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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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소설 오직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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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는 누구꺼?”

나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노트북 컴퓨터를 열었다. 여태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소설을 위해 빈 워드 창을 띄웠다. 나는 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내가 한 일은 오직 그것 뿐이었다. 그런데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 작은 뇌가 달린 것 같았다. 미친 듯이 쓴다, 는 말은 이런 때를 위해 예비된 말이었다. ("옥수수와 나,"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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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처럼 유명한 소설가의 작품을 읽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다니......『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었던가? 왠지 친숙한데 지인들이 김영하의 소설을 읽고 이야기해주어서 인가. 그래서 일부러 찾아 읽은 단편소설집, 『오직 두 사람』.

최근, "실제 쓰는, 실제 출간하는 작가"의 창작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면의 노력이 어떠할지 자꾸 상상하는지라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역시 감탄하며 읽었다. 다 읽고나서 "작가의 말"을 참고해보니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이 집필 순이 아니었다. 작가가 칠 년 동안 쓴 일곱 편의 중단편을 (편집자 혹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순서 배열을 달리한것인데, 그 중 난 맨 앞에 실린 "오직 두 사람"이 인상깊었다. 아빠와의 관계가 독특한 40대 미혼 여성이 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아버지의 죽음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스타일로 받아들이는 내용으로 이해했다. 순서상 두번 째 중편인 "아이를 찾습니다" 역시 가족 내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아이 실종 이후 파괴된 과정 아이를 되찾았어도 봉합되지 않는 가정을 그린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아이를 찾습니다"는 세월호 비극 이후 집필한 지라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이를 잃어버림으로써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아이를 되찾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지옥은 그 아이를 되찾는 순간부터라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됩니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269쪽).

그 외 5편의 단편 역시 흥미로우면서도 직업 작가로서의 작가의 인간관계의 폭과 경험의 틀거리를 짐작하게 해주는 소재가 많았다.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지인 혹은 '등장인물 1,2,3'으로 출판업계 종사자 및 작가가 참 많이도 나온다. 동시에 '신들린 듯, 글이 써지는 환상을 김영하처럼 유명하고 성공한 작가도 꿈꾸는 구나'하는 걸 알았다. 수록된 일곱 편 중 가장 먼저 쓴 작품이라는 "옥수수와 나"에는, 생면부지의 아름다운 여성과 묻지마 관계를 갇힌 공간에서 윤리의식 제로의 상태로 즐기면서도 미친 듯이 글을 뿜어내는 작가가 등장한다. ^^

그렇구나, 그런 환상, 가져봐도 괜찮은 거구나. 환상 너머 실제 손가락 움직인다면,가져봐도 게으른 거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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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 질병과 맞서 싸워온 인류의 열망과 과학
정진호 지음 / 푸른숲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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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지난 30여 년간 서울대학교 약대에서 교편을 잡고, 현재 한국 과학기술한림원 의약학부 학부장을 역임 중인 분. 한 마디 독성학 분야의 전문가인 정진호 박사가 대중을 위해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질병과 맞서 싸워온 인류의 열망과 과학』을 썼다. 유용하고 재미있기에 고마운 책인데, 뒤돌아서면 내용을 잊을까봐 가볍게 정리한다. (Plus, "푸른숲" 출판사를 좋아하는지라, 푸른숲 신간 리뷰를 하고 싶다)
*
이 책을 읽다 여러 번 『전문가와 강적들 (The Death of Expertise)』을 떠올렸다. 정진호 박사는 수 차례, 왜 대중은  본인을 비롯 전문가의 이야기를 믿지 않고 엉터리 정보에 현혹되느냐고 안타까워한다. 예를 들어, 그가 단체로 베트남 여행을 갔을 때, '만병통치약'을 비싼 돈 주고 사려는 관광객들을 넌즈시 말렸으나 결국 다 사더라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전문가 권위의 실추를 안타까워한다. 단순히 권위 실추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정보로 잘못된 약을 복용했을 때 약은 독이 되어 생명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정진호 박사가 걱정하는 것일테다.


