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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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이론은 기하학에서만 통용되는 거창한 원리는 아닌것 같다.

왜냐하면 기하학을 모르고, 프랙탈 이론 따위에 까막눈이어도,

자연이나 주변의 일상을 한걸음 떨어져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다른듯 닮은 비슷한 패턴을 그리면서 반복되는 어떤 규칙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도, 삶을 모아 뭉뚱그린 역사란 것도...과정중에 있을 때는 깨달을 수 없을 지 모르지만,

한참 뒤에 필름을 되감듯 돌이켜보면 다른 듯 닮은 도돌이를 그리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른듯 닮은 비슷한 패턴을 그리면서 반복되는,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이론'이 있기에,

우리는 과거를 돌이킬 수 있는 것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며,

변화를 모색하거나 한번씩 일탈을 꿈 꿀 수도 있는 것이고,

그걸 우리는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는 것이리라.

 

우리는 부분으로 미루어 전체를 예측하거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이고,

(여기서 '부분'은 '기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그걸 바탕으로 이론으로 정립하거나 통계화하여 학술적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사람에게 대입시키기도 한다.

 

난 한때 이렇게 사람의 보여지는 부분적인 것으로 미루어 전체를 짐작해보려 했었고,

직업의 특성 상 내가 그쪽으로 촉이 발달하였다고 착각하였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저자가 내가 애정하는 한때 알라디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저자의 글들만을 보고 내가 애정하는 과거 알라디너였다는 걸 연결시킬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처음엔 그를 '효녀OO'로 바꿔 부를 정도로 알라딘서재의 글을 갖고는 성별조차 구별을 못했었다.

지금은 잠수를 타고 있는 a양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않아,

문체와 그림체만 보고 남자로 착각을 했었던걸 보면,

나의 그 촉이라는 것은 지극히 심플하다 못해 초라하기 짝이 없을 따름인데,

그런 내가...이 책과 그를 연결시키는 쾌거를 이룬것은,

문장의 질서를 익히고, 잘못된 글쓰기 습관을 바로 잡는 이런 설명 형식의 글 속에서도,

소설이라는 형식을 갖추면서,

문장이 되고, 문단이 되고, 하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만의 문체가 살아나자,

내가 페이퍼에서 아껴 읽었던 그만의 문체, 특유의 개성을 간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이 책은,

자신이 쓴 글, 즉 자신이 쓴 문장을 다듬는 법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는데,

이 책의 처음 '머리말'부분의 첫 문장이,

남이 쓴 문장이든 내가 쓴 문장이든 문장을 다듬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처럼 맞고 틀리고를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그렇다. 교정 교열자로서  내가 단지 어색하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손보고 다듬은 문장을 저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원래대로 되돌려 달라고 고집하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9쪽)

인걸 보면,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이게 정오로 구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이기도 하지만,

길들여지고 익숙한 것에서 탈피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그만하게 잘쓴 글들이 많은 알라딘 서재에서 내가 그 분 특유의 문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잘한 일상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과

그 자잘한 일상을,

때론 눈물방울로 굴절시키듯, 때론 볼록렌즈로 햇볕을 모아내듯이,

촉촉하지만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문장을 다듬는 특별한 원칙 따위는 없다고 하였으나,

문장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들을 골라 목록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이런 종류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고하신 장하늘 님 같은 경우, 명성이나 업적, 책으로의 완성도 면에서는 더 뛰어날지 모르겠다.

하지만, 글쓰기 표현사전 같은 경우, 하드커버의 두꺼운 사전류여서 작정을 하고 뛰어들지 않는 이상 쭈욱 읽게 되지는 않았었다.

이 책은 기왕 읽히는거 재밌게 읽히도록 소설 같은 구성을 곁들였다는데, 그게 주효했는지, 일독에 성공하였다.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들이 여럿 나열되는데,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건 생략해 주어야 한단다.

한글자라도 더 썼을 때는 문장 표현이 그만큼 더 정확해지거나 풍부해져야지, 외려 어색해진다면 빼는 게 옳단다.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다른 때였으면, 난 분명히 지적인 것과 게을러 보이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툴툴거렸을 것이지만,

저자가 가진 습도와 온도를 익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의도 또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문장론이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장론이란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일종의 방법론일테고,

마음을 전달하거나 마음을 얻는 따위의 일은,

윈칙이나 표현 따위를 골라 목록으로 만든다고 해서 나아지는 일이 아니라,

적절한 습도와 온도를 가지고 사람의 마음이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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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22 18:56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쓰신 분도 알라딘에 활동하셨던 분이었군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6-03-23 09:19   좋아요 0 | URL
네, 이 분에게 직접 여쭙고 확인을 한건 아니지만,
제가 기억하고 있는 이분의 문체로 미루어 확신합니다~ㅅ!
(그러다 아니면 어쩌지?, 아님 말고~(,.))

