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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평점 :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필명 박생강 작가는 출판사 측의
압박을 받다가 "투덜거리며 몇 분 만에 제목을 바꿨다"는데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을 듯하다. 나부터도 제목에 혹해서 그의 신작 소설을
읽었고,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라는 제목에 끌릴 독자는 앞으로도 많이 있을
테니까. 좀 착각했다. 대한민국 상위 1%
남성, 아마도 권력에 가까워서 '갑질하고픈 유혹'도 클 그들의 정치적 성향과 그들만의 세계를 밀착 취재로 그려낸 소설인 거라고 착각했다. 저자가
실제로 '등단 소설가'라는 직업만으로는 생계 꾸리기가 어려워서 사우나 매니저로서 1년여 동안 근무했었다는 홍보문구 때문에 기대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JTBC"라는 고유명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대통령
탄핵에 대한 사우나 회원의 반응을 묘사한 페이지는 있다). 또한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고급 사우나 회원을 통해
대한민국 노른자 1% 남성의 세계를 집중 보여주는 소설이라기보다는 가방끈 길고 자의식 강한 주인공이 육체노동을 하면서 어떻게 모멸감을 삭히고
이에 익숙해졌다가 마지막에는 모멸 받기를 거부하는지를 그린 소설이라는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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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가 재미 없었냐면 그 반대이다. 남의 일기 훔쳐보는 기분이 들만큼 짜릿한 맛이 있다. 저자가 고백하듯, 소설에 등장하는
사우나 회원과의 대화 중 70%는 실제 저자가 사우나 매니저로 일하며 현장에서 수집한 이야기들로 채워졌기에 생동감이 넘친다. 투명인간이거나 청소
노동자가 아니고서야, 절대 들어가볼 일 없을 회원권 3, 4000만원짜리 스포츠센터 남성 사우나의 풍경을 박생강 작가가 아니었으면 어찌 기웃거릴
수 있으리. 사우나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천박한 호기심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도대체 언제 JTBC 이야기가 나오나?' 하는 호기심이 안풀려서 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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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 '손태권'은 '전직'
소설가이자 학원 강사이다. 1%의 최상위층이 이용한다는 피트니트 센터의 사우나에서 일하면서 사우나 회원들을 초밀착 관찰한다. '뭘 봐서 상위
1%라는데?"라면, 아마도 그들이 사는 '주소 (대한민국에서 주소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알려준다)'와 '회원권 가격'일까? 아무튼, 손태권이
'헬라홀'이라고 낮춰 부르는 그 피트니트 센터에는 전직 장성, 기업인, 남진이나 최민식 등의 연애인, 부모 덕에 금수저를 물고 해외 유학 나갔다
방학이면 들어오는 부유층 젊은이들이 들락인다. 하지만 재정난으로 피트니트 센터에서 제공하는 운동복의 목은 늘어나 있고, 양말도 후줄근하다. 양말
바닥에는 "대여중"이라고 크게 써놨는데 '도둑질'하는 회원이 많아 낸 고육지책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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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권은 사우나에서 일하며
회원들에게 '락커'라고 불리거나 그림자 같은 존재 취급받으며 자존심이 상한다. 하지만 그 깊은 바닥에는 "나 글 쓰는 사람이야. 너희들은 돈과
권력이 있(었)겠지만, 나는 지성이 있어!"하는 식의 자존심 시위를 한다. 회원들을 동물원 동물들처럼 관찰하고 능멸하는 방식을 통해서. 결국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사우나 회원을 통해서 대한민국 1%의 민낯 훔쳐보기'가 되기보다는 '나 많은 배운 사람이고,
글도 쓰는 사람이야'가 사우나에서 일하면서 자존심을 들었다 놨다하는 개인의 고백기 같은 느낌을 많이 준다. 물론 그 와중에 고령화 문제, 노인의
가족 소외, 구별짓기와 과시하기의 미묘한 정치학, 갑질의 폐해, 청년 실업 등의 사회적 문제도 부드럽게 건드리고 넘어가지만. 흥미롭게도 저자는
소설의 끝 부분에 '소설가로서의 손태권'과 '사우나에서 일하는 손태권'의 가상 대화를 통해, 소설의 이런 약점을 스스로 고백한다.
"왜 소설 속의 너는 관찰만 하지? 왜 비판하지 않아? 왜 날을 세우지 않아? 그게 비판적
주인공의 의무 아니냐고 (243)." 빈정거리면서. 그런데 따지고 들자면 독자도 할말 없다. 소설 속 손태권을
관찰하고 판단하려고만 들지, 1% 사회의 부조리와 양면성에 날을 세우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