1장, "약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는 바로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이 개념이 생긴지 약 200년 동안,  학자들이 기저의 정신심리학 및 신경생리학적 메카니즘을 규명해왔다하는데 대표적 이론이 바로 "기대효과 expectation effect"이다. 의사를 만나기만 해도 증상이 좋아지고, 약의 색깔에 따라 약복용 효과가 달라진다니 놀랍기 그지 없다 (참고로 우울증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색은 황색 위약이었다고 한다. 왜 일까?)
2장 "약은 어떻게 독이 되는가?"에서는 입덧 방지약으로 쓰였다가 세계적으로 기형아 출산률을 높인 탈리도마이드를 대표적인 예로 약의 이중적 얼굴을 분석한다. 놀랍게도 그 악명높은 약, 탈리도마이드는 drug repositioning을 통해 2017년 국내에서도 혈액 암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3장 "인류를 살린 위대한 약의 탄생"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이는 상대적인 무지와 반비례한 결과이다. 몰랐기 때문에 3장에 수록된 정보가 신선하고 흥미롭다고 느꼈을 터이다. 옛 이발소의 문양이 피묻은 붕대를 걸어놓은 이미지라는 것을 언어천재 조승연의 책에서 읽은 기억은 나는데, 정작 더 중요한 사실을 몰랐다. 몸에서 피를 빼 병을 치료하는 "방혈 요법"이 19세기말까지 서양의 대표적 만병통치 치료법이었다니! 1163년 교회가 수도승이나 성직자의 방혈 시술을 금하자, 이발사가 방혈 시술에 더해 심지어는 절단 수술까지 했었다니!

4장, "무병장수를 향한 끊임없는 욕망"에는 예상했던 대로 진시황의 수은중독 사례가 등장했다. 또한 예상대로 비아그라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는데,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주장이 있어 기록하고자 한다. 정진호 박사는 "비아그라는 고개 숙인 남성만 살린 것이 아니었다. 비아그라는 환경 생태 보호에 큰 역할을 했다. (200쪽)"라고 주장하며 2008년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낸 통계 자료를 인용했는데 "비아그라가 등장하면서 멸종 위기에 몰린 생물의 불법 거래가 줄고 개체 수가 현저히 증가"했다고 한다. 이런 진술에 당혹스럽지 않은 독자가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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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박사의 말처럼 대한민국에서 약학을 전공하지 않는 이상, '약'에 관한 유익한 교양 강좌를 들을 기회가 대학생은 물론이거니와 그 외 성인에게 많지 않다. 그래서 더욱 읽어야한다.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질병과 맞서 싸워온 인류의 열망과 과학』를. 제 아무리, 인공지능 시대 똑똑한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Watson"이 진단을 내리고 병의 치료를 돕는다 할지라도, 근본적 판단력은 있어야 기술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참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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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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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마키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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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하체 비율 꽤 좋고 군살하나 없는 구리빛 몸이 작가의 뒷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2009 [2007]) 표지 위 남성이 정말 무라카미 하루키일까 순간 궁금했다. 하지만 서문을 읽으며 그런 의심이 이내 부끄러워졌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2016[2015])를 읽었던지라 알고는 있었지만, 하루키는 직업정신의 연장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진지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히" 달려왔으니까. 그 진정성이 신체화된, 구리빛 몸을 의심한다는 것은 하루키의 정신성을 부러워한 나머지 의심으로써 폄훼하려는 불순한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하루키가 2005년에 쓰기 시작하여 2006년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이 단행본을 3분의 1쯤 읽다 말고, 충동적으로 밖으로 나왔다. 러닝화의 줄을 팽팽히 당겨 묶고는, 청량한 가을 하늘 아래서 1시간 가량 뛰었다.  풀코스 30~35?km쯤에서인가 진행차량에 실려 청소된 후, 정형외과 신세를 졌던 막가파인 나로서는, 하루키가 페이지 곳곳에서 암시하는 '러너runner'들만의 연대감을 말한다는 자체가 우습지만, 달리면서 하루키의 문장을 몸으로 곱씹었다. 하루키는 이렇게 적었다. 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대체로 오랜 시간, 달려본 경험이 없는 이라고. 하루키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친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36)고 말한다.  나에게도 달리기는 비어있는 상태로의 리셋이자 교감의 행위이다. 나의 날숨이 초록생명의 들숨이 된다는 개체 차원 이상의 교감.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를 읽는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루키에게 달리기는 육체성과 정신성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통합적 의례이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두뇌 노동이다. 그러나 한 권의 정리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오히려 육체노동에 가깝다…(중략) … 소설가는 '이야기'라고 하는 의상을 몸에 감싼 채 온몸으로 사고하고, 그 작업은 작가에 대해서 육체능력을 남김없이 쓸 것 - 대부분의 경우 혹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25) 친구에게 아래의 문장을 꼭 들려주고 싶은데, (하루키 자신의 근육은)  "전형적인 '장거리형' 근육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중랙) …그런 근육의 특성은 그대로 내 정신적인 특성과 결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정신은 육체의 특성에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또는 반대로 정신의 특성이 육체의 형성에도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정신과 육체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며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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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직업적 소설가로서의 연장인 자신의 육체성을 집요한 장인 정신으로 가다듬는다. 뛰어난 재능을 단거리 레이스에 몰아서 소진하고 요절하는 일부 예술과와 달리, 재능을 고루 안배하며 오래 가기 위한 정신의 근력을 기르는 데 마라톤(심지어는 100km 울트라런까지!)를 활용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집요하며, 천성적으로 남이 시키는 일은 중간만 하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 일에 끝장 몰입하는 그에게 딱 맞는 선택이다. 물론 '물만 먹어도 찌는 체질'로서 몸무게와 건강 관리를 도모한다는 보다 현실적 유용성도 있는 달리기이지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를 읽으면서, 비록 작가가 자신을 드러내기 꺼리는 성향이여도  자신을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솔직하면서도 안전하게 문을 열어두는 전략을 취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결국 달리기를 통해서, 자기 자신, 글 쓰는 행위, 소설가로서의 직업 정신, 나아가 그만의 방식으로 불특정 다수의 독자와 교감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하루키처럼 말할 특정한 무엇이 없는 이들은 무엇을 통해 자신을 드러낼 것인가? 나만의 컨텐츠는 무엇인가?라는 실용적 질문이 엉뚱하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 갑자기 나에게 화두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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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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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인이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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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영어 선생님 - 북한 고위층 아들들과 보낸 아주 특별한 북한 체류기
수키 김 지음, 홍권희 옮김 / 디오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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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You, There is No Us