서니데이 2016-03-23 18:21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6-03-24 17:1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이젠 정말 감기는 다 나으셨겠죠?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전 맨날 봄놀이, 꽃놀이 타령인데...타령으로만 끝날듯~--;

근데 가만히 있기엔 발바닥이 너무 간지러워서 말이죠~(,.)
 

지난 밤, 오랜 친구가 전화기를 붙잡고 울어대는 통에 잠을 못잤다.

내가 누굴 만나고 무엇을 해도 무한 너그러운 우리집 남자가 만나는걸 아주 싫어하는 (무려 여자인) 친구다.

우리집 남자가 만나지 말란다고 내가 그 말을 꼭 들을 위인은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만나지는 못 하고 가끔 전화로 안부만 묻고 지냈었다.

 

내 친구는 20대 초반에 남편이랑 이혼을 한 뒤,

대외적으론 클래식바라고 부르지만, 내가 보기엔 음침한 냄새가 나는 룸쌀롱 사장으로 살며, 악착같이 돈만 벌었었다.

2~3년 전이던가 어디 항공사 부기장이라는 남자를 만난다고 하더니,

얼마전 그 남자가 룸쌀롱을 정리하고 같이 살자고 하더라면서 좋아했었는데,

지난 밤에 전화해서는,

'알고보니 제비였네, 그놈이 해외로 튀었네' 해가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거다.

친구가 하는 얘길 추려보니,

같이 살자고 해서 다 정리를 하고 집을 얻는데 보태라고 돈을 맡겼는데, 

알고보니 같이 살자던 곳이 해외라는 것이었다.

남자가 안 데려가겠다고 했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그럼 그 사람은 틀린 말 한게 없는데, 같이 나가서 살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했더니,

자기는 체질적으로 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가 싫고,

무엇보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곳에서 '외로워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다.

 

하소연도 들어줄만큼 들어줬겠다, 그쯤에서 좀 자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됐을것을,

빈말 못 하고 할 말 못할 말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그동안 니네 가게로 불러들여 벗겨먹은 그 남자들 중에 뉘집 남편들도 있었을텐데,

그 남편들 기다리느라 집에서 외로웠을 아내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보시했다 치고 덮으라고 했다.

 

내 보기엔 그 남자가 제비도 아니었지만,

그 남자가 제비라고 치고,

제비를 따라 해외로 가든, 제비를 보내고 이곳에 혼자 머물든 간에,

그런 정신 상태로라면 외롭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의사표현 할 수 있는 언어로 말을 하고, 그런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다는 사람들이 쌔고 쌘걸 보면,

외로움은 공감이나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감성이 아니라,

한번 외로움을 알아버리면 떨쳐버릴 수 없는 일종의 버릇이고 습관인가 보다.

 

전에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인간 관계를 앞에 두느라 참았었다.

참으니까 관계는 나아지고 남들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는 듣는데, 실상 내 속은 지옥이었다.

지금은 착하다는 소릴 못 들어도 그만이고, 인간 관계에 실패하더라도 내 마음이 천국인게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할말은 하고 살자'고 하고 싶은 대로 일단 내지르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노유진'의 '생각해봤어?'를 잼나게 읽었던지라, '할말은 합시다' 또한 완전 기대된다.

 

 

 

 

 

 

 

 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

 쉼(도서출판) / 2016년 4월

 

 

하려던 얘긴 이게 아니고 시집 얘기인가 보다.

 

 

 

 

 시의 정거장
 장석남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예전엔 여러 시인의 시들을 묶은 옴니버스 형태의 시 모음집 내지는 시 해설서 따위가 자주 나왔었는데, 언제부턴가 뜸해졌었다.

그건 예전에 비해 시를 묶어내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시를 해설해내는 품이 형편없어서, 가 아니라,

시를 재인용할 경우 시 한편 당(시인과 그 시인의 시를 관리하는 출판사에게 각각 6만원과 3만원) 도합 9만원의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열악한 시 시장에 수지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그렇지, 시 해설서에 해설하고자 하는 원래의 시가 빠지다니,

궁색해도 너무 궁색한 변명이다.

