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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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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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잘 안 읽는 나조차도 2017년 뜨거운 '베스트셀러'가 <82년생 김지영>임을 안다. 여러 매체를 통해 혹은 입소문으로 많이 듣다보니 제목까지 친숙해졌다. 궁금함에 허겁지겁 게걸스럽게도 읽어버렸다. 1978년생 조남주가 썼다. 여대를 졸업한 조남주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하면서 등단한 소설가이다. 어린 딸의 엄마이기도 하다. 소설을 잘 모르지만, 적어도 김훈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자세를 절로 고쳐 앉는 예를 갖추게 되는 독자의 눈에 <82년생 김지영>은 그렇게 치밀한 소설은 아니다. 작가님께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역작"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작품이 아니다. 뭐랄까, 여성잡지나 온라인 까페 '미즈들의 수다방'에 나올법한 수기 모음집같은 느낌? 그런데도 사람들은 <82년생 김지영>을 찾고, 읽고 또 권한다. 그 김지영에게서 누군가의 모습을 투영하여 공감하고 열광한다. 나로서는 이런 소설이 2017년 한국의 대중에게 잘 어필하게된 이유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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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김지영'이라는 흔해빠진 이름을 앞세운 작가의 의도는 뚜렷해보인다.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80년대생 대한민국 여자들이 흔히 겪어보았고 겪고 있을 불평등의 모습을 그리되, 그 모습이 스펙트럼의 끝에 위치하지 않고 대표성을 지니게 한다. 그럼으로써 김지영의 경험이 많은 이들과 공통분모를 나눠갖게 하려는 전략이다. 실제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자꾸 김지영 씨가 진짜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 선후배들, 그리고 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177)"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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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후련하고도 참신한 장은 1장인데, '빙의'들린 듯 김지영은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을 툭툭 해낸다. 말투, 몸짓 언어, 어휘까지 대상의 것을 가져와서 자신의 처지를 항변하는 데 쓴다. 예를 들어, 추석날 시댁에서는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중략)...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주셔야죠."라고 친정엄마의 목소리를 빌어 시아버지에게 한 마디 따끔하게 던진다. '할 말 다 하고 살려는' 아내로 인한 불협화음과 아내의 정신건강이 걱정이 된 남편 정대현씨가 아내를 정신과 의사에게 의뢰하면서 김지영 씨의 생애사가 펼쳐진다. 2장에서는 82년생 김지영씨가 2남 1녀의 둘째, 샌드위치로 태어나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모습을, 3장에서는 중, 고딩 때의 삶을, 4장에서는 대학생활과 사회 초년병 생활, 그리고 다시 5장에서는 결혼과 출산 그 이후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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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정말 조남주 작가의 말처럼 '82년생 김지영'씨가 내 친구 중에, 내 동료 중에, 혹은 내 안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왜 나는 한번도 "국민학교" 시절 '남학생부터 1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남녀공학 여학생이었을 뿐인데  남학생과 똑같이 귀를 덮지 않는 길이의 짧은 머리카락을 강요당했을까? 여학생들 머리카락이 1cm씩 길어질 때마다 남학생들 SKY 1명씩 더 못들어간다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뭔소리인가?"하며 못알아들었을까? 못알아듣는 척했을까? 생각해보면 김지영씨 못지 않은 벙어리였던 것 같고, 나뿐이 아닐 듯 하다.

행동하지 못하고,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데 가장 불쌍한 건 머리가 깨어 있는 사람이다. 머리로는 부조리, 불평등을 인지하면서 바꾸려고 목소리를 내지도 저항의 몸짓도 못한다. 그러니 소극적인 '빙의'형식의 연극을 벌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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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페미니즘 서적을 찾아 읽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에 읽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 덕분에, 한동안 으쓱했다. 리베카 솔닛은 뼛 속까지 독립심이 강하다. 그래서 타격을 받아도, 내면의 힘이 강하기에 쉽게 굴하지 않는다. 차갑게 관조한다. 조용히 관조했다가 매가 먹이를 낚아 채듯 쏘고 간다. 그런 전략이 필요할 것 같다. 구조나 시스템의 변화, 인식의 변화는 좀 더 천천히 이뤄질 테니 개인들이 필요한 순간에 쏘고 갈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82년생 김지영>과 함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대한민국 사회 중년 남성들의 관점에서 남자로 살기의 애환을 그리고 있으니. <82년생 김지영>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바바리맨, 성희롱 상사, 관음증 몰카를 즐기는 직장 동료처럼 다 비루한 모습을 하고 있어 열이 받는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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