 

이 책에서 나의 목표는, 바깥 세상이 북한 주민의 고통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변화를 낳는 것을 돕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하게 한다는 희망 아래 북한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11쪽, 아! 영어 원문을 궁금하게 만드는 번역문입니다! )


 

수키 김, Suki Kim. 아몬드 모양의 눈동자가 40대 중반이라는 나이의 무게를 잊게 가벼운 반짝임으로 나를 응시했다. 매혹적인 외모에 단번에 호감이 생겼다. 사실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유니언신학대학 교수 현경의 최신작, 『서울, 뉴욕, 킬리만자로 그리고 뉴욕』에서 '수키 킴'을 언급했기에 읽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단단한 턱선에 먼저 매료되다니! 

*

본문 어딘가에선가도 일본 모델과 똑 닮았다는 이유로 모델 제의를 많이 받았다는 어머니의 외모를 언급했는데, 수키 김이 과장하지 않았을 거다. TED 강연을 비롯해 그녀와 등장하는 여러 인터뷰를 샅샅이 뒤져보니 심지어 말투까지도 매력적이다.

https://www.ted.com/talks/suki_kim_this_is_what_it_s_like_to_go_undercover_in_north_korea?utm_campaign=tedspread--b&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10세 때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계 미국인인 수키 김은 첫 장편소설 『통역사 (The Interpreter)』(2003)로 많은 문학상과 풀브라이트 펠로우쉽 등을 휩쓸었다고 한다. 여러 대륙, 여러 나라를 다녀 본 행운아이자 열정적이고 솔직한 성품의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을 『평양의 영어 선생님』행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녀는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사용자이면서 외모가 "한국"스러운 미국인이기에 '평양과기대'에서 북한 대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칠 기회도 얻었다. 아니 그 기회를 노리고 자원했다. 말하자면 잠입 저널리즘 (undercover journalism)으로 북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대담한 시도이다. 실로 그녀는 서문에서 2014년 출간된 이 책으로 인해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북한 내 동료영어교사와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면서도, 협박성 e메일에 대해서는 "언론의 도덕적 가이드라인 운운하며 북한의 지침에 따른 북한식 진실 보도를 북한이 허가해줄 때까지 기다리며 관망만했던 우리 모두의 손에 묻어 있다 (11)"고 기자이자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밝힌다.