게다가 이 책을 묶고 엮은 장석남 또한 시인이라는걸 고려한다면, 좀 비겁한 처사라는 느낌마저 든다.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그동안 내가 읽은 시 모음집이나 시 해설서 형태의 것 중 가장 좋았던 것 중의 하나는,

(시를 재인용할때 생기는 저작권료에 대한 규칙이 이전인지 이후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안도현의 시작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인데,

시를 쓰기 위한 작법서로 뿐만 아니라,

시에 한발 다가가고 가까워져서, 시를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는 매개로써의 역할도 톡톡히 수행해 내고 있다.

 

시를 이렇게 쓰라는 얘기는 독자들이 이런 시를 읽는다는 것에 다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먼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쓰라며, 이정록을 인용한다.

 

간혹 쓸 것이 없어서 못 쓰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당신이 지금 전화를 하는 곳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는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 그걸 쓰라고 한다.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살라고 한다. 단언컨데, 좋은 시는 자신의 울타리 안 문지방 너머에 있지 않다. 문지방에 켜켜이 쌓인 식구들의 손때에 가려진 나이테며 옹이를 읽지 못한다면 어찌 문 밖 사람 사람들의 애환과 세상의 한숨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안도현의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중 54쪽, 이정록의 '문지방 삼천리'

 

언젠가 이정록 시인이 보내준 사진 한장이다.

이 사진을 보면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사는 것이,

시에 (그리고 시의 자리에 사람을 대입시켰을 때도 묘하게 통용된다~^^)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비법임을 알 수 있다.

 

쓸데없이 주절거리던 얘기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앉아있었던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어 께름칙해서 였다.

이 페이퍼 전체에 걸쳐서 내가 하고싶었던 얘기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할'말은 하고 살자는 것이었지만, 한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뚫린 입이라고 '아무'말이나 헤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해도 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의 경계를 지키는 일은 어렵다.

그러고보면 요즘 세상에 해도 되는 말 따윈 없는 듯 싶기도 하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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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8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2 15: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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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8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2 16: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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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9 0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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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2 16: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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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6-03-20 23:52   좋아요 0 | URL
전 반대로 `부기장 같은 제비놈`을 어디.내다 버리지도 못할 친구로 둔 처지라.
그 하소연..망할 넋두리에 치가 떨립니다. ㅎ 이 종류의 사람들은
아무나 붙잡고 속내를 털어놓는 것이 `죄사함`받는 걸로 생각해서.

양철나무꾼 2016-03-22 16:12   좋아요 0 | URL
부기장 같은 제비놈`을 친구로 두셔서 좋은 점도 있네요.
고해성사를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덕분에 `고해성사`도 하시고 `죄사함`도 하시고...
겉으로 봐선 영낙없는 `신부님`과 `신도`이지 말입니다.
덕분에 `신부님`같은 분도 되어보고 말이죠~^^
 

요즘 책이 통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봄이라고,

봄이니까 싱숭생숭한건 당연지사라고,

아지랑이가 발바닥을 간지르고, 꽃바람이 맘을 흔들어 놓는 통에, 

당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노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내가 사는 이 곳은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을 뿐이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 온국민의 정신이 쏠려 있는 동안, 조훈현이 새누리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신청을 했다.

취미가 바둑이고 IT가 전공 분야라는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 대표가 뭔가 눈에 띄는 행보를 해주길 기대했건만,

그렇게 조용히 묻혀 넘어가더라~--; 

 

어제 애인과 작은 식당에서 느즈막히 저녁을 먹는데,

건너편 탁자에 어르신 세분이 언쟁 탓인지 곁들인 반주 탓인지 불콰하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치 얘기는 가볍게 농담으로 시작해도 고조되다보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기 때문에 한편으론 불안했지만, 근래 처음 듣는 정치 얘기라서 반갑기도 했나 보다.

그 분들의 목소리는 적당한 크기였고 적당히 경쾌해서 말없는 애인과의 저녁 식사에 배경음악 삼아 듣고 있었는데,

애인이 '빨리빨리'하는 입모양을 한다.

"넌 투표 안해? 처음 투표하는건데...들어두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잖아."

"배울게 있어야 들어두지.

 의견이라는게 대립되는 가운데 발전이라는게 있는건데...저 할아버지들 얘기하는거 가만 들어보라구~!

