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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 최인호 여행산문
최인호 지음 / 마인드큐브 / 2020년 2월
평점 :
책 제목에 그만 이끌렸습니다.
『산다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노력만하면 마냥 행복하게 살 것 같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기에 삶의 무게에 그만 휘청이기도 일쑤.
그래서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자 '여행'을 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인호 작가는 20년의 시간, 200개의 도시, 50개의 문학과 철학의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여느 여행책과 달리 여행 속에 '사유'가 담겨 있었기에 느리고 천천히 오감으로 여행에서의 '낯섦'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트래블러 - 아르헨티나>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거대하고도 낯선 땅 '아르헨티나'.
저에게 인상깊었던 '탱고'.
사람들이 모여
하나로 맞댄 가슴과 네 개의 다리로 추는 춤
탱고를 췄다
- JTBC <트래블러 - 아르헨티나>에서
이 책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반도네온의 슬픈 노래에 맞춰 슬프고도 아름다운 춤, 탱고.
하지만 이 글을 읽고나니 더없이 씁쓸하였습니다.
그 옛날 지친 육신을 달래기 위해, 자신들의 가난한 욕망을 위로하기 위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추었던 춤이 이제는 생계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삶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탱고가 빛을 잃고 어두운 골목을 헤매고 있는 모습이 애잔하기까지 하다.
"인간의 몸은 인간의 영혼을 보여주는 최고의 그림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의 이런 옹호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춤추는 몸은 아름다움을 상실한 채 가냘픈 하이힐에 힘겹게 매달려 살아가는 시든 장미였다. - page 59
그럼에도 탱고의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아르헨티나 영화 <탱고>에서 중견감독역의 마리오는 젊고 아름다운 탱고 무용수 앨레나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육신이 쇠약해질수록 정신은 더 왕성해지는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젊은이들처럼 살면 왜 흉해 보이는 걸까?"
그는 자신의 육체는 늙어가지만 사랑의 욕망은 더 젊어지고 뜨거워진다는 사실을 애원하듯 그녀에게 쏟아낸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육신과 정신의 엇갈림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아! 모순된 인생과 사랑이여, 슬프도록 아름다운 탱고여. - page 64
우리의 삶과도 닮아있기 때문인가봅니다.
또다시 방송에서 보았던 무용수들의 춤사위가 다음장으로 떠나려는 발걸음을 잠시 늦추었습니다.
그는 여행의 모습에서 방황하던 저에게 던진 질문과 답이 있었습니다.
"오지의 고산 부족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찾아 헤맨 여행객은 처음 만났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들을 찾아다닌 겁니까?"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내가 나에게 벌써 했어야 하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찾으려고 온 건 분명한데......"
그러자 그는 되물었다.
"이들의 삶이 특별한가요? 당신이 찾는 건 당신과 다른 삶 아닐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나도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어떻게 찾아요?"
"맞아요, 찾을 수 없죠. 아마도, 나는 찾을 수 없는 것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마치 안개 속에서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말예요."
린은 다시 말했다.
"그럼, 영원히 못 찾겠네요."
"아마도 그럴 걸요. 음...... 하지만 찾을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요. 그것들은 단지 흔적일 테니까요." - page 128 ~ 129
내가 그토록 방황했던 이유.
결국은 찾을 필요가 없는 무언가를 마냥 좇았던 것은 아닌지 되물어봅니다.
우리가 그토록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
그에 대한 답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게으르고 자유로운 삶을 좇는 여행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걸까? 그것은 이성의 허영심이 만들어낸 자연스런 결과물이다. 우리들은 이성의 완전성을 감탄하며 그의 노예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으로서의 이성은 우리를 시계태엽 속으로 밀어넣어 권태롭게 만들었다. 그러자 비합리적이며 볼품없어 보이던 감성들이 작은 들꽃처럼 저항하듯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성의 위선들로부터 자신들을 멀리 떠나보내기 위해 몸부림 쳤다. 작은 감성들의 반란이 배낭을 메게 만든 것이다. - page 258
절망의 늪에 빠져 있는 나를 찾기 위해......
낯선 곳으로의 떠남.
그 곳에서 만나는 떨림과 두려움, 자유로움과 고독함.
이 모든 것은 내 존재의 필연적 존재이기에 떠나야함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은 파블로 네루다의 <산책>의 일부였습니다.
그는 이 시를 통해 자신이 떠나야 할 이유를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우리는 너무 빨리 가고 있는 건 아닌가?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달리고만 있는 건 아닌가? 이제 우리는 저 만치서 헐떡이며 쫓아오는 우리의 영혼을 위해 하던 일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바람에 영혼을 실어 무지개가 있는 곳으로, 당신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고독하게 떠나야 한다. 사람들과 반대로 걸어가야 한다. - page 353
종종 이 여행에세이를 꺼내읽어야겠습니다.
더이상 지친 몸을 이끌 자신이 없기에......
소리 없이 우울함 속에서, 권태로움 속에 빠져있을 내가 가엾기에......
잠시나마 책을 읽으며 사색으로의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책을 읽고나서 문득 떠오른 노래가 있었습니다.
홍진영의 <산다는 건>
어느 구름 속에 비가 들었는지 누가 알아
살다보면 나에게도 좋은 날이 온답니다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래요 힘들고 아픈 날도 많지만
산다는 건 참 좋은 거래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 홍진영의 <산다는 건> 중에
산다는 게 지긋지긋할 때도 있지만 참 좋은 거라는 이 노래가사가 참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