그들이 감시를 의식해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는 단어는 "slaves" 였다!!!!!
수키 김이 최초로 북한에 방문한 해는 2002년이었다. "Harper's Magazine"의 취재원이었다. 이후 2011년에는 영어교사 자격으로 평양과학기술대학(평양과기대)의 북한에 몇 달간 체류했다. 그녀는 삼엄한 감시를 받는 와중에 직업정신을 발휘해서 매일의 대화와 사건을 세세히 기록하고 USB에 숨겨두었다. 이후, 안전하게 미국으로 돌아와 그 자료를 보충할 외부 자료를 더 찾고 탈북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개인의 회고록 이상의 글을 쓰고자 했다. 그녀의 책과 종종 비교된다는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다녀오다』는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적어도『평양의 영어 선생님』 은 귀한 자료(극소수의 허가받은 외국인밖에 접근할 수 없었던 북한의 내부, 북한 젊은이들의 생각)를 도매금에 팔아넘기는 싸구려 글이 아니다. 진정성을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수키 김의 글에서는 진정성, 그리고 따뜻함이 느껴진다. "북한을 구제하자!"는 가진 나라의 온정주의가 아닌, 형제와 부모를 전쟁통에 잃고 이산가족이 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안타까움과 절절함이 기저에 깔려 있기에. '눈물'이나 '울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기도 한다. 사실 70년대생인 그녀에게서는 묘하게도 그 이전 세대(아마도 그녀 가족사의 영향이겠지만)의 정서와, '분단 이전의 하나인 국가로서의 한국'에 대한 노스텔지어까지 느껴진다.
*
요새 연일 미치광이 "rocket man"으로 국제사회에서 희화화되는 북이 설마 전쟁을 일으키겠느냐 생각이었지만,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읽으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영문학을 전공해서인지 작가는 언어에 무척 민감했는데, 북한에서는 공영방송에서도 '대가리통'이니 '패거리'니 '조준발사사격' 등 전투적 언어를 밥 먹듯 쓰고 일상에서도 젊은이들이 호전적인 언어를 쓴다고 기억했다. 마치 준 전시상황인 양. 무엇보다 문제는 오랫도록 움직일 자유, 생각하고 말할 자유를 차단당하고 정보조차도 주어진 대로만 주입받는데 익숙해진 북한 주민들(사실 수키 김이 주로 상호작용한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금수저 중의 금수저 엘리트 청년들이기에 북한 주민이라는 일반범주를 대표할 수 없겠지만) 은 변화를 추구하기엔 과하게 길들었다. 이 책의 원제인 "Without you, There is No Us"가 뜻하듯, '수령님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아닌 우리'식, 광기의 집단주의에 빠져 있다면 어쩌면 광기가 물리적인 힘으로 표출되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일 듯하다. 북한 사회를 "horrific"하다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비유한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어서 나는 Google에 "Suki Kim 2017"이라고 검색하기도 했다. May Peace be with you! May peace be with two Koreas, on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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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9-2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전에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구입해서 읽었기 때문에 원문이 궁금하다고 하신 부분을 찾아보았더니 제가 가진 책 (2014년 출간)에는 나와있지 않네요. 이 책을 읽으며 그녀의 신변이 다소 걱정되었을 정도로 매우 자세하게 그곳 학생들의 일상을 적어내려갔지요.
그러고보니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지기도 해요. 이전작 <통역사>도 참 좋았어요.
 
[eBook] 평양의 영어 선생님 - 북한 고위층 아들들과 보낸 아주 특별한 북한 체류기
수키 김 지음, 홍권희 옮김 / 디오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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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You, There is No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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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의 목표는, 바깥 세상이 북한 주민의 고통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변화를 낳는 것을 돕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하게 한다는 희망 아래 북한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11쪽, 아! 영어 원문을 궁금하게 만드는 번역문입니다! )


 

수키 김, Suki Kim. 아몬드 모양의 눈동자가 40대 중반이라는 나이의 무게를 잊게 가벼운 반짝임으로 나를 응시했다. 매혹적인 외모에 단번에 호감이 생겼다. 사실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유니언신학대학 교수 현경의 최신작, 『서울, 뉴욕, 킬리만자로 그리고 뉴욕』에서 '수키 킴'을 언급했기에 읽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단단한 턱선에 먼저 매료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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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어딘가에선가도 일본 모델과 똑 닮았다는 이유로 모델 제의를 많이 받았다는 어머니의 외모를 언급했는데, 수키 김이 과장하지 않았을 거다. TED 강연을 비롯해 그녀와 등장하는 여러 인터뷰를 샅샅이 뒤져보니 심지어 말투까지도 매력적이다.