 A도 안되고, B도 안되고, C도 안 되고, D도 안되고...다 안된다고들 하시는데,

 전부다 예스라고 해도 문제지만, 전부다 안된다는데 누굴 뽑으라는거야?

 엄마가 보기엔 저분들이 지금 정치적 논쟁을 하는 것처럼 보여?

 내 보기엔 딱 할일 없어서 시간 죽이시는 분들이구만.

 저 할아버지들 말대로라면 투표장 들어가도 투표할 사람이 없어서 그냥 나와야 하는구만.

 그럴바엔 아예 투표 할 생각조차 안하는게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안하고 나은거 아냐?

 선거자금으로 들어가는 돈이 얼마고, 선거하러 가느라 들이는 수고로움이 얼만데,

 그냥 선거 안하는게 현명한 거라구~!"

느즈막히 시작한 애인과의 데이트는 그리하여 싸움으로 끝났을 뿐이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대신할 것처럼 얘기되어 지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과 대별되는 인간의 그것으로 감성과 정서를 꼽는다.

증권사를 예로 들게 되면,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수익률 분석을 정확하게 하더라도,

인간의 감성과 정서가 그 분석에 개입해 오히려 손실을 입힐 수도 있다는데,

인공지능이 분석한 예측이나 전망에 인간의 감성과 정서 외엔 다른 변수가 없는 것일까?

인공지능이 분석을 한다고 하더라도,

증권시장이란 다양한 인간들의, 다양한 삶이 반영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라는 것은 항상 부정적인 변수로만 작용하는걸까?

설혹 수익률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인간의 삶을 어느방향으로든 움직인다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소통하게 한다면 그만큼의 온기와 가치를 인정하고 평가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따지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라는 것은 인공지능은 가질 수 없는 장점이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놓고 비교를 하는 것이지만,

현실의 나를 대입시켜보자면,

난 고도의 두뇌와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에는 명함을 못내미는,

몸만을 혹사시키는 육체 노동자이면서 감정 노동자라는 생각을 한다. 

매일 저녁 퇴근하면서 감사하는건

나의 두뇌나 지식도 아니고 필 충만한 감성과 정서도 아니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나를 지탱해주는 사지와 몸뚱이인것을 보면,

인간의 친구이자 경쟁자이며 적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자본일지도 모르겠다~ㅠ.ㅠ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송경동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ㆍㆍㆍㆍㆍㆍ

철조망을 끊고 굴뚝 아래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고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물질이

뺀찌라고 너스레를 떤다 올라와서도

자신을 살게 해준 건 구체적인 물질과 현상들

비닐 휘장을 찢어놓거나

굴뚝 재를 흩뿌리거나 먼지를 몰아와

언제 '노동'을 선사해준

바람에게 특히 고맙다고 한다

 

가장 가파른 곳에 서본 사람들은 안다

관념보다 귀한 게 물질임을

노동이 사람을 얼마나 사람답게 하는 것인지를

 

                                                        - '뻰치예찬' 부분 -

직접 몸을 움직여 본 사람들은 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꼴난 두뇌나 지식도 아니고 필 충만한 감성과 정서도 아니며,

하늘을 향해 뻗고 땅을 내리누르는 사지와 몸뚱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몸으로 무슨 운동이냐고

언제부터 운동이 머리로 하는 게 됐느냐고

나도 '열심히' 몸이나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철창 속 푸른 생각

                                                      - '몸철학' 부분 -

요즘은 두뇌계발운동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는 걸로 미루어,

인공지능이 하는 그것에도 운동이라는 말을 붙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그런 생각은 아주 잠시 였을뿐이고,

몸으로 하는 건 운동이고, 머리로 하는건 철학이라는 생각 또한 인간중심의 사고가 만들어낸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창만이 우리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편견도 얼마든지 우리를 얽어맬 수 있다.

가두거나 얽애매거나 고착시키지 말자.

 

       사적유물론

 

한 선생이 말했다

당신은 공적인 삶에 과도하게 치우쳐

사적인 삶이 너무 없다고

그러면 죽는다고

 

자주 만나는 선배도 말했다

운동 이야기를 줄이고 사적 대화 비율을

최소한 칠십 퍼센트로 늘리라고

그러지 않으면 모든 관계가 말라 죽는다고

 

조근조근 사주를 봐주던 이는

당신은 나무로 태어났는데

사주에 물이 너무 없어

늘 목마른 생을 살아야 할 거라고 했다

 

사적 삶이라니, 관계론이나

역사적 정치적 생명을 들어

대들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어느 쓸쓸한 저녁

 

이기고 지는 것만이

무엇을 이루고 못 이루고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는 삶의 시간들

 

롤랑 바르트를 들먹이지 않아도 나는 송경동이 아프다.

