못하나 좌식 밥상 앞에서 몇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영국인이 몇이나 될까? 멍게의 풍미를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음을 알기에 부산에서 일부러 멍게를 실컷 먹는 외국인은? 게다가 기꺼이 홍어의 질긴 힘줄을 씹고 그 특유의 암모니아 향을 견뎌내다니! 그래서 그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더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1996년의 익산, 그 사람과 풍경을 상세히 기억하는 그레이엄 홀리데이는 "한국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선입견이라도 있는지, 자꾸 한국의 변화를 부정적인 뉘앙스로 언급한다. 자신의 입으로, 한국에 비판적인 한국인의 입으로, 혹은 자신처럼 한국의 변화상에 비판적인 입장인 다른 외국인의 말을 빌어. 음식문화, 건축문화, 심지어는 성형과 화장의 대유행이라는 생활문화에서의 변화상까지 상당히 시니컬하게 묘사한다. 한국에 흥미있다는 외국인들에게 '인포먼트 cultural informant'를 자청하는 사람치곤 한국 문화에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자본을 드러내려는 이가 적지 않기에 난 이런 비평에 대해서 반은 흘려 듣고 반은 다시 생각해 본다.
*
그 와중에 상당히 동의하는 부분이 있는데, 한국인은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의 문화를 부끄러워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포함 외국인은 김치와 된장 등 한국의 맛에 중독되는데 "한국 사람들은 계속해서 한국 음식을 두고 사과하곤 한다. 너무 냄새가 난다고, 너무 맵다고, 너무 이렇고 저렇다고 말이다. 한국 사람은 비 한국인, 특히 동양인이 아닌 비 한국인은 절대 한국 음식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믿는다. (20)" 정부 주도로 한식의 세계화를 꾀한다지만, 정작 구체의 일상에서 한국인이 한식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소비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그레이엄 홀리데이의 통찰이 고맙다.
 
20170713_163430_resized.jpg 
 

20170713_191005_resized.jpg

그레이엄 홀리데이는 전작 <맛있는 베트남>에서도 "길거리 음식"을 예찬하며 파란 플라스틱 의자를 종종 언급했는데, <맛있는 코리아>에도 한국인이라면 익숙할 파란색 플라스틱 간이 테이블과 삼겹살에 소주, 치맥이 등장한다. 그가 탐색하고 싶어했고, 실제 탐색한 것은 네이버 파워 블러거들이 현란한 사진편집술로 가공한 음식이 아니라, 명동의 뒷골목, 진주의 전통있는 비빔밥집, 제주의 조용한 해물밥집 등이었다. 그의 접근 자세가 참 마음에 든다.
20170713_191052_resized.jpg

그 외...... 단상  

20170714_095254_resized.jpg

 

나는 종종 외국 학자들이 한국의 "신명," "효," 그리고 "한 恨"의 "본질"을 집요하게 궁금해하는 것을 보면, 그게 더 집요하게 궁금해진다. <맛있는 코리아>의 곳곳에서 "한을 품은 여자가 오뉴월 서리를 내리게 한다'거나, "한국 남성은 '한 제조기," 등의 '한 恨'에 대한 문구가 튀어나온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부분이 바로 이 대화이다.

 

"알은 덤이야." 할머니가 말했다. "봐봐, 몇 개나 있는지 알겠어?"

"수입산인가요?" 내가 물었다.

끔찍함과 실망감이 할머니 얼굴에 나타났다. 내가 심하게 그녀의 한을 흔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91)

 

어떻게 읽었는가?


20170714_095437_resized.jpg

계속해서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기질, 혹은 "한국적"이라고 사람들이 상상해온 것들에 대한 그레이엄 홀리데이의 생각이나 그의 지인들의 의견이 곳곳 돌출한다.

"회사와 결혼하고 두번째로 아내와 결혼"한 한국 남자들더러 "내가 한국 남성이라면 지금쯤 자살했을 거예요."라든지

"(40대 이후) 한국인 대부분은 사춘기 이후 성장하지 못했어."라며 많은 한국의 중장년층을 "정신적으로 별난 희생자들"이라 칭하기도 한다.

20170714_095510_resized.jpg
그레이엄 홀리데이는 50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맛있는 코리아>를 마무리하며, "내가 이 한국 음식 여행에서 바랄 수 있는 건, 제때에 한장면을 보고 담는 것뿐임을 안다. (508)"고 자신의 저서의 의미를 자평한다. 500여 페이지 본문에 내내 나오지만, 한국이 그만큼 미친 속도로 변화하면서도 방향성이 없고, 변하고자 하는 욕구만 있고 전통의 상실이나 잊혀짐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비꼼, 혹은 안타까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었다.
20170714_095637_resized.jp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