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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하는데,
어느 지역의 예비후보가 나와서 청년 문제와 관련하여 얘기를 하더라.
청년 고용 문제, 일자리 창출 문제, 복지부분 예산 따위의 단어들이 무게감 없이 스치듯 지나가는데,
사회자가 '지금 누리과정 예산도 부족한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하고 붙잡는다.
그러자 이 후보 은근슬쩍 노선을 바꾸네, 복지 개념이 아니라 사회가 투자를 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흐억~--;
그 지역의 특성 상 '청년 문제'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겠지만, 공약으로 내세울 '문제'라는 것이 청년 계층에만 국한된 것일까?
중ㆍ장년층도 그렇고, 노령층도 그렇고, 대책이 없고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은 다 마찬가지 아닐까?
어려운 단어나 외래어를 쓰는 것도 아닌데, 안개 속을 헤매는듯 모호하고 답답한 것이 만성체증이 되어 나를 내리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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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난 이 사람이 아주 좋고,
이 사람의 '노후대책'에 전적으로 동조할 의사가 있다.
좋다고 설레발을 친게 벌써 한두번이 아니라서,
그에 대한 예찬론은 이쯤에서 줄이기로 하고(=>링크)
유행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연예계에서 트렌드는 아니지만,
나이 어린 친구들이 아이돌이구 어쩌구 하는 것과 비교하면,
올드하다 못해 파파할아버지에 가깝겠지만,
책으로 치자면 베스트셀러는 아니어도 스테디셀러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고전을 읽는 것도 어쩜 이런 차원인지도 모르겠다.
오래 살아 남는 것들은 오래 살아남는 것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시대를 아우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얘기, 즉 '보편성'이 되겠는데,
그렇다고 보편적이기만 해선 다른 것과의 차별성이 없으니, 오래 기억되긴 힘들다.
요즘은 사회문제만 하더라도 어떤 특정 계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계층 전반을 아우르는 만큼,
어렵고 복잡해선 개인 차에 부응,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주제가 명확한 것을 단순화 해서 한가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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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영복' 님의 '처음처럼'을 아껴가며 읽다가,
얼마전 '강신주'를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던 '공자'와 '논어'의 독법에 대해,
신영복' 님이 '강의'에서 밝혀놓으신게 떠올랐다.
처음처럼
신영복 글.그림 / 돌베개 / 2016년 2월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그러나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인권 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관을 이유로 들어 그를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사상가로 매도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전 독법은 그 시제를 혼동하지 않음으로써 人에 대한 담론이든 民에 대한 담론이든 그것을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이 고전의 담론을 오늘의 현장으로 생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강의' 141쪽에서)
여기서 얘기되는 '시제'라는 것은 시대를 아우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정도로 바꾸면 되겠는데,
이쯤에서 공자가 말한 恕의 원리를 짚고 넘어가야 겠다.
(강신주의 '관중과 공자' 251쪽에서 자세히 언급되고 있으니,)
난 거칠게 요약하자면,
타인을 배려하는 윤리로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마음에 부합하는 타인만을 사랑할 가치가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배제의 논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공자의 恕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에게 행하는 것이 된다.
나는 신영복 님 또한 아주 많이 좋아하지만,
너무 가볍고 경박한 설레발로 비춰질까봐 떠벌리지는 않았었는데,
내가 이런 얘길 하면, 혹 신영복 님의 안티로들 생각할까봐 분명히 밝혀둔다.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라는 신영복 님의 견해엔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시대를 아우르는 것 말고 또 하나 중요한게 있는데 그걸 간과하지 않으셨나 싶다.
시제를 정하기 위해선 '기준'을 정하고 그리하여 비롯함과 말미암음을 애기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한데,
그걸 바꿔 말하면, 보편성과 차별성 정도가 되지 않을까?
기준과 관점에 따라 같은 대상도,
때로는 배경이 되기도 하고, 여백이 되기도 하고, 잉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풍요 또는 결핍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강승원과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강승원도 노후대책을 한다는데, 난 어떤 노후대책을 해야할까?
아니다, 지금 이순간을 즐겁게 신나게 살면 되는 거다.
크게 누리지는 못하지만,
소소하게 행복해 하면서,
큰 일에는 앞장 서 내달리지 못하면서,
작은 일에만 분개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거다~!