그는 김수영처럼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그의 그것은 어떤 서정성이나 기교보다 힘이 세다.

 

시집의 표지에 송경동인듯한 사람이 등돌리고 앉아 있다.

등은 침묵한 채로 많은 걸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은 등이 아닐까 싶다.

들고남(入出)은 이미 정체가 아니라 흐름이고 소통이다.

 

그게 아픔이 되었든 기쁨이 되었든 간에,

통증 또는 따사로움이 되었든 간에,

인간의 삶을 어느방향으로든 움직이고 변화시키고 싶다면 사람의 가슴보다는 등을 공략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러한 안생의 간난신고를 누구보다도 많이 겪었을 그가 변혁의 비빔밥을 하나 만들어 보자고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그부터 조금은 더 허기지고 간절해져야겠다고 하고 있다.

이 착하고 순한 사람을 어쩔 것인가 말이다~ㅠ.ㅠ 

 

요즘 책이 안 읽혔던 건 그러고보면, 책이 우리네 삶을, 즉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전문영역인 감성과 정서는, 오직 인간만이 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사랑이고 즐거움이어도 그렇고, 미움이고 화남이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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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7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8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3-17 14:37   좋아요 1 | URL
저도 지금 이 시집 읽고 있어요. 송경동 시인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죠. 김수영의 시처럼 살고 있는 송경동 시인에게 미안하고 고맙죠.... TT

양철나무꾼 2016-03-18 14:02   좋아요 1 | URL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서 부끄럽죠~--;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야지 하는데, 쉽지 않아서 더더욱 그렇구요.
 

*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하는데,

어느 지역의 예비후보가 나와서 청년 문제와 관련하여 얘기를 하더라.

청년 고용 문제, 일자리 창출 문제, 복지부분 예산 따위의 단어들이 무게감 없이 스치듯 지나가는데,

사회자가 '지금 누리과정 예산도 부족한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하고 붙잡는다.

그러자 이 후보 은근슬쩍 노선을 바꾸네, 복지 개념이 아니라 사회가 투자를 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흐억~--;

 

그 지역의 특성 상 '청년 문제'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겠지만, 공약으로 내세울 '문제'라는 것이 청년 계층에만 국한된 것일까?

중ㆍ장년층도 그렇고, 노령층도 그렇고, 대책이 없고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은 다 마찬가지 아닐까?

어려운 단어나 외래어를 쓰는 것도 아닌데, 안개 속을 헤매는듯 모호하고 답답한 것이 만성체증이 되어 나를 내리 누른다.

 

**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사람이 아주 좋고,

이 사람의 '노후대책'에 전적으로 동조할 의사가 있다.

좋다고 설레발을 친게 벌써 한두번이 아니라서,

그에 대한 예찬론은 이쯤에서 줄이기로 하고(=>링크)

유행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연예계에서 트렌드는 아니지만,

나이 어린 친구들이 아이돌이구 어쩌구 하는 것과 비교하면,

올드하다 못해 파파할아버지에 가깝겠지만,

책으로 치자면 베스트셀러는 아니어도 스테디셀러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고전을 읽는 것도 어쩜 이런 차원인지도 모르겠다.

 

오래 살아 남는 것들은 오래 살아남는 것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시대를 아우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얘기, 즉 '보편성'이 되겠는데,

그렇다고 보편적이기만 해선 다른 것과의 차별성이 없으니, 오래 기억되긴 힘들다.

 

요즘은 사회문제만 하더라도 어떤 특정 계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계층 전반을 아우르는 만큼,

어렵고 복잡해선 개인 차에 부응,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주제가 명확한 것을 단순화 해서 한가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게 낫겠다.

 

***

요즘 '신영복' 님의 '처음처럼'을 아껴가며 읽다가,

얼마전 '강신주'를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던 '공자'와 '논어'의 독법에 대해,

신영복' 님이 '강의'에서 밝혀놓으신게 떠올랐다.