https://www.ted.com/talks/suki_kim_this_is_what_it_s_like_to_go_undercover_in_north_korea?utm_campaign=tedspread--b&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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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때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계 미국인인 수키 김은 첫 장편소설 『통역사 (The Interpreter)』(2003)로 많은 문학상과 풀브라이트 펠로우쉽 등을 휩쓸었다고 한다. 여러 대륙, 여러 나라를 다녀 본 행운아이자 열정적이고 솔직한 성품의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을 『평양의 영어 선생님』행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녀는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사용자이면서 외모가 "한국"스러운 미국인이기에 '평양과기대'에서 북한 대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칠 기회도 얻었다. 아니 그 기회를 노리고 자원했다. 말하자면 잠입 저널리즘 (undercover journalism)으로 북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대담한 시도이다. 실로 그녀는 서문에서 2014년 출간된 이 책으로 인해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북한 내 동료영어교사와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면서도, 협박성 e메일에 대해서는 "언론의 도덕적 가이드라인 운운하며 북한의 지침에 따른 북한식 진실 보도를 북한이 허가해줄 때까지 기다리며 관망만했던 우리 모두의 손에 묻어 있다 (11)"고 기자이자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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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감시를 의식해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는 단어는 "slaves" 였다!!!!!
수키 김이 최초로 북한에 방문한 해는 2002년이었다. "Harper's Magazine"의 취재원이었다. 이후 2011년에는 영어교사 자격으로 평양과학기술대학(평양과기대)의 북한에 몇 달간 체류했다. 그녀는 삼엄한 감시를 받는 와중에 직업정신을 발휘해서 매일의 대화와 사건을 세세히 기록하고 USB에 숨겨두었다. 이후, 안전하게 미국으로 돌아와 그 자료를 보충할 외부 자료를 더 찾고 탈북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개인의 회고록 이상의 글을 쓰고자 했다. 그녀의 책과 종종 비교된다는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다녀오다』는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적어도『평양의 영어 선생님』 은 귀한 자료(극소수의 허가받은 외국인밖에 접근할 수 없었던 북한의 내부, 북한 젊은이들의 생각)를 도매금에 팔아넘기는 싸구려 글이 아니다. 진정성을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수키 김의 글에서는 진정성, 그리고 따뜻함이 느껴진다. "북한을 구제하자!"는 가진 나라의 온정주의가 아닌, 형제와 부모를 전쟁통에 잃고 이산가족이 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안타까움과 절절함이 기저에 깔려 있기에. '눈물'이나 '울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기도 한다. 사실 70년대생인 그녀에게서는 묘하게도 그 이전 세대(아마도 그녀 가족사의 영향이겠지만)의 정서와, '분단 이전의 하나인 국가로서의 한국'에 대한 노스텔지어까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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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연일 미치광이 "rocket man"으로 국제사회에서 희화화되는 북이 설마 전쟁을 일으키겠느냐 생각이었지만,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읽으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영문학을 전공해서인지 작가는 언어에 무척 민감했는데, 북한에서는 공영방송에서도 '대가리통'이니 '패거리'니 '조준발사사격' 등 전투적 언어를 밥 먹듯 쓰고 일상에서도 젊은이들이 호전적인 언어를 쓴다고 기억했다. 마치 준 전시상황인 양. 무엇보다 문제는 오랫도록 움직일 자유, 생각하고 말할 자유를 차단당하고 정보조차도 주어진 대로만 주입받는데 익숙해진 북한 주민들(사실 수키 김이 주로 상호작용한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금수저 중의 금수저 엘리트 청년들이기에 북한 주민이라는 일반범주를 대표할 수 없겠지만) 은 변화를 추구하기엔 과하게 길들었다. 이 책의 원제인 "Without you, There is No Us"가 뜻하듯, '수령님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아닌 우리'식, 광기의 집단주의에 빠져 있다면 어쩌면 광기가 물리적인 힘으로 표출되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일 듯하다. 북한 사회를 "horrific"하다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비유한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어서 나는 Google에 "Suki Kim 2017"이라고 검색하기도 했다. May Peace be with you! May peace be with two Koreas, on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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