 

 처음처럼
 신영복 글.그림 / 돌베개 / 2016년 2월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그러나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인권 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관을 이유로 들어 그를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사상가로 매도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전 독법은 그 시제를 혼동하지 않음으로써 人에 대한 담론이든 民에 대한 담론이든 그것을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이 고전의 담론을 오늘의 현장으로 생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강의' 141쪽에서)

 

 

여기서 얘기되는 '시제'라는 것은 시대를 아우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정도로 바꾸면 되겠는데,

이쯤에서 공자가 말한 恕의 원리를 짚고 넘어가야 겠다.

(강신주의 '관중과 공자' 251쪽에서 자세히 언급되고 있으니,)

난 거칠게 요약하자면,

타인을 배려하는 윤리로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마음에 부합하는 타인만을 사랑할 가치가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배제의 논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공자의 恕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에게 행하는 것이 된다.

 

나는 신영복 님 또한 아주 많이 좋아하지만,

너무 가볍고 경박한 설레발로 비춰질까봐 떠벌리지는 않았었는데,

내가 이런 얘길 하면, 혹 신영복 님의 안티로들 생각할까봐 분명히 밝혀둔다.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라는 신영복 님의 견해엔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시대를 아우르는 것 말고 또 하나 중요한게 있는데 그걸 간과하지 않으셨나 싶다.

시제를 정하기 위해선 '기준'을 정하고 그리하여 비롯함과 말미암음을 애기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한데,

그걸 바꿔 말하면, 보편성과 차별성 정도가 되지 않을까?

 

기준과 관점에 따라 같은 대상도,

때로는 배경이 되기도 하고, 여백이 되기도 하고, 잉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풍요 또는 결핍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강승원과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강승원도 노후대책을 한다는데, 난 어떤 노후대책을 해야할까?

아니다, 지금 이순간을 즐겁게 신나게 살면 되는 거다.

크게 누리지는 못하지만,

소소하게 행복해 하면서,

큰 일에는 앞장 서 내달리지 못하면서,

작은 일에만 분개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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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15 17:49   좋아요 0 | URL
고전이나 역사를 읽을 때 최대한 많은 관점을 동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중에 올바르지 않은 관점은 제외해야죠. ^^

양철나무꾼 2016-03-16 23:5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 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대로 확립하기 위해선 오늘도 열시미 읽는 것 뿐이겠죠?^^

L.SHIN 2016-03-15 22:26   좋아요 0 | URL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여기 올 때 마다 나는 무심코 저 계단을 오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요.
도대체 저 계단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오랫만이에요, 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6-03-16 23:53   좋아요 0 | URL
어머머~, 이게 누구래요?
와락~(__)
덥썩~(__)
잘 지냈어요?

전 저 계단 제일 밑에 걸터앉아서 책을 읽던지, 아님 운동장에서 농구하는 아이들 쳐다봤음 좋겠어요.
눈이 호사를 누리는거죠~^^

귀하게 아껴 뵙는것도 좋지만, 종종 자주 뵙는것도 좋죠?^^

L.SHIN 2016-03-21 16:14   좋아요 0 | URL
그거 좋네요. 계단 밑에 앉아 책을 읽는 거요.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데요? (웃음)

나무꾼님의 마지막 말이 묘하게.. 자주 와야겠군요..ㅋㅋ

양철나무꾼 2016-03-23 09:34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은 지금 봤네요~^^
저도 엄청 게을러서, 님을 부추길순 없고...--;
저랑 관계없이,
님은 언제 어디서나 인기만발이신걸요~^^
 
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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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하거나 갖고 싶은 걸 손에 넣기까지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돌이켜보면 시고 맛없는 포도일거라며 지레 체념하고 포기하는 이솝우화 속의 여우는 아니었다.

피그말리온 효과니 뭐니 해가며 겉으로 툴툴거릴지라도 아침ㆍ저녁으로 물 한그릇 떠놓고 치성을 드리는 정도는 행동으로 옮겼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독하고 있다고 알려진 '프로스트'의 '가지않은 길' 같은 시는 내게 또다른 깨달음을 준다.

양손에 쥐고 있다 넘어지면 코가 깨지게 마련이니까,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

맘은 별로 달아나지 않겠지만,

아쉬움과 미련을 남기고 침을 눌러 삼키듯 눈물을 눌러삼켜야 한다는 거고,

그걸 다른 말로 심사숙고라고도 한다.

 

과거의 나 같았으면 만석꾼 며느리처럼 호기롭게,

쌀을 빌어 죽을 먹진 않겠노라며,

쌀을 밑천 삼아 밥을 지어먹고,

밥 힘으로 일감을 찾아 일을 하면서,

언제고 내게 따뜻한 봄날이 다시 한번 찾아와 주길 기다리겠다고 했을테지만~(,.)

 

같은 상황을 놓고도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포기나 체념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선택과 새로운 시작이 되기도 한다는 걸 이젠 안다.

 

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아직 믿고 싶지만,

마냥 기다리고만 있기에는 남아 있는 날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하여 의욕이 충만하여 무조건 행동이 앞서게 되면 상대를 버겁게 할 수도 있다.

무엇이든, 아무거나, 간절히 원해도 되는게 아니란 걸 알 정도로 나이를 먹어 버렸다.

 

이 책을 2권까지 꼭꼭 씹어먹듯 읽었다.

참 좋았고, 이런게 나이 들어 책을 읽는 기쁨이구나 싶어 잠시 충만해지기도 했었다.

'강신주'라는 사람이 참 대단하고 멋있다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이내...아줌의 오지랖이 발동을 했달까,

우리나라 학계, 세계 각국의 공자 추종자들이나 유학계에서 강신주의 저작을 읽게 되어 이의를 제기하고 반발을 하면 어쩌나,

내 맘에 쏙 드는 '제자백가의 귀환'시리즈의 출판을 저지하면 어쩌나,

그리하여 책이 출간되더라도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학술적 근거들을 준비하느라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면 어쩌나,

하는 엉뚱한 생각들을 했었다.

 

2권까지 읽은 후에야,

그동안 내가 공자에 대해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1권을 읽는 동안에도 잘못 알고 있었던 게 제법 있더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1권의 리뷰에서도 코멘트를 했었던,

공자의 휘하에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던 까닭을 내맘대로 공자가 출신 성분, 사회적 지위를 상관하지 않고 제자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일거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나의 논리대로라면...'논어' '양화'편의,

"여자와 소인은 관계하기가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는데...

강신주의 설명은 이렇다.

ㆍㆍㆍㆍㆍㆍ공자의 아들 공리가 이혼한 자신의 어머니가 죽자, 그녀의 상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를 논의하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공자가 부인과 이혼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공자는 제가齊家, 즉 가정을 가지런히 하는 데 실패한 남편이었던 셈이다. 공자는 소인과 여자에 대해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고 평가했지만, 사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전적으로 여자에만 해당하는 진단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는 소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길을 가는 자들과는 결코 상종하지 않는 것이 공자의 지론이기도 했다.(250쪽)

 

세살때 아버지를 잃고 어린 시절 가난하고 어렵게 자란 공자가,

소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고, 이미 다른 길을 가는 자들과는 결코 상종하지 않았다는 것도 일종의 충격이었지만,

공자가 말하는 인과 예는, 만인을 향한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지배계층에만 국한된 것이었고,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도 귀족인 국인 계층에만 해당되는 얘기였다는 걸,

그 시대의 실정이 그랬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평생 학문만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친 청렴결백한 학자로만 알았던 공자가,

제나라의 환공을 패주로 만든 관중과 같은 재상이 되고 싶은 열망으로 평생 몸부림 쳤다는건 더 큰 충격이었다.

이쯤 되면 공자가 위대한 성인이 아니라, 신분상승만을 꿈꾸던 야망덩어리 정치가가 되는건데,

그렇다고 하면 역사책의 왜곡이 정말 심한게 되는 것이고,

궁형의 수모를 감내하고 '사기'를 지은 '사마천'이 위대해보이지 않고 추해보이는 패단이 있으니 말이다.

 

공자가 관중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했을때,

내용을 잘 몰랐을 때는 시대 상으로 관중이 앞설지라도,

인지도 면에서 공자를 앞에 놔 주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었다.

공자가 관중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일종의 오독을 해서 전혀 다른 내용과 사상이 탄생했기 때문에,

관중과 공자를 따로 따로 자리매김해 주어야 하고, 그럴땐 원류인 관중이 앞서는게 맞겠다.

 

여기서 관중과 공자의 가장 큰 차이점이 등장한다.

관중이 재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힘이고,

공자와 그의 대부분의 제자들이 관리로 임용되지 못했던 그 힘이기도 한데,

경험에서 우러난 현실감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관료로서의 생활, 전쟁에 군인으로 복무했던 경험, 상인의 경험 등이 그것이다.

(관중이 국읍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5家를 1軌로, 10궤를 1里로 하는 里 개념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관중이, 민중이 국가 경제력과 군사력의 실질적인 토대라는 점을 인식했다고 해서,

민중의 진정한 개념을 알고 아끼고 사랑하는 인본주의자나 민주주의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나 군주의 편에서 민중이 지닌 잠재력을 최대한 착취하는 하는 방법을 모색한 정치가라고 봐야 할텐데,

이전처럼 민중을 강제적인 방식으로 통제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삶의 조건들을 충분히 제공함으로써 자발적인 참여와 복종을 유도했을 뿐이다

 

공자는 한술 더떠 정치의 성공 여부가 기본적으로 귀족들, 국인들의 도덕성에 달려 있다고 판단했다.

민중을 지배층의 도덕적 행실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며 움직이는 존재로 인식했으며, 정치적 판단 주체로 인정할 수 없어했다.

이렇게 뜬구름만 잡으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학문적으로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결국 공자는 와해되고 붕괴되려던 자신의 사학집단을 철학 학파로 변신시키는데 성공하는데 그게 유학 사상이다.

 

유학 사상은 절대 국가의 탄생과 군주권의 확장을 막으려던 세습 귀족층이나 기득권 계층의 자기 정당화 논리와 잘 맞아 떨어졌고, 그들과 맞물려서 힘을 발휘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셈이다.

 

책 내용은 잘 이해되었지만,

관중도 그렇고,

공자도 그렇고,

더 이상 성인으로 보이지도 않고 훌륭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논어의 구절들도 예전엔 멋지다며 몇 구절 읊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막무가내로 멋지다고 할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자였는데,

자신이 그렇게 가난하고 어렵게 자랐으면서,

어떻게 사람을 차별할 수가 있었으며,

또 하나, 가르치는 것을 말로만 하려 했던게 아닌가 싶었다.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은 차치하고라도,

솔선수범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있을까?

여기서 공자의 '유아론'이라고 해서 '서恕'의 원리까지 나와주시면 제대로 복잡해지니...생략하기로 하자.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논어의 이 구절만 해도, 더 이상 예전의 의미로 읽히지 않는다.

공자는 어쩌면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했던 사람이 아니라,

평생을 '學而時習할 수 없으면 어쩌나, 有朋 自遠方來 하지 않으면 어쩌나 ' 하고 걱정을 했던,

나같은 안달루시아 부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공자는 나이 50에 주역을 읽기 시작해서,

너무 좋아서 韋編三絶이 되도록 읽었다고 한다.

나이 50을 지천명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공자가 나이 50에 주역을 읽어 그리 되었다는 의미는 아닐까?

 

나도 이러구러 논어를 작파하고 주역으로 갈아타야겠다.

지금 시작하면, 70에 이르면 종심소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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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3-12 21:0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6-03-14 16:4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요번 한주도 즐겁게~, 신나게~ 보내자구요~^^
감기는 다 나으셨져~?^^

마녀고양이 2016-03-13 23:01   좋아요 0 | URL
자기는 어쩜 이렇게 강신주 님의 책들을 멋지게 소화해내는 걸까!
내가 자기 땜에 강신주 님 책을 샀다가, 사분의 일 읽고 결국 팔아버렸잖아. ㅠㅠ

예전에 나보고,
자기랑 나랑 추리 소설의 좋아하는 분야가 같은 줄 알았는데 친해지고 보니 아니더라고 그러던데...
진짜 나랑 자기랑 책 취향 달라............. 그래서 멋져.

진짜 나이 드는 것 같아,
이제는......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버릴려고. 그래서 자기에 대한 질투도 쬐끔 버려따~ ㅋㅋ

양철나무꾼 2016-03-14 16:45   좋아요 0 | URL
나도 강신주 책들을 읽기는 아는데, 다 좋지는 않고...
어떤 것들은 좀 많이 불편하더라는~--;

그래 그랬었지.
자기랑 나랑 장르소설이란 장르를 좋아하는 것만 똑같앴고,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 달랐었지.
하긴 요즘은 그 장르소설 중 얼마 안 되는 그 분야마저...잘 안 읽게 되더라~.

나에 대한 질투씩이나?
아직 나이 안 들었네...ㅋ~.
나이들어봐라. 질투할 기운이 어딨나?
다 잘하고 싶은 마음 따윈 버린지 옛날이라네...ㅋㅋㅋ~.

코알라 잘 지내나?
보고시포, 코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